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위기에 놓였을 때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느님 맙소사!” 하고 외쳤습니다. 어른들이 자녀들을 훈계할 때에도 “하늘이 무서운 줄 알아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을 단순히 하늘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일찍이 하늘을 ‘하느님’이라고 불렀으며, 재앙을 피하고 복을 빌기 위하여 하늘에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하느님에게는 사람 손으로 채워 드려야 할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 위에서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사도 17,23-27).
타고난 종교적 심성
인간은 본래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 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또한 인간은 진실하고 보람 있는 삶을 갈망하며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받고 괴로워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나약과 부족을 스스로 알고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좀더 절실하게 느낄 때 인간의 종교적 본성은 더욱 드러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불교, 유교, 개신교, 천주교 등 여러 종교들이 저마다 독특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여러 종교들은 발생 기원과 교리, 조직 체계와 신앙 태도 등에서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란 이런 것이다.’ 하고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하나의 감정에 빠지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철학적 인생관, 또는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도덕적 가르침이거나 신비적인 예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종교를 단편적으로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종교란?
‘종교’(宗敎)라는 말을 풀어 보면 ‘종’은 모든 것의 중심을, ‘교’는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 곧 ‘인생의 근본과 도리에 대한 가르침’ 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 언어에서 통용되는 종교(Religio)의 어원은 ‘인간이 하느님을 다시 인식한다’, ‘인간을 하느님께 다시 묶어 맨다’, 또는 ‘인간이 하느님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다시 찾는 것’ 또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자신의 근본을 알아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참 종교의 조건
인간의 근본과 그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는 참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종교는 이성을 초월할 수는 있어도 이성과 모순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종교 때문에 인간의 도리, 곧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종교의 근본 진리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는 필요 없고, 다만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만일 종교가 단지 정신 수양을 하는 것이라면 어느 종교를 믿든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윤리 도덕과 같지 않습니다. 참된 종교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종교적 삶
종교의 좋은 점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종교를 갖는 것에는 큰 부담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하고 올바르게 하도록 가르치는데, 그 가르침대로 살면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불의한 사회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생존을 위한 전쟁터라고 일컬어지는 사회 생활 속에서도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늘 기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종교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면서 겸손과 사랑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천주교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웃과 사랑을 나누도록 가르칩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고 인생의 완성을 추구하면 살 수 있게 됩니다.
종교들은 나름대로의 진리와 도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은 존중할 만한 가치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웃 사랑이라는 덕목을 가지고 모든 종교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고, 어떻게 믿고, 왜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