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전례 음악에 대한 김종헌 신부님의 글을 모아놓았습니다.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heonkim [at] liturgynmusic [dot] com)
미사 전례를 포함한 모든 전례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비교할 수 없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7항 참조). 이처럼 교회의 가장 거룩한 행위인 성대한 전례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음악이 있다(전례 헌장, 112항).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미사 각 부분의 전례적 의미와 음악의 봉사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미사 전례의 시작 예식과 그에 관계되는 음악에 대해 다루고, 다음 호에서는 말씀 전례와 음악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사 전례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나누어지지만 이 두 큰 식탁은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단 하나의 하느님 경배 행위를 이룬다. 미사에서 주님의 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의 식탁이 차려지며 이 식탁에서부터 가르침과 음식이 신자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두 큰 식탁에는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 부분이 첨가되어 있다(2002년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8항 참조: 이하 ‘총지침’으로 표기).
시작 예식은 말씀 전례 앞에 오는 예식으로서 입당, 인사, 참회 행위, 자비송, 대영광송 그리고 본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사 전례의 시작과 하느님 말씀을 들을 준비의 성격을 지닌다(총지침, 46항 참조). 이러한 “예식들의 목적은 한데 모인 신자들이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합당하게 성찬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데에 있다”(위와 같음). 그러나 미사 전에 다른 예식이 있거나 시작 예식을 다른 예식과 함께 거행하는 경우에는 시작 예식의 인사와 참회 부분이 생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부활성야 예식, 재의 수요일의 재 축복,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성지 축복과 행렬, 주님 봉헌 축일의 초 축복과 행렬, 세례 예식 등을 미사 전에 거행하는 경우이다.
1) 입당
입당 행렬은 지성소로 향하는 사제와 봉사자들의 장엄한 입장일 뿐 아니라 전례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들의 명백한 표현이 된다. 전통적으로 서방 전례에서는 주례자와 봉사자들이 입당할 때 노래가 불리는데,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 전례를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강화하며,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고, 그들이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총지침, 47항 참조). 이렇게 입당 노래의 중심은 전체 회중에게 있으며 입당하는 사제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입당 행렬과 관련하여 본당에서 생기는 성가대 지휘자와 사제의 갈등 중 하나는 입당 노래를 얼마나 길게 노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례 음악가들은 이 노래의 목적을 충분히 살리려면 보통 한국교회에서 하듯 한 절만 노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교우들이 입당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충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구원의 신비를 거행할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또 보통 찬미가의 가사 전체가 한편의 시(詩)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사 전부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제들은 이를 수용하여야 한다.
입당 노래를 부르는 방법으로 총지침 48항은 성가대와 백성이 교대로 부르거나, 선창자와 백성이 교대로 부르거나, 백성 전체가 함께 부르거나 또는 성가대만이 부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노래는 행렬 노래이기에 기악 연주나 침묵도 가능하다.
입당 노래 때 부르는 노래의 본문은 로마 화답송집(Graduale Romanum) 또는 단순 화답송집(Graduale simplex)에 있는 시편과 대경(후렴, antiphona)을 사용하거나, 예식이나 축일 또는 전례시기에 알맞은 다른 노래(찬미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가사는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고 총지침 48항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축일이나 전례시기에 알맞은 노래 가사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1969년 미국 주교회의의 결정을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 미사 예식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신자들 자신이 바로 예배 공동체라는 것을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제대에 인사하고 신자들과 함께 십자성호를 그은 사제는 신자들에게 인사한 후 참회 예식을 시작한다.
2) 참회 행위(예식)
주례 사제는 참회하도록 신자들을 초대한 다음, 교우들의 성찰을 돕고자 잠시 침묵 시간을 주어야 한다(총지침, 51항 참조). 그리고 “주일, 특히 파스카 시기의 주일에는 참회 예식의 관습 대신에 경우에 따라 세례를 기념하여 물을 축복하여 뿌리는 예식(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총지침, 51항).
이렇게 성수 예식을 할 때에는 교송이나 그에 적합한 노래를 부른다. 최근까지 ‘아스페르제스 메’(Asperges me) 예식이라고 알려진 이 예식은 주일 교중미사 전에 행해졌다. ‘Asperges me’라는 말은 시편 “히솝의 채로 내게 뿌려 주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50[51],9 )에서 나왔으며, 또 부활시기에 부르는 ‘비디 아쾀’(Vidi aquam)의 가사는 에제키엘서의 “나는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다.”(47,1.8.9 참조)에서 따왔다. 물론 이 두 곡 이외에도 성수 예식에 어울리는 다른 성가들을 부를 수 있다.
성수 예식을 하는 경우, 이 예식을 마치면 곧바로 대영광송을 노래하거나, 대영광송을 노래하지 않을 경우에는 곧바로 본기도를 바치게 된다.
3) 자비송(Kyrie eleison)
희랍어로 된 자비송(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은 상당히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4세기 이전에 이 환호는 호칭기도(litany, 連禱) 때에 각 청원에 대한 신자들의 응답으로서 동방교회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곧 부제가 기도의 지향을 발표할 때마다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통상적으로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교황 젤라시오(492-496년 재위)는 동방교회의 이 기도 형태를 말씀 전례의 결론으로 사용하던 오래된 ‘보편지향기도’의 한 형태로 바꾸면서, 보편지향기도 끝에 이 응답을 덧붙이도록 지시하였다. 이때부터 이 환호송은 미사의 시작 부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렇게 100년이 지난 뒤 미사 전례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는 미사를 좀 더 짧게 만들고자 특별한 날에는 기도의 지향 없이 대답(“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만을 노래하도록 허락하였고, 이것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
만약 이 자비송이 참회 예식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지 않았을 경우, 곧 성수 예식을 하였거나 참회 예식에서 자비송을 포함하고 있는 ㉰ 형식을 바치지 않았으면, 참회 행위 다음에 언제나 자비송을 바친다(총지침, 51-52항 참조). 그러나 많은 본당에서는 자비송이 포함된 ㉰ 형식(“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을 사용하고도 자비송을 노래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비송을 두 번 하는 것이기에 피해야 한다.
“자비송은 신자들이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보통 신자 모두가 바친다. 곧 백성과 성가대 또는 백성과 선창이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바친다”(총지침, 52항). 그러나 늘 성가대와 회중이 교대로 하는 것보다 주례자와 회중이 교대로 노래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는 주장도 있으며, 성가대만이 노래할 수도 있다.
또 “자비송의 환호는 보통 두 번 반복하게 되지만 언어나 음악의 특성 또는 상황에 따라 더 많이 반복할 수도 있다”(총지침, 52항). 이렇게 노래로 하는 자비송은 입당 성가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참회 예식의 부분으로서 자비송을 노래할 때는 각 환호 앞에 ‘수식문’(이를 trope라 한다.)을 덧붙일 수 있는데(총지침, 52항), 한글 미사 통상문에서는 ㉰ 형식으로 소개되어 있다(“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 ”).
이 자비송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래할 수 있지만, 노래로 할 경우, 반드시 짧고 단순한 곡이어야 한다. 만일 거창한 곡을 노래하게 된다면, 시작 예식이 지나치게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작 예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노래는 ‘대영광송’이기 때문에 이 대영광송을 제대로 살리려면 자비송은 짧고 간단한 곡을 노래하거나, 그냥 낭송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는 대영광송이 없기 때문에 다소 긴 또는 다성음악으로 된 자비송도 괜찮을 것이다.
자비송이 끝나면 사순시기와 대림시기를 제외하고는 곧바로 ‘대영광송’을 노래해야 한다.
4) 대영광송(Gloria)
총지침 53항은 대영광송을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리는 매우 오래되고 고귀한 찬미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대영광송은 성서의 시편과 찬미가들을 본떠 만든 초대 그리스도교 찬미가의 보고에서 나온 유산이다. 희랍과 시리아 원전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이 찬양 노래는 부활 대축일 새벽 찬미가로 사용되었으며, 점차 아침기도의 종결부에 놓이게 되었다. 또 6세기 초에 이미 로마 미사와 합치되었지만 주교가 주일미사를 주례할 때와 순교자들의 축일에만 노래하도록 유보되었다. 사제들은 오직 부활성야에만 노래 부를 수 있었지만 11세기부터는 주일미사와 모든 축일에 대영광송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비잔틴 교회에서는 대영광송이 이미 일찍부터 아침기도의 구성 요소가 되어있었던 데 비해, 서방에서는 특별한 축일 미사 전례 시작에 대영광송이 자리하였다. 1970년 새로 개정된 『미사 전례서』에 따르면 대영광송은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밖의 모든 주일, 대축일과 축일, 그리고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거행 때에 노래하거나 낭송한다.”(총지침, 53항)라고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가진 기쁜 찬미가인 이 대영광송은 특정한 주일과 대축일의 축제적이고도 특별한 성격을 강조한다. 앞에서 말한 대영광송의 제한적인 사용, 곧 대림시기와 사순시기를 제외한 주일에만 그리고 대축일과 축일에만 대영광송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 역시 대영광송의 특별하고 장엄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대영광송은 원래 모든 회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였기에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단순하게 작곡되었다. 그러다가 정교한 음악적 기교들의 발전과 더불어 대영광송은 오직 성가대만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신자들도 기본적으로 이 노래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고대의 찬양 찬미가는 이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영광송은 이제 주례자뿐만 아니라 선창자 또는 성가대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본문은 모두 함께 노래하거나, 백성과 성가대가 교대로 또는 성가대가 홀로 노래한다”(총지침, 53항). 이렇게 총지침은 대영광송을 성가대만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전례의 공동체성을 살리려면 온 회중이 함께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축제의 기쁨이나 장엄성을 드러내려면 성가대의 아름답고 웅장한 합창도 좋을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일부 본당에서는 신자들과 사제 그리고 성가대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사의 모든 노래를 모든 신자가 함께 불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사 전례가 공동체의 예배 행위라 하여 미사 중 독서를 모든 신자가 함께 읽어야 하는 법도, 주례사제의 기도를 같이 하는 법도 없다. 독서자나 주례사제는 신자를 대표한다. 성가대 역시 신자들의 일부이다. 따라서 성가대의 노래는 바로 우리의 노래라는 의식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성가대는 신자들의 참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할 때에는 어떤 미사에서든 모든 신자가 찬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아는 노래를 골라야 하겠다.
대영광송은 찬미의 노래이기 때문에 일어서서 부르지만, 성가대만이 노래할 때에는 미국교회의 경우, 신자들은 앉도록 허락하고 있다.
대영광송은 다른 어떤 노래로 대체할 수 없으며, 본문 역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총지침, 53항 참조). 그리고 총지침의 같은 항에서 대영광송을 “노래하지 않을 경우는 모두 함께 낭송하거나 두 편으로 나누어 교대로 낭송한다.”라고 되어있는데, 이렇게 대영광송을 노래로 부르지 않고 낭송하는 경우, 이 노래의 축제적 성격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생각하고 반드시 노래로 부를 것을 권한다.
입당 노래, 자비송에 이은 대영광송의 노래는 신자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점도 있지만 입당 예식을 너무 비대하게 만들게 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약 입당 노래를 하는 경우에는 자비송과 대영광송 모두를 노래로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 대영광송이 없는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자비송을 노래하고, 자비송과 대영광송을 모두 노래로 해야 할 경우에는 자비송은 ㉰ 형식을 선택하여 낭송하고 대영광송을 노래하도록 하자.
[사목, 2005년 5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 말씀 전례와 음악 -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heonkim [at] liturgynmusic [dot] com)
미사 전례를 이루는 두 개의 큰 식탁 중 말씀의 식탁(말씀 전례)에서 미사는 본 예식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주로 하느님의 말씀이 공동체에 선포된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는 독서들을 통해 신자들은 양육되며, 침묵과 강론을 통해 이를 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화답송과 신경으로 이 말씀에 화답하게 된다. 말씀 전례는 아래 세 개의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말씀 전례 가운데 음악과 연관되는 것들을 여기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 첫째 부분: 제1독서(구약성서에서) - 화답송(응답) - 제2독서(신약성서에서)
· 둘째 부분: 복음 환호송(Alleluia) - 복음 봉독 - 강론
· 셋째 부분: 신경(필요할 때에) - 보편지향기도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서에서 취한 독서들과 그 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제1독서와 제2독서 사이, 그리고 제2독서와 복음 사이에 부르는 노래들이 있으며, 이들은 화답송, 부속가 그리고 복음 환호송이다.
1) 화답송
제1독서 끝에는 화답 시편(psalmus responsorius, 간단하게 화답송이라고 한다.)이 뒤따른다. 말씀 전례의 본질적 부분인 이 화답송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전례적으로나 사목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61항: 이하 「총지침」으로 표기).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을 계속해서 이어가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서 낭독에 시편이나 찬가를 노래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였다. 로마에서는 독창자나 차부제가 제1독서가 끝난 뒤에 독서대의 한 계단(gradus, 층계 또는 계단) 아래에 서서 시편을 노래하였다(그래서 층계송, graduale란 명칭이 생겨났다.). 독창자가 시편 구절을 부르고, 신자들은 주로 시편 자체에서 가져온 짧은 후렴으로 응답하였다. 이 후렴은 한때 매우 화려한 선율로 발전하였고, 시편 자체는 생략되기도 하고 성가대에서 연주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씀 전례의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이제 화답송은 말씀 전례의 본질적 요소가 되었다.
시편은 노래 기도이다. 말씀 전례는 이 화답 시편이 노래로 불릴 때 더 큰 생명력을 가진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신자들은 더욱 말씀에 집중하게 되고 투신하게 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화답송은 노래로 불러야 하는데, 이를 노래하는 방법은 화답 형식(modus responsorialis)과 직접 형식(modus directus) 두 가지가 있다(「미사 전례 성서 총지침」, 20항 참조). 첫 번째는 선창자가 노래하면 회중은 후렴으로 노래에 참여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선창자만 노래하고 회중은 조용히 듣거나 아니면 회중 전체가 선창자와 함께 노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총지침 61항의 “적어도 백성이 맡는 후렴의 경우에는, 노래로 부르도록 되어있다.”를 감안하면 화답 형식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화답송의 노래 형식이 어떤 것이 되었건 회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며, 회중들이 시편에 익숙하도록 하고, 암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은 아름다워야 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어야 하며, 외우기 쉬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은 독서들 가운데 하나와 문맥상으로나 영성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많은 경우에 어떤 전례시기에 전통적인 시편을 여러 세기에 걸쳐 사용하였다. 한국교회의 많은 공동체들이 매주 또는 매일 화답송을 배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전통 시편을 이용한 ‘절기 시편’(seasonal psalm)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싶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대림시기: 시편 25. 80. 85; 성탄주간: 시편 96 - 98; 공현시기: 시편 72; 사순시기: 시편 26. 51. 91. 130; 성주간: 시편 22; 성삼일: 시편 66. 118; 부활시기: 시편 65. 118; 성령 강림 대축일: 104. 특정한 어떤 시기에 하나의 시편만을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시편을 자주 배우고 익혀야 하는 부담감에서 음악 봉사자들이나 신자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화답송은 행동을 수반하는 노래는 아니다. 방금 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화답송은 시편 이외의 다른 창작 성가로 대신하지 못한다. 아울러 이 노래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기능을 가진다. 시편 독창자는 시편 구절을 아주 단순한 선율로 읽더라도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평일미사에서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무반주로 부를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시편 노래 몇 개를 배울 수 없을까? 화답송은 아주 드문 경우에만 낭송된다. 만약 음악을 구할 수 없거나 노래를 부를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총지침」, 61항)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감정을 넣어 잘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화답송을 위한 선창자의 자리는 해설자석이 아닌 독서대여야 한다.
2) 부속가(Sequentia)
알렐루야가 발전하는 초기에 이 환호송을 시작하는 독창자들이 ‘알렐루야(Alleluia)’의 마지막 음절, 곧 ‘-ia’를 길게 그리고 즉흥적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마지막 음절을 길게 장식하여 노래하는 법을 ‘Jubilus’라 하며, 이것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가사 없는 기쁨(Joy without words)’이라고 묘사했다. 중세 초기에는 이 마지막 음절 위에 가사를 붙이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수많은 ‘부속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부속가는 어느 정도 독립된 음악 작품으로서 가끔은 운문의 가사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5,000개에 이르던 부속가들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거의 없어지고, 지금 전례에서는 오직 4개의 부속가만 사용되도록 되었다. 곧 예수 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의무적으로 부속가를 사용하여야 하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는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부속가의 원래 위치는 알렐루야 다음이었지만 현 전례에서는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 앞에 노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부속가는 한 곡도 작곡된 것이 없기에 노래로 할 수는 없고, 그냥 읽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3) 복음 독서 전 환호(복음 환호송)
복음 전에 하나의 독서만이 봉독된다면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은 둘 다 노래로 부르거나 둘 중 하나만 노래할 수도 있다. 아무튼 복음 바로 앞에 오는 독서가 끝나면 전례시기에 따라 예식 규정대로 알렐루야나 다른 노래를 부른다. 다른 환호송도 마찬가지이지만 환호는 전례의 부수적 요소이거나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식 또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복음 전 환호는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한다. 이렇게 회중은 노래를 하면서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총지침」, 62항).
알렐루야는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으로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는 주님을 찬미하라’이고 전례나 기도 가운데 공동체가 하느님 앞에서 또는 하느님을 향하여 외치는 기쁨의 환호이다. 이 전례적 환호,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노래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354-430년)에 따르면 이 환호송은 주일마다 노래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5세기경 로마에서는 이를 예수 부활 대축일에만 사용하였고, 그러다가 결국 모든 부활시기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그 뒤 사순시기를 제외한 모든 전례시기에 사용되었다.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노래한다. 주일미사, 평일미사는 물론이고 장례미사 또는 위령미사에서도 노래로 한다. 평일미사의 경우, 만약 알렐루야 다음에 오는 시편 구절을 노래할 사람이 없다면, 이 부분만큼은 해설자나 어떤 사람이 이를 기쁘게 큰 소리로 읽을 수 있으며, 그 다음 모든 신자가 알렐루야를 노래로 하면 되겠다.
알렐루야 노래가 부활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대로 사순시기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그 대신 『미사 전례 성서』에 제시된 복음 전 환호를 노래한다. 「총지침」에서는 화답송집에 있는 대로 다른 시편 또는 영송(詠誦, Tractus)을 노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62항 (나)). 이 영송은 서양 음악사에서는 ‘연경’(tractus)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는 반복이 없는 독창곡이었다.
◈ 복음 환호송을 부를 때 유의할 점
ㄱ) 알렐루야는 사제가 시작하거나 필요에 따라 선창 또는 성가대가 시작한다. 그 다음 이를 모든 신자가 받아서 한 번 더 노래하고 그 다음에 『미사 전례 성서』에 있는 성경구절을 성가대나 선창자가 노래하면 신자들이 다시 알렐루야를 한 번 더 노래한다(「총지침」, 62항).
ㄴ) 복음 환호송으로서 알렐루야나 복음 전 환호를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 이 환호송을 읽기보다는 아예 빼버리는 것이 낫다(「총지침」, 63항 (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복음 환호송이다. 곧 듣게 될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은 곧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시 말해 복음 환호송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노래이다. 환호하며 그분을 반기는 표현은 말로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별 의미도 없다.
ㄷ) 알렐루야를 노래할 때의 빠르기와 느낌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말씨가 빨라지고 음정이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우리 노래를 통해서 느껴지도록 해보자. 어떤 알렐루야를 노래하든 생기 있고, 빠르게 노래해야겠다. 그리고 그런 곡이 아니면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의 것이라도 절대 선택하지 말아야겠다.
ㄹ) 알렐루야 또는 화답송에서 성경 구절을 노래하게 되는데, 이때 선창자는 어느 곳에서 끊고 숨을 쉬며, 쓸데없이 마지막 음의 직전 말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지나 않은지 늘 살펴야 한다. 물론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발음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신청자는 그렇게 큰 소리를 가지지 않은, 소리가 고운 사람이면 좋겠다. 이 성경 구절을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듯 해서는 안 된다. 독창자는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도(찬미)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창자의 자리는 독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에 신앙고백은 노래로 부르지 않는다. 신앙고백은 전체 신자들이 고백해야 하기에, 긴 신앙고백을 노래로 하는 것은 신자들에게 그렇게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다만 오늘날 외국교회에서는 신자들이 후렴만 반복하여 노래하도록 하는 곡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축일이나 주일에는 보편지향기도에 대한 응답을 신자들이 노래로 할 수 있지만, 이 응답은 단순하고 짧아 반드시 모든 신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도 응답은 전례 음악적으로 등급이 낮은 것이기에 평상시에는 권장하지 않는다. 또 미사 중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은 꼭 노래로 불러야 하고, 신앙고백과 보편지향기도 응답 역시 노래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지향기도에 바로 따라오는 예물 준비 때에도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이 기도는 노래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음악을 선곡하는 사람은 노래로 전례를 과중하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무 많은 노래는 예식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목, 2005년 6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 성찬 전례와 음악<1> -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heonkim [at] liturgynmusic [dot] com)
미사 전례의 그 첫 번째 식탁인 말씀 전례와 음악에 관해서는 지난 호에서 이야기하였다. 말씀 전례가 미사의 본질적인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른 예식에도 말씀 전례나 그 비슷한 예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결국 미사 전례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은 둘째 식탁인 성찬 전례(감사 전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미사의 성찬 전례 전체의 형식과 구조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의 개정 지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맞추어 정해놓았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만찬 중에 빵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먹어라.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72항: 이하 「총지침」으로 표기). 이제 우리는 성찬 전례를 ① 빵·잔을 들다: 예물 준비, ② 감사하다: 감사기도, ③ 쪼개어 주다: 영성체 예식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예물 준비와 감사기도를 전례 음악적인 면에서 다루고, 영성체 예식은 다음 호에서 다루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미사 전례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영성체 예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식사이자 그분을 제물로 바치는 거룩한 제사이다. 그래서 미사 때에 식탁과 제사상을 겸하는 제대를 준비하고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놓는 예식을 ‘예물 준비’라고 한다. 이 예식은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당신 손에 드셨던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대로 가져가는 행위에서 점차로 발달하였다.
이 예식의 문제점은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단순한 예물 준비 또는 행렬이, 11세기부터는 ‘제물 봉헌’ 그리고 ‘봉헌 행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제물은 신자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그리고 이 예물은 감사기도 중에 축성되어 봉헌되는데, 신자들은 준비한 예물이 마치 이곳에서 축성된 듯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개정된 미사는 이 예식의 의미를 성찬 식탁을 차리고 예물을 준비하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려 앞에서 말한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제헌’ 또는 ‘제물 봉헌’ 대신에 ‘예물 준비’, 그리고 ‘봉헌 행렬’ 대신에 ‘예물 행렬’이라고 불러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는 ‘봉헌 성가’ 대신에 ‘예물 준비 노래’ 또는 ‘예물 행렬 노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본인은 ‘예물 행렬 노래’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1) 예물 행렬 노래
예물인 빵과 포도주를 옮기는 것은 원래 예식 행위가 아니었지만 점차 신자들이 증가하고 예물이 많아지면서 행렬이라는 하나의 의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예물 행렬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신자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년) 성인은 당시 여러 대성당에서는 예물 행렬 때 시편을 노래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로마에서는 예물 행렬 때의 이 노래를 ‘봉헌 성가(Antiphona ad offertorium)’라고 불렀다.
이제 예물 행렬 노래라고 부르는 이 노래는 “예물을 가져오고 예물을 제대 위에 모두 준비할 때까지 신자들 또는 성가대만이 노래 부를 수 있으며, 오르간 또는 다른 기악 연주를 할 수도 있고, ‘거룩한 침묵’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총지침」, 37. 48. 74항 참조).
노래로 부를 적당한 성가로서 「미사 성가집」(Ordo Cantus Missae) 또는 「로마 성가집」 (Graduale Romanum)과 「단순 응송집」(Graduale simplex)에 있는 라틴어 봉헌송을 권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성가와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예물 준비에 알맞거나 전례시기 또는 그때그때의 축일에 알맞은 모국어 찬미가나 노래들을 골라야 하겠다. 아울러 실제로 행렬하는 신자들은 성가집을 들고 나가기가 거북스럽다는 것을 고려하여 다소 짧고 후렴을 가진 노래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신자들이 행렬 중에 책 없이도 간단한 후렴을 노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또 거의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예물 행렬 노래 한 곡을 마치면 오르간 반주도 동시에 끊어진다. 그리고 해설자가 다음 곡을 말해주고 새 곡의 전주를 시작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례가 중단된 느낌을 받게 된다. 따라서 비록 신자들의 노래는 끝났더라도 오르간 주자는 계속해서 어느 정도 음악을 연주하다가, 새 곡의 안내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그 곡으로 이어나가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노래의 규칙은 입당 노래의 규칙과 동일하다. 이 노래 역시 행렬을 수반하는 노래이기에 언제나 꼭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사가 시작되고부터 신자들은 입당 노래, 자비송, 대영광송, 두서너 개의 독서, 화답송, 알렐루야, 강론 그리고 보편지향기도를 했다. 이제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한 때이다. 또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한 침묵 시간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만일 전례가 계속해서 신자들에게 정신 집중을 요구하고 그 때문에 신자들이 계속해서 긴장을 풀지 못한다면 그 전례의 구성은 별로 잘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우리의 전례는 가끔 긴장도 풀 수 있는 매력적이고 평온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물 행렬 노래’ 때야말로 성가대가 잘 준비한 특별한 곡을 연주하기에 좋은 때라 할 수 있겠다. 성가대의 노래가 전례 공동체에게 평화스러운 마음이 들게 하고, 묵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오르간 연주도 좋다고 하였다. 물론 이 방법은 좋은 오르간과 신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좋은 오르간 연주자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예물 행렬 노래를 선택할 때 가사에 주의하자. 이 노래의 기능은 예물 행렬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노래의 가사가 반드시 빵과 포도주, 또는 봉헌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례시기에 맞으면서 찬미와 기쁨을 나타내는 내용의 노래라면 모두 가능한 것이다(Music in Catholic Worship, 71항 참조).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대로 감사기도에서 이루어지는 봉헌과 혼동되는 가사를 가진 노래만큼은 피해야 한다.
감사기도로 미사 전례의 핵심에 들어가게 된다. 「총지침」 79항은 감사기도의 여러 주요 요소를 일일이 열거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음악과 크게 관련이 있는 주요 요소들만을 살펴보겠다.
1) 감사 환호송(거룩하시도다, Sanctus)
감사송의 마지막 문장은 성찬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이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감사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감사 환호송’(거룩하시도다)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이 환호송은 성찬기도의 심장부에 있는 가장 중요한 환호송으로 다른 어떤 성가도 이 환호송보다 더 큰 품위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만약 미사 중에 단 한 곡만을 노래해야 한다면 공동체는 단연코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해야 한다.
‘거룩하시도다’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으며, 각각 성서 구절에 긴밀히 의존하고 있다. 첫 부분은 이사야 예언자의 부르심(이사 6, 2-3)과 연결되어 있으며, 둘째 부분은 마태오 복음이 제공하는 예루살렘의 입성 때에 군중이 외쳤던 환호를 인용한다(마태 21, 9). 이 두 부분은 7세기경부터 하나로 결합되어 감사 환호송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전통이 계속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서방교회에서는 중세 말엽에 다양한 멜로디가 발달하고 상당히 긴 다성부로 된 곡들이 생겨나면서 성가대만 노래하기에 이른다. 성가대가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는 동안 사제는 감사기도를, 심지어는 성찬 축성문조차도 혼자서 낮은 소리로 계속해서 읽음으로써, 사제와 성가대는 각기 다른 기도를 동시에 계속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1600년에 출판된 「주교 예식서」는 “거양성체를 첫 번째 ‘호산나’가 끝난 뒤에야 거행할 수 있고, Benedictus는 거양성체가 끝난 뒤 노래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와 같은 ‘거룩하시도다’의 잘못된 배분은 전례 개혁 이래 감사기도를 큰 소리로 낭송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허용되지 않으며, 1967년에 반포된 「성음악 훈령」(29항)과 1969년의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55항 2절; 2002년 개정판에서는 79항 나)은 다시금 이 노래를 모든 신자와 사제가 함께 부르는 성가로 환원시켰다.
이 환호는 감사기도의 일부로서 모든 신자가 사제와 함께 바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성가대나 음악 그룹만 연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비록 다른 미사 통상문(자비송, 대영광송, 하느님의 어린양)은 성가대만 노래 부른다 하더라도, 이 감사 환호송만큼은 반드시 모든 신자가 아는 노래로, 다 함께 노래하도록 교회는 배려해야만 한다. 지상의 공동체만 찬양하기에는 미흡하여 천상 성인들과 천사들까지도 초대해서 함께 노래하자고 해놓고 성가대만 노래한다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예배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즉각적이고 활기차게 환호할 수 있도록 신자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는 몇 개의 ‘거룩하시도다’를 암기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모든 신자가 정말 함께 환호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기에, 사제의 감사송 결론 부분과 ‘거룩하시도다’ 노래의 시작 부분 사이에서 머뭇거리거나 필요 없는 오르간 전주는 하지 말아야 한다. ‘거룩하시도다’ 노래의 첫 화음만 눌러주면 충분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사제가 감사기도를 하는 동안 오르간으로 조용히 반주를 해주는 것이 환호송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또 이 환호는 평일미사에서도 백성 전체가 사제와 함께 노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노래할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 전체가 낭송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룩하시도다’ 대신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2) 기념 환호송(신앙의 신비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70년에 개정된 새 「미사 통상문」은 성찬 제정과 축성문 뒤에 기념 환호를 새로이 도입하였다. 이 기념 환호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 성가 가운데 하나이기에 주례가 선창하면 모든 이가 함께 노래한다. 미사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에서 공동체 전체가 환호하는 것은 기념 환호송인 ‘거룩하시도다’ 이상으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다. 이 기념 환호송은 단순히 성찬 축성 동안 신자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온 회중을 성찬기도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신자들은 이 환호를 통해 방금 이루어진 축성과 구원의 제사를 믿고 고백하며, 이 신비를 세상에 선포하기로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로 신자들의 기념 환호를 인도하고, 공동체는 세 가지 양식 중 하나로 응답한다. ㉮, ㉯ 양식은 고린토 1서 11장 26절을 토대로 만든 것이고, ㉰ 양식은 중세 이래 기도서나 성가책에 자주 나오던 경문이다. 또 ㉮ 양식은 연중시기, ㉯ 양식은 사순·대림시기 그리고 ㉰ 양식은 부활시기에 사용하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어느 것을 노래하든 환호송인만큼 조금 빨리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마침 영광송과 아멘
감사기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마침 영광송’으로 장엄하게 끝맺는다. 이 기도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복구되었다. 공동체는 ‘아멘’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확인한다. 따라서 이 ‘아멘’은 미사 전례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인 감사기도를 마감하는 가장 중요한 환호이자 성서적 응답이다. 이러한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신자들은 이 환호를 가장 영광스럽고 장엄한 환호가 되도록 노래 부름으로써 성부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리도록 한다. 아울러 이 환호가 더욱 활기차도록 신자들은 몇 개의 ‘아멘’을 암송하여 노래할 수 있어야겠다.
또 사제들은 마침 영광송 때 성반과 성작을 약간 들어올리고 ‘마침 영광송’을 노래하든지 말하고, 신자들의 ‘아멘’ 응답이 끝나면 그때 비로소 들어올린 ‘성체와 성혈’을 제대 위에 내려놓도록 요구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사목, 2005년 7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 성찬 전례와 음악<2> -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heonkim [at] liturgynmusic [dot] com)
한국교회의 미사 전례 음악 중 가장 큰 문제는 ‘영성체 성가’의 사용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영성체 예식을 두 번에 걸쳐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영성체 예식을 구성하고 있는 ‘주님의 기도’, ‘평화 예식’,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를 다루고, 다음 호에서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 성가」에 실려있는 영성체 노래들을 나름대로 분석하여 과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영성체 성가들이 그 봉사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올바른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주님의 기도
영성체 예식은 ‘주님의 기도’로 시작한다. 빵, 용서, 그리고 상호간의 평화라는 주제를 가진 이 기도는 4세기 말엽부터 영성체를 준비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도로서, ‘빵 나눔’ 의식 직후(현행 미사의 ‘하느님의 어린양’)에 바쳤다. 그러나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는 이 기도를 성찬기도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판단하여 ‘빵 나눔’ 의식 이전, 곧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기도를 모든 신자가 노래한 것에 비해, 서방교회에서는 사제만이 이 기도를 노래하고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했다.
“주님의 기도에의 초대, 주님의 기도, 후속 기도와 백성이 마감하는 영광송은 노래하거나 큰 목소리로 바치게 되어있다”(2002년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81항 참조; 이하 「총지침」). 그러나 전례 음악적으로 보아 ‘주님의 기도’는 노래로 하기보다 큰 소리로 바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성체 예식의 핵심 부분은 성체를 모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를 준비하는 기도이기에 이 노래를 너무 거창하게 노래하는 것은 전례의 흐름상 어색하다. 어쨌든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한다면 단순한 곡을 모든 신자가 암기하여 노래 부를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만약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불렀다면 후속 기도(“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다음에 따라오는 영광송(“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역시 노래로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영광송은 주님의 기도의 한 부분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자고 초대하는 사제는 그날 미사 전례의 성격, 공동체의 크기에 맞는 권고를 하면 좋겠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할 경우, “형제자매 여러분, … 정성들여 노래합시다.” 등으로 바꾸어 초대해 준다면 신자들이 큰 소리로 기도문을 시작하는 등의 혼돈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2) 평화 예식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라고 부제(부제가 없을 때에는 사제)가 초대하면 신자들은 앞뒤 좌우의 몇몇 분들과 절도 있는(sobrie) 적당한 행동(「총지침」, 82항)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이때 노래는 필요 없다. 간혹 젊은이 미사에서 긴 시간 동안 ‘Shalom’을 노래하며 평화의 인사(이른바 윤회 인사)를 하는데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피정 등을 제외하고는 전례 정신에 맞지 않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평화 예식을 나누는 것이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하느님의 어린양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고 성작 안에 넣을 때 성가대나 선창자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낭송하고 회중들은 화답한다(「총지침」, 83항). 이 노래는 7세기경에 세르지오 1세 교황(687-701년)이 동방교회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제가 빵을 나누는 동안 전 회중이 계속하여 이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8-9세기부터 작은 빵이 등장하고, 이제 더 이상 빵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되자 여러 번 반복하던 노래를 세 번으로 한정시켰다. 이에 따라 ‘빵 나눔’을 동반하던 이 노래가 빵 나눔과는 상관없는 독자적인 예식으로 변하게 되었고, 결국 평화 예식 때에 부르는 노래, 심지어는 주례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영하는 동안 부르는 영성체 노래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현행 전례는 이 노래를 그 기원과 내용에 알맞게 사제가 빵을 나누는 동안 신자들이 부르는 성가로 환원시켰다. 일반적으로는 세 번 하지만 ‘빵의 나눔’을 동반하는 기도이므로 예식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여러 번, 필요한 횟수만큼 반복할 수 있다. 다만 이 노래를 마칠 때에는 ‘평화를 주소서.’로 끝내야 한다(「총지침」, 83항).
4) 영성체
영성체를 위한 준비 예식이 모두 끝나면 이제 영성체 예식의 본 부분인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체가 시작된다.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체는 하나의 예식이기 때문에 사제가 성체를 모시기 시작할 때 영성체 노래를 시작한다. 간혹 본당에서 사제의 영성체 때에는 ‘영성체송’을 읽고, 그 후에 또는 신자들의 영성체 때에는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중복이므로 입당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성체 때에 노래를 부른다면 「미사 전례서」에 나오는 ‘영성체송’은 할 필요가 없다.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만 영성체송을 낭송한다(「총지침」, 87항).
이제 우리는 ‘영성체 성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찬례의 목적과 의미는 그리스도와 신자 각 개인 그리고 거기에 참석한 신자들 상호간에 이루는 일치에 있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들어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축성된 그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을 먹는 사람들도 함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의 신비를 나타내는 데 음악의 봉사적 기능은 상당히 중요하다.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러 제단으로 줄을 서서 함께 나아가는 행렬이 지닌 친교적인 일치감을 형성하는, 시각적이고 동적인 힘을 강화시켜 주는 음악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무시하고 단순히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노래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아야겠다. ‘영성체 성가’라 하기보다 ‘영성체 행렬 노래’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며, 설령 줄여서 ‘영성체 노래’라고 부르더라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노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총지침」 86항은 “이 노래는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영성체를 하는 이들의 영신적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의 ‘공동체’ 특성을 더욱 밝혀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 특성을 1969년에 발표된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에서는 “영성체 행렬을 더욱 형제답게 만드는 것”(56항 가)으로 표현하고 있다.
1) 영성체 행렬 노래의 역사와 봉사적 기능
영성체 노래의 역사는 세기를 통하여 신자들의 영성체 관습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초대교회 3세기 동안 신자들은 미사에서 정기적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이렇게 신자들이 날마다 성체를 모시던 신심은 4세기부터 쇠퇴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의 수가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성체 배령자의 수가 감소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에 대한 교회의 강한 대응 때문이었다. 이런 교회의 대응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두려움의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과도하게 심어주어 성체 모시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성체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자 영성체 노래는 사제의 영성체 후에 부르는 노래가 되고 말았다. 신자들이 앉아있는 동안 사제는 성직자 모자를 쓴 채 혼자서 그레고리오 성가 후렴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자들의 잦은 영성체를 권장하였고, 비오 10세 교황은 신자들이 매일 영성체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신자들의 영성체 배령은 1940년경 일어난 전례 운동으로 더욱 잦아졌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매일 미사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현상이 바로 영성체 행렬과 영성체 행렬 노래의 복구를 위한 시발점이 되었다. 영성체 노래는 이제 더 이상 사제의 영성체 후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신자들의 영성체 때에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현재의 영성체 노래는 본래의 기능대로 신자들이 행렬을 지어 영성체를 하는 동안에 부르는 영성체 행렬 동반 노래이다. 앞에 언급한 1969년 「총지침」 86항은 이러한 영성체 행렬의 복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러 제단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영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성체는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의 일치, 더 나아가 성체를 영하는 우리들 서로간의 일치를 바라는 뜻에서 이루어진다.
2) 「총지침」이 추천하는 영성체 (행렬) 노래
전례 음악 봉사자들은 영성체 예식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파괴하는 지난날의 음악 선택의 관행, 곧 성체를 흠숭하는 찬미가들의 사용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아래에 「총지침」이 제시하는 영성체 행렬을 위한 노래를 살펴보겠다.
(1) 시편
영성체 노래의 가사와 관련하여 교회는 전통적으로 시편 사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비록 다른 적절한 찬미가들이 주님과의 일치와 만남, 그리고 기쁨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시편을 가사로 사용할 것을 일차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표현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어떤 훌륭한 언어보다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빵이 천상의 빵, 성찬의 빵을 대신할 수 없듯이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시(詩)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아우구스티노(354-430년) 성인 시대부터 신자들이 영성체를 모시러 제단으로 나아갈 때 노래를 부르던 풍습이 있었다. 이때 신자들은 주로 시편을 노래하였는데, 로마식의 전통적인 영성체 노래로 가장 사랑을 받던 시편은 34편(희랍어 번역 33편) 6절과 9절이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 들여라.”는 가사 때문에 가장 애용되었다. 시편 145(144)편의 15절 역시 영성체 때 많이 사용되었음을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증언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시편은 일 년 내내 사용되었다.
위에 언급한 시편 이외에도 교회 전통과 전례는 아래의 시편들을 사용하여 성체성사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시편 23(22)편 특별히 5절; 42(41)편 1절; 43(42)편 특별히 4절; 84(83)편 특별히 1-2절; 104(103)편 14-15절 그리고 27-28절; 116(115)편 12-13절; 128(127)편 3절; 136(135)편 25절; 147(147 B)편 12와 14절 등이다.
원래는 시편 구절이 더 많이 이용되었지만,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가 길어지고 영성체를 하는 신자가 감소하면서 시편의 구절들은 삭제되고 대송(antiphon)만이 지금의 영성체송으로 남게 되었다.
(2) 영성체송 후렴
「총지침」 87항은 영성체 노래를 위한 두 번째의 선택 사항으로 「로마 화답송집」(Graduale Romanum) 또는 「단순 화답송집」(Graduale Simplex)에 나오는 영성체송의 대송(antiphona ad communionem; 현행 「미사 전례서」 에 나오는 영성체송)을 추천하고 있다. 이 대송들은 시편과 함께 또는 시편 없이 노래할 수 있다.
(3) 적절한 노래
세 번째의 선택으로 「총지침」 87항은 “주교회의에서 인정된 적절한 노래들”의 사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적절한 노래들’이란 일반적으로 찬가들(canticles)이나 찬미가들(hymns)을 말한다. 한국어 성가집에 있는 대부분의 노래들이 찬미가들로서 이 ‘적절한 노래’에 속한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 적절한 노래들은 한편의 시로 된 노래(우리가 보통 성가라고 부르는 찬미가를 말하며 후렴이 없다.)이거나 후렴(refrain)이나 대송(antiphon)을 가진 노래들이다.
찬미가는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워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 모두가 가사와 선율을 암기할 때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려고 행렬을 하는 동안에도 성가책을 들고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성체를 받아 모시러 갈 때 가장 적합한 노래는 대송이나 후렴을 가진 노래이다. 성가대가 시편이나 찬미가의 어려운 부분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쉽고 단순한 대송이나 후렴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노래는 신자들의 일치를 강화해 주기에 더욱 바람직하다. 신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찬미가는 삼가는 것이 좋다.
* 이 글의 더 자세한 내용은 부산 가톨릭대학교 성음악연구소에서 발간한 「신앙과 음악」 7호(2004년 겨울 호)를 참조할 수 있다.
[사목, 2005년 8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 성찬 전례와 음악<3> -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지난 호에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미사 전례 음악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영성체 노래의 사용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영성체 노래의 역사, 봉사적 기능 그리고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이하 「총지침」)이 추천하는 영성체 노래의 가사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성체 노래들을 「총지침」의 가르침에 비추어 살펴보고 과연 이 노래들이 그 봉사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가톨릭 성가』의 분석
현재 한국교회의 공인 성가집인 『가톨릭 성가』에는 영성체 때에 사용할 노래들을 ‘성체’라는 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주님과의 일치나 통교, 성체를 영한 형제들 사이의 일치,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을 나타내는 노래 외에 성체 강복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성체 흠숭, 찬송의 노래가 너무나 많이 섞여있다.
성가집이 성체 노래로 분류해 놓은 총 61곡(부록 포함) 가운데는 「총지침」이 일차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천하는 시편을 이용한 노래는 한 곡도 없으며, 두 번째 선택사항인 대송이나 후렴을 가진 영성체 노래 역시 한 곡도 없다. 성서를 인용한 가사로 된 노래는 외국인(M. Suzanne Toolan)의 곡(166번 ‘생명의 양식’)이 유일하다. 이는 한국교회가 미사 전례에서 사용하고 있는 영성체 노래들은 「총지침」이 권장하는 영성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사용하고 않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성가집에는 성체 노래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4곡 실려있으며(184번, 192번, 195번, 508번), 나머지 57곡은 「총지침」에서 ‘적합한 곡’이라고 지칭하는 곡, 곧 찬미가들이다. 이들 찬미가 57곡 가운데 라틴어로 된 노래가 16곡인데, ‘O Salutaris Hostia’가 3곡(183번, 185번, 186번), ‘Tantum Ergo’가 4곡(189-191번, 193번) 있으며, ‘Panis Angelicus’가 3곡(187번, 188번, 503번) 그리고 ‘O Esca Viatorum’이 2곡(197번, 507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Veni Jesu Amor Mi’(173번), ‘Ave Verum’(194번), ‘O Bone Jesu’(196번)와 ‘Pie Pellicane’(198번)가 각각 한 곡씩 있다. 이들 라틴어 찬미가들 거의 모두는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노래로 보아 무방하며, 성체강복, 성시간 또는 성체현시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이 가운데는 영성체 후 감사 침묵 기도 때에 사용할 수 있는 곡도 여럿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영성체 노래로는 사용할 수 없는 노래들임에는 틀림없다. 영성체 행렬 때에 사용하는 노래와 영성체 후 감사 침묵 기도 때에 사용하는 노래는 그 봉사적 기능이 다른 만큼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성가』에는 한국어 성체 찬미가들이 41곡 있는데, 이 41곡 가운데 가사에서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색채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노래를 우선적으로 살펴보면, ‘오 지극한 신비여’(152번), ‘한 말씀만 하소서’(156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158번), ‘세상의 참된 행복’(159번), ‘성체를 찬송하세’(161번), ‘성체 성혈 그 신비’(162번), ‘오묘하온 성체’(168번), ‘자애로운 예수’(170번), ‘그리스도의 영혼’(172번), ‘이보다 더 큰 은혜’(175번), ‘믿음 소망 사랑’(176번), ‘성체 앞에’(178번), ‘신비로운 몸과 피’(181번), ‘예수여 기리리다’(489번), ‘평화의 하느님’(500번), ‘사랑으로 오신 주여’(506번) 등 16곡이 있다.
위의 16곡 외에도 가사의 표현이 애매하거나 영성체의 의미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가사를 가진 노래들도 있다. 그리고 영성체 행렬을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성체를 모시기 전 또는 성체를 모신 뒤에 부를 수 있는 노래들도 다수 있다. 따라서 선곡하는 사람들은 비록 성가집의 ‘성체’ 항에 포함되어 있는 노래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 있는 찬미가들을 영성체 행렬 때에 사용하지 말 것이며, 전례주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찬양과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가장 바람직한 영성체 노래에 대해서는 지난 호 참조).
다시 말하지만 성체를 찬미하는 곡들은 영성체 노래로 사용하지 말아야 함을 사목자들과 교회 음악가들은 명심하여야 한다.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 36항과 1969년 11월 미국 주교회의에서 결정한 지침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두 문헌은 “성체 강복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은 통교보다는 성체에 대한 흠숭과 경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영성체 노래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한다(미국 주교회의 발행 「총지침」 부록 56항 (i) 참조).”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2) 영성체 음악의 다른 가능성
「총지침」은 87항에서 “영성체 노래는 성가대만 부르거나 성가대나 독창자가 회중과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라고 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고 있다. 이 지침의 정신에 맞추어 생각해 볼 때, 영성체 행렬 때의 음악으로는 성가대의 합창, 독창 또는 기악의 연주 역시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성가대도 현대의 화성음악만을 노래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을 노래함으로써 영성체 예식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본당 공동체가 교회음악의 보고인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 음악, 오르간을 위한 성음악 등을 소화해 낼 만큼 음악적으로 풍부하다면, 그 공동체는 정말 축복받은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성가대 연주의 완성도는 전례의 아름다움을 증진시킬 것이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신자들이 바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이기에 그러하다.
그렇다면 영성체 예식을 풍성하게 하는 데 노래 부르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만약 영성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어떤 노래의 2절 또는 3절까지를 노래한 다음, 그 노래를 편곡하여 오르간으로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즉흥 연주 또는 간주라고도 할 수 있다). 오르간의 간주가 있은 다음, 신자들은 남은 절을 노래하는 방법이다. 오르간의 이런 연주는 마치 대송이나 가사의 각 절에 대한 주석(commentary)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미 형성된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지원하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오르간 간주의 가장 적당한 길이는 한 절을 노래 부르는 정도의 시간이며, 그 횟수는 반드시 계산되어야 한다(예를 들면, 두 절 뒤 또는 세 절 뒤에 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오르간의 간주가 너무 길 경우, 노래로 형성된 리듬을 망쳐버리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날의 복음에서 따온 짧고도 의미심장한 성서 본문을 노래의 두 절마다 또는 세 절 뒤에 신자들이나 선창자가 읽는 것도 가능하다.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먹고, 피를 마실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정신과 연결시킬 수 있기에 이러한 방법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아무튼 다양한 방법으로 영성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미사 중간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언제나 전례위원회, 오르간 연주자, 성가대 지휘자 그리고 해설자의 협의를 통하여 미리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영성체 음악을 시도하려면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주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영성체 때에(예물 준비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자들이 노래 한 곡을 끝마치게 되면, 오르간과 노래가 동시에 끊어지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러한 연주는 전례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반주자는 그 노래를 조금 더 연장하여 연주한 뒤에 마치는 재치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해설자가 다음 곡을 안내하면 어떨까? 아니면 해설자가 다음 곡을 안내하지 않고 반주자가 새 음악을 시작하면 어떨까?
무엇보다 영성체 행렬 때의 음악은 쉽고,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 많은 예식이나 말들, 많은 노래는 신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그들의 신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교회의 경우 미사 때에 부르는 행렬노래 가운데 입당노래와 퇴장노래는 너무나 소홀히 취급하여 겨우 한 절만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예물준비(봉헌) 노래와 영성체 노래는 너무 많이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곡을 안내하여 두세 곡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게 하는 이러한 관습은 신자들이 노래 부르기에 바빠 조용히 기도에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은 신자들이 영성체를 한 뒤에 개인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예식은 감사 침묵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로 진행된다. 「총지침」 88항은 성체 분배가 끝나면 사제와 신자들은 잠시 동안 속으로 기도를 바칠 것을 명하고 있다. 따라서 사제와 교우들은 이 침묵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 미사 중 여러 번 침묵이 있으나 영성체 후의 침묵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침묵을 아예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거나, 묵상 안내, 악기 연주, 성가대의 특송, 아니면 공지사항 등으로 신자들의 묵상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총지침」은 같은 항에서 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 또는 찬양의 특성을 지닌 다른 찬가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들, 특별히 사목자들은 비록 이 지침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 하더라도 반드시 침묵 시간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침묵 시간은 개인이 감사를 바치기에 적합하며, 전체 신자가 노래하는 것은(성가대가 노래하는 것 역시 신자들의 노래이다.) 집단적인 감사의 표시가 될 것이기에 이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
Music in Catholic Worship 72항은 교회가 감사 침묵 기도 시간 때에 사용하는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이 부분이야말로 성가대가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무튼 성가대는 이때 ‘특송’이라 하여 라틴어 가사로 된 찬미가를 부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성가대가 부를 한국어로 된 가톨릭 합창곡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가대는 개신교의 창작 찬송가들을 가사만 가톨릭에 맞게 바꾸어 노래 부르는데, 문제가 많다. 라틴어 찬미가를 부르게 되면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사목자들과 교우들의 불평이 대단한 것이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찬미가를 들으면서 찬미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호와 이번 호에서 영성체 행렬 노래의 역사와 봉사적 기능 그리고 2002년에 새로 개정된 「총지침」이 영성체 노래로 추천하는 음악의 종류를 순위별로 살펴보았으며, 한국어 성가집에 수록된 노래들을 분석해 보았다.
영성체 노래에 대한 이 글의 최고 관심사는 한국교회가 영성체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이 과연 영성체 행렬 노래의 의미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들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교회의 영성체 행렬 노래는 “영성체를 하는 이들의 영신적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을 더욱 형제답게 만든다.”(1969년 「총지침」 56항(i), 87항)는 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충족시키는 찬미가는 소수에 불과하고, 성체를 오직 경배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여 성체를 흠숭하고 찬미하는 노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신자 작곡가들이 분발하여 영성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찬미가를 창작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아울러 작곡가들은 교회 전통이 하느님의 시(詩)라고 생각하는 시편, 그리고 대송과 후렴을 이용하는 찬미가들을 많이 만들어, 신자들이 편안하게 노래를 배우고 익혀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교회에서도 영성체 행렬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는 가사를 가진 좋은 찬미가를 부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목, 2005년 9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 마침 예식과 음악 -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heonkim [at] liturgynmusic [dot] com)
이번 호에서는 미사 전례의 마지막 부분인 마침 예식과 퇴장 노래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의 여러 본당에서 하고 있는 퇴장 노래 뒤에 노래 부르기(혹자는 이를 ‘퇴퇴장 성가’라 부르기도 한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미사 전례 음악 어떻게 준비할까?’를 마감하고자 한다.
미사 전례의 마침 예식에서, 필요한 경우, 사제는 짤막한 공지를 한 뒤에 인사와 강복을 한다. 그 다음 부제 또는 사제가 신자들 각자가 자신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 선행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도록 파견한다. 사제와 부제는 제대에 입 맞추고(또는 깊은 절을 하고) 이어서 제단 앞으로 가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에 깊은 절을 한 뒤 퇴장한다(2002년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90항 참조).
1) 전례서에 나타난 퇴장 노래
중세기의 미사 전례서는 사제가 미사를 마치고 퇴장할 때에 신자들이 외우는 여러 가지 전례문들(예를 들면, 다니 3,5-7; 시편 150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런 전례문들은 결코 미사 예식의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아울러 퇴장 노래 역시 교회 전례에서 한 번도 미사 예식의 공식적인 부분으로 여겨진 적이 없었다(Music in Catholic Worship, 73항 참조). 다만 신자들의 개인 신심을 위해 미사 뒤에 바치는 감사의 기도로 미사 경본에 삽입되었을 뿐이다. 로마교회 역시 동방교회와 마찬가지로 노래로써 미사를 끝마치지 않았다. 그러나 예식의 전례적이고 음악적인 일치를 위해 성가대가 관습적으로 마침 노래를 불렀으며, 신자들도 사제가 제단을 출발하면 가끔 노래를 불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사 전례서 역시 옛날 전통을 따르면서 사제의 퇴장이나 퇴장을 위한 음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침 예식의 기능이나 의미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을 정도로 이 예식을 취급하고 있다. 현행 미사 전례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사제의 파견의 말과 신자들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러나 사제와 신자들 간의 이 대화는 단순한 예식의 끝맺음이 아닌 파견임을 생각해야 한다. 이 파견을 통해 신자들 모두는 세례 받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 곧 복음을 널리 전하고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받는 것이다.
2) 퇴장 노래의 연주
마침 예식과 퇴장 노래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파견 인사로써 완전하게 예식을 마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많은 본당에서는 퇴장 노래를 부른다. 또 어떤 본당에서는 오르간 또는 악기를 이용하여 미사 전례를 음악적으로 종결하는 곳도 있다. 전례 음악학자들은 위의 관습들에 대해 합당한 근거를 나름대로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의 일반적인 규칙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한국교회의 경우, 자주 기악 연주(주로 오르간)로 예식을 끝맺는 서양의 교회와는 달리, 대부분 본당에서 신자들 또는 성가대가 퇴장 노래를 부름으로써 미사 전례를 끝낸다. 사제는 미사가 끝났으니 복음을 전하러 떠나라고 하는데, 해설자와 성가대는 ‘잠깐만! 퇴장 성가 한 곡을 더 노래하고 가세요.’ 하고 막는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어떤 신자들은 노래를 끝내기도 전에 이미 성당 문을 나서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모습은 과히 바람직한 미사의 끝 모습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퇴장 음악의 연주 형태 가운데 장엄한 전례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퇴장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전례 거행의 축제적인 성격을 연장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퇴장 노래를 부르는 것과 연관하여 「성음악 훈령? 36항은 “비록 성찬 전례의 노래가 되기에는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경축하고 있는 축일의 신비를 반드시 반영하는 노래”를 퇴장 노래로 사용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노래는 특별히 신자들이 파견되어 성당에서 바깥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므로, 미사 끝에 아무 노래나 부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뒤에서 언급할 세속풍의 가사와 노래는 물론이고 영성체 후의 감사를 나타내는 가사를 가진 노래 역시 이때 노래할 수 없다.
이때의 노래는 공동체의 찬미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거나, 그날 축일이나 전례시기의 성격을 나타내는 노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퇴장 노래는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가 잘 알고 있는 노래를 선택하되, 짧은 단순한 후렴이나 환호송을 가진 노래 형태 또는 유절가요 형식(『가톨릭 성가』에 있는 대부분의 찬미가들은 이 형식이다. 똑같은 선율에 1절, 2절 등 다른 가사들을 대입시켜 노래한다.)을 가진 짧은 곡이면 좋을 것이다.
가끔 미사 전례에서 전례적이고 음악적인 일치감을 주고자 입당 노래에서 사용한 노래를 다시 퇴장 때에 사용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이 경우 무엇보다도 불릴 노래는 그날의 축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축일의 신비를 잘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 순교자 축일에 『가톨릭 성가』 283번 ‘순교자 찬가’를 입당 때와 마찬가지로 퇴장 때에도 노래하는 것이다.
사제가 완전히 퇴장하면 노래도 끝내는 것이 좋다. 큰 축일이나 평상시에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즐거운 마지막 분위기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한편, 침묵 역시 강력히 권고되는데, 특별히 속죄의 성격을 띠는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 더욱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3) 퇴장 노래 뒤의 공동 기도
전례학자들은 마지막 퇴장 노래가 끝난 뒤에도 공동체가 성당에 계속 남아서 다른 여러 기도를 바치는 것은 전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미 전례 집회는 해산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사 뒤에 공동 기도는 바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파견을 받은 신자들이 다시 성전에 남아 여러 기도를 바침으로써, 가장 중요한 전례인 미사에 대한 의미와 존경심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많은 본당에서 새벽 미사 뒤에는 아침기도, 낮 미사를 마치고는 삼종기도, 저녁 미사를 마치고는 저녁기도를 드리는 곳이 많고, 실제로 이런 기도를 바치지 않는 본당에서는 신자들이 이런 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건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가르칠 것이지 미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성당에 남아 다른 여러 기도를 바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 여러 본당에서 미사가 끝난 뒤 대중가요 또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현상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언제부터 한국교회에 사제의 퇴장 때 또는 퇴장 노래 뒤에 가요를 노래하는 풍습이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풍습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어쩌면 복음성가 또는 생활성가의 등장이 이런 그릇된 노래 부르기를 조장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1996년에 출판된 『청소년 성가』에는 120여 곡의 ‘젊은이의 노래’들이 실려있는데, 이런 성가집의 출판이 미사 전례 중에 또는 퇴장 노래 뒤에 가요를 사용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성가집의 ‘인사 말씀’에서 한국 주교회의 의장 주교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 주교가 “젊은이들의 감성에 어울리는 노래들도 신심행사를 비롯한 여러 모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 이러한 노래들을 전례음악과 함께 묶었지만, 이런 노래들이 전례음악은 아니다.”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젊은 교리교사들과 청년들, 청소년들에게는 교회의 권위가 이 『청소년 성가』를 출판한 것이 여기에 포함된 이런 음악들은 모두 전례에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으로 여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노래들에 대한 교회 당국의 배려와 본당에서의 무분별한 사용은 결국 젊은이들에게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전례와 전례 음악에 대한 개념에 혼란을 주게 되었다고 본다. 세속 음악에서만 사용하는 형태의 음악이든, 개인의 느낌을 노래한 것이든, 음악적인 완성도 등에 개의치 않고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결국 이런 음악의 사용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를 인간들의 모임, 친교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래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 우선이 되기보다는, 전례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 되어, 참석자들이 흥을 낼 수 있고 신명나게 하는 음악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대중가요도 민중가요도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부산의 어느 본당에서는 퇴장 뒤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노래하고, 또 어떤 본당에서는 설날에 ‘까치 까치 설날’을 노래한다고 한다.
전례는 인간의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전례 음악 역시 인간의 친교를 위해 또는 자신들의 느낌이나 감정을 나누기 위한 음악이 아니다. 복음성가 또는 생활성가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성가가 재미없다고 한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가는 인간의 생활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음악이 아니라 전례를 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전례가 지루하다는 이유로 신자들, 더구나 청소년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한 전례를 만드느라고 교회는 전략을 짜기에 바쁘고, 주일학교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전례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자 신나는 음악만 사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제가 미사 시작 때에 “안녕하십니까?” 또는 미사 끝에 “안녕히 가십시오.” 하는 인사가 정이 넘치고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인사의 사용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와 잔치인 전례를 인간적인 만남, 모임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런 인간적인 인사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나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전례적이고 성서적인 인사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지만 우리의 전례는 그 일차적인 목적이 인간이 만나는 친교의 장소가 아니며, 전례 음악은 우리의 흥을 돋우고 나의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는 음악이 아니다. 하느님을 만나 그분을 찬미하며 우리 공동체의 믿음을 고백하는 장소이며 기도이다.
여러분에게 2005년 『사목』 1월 호에 게재한 복음성가 또는 생활성가라고 불리는 음악이 과연 어떤 음악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런 풍의 노래들은 『청소년 성가』의 ‘인사 말씀’에서 주교님들이 밝히신 대로 청년들의 여러 모임이나 신심행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미사 전례에 사용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미사 전례서는 한 번도 퇴장 노래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기 때문에, 미사 전례를 다 마쳤을 경우에 꼭 찬미가나 성가로 예식을 마감해야 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교회는 옛날부터 미사 전례를 마치고 사제가 퇴장할 때에 음악으로써 그 행렬을 장식하였다. 한국교회 역시 음악, 주로 신자들이 함께 부르는 찬미가로 미사 전례를 끝마치고 있다.
미사 전례를 끝마치는 음악의 연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성가대나 신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거나, 오르간 등의 기악 연주로, 또는 아무런 음악 없이 사제의 파견 인사와 신자들의 응답만으로 미사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나 관습에 따라 한국교회는 신자들이 다함께 부르는 찬미가로 미사 전례를 끝마치는 것을 선호한다. 이때의 노래는 미사 전례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기쁨에 넘치는 감사의 노래나 사도직과 봉사에 관한 주제나 절기에 적합한 노래 등 그 축일의 신비를 반영하는 노래를 선택하여 부르도록 한다(「성음악 훈령?, 36항 참조).
한편, 전례의 한 부분도 아닌 퇴장 뒤의 노래같이, 전례의 진정한 의미나 전례 음악의 봉사적 기능도 전혀 가지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음악 연주도 미사 전례 중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사목, 2005년 10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미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제정하시고 당신을 기념하여 행하라고 사도들에게 명하신 것이며, 또한 주님의 십자가 제사의 신비를 재연하는 것(2002년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항 참조; 이하 「총지침」으로 표기)으로, 이 거룩한 행위의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7항).
이 거룩하고 고귀한 미사 전례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많은 표지와 상징들 가운데 음악은 탁월한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전례 음악 봉사자들이 전례 각 부분의 정확한 의미와 음악의 봉사적 기능에 대하여 충분히 숙지하여 전례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더 좋은 음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신자들이 더 나은 찬미 기도를 바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말씀 전례 앞에 오는 예식으로서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그리고 본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예식들의 목적은 한데 모인 신자들이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합당하게 성찬 전례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데에 있다”(「총지침」, 46항). 그러나 부활성야 예식, 재의 수요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그리고 주님 봉헌 축일이나 장례 미사 때에는 예식의 시작 인사와 참회 부분이 생략되기도 한다.
1) 입당 노래: 제대로 나아가는 사제와 봉사자들의 입장 행렬 때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 전례를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강화하며,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고, 그들이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가하게 하는 것이다(「총지침」, 47항 참조).
입당 노래를 부르는 방법은 성가대와 백성이 교대로 부르거나, 선창자와 백성이 교대로 부르거나, 백성 전체가 함께 부르거나 또는 성가대만 부를 수 있다(「총지침」, 48항 참조). 아울러 기악 연주나 침묵도 가능하다.
한국교회에서는 주로 찬미가를 부르는데 가능한 모든 절(節)을 노래하도록 하고, 첫째, 미사 예식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곡, 둘째,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들 자신이 바로 예배 공동체라는 것을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곡을 선정하여야 한다.
2) 참회: 주례 사제의 초대로 신자들은 침묵 속에 성찰한다. 주일, 특히 파스카시기의 주일에는 참회 예식의 관습 대신에 경우에 따라 세례를 기념하여 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총지침」, 51항 참조). 이때 적합한 노래(연중시기: Asperges me; 부활시기: Vidi aquam)를 부른다.
3) 자비송: 만약 자비송이 참회 예식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곧 성수 예식을 하였거나 자비송을 포함하고 있는 (다) 형식을 바치지 않았으면, 참회 행위 다음에 언제나 자비송을 바친다(「총지침」, 51-52항 참조). 그러나 많은 본당에서는 (다)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자비송을 노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비송은 신자들이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보통 신자 모두가 함께 바쳐야 하는데, 백성과 성가대 또는 백성과 선창자가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바친다(「총지침」, 52항 참조). 그러나 늘 성가대와 회중이 교대로 노래하는 것보다 주례자와 회중이 교대로 노래하는 것도 좋다. 또 “자비송의 환호는 보통 두 번 반복하게 되지만, 언어나 음악의 특성 또는 상황에 따라 더 많이 반복할 수도 있다”(「총지침」, 52항 참조).
사순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과 축일에 자비송과 대영광송 모두를 노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자비송은 짧고 단순한 곡을 노래하도록 한다. 시작 예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노래인 대영광송을 제대로 살리자면 자비송은 짧고 간단한 곡을 노래하거나, 그냥 낭송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영광송이 없는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는 다소 긴 자비송을 노래하는 것도 괜찮다. 자비송이 끝나면 사순시기와 대림시기를 제외하고는 곧바로 ‘대영광송’을 노래하여야 한다.
4) 대영광송: 이 노래는 시작 예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성경의 시편과 찬미가들을 본떠 만든 초대 그리스도교 찬미가의 보고 가운데 하나로서 매우 오래되고 고귀한 것이다(「총지침」, 53항 참조). 교회는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특정한 주일과 대축일의 축제적이고도 특별한 성격을 강조한다. 대림시기와 사순시기를 제외한 주일과 대축일 그리고 축일에만 대영광송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 역시 이 노래의 특별하고 장엄한 성격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대영광송은 모든 회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기에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단순하게 작곡되어야 한다. 선창은 주례자뿐만 아니라 선창자 또는 성가대가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 다음 본문은 신자 모두가 함께 노래하거나, 백성과 성가대가 교대로 또는 성가대가 홀로 노래한다(「총지침」, 53항 참조). 이렇게 전례의 공동체성을 살리려면 미사에 참석한 모든 회중이 대영광송을 함께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성가대만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되고 있으며, 축제의 기쁨이나 장엄성을 드러내려면 성가대만의 아름답고 웅장한 합창도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대영광송은 찬미의 노래이기 때문에 모두가 일어서서 노래 부르지만 성가대만이 노래할 때에는 미국의 경우, 신자들은 앉도록 허락하고 있다.
대영광송은 다른 어떤 노래로 대체할 수 없으며, 본문 역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총지침」, 53항 참조). 그리고 같은 항에서 대영광송을 노래로 부르지 않을 경우에는, 신자들 모두가 함께 또는 두 편으로 나누어 교송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 기도문을 노래로 부르지 않을 경우 이 노래의 축제적 성격은 사라져버리는 것이기에 반드시 노래로 부를 것을 권한다.
말씀 전례로 미사는 본 미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주로 하느님의 말씀이 공동체에 선포된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는 독서들을 통하여 신자들은 양육되며, 침묵과 강론을 통하여 이를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화답송과 신경으로 이 말씀에 화답하게 된다.
1) 화답송: 제1독서 끝에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화답송은 전례적으로나 사목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진다(「총지침」, 61항 참조).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경 낭독에 시편이나 찬가를 노래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있다. 시편은 노래 기도이다. 그냥 낭송하는 것보다 노래로 부를 때 더 큰 생명력을 가지며, 노래를 부름으로써 신자들은 더욱 말씀에 집중하게 되고 투신하게 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화답송은 노래로 불러야 한다.
화답송은 행동을 수반하는 노래가 아니라 묵상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으로 응답하는 것이기에 시편 이외의 다른 창작 성가(찬미가)로 대신하지 못한다. 시편을 노래하는 사람은 신자들이 시편 구절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래하여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낭송해야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기에 적합한 방식(「총지침」, 61항 참조)으로 알아듣기 쉽도록 감정을 넣어 잘 읽어야 한다. 화답송을 위한 선창자의 자리는 독서대이다.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은 아름다워야 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어야 하며, 외우기 쉬운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매주 새로운 화답송을 배우고 노래하는 것이 힘든 점을 감안할 때, 어떤 전례시기에 전통적인 시편 몇 편만을 매주 사용하는, 이른바 ‘절기 시편’을 사용하도록 권한다.
2) 부속가: 현행 전례에는 4개의 부속가만 사용하도록 허가되어 있다. 곧 예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의무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는 선택적으로 부속가를 사용한다. 그리고 부속가의 원래 위치는 알렐루야 다음이었지만, 현 전례에서는 알렐루야 앞에 노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3) 복음 독서 전 환호송(복음 환호송): 복음 전에 하나의 독서만이 봉독될 때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 둘 모두를 노래하거나, 둘 중 하나만 노래할 수 있다.
알렐루야는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으로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례나 기도 가운데 공동체가 하느님 앞에서 또는 하느님을 향하여 외치는 기쁨의 환호이다. 이 전례적 환호,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노래한다. 주일 미사, 평일 미사는 물론이고 장례 미사 때에도 노래로 한다. 선창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과 사랑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서 느껴지도록 연구하고 노래하여야 한다. 평일 미사의 경우, 시편 구절을 노래할 사람이 없으면 이 부분만은 해설자나 다른 사람이 큰 소리로 읽을 수 있지만 알렐루야는 노래로 한다.
다른 환호송도 마찬가지이지만 환호는 전례의 부수적 요소이거나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식이며 전례 행위이다. 따라서 복음 전 환호는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한다.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 이를 읽기보다는 아예 빼버리는 것이 낫다(「총지침」, 63항 참조). 이렇게 회중은 노래를 하면서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총지침」, 62항 참조).
4) 신앙 고백과 보편 지향 기도: 신앙 고백은 전체 신자들이 긴 기도문을 노래하여야 하기 때문에 거의 노래로 하지 않고 낭송한다.
대축일이나 주일에는 보편 지향 기도의 응답을 노래로 할 수 있지만, 이 응답은 단순하고 짧아 모든 신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응답은 전례 음악적으로 등급이 낮은 것이기에 평상시에는 노래로 응답하도록 권장하지 않는다.
말씀 전례가 미사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은 틀림없지만, 다른 예식에도 말씀 전례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미사 전례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은 성찬 전례(감사 전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1) 예물 준비
흔히 ‘제물 봉헌’ 또는 ‘봉헌 행렬’이라고 일컫는 이 부분의 명칭은 ‘예물 준비’ 그리고 ‘예물 준비 노래’ 또는 ‘예물 행렬 노래’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가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제물은 신자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그리고 이 예물은 감사기도 중에 축성되어 봉헌된다. 따라서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행위는 봉헌이 아니라 성찬 식탁을 차리는 데 필요한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부르는 노래들이다.
“예물(빵과 포도주)을 가져오고 예물을 제대 위에 모두 준비할 때까지 신자들 또는 성가대만이 노래 부를 수 있으며, 오르간 또는 다른 기악 연주를 할 수도 있고, ‘거룩한 침묵’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총지침」, 37.48.74항 참조).
한국교회의 경우, 교회가 권하는 ‘봉헌송’을 노래하지 않고 예물 준비에 알맞거나 전례시기 또는 축일에 알맞은 모국어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이때 선택할 곡들은 짧고 후렴을 가진 노래가 적당하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행렬 지어 예물을 바치러 나가는 동안에 성가책 없이도 노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아니면 성가대만이 노래하든지 기악 연주를 할 수도 있고, 평일의 경우에는 침묵 시간을 가지는 것도 장려할 만하다.
예물 행렬 노래를 선택할 때 특별히 가사에 유의하여야 한다. 이 노래의 기능은 예물 행렬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노래의 가사가 반드시 빵과 포도주, 또는 봉헌에 대하여 언급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례시기에 맞으면서 찬미와 기쁨을 나타내는 내용의 노래라면 모두 가능하다(Music in Catholic Worship, 71항 참조).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대로 감사기도에서 이루어지는 봉헌과 혼동되는 가사를 가진 노래는 피하여야 한다.
2) 감사기도
(1) 감사 환호송(거룩하시도다): 감사송의 마지막 문장은 성찬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이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감사 환호송(거룩하시도다)’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이 환호송은 성찬 기도의 심장부에 있는 가장 중요한 환호송으로, 다른 어떤 성가도 이 환호송보다 더 큰 품위를 가지지 못한다.
이 환호는 감사기도의 일부로서 평일 미사를 포함한 모든 미사 전례에서 사제와 백성 전체가 함께 노래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성가대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노래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비록 다른 미사 통상문(자비송, 대영광송, 하느님의 어린양)은 성가대만 노래한다고 하더라도, 이 감사 환호송만큼은 반드시 모든 신자가 아는 노래로, 다 함께 노래하도록 교회는 배려하여야 한다. 이렇게 예배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즉각적이고 활기차게 환호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신자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는 몇 개의 ‘거룩하시도다’를 암기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정말 노래할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 모두 함께 낭송할 수도 있지만 ‘거룩하시도다’ 대신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2) 기념 환호송(신앙의 신비여!): 1970년 개정된 새 미사 통상문에서 새로 도입된 환호송으로, 신자들은 이 환호를 통하여 방금 이루어진 축성과 구원의 제사를 믿고 고백하며, 이 신비를 세상에 선포하기로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념 환호 역시 공동체의 중요한 성가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주례가 ‘신앙의 신비여!’를 선창하면 모든 신자가 함께 노래한다. 미사의 절정을 이루는 이 부분에서 공동체 전체가 환호하는 것은 ‘거룩하시도다’ 이상으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다.
사제의 선창에 공동체는 세 가지 양식 가운데 하나로 응답하는데, ㉮ 양식은 연중시기, ㉯ 양식은 사순시기와 대림시기, 그리고 ㉰ 양식은 부활시기에 사용하면 적합하다고 전례 음악 학자들은 말한다.
(3) 마침 영광송과 아멘: 감사기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마침 영광송’과 신자들의 ‘아멘’으로 장엄하게 끝맺는다. 이때 신자들은 자신들의 응답인 ‘아멘’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확인한다.
이러한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신자들은 이 환호를 가장 영광스럽고 장엄한 환호가 되도록 노래 부름으로써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의 영광을 드린다.
3) 영성체 예식
(1) 주님의 기도: 영성체 예식은 이 기도로 시작된다. “주님의 기도로 초대, 주님의 기도, 후속 기도와 백성이 마감하는 영광송은 노래하거나 큰 목소리로 바치게 되어있다”(「총지침」, 81항 참조).
‘주님의 기도’는 노래로 하기보다 큰 목소리로 바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성체 예식의 핵심 부분은 성체를 모시는 행위이고,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를 준비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이 노래를 거창하게 노래하는 것은 전례의 흐름상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본당에서는 이 기도를 노래로 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모든 신자가 암기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단순한 곡을 선택하도록 하자.
‘주님의 기도’를 인도하는 사제는 그날 미사 전례의 성격, 공동체의 크기를 고려하면서 “ … 정성 들여 노래합시다.” 등으로 신자들을 초대함으로써, 신자들이 큰 소리로 기도문을 노래하기 시작하는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 평화 예식: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이때에 노래는 필요 없다. 간혹 젊은이 미사에서 긴 시간 동안 ‘샬롬’(Shalom)을 노래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데 이것은 전례 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하느님의 어린양: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어 성작 안에 넣을 때 성가대나 선창자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낭송하고 회중은 화답한다(「총지침」, 83항 참조).
일반적으로 세 번을 노래하지만 ‘빵 나눔’을 동반하는 기도이므로 예식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여러 번, 필요한 만큼 반복할 수 있으며, 두 번으로 축소할 수도 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어떠한 경우든지 이 노래를 마칠 때에는 “평화를 주소서.”라고 끝내야 한다(「총지침」, 83항 참조).
(4) 영성체 행렬 노래: 영성체를 위한 준비 예식이 모두 끝나면 영성체 예식의 본 부분인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체가 시작된다. 그러나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체는 하나의 예식이기 때문에, 사제가 성체를 모시기 시작할 때 영성체 노래를 시작한다. 간혹 어떤 본당에서 사제의 영성체 때에는 ‘영성체송’을 읽고, 그 다음에 영성체 노래를 하는데 이것은 중복되는 것이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경우에만 ‘영성체송’을 낭송하는 것이다(「총지침」, 87항 참조).
영성체는 순전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의 일치, 더 나아가 ‘같은 빵’을 나누는 우리 서로 간의 일치를 위한 것이다. 「총지침」 86항은 “이 노래는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영성체를 하는 이들의 영신적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의 ‘공동체 특성’을 더욱 밝혀준다.”라고 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일치의 신비를 나타내는 데 음악의 기능은 상당히 중요하다.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러 제단으로 줄을 서서 나아가는 행렬이 지닌 친교적인 일치감을 형성하는, 시각적이고 동적인 힘을 강화시켜 주는 음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한국교회 본당에서는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노래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목자와 교회 음악가들은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 36항과 미국 주교회의 발행 「총지침」 부록 56(i)항은 “성체 강복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은 통교보다는 성체에 대한 흠숭과 경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영성체 노래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한다.”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총지침」 87항은 영성체 행렬을 위한 노래로 시편과 『로마 화답송집』(Graduale Romanum)과 『단순 화답송집』(Graduale Simplex)에 나오는 영성체송의 대송, 현행 『로마 미사 전례서』에 나오는 영성체송을 추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교회의에서 인정한 적절한 노래들’, 곧 찬미가의 사용을 제시하고 있다. 찬미가는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워 영성체 행렬에 참가한 신자들이 성가책 없이도 노래할 수 있어야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단순한 노래야말로 신자들의 일치를 더욱 강화해 준다.
아울러 영성체 때에는 신자들이 부르는 노래뿐 아니라 성가대 합창, 기악 연주 등 다양한 연주를 통하여 영성체 예식을 풍요롭게 꾸밀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자유롭고 기쁜 가운데 일치의 신비를 더욱 깊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예식, 말들, 노래는 신자들의 신심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여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 성가』에 수록된 영성체 행렬 노래는 절대적으로 그 수가 부족하다. 영성체 노래라고 분류된 거의 대부분의 찬미가는 영성체 행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체 강복과 성시간을 위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영성체 노래의 수가 부족하다고 하여 성체 찬미를 위한 노래들을 사용하는 일은 반드시 피하고, 전례 주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찬양과 감사를 나타내는 찬미가들을 이용하자.
4) 감사 예식
이 예식은 감사 침묵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로 진행된다. 영성체가 끝난 뒤 주례 사제는 자신과 신자들이 침묵 가운데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반드시 배려하여야 한다(「총지침」, 88항 참조). 따라서 이 침묵 시간을 아예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거나, 묵상 안내, 음악 연주, 아니면 공지사항 등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총지침」은 88항에서 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 또는 찬양의 특성을 지닌 다른 찬가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침묵 시간을 없애고 노래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1) 퇴장 노래: 교회 전례서에는 퇴장이나 퇴장 음악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예식의 전례적이고 음악적인 일치를 위하여 성가대 또는 신자들이 관습적으로 노래를 하였다. 이렇게 퇴장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전례 거행의 축제적인 성격을 연장시키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성음악 훈령」 36항은 “비록 성찬 전례의 노래가 되기에는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경축하고 있는 축일의 신비를 반드시 반영하는 노래”를 퇴장 노래로 사용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퇴장 노래는 공동체의 찬미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거나, 그날 축일이나 전례시기의 성격을 나타내는 노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즐거운 마지막 분위기를 제공해 줄 수 있기에 권장되고, 침묵 역시 속죄의 성격을 띠는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 강력히 요청된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미사 전례 각 부분들의 음악적인 그리고 봉사적인 기능을 살펴보았다. 전례 음악 봉사자들은 미사 전례 음악의 봉사적인 기능을 충분히 숙지할 때 하느님 백성들이 전례에서 노래로 찬미드리고 기도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 나름대로 정리한 미사 전례 음악의 봉사적 기능과 더불어, 2005년 『사목』 2월 호부터 연재된 ‘미사 전례 음악의 선택 기준과 전례시기에 따른 선곡 요령’ 등을 함께 익히도록 노력한다면 더 좋은 전례 음악 봉사자의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가 반포된 지 40년, 아직도 한국교회의 음악계는 전례 성가와 비전례 성가의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혼돈은 무엇보다도 전례와 전례 음악에 대한 올바른 의미와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전통이 가르치는 것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 한국교회의 전례 음악이 진정으로 신자들의 선익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이번 호에는 2005년 5월 호부터 10월 호까지 연재한 “미사 전례 음악 어떻게 준비할까?”를 요약해서 싣는다. 아마 각 본당에서 미사 음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지침서같이 사용하도록 하려는 편집자의 배려인 듯하다 ─ 필자 주.
미사 전례 음악, 이것만은 알아두자!
1. 입당, 예물 준비, 영성체, 퇴장 때 부르는 ‘찬미가’보다 미사 전례 안의 전례 기도문을 노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 미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는 환호송(acclamation)이다. 복음 환호송, 거룩하시도다, 기념 환호송(신앙의 신비여!)과 마침 영광송(아멘)은 평일에도 노래하도록 요구된다.
3. 대영광송: 노래로 부르지 않을 경우 이 노래의 축제적 성격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므로 반드시 노래로 부르도록 한다.
4. 화답송: 화답송은 원칙적으로 노래로 불러야 한다. 또한 시편 이외의 다른 창작 성가로 대신하지 못한다. 신자들이 매주 새로운 화답송을 배우기 어렵다면, ‘절기 시편’을 사용할 수도 있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낭송하도록 한다.
5. 복음 환호송: 복음 환호송은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노래로 부른다. 주일 미사, 평일 미사는 물론이고 장례 미사 때에도 노래로 한다. 환호는 전례의 부수적 요소이거나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식이며 전례 행위이므로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한다.
6. 예물 준비: ‘제물 봉헌’ 또는 ‘봉헌 행렬’이라는 말 대신 ‘예물 준비’, ‘예물 준비 노래’, ‘예물 행렬 노래’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옳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신자들이 행렬 지어 예물을 바치러 나가는 동안에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짧고 후렴을 가진 노래가 적당하다. 또한 이 노래의 가사가 반드시 빵과 포도주, 또는 봉헌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는 없으며, 전례시기에 맞으면서 찬미와 기쁨을 나타내는 노래를 선곡하도록 한다.
7. 감사 환호송(거룩하시도다): 이 환호송은 성찬 기도의 심장부에 있는 가장 중요한 환호송이다. 그러므로 평일 미사를 포함한 모든 미사 전례에서 사제와 백성 전체가 함께 노래하도록 한다. 성가대나 음악 그룹만 연주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8. 기념 환호송(신앙의 신비여!): 미사의 절정을 이루는 이 부분에서 공동체 전체가 환호하는 것은 감사 환호송인 ‘거룩하시도다’ 이상으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다. 주례가 선창하고 모든 신자가 함께 노래한다.
9. 영성체 행렬 노래: ‘영성체송’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경우에만 낭송하며, 영성체 때에는 성가대 합창, 기악 연주 등 다양한 연주를 통하여 영성체 예식을 풍요롭게 꾸밀 수 있다. 또한 성체 강복, 성시간 등 성체 찬미를 위한 노래는 반드시 피하도록 한다.
10. 퇴장 노래: 퇴장 노래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 언급은 없으나, 공동체의 찬미와 감사를 표현하거나 그날 축일이나 전례시기의 성격을 나타내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권장되며, 속죄의 성격을 띠는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는 침묵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11. 찬미가를 선곡할 때에는 『가톨릭 성가』의 성가 분류법에 따르기보다 『로마 미사 전례서』나 『로마 미사 전례 성서』를 참조하도록 한다. 특별히 입당 노래와 영성체 노래를 선택하려면 입당송과 영성체송에 포함되어 있는 후렴을 살펴보도록 한다.
12. 미사 전례 음악을 선곡할 때에는 그 음악에 대한 음악적, 전례적 그리고 사목적 판단을 고려하여야 한다(『사목』 313호[2005. 2.], 45-51면 참조).
[사목, 2005년 11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