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이해

가톨릭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아래 링크에 모아놓았습니다.

성모님 관련 상식

아끼다의 성모님

아끼다의 성모님

사사가와 수녀가 만난 수호 천사

일본의 아키타시의 근교인 유자와다이 언덕에 자리잡은 재속수도회인 성체봉사회의 수도원에선 아녜스 사사가와 수녀가 그녀의 수호 천사로부터 방문을 받았으며 나무로 조각된 성모상으로부터 3번에 걸쳐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아키타는 일본 가톨릭 역사에서 1624년에 순교자를 낳은 역사적 땅이었다. 이는 사사가와 수녀의 수호천사가 그녀에게 "성모님께서 이 땅 아키타를 선택하시어 말씀을 보내셨는데..." 라고 알려줌으로써 그 역사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청각의 상실

1973 년 1월 말경부터 사사가와 수녀는 두 귀의 청력이 둔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성당 일이 바빠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16일 금요일 아침, 성체봉사회 본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돌연 청력을 잃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벨이 울리는 소리는 들었으나 수화기를 드는 순간, 상대방의 소리나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병원에서의 진찰 결과 왼쪽 귀는 전혀 듣지 못하는 전농(全聾)상태이고 오른쪽 귀도 80데시벨이라는 상태로서 분명히 진해성 난청이며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소리의 세계로부터 차단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성모상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받기 위한 시련의 준비가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한편 사사가와 수녀에겐 기나긴 고난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사회복귀 훈련의 하나로 상대방의 입술을 보며 말을 이해하는 독순술(讀脣術)을 배워야 했다.

신비의 빛

1973 년 6월 12일 화요일 사사가와 수녀는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에 감실에서 신비스러운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날 있었던 신비한 경험에 대해 그녀는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토 주교에게 나중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감실문을 열려고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는데 돌연 감실에서 눈부신 빛이 나타나 그 광채에 쏘인 순간 정신없이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물론 감실을 열 용기도 없었습니다. 어림잡아 한 시간 가량 그러고 있었을까요. 그 무슨 위력에 얻어 맞은 것처럼 그 빛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후에 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면서 죄 많은 저를 비추고자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빛으로써 당신 자신을 시현해 주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제 자신의 착각이었는지 몹시 당황했습니다.

전 에 묘요꼬오 순회 성당에 교리교사로 근무할 때 몇 번이고 감실문을 열고 성체조배를 드린 적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경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만큼 제 머리가 이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돼 다시 한 번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려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난생 처음 겪는 너무나 이상한 체험인지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만의 비밀로 가슴에 품고 그날 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틀 후인 6월 14일에 같은 경험을 하게 되어 그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엔 감실에서 나온 빛을 둘러싸 듯이 옆에 있는 빨간 성체 등불이 화염처럼 타오르고 있고 맨 윗부분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며칠 후인 6월 28일, 예수성심축일 전날인 목요일의 성체조배 시간에 일어난 일을 사사가와 수녀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잠시 있으려니 전에 세 차례나 본 것과 똑같은 눈부신 빛이 성체에서 방사되어 그 번쩍이는 빛살을 감싸는 듯한 안개와 연기 같은 것이 제단 둘레에 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단 주위로 무수한 천사와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서 일제히 성체 쪽을 향해 조배 드리고 있었습니다. 전 그 놀라운 광경에 빨려들어 무릎을 꿇고 그 빛을 향해 조배 드렸습니다. 그리고 혹시 누가 밖에서 불을 피워 연기가 제단에 반사된 것이 아닐까 해서 뒷편 유리창문을 힐끔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별로 그러한 것 같지도 않았고 그저 제단만이 이상한 빛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체에서 나오는 광채는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엎드려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체조배의 시간이 끝났어도 그대로 엎드린 채 있었으므로 수녀들이 성당 밖으로 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천사의 방문

이튿날인 예수성심축일인 6월 29일엔 사사가와수녀의 수호천사가 그녀를 방문하였다. 그 천사는 그녀가 4년 전에 묘오꼬오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할 때 심한 감기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서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방문했었다.

당시에 그녀가 나흘 동안 의식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낯선 부인이 그녀의 침상 곁에 나타나 로사리오 기도를 같이 하였으며 로사리오 기도의 각 단 끝에 다음과 같은 기도말을 덧붙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

'예수여,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구하시되 특히 주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소서. 아멘'

그 기도말은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으로 당시엔 아직도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때의 그 천사가 다시 4년 후에 방문한 것이다. 그 상황을 사사가와 수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묵주를 쥐고 기도를 시작하려는 순간 하나의 형체가 바로 내 오른편에 나타났습니다. .. 저의 오른편에 나타난 형체란 것은 틀림없이 4년 전 바로 그때의 그분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 중에 묵주를 꼭 쥐고 한 알 한 알 묵주알을 굴리면서 그분에게 맞춰 천천히 기도를 했습니다. ... 그 후 묵상으로 들어가 조금 지났을 때 어제와 똑같이 성체에서 발하는 매우 강한 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엎드려 조배 드리고 눈을 떠보니 또 다시 안개인지 연기인지 부드러운 광선이 제단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천사들이 나타나 빛나는 성체를 향하여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라고 찬미하는 드높고 맑은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제 귀에 울려왔습니다. 그 소리가 끝나자 동시에 제 오른편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주교님이 지으신 '성체봉사회의 기도'였기 때문에 저도 그 소리에 이끌리어 무릎 꿇고 그에 맞춰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모든 백성의 어머니'의 기도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전술한 그 부인의 것이었는데 이러한 기도 소리는 앞서 '각 단의 끝에 바치세요.'라고 지시한 때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깨끗해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울려 퍼지며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에 맞춰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문득 앞에 장궤하고 계시는 주교님의 옷 등에 문장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까지 모두 7,8명이 주교님 제의 양옆에 내려진 붉은 끈을 함께 잡고 있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환상같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그러한 광경은 사라졌습니다. 그 후 얼마 동안이나 장궤한 채로 기도하고 있었는지 한 수녀가 어깨를 두드릴 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함께 루르드의 성가를 부르며 조배를 끝냈던 것입니다.
이때의 일도 '별다른 일이 있거든 보고하라'하신 주교님 말씀에 따라 모두 설명해 올렸습니다. 그때 주교님 제의 등에 문장을 다셨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그런 것 달고 있지 않다는 대답에 'M자 위에 성작과 성체가 있는 모양으로..'라고 설명하자 그것은 내 문장이라고 놀라셨습니다. 7,8명의 수녀님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제의 끈에 매달려 있음을 설명해 드렸더니 주교님은 무엇엔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의 첫 발현

7월 6일 새벽 3시경에 손에 나타난 성흔의 격통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이루고 있을 때 어디서인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이전에 사사가와 수녀와 함께 기도했던 그 수호천사의 목소리였으며 성모님의 손의 상처는 더욱 커서 깊이 앓고 계시다며 가서 보기를 독촉하였다. 그녀가 찾아본 성모상은 신비하고 눈부신 빛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놀라운 나머지 그녀는 엉겁결에 무릎을 꿇어 성모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날 사사가와 수녀는 성모님과 함께 성체 봉사회의 기도를 하던 중에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성심이여, ...'를 성성모님께서 '성체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의 성심이여...'라고 하시고 당황해 하는 수녀에게 '이제부터는 참으로라는 말을 덧붙여라' 하시며 그 말에 힘을 주셨다고 했다.(이토 주교가 기초한 성체봉사회의 기도문에는 '참으로' 라는 말이 없었음)

그 후로 두 번의 발현이 더 있었으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발현은 1973년 10월 13일에 있었다.

그리고 악마의 방해

1973 년 8월 4일, 당시의 전례력으로 성 도미니꼬의 축일에 사사가와 수녀는 저녁의 성무로 성당에 들어가다가 별안간 등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는 데 놀랐다. 불러 세우는 행동치고는 너무 격렬하고 난폭하였기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웬 검은 그림자가 덮치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올려 어깨 언저리를 떨쳐버리려 했으나 바위와 같은 힘으로 꽉 눌러 쥐고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몸서리치면서 이내 '아베 마리아! 수호천사여, 도와 주세요!'하고 소리쳤다. 그때 전의 수호천사가 모습을 나타내 그녀를 성당으로 인도하듯이 앞장서 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깨를 짓누르던 힘은 사라졌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성수를 손끝에 찍어 십자성호를 긋고 입당하여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순간의 일이지만 인위적인 영역을 초월한 이상하고 무시무시한 습격이었다.

그 후에도 똑같은 일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주여, 도와주소서,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여 즉석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악마의 공격임을 본인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는 마음의 감미로움과 심오한 평안을 남기는데 반하여 이와 같은 경험은 참으로 기분 나쁜 뒷맛과 공포를 남기기 때문이었다.

성지 전문 여행사 사람과 여행

메주고예(Medugorje)의 성모님

메주고예(Medugorje)의 성모님

1981년부터 유고슬라비아(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조그마한 산골마을인 메주고예의 6 어린이에게 목격되기 시작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 날 오후 늦게 메주교예의 포드브르산에서 전방 2,3백 야드쯤 되는 지점에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산책하던 『미르야나 드래지세빅』(16세)과 『이빈가 이반코빅』이 보았으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실리 만무하다는 농담을 하며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 『이빈가』 『미르야나』 『마리야 파블로빅』 『비카 이반코빅』 『이반 드래지세빅』과 『야코브콜로』 등 6명의 청소년들이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유고슬라비아 정부 당국의 비상한 관심속에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널리 알려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틀림없는 성모님의 발현이라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제관, 그리제바코산의 십자가 곁, 야고보 성당등 자리를 옮겨가며 발현하시는 성모 마리아는, 『기도와 단식』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하시며, 자연법칙을 중지시킬 수도 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메 주고예의 여섯 어린이들은 그들이 목격하기 시작한 발현이 15년이 넘도록 지속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발현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또 매일 이루어져 횟수로도 벌써 5000회가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예에서의 발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 인류를 향한 회개와 평화의 메시지, 앞으로 있을 경고와 기적의 표징을 포함하는 비밀의 중대성 때문에 1981년 이후부터 세계 각지에서 이천오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순례를 하고 있다. 인류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하느님의 징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인류가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메주고예의 초자연적 현상

메 주고예는 현재 진행 중인 성모 발현의 장소이다. 그곳에선 그 규모는 작지만 여러 기적이라든지 초자연적 현상이 수 없이 일어나고 목격되었다. 그곳을 다녀 온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공기는 웬일인지 범상치 못한 야릇한 느낌을 준다고 하였다. 그들의 느낌이 선입감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러한지는 다녀 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여러 신비스러운 사건의 보고들은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

메주고예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았던 신비 현상 중의 하나가 태양과 관련된 것이다. 일반적인 그리고 비교적 쉽게 관측되는 태양과 관련된 초자연적 현상은 태양이 평소와는 다르게 그 빛을 잃어 창백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메주고예에서 뿐만 아니라 파티마, 가라반달, 베타니아등 성모 발현이 일어난 곳에서는 수 없이 목격자들에 의해 보고되어지는 사건이다. 메주고예에서 역시 많은 현장 방문자가 이를 목격하고 보고들을 하고 있었다.

(사진; 신비로운 빛의 현상)

메주고예에 관한 글을 써서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던 웨인이 메주고예에 도착한 날 그는 이 희한한 태양의 변화를 그의 일행들과 함께 목격하여 그 내용의 일부를 7번째 기고문에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조금 구체적으로 그 사건을 살펴보면 그들이 유고슬라비아에 도착하여 메주고예에서 약 5km 떨어진 시트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기가막힌 태양의 변화를 목격한 것이었다. 이때 시간은 오후 6시 30분으로 발현이 일어나는 시간대이었다.

한 여자가 우연히 태양을 쳐다보고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모두가 머리를 돌려 이를 보았고 석양 무렵의 태양은 그 주위에 코로나가 있었다. 그리고 일식 때처럼 그들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태양을 쳐다볼 수 있었다. 더구나 태양 가운데에는 흰 원반같은 것이 있었다. (발현의 기록들에선 태양이 그 빛을 잃을 때 창백해지며 흰 원반처럼 된다고 표현들을 하였는데 웨인 일행은 태양 변화의 진전을 처음부터 보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묘사를 하였다.) 더구나 흰 원반 뒤의 태양이 빙글빙글 돌며 코로나를 통해 여러 가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고 그는 그가 쓴 책에 기록하였다.

보다 진전된 태양과 관련된 기적 현상으로 태양의 춤을 들 수 있다. 1917년 파티마에선 태양의 기적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태양의 향연이 벌어졌었다. 벌써 80여년 전이지만 사람들은 기록과 이야기를 통하여 그 규모와 그 당시 현장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감정을 알고 있다.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메주고예에서도 그와 유사한 태양이 춤추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150 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를 목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메주고예에서의 태양의 기적은 발현 초기인 1981년 8월 2일에도 일어났다. 석양 무렵에 태양은 그 중심 축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또 사람들이 맨눈으로도 태양을 직접 바라 볼 수 있을 정도로 태양 빛이 창백하게 약해진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태양이 사람들을 향해 내려 오는 것이었다. 또한 내려 오는 태양 뒷편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반응은 갖가지였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우는 사람도 있었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흡사 파티마에서 7만여 명의 사람들이 세상 종말이 온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죄를 뉘우치며 통곡하였듯이.

잠 시 후 태양은 제 자리로 돌아갔고 이 기적이 끝날 쯤에는 흰 구름이 발현 장소에 나타나서 회전하는 태양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현상은 15분간 지속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여러 색깔로 된 구체들이 태양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모 성심, 많은 천사들이 트럼펫을 들고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목격한 또 다른 초자연적 현상으로 크리제박 산에있는 15톤이 넘는 십자가와 관련된 초자연적 현상이다.

메 주고예 주민들은 1933년 530m 높이의 크리제박 산 정상에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그만한 무게의 자재들을 일일이 손으로 들어 날랐다. 이들의 신앙심은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이 십자가 상이 1981년 발현 이후부턴 종종 밝은 빛을 내는 형태로 보이는 기적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십자가의 수평 부분과 그 아래 부분만 밝게 T자 형태로 보이는가 하면 어린이들이 묘사하는 것과 유사한 성모님을 닮은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크리제박에서 약간 떨어진 시트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보였고 순례자들에게도 보였었다.

어떤 사람은 그 십자가상이 통째로 사라진 기막힌 장면도 목격하였다. 메주고예를 방문했던 웨인도 그 기적의 사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멋진 기회를 가졌었다.

메 주고예를 떠나던 날 그는 경이로움에 싸여 있는 메주고예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크리제박 산을 우연히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런데 크리제박 정상은 보였지만 그 곳에 있어야 할 십자가 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어서 여러번 눈을 떴다 감았다 해보았지만 정말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눈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어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하여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그가 서 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성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그들 일행에게 물어보자 그들도 그 사실을 보아서 알고 있다고 하였다. 10여분간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던 십자가 상은 그들이 버스를 타고 마을을 떠날 때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또한 흥미 있고 기쁜 이야기들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신부가 평상복을 입고 순례자들 사이에 끼여서 메주고예를 방문하였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이 신부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심각한 일이 신변에 일어났는지 영성체나 기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단지 멀리 떨어져서 되어가는 일들만 물끄러미 보고 관찰할 뿐이었다. 하지만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그는 비카를 만나 보려고 비카에게 찾아갔다.

여러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준 다음 비카는 병자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밀어닥쳐서 손을 잡고서 축복을 받고자 하였다. 그 신부는 아들이 살인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어느 아주머니 옆에 서게 되었다. 비카는 그녀의 왼손을 그 아주머니의 머리에 또 오른손은 신부의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들을 축복해 달라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기도를 하였다.

이 들 두 순례자의 일신적인 슬픔을 알 수 없는 비카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성모께 부탁한 후 그 신부에게 "안녕히 가세요. 신부님!" 하였다. 그 신부의 가슴이 쿵쿵거린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비카가 신부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까? 성모님의 다정다감함이 그의 가슴 속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부는 아름다운 사제의 길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후 그 신부는 신부복을 입고서 메주고예를 다시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고해 성사를 주었다.

메 주고예 발현 초기에 있었던 여러 치유의 기적 중 어린 다니엘의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였다. 1978년 9월 21일에 John과 Snda Sekta 라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다니엘은 태어날 때만 해도 건강하고 정상적인 어린이였다. 불행히도 생후 4일 만에 패혈증에 걸려 다니엘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굳어져서 경련을 일으켰다. 부모들이 다니엘을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을 시켰지만 별 효과가 없었고 그의 아버지가 일하고 있던 독일의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생후 2년 6개월이 된 때에 그의 부모는 메주고예에서 일어나는 발현 소식을 들었고 이제는 하늘에 간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다니엘을 데리고 발현 장소로 가서 어린이들을 통해 성모께 간청하였다. 어린이들은 여러 번 성모께 부탁드렸으며 다니엘의 부모에게 다음 날 또 오겠다고 말하였다. 성모 발현 6일째인 1981년 6월 29일에 어린이들은 성모께 다니엘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며 성모께선 다니엘의 부모가 낫는다는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다니엘 가족은 어느 식당에 들르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다니엘은 여전히 말도 못하고 머리는 항상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서 한 두 발자국을 걷고는 넘어지곤 하였다. 그런 다니엘이 식당의 식탁을 손으로 두둘기며 "마실 것좀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는 말하는 것이 늘기 시작하였고 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다니엘은 계단도 오르고 달리기까지 하게 되었다.

발현 초기의 이러한 다니엘과 같은 치유 효과는 보고된 것만도 50 - 60건에 이르며 그 이후로는 셀 수 없는 치유와 회개가 일어났다고 한다.

성지 전문 여행사 사람과 여행

루르드(Lourdes)의 성모님 발현

루르드(Lourdes)의 성모님 발현

루르드는 오트 피레네도의 타르브 평야에서 그치는 산맥의 마지막 기복과 라브당 산의 일곱 계곡의 물이 흐르는 하구에 위치한다. 루르드의 성채는 피레네의 요새였고,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곳에서 성모 마리아는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8회에 걸쳐 벨라뎃다 수비루(14세)에게 발현 하셨다.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가 친구및 동생과 함께 땔감을 구하러 들로 나가 개울을 건너려고 양말을 벗을 때였다. 아주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부인이 저만치 서 계시는 것이었다. 별 말씀 없이 부인은 아기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결함 그리고 모성의 부드러움을 지닌 채 푸른 띠를 나부끼며 정성스레 합장한 손으로 묵주알을 굴리고 계셨다.

당시 프랑스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물결의 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멀리하고 있었던 터라 발현에 대해 말하는 벨라뎃다는 정부 당국과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발현 장소에 가는 것마저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3월의 발현때 '나는 원죄없는 잉태'라 하심으로써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선포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교의를 확인하신 마리아는 기적의 샘을 솟게 하셨다.

즉 벨라뎃다로 하여금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이 귀한 그 지방의 마사비엘 동굴에 샘을 파게하시고, 그 물로 불치의 병자들을 속속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동정 마리아의 루르드 발현은 1862년 공인되었고, 잡목으로 둘러싸인 벽지의 동굴 속에 '원죄없는 잉태'의 성모상이 1864년 최대의 성황리에 안치되었다.

벨 라뎃다의 부모는 너무 가난하여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양육할 형편도 못되었다. 소유하고 있던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던 방앗간마저 빚 때문에 저당 잡혀서 그야말로 끼니도 잇기 어려울 정도의 생활을 꾸려 가고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서 벨라뎃다는 이웃 마을의 아기를 잃은 집에 얹혀서 15개월이나 살다가 온 적도 있었다. 벨라뎃다는 그런 집의 맏딸이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벨라뎃다는 그녀의 일생 동안 고통을 주었던 천식을 앓고 있었다. 워낙 가난한 집이라서 겨울철이면 제대로 난방이 안되어 그녀는 보다 난방이 잘되는 이모 집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발현 첫날의 상황은 그녀가 발현 전체를 기술하도록 요청하여 이를 꼼꼼히 잘 기록했던 에스뜨라드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 재의 수요일 전 주의 목요일(1858년 2월 11일을 말함)이었는데 날씨가 대단히 추웠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께서 저희들에게 집에는 더 이상 땔나무가 없다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여동생 뜨와네뜨와 저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강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잘못하면 가브 강에 빠질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웃 친구인 잔느 아바디가 우리 집에 남동생을 찾으러 왔는데 우리와 같이 가겠다며, 남동생을 집에 데려다 두고 다시 와서 우리와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망설이셨지만 세 명이니까 가도 좋다고 하셨지요.

우리 는 처음엔 잔 나뭇가지들이 종종 발견되던 공동묘지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날 따라 그 곳에선 아무것도 발견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브 강 근처까지 가는 옆길로 갔고 뷔예 다리에 도착해서는 강을 따라 올라 가는 것이 나을지 내려 가는 것이 나을지 고심했습니다. 우리는 일단 내려 가기로 마음먹고 산길을 따라 메라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비 방앗간 옆의 무쉐 드 라 피트의 농지로 들어 갔습니다. 이 농지의 끝은 마사비엘 동굴 맞은 편인데요, 우리가 도착하자 마자 방앗간 수로가 있어서 우리는 멈추어야 했습니다.

수로의 물살이 방아를 돌릴 정도로 세지는 않았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서 저는 들어가기가 두려웠습니다. 잔느와 제 동생은 저보다는 덜 소심해서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물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건너 편에 가서는 물이 차갑다고 소리지르며 허리 숙여 손으로 문질러 발을 녹였습니다. 모든 것이 겁만 더 주게 되어 제가 물 속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천식이 재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잔느에게 업어서 건네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그녀는 "싫어! 못 오겠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동굴 밑에서 나무 조각 몇 개를 집어 들고는 가브강을 따라 사라져 버렸습니다. 혼자 있게 되자 징검다리를 만들고자 돌멩이를 물 속에 몇 개 던져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잔느와 여동생이 했던 것처럼 물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기로 했습니다.

양말을 막 벗으려는 순간 갑자기 폭풍우 같은 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강가의 나무 밑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였죠. 계속하여 양말과 신발을 벗을 때 첫 번째와 같은 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놀라서 꼿꼿하게 서 버렸습니다. 동굴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마치 센 바람이 불듯이, 동굴 입구의 덤불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생각하고 말할 기력도 잃어 버렸습니다.

거의 동시에 동굴 안에서 금빛 구름이 나왔고 잠시 후 젊고 아름다운,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본적이 없는,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서 입구의 장미 덤불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저를 보고서는 미소를 짓고 가까이 오라 하였습니다. 마치 저의 어머니처럼.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떴다 감았다 해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 미소를 지으며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생 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로사리오를 꺼내 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여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승락의 표시를 했고 그 분도 오른 팔에 걸치고 있던 로사리오를 손에 들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를 하려고 손을 이마에 대려고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께서 성호를 긋고 나서야 저도 같이 따라서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인께선 제가 혼자 기도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분은 손가락 사이에서 로사리오를 만지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단이 끝날 때마다 저와 함께 영광송을 했죠.

로 사리오가 끝났을 때 그 여인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금빛 구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 여인은 16세에서 17세 정도의 젊은 아가씨였으며 흰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 부분에 겉옷 밑단까지 흘러 내리는 푸른 색 띠를 매고 있었습니다. 흰 색 면사포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면사포 안에는 허리 뒤까지 흘러 내리는 머리카락이 엿보였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는데 발까지 내려 온 겉옷이 발을 덮고 있었으며 겉옷이 겹쳐진 단에는 노란 색 장미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발에 꾸며진 장미의 빛깔처럼 금색 고리로 연결된 흰 로사리오를 오른팔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사라지자 마자 잔느와 여동생이 동굴로 돌아와서는 제가 그들이 떠난 장소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녀들이 저를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그리고는 같이 돌아갈 것인지 아닌지 물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물을 건너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물이 마치 설거지 할 때의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발을 말리면서 잔느와 여동생 마리에게 '그렇게 떠들 필요 없어. 너희들 생각처럼 물이 차갑지가 않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차갑지 않다니 다행이구나. 얼마나 차가웠는데.' 하는 것이었지요.

잔 느와 마리에게 혹시 동굴에서 이상한 것을 못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니.' 했지요. '왜 그러는데?' 하고 물어 왔지만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잔느와 마리에게 비밀로 해 달라며 동굴에서 생긴 이상한 일을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온 종일 그 여인의 모습이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저녁에 기도하면서 걱정이 되어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어 보셨고 마리가 대신 대답했고 저도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선, '환영이야.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고 이제는 마사비엘에는 가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침대에 들어 가서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너무 멋있고 인자하셔서 줄곧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헛것을 보았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날 발현의 이야기를 벨라뎃다는 위와 같이 시간에 따라 상세히 묘사를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금요일과 토요일은 동굴에 가지 않았지만 동굴로 가서 자기가 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아름다운 여인을 또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하여졌다.

일요일이 되어 벨라뎃다는 잔느와 마리가 같이 가니 보내 달라고 어머니께 사정하였다.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던 어머니도 승낙을 하였고 셋은 떠나면서 작은 병에 성수를 담아 가기로 하였다. 어른들의 생각처럼 악마의 소행이라면 성수를 뿌려서 막아낼 작정이었다.

벨라뎃다는 그간 집 밖에선 입을 다물었지만 동생 마리가 호들갑을 떨며 소문을 내버리는 통에 친구들이 자기들도 따라 가겠다며 나섰다. 친구들이 새 옷으로 갈아 입는 동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잔느와 마리는 뒤에 오기로 했고 벨라뎃다가 가장 먼저 동굴 앞에 도착했으며 곧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저기에 계셔! 저기에!" 라고 소리 지르며 친구들을 불렀다. 그녀의 친구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살폈지만 별 다른 것이 없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여자에게 뿌려!"
친구들이 본 벨라뎃다는 성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들고서 땅에 붓는 것이었다. 여인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벨라뎃다는 친구들에게 그 여인이 성수 뿌리는 것에 대해 즐거워 한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는 무아경에 빠져 버리고 한 지점만 계속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감으로 가득 찼으며 그 표정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날의 발현에선 돌발적인 작은 사건이 믿을 수 없는 발현 현상을 믿게 해주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늦게 도착한 잔느의 장난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놀려 주려고 동굴 위에서 돌멩이를 굴린 것이었다. 친구들이 이를 피하려고 도망을 가면서 벨라뎃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울고불고 소리쳤다. 이들의 고함 소리에 사비 방앗간의 니콜로 아주머니와 그 여동생이 달려왔다. 두 사람도 이미 소문으로 사건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필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생각하고 달려 온 것이었다. 벨라뎃다를 움직이고 눈을 감기고 해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니콜로 부인은 방앗간으로 다시 달려가서 28살의 아들인 안또니를 불러왔다. 안또니는 불려 오면서 어린이들이 장난하는 줄 알고 있었다. 동굴 앞의 벨라뎃다를 본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자신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 그 어린이의 몸에 손 댈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나중에 안또니는 너무 아름다운 벨라뎃다의 표정을 본 당시의 충격을 이야기 하였다.

그들은 겨우 벨라뎃다를 방앗간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 옮기는 동안에도 무아경에 빠져 있던 벨라뎃다는 방앗간에 도착해서야 얼굴 표정이 이전의 평범한 방앗간 집 딸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니콜로 부부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벨라뎃다는 그 여인과 로사리오 기도를 같이 했으며 그 여인은 영광송만 했으며 기도가 끝나자 사라졌다고 답하였다.

이윽고 벨라뎃다의 어머니가 급히 들어 왔다. 그리고 딸이 죽은 줄 알고 마구 울었다. 벨라뎃다가 앉아서 어머니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서 소리쳤다. "넌 우리 가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구나. 그래, 성모이야기, 은총, 위선적인 꼴, 다 가져라!"

벨라뎃다는 두들겨 맞기 시작했고 엉엉 울었다. 니콜로 부인이 이를 말리며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벨라뎃다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니까? 이 애는 천사입니다. 당신은 하늘에서 온 천사를 자식으로 데리고 있는 것 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난 동굴에서 보았던 이 아이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벨라뎃다의 어머니는 좌절감과 감정이 북바쳐서 또 한 번 울어 버렸다. 그리고 어린 딸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벨라뎃다는 가끔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 16일까지 모두 18번의 발현이 계속되었다. 발현 후 50년동안 4,000건이상의 난치병 치유 사실이 보고되었고, 신앙의 기쁨을 찾은 이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1872년부터는 순례자가 더욱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그 수는 연간 200만명을 넘는다.

실로암(요한 9:10)과 베짜타연못 (요한 5:4)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을 마리아는 오늘도 루르드의 샘을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벨라뎃다는 1866년 루르드를 떠나 수녀가 되었으며, 35세를 일기로 1879년 선종하였고 1933년 시성되었다.

성지 전문 여행사 사람과 여행

바뇌(Banneux)의 성모님 발현

바뇌(Banneux)의 성모님 발현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바뇌에 사는 마리에트(12세)에게 8번 나타나셨다. 가난을 내세우시는 성모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 위주의 사상에서 하느님의 신앙을 져버리고 있는 위기를 일깨워 주셨다. 당신을 철저히 신뢰할것을 바라시며 루르드처럼 샘터를 지적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바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파 티마나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본 어린이들은 모두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뇌의 성모님을 뵈온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가정 주부가 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마리에뜨는 어느 가정보다도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가정주부라는 점에 있어서 오늘의 시대적인 특징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마리에뜨는 지금도 바뇌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그 곳 한 식당에서 헌신적으로 봉사 생활을 하고 있다.

바뇌라는 시골마을

바뇌는 벨기에의 고원지대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바뇌의 주민들은 지금도 가난하지만 옛날에도 가난하였다. 산림지대이기도 한 이 산골 촌락이 1차대전 이후부터 '우리의 모후 바뇌'라고 불리어 졌다. 바뇌 근처 저지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전쟁이 터지자 산으로 피난하였고, 이 산골에서 전쟁 중 살아 남는다면 이 마을을 '우리의 모후 바뇌(Notre-Dame Banneux)'라고 부르겠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바뇌에서 2km 밖에 되지 않는 이웃 마을 루베네는 군인들에 의해 젯더미가 되었지만 이 마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1933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당시 바뇌의 주민은 325명 뿐이었다. 그들은 평화롭고 부지런한 산골 생활을 하였는데 한 마디로 전형적인 시골 생활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19세기에 건축된 아담한 성당이 있었고, 성당 중심으로 가난한 집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그 성당에서 약 1km 내려와 전나무로 무성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왼쪽에 베코베지몽씨의 초라한 집이 있었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뜰이 있고 주위가 자연 그대로 펼쳐있는 산골 집이었다. 단도직입적인 말투와 투박한 성격을 가진 가장은 늘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갔고, 신문이나 종교 문제나 더더욱 오락에까지도 관심이 없었다. 한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성실과 정직과 용기만 있을 뿐 초라한 촌부에 불과했다. 부드럽거나 친절한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지만 겸손한 면은 있었다.

마리에뜨

베코씨 자녀들 중 장녀인 마리에뜨(Mariette)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해의 전례상 성 금요일이었고 동시에 성모영보 축일이었다. 마리에뜨는 종교적 의식이나 사회적인 인습이 없는 황량한 숲 주위에서 자라났다. 야생화처럼 자라난 마리에뜨는 육체적으로 건강하였지만 마음의 양식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마음은 단순하고 겸손하였다. 마리에뜨의 일과는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이나 신문도 읽지않았고 오락도 즐길줄 몰랐다. 한가하고 조용한 때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겉꾸밈이나 남의 눈에 두드러짐이 없는 순진하고 솔직 담백한 마리에뜨였다.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동생들의 놀이에 응하여 주는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 두뇌 발달은 다른 아이와 뒤떨어졌지만 침착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것은 부모에게 배웠다. 성당의 교리반에 나가면서도 결석하기를 잘 하였고 주일 미사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리 지식은 거의 없었고 첫영성채를 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에뜨에게 너무나 귀하시고 놀라운 분이 찾아 왔던 것이다.

바뇌의 성모발현

첫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5일 주일

주 위가 깜깜하고 추웠던 밤 7시경, 마리에뜨는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갑자기 광채가 나타나더니 정원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너무 멋진 부인이 나타났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허튼소리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감격한 마리에뜨는 성모 마리아이심을 느기고는 모든 행동이 급작스럽게 변했다. 교리반에도 열심히 나갔다. 오로지 성모님 마음에 들기를 원하였다.
첫번째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마리에뜨에게 미소만 지으셨다.

두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이었다. 영하 12도가 되는 강추위에서도 마리에드는 집 근처 큰 길 옆, 3일 전에 성모님을 보았다고 하던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성 모님께서 하늘 저 멀리에서 점점 가까이 오시면서 전나무 사이를 통하여 내려오셨다. 마리에뜨 앞 약 1m50cm 정면에 서 계셨다. 마리에뜨는 미소짓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뒷걸을질로 가시는 성모님을 따라가다가 성모님께서 멈추시자 무릎을 꿇었다.
작은 샘이 있는 길 옆에 서신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는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세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쯤에 매우 나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에뜨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였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었다.

"나는 가나난 이들의 동정녀이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밝히셨다. 마리에뜨가 묻는 말에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샘물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네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는 피곤한 몸은 일으켜 저녁 7시 45분경에 정원으로 나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 또 오셨다.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여쭙는 마리에뜨에게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성당을 하나 원한단다"

다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1일 토요일

이 날은 성교회가 성모님께서 루르드에 발현하신지 75주년 기념하는 행사를 거행하였지만 산골 소녀 마리에뜨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밤7시경 마리에뜨는 밖에 나가 로사리오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여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에 마리에뜨는 다른 때와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본당 신부가 증거를 요청한다고 말씀 드리니까 성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는 떠나셨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희를 믿겠다."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일곱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20일 월요일

이날 밤에는 눈바람이 불었다. 마리에뜨는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마지막 나타나심-1933년 3월 2일 목요일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기도 많이 하여라"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잘 있거라(Adieu)"하시면서 마리에뜨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호를 그어 축복을 하신 다음 떠나가셨다.

성지 전문 여행사 사람과 여행

파티마의 성모님 - 루치아나의 보고서

파티마의 성모님 - 루치아나의 보고서
첫번째 발현

 1917년 5월 13일, 나는 꼬바 다 이리아의 비탈에서 희야친따와 프란치스꼬와 함께 금작화 숲 주위에서 작은 돌담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을 보았다.
"번갯불이 이는구나. 소낙비가 올지도 모르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니?"하고 내가 사촌들에게 말하자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양떼를 몰고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큰 참나무가 있는 비탈길을 접어들자 또다시 번개가 번쩍였다. 그때 우리는 우리 가까이 몇 발짝 앞에 있는 작은 떡갈나무 위에 흰옷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인은 태양보다도 더 찬란했고 눈부신 빛을 내고 계셨다.
우 리는 놀라서 그 앞에 우뚝 서버렸다. 우리는 불과 1m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의 부인에게서 나오는 그 광채 안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 부인이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들을 해롭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란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내가 여쭈어 보았다.
"나는 하늘에서 왔단다."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나는 너희들이 여섯 달 동안 계속해서 매달 13일 이 시간에 여기로 나와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왔단다. 내가 누구이며 또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중에 말해주마."
"그러면 저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 너는 천국에 갈 것이다."
"희야친따는요?"
"희야친따도 갈 것이다."
"그럼 프란치스꼬는요?"
"그도 역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먼저 묵주기도를 좀더 많이 해야 한단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죽은 두 소녀의 소식을 여쭈어 보았다. 이 두 친구는 때때로 우리 집에 와서 나의 큰언니와 함께 뜨개질을 배우곤 했었다. "마리아 다스 네베스도 천국에 있습니까?"
"그래, 천국에 있단다." (그녀는 죽을 당시 16세쯤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멜리아는요?"
"그녀는 세상 끝날 때까지 연옥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18세 내지 20세쯤 되었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죄의 보속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시고자 하는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겠느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가거라. 너희는 많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위로해주실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위로해주실 것이다."는 이 마지막 말씀을 하시면서 처음으로 당신 손을 펴 보이셨다.

두번째 발현

 1917 년 6월 13일, 희야친따와 프란치스꼬 그리고 내가 주위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다 바치고 나자 성모님께서 5월에 오셨던 그 작은 참나무 위에 서 계셨다. 그리고 우리는 번개라고 부른 그 빛이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하고 내가 물었다.
"다음달 13일에도 여기 올 것과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읽는 법도 배워라. 내가 원하는 바는 다음에 말해주겠다."
그때 나는 한 병자를 고쳐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녀가 자기 생활을 고치면 올해 안에 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천국에 데려가 주세요."
" 그래, 희야친따와 프란치스코는 곧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는 좀더 오래 여기 머물러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알려지고 사랑 받도록 너를 사용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세상에 내 성심에 대한 신심을 세우기를 원하고 계신다."
"저 혼자 여기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하고 나는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다, 아가야. 그것이 너를 괴롭게 만드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 티없는 성심이 너의 안식처가 되고, 너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어 줄 것이다."

성모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 양손을 펼쳐 전과 같은 그 굉장한 빛을 우리에게로 비춰주셨다. 그 빛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잠겨 있음을 알았다.
희야친따와 프란치스꼬는 하늘로 뻗는 빛 속에, 그러나 나는 지상으로 부어지는 빛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성모님의 오른쪽 손바닥 앞에는 가시에 둘러싸여 찔리고 있는 심장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인류의 죄로 인해 상처 입고 보상을 원하시는 티없으신 성심임을 직감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6월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비밀이다.
그때 성모님께서는 이것을 비밀로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세번째 발현

 1917년 7월 13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꼬바 다 이리아의 떡갈나무 가까이에서 또 다시 광선이 번쩍였고 조금 후 그 떡갈나무 위에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하고 내가 물었다.
"다음달 13일에도 여기 와주고 전쟁이 끝나 세상에 평화가 오도록 매일 묵주 기도를 계속 바쳐라. 그분만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구신지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저희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매달 계속해서 여기에 오너라. 10월에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믿도록 기적을 행하겠다."
이때 나는 몇 가지 부탁을 드렸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묵주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모님은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죄인들을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으로 바쳐라. 그리고 자주, 특히 어떤 희생을 바칠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치도록 해라.
"오 예수님, 이 선물 드림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함이며, 티없으신 성모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보속이며, 죄인의 회개를 위함이나이다."

성모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먼저와 같이 당신 손을 펼치셨는데, 그 손에서 나온 빛은 땅을 꿰뚫는 것 같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불의 바다를 보았다.
그 불 가운데에는 사람의 형상을 갖춘 흑색 또는 청동색의 숯덩이와 같은 인간 모양을 한 영혼들과 악마들이 화염과 연기 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그 들은 큰 화재 때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과 사방에서 불똥이 튀는 구름 같은 연기에 싸여 체중도 균형도 없이 실망과 통곡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실로 그 광경은 우리를 공포로 전율케 만들었다.(다른 사람들이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광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악마들의 모습도 서로 구별할 수 있었는데, 불타고 있는 투명한 석탄과 같이 흉측스러운 이상한 동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도 겁에 질려 그들의 구원을 애원하는 눈초리로 성모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친절하면서도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 너희는 불쌍한 죄인들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하신다.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실천하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될 것이요,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다. 그리고 전쟁도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다면, 비오 11세 교황 때에 또 다른 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원인 모를 빛에 의해 밤이 밝혀지거든, 하느님께서 전쟁과 기아 그리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박해로써 세상의 모든 죄악을 벌하시려는 표지로 알아라.
이 재앙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내 성심에 봉헌하고 매달 첫 토요일마다 보속의 영성체를 실천하라고 부탁하러 다시 오겠다. 내 요청이 채워지면 러시아는 회개하고 평화가 올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는 자기 오류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전쟁을 유발하며 교회에 박해를 가할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순교를 당하고 교황은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이며, 여러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 티없는 성심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교황은 나에게 러시아를 봉헌할 것이고,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며, 세상에 평화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는 언제나 신앙이 보존될 것이다. 이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라. 프란치스꼬에게는 해도 좋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매 신비가 끝난 다음에 이 기도를 바쳐라.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들을 구하시되 제일 버림받은 영혼들을 구하소서."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다시 물었다.
"제게 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다. 오늘은 없다."
그리고 나서 지난번의 발현에서와 같이 성모님은 동쪽 하늘로 올라가시더니 모습을 감추셨다.

네번째 발현

 1917년 8월 15일, 이날 일어난 것은 이미 다 보고하였지만, 발현은 15일 오후에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날짜를 계산할 줄 몰랐기 때문에 틀렸을 수도 있지만 빌라 노바 데우로렘에서 돌아온 그날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발리노스라는 곳에서 프란치스꼬와 그의 형인 요한과 함께 양떼를 먹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자연적인 기운이 우리를 감싸오고 있음을 느꼈다.
성모님께서 오시는 것같아 희야친따가 그분을 뵙지 못할까 봐 요한한테 데려오라고 부탁했다.
그가 가기 싫어하여 내가 동전 두 닢을 건네주자 그는 달려갔다. 그 동안 프란치스꼬와 나는 우리가 번개라 부르던 섬광을 보았다. 희야친따가 도착한 조금 뒤, 떡갈나무 위에 나타나신 성모님을 보았다.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계속하여 13일에 꼬바 다 이리아에 다시 와 주고, 매일 계속해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원한다. 마지막 달에는 모든 사람이 믿도록 기적을 보여주겠다."
"사람들이 꼬바 다 이리아에 가져다 놓은 돈은 어떻게 할까요?"
" 그것을 가지고 두 개의 들 것을 사도록 하여라. 하나는 너와 희야친따 그리고 흰옷 입은 두 소녀가 들게 될 것이고, 또 하나는 프란치스꼬와 다른 세 소년이 들게 될 것이다. 그 돈은 묵주기도 축일 준비에 쓰고 나머지는 성당 건축에 사용하여라."
"몇몇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올해 안에 고쳐주겠다."
그리고 나서 성모님은 매우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많이 희생하여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해주는 사람이 없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이 많단다."
그런 뒤 성모님은 여느 때와 같이 동쪽 하늘로 사라지셨다.

다섯번째 발현

 1917 년 9월 13일, 성모님의 발현 시간이 가까워지자 나는 희야친따와 프란치스꼬를 데리고 꼬바 다 이리아로 떠났다. 그러나 주위에 몰려드는 군중 때문에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길은 사람들로 붐볐고 군중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려고 아우성이었다. 인간적인 존경이나 존중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신사나 숙녀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 위해 서로 밀치고 있었고, 자기들의 소원을 부탁드려 달라고 우리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하였다.
우리에게 가까이 올 수 없는 사람들은 멀리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구인 내 아들을 고쳐주시길 성모님께 구하여 달라"고 소리쳤다.
" 눈먼 내 아들을...", "귀머거리인 내 아들을...", "내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서 돌아올 수 있길..." 하면서 모두들 아우성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께서 죄인인 나를 회개시켜주시도록...", "내 결핵을..." 하는 등의 말을 전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모든 병자들이 거기 다 모인 것 같았다.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하여 나무 위로 오르는 사람도 있었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대답해주려 했고, 먼지 바닥 위에 무릎 꿇은 사람들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앞에 서서 군중을 뚫고 길을 열어준 어느 신사 덕분이었다.
알주스트렐, 파티마의 꼬바 다 이리아의 좁은 길을 보면서, 주님께서 거리를 지나가실 때 환호하던 군중들이 그분의 길을 가득 메웠던 광경을 그려보았다
.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고 착한 포르투갈 국민들의 신앙을 바쳤다. 그들이 초라한 우리 세 아이들에게 그토록 자신들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얘기할 수 있는 우리의 은혜를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이것은 펜이 제멋대로 움직인 결과의 객담이다. 그러나 노트를 아끼기 위해 찢지는 않겠다.

우리는 그러한 군중을 헤치고 겨우 꼬바 다 이리아에 도착하였다.
떡갈나무 가까이에 도착하자 사람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조금 후 우리는 섬광을 보았고 그 떡갈나무 위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 전쟁이 끝나도록 계속해서 묵주기도를 바쳐라. 10월에는 주님께서도 오실 것이고, 통고의 성모와 가르멜의 성모도 함께 올 것이다. 요셉 성인도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아기 예수와 함께 나타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의 희생에 대단히 만족해 하신다. 그러나 잠자리에서까지 그 끈을 매고 있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좋아하지 안으신다. 낮 동안만 매고 있도록 해라." 그때 우리들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희생으로 굵은 밧줄을 맨살에 묶고 있었다
. "귀머거리, 벙어리 등 병자들을 치유시키도록 부탁 받았습니다."
"그래, 고쳐주겠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이는 고쳐줄 수 없단다. 10월에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주겠다."
그리고는 전과 다름없이 성모님은 자태를 감추셨다.

(유즈넷 에서 홍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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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나 보고서.
(루치아는 이날의 발현에 대한 보고서를 3인칭으로 썼다.)

1925년 12월 10일,
지 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분 옆으로 빛나는 구름 위에 아기 예수님이 계셨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한쪽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시면서 다른 손에 들고 계신, 가시로 둘러싸인 심장을 그녀에게 보여주셨다. 바로 그때 아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시로 덮인 지극히 거룩하신 네 어머니의 성심을 위로해 드려라.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순간마다 그 가시로 어머니의 성심을 찌르는데, 그 가시들을 빼드리기 위해 보상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그런 다음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말씀하셨다.
" 내 딸아, 가시에 둘러싸여 찔리고 있는 내 심장을 보아라. 은혜를 모르는 인류가 모욕과 망은으로 매순간 마다 찌르고 있구나. 적어도 너만이라도 나를 위로하여라. 그리고 연이어지는 다섯 번의 첫 토요일에, 내 성심을 거스른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며, 묵주 기도 5단과 15분 동안 묵주기도의 열 다섯 가지의 신비를 묵상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순간에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은총으로 돕겠다고 말하여라."

1926년 2월 15일,
아기 예수님께서 다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
예 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전파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녀는 고해신부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 드리고, 또 원장 수녀는 그것을 보급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만 고해신부가 그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음을 말씀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의 장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내 은총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녀가 예수님께 어떤 사람들은 첫 토요일에 고해성사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나서 처음 8일 중에 아무 때나 고해하러 가도 괜찮으냐고 여쭈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그렇다. 그들이 나를 받아 모실 때 은총 상태에 있고, 또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께 보속하려는 지향만 갖고 있다면 좀더 지나서 고해해도 괜찮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여쭈었다.
"예수님, 그 지향을 세우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먼젓번 기회 때의 효력이 다음 고해 때로 물려져서 그들은 다음 고해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1929년 6월 13일,
나는 장상들과 고해 신부님께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성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청해서 승낙을 받았다.
어느 날 밤 나는 홀로 성당 중앙에 있는 제단 난간 가까이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천사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좀 피곤함을 느껴 일어서서 팔을 십자형으로 벌리고 기도를 계속했다. 빛이라고는 성체 등의 불빛밖에 없었다.

그 런데 갑자기 성당 전체가 어떤 초자연적인 빛으로 밝아지더니 제단 위의 천정까지 뻗친 빛의 십자가가 나타났다. 십자가의 위쪽 좀더 밝은 빛 속에서 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의 몸은 허리 부분까지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빛의 비둘기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다른 사람의 몸이었다. 허리 조금 아래로 성작과 공중에 떠 있는 큰 성체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위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얼굴과 그분의 옆구리의 상처로부터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 핏방울들은 성체로 흘러내려 성작 안으로 떨어졌다. 십자가의 오른쪽 팔 밑에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손에 들고 계셨다. (칼이나 장미가 아니라 가시와 불꽃으로 둘러싸인 티없는 성심을 왼손에 들고 계신 파티마의 성모님이셨다.) 십자가의 왼쪽 팔 아래에는 마치 제단 위로 흘러내리는 수정같이 맑은 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커다란 글자들이 "은총과 자비" 라는 글자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신비라는 것을 알았고, 또한 밝히라는 허락을 받지 못한 이 신비에 대한 빛을 받았다.

그때 성모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하느님께서 이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교황에게 전 세계 모든 주교들과의 일치 안에서 러시아를 나의 티없는 성심에 봉헌할 것을 요구하시는 때가 왔다. 나를 거슬러 범한 죄로서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을 받는 영혼들이 매우 많다. 그래서 나는 보상을 요청하러 온 것이다. 이 지향으로 네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하여라."
이것을 고해 신부님께 말씀 드렸더니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적으라고 명하셨다.

후에 친밀한 내적 친교 중에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나에게 불만을 호소하셨다.
" 사람들은 나의 요청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왕처럼 그들은 결국 후회하고서야 그것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으리라. 러시아는 이미 자기의 오류를 전 세계에 퍼뜨렸을 것이며, 전쟁을 일으키고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황은 더욱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후기; 1984년 3월 25일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련을 비롯한 전 세계를 성모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였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성모님께 대한 토요일의 신심

성모님께 대한 토요일의 신심
1987년 교황청이 인준한 『성모미사독서』에는 성모 축일이 46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회칙은 아울러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를 통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자주 기념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전례에 있어서 토요일을 성모께 봉헌한 것은 9세기경부터 서방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발상은 아일랜드 출신 분도회원 알쿠인(Alcuin, 735~804년)에게서 나왔다.
금요일은 거룩한 십자가를 묵상하고,
토요일은 성모 마리아를 묵상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콘스탄자의 베르놀도(Bernoldo di Costanza, 1054~1100년)는 당시 그러한 신심이 명령이 아니었는데도 신심으로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1962년 미사경본에는 마지막으로 성모 신심 미사가 수록되어 있었으며, 이는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첫 부분은 주간 요일을 주님의 신비나 천사 혹은 성인들을 지향으로 드릴 수 있도록 하였다.
월요일은 삼위일체께,
화요일은 천사들에게,
수요일은 성 요셉에게, 혹은 베드로와 바울로 혹은 12사도들에게,
목요일은 성령께, 혹은 성체성사나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금요일은 성 십자가나 혹은 주님의 수난, 또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께,
그리고 토요일은 성모 마리아께 드리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전례시기에 따라 4가지 양식을 제시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매우 다양한 29가지 신심 미사가 소개되고 있다.
목요일은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금요일은 예수께서 수난을 당하신 것과 관련이 있지만, 토요일과 마리아의 관련성은 특별한 근거가 없다. 나중에 그 의미를 찾아 내었는데,
첫째로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세 2,3)는 것과 마리아께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축복 받으시고 거룩하게 되셨다는 것을 연결시키고 있다.
둘째로 휴식하는 날인 안식일과 마리아 안에서의 휴식을 연결시킨다. 집회 24,8을 인용한다(70역이 마소라본(本)과는 다르지만 마리아 안에서의 휴식을 연상시킬 수 있다).
셋째로 토요일은 무엇보다 주님을 기념하는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기에,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좋은 날로 간주하였다.
넷째로 주님께서 성 토요일에 무덤에 계시고, 오직 그날에는 성모님만이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남아 계셨음과 연결시키고 있다.
다 섯째로 부활의 주일에 앞서 토요일에 마리아께서 시므온이 예언한 고통의 신비를 겪으신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또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 처음 다섯 번이나 토요일에 있었던 것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토요일 미사를 성모 신심 미사로 봉헌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조규만,『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가톨릭대학교출판부, 428-430 인용

개신교 형제가 보는 가톨릭의 성모님 공경

개신교 형제가 보는 가톨릭의 성모님 공경
아래 글은 어느 개신교신자가 우리 가톨릭신자들의 성모님 심신에 비판을 가한 글입니다. 물론 본인으로서도 이 글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밝힙니다.
우 리들이 믿는 첫째 계명은 분명 하느님을 만유 위에 높이 섬기고 하느님이 아닌 어떤것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있습니다. 그런대도 우리들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그들의 눈에 하느님께 드리는것과 동일하게 또, 오히려 그 이상으로 보는것에 대해 그들을 탓하거나 논쟁을 하기보다 그들의 주장을 겸허하게 듣고, 반성하고 또 묵상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을것 같아서 이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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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으로서 바라보는 가톨릭 형제들의 성모님 공경에 대해 몇마디 적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나 비신자들은 가톨릭을 성모님을 숭배하는 종교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 제로는 가톨릭도 세계의 모든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하느님만을 흠숭하는 종교인데도 말입니다. 이토록 가톨릭이 많은 사람들에게 본질이 오해되고 있는 것은 비신자와 개신교인들의 무지함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가톨릭 교우 여러분들의 태도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가톨릭 정통신학에서는 흠숭지례와 공경지례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으며 성모님께 드리는 공경은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토론장에서나 근처 가톨릭 교회를 방문해 보아도 많은 분들이(제가 보기엔) 공경의 도가 지나쳐 거의 흠숭의 지경에 이른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성모님이 계시하신 구절을 입에 꿰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에게 직접 아뢰기보단 성모님의 전구(중보기도)에 더 매어달리는 모습도 봅니다.
또 한 구원의 전권은 하느님께 속한 것인데도 성모님께 구원을 청하기도 하고 더더구나 놀라운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재능과 일생과 열정을 봉헌해야 할터인데 성모님께 우리 생을 봉헌하자는 표현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막시밀리앙 콜베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놀라운 헌신과 사랑에 참 놀랐으며 제가 다니는 개신교회에서도 그분의 일생을 성극으로 꾸며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전기를 보며 참으로 가슴 아팠던 것은 소위 말하는 '성모신심'때문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성모님의 기사가 되어 성모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고 싶었다는 표현이 여러번 나오던데요.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과연 그런 헌신을 성모님 본인은 기뻐하실까요?
피조물들이 주님께 돌릴 영광을 오히려 한낱 같은 피조물인 자신에게 바치는 것을 보면 성모님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민망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열정과 신심의 전부는 창조주 하느님께 바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인성녀들에게는 깊은 존경과 경모의 맘을 드릴수는 있습니다만 그분들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거나 그분께 우리 삶을 봉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나이드신 할머니나 지각이 부족한 분들이 성모님 숭상에 앞장서는 것은 이해가 되나 합리적이며 신학적인 교육과 사고를 할수 있는 젊은 가톨릭 형제들이 여기에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가톨릭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적인 개신교인은 아닙니다.
전 가톨릭을 세계교회의 모체로 존중하며 2차 바티칸 공의회때 교황성하께서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민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사는 곳에도 정기적으로 가톨릭 형제들을 만나며 같이 기도하고 있으며 어떻게 교회의 일치를 이룰까 모색하는 젊은이입니다.
예민한 문제가 될수 있기에 다른 가톨릭 신자들과 만날때에도 차이보단 공유하는 것들만 얘기를 해 왔으나, 그동안 덮어두었던 차이에 관해 얘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혹시 저의 글로 인해 혹 맘이 상하신 분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 또한 간혹 성인 프란치스꼬나 성모님께 한 두마디 아뢰기도 하는 사람이니 여러분을 완전히 이해 못하는 부류도 아닙니다.
다만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염려가 되어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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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평생 동정은 어디에 근거 한것입니까?

가톨릭 형제들은 교회의 오랜 전승에서 그리 믿어 왔으므로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고 주장을 하시는데 이론의 역사가 길다는 것이 그 이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라고는 볼수 없다고 봅니다.
가령 한국인은 고시대에 곰과 사람이 혼음한 결과로 태어난 민족이다라는 이야기가 오래 동안 민족의 설화와 전승으로 구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성모님이 평생동정이 아니다!!! 라고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확인할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다' 라고 해야 하느님 앞에 겸손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바른 자세라고 여겨집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공경한다고 하셨는데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면 요셉은 하느님의 아버지이고 다윗은 하느님의 고조에 고조에 고조....할아버지쯤 될터이니 그분들이 다 똑같은 숭상을 받아야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분을 공경하단기 보단 마리아를 공경해 왔으며 또 앞으로도 공경해야겠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극존칭을 붙인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리아 공경에 있어서 저희 개신교인들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것은 현세기에 있어 공포된 마리아에 관한 교리입니다.

이전에도 마리아 공경은 계속 있었으나 도그마의 형태로 자리잡진 않았으며 20세기 중반에 마리아에 관한 도그마가 등장하였습니다.
교황께서 마리아의 원죄없으심, 승천에 관한 전승을 교리로 선포하자 교회 일치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개신교 학자들은 크게 낙담하였고 교회 일치는 몇발짜욱 더 떨어졌다고 개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마리아께서 원죄도 없으시고 죄없이 사으셨으며 하느님에 의해 승천되었으므로 그분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공경의 원인이나 근거가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공경의 결과로 성립된 이론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실상 그 도그마들이 이론으로 정립되기 이전에도 이미 성모님을 공경해 왔지 않습니까?

그리고 과연 무슨 근거로 그런한 전승과 설화들을 신앙의 명제인 도그마로 정립할 생각을 하였는지 도대체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저도 최근 마리아의 발현이나 나주의 기적같은 것을 읽어보고 접해 보았습니다.저는 비록 개신교인이지만 파티마의 성모님과 나주의 기적등을 상당히 사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있는 태도에 있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계시 메시지의 핵심은 하느님을 더욱 흠숭하라는 것이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아서는 마리아에 대한 존경과 경배심만 더 늘어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리아 본인께서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심행위의 전부를 바쳐야할 주님께 우리는 '오 주님, 전 당신에게보단 당신의 어머니에게 내 신심을 우선적으로 바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겸손하니까요...' 라고 한다면 하느님이나 성모님의 마음또한 어떠하실까요?
저도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통공(개신교에서는 교통이라 합니다.)을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구를 요청할 필요성도 있다고 봅니다.

천상에 있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세상에서 고통하고 방황하는 저희를 위해 크게 빌고 계심을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가톨릭이 그 정도가 많이 지나치다고 보이며 그리스도교인지 마리아교인지 때로는 착각할 정도로 그 열의가 강하다고 봅니다.

전구를 청원하는것보다 그리스도께 직접 아뢰는 맘이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우리의 친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기울여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해달라는 기도가 교만한 기도라면 너희는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사도의 충고도 교만한 충고입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계부가 아니며 신경질적인 재판관이 아니며 우리의 친아버지인 이상 우리는 직접 아뢸수 있으며 전구에 대한 요청보단 직접 아뢰는 것에 더 열심을 가져야 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마직막으로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라 표현하신 것만큼은 성모님에게나 하느님에게나 옳지 않은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가령 제가 대천사 미카엘을 공경하거나 혹은 사도 베드로를 공경하는 것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억지를 부린다면 여러분은 동의할수가 있습니까?
피조물인 인간을 존경하는 것과 창조주를 공경하는 것과는 차원이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럭저럭 두서없이 저의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저의 글과 이러한 토론의 진행이 많은 가톨릭 형제를 실족케 하거나 맘에 성가시게 여겨진다면 글을 올리지 말라고 하시면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혹 저의 글로 인하여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커지거나 제 의문제시 자체가 성교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겨진다면 그냥 무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다른데로 또 같다고 합니다.
가 톨릭 교회에서는 구원의 통로로서의 절대적 지위를 2차 바티칸 공의회때 스스로 포기하는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정교회와의 상호파문을 취하하고 개신교를 이단종파라는 개념에서, 분리되어 있는 형제라는 개념으로 수정하는등 교황께서도 서로의 길을 인정하신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만큼은 개신교인인 제가 오히려 참 부러워 하는 입장이며 바른 교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제 의사 개진도 이러한 교회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한 젊은이의 의문과 반론일 뿐이며 여러분이나 저 또한 모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한 형제임을 전 분명히 믿습니다.

성모님과 관련있는 역사

성모님과 관련있는 역사

30년/ 50년 사도들의 설교(사도2,14-21, 3,12 13,15이하)들은 마리아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또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 대한 내용도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마리아는 팔레스티나의 모든 신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2) 예수의 생애에 끼친 마리아의 주요 임무는 이미 탄생과 유년 시절부터 끝났다. (3) 일반적으로 유대 여인의 역할은 항상 과소평가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지역적인 특성이 사도들의 설교에서 마리아와 예수의 지상생활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54년/ 57년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적 설교 가운데에서 마리아를 처음으로 암시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갈라4,4).
65년 성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를 묘사한다(3,31 이하, 6,3).

70년/ 80년 마태오 복음사가는 구약 성서의 예언 말씀에 따라(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포함하여) 예수께서 탄생하셨음을 말하면서 마리아를 소개하고, 성령과 인격적인 관계가 있는 마리아임을 설명한다(1,16-23;2,11).

70년/ 80년 복음사가 루가는 주님의 종, 시온의 딸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가장 충실한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마리아를 묘사한다(1,38,48;2,19,51,11;28).

90년/ 100년 사도 요한은 예수의 삶과(2,1-11) 죽음에서(19,25) 일치되어 있는 마리아, 그리고 당신의 제자에게 맡겨드린 마리아를 묘사한다(19,26-27).
90 년/ 100년 묵시록은 마리아에 대한 초대교회의 이미지를 그녀의 굳은 신뢰심, 깊은 믿음, 교회적 임무, 그리고 특별한 은총에 집중하여 묘사하고 있다. 마리아는 어느 누구도 받지 못한 은혜를 받았고, 예수를 낳은 위대한 종이다(12,1-17).

100년/ 200년 성베드로 대성당 지하에서 발굴된 어느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의 중재자와 보호자로서 마리아가 묘사되어 있다.
110년/ 115년 안티오키아의 성이냐시오는 마리아를 동정녀이자 어머니라고 다섯 차례나 언급하였다.

120년 솔로몬의 송시(訟詩)는 아기를 낳은 동정녀를 언급하고 있다.

145년 아테네의 아리스떼네스는 마리아를 신경(信經) 형태로 인용한다.

150년/ 200년 히에로폴리스의 주교 아베르치오의 비문에는 마리아의 동정, 성성 그리고 성체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150년 순교자 성 유스티노는 사상 처음으로 마리아께 대한 글을 썼다. 그는 하와와 마리아를 비교하는 예표론(豫表論)을 사용하였다.

150년 야고보의 원복음서는 마리아께만 독자적인 관심을 보이는 첫 번째 과업이다. 이것이 소위 "마리아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150년/ 202년 리요의 성이레네오는 마리아가 구원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기록하였다.

162년 시빌의 예언은 마리아를 격찬하며 언급한다.

200년 이전 처음으로 그린 마리아 성화가 등장했다. 이 성화는 까따꼼바에 그려져 있었다.

200년/ 300년 기록된 마리아 기도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SUB TUUM PRAESIDIUM)가 사용되었다.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를 강조한다.

200년/ 300년 희랍, 히브리, 아라마이어, 시리아 그리고 아르메이나 언어로 발견된 묘비명을 보면 마리아 신심이 그 당시에 이미 실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00년 "동정녀의 죽음"이란 책이 나왔다. 이것은 마리아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내용으로서 시리아어로 기록되었다.

217년 뜨라스떼베레의 산따 마리아 성당이 로마에 세워졌다.

250년 카르타고의 성 치쁘리아노는 신자들이 마리아께 대해 가져야 할 신뢰심을 역설하고, 마리아의 동정을 찬양하였다.

300년 "아카티스토스 찬미가"가 동방 교회 안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350년/ 400년 콘스탄티노블에서 가발라의 세베리아노 주교가 마리아께 기도하라는 공식 서한을 발표하였다.

350년/ 370년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가 성모송의 원형이 되는 마리아 기도를 중동 전역에 전파시켰다. 또한 그는 성 그레고리오 기적 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신 성모의 첫 번째 발현기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350년/ 370년 성 에프렘은 마리아의 중재자적인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간구하라고 하였다.

350년 성녀 유스띠나가 성모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최초의 기도문으로 기도하였고, 훗날 이 내용을 성 요한 크리소스ㄸ이 기록에 남겼다.

352년/ 366년 산따 마리아 마죠레 성당이 교황 리베리오 1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370년 최초의 마리아 전례가 시리아에서 완성되었다.

370년 성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를 여성의 모델이요 교회의 원형이라는 신학 이론을 정립하였다.

392년 교황 성 시리치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옹호하였고, 이를 아니시오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역설하였다.

394년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았음을 선언했고, 동정녀이자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신분을 찬양하였다.

400년/ 500년 프랑스의 소와쏭에 있던 이시스 신전이(에집트의 여신을 모시던 곳)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400년/ 500년 동정 성 마리아 기념 축일이 유럽의 여러 지방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400년/ 500년 성모 영보 축일이 콘스탄티노블에서 거행되었다.

400년/ 500년 그리스도와 시메온의 만남(히빠빤떼) 축일이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400년 "마리아의 죽음"(TRANSITUS)에 대한 최초의 책이 기록되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께 "천주의 모친"(테오토코스, THEOTOKOS) 칭호를 드렸는데,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의 공로가 컸었다.

432년 로마의 산따 마리아 마죠레 성당을 복구하면서 더 크게 확장하여, 교황 식스또 3세가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440 년/ 461년 마리아가 미사 경본 속에 도입되었다. 레오 예식서에 보면 성 레오 교황이 미사 전문 부분에 마리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천주의 모친이시며 영화로운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를 모시고 공경해야 한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이라고 호칭하였다.

451년 비쟌시움의 황녀 뿔케리아는 마리아의 유품을 수집토록 하였다.

470년 살로니카 대성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500년/ 600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한 파르테논 신전이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500년/ 600년 로마의 산따 마리아 안띠그마 성당이 봉헌되었다.

520년/ 556년 시리아 시인 성 로마노 멜로디스타가 마리아 찬미가 4개를 지었다.

534년 요한 2세 교황은 콘스탄티노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마리아는 "참으로 좋으신 모친"이시다고 선언하였다.

543년 예루살렘의 성 마리아 성당이 봉헌되었다.

550년/ 600년 리비아스의 주교 테오테크노스가 마리아 몽소승천에 대한 믿음을 역설했다.

550년 성모 성탄, 에수 봉헌 그리고 성모님의 서거 축일을 비쟌시움에서 거행하였다.

550년 희랍 철학자 에쿠메니우스(UECUMENIUS)가 묵시록 12장을 마리아적으로 주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553년 콘스탄티노블 제2차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교의를 재삼 확인하고,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역설하였다.

600년/ 800년 위 마태오 복음서가 서방에 출현하엿다.

600년/ 700년 마리아적인 응송인 "아베 마리스 스텔라"(AVE MARIS STELLA, 바다의 별이여)가 등장했다.

600년/ 650년 봉헌 축일(2월 2일)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는데, 마리아적인 성격보다는 그리스도적인 축일로 지냈다.

600년/ 636년 서방 교회의 마지막 교부인 세빌레의 성 이시도로가 마리아에 대한 것을 세밀히 기록하였다.

610년 비쟌틴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마리아 성화상을 자기 함대의 상갑판 큰 돗대 아래에 모셨다.

649년 라떼란 회의(만국 공의회가 아님)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선언하였다.

650년/ 675년 성모 영보 축일(3월 25일) 이 로마에서 거행되었으나, 마리아적인 성격보다는 그리스도적인 축일로 지냈다.

650년 성모 몽소 승천 축일(8월 15일)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이때부터 마리아적인 주요 축일로 변화되었다.

675년/ 700년 성모 성탄 축일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이 축일은 5세기 이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의 성모 성탄 성전 봉헌에서 유래한다).

680년/ 681년 콘스탄티노블 제3차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재확인하였다.

700년/ 749년 동방교회의 마지막 교부인 성 요한 다마스체노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당대 최고의 가르침으로 역설하였다.

700년/ 740년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는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께 간구하였다.

700년/ 733년 오세르의 성 제르마노는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는다"(SEEK GOD THROUGH MARY)는 사상을 확립하였다.

705년/ 707년 교황 요한 7세는 "천주의 모친의 종"이라고 불렸다.

750년 "테오필로의 전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는 마리아 성화상에 드리는 공경을 인가하였다.

800년/ 900년 성녀 안나의 잉태 축일이 비쟌시움에서 제정되었다.

800년/ 900년 마리아의 잉태 축일이 서방 교회 안에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800년 성모 성탄 복음서가 출현하였다.

804년 이전 베네딕또회 수도자인 알퀸이 토요일에 성모 미사를 드렸고, 875년에 미사 경본의 일부로 수록되었다.

845년/ 860년 성 빠스카시오 라드베르또는 동정 출산, 승천(영혼만) 그리고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지지하였다.

851년 이전 "마리아의 탄생 이야기"가 나왔는데, 성 빠스카시오 라드 베르또의 공로인 듯 하다.

869년/ 870년 콘스탄티노블 제4차 공의회는 "마리아 성화상에 드리는 공경" 승인을 재확인하였다.

876년 까를르 볼드가 마리아의 성의로 믿어지는 옷을 획득하였다.

900년/ 1000년 응송 "레지나 첼리"(천상의 모후여, REGINA CAELI)가 나왔다.

900년/ 1000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소성무일과"가 나왔다.

900년/ 1000년 마리아께서 이 세상을 지나 승천하셨다는 내용의 책인 "뜨란시뚜스"(TRANSITUS, 통과 혹은 죽음이란 뜻)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945년 "자비의 어머니"란 호칭이 서방 교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것은 살레르노의 요한이 "오도의 생애" 속에 언급한 이후부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975년 토요일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976년 몽세라 대수도원이 스페인에 건설되었는데, 이곳이 차츰차츰 유명한 마리아 경당으로 변모하였다.

1000년/ 1100년 마리아의 공동 수난 축일(MARY'S COMPASSION)이 도입되었다.

1000년/ 1100년 "아베 레지나"(AVE REGINA, 하늘의 영원한 여왕)가 나왔다. 이 찬미가는 중세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을 가장 올바르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000년/ 1100년 노틀담 드 ㅅ트르 대성당이 착공되었다.

1000년 베네딕또회 수녀인 간데르샤임의 흐르스비다가 "테오필로의 전설과 야고보 복음서"에 대한 시를 썼는데, 그녀는 마리아를 하늘의 강력한 여왕으로 묘사하였다.

1050년/ 1150년 응송 "알마 레뎀또리스 마뗄"(ALMA REDEMPTORIS MATER,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이 나왔다. 헤르만 불구자의 작품으로 추정되었다.

1050년/ 1093년 켄터버리의 성 안셀모가 성목게 관한 감동적인 글을 썼는데, 이 책속에는 유명한 기도문이 세 개 들어 있었다. 이 책은 중세 시대의 크리스챤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050년/ 1072년 성 베드로 다미아노는 미사 성제와 마리아의 합일점을 모색하였고, 소성무일과를 만들었다.

1080년/ 1124년 에아드밀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잉태"를 저술했는데, 교리의 구성이 당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1100년/ 1200년 "마리아의 생애"가 서방으로 퍼져나갔다.

1000년/ 1200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호칭 기도(LITANY)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1100년/ 1150년 성모송이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제2부(천주의 성모 마리아여...)는 15세기에 추가되었다.

1100년/ 1150년 가장 큰 마리아 모자이크가 이탈리아의 또르첼로 대성당에서 제작하였다.

1100년/ 1135년 독일의 베네딕토 회원인 루페르또가 아기를 성모 마리아께 적용시켜 해석한 첫 번째 인물이다.

1120년/ 1130년 에버샴의 도미니꼬는 "복되신 동정녀의 기적"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1120년 안셀모(젊은)는 마리아께 대한 기적 이야기들을 집대성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적"이란 대중적인 책을 펴냈다.

1130년 잉글랜드의 월싱햄에 성모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1140년 베네딕또회 역사가인 윌리암 말메스부르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적"이란 책을 저술했다.

1150년/ 1164년 쇼나우의 성녀 엘리사벳은 마리아께서 임종하는 장면이기 보다는 하늘로 올라가는 환시를 보았다. 그 이후 중세의 화가들은 성모 승천을 힘차게 그려내었다.

1150년 서방 최초의 성모 승천 그림이 프랑스의 상리스 대성당에 걸렸다.

1150년 마리아를 기리는 라 마르또라나 성당이 팔레르모에 세워졌고, 아름다운 성모 승천 그림을 전시하였다.

1160년/ 1205년 리옹의 노틀담 성당에 세워졌다.

1163년/ 1235년 빠리의 노틀담 성당이 세워졌다.

1194년/ 1220년 샬트르 성당이 세워졌다.

1200년/ 1250년 꾸탕스 성당이 세워졌다.

1200년 망트이 노틀담 성당이 세워졌다.

1215년 라떼란 제4차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동정모성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알비파 이단과 기타 다른 이단들을 대항하여 가톨릭 신앙을 재확인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1920년 아미앙의 노틀담 성당이 세워졌다.

1223년/ 1224년 하이스텔바하의 체살은 "기적들의 대화"속에서 말하기를 마리아께서 당신의 망토로 씨토 수도자들을 보호하신다고 주장했다.

1230년/ 1280년 성 알베르또(대)는 마리아께 관한 놀라운 책을 펴내고, "교회의 어머니"란 칭호를 사용하였다.

1250년/ 1300년 익명의 책인 "마리알레 수미쑤스 에스트"는 마리아의 영적, 현세적 선물에 대하여 엉뚱한 주장을 하고 나섰다.

1250년/ 1274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마리아께 대한 신학적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과장되고 조잡스런 모든 내용들을 제거하였다.

1250년/ 1274년 성 보나벤뚜라가 마리아께 드리는 공경을 상경지례(히뻬르둘리아)란 단어로 표현한 첫 번째 인물이다.

1251년 성 시몬 스톡크가 마리아로부터 스칼폴라를 받았다.

1260년/ 1306년 야꼬뽀네 다 또디가 마리아적인 가르침이 풍부한 찬미가를 썼고, 특히 스타발 마뗄(STABAT MATER, 십자가길의 성모) 찬가를 노래햇다.

1260년 샬트르의 노틀담이 봉헌되었다.

1260년 치마부에가 플로렌스이 산따 뜨리니따를 위해 마돈나를 그렸다.

1265년/ 1308년 복자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확립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첫 번째 인물이다.

1269년 안젤루스(삼종기도)가 대중적인 신심으로 널리 퍼졌다.

1274년 리용 제2차 공의회는 천주 성자가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로부터 탄생하셨다고 선언하였다.

1278년/ 1350년 플로렌스의 산따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세워졌다.

1280년/ 1300년 5월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7세기-9세기에 있었던 동방 교회의 관습이었다.

1296년 "거룩한 집"(마리아의 생가)이 로레또에서 발견되었다.

1296년 플로렌스의 산따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착공되었다.

1300년/ 1400년 마리아의 봉헌 축일이 제정되었다.

1300년 마리아의 띠에 대한 전설이 서방에 퍼졌다.

1314년/ 1321년 단떼는 자신의 신곡에서 마리아 신학을 노래했는데, 특히 그는 성모님께 특별한 영예와 영광을 드렸다. 그는 과연 "마리아의 최고 시인"이었다.

1326년 오리엘 대학이 옥스포드에 세워지고,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1340년/ 1373년 스웨덴의 성녀 브리짓다는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다. 이 사건은 그 당시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1355년 누렘부르그의 산따 마리아 성당이 건립되었다.

1372년 봉헌 축일이 서방에서도 제정되었다.

1376년/ 1383년 마리아의 스카폴라 축일이 제정되었다.

1379년 산타 마리아 대학이 옥스포드에 세워졌다.

1384년 5세기 내지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님의 성화상이 폴란드의 체스토코바에 안치되었다.

1389년 성모 방문 축일이 승인되었다.

1400년/ 1500년 메모라레(MEMORARE) 기도문이 작성되었다.

1400년/ 1450년 요한네스 헤롤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적"을 썼다.

1409년/ 1411년 요한 리드게이트가 "성모의 생애"를 저술하였다.

1410년/ 1444년 토마스 아 켐피스는 "준주성범"에서 강조하기를, 영성생활에서 마리아께 의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썼다.

1420년/ 1447년 꼬르비의 성녀 꼴레뜨가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다.

1423년 마리아의 통고 축일이 제정되었다.

1438년/ 1445년 플로렌스 회의는 천주 성자께서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이 되셨음을 굳게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1439년 바젤 공의회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정의했다(그러나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이 공의회를 거부한 뒤부터는 다만 암시적인 의미만 있었다).

1440년 마리아께 봉헌된 이튼 대학이 세워졌다.

1457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소성무일과"가 인쇄되었다.

1470년/ 1471년 마르띠노 숑가우어가 마리아의 일생을 조각하였다.

470년 도미니꼬회원인 알란 루포는 "마리아 시편 기도서"를 펴냈는데, 마리아께 드리는 로사리오의 힘을 지지하였다.

1475년 첫 번째 로사리오회가 창설되었다.

1492년 신세계의 신자들, 곧 콜럼부스와 산 살바돌호의 승무원들이 맨 처음으로 기도드린 것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여왕이시며)이다.

1495년 로사리오 기도가 교황 알렉산델 6세로부터 승인되었다.

1496년/ 1501년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걸작 삐에타를 완성하였다. 임종하신 아들 예수를 당신 팔로 안고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고통의 상징이었다.

1500년/ 1510년 알브렉트 듀러가 그리스도의 일생 목판화를 제작하였다.

1507년 로레또 경당의 순례가 승인되었다.

1518년 띠시아노가 베니스의 프라리에서 성모 승천을 그렸다.

1531년 복되신 동정녀가 과달루페에서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다.

1538년 월싱헴의 성모 경당이 파괴되었다.

1543년 마르틴 루터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긍정하였다.

1547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마리아와 관련되는 교리를 재확인하였다. 특히 마리아는 본죄까지 없다고 하였다.

1550년/ 1617년 프란치스코 수아레스가 마리아론을 최초로 체계화시켰으며, 자신의 전집(OPERA OMNIA) 9권에 수록하였다.

1555년 바오로 4세 교황은 당신의 사도적 헌장 "꿈 궈룸담"에서 마리아의 동정은 그리스도 탄생 전, 후에도 계속되었음을 선언했다.

1558년 로레또의 성모 호칭기도(LITANY)가 발간되었다.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마리아의 성화상 공경 허가를 재확인하였다.

1563년 성모송이 성무일과에 도입되었다.

1567년 교황 성 비오 5세는 마리아의 무죄하심을 확인하였다.

1573년 동정녀의 대망 축일, 승리의 모후 축일, 그리고 로사리오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다.

1577년 성 베드로 가니시오가 "비길 데 없으신 동정 마리아"를 저술했는데, 소위 말하는 종교 개혁 이후에 나온 최초의 마리아론적 작업이다.

1600년/ 1700년 통고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다.

1600년/ 1629년 "프랑스 영성 학원"의 창설자 피에르 드 베률이 마리아 신심을 일신시켰다.

1601년 복되신 동정녀의 호칭기도를 전 교회가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이것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공로이다.

1630년/ 1657년 슐피스회의 창설자 요한 쟈크 올리엘은 마리아적인 개념을 표현하는데 신비적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1644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한 성심 축일이 제정되었다.

1670년 마리아 데 아그레다가 쓴 "하느님의 신비스런 나라"가 그녀의 사후에 발간되었다.

1680년 성 요한 에우데스가 마리아 성심에 관한 장문의 책을 처음으로 발간했는데, 그 제목은 "훌륭한 마리아 성심"이다.

1683년 성모 성명 축일이 보편 교회로 전파되었다.

1690년 교황 알렉산델 8세가 마리아의 완전한 무죄를 옹호하였다.

1716년 로사리오 축일이 전 교회로 확산되었다.

1716년 알렉산델 드 루비이유가 준주성범을 본떠서 "마리아를 본 받아서"를 간행하였다.

1726년 가르멜산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다.

1750년 성 알퐁소 리구오리가 "마리아의 영광"을 간행했는데, 이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1754년 과달루페의 성모가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언되었다.

1815년 "신자들의 도움"이란 호칭이 성모 호칭 기도에 추가되었다.

1815년 신자들의 도움이신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다.

1824년 가타리나 에머릭크가 에페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1830년 성모님께서 성녀 가타리나 라부르에게 발현하시고, 기적의 메달을 제작하라고 하셨다.

1836년 요한 끌로드 꼴랭이 마리아 신심회를 세웠다.

1842년 루도비꼬 마리아 그리니옹 드 몽포르가 쓴 "참된 신심"이 발견되었다.

1845년 뉴만 추기경이 마리아의 올바른 신심을 옹호하였으나 다소 지나친 데가 있었다.

1846년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가 미국의 수호자로 선언되었다.

1846년 성모님이 라 살레뜨에서 발현하셨다.

1849년 비오 9세께서 마리아에 관한 최초의 교서 "우빕브리몸"을 반포하시고,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를 강조하였다.

1854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교리가 성대하게 선포되었다. 이때 교황 비오 9세는 "이네파빌리스 데우스"를 반포하였다.

1858년 성모님이 루르드에서 성녀 베르나뎃따에게 발현하셨다.

1871년 성모님이 퐁멩

1875년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이 금지되었다.

1879년 카나다 케이프의 성모 경당이 세워졌다.

1879년 성모님이 아일랜드이 녹크에서 발현하셨다.

1883년/ 1902년 "로사리오의 교황" 레오 13세께서 로사리오와 마리아께 대한 교서를 11개나 반포하셨다. 이때 표현된 마리아의 주요 호칭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 "구원받은 자들의 어머니" "신앙의 수호자"등이다.

1883년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모후여"란 호칭 기도가 성모 호칭 기도에 첨가되었다.

1890년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을 표현하였다.

1900년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언되었다.

1904년 교황 성 비오 10세는 교서 "ㅇ 디엠 일루드"를 반포하시고, 은총의 중재자이신 마리아 신학의 기초를 계발하였다.

1907년 루르드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다.

1913년 워싱톤 D.C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경당의 주춧돌을 놓았다

1917년 성모님이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1918년 교령 "순트 궈"에서 성청은 마리아를 "공동-구속자"로 부르는 관습을 옹호하였다.

1918년 사도적 서한 "인뗄 소달리치아"에서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그리스도의 구원적인 희생에서 수행한 마리아의 역할을 역설하였다.

1921년 레지오 마리애가 더블린에서 창설되었다.

1923년 사도적 서한 "엑스플로라따 레스"에서 교황 비오 11세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에 대한 마리아의 역할을 확인하였다.

1927년 "사제이신 마리아" 신심이 금지되었다.

1931년 성모의 신적 모성 축일이 제정되었다.

1932년/ 1933년 성모님이 벨지움의 보렝에서 발현하셨다.

1933년/ 1934년 비오 11세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대한 마리아의 공헌을 언급하였다.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뿐만 아니라 갈바리아에서도 천주의 모친으로서 모성을 수행하였다고 강조하였다.

1937년 성모님이 벨지움의 바뇌에서 발현하셨다.

1941년 아무런 의무감없이 메달을 지니고 은혜받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이 비난받았다.

1942년 비오 12세는 파티마에서 말씀하신 성모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온 세상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다.

1943년 "미스띠치 꼬르뽀리스" 칙서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인간 구원에서 드러난 마리아의 역할을 설명하고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모후되심을 설파하셨다.

1944년 티없이 깨끗한 성모 성심 축일이 제정되었다.

1946년 교황 비오 12세가 교서 "데이파래 비르지니스 마리애"를 반포하여 승천을 설명하였다.

1947년 교사 "메디아똘 데이"에서 비오 12세 교황은 전례상의 마리아를 설명하였다.

1950년 마리아해(年)가 선포되었다.

1950년 성모 승천 교리가 선포되었다. 이때 비오 12세는 "무니피첸디시무스 데우스"를 반포하셨다.

1950년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모후" 호칭이 성모 호칭 기도에 추가되었다.

1951년 비오 12세는 교서 "인그루엔시움 말로룸"을 반포하고, 로사리오의 영적 힘을 역설하였다.

1953년 시실리 시라쿠제의 무염 성모 석고상이 눈물을 흘렸다.

1954년 교서 "풀젠스 꼬로나"에서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무염시태 확장 백주년을 기념하는 성모의 해(年)을 선포하셨다.

1954년 교서 "앗 첼리 레지남"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여왕이신 마리아"를 선포하고, 축일을 제정하였다(8월 22일).

1957년 교서 "펠레리나제 데 루르드"로 비오 12세 교황은 루르드의 성모 발현 백주년을 기념토록 하였다.

1959년 교사 "그라시아 레꼬르다띠"에서 요한 23세는 마리아를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라고 불렀다.

1964년 바티칸 제2차 공의회는 교회 헌장 제8장에서 처음으로 마리아에 관한 공의회적인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공의회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가운데 계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하였다.

1965년 교서 "멘세 마요"에서 바오로 6세 교황은 5월에 성모성월을 충실히 지낼 것을 권고하셨다.

1967년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50주년을 즈음하여 바오로 6세 교황은 사도적 권고 "시늄 마늄"을 반포하시고, 마리아 신심의 의미와 목적을 재강조하셨다.

1969년 바오로 6세의 로마 미사 경본이 간행될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가운데 담당하는 마리아의 역할에 근거하여 마리아 관계 축일이 조정되었다.

1970년 시과경이 간행될 때에도 마리아 관계 축일이나 기타 기도문들이 조정되었으나, 마니피캇, 마리아적인 응송, 찬미가 그리고 독서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1973년 미국 주교회의는 사목 교서 "당신의 어머니를 보시오"를 발표하여, 마리아의 위치를 재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의 모친께 대한 전통적인 애정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974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사도적 헌장 "마리알리스 꿀뚜스"를 반포하시고, 전례적인 마리아 신심, 대중적인 마리아 신심 등을 재확인하셨다.

1975년 로마 미사경본 개정판 속에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모 성명" 미사가 기원 미사로 포함되었다.

1978년 크라코우의 대주교 카롤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라 칭하고, 당신의 교황 재위 기간을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교황은 모토는 "오 마리아여, 모두 당신의 것 입니다"이다.

1980년 "천주의 모친"이란 호칭이 성모 호칭 기도에 추가되었다.

1981년 경신성성이 성모님의 새로운 호칭 기도를 반포하였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방문하고, 온 세상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다.

198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모친"을 발표하고, 성모 성년을 반포하였다

세계의 성모님 발현지

세계의 성모님 발현지
교회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379회(1984년 현제)의 성모님 발현의 대부분이 18세기(1830년~1984년)이전의 것이며 1984년 이후에도 발현 보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교회는 그 진실성 여부를 가리는데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지금도 성모님의 발현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1975 년 일본 아끼다의 성체봉사 수녀회에 모셔진 목각 성모상을 통해서, 1985년 우리나라 나주의 한 가정에 모셔진 조그만 성모상을 통해서도 심오한 기적의 사실들이 알려지고 있지만, 지난 150년동안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모님의 발현지로 인정된 곳은 극히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모님의 발현은 그 외적 상황이 각기 다르더라도 내적인 메세지는 심오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죄악과 절망으로 상처난 인류를 치유하시려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요한 19, 23-29)의 의도를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는 것이다. 때문에 발현때 마다 강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일생을 묵상할 수 있는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실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할 일 일것이다.
교회가 성모님 발현의 사적 계시에 대하여 신중하게 대처하는 이유도 그 의미를 왜곡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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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리

◈ 성모설지전 (聖母雪地殿)(Beauraing)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당인, 로마의 성 마리아(Santa Maria Maggiore) 대성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있다.
콘 스탄티누스 황제 때인 352년 8월 5일, 로마에 요한이라는 독실한 귀족 신자 부부와 교황 리메리오(352 ~366)의 꿈에 동시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위한 성전을 세울 것을 요청하고 그 징표로 8월 한 더위에, 에스퀄리노 언덕에 하얀 눈을 내리셨고 눈의 성마리아 대성전이 세워 진것이다.
역대 교황들은 이 성전을 개축하고, 성모의 일생을 담은 성화로 실내를 장식,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체워 로마의 4대 성당의 하나로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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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티키아리와 폰타넬레(Montichiari Fontanelle)
이 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 20km 떨어진 조그만 마을 몬티키아리의 간호원 피에리나 질리는 1947년 12월 8일부터 7차례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보았다. 흰베일에 보라빛 옷을 입으신 성모 마리아는 가슴을 큰칼 셋에 찔려 우시는 모습 또는 흰색, 붉은색, 황금색의 장미가 달린 흰옷을 입으신 모습으로 오시어 '신비로운 장미'의 호칭으로 공경받기 바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자루의 칼은 대죄 중에 있는 자, 성소를 버릴 뿐만 아니라 교회와 적이 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상징이며, 세 송이의 장미는 기도와 보속과 희생 정신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해주셨다.
1966년 2월 성모의 발현을 다시 예고받은 피에레나는 몬티키아리의 한 지역인 폰타넬레에서 4월 17일 정오에 마리아를 뵙고, 그곳에 있는 우물에 치유의 능력을 부여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말씀을 들었다. 1968년 부터 1973년까지 '신비로운 장미'이신 마리아는 믿음과 감사, 사랑과 청원의 기도, 보속을 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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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 과달루페 (Guadalupe)
과 달루페의 성모님 발현은 시대적으로 450년이나 앞선 것이다. 1531년 12월 9일 부터 12일까지 동정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으로 개종한지 얼마되지 않은 한 맥시코 원주민후안 디에고에게 발현 하셨다. 아즈텍 인디언 후안이 집에서 약 40리 떨어진 틀라데롤코의 프란치스코의 수도원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다가 맥시코시의 북서 테베작 산에 이르렀을 때 태양 같은 옷을 입은 귀부인이 나타나 한 임무를 맡기셨다.
"나의 자녀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들아. 나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주님이시고, 만사가 그분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참하느님의 어머니, 완전하고 영원한 동정 마리아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사람들을 위한 나의 보호를 드러낼 것이며, 여기에 성전이 세워지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나는 너의 자비스런 어머니, 이 땅에 결합되어 사는 모든 이의 어머니, 온 인류의 어머니, 나를 신뢰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어머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울부짖음과 슬픔을 들을 것이며, 그들을 치료하고 고통을 완화시키겟다. 나의 의향을 수마라가 주교에게 전하라."
후 안이 전하는 귀부인의 원의를 믿기 위한 징표를 청하는 주교에게 성모 마리아는 카스틸라 장미 한 다발을 보냈다. 한 겨울 테체작산 꼭대기에 피어난 장미를 후안은 틸마(망토) 앞자락에 고이 담아 주교와 둘러선 사람들 앞에 펼첬다. 그러자 더욱 확실한 표징이 나타났다. 꽃들이 흘러 내린 틸마에는 발현하신 귀부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과달루페의 영원한 동정 마리아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신 귀부인의 말씀에 따라 테베직 언덕에는 과달루페의 성모 성전이 건립되었다. 인디언語로 과달루페는 "돌 뱀을 쳐부수다"라는 뜻이다. 멕시코에 국경이 없고.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39년 밖에 안 된 시절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로 말미암아 8년 만에 원주민 800만 명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쟁 포로들의 심장을 파내어 전쟁의 신에게 바치던 풍습과 해마다 2만명 이상의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피의 재물로 바치던 우상, 곧 "돌뱀"이 사졌다. 새 하와인 마리아, 뱀의 머리를 짓 밟은 여인(창세, 3.15; 묵시 12.)은 멕시코 및 남북 아메리카의 수호자가 되었고, 이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싼 것이다.

【바티칸=외신종합】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2월 18일 시성에 필요한 기적을 공식 인정 받은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와 파드레 비오 신부, 후안 디에고 등 세 명을 시성하기로 했다고 공식발표했다.
교 황청 시성성 장관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은 "에스크리바 신부(1902~1975)는 오푸스 데이(Opus Dei)의 창설자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평신도의 거룩함을 증진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에 복음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추 기경은 또 파드레 비오 신부(1887~1968)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아들로 겸손한 카푸친회 수사이며 기도와 고해성사에 평생을 헌신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로 성흔을 보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후안 디에고는 1931년 12월 멕시코에서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을 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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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 파리 (Paris)
1830 년 7월 18일 파리의 위드박 (Rue de Bac)에 있는 성 빈첸시오의 애덕자매회의 가타리나 라블레는 잠을 청하던 차에 한 소년의 부름을 들었다. "빨리 성당으로 오세요, 동정 마리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망서리던 가타리나가 성당으로 갔을 때 제대위의 초가 모두 켜저 있었고, 잠시 후 비단 옷 끌리던 소리가 나더니,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나 사제의 의자 위메 좌정하였다. 부인은 가타리나에게 가까이다가오도록 하시고는 말씀 하셨다.
"필요할 때나 고통스러울 때에 이리로 오너라. (왼손으로 감실을 가리키시며) 저곳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단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너는 고통을 당하겠지만 그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다......프랑스에 위기가 닥치고 있구나. 왕권은 무너질 것이고...... 그때 너는 이 제대로 오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제대 앞에서 모두들 위로와 힘과 은총을 풍성히 받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위기는 극에 달할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여길 때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동정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시며 계속하셨다. "십자가는 내동댕이쳐지고 멸시받을 터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다시 여는 것과 같다. 거리는 온통 피바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예언대로 파리는 7월 혁명으로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성 빈첸시오 애덕자매회 본원은 그러한 소요에서 보호되었다. 그 해 11월 27일 오후 5시 30분경 기도하던 가타리나는 소성당 오른편에서 다시 마리아를 뵈었다. 빛나는 흰옷에 베일을 쓰,시고, 작은 지구의를 손에 들고, 뱀에 감긴 지구를 발로 밟고 계신 마리아는, 보석 반지들을 낀 손가락을 통하여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빛을 발하고 계셨다. 모든 시선을 손에 집중하고 있는 가타리나에게 마리아는, "이 빛에는 나에게 간구하는 이들에게 내려줄 은총의 상징이 있다"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이 환시를 이해하게 된 가타리나는 동시에 마리아를 둘러싼 타원형의 빛 가운데,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달아드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를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모습대로 메달을 주조하라. 이 메달은 은총의 메달로서 이것을 지니는 사람은 누구나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이들에게도 은총을 충만히 내릴 것이다."하고 외쳤다. 예수 성심과 성모성심으로 된 메달의 뒷면도 나타났다.
한편, 평소 가타리나를 지도하던 알라델 신부는 전에도 성 빈첸시오의 심장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고 말한 바 있는 가타리나를 의심하여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12월 말 다시 발현하신 동정 마리아의 의향을 간절히 전하는 가타리나의 태도에서 진정 성모님의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신부는, 수도회 총장신부와 주교의 허락하에 메달 주조에 착수하였다. 1832년 6월 30일에 나온 최초의 메달은 이단에 빠진 어느 주교를 임종석에서 회개시키는 기적을 선두로 갖가지 치유를 일으켰다. '기적의 패'는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갔고, 복된 수녀로서 일생을 마친 가타리나 라블레는 194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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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살레트(La Salette)
성 모 마리아는 고원 목장도 찾아가셨다. 그레노블교구 라 살레트에 있는 해발 1800m의 목장에서 1846년 9월 19일 멜라니 갈바(14세)와 막시민 지로드(11세)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공 모양의 물체에서 나와 우물 가의 돌 위에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비통히 우시며 들일을 하면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 거룩한 이름을 불러 함부로 저주하며 대소재를 지키지 않은 죄 때문에 수확이 결딴나고 대기근이 들 것이라 하셨다. 또 7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부모의 품에서 중병으로 죽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보속하게 될 것을 경고하시며, 아이들에게 각각 한 가지의 비밀도 말씀하셨다. 또한 사람들이 회개하면 돌과 바위들이 곡식 더미로 화할 것이고 풍성한 감자 수확을 거두리라는 희망도 아울러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발현은 그후 프랑스 정체가 제3공화정이 되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직자들의 저지 등으로 흐지부지되었다. 단, 그레노블 주교는 1851년 이 발현이 사실임을 인정하였고,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기념 성당을 세웠다. 도시와는 다른 산의 정기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을 위하여 상설 고백소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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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르드(Lourdes)
루 르드는 오트 피레네도의 타르브 평야에서 그치는 산맥의 마지막 기복과 라브당 산의 일곱 계곡의 물이 흐르는 하구에 위치한다. 루르드의 성채는 피레네의 요새였고,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는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8회에 걸쳐 벨라뎃다 수비루(14세)에게 발현 하셨다.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가 친구및 동생과 함께 땔감을 구하러 들로 나가 개울을 건너려고 양말을 벗을 때였다. 아주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부인이 저만치 서 계시는 것이었다. 별 말씀 없이 부인은 아기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결함 그리고 모성의 부드러움을 지닌 채 푸른 띠를 나부끼며 정성스레 합장한 손으로 묵주알을 굴리고 계셨다.
당시 프랑스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물결의 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멀리하고 있었던 터라 발현에 대해 말하는 벨라뎃다는 정부 당국과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발현 장소에 가는 것마저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3월의 발현때 '나는 원죄없는 잉태'라 하심으로써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선포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교의를 확인하신 마리아는 기적의 샘을 솟게 하셨다. 즉 벨라뎃다로 하여금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이 귀한 그 지방의 마사비엘 동굴에 샘을 파게하시고, 그 물로 불치의 병자들을 속속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동정 마리아의 루르드 발현은 1862년 공인되었고, 잡목으로 둘러싸인 벽지의 동굴 속에 '원죄없는 잉태'의 성모상이 1864년 최대의 성황리에 안치되었다. 발현 후 50년 동안 4,000건 이상의 난치병 치유 사실이 보고되었고, 신앙의 기쁨을 찾은 이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1872년부터는 순례자가 더욱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그 수는 연간 200만명을 넘는다. 실로암(요한 9:10)과 베짜타연못 (요한 5:4)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을 마리아는 오늘도 루르드의 샘을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벨라뎃다는 1866년 루르드를 떠나 수녀가 되었으며, 35세를 일기로 1879년 선종하였고 1933년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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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맹(Pont-main)
1871 년 1월 17일 저녁 날씨가 어떤가 보려고 창고에서 문 밖에 내다보던 바베데트(12세)는 위가 넓은관을 쓰고 5각형의 금별들이 수놓인 푸른 옷차림의 부인을 보게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임박으로 프랑스 서부 전체가 공포에 떨 때 성모님은 브르타 마엔 북쪽 풍맹에서 외젠을 비롯한 일곱 어린이들에게만 자신을 보여 주시며, "내 자녀들아, 기도해라. 그러면 단시일 내에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실 것이고, 나의 거룩한 아들이 그 마음을 움직이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한자한자 찍어내어 아이들로 하여금 군중을 위하여 읽게 하셨다. 발현한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배로 커지면서 글자가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모였던 6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발현이 계속되는 동안 삼각별 셋만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 밤 독일군의 진군은 중단되었고, 11일 후인 1월 28일에는 휴전이 조인되었다. 성모님의 보호를 구하며 징집되었던 39명의 풍맹 청년들은 무사히 귀가했다. "항상 기도하라"라는 복음 말씀외에는 한마디도 더 첨부하지 않은 마리아의 메세지가 전해지자, 하루에도 수천 명씩 교회로 몰려왔다. 이 성모 성지는 1872년에 공인되었고, 1900년 성당이 축성되었으며, 성모상이 세워졌다. 그것은 진한 남빛 바탕에 금별이 수놓인 옷차림의 마리아가 슬픔에 잠겨 피범벅의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를 두 손으로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금 내미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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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 녹(Knok>
1845~6 년의 기근으로 2백만 명 이상이 죽어가던 아일랜드는, 1879년 또 한 차례의 기근으로 그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 해 8월 21일 녹 마을의 두소녀와 성당의 가정부는 저녁 7시경 성당 서쪽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상셋이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15명이 모여들었더니, 흰옷을 입은 성모님이 미사를 드리는 사제처럼 손을 든 채 가운데 계시고, 오른편에 손을 합장하고 기도드리는 성 요셉, 왼편에 책을 들고 강론하는 자세의 주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더 왼쪽에는 소박한 제대 위에 커다란 십자가와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놓여 있으며, 그 주위를 광선과 별들, 공중에 떠 있는 천사들의 무리가 에워싼 것을 9시 넘어까지 볼 수 있었다. 이 짧은 발현의 핵심은 주교를 통해 제대와 결합된 마리아, 희생되신 은총의 중재자 어린 양과 함께 곤경에서 보호하시는 아일랜드의 모후 마리아에게 있다. 성모 마리아는 녹에서 특별히 공경받으시며 은혜를 내리고 계신 것이다.

다음은 현지 교민이 보내온 사연을 수정없이 그대로 싣습니다.  1999.12.10
아 릴랜드 서부해얀 지역인 마요(영어: 애란어: County Mayo Contae Maigheo)군에 있는 녹 성모 성지 이야기를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마요군민인데 자주 그 성모성징에 순례갔습니다. 실수 하나 있는데 영어로 녹은 Knock이라고 습니다. 이는 그 마을의 애란어 이름 Cnoc의 영어화입니다. Cnoc이란 언덕이란 뜻입니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신 후에 그 곳의 애란어 이름은 Cnoc Mhuire라고 합니다. 뜻은 마리아의 언덕. 그래서 여러분이 쓰신 Knok이란 말 틀립니다.
함께 나타난 주교는 복음사가 성 요한이었는데 그분의 왼손에 복음서 또는 성서를 들고 있고 왼손은 설교하는듯 올려 있습니다.
무언의 발현이었는데 상징적으로 말한 것은 묵시록과 관련된 메시지입니다.
어 린양의 신부인 교회의 견본이 되시는 마리아와 천상에 영광 안에서 그분과 그분의 외아드님을 관상하고 있는 성인들은 아일랜드인들에게 현세의 고생을 무릅쓰고 마침네 성모님의 기도와 미사 때에 재현되는 어린 양의 수난과 부활 승리의 공로 덕분에 승리하겠다고 약속한다는 메시지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평화와 선 Siochain agus maitheas
황진혁 베르나르디노 형제 An Brathair Bearnairdin O Mo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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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 파티마(Fatima)
파 티마의 성모 발현은 이제까지의 모든 발현보다 세계사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의미심장하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와중이던 1917년 4월 6일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서유럽의 역사에 개입하였고, 동유럽에서는 12월 7일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2의 이데올로기 세력을 계획하여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한편 바티칸에서는 몬시뇰 파젤리(교황비오 12세)의 주교 서품식을 5월13일 거행하고, 그를 독일 대사로 파견하여 평화를 위한 중재를 시도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평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즈음 프리메이슨 단원들은 성 베드로 광장 에서 『사탄이 바티칸을 지배해야 한다. 교황은 사탄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는 깃발과 루치페르가 미카엘 대천사를 내동댕이치는 그림을 나부끼며 창림 200주년 기념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겨한 까닭에 당시 신학생이었던, 1982년 시성된 M.콜베는 <성모의 기사회>를 창설하였던 것이다.
군주정치에서 셰계 혁명을 거쳐 민주정치로 발돋음하던 역사적 전환기 1917년의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성모 마리아는 6번 에 걸쳐 발현하여 세계 평화를 위한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들을 남기셨다. 어린 목동들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와 히야친타(7세)가 점심을 먹고 묵주의 기도를 끝내려 할때 번개가 번쩍 하였다. 폭풍우가 닥칠까 무서워 급히 양떼를 몰고 내려오던 어린 목동들은 좀더 강한 번개가 다시 치는 것을 본 순간 너도밤나무 위에 찬란한 빛을 발하는 여인이 서 계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천국에서 왔으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부인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달 13일 그 발현 장소에 오면 10월에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세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하여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칠 것을 당부하신 부인은 세번째 발현때 『사람들이 나의 요청을 실천한다면 러시아는 회개하고 평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전세계에 악을 행하고 전쟁과 교회에 대한 박해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나의 티없는 성심이 승리라리라. 교황은 러시아를 나에게 봉헌할 것이며, 얼마 동안 세계에는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날 지옥에 대한 환시를 본 세목동들은 전율하였다.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때 성모님은 기념 성당을 지을 것과 죄인의 회개및 용서를 위해 보속할 것을 당부하고 두팔을 펼치고 하늘로 오르셨다. 그 발현을 지켜보려고 모였던 7만 명의 군중은 퍼붓던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태양이 활활 타는 수레바퀴처럼 돌며 색색의 빛줄기를 뿜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는가 했더니, 멈춘 다음 그들을 향하여 떨어지려는 광경에 접하였다. 모두들 겁에 질려 " 주 예수여, 저희들이 여기서 죽게 되었습니다."하고 부르짖자 태양이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난' 하늘의 큰 표징(묵시12장)으로 종말론적 성격을 띠는 이러한 파티마의 발현을 통하여 평화의 모후는 악의 세력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우신 것이다. 세 어린이에게 주신 세 가지 비밀 중 한 가지는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다. 파티마의 성모 메시지는 후세 사람들이 언제나 시대의 조류와 함께 검증하고 돌아볼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세계를 다시 한번 평화의 모후께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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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 보랭(Beauraing)
파 티마의 성모 메시지가 느리게 전파되는 동안 성모 마리아는 벨기에에서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셨다.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까지 보랭의 다섯 어린이들에게 잠깐씩 여러 차례 발현하시고는 '원죄없이 잉태된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인 당신의 성심을 사랑하고 더욱 착한 사람이 될 것, 주님을 위하여 항상 희생을 바치고 기도하기를 그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마지막 발현 때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어둠에 싸인 정원에 불 같은 공을 하늘로 떠올려 찬란한 불꽃으로 폭발하며 쏟아지는 기적을 보이셨다. 그날 저녁부터 보랭은 은총을 내리시는 마리아의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1943년 2월 19일 관할 주교 안드레아 샤르는 이 발현을 사실로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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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뇌(Banneux)
1933 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반뇌에 사는 마리에트(12세)에게 8번 나타나셨다. 당신을 철저히 신뢰할것을 바라시며 루르드처럼 샘터를 지적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반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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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 가라반달(Garabandal)
1961 년 6월 18일 스페인의 산골마을 산 세바스티안 데 가라반달에 성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남의 사과를 몰래 따먹고 놀던 콘치타(12세),롤리(12세),히야친타(12세)와 마리쿠르스(11세)에게 7월 12일 '가르멜산의 성모'가 발현하리라는 예고를 했다. 과연 7월 12일이 되자 흰옷과 파란 망토에 왕관을 쓰고, 오른판에 스카풀라를 두른 귀부인이 처음 천사가 나타났던 카예하에 나타나셨다. 그후 1965년 11월 3일까지 몇 차례 더 발현하여 사람들이 아이들을 통해 드린 물건에 친구하고 돌려 주시기도 하며, 때로는 갓난아기 예수를 안고 오시어 아이들의 팔에 안겨 주시기도 했다. 어느날 롤리와 히야친타가 사람들이 성모님의 목소리나마 듣고 싶어하므로 말씀하시기를 청하고 사람들이 녹음을 시도하자, 성모님은 "아니, 나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셨는데, 그것을 많은 사람이 듣고는 깊은 감명을 받아 진실성을 믿었다. 그러나 곧 녹음을 다시 틀었을 때에는 그 음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 심사 계류중인 이 발현지에서 탈혼 또는 부르심의 무아경 속에서 목격자들이 행진을 하기도 하고, 지상의 어느 감실로부터 미카엘 대천사가 날라온 성체가 아이들의 혀 위에 나타나는 것이 비데오 카메라에 담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발현에 따른 메세지 중 1965년 6월 18일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미카엘 대천사가 전한 것은 아래와 같다.
" 전에는 잔이 채워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넘치고 있다. 많은 추기경, 주교, 사제들이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많은 영혼들을 그리로 데려가고 있다. 성체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느님께서 분노를 거두시게 해야한다....너희는 지금 마지막 경고를 받고 있다.....보다 많은 희생을 바치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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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고슬라비아

◈ 메주고예(Medugorje)
1981 년 6월 24일부터 시작된 이 발현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날 오후 늦게 메주교예의 포드브르산에서 전방 2,3백 야드쯤 되는 지점에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산책하던 미르야나 드래지세빅(16세)과 이빈가 이반코빅이 보았으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실리 만무하다는 농담을 하며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 이빈가, 미르야나, 마리야 파블로빅, 비카 이반코빅, 이반 드래지세빅과 야코브콜로 등 6명의 청소년들이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유고슬라비아 정부 당국의 비상한 관심속에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널리 알려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틀림없는 성모님의 발현이라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제관, 그리제바코산의 십자가 곁, 야고보 성당등 자리를 옮겨가며 발현하시는 성모 마리아는, '기도와 단식'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하시며, 자연법칙을 중지시킬 수도 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동아출판사刊 성서의세계 참조)

종교 개혁자들의 성모 마리아관

종교 개혁자들의 성모 마리아관
1.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 95개조 논제
이 논제는 개신교 형제분이라면 누구나 다 아실 겁니다. 루터의 95개조 논제 중, 제75조를 먼저 소개합니다.
"교황의 면죄증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빠진 생각이다."
또, 루터는 그의 95개조 논제 해설집에서 이 제75조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추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의견들을 견지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는 거룩한 동정녀로부터 용서를 간구해야할 것이다."(Ibid., 231p.)
이처럼 루터는 성모 마리아를 명백하게 하나님의 어머니, 거룩한 동정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마리아의 찬가(The Magnificat) 논문
루터가 이 논문을 완성시킨 것은 1521년 3월 10일로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파문당한 후에 쓰여졌기 때문에 보다 더 루터의 성모관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볼수 있습니다.
루터는 마리아의 찬가 속에서 성모 마리아를 시종일관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으며 동정녀 마리아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마리아의 찬가 서문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중보의 기도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성모께서 몸소 저에게 지혜의 영을 주셔서 당신의 찬가를 유익하 고도 철저하게 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와 함께... . 아멘."(루터 선집 제 3권. 274-275p)
그리고 루터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진지한 공경심을 알 수 있는 문장을 몇 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어머니는 그 들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과 그 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 관해 말한다."(루터 선집 제 3권, 321p.)
" 그래서 그들은 누가 복음 6:21의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는 하나님의 어머니의 위로의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Ibid., 322p.)
"우리에게 굶주림과 가난을 기꺼이 참을 수 있게 해주는 큰 위안의말 중에 하나님의 어머니가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주린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리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Ibid., 325p.)
루터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공경심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마리아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과 헌신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 어떻게 기원을 드려야할 것인가? 아래의 구절을... 이 하나님을 찾으셨으므로 이제부터 영원토록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비나이다."(Ibid., 297--298p.)
"동정녀 마리아는 이 구절을 단순히 그녀에 대한 찬양이 한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이어져서 그녀가 찬양받지 못하는 시대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말하려 한 것이다. 그녀는 이것을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라는 표현에서 보여 주었는데, 다시 말한다면 그녀에 대한 찬미가 그 때부터 시작되어서 모든 세대에 걸쳐 자손의 자손에 이르도록 계속될 것임을 뜻한다."(Ibid., 299p.)
루터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마리아도 역시 아낌없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헤로 돌렸으며 자신의 공적으로 보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녀는 죄가 없었지만, 여하튼 ... 어떤 3류 작가들은 마리아의 이러한 어머니로서의 합당성에 대하여 법석을 떨겠지만 나는 그들보다는 오히려 마리아를 믿기를택한다."(루터 선집 제 3권, 302p.)
루터는 성모 마리아가 죄없는 이였다고 위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21년6월8일에 쓰여진 루터의 다른 작품인 "라토머스를 반박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설사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누구에겐가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할 수 있도록(성모 마리아에게 하셨다고 우리가 믿는 것처럼) 많은 은혜를 주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Ibid., 400p.)
루터는 성모 마리아에게 우리가 중보의 기도를 청할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하지 않으면 안된다."(루터 선집 제3권, 303p.)
성모 마리아를 진실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공경하는 루터는 그의 마리아의 찬가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중재의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애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위해서 이러한 은총을 주시기를 기원하나이다. 아멘."(루터 선집 제3권, 322p.)
그리고 번역이 생략된 루터의 문장을 하나 소개합니다.
"죽음에서... 그녀는 당신이 그녀 자신에게 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녀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는 것을 원한다."
그 는 또 다른 논문에서 창세기 22:18을 해설하면서 "여기에서 다시 하나님의 어머니는 순수한 동정녀임이 증명되고 있다."라고 하고 있으며 그는 여러 교회 회의(니케아, 칼케돈, 에페소 등)의 천주의 성모성 확인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으로 살펴 본 바와 같이 루터는 성모 마리아를 대단히 진지하고 정당하고 경건하게 공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종종 성모께 기도를 중재해 주시길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모가 죄없는 분이라는 주장도 했습니다. 이런 루터의 성모 마리아관은 가톨릭의 그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2. 츠빙글리(Ulrich Zqingli)
츠빙글리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모 마리아에 대한 진지하고 경건한 공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많은 저작을 남겼습니다만, 그 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논문은 9개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말로 번역된 것은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 중 An Exposition of the Faith라는 논문이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개혁 주의 교회의 창시자인 츠빙글리는 이 논문에서 성모 마리아에대한 자신의 태도와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우리가 ... 우리는 하나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의 영예를 빼앗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창조주의 졸업과 권능을 그녀에게 돌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녀 자신은 그러한 경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어머니인 동정녀가 다른 모든 피조물을 위해 더욱 더 높게 찬양받고 그녀가 하나님이신 그녀의 아들에게 더욱더 경건하게 전념한다면.... ."
"그리고 그녀는 ... 동정녀가 데오토코스, 즉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려져야만 하는 것이 내 판단으로는 정당하다는 이유이다."
"축복받은 동정녀와 아브라함과 바울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하늘 나라의 그것은 무슨 종류인 삶인가?"
"당신은 두 사람의 아담을 보게 될 것이다. 구속받은 자(아담)와 구속한 자(예수님), ... 이사야와 그가 예언한 하나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
이 처럼 츠빙글리도 루터와 마찬가지로 성모님을 축복받은 동정녀,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그의 67개조에서 가톨릭의 많은 교리와 신조를 비판하고 있지만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나 신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공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보아 개혁주의의 창시자 츠빙글리도 성모님을 진지하게 공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존 캘빈(John Calvin)
개혁주의 신학의 완성자이자 장로교의 창시자인캘빈은 루터나 츠빙글리 만큼은 아니었지만 성모 마리아를 진지한 태도로 공경했습니다.
캘빈은 마태복음13: 53--58과 마가복음 6: 1--6의 성구를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 우리가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형제들이라는 그 단어는 어떤 친척 관계라도 나타내기 위하여 히브리어 풍에 일치하여 사용된다. 따라서 헬비디우스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때때로 (성경에서) 언급되었기 때문데 마리아가 많은 아들들을 가졌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엄청난 무식함을 드러내었다."(Harmony of the EvangelistsVol. 2, 215p.)
캘빈은 요한복음7:1-8의 주석에서 다시 고대 히브리언들의 언어 습관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라는 그 단어 아래 친척 관계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히브리인들은 모든 사촌 형제들과 다른 친척들을 포함시켰다."(Harmon-y of the Evangelists Vol. 2, 89p.)
이외에도 많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캘빈은 방대한 자신의 기독교 강요 속에서 시종 일관 가톨릭의 교리신조 등을 매섭게 비판하고 있으나 이상하리만치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 히려 캘빈은 " 우리는 거룩한 동정녀를 본받아 곤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묻는 것을 불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기독교 강요 하권, 479p. 생명의 말씀사) 라고 하며 성모님을 거룩한 동정녀라 부릅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캘빈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성모(the holy mother of Chris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92p.)
캘빈은 에페소(431년), 칼케돈(451년) 교회 호의를 거룩한 교회회의들이라면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들은 앞서 말했듯이 모두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로천명한 회의입니다. 제가 알기로 캘빈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능숙했고 교부들의 저서나 기독교사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캘빈이 그 내용을 몰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러나 저는 그 당시 가톨릭 신자들의 성모님에 대한 미신적인 숭배는 솔직히 시인하는 바입니다. 또한 현재도 그런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친 바가 아니고 또 권면하는 바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신자들을 잘 이끌지 못한 책임만은 면하기 어렵다는 것은 시인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천리안 가톨릭 동우회 자료실 번호:291/291

마리아에 대한 오해

마리아에 대한 오해
가톨릭 과 개신교 의 차이점 1순위는?
학자들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마리아를 공경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그 1순위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는 교회론과 성사론적인 관점, 교계 구성에 이르기 까지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대체로 "마리아"하나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해 낸다.
그만큼 마리아 공경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 생활 양식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주위의 개신교인 이나 타종교인이 마리아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의 문제를 놓고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

◑ 실타래 처럼 얽혀 있는 마리아에 대한 오해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 가톨릭은 마리아교?
과거 교리에는 흠숭지례(欽崇之禮), 상경지례(上敬之禮), 공경지례 (恭敬之禮)라는 말로 그리스도와 마리아, 그리고 일반 성인에 대한 예 (禮)를 구분했다.
그리스도께 대한 공경과 단순히 "은총이 가득한 이" (루가 1,28)로서의 마리아에 대한 공경, 그리고 성인에 대한 공경을 "흠숭" "상경" "공경"으로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상경과 공경은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는 구별된다.
하느님이 육화의 도구로 택한 어머니 마리아가 신자들로 부터 "드높여 공경"(상경)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결국 가톨릭은 마리아교가 아니며 마리아는 일반 성인(聖人)중 가장 뛰어난 분으로서 신자들에 의해 공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성모 마리 아가 예수를 낳은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따라서 우리가 마리아 를 존경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 가톨릭 신자들은 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를 전지 전능한 신으로 생각한다는 오해가 생겨났다.
이러한 오해는 요한 복음서 2,1-11까지를 읽으면 쉽게 해결된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요청을 받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행 한다.
이점에서 성모님의 전구는 다른 그 어떤 성인의 전구보다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자주 외는 성모송에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때에 저희 죄인을 위 하여 빌어주소서"라고 되어있다.
결국 마리아에 대한 기도는 "대도"(代禱)다.

◈ 마리아는 동정녀가 아니다?
성서에 예수에게 형제들이 여럿 있었다는 기록을 두고 마리아가 적어도 예수 출산 이후에는 동정녀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성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해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사촌 형제들까지 모두 형제로 호칭했으며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들까 지 형제로 칭하기도 했다.
하느님이 이 땅에 올때 원죄없는 동정녀의 몸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아 모든 성인과 천사를 능가하는 지위를 받은 마리아는 동정녀이며 또한 원죄 에 물듦이 없다는 것이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다.

천주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믿는 교회인가?

천주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믿는 교회인가?
천주교회는 하느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천주교회를 가톨릭교회라고도 하는데 가톨릭이란 '보편적'이란 뜻입니다. 천주교회는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러면 왜 신자들이 성모님을 공경할까요? 성모 마리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십니다. 성모님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따르신 분은 없습니다.

먼저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느님이 선택하셨고, 예수님이 공경한 분이신데 신자들이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의 사진이나 동상을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19, 26-27>

1. 성서 안의 마리아

우리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마리아 자신 때문이라기 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그분의 아들이 세상 모든 것을 바꿔 놓으시기 때문이다. 신약성서가 마리아에 관해서 길게 말하는 것은 아니나,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기본적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던 초대교회 신자들의 관심은 그분의 수난, 죽음, 부활에 있었으나 점차 예수의 생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도 커져 갔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충분한 언급은 신약성서 중에서도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온다. 루가 복음의 앞 머리에 있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는 마리아가 중심인물이다. 또한 우리는 사도행전의 첫 머리에서 마리아가 이층방에서 사도들과 계속 기도하시는 것을 본다. 성 요한도 예수님의 공생활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리아가 아주 뚜렷이 드러나시는 두 장면, 즉 가나와 골고타의 장면으로 꾸민다(요한 2,1-12; 19,25-27).

성 마태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모세의 전통과 약속에 비추어 사색하면서,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채워졌다는 것을 말한다. 성 마태오의 메시지 요점은, 인간 어머니에게서 나신 예수님이 구원의 하느님의 새로운 현존을 백성들에게 가져온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이다.

성 루가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지위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좀더 깊이 보게 한다. 그의 신학적 목표는 예수님을 신적 메시아와 주님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루가 1,26-38)는 성모에 관한 중심 계시이다.

마리아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 혹 '총애를 받은 이'라고 불리운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마리아의 역할이 특유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결과로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고 루가는 알려준다. 주님이 마리아 안에 계시고, 마리아가 총애를 받으시므로, 마리아는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다"(루가 1,42). 성전에서 한 시므온의 예언은 마리아를 메시아의 수난과 이어 주고 있다(루가 2,25-35).

요한 복음은 마리아에 관해서 단지 두 번만, 한 번은 주님의 공생활 시초에, 또 한 번은 십자가 밑에서 말하지만 신앙이 두터운 이 여인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우선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요한 2,4)에서 당신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면서 또 갈바리아의 십자가 위에서도(요한 19,26) 사용하신 '여인'이란 호칭은 예수님의 구속 사명과 마리아의 역할이 독특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복음은 마리아가 제일 처음으로 기적을 요청하였다고 하는 사실(요한 2,1-11)로 보아, 마리아의 신앙이 예수님의 측근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갈바리아의 장면에서 예수님이 당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라고 하신 말씀은 마리아가 모든 신자의 영성적 어머니이심을 상징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2.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마리아에 대한 성서 기록에 맞추어, 사도시대 직후의 신자 들이 믿은 것은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것이었다. 테오토코스(theotokos:'하느님을 낳은 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을 맨 먼저 사용한 사람은 3세기 초 로마에 살았던 성 히뽈리또였다.

그리스도에 관한 전통적 가르침은 말씀이 즉, 성삼위의 제 2위이신 성자로 마리아의 태중에 임신되는 첫 순간부터 육화(肉化)하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임신하여 낳은 여인이 바로 그 사람의 어머니인 것처럼 마리아도 진정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마리아에게서 인간 육체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천상 성부께 영원히 낳음을 받은 것이지만, 강생을 통해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임신하고 낳았다. 그래서 마리아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3.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예수님의 어릴 때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성령의 힘에 의하여 임신되었고, 성령은 인간 아버지의 관여함이 없이 마리아를 '감싸 주었다'는 믿음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마리아에 관한 모든 교리가 그러하듯이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도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은 자라는 그리스도론에 비추어 사색해야 한다.

마리아가 오로지 성령의 힘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임신하였다는 것이 가톨릭 신앙의 교리이다. 교회는 또한 마리아가 동정녀로 남아 있으면서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선포한다.

마리아가 당신 전 생애를 통해서 동정녀로 계셨다는 진리 또한 신앙의 교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대한 한 부분이란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보지 못할 때 마리아의 동정성의 의미도 찾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 교리를 순수한 영성적 상징이나 신화로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대한 역사적 차원을 인식 못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의 영성적 의미를 음미하려고 노력한다. 동정녀로서 하느님을 낳으신 것은 강생을 통해서 하느님이 참으로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을 증언하는 동시에 하느님이 예수님의 아버지시라는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성에는 또한 교회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도 있다. 교회는 동정녀 어머니로서, 말씀과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그리스도 형제 자매를 낳는다고 비유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는 사제나 수도자의 순결의 모범이시다.

4. 원죄 없이 임신되시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로 예정되었으므로, 하느님은 미리 손을 써서 마리아가 말씀의 어머니가 되도록 자격을 갖추게 하셨다. 마리아가 받은 특유한 은총과 특권은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따라서 마리아는 우리 각자가 제한된 한도 내에서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도달해야 할 것을 가장 잘 표시해 준다. 마리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 신앙, 희망, 사랑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신다. 우리의 경우에는 세례의 은총이 우리의 '원죄없는 임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삶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동정녀 모성'에 참여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훌륭한 열매이다"(전례헌장 10,3). 이 가르침은 마리아의 무죄함에 대한 절정적 표현이다. 마리아는 죄 많은 인류에 속하는 아담의 한 후손이므로 의당히 원죄의 죄과를 받았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로 말미암아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다. 교황 비오9세는 마리아의 원죄없는 임신은 계시진리라고, 1854년에 정식으로 정의하고 공포하였다.

타종교의 이해

구세군(Salvation Army)

구세군(Salvation Army)
가) 명칭 및 특성
- 구세군은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부드(W. Booth)가 창설한 국제 규모의 교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전파, 신앙공동체 형성, 빈곤과 악의 타파를 통한 사회개혁을 지향한다.

- 교리는 감리교의 영향을 많이 받긴하였으나 특정한 교파의 교리를 초월하여 있으며, 성서를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 조직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군대식을 채택하고 있다.

나) 연혁
웨 슬리의 감리교회를 거쳐 개혁 감리교회 목사였던 부드는 순회전도를 둘러싸고 교단과 마찰로 1861년 세워진 천막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빈민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화적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빈곤과 죄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빈민가의 모든 문제는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 부드는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빈민가 전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이리하여 후에 구세군 운동이 된 빈민가 전도는 런던 중부 최하류 계층민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뒤 10여년이 지난 1875년 소위 ’기독교 전도회’(the Christian Mission)이라고 불리게 된 그의 전도회는 32개의 지회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드는 교회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이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보다 강력한 전도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복음전파에 있어서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그 호소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고안된 조직이 군대식이었다.

1878년 기독교 전도회는 군대식으로 개편되었고, 2년 뒤에는 명칭도 구세군으로 변경하였다.

1880 년부터 구세군은 해외로 진출하여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구세군은 행정상 영국 런던에 만국본영(萬國本營, International Headquarters)을 두고 각 국가별, 지역별 사령부(Territorial Headquarters)를 두고 있다.

또한 1950년 영적 군대로서의 구세군 병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국사관대학(The Salvation Army International Training Univeraity)을 세웠다.

다) 한국 구세군
빈민구제와 매춘, 음주 등의 사회악 근절을 위해 출발한 구세군이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은 1908년이다.

창설자인 부드 대장에 의해 파견된 윌리암 호가드 정령(正領)은 서울 평동에 ’구세군 대한본영’을 설치하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폐쇄된 해주, 개성 지방본영 및 서울, 충서, 충청, 충북, 경남, 전라 등 6개 본영이 있다. 매월 ’구세공보’를 발행하며, 월 2회 ’뉴스레터’도 발간한다.

산하기관으로는 구세군 사관학교, 기술학교, 신학원, 통신대학, 어린이집, 육아시설, 부녀시설, 양로시설 등 24개소가 있다.

황양주신부

성공회와 앵글로가톨리시즘

성공회와 앵글로가톨리시즘
1. 성공회(Anglican Communion)
가) 명칭
영국 교회를 위시해서 영국 교회의 대표주교인 켄터베리 대주교 관구와 통공관계에 있는 여러 교회를 성공회라고 부른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원래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변된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으로 한국, 일본,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다.

나) 체제
켄 터베리와의 통공관계는 전통적이고 가족적인 유대관계를 뜻하지만, 성공회에 속한 모든 교회가 켄터베리 대주교의 관할권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독립된 관구를 이루지 못한 몇 교회(한국 성공회와 같이)들이 관구외(外) 교구로서 켄터베리의 관할하에 있지만, 나머지 절대다수의 성공회 교회들은 각기 독립된 관구 또는 관구군(群)을 만들어서, 켄터베리를 정신적인 지도자 또는 영적인 대표자로 추대하는 외에는 전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운영해나간다. 실상 주교가 관할하는 교구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공회가 지켜온 가톨릭적 전통의 하나이다. 교구마다, 관구마다, 그리고 여러 교구 또는 여러 관구가 모여서 구성하는 각 나라의 성공회(미국, 중앙 아프리마, 일본)마다 독립된 헌장과 교회법 체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영국 교회의 헌법상 관할자인 영국왕은 물론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다) 교세
근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성공회의 교세가 급격히 커져서, 교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재구성되는 일이 잇달아 정확한 통계를 제시할 수 없지만, 세계 각 지역에 대략 500개의 교구(따라서 같은 수의 교구장 주교)가 있고, 이들은 20여개의 관구와 관구군을 이루며, 각 관구 또는 관구군을 대주교 또는 수좌주교가 관할한다.

라) 주교회의
모든 교구장 주교들이 1878년 이래, 10년마다 한 번씩 모여서 성직, 교리, 예전, 선교 등 성공회 전체에 걸친 공동심사를 토의하는 람베트(Lambeth) 회의가 있고, 대주교나 수좌주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수좌주교회의(Primates Conference)가 있으며, 3년마다 한 번씩 모이는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가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개개 교구나 관구에 대해서 어떤 구속력을 행사할 수 없다.

마) 특징
로 마의 교황청과 같은 통제, 조정기관을 두기를 거부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서로 달리하는 수많은 교회가 성공회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해 오는 거기에서 성공회의 한 교단으로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성공회에는 니체아 신경에 나타난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한 부분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가톨릭 교회와 차별되는 성공회 특유의 교리로서 ’앵글리카니즘’이라고 고집할 어떤 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공회에는 597년 성 아우구스티노가 영국 교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경험, 그리고 영국 교회가 모체가 되어서 세계 도처에 뿌려진 복음의 역사 속에 배태된 성공회적인 태도가 있고, 분위기가 있고 기질이 있고 강조점이 있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성’이라는 전통을 이은 성공회는 밖으로는 다른 종파, 종교와 더불어 우애와 관용으로 공존하고, 성공회 안에 여러 갈래의 신앙태도와 입장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 전통을 강조하는 소위 앵글로 가톨릭(Anglo- Catholics)과 개신교적 경향이 짙은 복음주의파(Evangelicals)의 두 갈래가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같은 다양성(또는 종합성)은 성공회의 한 교구 안에서, 한 관구 안에서, 한 나라의 성공회 안에서 따라서 온 성공회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일 것이다.

바)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
성공회가 지난 19세기 이래 추구해 온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이고 명예로운 것이었다. 동방 정교회와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돈독했고, 로마 가톨릭 교회, 루터교회 등과의 일치를 위한 대화가 끊긴 일이 없으며, 인도에서 이룩된 것 같이 다른 교파와 합쳐서 새로운 연합교회(United Churches)를 형성하는 데 언제나 앞장서 온 것이 성공회이다.

일치를 위한 4가지 요건(성공회가 요구하는 4가지 요건, 1870년 제창)
- 성서를 신앙의 기본으로 삼고

- 사도신경과 니체아 신경을 믿으며,

- 주교, 사제, 부제의 성직제도를 고수하며,

- 성사, 특히 세례와 성체성사를 지킨다는 것

사) 대한 성공회
- 성립 : 1880년 후반에 영국의 외방선교 단체의 사제가 잠시 부산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일이 있지만, 대한 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11월에 코프신부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됨으로써 시작하였다. 한 사람의 한국인 교인도 생기기 전에 주교가 선임되고, 그로써 시작한 대한 성공회의 예는 흥미로운 일이다. 실상 한국인에게 세례가 베풀어진 것은 주교 축성으로부터 7년 후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 업적 : 코프주교 취임 초 수년 동안 선교활동은 다소 부진했다. 그러나 그때 코프 주교의 감독하에 이루어진 두 가지 사업이 있었다.
하나는 인천, 서울 등지에 기도소를 겸한 병원이 세워져서 일반환자들과 고아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던 것이다. 이 사업에는 주교와 그를 보좌하는 소수의 사제들과 소수의 수녀들이 합세했다.
또하나는 후에 정동에 성마리아와 성니콜라 대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신부가 스크랜튼, 언더우드 등 개신교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성서 번역사업에 참여한 일이다.
성 공회의 의료, 복지, 교육사업은 일제 통치, 세계대전, 6.25 등으로 발전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살아있고, 성서번역과 보급에 대한 전통적 관심은 성공회가 성서공회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해온 것으로서 반증된다.
이시기에 이룩한 기념할 만한 사업은 강화읍에 세운 성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의 축성(1900년 11월 15일)이었다. 서구의 바실리카 양식과 불교사찰 양식을 조합해서 세운 이 성당은 한편으로는 초기의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의 기틀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념물이자 강화도의 명소이기도 하다.

- 성격 : 코프 주교는 영국 교회의 가톨릭 전통을 강조하는 선교단체인 U.S.P.G.와 한국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련한 한국 선교회의 지원을 받았으며 약 20명의 사제를 거느렸다. U.S.P.G.와 한국에서 시무한 사제들의 성격으로 해서, 한국 성공회는 교회의 조직, 신앙태도, 예전 등에서 가톨릭적인 경향이 두드러진 교회로 성장해 왔다. 광복 후 특히 6.25 이후 미국. 호주 등 교회와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영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인 사제들로 대부분 대치되고, 한국인 주교가 육성되었으며,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교회를 위시한 세계교회와 선교의 양상이 크게 변천함에 따라서 이와같은 - 때로는 배타적이기까지 했던 - 경향은 보다 다양하고 보다 현실적인 교회생활과 선교활동으로 변모해 왔다.. 그러나 주교제, 성사생활, 공도문에 의한 예전 등 기본적 전통은 그대로 지켜져왔다.

- 정착과 벌전 1900년부터 1945년까지의 약 반세기 동안 성공회는 정착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1940년 이전에 영국이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제의 수와 맞먹는 20여명의 한국인 사제가 나왔다. 그리고 191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서울, 강화, 수원, 천안, 진천 등지에 성당이 서고, 황해도 백천, 연백에까지 교세가 확장했으며, 교우가 5,000명을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인천에는 성미카엘 신학원이 설립되었고, 1926년에는 숙원이었던 정동 대성당의 준공을 보았다.

1930년 일제하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교활동을 추진한 트롤로프 주교가 객사하여 대성당 지하성당에 묻힌 후, 그 뒤를 이은 쿠퍼주교 때에는 북한 지역에서의 사업이 큰 활기를 띠었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영국선교사들이 강제로 한국을 떠났을 때 남한의 성공회 교세보다 북한지역에서의 교세가 더 컸을 정도였다. 선교사들이 비우고 간 성공회는 종전 때까지 일본인 주교의 관할 하에서 최소한의 성사생활을 계속했을 뿐, 선교. 교육. 사회봉사는 붕괴와 침체를 면치 못했다. 종전 후 쿠퍼주교가 다시 돌아와서 교회 재건에 몰두하였으나 그가 사랑하던 북한지역의 교회는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 현황 : 한국 성공회는 1965년에 두 개의 교구(서울과 대전)로 분할되어 최초로 한국인 사제(이천환)를 주교로 축성하여, 서울 교구장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후 1973년에는 대전교구를 대전과 부산 두 교구로 나누어 그 두 교구장에 다시 한국인 주교가 착좌해서 그로부터 한국 성공회는 한국의 교회로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은 최후의 선교사 서울주교 데일리 교구장이다. 그가 교구장으로 부임해서 그 자리를 이천환 주교에게 넘기기까지 10년 동안 (1955-1965년) 한국 성공회는 몇가지 뜻깊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기독교 연합사업(N.C.C.)에의 참여, 지역사회 개발과 기아해방운동 전개, 평신도 교육과 자급 사제직의 시도, 산업선교의 도입, 성미카엘 신학원 재개,확충 등이 그것이다.

1965년 이후의 성공회의 역사는 이와같은 기본적인 선교정책을 변천하는 한국과 세계의 상황에 맞추어서 전개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 행정조직 : 한편 교회행정조직이 정비되어 각 교구장 산하에 교무국이 설치되고, 83년 1월부터 세 교구를 망라한 전국의회의 산하에 교무원이 설치되어, 세 교구의 균형있고 효율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기구를 갖추었다.

성 공회의 최소단위는 전도구이며, 전도구에는 영성체자들이 선출하는 교회의원으로 구성되는 교회위원회가 있고, 각 전도구의 사제와 교회위원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교구의회, 그리고 세 교구의 교구장과 교구의회가 선출하는 사제와 평신도들이 구성하는 전국의회가 있다. 교구의회와 전국의회는 대한 성공회의 헌장이 구정하는 바에 따른 교회의 최고 입법기관이다. 이와같은 의회제도는 세계의 모든 성공회의 공통적 관습이며, 의회에서의 의결에는 주교, 사제, 평신도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고 어느 누구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 사업 : 대한 성공회는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천신신학교(성미카엘 신학원의 후신)를, 정박아 교육기관으로서 성베드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선교사업을 돕고 독자적인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하는 성가수녀회가 있다.

2. 앵글로 가톨리시즘(Anglo-Catholicism)

가) 개념
일 반적으로 영국 국교회 및 성공회 안의 고교회주의(高敎會主義)를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1838년 이래 일반에 쓰이게 되었다. 18세기 이래로 영국의 복음주의가 개인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과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 등으로 인해 19세기 초기의 영국 국교회에서는 교회관념이 희박해졌으며, 교회를 경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 경향에 대한 고교회측에서의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옥스포드 운동(1833년)이고, 그 신학적 입장이 앵글로 가톨릭시즘이라 불리게 되었다.

나) 사상 개요
-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교회의 신적 권위에 대해 국가도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개인은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

- 교회는 본래적으로 유일하게 성스러운 가톨릭 교회이다. 초기 5세기동안의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이상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며, 영국 국교회는 그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사도 전승의 성직, 성사, 교의, 실천을 전달하는 하나의 지체이다(이른바 분지론 分枝論, branch theory).

- 로마교회와 동방교회는 모두 진정한 가톨릭 교회의 가지(枝)이므로 올바른 교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 예배에서의 의식적 요소의 존중, 기도서를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공도의 질서회복, 예배음악, 건축장비의 면에서도 고대의 것을 존중하고자 노력하여 의식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단순한 외형의 존중은 본래의 취지가 아니다.

황양주신부

정교회(正敎會, Ecclesia orthodoxa)

정교회(正敎會, Ecclesia orthodoxa)
가) 명칭 및 구성
동방교회, 정교회, 하리스트 정교회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교회들의 총칭이며, 이들 정교회는 고대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4개의 총주교 관구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가지며, 부분적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다.

동방교회, 서방교회라는 명칭은 고대교회에서는 지리적 의미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역사적 유래에 의하여 호칭된다.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당시의 로마제국 동부지역인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이스 반도, 에집트 등지로 전파되었고, 로마제국의 국경을 넘어 갈데아 지방과 아르메니아 등지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기원후 400년경에는 제국의 동부지역에 약 1천만 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있었는에 이들을 동방교회라고 하였다.

나) 분포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퍼져있으며, 그리스도의 단성론(單性論)을 신봉하는 콥트교회, 아비시니아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야곱파 교회, 남인도의 말라바르 교회, 한때 페르시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던 네스토리우스파(景敎)도 모두 동방 정교회의 이단이다. 이들 교회의 신자는 통틀어 3억명 정도이다.

다) 동방교회의 체제
- 중심권위 : 다양한 동방교회 전체를 통괄하는 중심권위는 없다. 각 의식별로 총주교, 대주교, 주교의 계통 이 있지만, 같은 의식 안에도 여러 총주교좌가 있어서 서로 독립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 국민 교회의 최고 의결기관 : 자치적인 국민교회의 최고 의결기관은 시노두스 또는 전국 공의회이며, 이 회의에는 평신도도 참석하고 있다. 동방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세계공의회를 최고 권위로 인정하지만 그런 공의회는 역사상 한 번도 개최된 일이 없다.

- 국가와의 관계 : 동방의 여러 교회들은 로마시대부터 국가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았으며, 오늘의 공산체제 안에서도 변함이 없다.

라) 동방교회의 역사
정 교회는 5-6세기경 그리스도의 위격을 둘러싸고 동.서교회가 대립하면서 형성되었다. 동서교회는 1054년에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풀의 총대주교가 서로 파문하면서 결정적으로 분열되었고, 그 뒤 서로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분열의 폭은 더욱 깊어졌다.

콘스탄티노풀 총주교좌 : 그리스도교는 1세기 중엽에 제국의 수도 로마에 전해졌고, 거기서 제국의 서부 즉 서유럽에 전파되었으며, 400년 경에는 약 500만 명의 신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서방교회라고 하였다. 이 서방교회에서는 로마가 유일한 종교, 문화, 정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로마교회의 교리신학, 전례, 법제, 관습 등이 서방교회 전체에 확산되어서 서방교회는 외형적으로 상당히 통일된 단일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방에는 로마 시대 이전부터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소아시아의 에페소, 그리이스의 아테네 등 정치, 문화, 교역, 학문의 중심지들이 여러군데 있었으므로 동방에 전파된 그리스도교도 자연히 이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 개의 그룹이 형성되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는 그 신자수와 신학적 권위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의 수도 로마를 교황에게 넘기고 자기는 동방의 비잔틴(콘스탄티노풀)으로 옮긴 뒤(330년)부터 비잔틴은 황제의 후광을 업고 영향력을 증대하여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를 능가하는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381년 제 1차 콘스탄티노풀 공의회에서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과 함께 콘스탄티노풀도 총주교좌로 공인되었다. 각 총주교좌는 그 주변의 교회들을 지휘하여 거의 자립적인 구역을 형성하였으므로 각 구역은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발전시켰다.

- 5세기 : 콘스탄티노풀의 총주교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신격과 인격의 두가지 위격이 있다는 설을 주장하다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단죄되고 추방되었다.

그 뒤 로마교회와 비잔틴 교회는 사소한 분쟁을 계속하면서도 신앙의 일치를 계속하였지만, 라틴어와 그리이스어의 차이, 관습과 제도의 차이, 니체아-콘스탄티노풀 신경의 해석 차이, 그리고 비잔틴 총주교들이 로마 교황과의 동등권을 주장하는 야심 등으로 인해서 양 교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 9세기 : 포시우스 총주교는 한 때(864-868년) 로마와 분리되었다가 다시 화해하였다. : 미카엘 체룰라리우스 총주교는 콘스탄티노풀의 라틴계 교회와 수도원을 폐쇄하고, 라틴교회가 누룩없는 빵을 사용하고, 사제의 독신제를 고집하며 신경에 필리오꿰(Filioque)를 삽입하였다고 맹렬히 공격하였다.

: 성 레오 9세 교황은 동방교회에 특사를 보내어 담판하였으나 결렬되었다. 교황의 사절 훔베르트 추기경은 체룰라리우스에게 파문을 선고하였으며, 체룰라리우스도 로마 교황(그때 교황좌는 성 레오 9세의 사망으로 공석중이었음)을 파문함(1054년)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결정적으로 분열되었다.

그 뒤에 루마니아, 조지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러시아 등의 교회들이 속속 로마에서 이탈하였다.

- 1204-1261년 : 동로마 제국이 점점 쇠약해져서 이슬람 교도가 제국의 아시아 지역과 북아프리카를 석권 하여 성지를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므로 서방교회는 십자군을 일으켜 여러번 동방에 원정하였고, 한때는 거거에 라틴제국(1204-1261년)과 라틴전례 총주교좌를 설치하였다.

- 리옹 공의회(1274-1284년)와 플로렌스 공의회(1439년) : 양 교회의 일치를 결의하였지만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호응이 없어서 무위로 끝났다.

- 1453년 : 터키제국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풀이 점령됨으로써 동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러시아 교회는 콘스탄티노풀 총주교의 지배에서 독립하였다.

- 16세기 :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대하여 동방교회는 완강히 반대하였으며, 우크라이나 교회의 중요한 일부가 가톨릭과 합일하였다.

- 17세기 : 루마니아 교회의 일부가 가톨릭화 하였다.

- 18세기 : 시리아 전례의 멜키트 교회가 가톨릭으로 복귀하였다.

- 19세기 :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의 교회들이 독립된 국민교회가 되었고, 제 1차 세계대전으로 터어키가 유럽에서 축출되면서 비잔틴 총주교의 실질적 권한은 이스탐불 근처의 교구들에 국한되었다.

마) 각 정교회의 성립
동 방정교회의 중핵은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이스 정교회이다. 이들 정교회들은 둘 다 콘스탄티노풀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에 시작된 러시아 교회는 모스크바 대주교를 독립시켜 총주교로 삼았다(1589년) 1917년 러시아 혁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정교회의 신학과 전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 그리이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
그리이스 지방에 처음 복음이 전해진 것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이다. 당시 그리이스 지방은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중부 그리이스 지방이 마케도니아에 통합되었고, 지방구로 설정되어 콘스탄티노풀의 재치권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콘스탄티노풀 분열(486-516년) 때 로마교회에서 분리되었고, 성화상 논쟁(725-842년) 때는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1054 년을 기하여 그리이스 정교회는 서방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리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에는 그리이스 정교회도 터키인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발칸제국은 독립을 얻었고, 그리이스 독립전쟁(1821-1827년)에서 승리하여 독립하였다. 1833년 그리이스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풀 총주교에게서 분리, 독립을 선언했고, 총주교도 결국 승인을 하였다.(1850년) 그리고 1852년 그리이스 국회는 그리이스 정교회를 국교로 정했고, 아테네 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주교회의(Holy Synod)를 설치하였다.

*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9 세기경 키에프 주민들이 콘스탄티노풀과 접촉하면서 복음이 전해진 러시아에는 공주 올가(Olga)의 입교(957년), 그의 손자 블라디미르 1세와 동로마 황제 바실리오 1세의 딸 안나의 결혼으로 전도가 활발하였다. 13세기에 타타르인이 러시아에 침입하게 되자 러시아인들은 동북부로 이주하였고, 교회의 중심도 키에프에서 모스크바로 넘겨졌다.(1328년) 그리고 모스크바의 주교 욥이 콘스탄티노풀의 총주교로부터 총주교의 칭호를 부여받은 뒤부터 모스크바는 소위 제 3의 로마로서 당시 터키인의 지배 아래 있던 콘스탄티노풀을 대신하여 정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피요트르 대제 때는 총대주교 제도를 폐지하고(1700년), 12인의 위원을 두어 주교회의를 관장케하여 교회를 국가의 지배아래 두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제도들은 러시아 혁명 때까지 존속하였다.

혁 명후 2차 대전 시작(1941년)까지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마르크스 유물론과 반종교정책으로 교회가 짜르 체제를 지탱한 점을 신랄하게 공격, 탄압하였다. 교회재산은 몰수되었고, 성직자는 투옥, 처형당하였다. 1929년 이후 정부는 조직적인 반종교투쟁을 감행하였고, 1941년 대독일전쟁 개시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쟁은 반종교정책을 완화시켰다. 반종교선전이 중지되고 1943년에는 주교회의 개최가 허락되었다. 뒤퐁이 죽은 뒤(1924년) 공석으로 남아있던 총주교좌에 세리카가 선임되었다. 이후 교회는 서서히 힘을 회복하였교 성직자 교육과 신학연구를 위한 신학교와 대학을 설립하였다.

이후 동서 냉전이 강화됨에 따라 정부의 대종교정책도 강화되었지만 신자의 공직취임 금지조치 이외에는 겅책에 반대하지 않는 한 상당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해외 선교사업에 현저한 업적을 남겼고, 1961년 뉴델리의 세계 교회회의를 통해 WCC에도 가입하였다.

* 루마니아 정교회 ( Rumanian orthodox church)
1856 년 공국(公國)이 된 루마니아는 25년 뒤에 독립왕국이 되었다. 최초의 왕자 코사는 교회를 독립시키기로하여 국회의 동조를 구했고, 그에 따른 법률도 통과되었다. 1885년 콘스탄티노풀 총주교 요아킴 4세는 정식으로 루마니아 교회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1차 대전 후 영토와 국민이 증대하면서 교회의 지위도 강화되어 1925년에는 총주교좌가 설치되었다.

* 불가리아 정교회(Bulgarian orthodox church)
1204년에서 1393년까지 불가리아 교회는 독립된 주교좌를 갖고 있었지만, 터키인의 침략 이후 투르크 제국이 멸망할 때(1393-1856년)까지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의 지배아래 있었다.

1860 년에 주교 힐라리온이 교회이 독립을 선언하였지만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가 이를 민족적인 이단이라하여 반대했고, 다시 총대주교 안티모스 6세는 불가리아 정교회를 파문하였다. 그 뒤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배려로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가 파문을 풀면서 양교회의 관계는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 세르비아 정교회(Serbian orthodox church)
1219년 성 사바(Saba)에 이해 독립 주교좌가 되었고, 1346년 총주교좌 교회로 승격되었다. 1389년 이후 약 5세기간 터키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교회도 독립을 잃고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의 재치권 아래 있었다. 1876년 국가가 완전 독립하면서 교회도 1879년 자치를 회복하였다.

* 알바니아 정교회(Albanian orthodox church)
1912년 터키로부터 독립한 뒤 교회는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을 폈다.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추진된 이 투쟁은 1908년부터 사제 놀리(Noli)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20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회교인으로서 뒷날 국왕이 된 조구(zogu)의 침입을 받아 놀리는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1937년에야 알바니아 정교회가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로부터 정식교회로 인정되었다.

* 그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 정교회(1951년), 폴란드 정교회(1925년) 등의 교회가 설립되었고,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헝가리, 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 등에도 동방정교회 신자들이 살고 있다.

바) 가톨릭과의 관계
가 톨릭과 정교회 사이는 15세기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러나 20세기의 화해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도되었다. 500년만인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의 올리브산에서 만났다. 양측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 기간 동안 정교회측의 옵저버가 참관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하기도 했으며, 1964년 제 3차 정교회회의에 모인 14개 정교회 대표들은 로마와 교회일치적인 입장에서 계속 대화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가톨릭에서는 동방교회에 관한 문제를 관할하는 성(부서)을 1917년 독립시켜 동방교회성성( Congregation for Oriental Church)이라 명명하고 있다.

사) 현재의 상태
동방교회들의 현재상태는 그 대부분이 공산진영에 속하기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기도 힘에 겨운 형편이다. 대체로 동방의 여러 교회들은 각 교회가 추종하고 있는 의식에 따라 크게 5그룹으로 분류된다.

ㄱ) 비잔틴 의식에 속하는 정교회 : 이스탐불을 위시하여 그리이스, 루마니아, 조지아, 알바니아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신자수는 1억 2천만명에서 1억 7천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ㄴ) 칼체돈 공의회를 거부하고 분리된 아르메니아 의식의 교회 : 소련령 아르메니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함하여 370만명으로 추산한다.

ㄷ) 기타 : 서부 시리아 의식의 신자는 약 70만명, 동부 시리아(갈대아)의식의 신자는 17만명, 콥트 의식의 신자 약 130만명 등으로 추산한다.

그 리고 동방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여러 가지 기회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재일치를 이룬 동방 가톨릭교회들의 신자도 약 1천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그들의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리상으로 로마 교회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동방교회들이 항상 경계하는 대상이 되어서, 객관적으로 보면 교회일치 운동에 있어서 좋은 위치에 있기도 하다.

아) 한국 정교회
한 국의 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 정교회의 암브로시 신부에 의해 시작되었다. 암브로시 신부에 의해 주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시작된 선교는 1900년 황제 고종으로부터 정동의 땅 1,000평을 하사받아 성 니콜라이 성당을 건립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2대 신부로 온 스케초프스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상당수의 신자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6년 노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전과 이에 따른 원조의 중단, 1917년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혁명과 이에 따른 선교활동의 중단 등으로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이 크게 위축된 데다가, 1945년 이후 정교회를 주관하던 볼리카르프신부와 김의환 신부가 추방되거나 납북됨으로써 교회는 거의 문을 닫다시피 하였다. 1950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였던 그리이스군 군목들의 주선으로 1956년 소속이 그리이스 전교회 산하로 옮겨졌고, 1966년 성당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으로 옮겼다.

자) 동방교회의 특징 / 교리와 신앙생활
동방교 회들 중에서 가톨릭과 일치한 교회는 전례와 관습만 다르고 교리는 가톨릭과 같다. 정교회는 교회의 초기 7번의 공의회를 가톨릭과 함께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인 성삼론과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표현이나 설명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몇가지 교리와 실천상에 차이가 있다.

- 계시(성서와 성전) : 하느님의 계시는 성서와 성전을 통하여 전달된다고 인정하지만, 러시아 교회는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서 구약성서의 제 2정경을 성경이 아니라고 한다.

- 성령론 : 콘스탄티노풀의 성령론 해석에 있어서 가톨릭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발하신다고 해석하는데, 정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발하신다고 해석한다.

- 성모께 대한 신심 : 성모께 대한 신심은 두터우면서도 성모 무염시태 교리는 배척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성모는 모태에서 성화되지 않았고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서 성화되었다 한다.

-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 :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는 하지만 사후에 보속을 하는 연옥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동방교회에서도 죄의 사면장을 발행하지만, 죄의 사면으로 벌도 사면된다고 하면서 가톨릭의 은사교리를 배척한다.

- 교황의 수위권 : 교황의 명예상 수위권은 인정하나 통치권적 수위권을 배척하고, 교황의 특별 교도권의 무류성을 부인한다.

- 신심생활
- 전례 : 미사와 성무일도에 집중되어 있고 대단히 장엄하고 복잡하다.

- 세례 : 세례를 받은 자라야 타인에게 세례를 줄 수 있고(실제는 사제와 부제), 긴급한 경우 외에는 세 번 물에 잠그는 침수식으로 거행한다.

- 견진성사 : 견진은 여러번 받을 수 있다.

- 미사 : 반드시 누룩으로 발효시킨 빵을 사용하며, 평신자도 빵과 포도주를 받아서 영성체 한다. 일반 신자들은 성탄축일, 부활축일, 베드로.바오로 축일, 성모승천축일에 영성체하며, 영성체하기 며칠 전 부터 단식을 하기도 한다. 신심은 깊으나 교리적으로 너무나 무지한 것이 큰 문제이다.

- 병자성사 : 건강한 사람도 받을 수 있다.

- 혼인 : 양 당사자의 동의로써가 아니고 사제의 축복으로 성사가 된다.

- 신품 : 특별한 관면이 없으며 다른 교파의 주교에게서 받은 신품은 무효로 본다. 수도자가 아닌 재속 성직자는 신품받기 전에 결혼할 수 있으며, 1923년 이후로는 홀아비가 된 부제나 신부는 재혼할 수도 있다.

- 전례시기 : 예수부활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고, 성탄축일은 1월 6일(공현축일)에 지낸다.

- 신심 : 성모와 성인과 그들의 성화공경이 활발하고 순례행사를 즐기며, 수도생활을 매우 높이 존경한다.

- 신학과 전례 : 신비주의적인 색체가 농후하며 교회가 각 국민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전례와 성서는 일찍부터 각국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민문학이 발흥하였다.

- 성직자 : 성직자는 수도지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하며, 성직은 사도전승에 따라 주교, 사제, 부제등을 두는 고대의 성직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 성찬의 전례 :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색이다. 주로 성 크리소스토모의 전례를 사용하지만 1년중 10번은 성 바실리오 전례를, 한 번은 성 야곱 전례를 사용한다.

- 신심 : 교회 신심생활의 중심은 삼위일체의 예배이고, 여기에 성모와 여러 성인에 대한 공경이 첨가된다.

황양주신부

침례교 (Baptist Church)

침례교 (Baptist Church)
가) 형성
성인 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의 여러교파를 지칭하는 말이다. 침례교는 17세기 초 영국의 스미스(1552-1612년)에 의해 시작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스미스는 그의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영국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아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하였는데, 그곳에서 메노나이트(Mennonite)의 영향을 받고 유아세례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스미스의 영향을 받아 유럽과 미국 등지에 많은 침례교회들이 생겨났다.

나) 분파
침례교에는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 일반 침례파(General Baptist), 이에 반대하여 선택된 소수만이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 특수 침례파( Particulr Baptist), 신앙에 의해 극단적인 치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파(Liberalist), 성서의 자구적 해석을 주장하는 근본주의파(Fundamentalist) 등이 있다.

다) 기독교 한국 침례회 연혁
- 대한 기독교회 : 188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독립선교사로 파송된 말콤 펜윅이 내한하였다. 한국에 온 그는 서울, 솔내, 원산 등지로 전전하다가 1893년에 캐나다로 귀국하여 3년간 체류하였다. 이때 미국 북침례교회의 목사이며 부흥전도사인 고돈 목사와 교분을 갖게 되었으며, 침례교의 신앙이 성서적이며 복음적이라 확신하고 침례교 신앙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캐나다에 체류하는 동안 1894년 한국 순회 선교회를 조직하였다. 1896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펜윅은 원산에 자리잡고 선교사업을 계속했다.
1901 년 재정난으로 한국에서 철수한 엘라 씽 기념 선교회(The Ella Thing Memorial Mission)의 충남 공주, 강경 지방의 사업을 인수하여 자신의 한국순회 선교회와 병합하였다. 그후 문서 전도자들을 각처에 파송하여 사업을 확장하다가 교회수가 31개로 늘어나자 교단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906년에 충남 강경에서 교단대회를 소집하고 46개조의 교규와 더불어 대한 기독교회를 조직하였다.
대한 기독교회의 조직구조는 감목정치치리에 의한 중앙집권적 권위체제였다. 전교인들은 감목인 펜윅 선교사를 필두로 한 하나의 교회로 조직되어 감목의 지도 아래 있었다. 모든 직분은 감목에 의하여 임명되고 각 지역으로 파송되었다. 어떠한 특정교단적 색체의 성향은 전혀 배제되었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신약성서적 회중의 개념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 동아기독교회: 1921년 교단 명칭을 대한 기독교회에서 ’동아기독교회’라 변경했다. 이는 일제가 ’대한’이란 명칭을 이 땅에서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대한’의 명칭을 사용치 못하게 강압하여 취해진 조처였다.

- 동아기독대 : 1933년 펜윅 선교사에 의해 교단 명칭을 ’동아기독대’라 변경하였다. 당시 교회는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날로 속화하여 가고 기독교 이외에도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므로 교회의 성별(聖別)을 강조하는 뜻에서 ’회’ 대신에 양무리를 뜻하는 ’대(隊)’로 변경하였다.

- 동아기독교 : 1940년에 ’대’라는 명칭이 군대를 뜻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당국의 주목을 받는다하여 ’대’ 대신에 다시 ’교’로 바꾸어 동아기독교로 변경했다.

- 교회해산 : 1944년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했다. 동아기독교의 교인들은 황궁요배를 거절하고 신사참배를 거역한다고 하여 33인의 목회자를 투옥했으며 교회재산을 몰수하여 국방기금으로 헌납하고 동아기독교를 강제 해체시켰다.

- 대한기독교 침례회총회: 1946년 남한에 남아있던 소수의 교단 지도자들은 교단 재건을 위하여 충남 칠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9월 강경에서 다시 대회를 소집하고(36차) 교단조직을 총회제로 바꾸었다.
위적인 중앙집권적인 감목체제를 회중적인 장로회 행정체제로 변경하고 교단 명칭도 다시 ’대한 기독교회'로 바꾸었다.
임 원의 명칭도 감목을 총회장으로, 감노는 장로로, 통장은 권사로, 총장과 반장은 각기 집사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북한과 만주, 시베리아 지역의 교세를 상실한 교단은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947년 미국의 선교기관과의 제휴를 모색하게 되었다.
1949 년 교단 지도자들의 요청으로 강경 총회에 미국 남침례회 외국 선교부의 동양 총무인 베이커 코우덴박사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코우덴 박사는 대한 기독교회의 형편과 신앙행습이 미국 남침례회와 유사함을 확인하고 협조를 확언했다. 이 총회에서 대한기독교회는 교단의 명칭을 대한기독교 침례회 총회로 변경했다. 이것은 교회의 성례로서 지금까지 침례의식을 행하여 온 대한기독교회가 한국에 있어서 그들의 교단색체를 처음으로 ’침례교단’으로 천명하는 침례교단 조직의 역사적 시발이었다. 이 강경 총회에서 ’대한 기독교 침례회총회’와 미국 남침례회 외국선교부 간에 이루어진 역사적 제휴는 1950년에 최초의 선교사로 에버나디 부부를 한국에 파송함으로써 한국에 있어서 본격적인 침례교 선교사업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부터 한국 침례회 총회와 교단체제와 교회 행정체제는 미국 남침례 교회의 행정체제 및 신앙원리에 따라 점차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 교단 분열(1959- 1968년) : 1960년대 한국 침례교단은 발전을 위한 여러 시련을 거쳤다.
대 거 유입된 타교단 교역자들의 신앙행습문제, 교역자들의 안수문제, 정치적 파당문제, 및 선교부와 한국 총회간의 갈등 등은 불행하게도 1959년부터 68년에 이르는 10년간의 교단 분열을 가져왔다. 이 분열은 침례교의 투철한 신앙원리의 실천을 강조하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대전 총회파와 옛날의 펜윅 선교사의 동아기독교 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포항총회파 간의 분열이었다.

- 기독교 한국 침례회 연맹 총회(1968-현재) : 양파로 갈라졌던 교단은 1968년 다시 통합하였다.
분 열기간에 배태되었던 교단 안의 여러 가지 불건전한 요인들은 제거되고 신앙행습과 교리행정에 있어서 시행착오의 경험과 반성은 70년대 교단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 침례교 신학대학에서 젊은 목회자들이 배출되고 선교부, 침례회 출판사, 침례회 방송부, 침례병원, 교회 진흥원 등의 기관들을 통하여 한국 침례회 연맹총회는 70년대에 교단의식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인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라) 조직 및 교리
조직은 조합교회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특별히 규정된 신앙선언은 없다.
다만 근본주의자들이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원죄, 구원의 필요성,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천국과 지옥이 영원하다는 것, 성서가 신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 성서가 신앙과 행동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것 등을 믿는다.

교리면에서 침례교는 가시적인 교회를 신앙으로 가지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하며,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법에 의해 통치되며, 그리스도에 의해 보장된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회의 일원이 도기 위해서 신앙과 세례가 요구된다.

마) 종교의식
침례교는 세례와 주의만찬 이 두가지 의식을 인정하고 있지만 성사는 아니다.
세례는 죄를 사하는 성사라기보다는 교회의 일원이 되는 의식이라 할 수 있고, 주의만찬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할 뿐이다.
또한 목사는 신자들에 의해 선출된다.

황양주신부

여호아의 증인

여호아의 증인
1) 개관(槪觀)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은 한국에서 발생된 신흥종교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유입된 그리스도계 신흥종교 가운데 가장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종종 큰 논란과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 활동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이들은 기성 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서를 독특하게 해석하면서 집요하게 접근한다. 따라서 기성 교회 신자들과의 대립과 충돌 또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정치체제와 정치권력의 거부, 병역 의무와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수혈 거부, 특정 직업에 대한 포기 권고, 시한부 말세론, 가정·직장 및 학교 생활의 포기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공식 명칭은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이다.
그 러나 일반적으로는 여호와의 증인, 또는 "파수대"의 단어인 "워치 타워"라고 불린다. 여호와의 증인이 란 명칭은 1931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출원은 이사야 43,10의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라는 구절이라고 한다.

2) 창시자와 연혁

가) 창시자
여 호와의 증인의 창시자는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7세 때 어떤 사람을 만나 성경 토론을 하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지옥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안식교 지도자의 저서와 안식교 출신 신자들의 성경 해석에서 큰 영향을 받아 예수의 재림 문제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4세기의 이단자 아리우스( Arius )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것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의 교리 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럿셀은 1870년 10대의 어린 나이로 정식 신학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공부반을 조직하였는데, 그 성경 공부반의 회원들은 그를 목사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들을 중심으로 1872년 여호와의 증인의 전신인 ’미국 성서 연구회’를 창립하였다.
이 단체는 1884년 ’시온의 파수대 소책자 협회’(Zion’s Watch Tower Tract Society)란 명칭으로 펜실베니아주에 단체 등록을 하였다. 럿셀은 1876년 ’주님 재림의 목적과 방법’이라는 소책자에서 "예수는 1874년에 재림하였지만, 그의 재림은 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인 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말세의 시간 또한 임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879년 자신의 독특한 성경 해석 방법을 실은 ’시온의 파수대’라는 잡지를 발간하였고, 1886년에는 ’천년 왕국의 여명’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행하였다. 이 책은 후에 ’성경 연구’라는 책으로 개정되었다.
한편 럿셀은 1914년에 발행한 세계 제1차 대전을 보고 "세계는 1914년으로 끝난다. 그 때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가 144,000명에 이르게 된다면 세속적인 정부와 일반 교회들은 불과 유황 속에 던져지고(요한 묵시록 7장의 144,000을 여호와 증인의 숫자라고 해석함, 14,10의 심판을 여기서 언급), 우리 여호와 증인들은 세계를 통치하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이 예언은 적중되지 않았다. 또한 이시기를 전후하여 럿셀과 여호와 증인 교단은 몇 가지 어려움을 맞고 있었다. 그 하나는 소위 ’기적의 밀’(Miracle Wheat) 사건이었다. 즉 럿셀이 축복한 밀은 다른 종자보다 5배나 성장하여 결실을 맺는다고 하여 1파운드당 1달러 씩을 받고 팔았는데 이 사실을 보도한 신문사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하여 패소하였다. 또 다른 사건은 럿셀이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쓴 침례교 목사를 상대로 고소한 사건인데, 이 재판 과정에서 럿셀이 희랍어를 모른다는 것과 목사 안수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럿셀의 부인이 럿셀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혼 사유는 럿셀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지배적인 태도 그리고 럿셀과 다른 여자 신도들간의 추문 때문이었다.
말세론의 不適中과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은 큰 피해를 입기 시작하였다. 많은 신자들이 교단을 이탈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성 교회로부터의 비난 또한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던 중 럿셀은 1916년 캘리포니아 전도 활동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열차 내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나) 연혁
 럿셀이 사망한 몇 달 후, 협회의 고문이었던 루터포드(Joseph Franklin Rutherford, 1869-1942)가 교단을 계승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이란 이름이 채택된 것은 그의 지도하에서였다. 그는 교단 본부를 뉴욕의 부툭클린으로 옮기고 모든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신정(神政)정치적 통치를 지향했다. 루터포드는 럿셀을 주장을 수정함으로써 교단이 맞는 위기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우선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144,000명에 이르게 되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주장을 요한 복음 10,16을 인용하면서 여호와의 증인 교단에는 144,0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다른 양’(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는 구절에 따라)들도 있다고 수정하였다. 또한 럿셀이 말세의 시기를 1914년으로 정한 것에 대해, 1914년은 말세의 시작이 아니라 끝 날의 시작이라고 수정하였고 예수 재림 시기를 1914년에서 1975년으로 수정하면서, 예수는 재림 후 1918년 자신의 궁궐(말라3,1)에 들어가 하늘 정부를 세우고 자신들의 교리를 믿지 않는 이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말세의 시간을 1825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불발로 끝나자 다시 1975년 10월 1일이라고 재 수정하였다.
루터포드 사망 후, 여호와의 증인은 노어(Nathan Homar Knorr)에 의해 주도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이 비교적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노어의 공헌 때문이었다. 그가 재임 기간 중 신자의 수효는 11만 5천명에서 2백만명 이상으로 증가하였으며, ’새 세계 번역 성경’(The New World Translation of Holy Scriptures)이라는 독자적인 번역 성경도 출판되었다. 1977년 노어의 사망 후 여호와의 증인은 제 4대 회장인 프란쯔(Frederick W, Franz)에 의해 계승되어 오고 있다.

 다) 한국에서의 역사와 현황
 여호와의 증인이 한국 사회에 전래된 것은 1912년 홀리스터(A. A. Holister)선교사 부부가 내한하면서부터 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국 성경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이 한글로 번역, 인쇄되었고, 1923년에는 인쇄공장도 설립되어 수많은 인쇄물들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정치권력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규정하는 교리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에서 출판된 간행물들은 1933년 조선 총독부에 의해 압수·소각되고 말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시에는 궁성요배와 신사 참배의 거부로 인해 전원 체포되어 구금되었으며, 그 중에는 옥중에서 사망하는 자까지 있었다.
8.15광복 후, 여호와의 증인은 교단을 새롭게 정비하고 선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자의 수효가 수 만 명에 달하기까지 하였다. 많은 신자들은 가정과 직장, 또는 직업까지 포기하면서 말세에 대비하였으며, 말세에 구원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타낸 병역 거부, 가정 파탄, 학교 중퇴, 직장 포기 등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예언된 말세 시기가 적중하지 않자, 많은 이탈자들이 발생하게 되었고, 선교 활동도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들은 또 다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1975년을 말세의 시간으로 보았던 것은 계산상의 착오였다고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말세의 시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곧 말세가 닥치게 된다고 하면서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6년 현재, 한국에서의 여호와의 증인의 교세는 회중(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수 715개, 전도인(신자)수 4만 4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기성 교회와의 교리 상의 차이점

 가) 성경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발간한 성경들은 자신의 전통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오역(誤譯)들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번역한 ’새 세계 번역 성경’이라는 별도의 성경을 갖고 있다.
그 러나 정통 성서학자들은 ’새 세계 번역 성경’이 성경의 내용을 가감했을 뿐만 아니라, 오역으로 가득차 있고, 문법도 엉망이며, 성서에 나타난 연대의 계산도 잘못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요한 복음 1, 1의 후반부를 "그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하였으며, ’주(Lord)’, 또는 ’하느님(God)’은 ’여호와(Jehova)’로 무려 197곳이나 바꾸어 번역하였다. 이들은 또한 ’성령’은 ’여호와의 활동력’으로, ’십자가’는 ’고통의 형틀’로 번역하는 등 수많은 자의적 번역이 나타나며, 성서의 연대 계산도 대부분 잘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새 세계 번역 성경’이야말로 완전무결하게 번역된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선교 활동이나 기성 교회 신자들과의 대화에서는 기존의 성경들과 함께 이 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토론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과 기성 교회 신자들 간의 성경 토론에서는 근본적으로 어떤 성경이 올바르게 번역된 성경인가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과의 성경 토론은 대부분 합의점을 찾기 어렵고 토론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나) 삼위일체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기성 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가장 먼저 제기하는 주제는 삼위일체론이다. 이들은 삼위일체란 용어가 성경의 어느 부분에도 없다고 강조하며, 또한 히브리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이 교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삼위일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것도 아니고, 성서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 예수의 천주성 부정
이들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다. 이들은 기성 교회에서 요한 복음 1,1을 들어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요한 복음의 결론 부분인 20장 구절의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 구절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결코 하느님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자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지음을 받은 자로 아담과 천사뿐이 없기 때문에 예수는 천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라) 영혼 불멸 성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그냥 소멸될 뿐, 어떠한 의식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새 세계 번역 성경’에서는 신명기 12,20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번역하는 한편, 예레미야 2장의 "가난한 무죄한 자들의 영혼이 피"라고 번역하면서 이들은 기성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고 영혼이 피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러한 주장은 우선 성서 번역에서부터 기성 교회와는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 지옥의 존재 부정
영 혼의 불사불멸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내세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것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도 통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기성 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성서적이고 비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람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간이 죄를 짓더라도 그 대가는 죽음일 뿐(로마6,23),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들은 하느님은 사랑의 근원이고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분이 자기 자녀인 인간을 영원한 지옥 불로 보낸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간의 죽음은 소멸 그 자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바) 시한부 말세론
여호와의 증인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한부 말세론 이다.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세상 종말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게 되고, 그 결과 가정, 직장, 학업까지도 포기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시한부 말세론이 적중하지 않으면 다시 수정하여 제시하곤 하였는데 최근에 예언하였던 말세의 시간은 1975년 10월 1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시 빗나가자 1975년으로 종말의 시기를 잡았던 것은 아담의 창조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 때에는 하와의 창조일을 생각하지 못했던 까닭에 계산 착오를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아담의 창조 일부터 하와의 창조 일까지의 기간만큼 종말의 시간은 지연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확한 시간은 예언할 수 없지만 그 시기는 바로 앞으로 임박했다고 주장한다.

4) 선교 활동

여 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비종교인이나 타 종교 신자들보다는 그리스도교 신자,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개신교 신자들보다는 가톨릭 신자들을 선교의 가장 바람직한 대상으로 삼는다. 왜냐하면, 성경 토론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 활동에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보다는 어느 정도의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 해석상의 오류와 문제점들을 교회에서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선교의 효과가 높지 않은 반면, 그러한 지식과 교육 경험이 적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들에게 좋은 선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이 대문에 붙여 놓은 ’천주교 교우의 집’이라는 문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는 바로 선교 대상의 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의 교회인 왕국 회관에는 가톨릭 신자 출신들이 대단히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비율이 전체 신자의 반 수를 훨씬 넘기도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감독자로 활동하다가 이탈하여 ’이단 방지 선교회’를 조직한 최백용씨의 증언에 따르면, 여호와의 증인에서의 가톨릭 신자 출신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70%가 넘는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선교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이들의 교리와 이들이 갖는 책무 때문이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전교 활동에 충성을 다하는 자들만이 곧 닥쳐 올 말세에 구원을 받아 천년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전교 활동은 곧 구원을 얻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에게는 매달 정해진 시간 이상의 선교 활동을 해야 할 책무가 있는데 그 시간은 신자들의 직급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한 주일에 5시간씩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신자들이 교단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교리에 대한 의문을 발설하면 가차없이 제명 처분한다.
여호와의 증인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선교하고 있음은 이 교단에서 출판돼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이란 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상대방과 만났을 때, 어떻게 말을 건네며 선교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상대가 대화를 거절하였을 경우,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대화를 중단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는 방법’이라는 장을 보면 거기에서는 대화를 중단하기 위해 상대방이 꺼낼 수 있는 말의 유형을 13가지나 제시하고, 각각의 유형에 따라 응답하는 예문을 많게는 10가지씩이나 열거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거절하는 이유와, 상대방의 수준에 따라 거기에 맞는 예문을 꺼내기만 하면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5) 여호와의 증인의 문제점

가) 국가 체제의 부정과 병역의무의 거부
여 호와의 증인들은 "정부의 권력은 사탄 마귀로부터 받았기에 우리의 적이다. 곧 멸망할 정부를 위해 협조하거나 국기배례는 물론 국가를 위해 병역을 이행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신자들에게 여호와의 증인들은 신권 왕국의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을 조국이라고 불러도 안되고, 병역의무는 물론 학교에서의 교련 교육도 받아서는 안되고 국가 공무원과 같은 직업은 포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 수혈 거부
이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피를 먹지 말라"(레위3,17; 7,26-27; 17,10-14; 19,26; 신명 12,14.23- 25; 15,13)는 구절과 신약성서에 언급된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사도15,20)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피를 먹거나 수혈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고를 당하여 무의식 상태일지라도 수혈을 거부해야 한다고 하여 수혈 거부 카드를 전세계 신도들에게 발급해 주어 항상 의무적으로 휴대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이 지시를 어기고 수혈을 하여 살아난다면 협회는 제명처분을 한다.

다) 기존 사회생활 파괴
여 호와의 증인에서는 세상 종말의 시간이 임박했으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 전도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다"라고 의식화시킴으로써 신앙생활을 막는 식구가 있을 경우에는 가정을 떠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곧 닥칠 세상 종말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명예를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직장 생활마저 어렵게 만들고, 교련 훈련의 기피와 전도 활동을 위해 학업까지 중단하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 종교에서는 다가오는 지상낙원에서는 병에 걸리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으므로 병원, 약국, 장의사 같은 직업은 포기하도록 가르친다.

라) 기성 종교 비판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기성 종교들은 모두 사탄이 창시한 사탄의 조직이고, 기성 교회의 교역자들은 ’음녀’라고 부른다. 그리고 말세에는 기성 교회를 믿는 자 모두가 거꾸러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이 발간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라는 교리서 제16장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반 관습들’에서는 가톨릭의 비난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즉 십자가를 걸거나 종교적인 형상과 그림, 즉 성물과 상본을 사용하는 행위, 성인 축일을 제정하여 기념하거나 세례를 받을 때 본명을 정해 주는 행위 등은 하느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과 제도에게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행위들이라고 강조한다. 또 여기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내는 것도 예수가 그것을 명령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과 가르침에 따라 이들은 기성 종교의 성물들을 우상이라고 비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일례로 1987년 제주 교구의 9개 본당과 2개 공소에서 20여개의 성모상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는데, 경찰의 조사로 1988년 1월에 범인이 체포되고 그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판명됨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증명해 주었다.

마) 가정 윤리의 파괴
이들은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라...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합당치 않고..."(마태10,22)등의 성경귀절을 인용하면서 ’참 종교를 택하므로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반대를 받는다’(여호와의 증인 교리서 342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342면)고 가르치면서 부모나 어떤 윗 사람에게도 절을 하거나 인사를 하지 못하게 하며, 생일, 회갑은 물론 부모나 남편의 생일날에는 식사도 같이하지 않는다.

황양주신부

우상숭배

우상숭배
그릇된 예배

그릇된 예배의 죄는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그르치기 때문에 예배의 본성에 정면으로 반대된다. 그릇된 예배, 우상숭배 행위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다.
1. 참되신 하느님께 대한 그릇된 예배: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하느님을 끌어들이려는, 헌신적인 신심의 정신이 결여된 그러한 외적 예배행위
2. 우상숭배 : 거짓 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행위
3. 미신과 마술 : 악마와 어둠과 마술적인 힘에 대해 종교적 신앙과 신뢰심 비슷한 것을 갖는 것.

1. 하느님께 대한 그릇된 예배
참된 예배는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을 드리는 데에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신심과 완전한 복종을 표현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릇된 예배는
1) 하느님을 인간의 유익을 위한 종교 행위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
2)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내적 신심과 봉헌을 진실로 표현하지 않고 하느님께 합당치 않은 외적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
3) 순전히 인간의 감정과 열망을 해소하기 위한 종교적 행위들이다.(의무감에서)

* 신심의 준마술적 행위 :
이 것은 어떤 규정된 예식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또는 요구된 번수대로 그 예식을 반복해서 행함으로써, 특별한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특정 예식이나 기도들을 말한다. (이런 기도나 예식은 예컨대, 사람이나 동물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나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또는 어떤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등등의 목적으로 행하게 된다.) 그 효과는 하느님의 자유롭고 자비로운 선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예식이나 기도 자체의 신비로운 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힘이 사람이 바라는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준마술적 행위는 사도 바오로가 말한(1고린 12,28-30) 하느님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얻는 치유의 은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은사는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신뢰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본이나 유해가 상징하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예배와 신앙과 존경을 드려야 할, 하느님과 성인들과는 관계없이 그 성물들 자체에서 특별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위들은 하느님께 대한 내적 신심보다는 물건 자체에서 효력이 발생한다고 믿는 오류이다.

* 부당한 방법에 의한 그릇된 예배 :
제사와 예배 행위는 하느님께 지불해야 할 세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내기만 하면 사람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심의 순수한 표현이 아닌 예배의 방법과 행위들로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아주 강하게 비판했던 예식주의 형식주의에 빠진 예배를 말한다.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아모 5,21-24; 참조 이사1,11-17; 예레 7,21-26)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의 마음과 사랑과 순종을 원하신다. 이러한 내적인 정신이 없는 제물과 예식은 헛된 것이다.

2. 거짓 신들에 대한 예배(우상숭배 : Idolatry)
그릇된 예배의 가장 심한 형태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짓 신들, 순수 피조물, 악신, 마귀 등에 대한 예배와 흠숭이다.

* 우상숭배는 세상에 대한 이원론적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선하신 하느님 외에 그분께 반대되는 악령들도 있다. 악령의 노여움을 달래어 그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게 찬사를 드리고 제사를 바쳐야 한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려 했던 경향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야훼를 섬기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힘을 가진 그 지방의 잡신들을 공경하였다. 그러나 성서는 그러한 잡신 공경의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악한 세력과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들도 완전히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들에게 예배를 드려서는 안되고 덕스러운 생활로 그것들을 물리쳐야 한다.
고대 동방의 종교와 희랍과 로마제국의 종교들은 모두 다신교였다.? 많은 신들과 여신들을 숭상하게 된 원인은 일반적으로 참 하느님에 대한 의식적인 배신이 아니고 단순한 무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세상의 피조물도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황제들은 흔히 신격화되었고 그 외의 이름난 사람들도 그러했다. 짐승, 나무, 바위와 같은 피조물들도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 성서가 말하는 우상숭배의 참으로 중요한 의미는 피조물이나 현세적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격상시키는 데에 있다. 성서는 돈과 쾌락, 그와 비슷한 현세적 사물들을 최고의 선으로 받드는 사람들을 우상숭배자들이라고 표현한다.(마태6,24; 에페5,5; 필립3,19; 골로3,5). 현대 문명에서는 부귀, 물질적 발전, 국력 등등에 대한 우상숭배가 가장 위험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버리고 현세적. 물질적, 육체적인 것에 완전히 빠지게 되면, 현세적 가치에다 신적 영광의 옷을 입혀 그것을 위해 자기 생애를 바치게 되며, 자기의 본질을 이루는 종교적 본성을 저버리게 된다.

3. 미신(U≫aa superstition)
넓은 의미에서 미신은 객관적으로 근거없는 대상에 대한 무익하고 맹목적인 신앙과 실천을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참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실천의 준마술적 남용도 포함된다.

좁은 의미에서 미신은 상상적인 어떤 세력을 믿음으로써 행하게 되는 무익한 신앙과 실천이다.

신자들의 미신적인 종교생활의 오류는 실제로 존재하는 하느님과 성인들로부터 어떤 은혜를 얻기 위하여 부당하고 무익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의 미신의 오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떤 힘을 믿는 것이다.

1) 미신의 원인에는 무지가 크게 작용한다. 과학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 자연의 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느님의 참된 개념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미신에 쉽게 빠진다. 무지한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비상하고 두려운 일을 당할 때 그것에 대한 해명을 얻기 위하여 어떤 신비로운 힘을 믿게 된다. 또한 미신은 흔히 조상들로부터 물려받는다. 조상들이 물려준 것이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그것을 피하기가 어렵다.

2) 미신의 가장 심층적인 원인은 하느님께 대한 참된 신앙이 없고 참된 종교를 믿지 않는 데에 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도 많은 미신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과 학이 발달하고 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 때문에 마음이 불안정하다. 이런 불안정과 걱정 속에서 사람은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다. 하느님의 섭리에서 피난처를 찾지 못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은 자기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되는 미신에 떨어지기 쉽다.

3) 미신은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기 존재를 알아보려 하고 그러한 불안정과 걱정에서 도피하려는 절망적 시도의 하나이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심오한 진리와 초월성을 향한 질서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신은 하느님의 절대적 통치권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왜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신은 자기의 불투명한 존재를 좌우한다고 생각되는 잡신이나 세력을 주문 암송과 예식으로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성서는 점장이. 복술가, 혼백에게 물어보는 자, 주문을 외는 자, 마술사, 술객 등 미신을 행하는 자들을 모두 단죄하고(신명 18,9-14; 이사2,6;8,19; 예레27,9-10; 사도19,19), 요술쟁이와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점장이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출애22,18; 레위20,27) 그러한 미신행위가 신앙이 없는 데서 기인된 것이라면 불신앙의 중죄가 된다. 확실히 미신은 적어도 객관적으로 볼 때 사람이 건전한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고 환상에 의해서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끔 개인적. 사회적 무책임을 범하는 죄가 된다. 따라서 필요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활동은 무력해지며 참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직시하지 못한다.

* 미신은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상징이나 표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예식이나 관습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영적인 실재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종교적. 전례적. 상징의 사용은 그 순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상징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적인 것에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 미신은 인간의 초심리학적 능력의 사용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가끔 일상생활 속에서 이상한 여러 가지 힘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초능력의 과학적 합리성은 설명되지 않고 있지만 초능력의 존재는 경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현상 중에 많은 것들을 미신이나 마술로 보아 넘겼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것들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들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들의 사용을 일방적으로 죄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초능력과 같은 비상한 현상을 모두 다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고, 반대로 그것들이 속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든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든 너무 쉽게 믿어서도 안된다.

페쉬케著 그리스도교 윤리학 3권 우상숭배에 관한 글을 황양주신부가 요약. 정리한 것임

다종교 상황과 선교

다종교 상황과 선교
이 글은 박태범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겸 신부님이 쓰신 글로 경향잡지에 수록된 글입니다.

가) 들어가는 말

선교는 교회의 내적 본질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교회가 먼저 존재하면서 교회는 자신의 사명 중의 하나로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실체를 형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서나 계속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지상 과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활동은 시대적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한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세계화와 함께 일련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이미 지난 세기에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가 다종교 상황이라는 역사적 흐름의 거대한 물결에 도전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교가 운명적인 다종교 상황을 외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도전은 그리스도교에게 타종교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리스도교의 선교 신학에서 새로운 신학적 이해와 반성을 요구한다.

1)다종교 상황에 직면한 그리스도교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때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종교 외의 다른 종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지고 그들 종교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 지리상의 발견 이후이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의 만남과 접촉 그리고 동양 종교들의 서구 유입으로 세계의 다종교 상황을 소박하게나마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박한 다종교 상황에 관한 인식은 20세기에 들어와 지구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면서 점점 더 강화되어 나갔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어느 한 국가, 한 민족 또는 한 사회 안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했음이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단순히 세상에는 여러 종교들이 있다는 정도의 의식을 가지는 데 머물렀다.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들 사이에 접촉이 많지 않았고 서로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국부적이었고 지엽적이었으며 또한 종교들 상호간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다종교 상황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큰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또 그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종교들이 서로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다종교에 관한 인식은 단순한 여러 종교들의 공존에 관한 인식을 넘어서게 되었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달로 각각의 종교들에 대한 내용들이 전세계 지구촌을 향하여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종교들 상호간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급증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발맞추어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실은 문헌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대를 맞이한 그리스도교에게 세계의 다종교 상황은 더욱 절박하게 피부로 느끼는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정보 혁명을 통한 세계화는 이 지구를 그야말로 하나가 되게 하고 있다. 인류는 새로운 신대륙를 개척하여 디지토피아를 건설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주된 공간은 현실 공간이었으나 지금부터는 가상 공간을 통해 더 확장되어 가고 있다. 대중매체와 이동 수단의 발전은 고전적 의미의 세계를 하나의 동네로 만들었지만 인터넷의 발전은 이 지구촌을 클릭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한 점으로 응축하고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의 여러 종교들은 한 점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기에 그 어떤 종교도 자신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다른 종교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그리스도교는 나름대로의 피치 못할 역사적인 사정에 따라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1)라는 신학 격언에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신학 격언이 배타적으로 해석되어 가톨릭 교회만이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세워진 유일한 교회로 간주되고 타종교는 정복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그리스도교 이외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우상숭배자로, 미신을 섬기는 자로 간주된 적도 있었다. 이때에는 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게 되면 그들은 모두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확신감에서 그리스도교는 선교를 중요시하였다.
인간이 겪는 가장 심한 진통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것이고,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죄의 용서와 하느님의 자녀 됨이고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과 불행은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형벌이다. 따라서 선교는 타종교인이 이교도적인 자신의 과거를 단호히 떠나 복음의 메시지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 교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18-19세기의 그리스도교 선교는 식민국가의 종교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것을 의미하였고 선교 정책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정책과 맞물려 이루어졌다.2) 많은 경우 선교사들이 군대의 뒤를 따라 들어가 점령된 식민지 민족들을 개종시킴으로써 교회를 부식하고 그리스도교를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적 선교 정책은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로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음에는 틀림없지만 오늘날 많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후유증을 낳고 있다.
이러한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정복적 선교 정책은 오랜 기간 동안 교회 안에 그대로 유지되어 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서구로부터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되자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54년 인도 정부는 개종을 주목적으로 삼는 선교사들에게 철수하도록 명령했으며, 이어서 선교사들은 중국, 앙골라, 아랍 세계 등지에서 동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이른바 '해방 신학'이 등장하여 이전의 식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통치 하에서 행해진 선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체 안에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긴장, 갈등, 불화, 전쟁 등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공의회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인류를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과 구원 의지에 근거하여 비록 타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구원의 가능성에서 배제되지 않음을 밝혔다. 타종교인들을 보는 시각의 중심이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축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포괄적 축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세워진 참된 교회요, 인류 구원을 위한 보편적 성사라고 규명하면서 타종교 특히 세계 종교라고 불리는 유다교,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의 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 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모든 자녀들에게 권하는 바이다."3)
그러다가 20세기 말 새로운 쳔년대를 앞두고 '종교간의 대화'가 새로운 화두로 나타나면서 종교 다원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4) 종교 다원주의란 종교를 궁극자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개념, 또 그것들에 대한 실존적인 응답 또는 반응으로 보고 종교간의 서열을 매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모든 종교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존 힉 같은 신학자는 그리스도교가 중심축이고 다른 종교들은 그 주위를 맴도는 주변적인 종교로 보았던 그리스도교 중심의 신학을 낡은 프톨레마이오스식 신학이라고 규정하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주장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교회, 그리스도교 또는 그리스도 중심에서 벗어나 아도나이, 알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파니카 같은 가톨릭 신학자는 "우리는 개종이라는 도전에도 직면해야 한다."5)라면서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타종교로 개종할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절대성을 믿는 것과 같이 모든 종교가 제각기 자기 종교와 신앙의 절대성을 믿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교만이 절대성을 지닌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없기에, 선교의 일차 목적은 타종교인의 개종 곧 우상숭배와 불신앙으로부터의 회개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 곧 각 종교인들의 내적인 회개와 세계 평화 공동체의 형성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서구인의 제국주의적인 종교적 침략과 지배욕의 종교에서 벗어나 사랑과 봉사의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종교에서 종교로 이동하는 개종에 강조점을 두기보다 내적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간의 대화에 무게 중심을 강하게 둔다.
한편, 지난 9월 11일에는 역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가미가제식 자살 특공대들이 민간 비행기를 납치하여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힘과 부를 상징하는 국방부 건물과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을 공격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와 정신적 물질적인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을 두고 그 원인을 분석하자면 매우 복잡하여 어느 하나가 유일한 것으로 제시될 수 없겠지만 적지 않은 세계 지성들에게서 '힘의 불균형이 낳은 거대한 문명 충돌'이라는 견해가 나와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해서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도식화해서 볼 때 세계 문명은 서구의 기독교 문명, 중동의 이슬람 문명 그리고 아시아의 불교, 유교 문명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이스라엘을 매개로 하여 충돌한 사건이 이번 뉴욕 테러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간의 평화 없이는 문명간의 평화는 없게 될 것이다. ......종교간의 대화가 없이는 종교간의 평화가 없게 될 것이다."6)라는 한스 큉 신부의 말이 새삼 생각나게 해 주는 사건 앞에서 그 자살 특공대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고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으며 그들을 과연 개종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자위적인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그들을 개종시키기는커녕 평화로이 공존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칫 상대주의에 빠지기 쉬운 종교다원주의의 주장과 근본주의자들의 경악할 행동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교회가 타종교들 안에서도 참되고 신성한 것들이 발견되고 그 종교들 역시 인간을 비추는 진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면서도 왜 선교를 해야하는가? 과연 유일성의 진리를 주장하는 그리스도교는 거의 같거나 더 강한 주장을 하는 타종교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나타낼 수 있고, 나의 믿음과 같거나 더 강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등의 어려운 의문이 제기되고 이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학, 특별히 선교학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름대로의 대답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2) 선교 개념의 분화와 심화 과정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를 '교회로부터 파견된 복음의 전파자들이 온 세계에 가서 복음 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扶植)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사업을 '선교'(宣敎, Missiones)7)라고 정의한다. 이 문헌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한국어로는 단순히 선교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이 선교가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공의회 이전 역사의 흔적으로 19세기경 선교라고 하면 서구를 중심으로 타민족들에 대해 펼쳐진 갖가지 외방 전교적인 선교 활동들을 지칭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복수적인 표현은 복음 선교의 풍부하고 복잡하고 동적인 참모습을 더 잘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교회의 부식이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에서 선교를 단순히 복음을 모르는 사람만을 상대로 하는 활동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있어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요소와 국면(局面)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만이 복음화 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로써는, 복음 선교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선교의 풍부하고 복잡하고 동적인 참모습을 부분적 또는 단편적으로 규정할 때는 그것을 빈약하게 하거나 그르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모든 요소를 한 가지로 포괄(包括)하지 않는다면 복음 선교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8) 복음 선교를 단순히 교회의 부식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암시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문헌에서 시대의 신앙감에 맞게 선교의 개념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새로운 단어 "복음화"(Evangelizatio)9)를 사용하면서 그 활동을 하느님 백성들에게 권고한다. 이 권고에서 교황은 인간의 내적인 변혁에 초점을 맞추어 비복음적인 삶의 방식이나 태도 그리고 비구원적인 상황을 복음의 힘으로 바로 잡는 활동을 선교의 개념에도 포함시킨다. "복음 선교의 목적은 이 내적 변화의 성취에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할 때 교회는 복음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0)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逆戰)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11) 여기에서 선교는 비복음화된 사람들의 단죄를 피하기 위해 그들을 개종시키고 교회를 부식하는 과업일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과 모든 문화들을 복음 정신에 맞게 바꾸는 일도 포함된다.
그런데 최근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는 선교의 고유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단수형의 선교(Missio)라는 말을 사용한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되살리면서도 다른 한편 예외적으로 선교 활동의 역사적인 흔적을 되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 외에는 선교를 복수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에서 선교를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선포와 지역 교회의 설립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의 추진"12)이라고 그 다양한 모습들을 요약하여 특징 지운다. 교황 바오로 6세가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배반되는 모든 인간적 사회적 가치들을 복음의 힘으로 역전(逆戰)시키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좀더 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증진하고 촉진시키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정적인 것의 역전과 긍정적인 것의 촉진이 대조적이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에서 토착화(Inculturatio)13)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선교 활동을 토착화와 연관시킨다. 회칙에 따르면 "토착화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인 변모가 이루어지는 것과, 여러 가지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되는 것"14)으로 정의된다. 선교는 토착화와 동반되며 토착화와 함께 추진된다는 것이다. 이 토착화라는 신조어의 활용은 많은 논쟁을 발생시켰다. 토착화라는 새로운 표현에서 사회학자들은 "교회가 주어진 문화 안에 삽입되는 과정" 또는 "각 나라, 각 지역 혹은 각 사회적 분야 안으로 교회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 등으로 그 뜻을 제한하고자 함에 비해, 종교 전문가들은 선교와 관련하여 "특별한 문화 안으로의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삽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선교의 개념은 토착화라는 개념도 포괄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문헌에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복음화 사명의 일부임을 선언15)하고 그 이유를 타종교 안에도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교회의 복음화 사명의 일부이다. 이 대화가 상호 인식과 상호 기여의 길이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외방 선교에 배치되지 않을뿐더러 선교와 특수한 관련이 있고 선교의 한 모습일 수 있다. 사실 선교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모르고 많은 경우에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께로 부르시며, 당신의 계시와 사랑을 충만히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시고, 비록 결함과 부족과 오류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들 종교가 증거하는 영적 풍요를 통하여 각 개인과 민족에게 당신의 현존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내신다."16) 그리고 교황은 어떤 경우에는 대화의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많은 선교사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는 어렵고 때로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대화의 길만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1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9월 2일부터 4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200인 모임에 보낸 담화문에서 "다른 종교들간의 대화는 종교 분쟁을 불식할 수 있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과제"라고 하면서 종교간의 대화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임을 밝혔다.
이렇게 볼 때 선교라는 개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강조점이 달라지면서 그 함축하는 내용이 매우 풍부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를 복음 전파와 교회의 부식(扶植)으로 보았으나, 교황 바오로 6세는 복음 선교를 단순히 복음 전파와 교회의 부식으로만 보지 않고 복음화라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여 비복음적·비구원적인 상황의 역전 노력까지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증진하는 활동과 토착화 작업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까지도 선교 활동과 연관시켰다. 고유한 의미에 있어 선교는 예비신자를 인도하여 개종하게 함으로써 교회를 부식하는 활동이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는 이미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의 회개, 비복음적, 비구원적 상황의 역전, 복음 정신에 맞는 세상의 건설 또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의 증진, 토착화, 종교간의 대화까지 모두 이르는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선교가 담고 있는 풍부한 내용 중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근본주의와 다원주의가 판치는 다종교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종교간의 대화가 세계 평화를 위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새로이 대두된다.

3) 한국 교회와 선교

한국 사회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형적인 종교적 다원 사회이다.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등 살아 숨쉬는 신앙 공동체들이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다종교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운명적이기에 지금까지 서술한 모든 것이 한국 교회의 선교 활동에 모두 적용된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예비신자를 확보하는 새로운 양 모으기 운동, 냉담 신자들을 위한 잃은 양 찾기 운동, 신자 계속 교육을 통한 재복음화 운동, 복음 정신에 맞는 사회를 이룩하는 도덕성 회복 운동, 신앙의 토착화 운동 그리고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 등을 모두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다종교 상황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보면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선교와 종교간의 대화가 더 큰 무게를 지니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전래될 때부터 다종교 상황 안에서 뿌리를 내려야 했고 아직까지 한 번도 소수 종교로서의 위치를 면해 본 적이 없다. 물론 한국 교회는 양적 질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1981년 140여 만 명이던 신자 수가 1986년 초에 200만 명, 1992년에 3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000년도의 통계를 보면 총인구 46,125,376에 신자가 4,071,560으로 총인구 대비 총신자의 비율은 8.8%이다. 교회의 피나는 노력으로써 한국 교회는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 가톨릭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신자 수에 있어 여전히 소수이다. 한국 사회에서 8.8%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종교인이거나 타종교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전적 의미에서의 선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상 명령이다.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하는 것은 타종교인들에게 구원이 없어서이거나, 타종교 안에는 진리나 긍정적인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교회의 선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대내적인 완전한 자기 통교를 바탕으로 한 파견에 그 기원을 둔다. 이 파견은 성부에 의한 아들의 파견이며, 아들에 의한 성령의 파견이며 이 파견과 연속선 위에 교회의 선교가 있기에 선교 활동은 교회의 깊은 본성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교회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에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신비의 심장에 있다. 교회는 선교적이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선교 사명은 사도들을 파견한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그래서 교회에게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지상 명령이다. 선교의 모티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고, 성령의 숨결 아래 이미 출현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인간들의 역사 안에서 증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다. 좋은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 선교를 하는 것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이신 이웃 사랑의 극치이다. 교회는 선교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대내적 친교를 구성하는 사랑과 그리스도를 아는 기쁨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명시적이고 역사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는 타종교의 전통 안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함축적, 비주제적 또는 신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명시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축적인 방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은총의 영향 아래 있는 타종교들이 구원에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그 함축적인 성격 때문에 파편적이고, 불완전하고, 허약한 실재로 머문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인 교회는 인간 구원을 위한 효과적인 성사와 제도들을 잘 갖추고 있기에 함축적인 그리스도교 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명시적인 그리스도교와 조우할 때 자신의 의미를 더 잘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는 시대적 요청이다. 종교간의 대화 없이 종교간의 평화 없고 종교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역시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발맞추어 한국 교회는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 주교회의 차원에서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를 활성화시키고 각 교구별로도 전담 부서를 두자고 촉구한 것은 아주 시의적절한 요청이었다. 한국 주교회의는 그동안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에게 경축 메시지를 보내는 등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난 2000년 대희년 동안 미사 본기도 중에서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화목하게 하시어'라는 내용을 넣어 기도로써 밑받침이 되도록 하였다. 사실 종교인들이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지 않고서는 여러 가지 사회악 제거는 물론 우리 민족의 숙원인 지역 감정 해소 그리고 남북 화해를 이룰 수 없기에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협력은 더 절실하다. 최근 여러 종단들이 연합하여 사형 폐지 운동, 분단 극복을 위한 온겨레 손잡기 운동 그리고 새만금 살리기 운동 등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는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토착화는 문화에의 토착화인데 우리 한국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종교 문화이며 이 종교 문화의 이해 없이는 올바른 토착화가 이루질 수 없다. 그리고 다종교 상황에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타종교 문화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가 요청된다. 종교간의 대화는 고전적 의미의 선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한 설문 조사에서 '종교계에 바라는 사항'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버릴 것'을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이 종교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종교간의 경쟁, 갈등 또는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이고 이것을 잘하는 종교에 더 큰 호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종교간의 대화를 성실히 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 참되다는 증거가 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선교가 된다. 이런 점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단순히 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나) 나오는 말

21세기 현대 사회는 고도의 지식 정보 사회로 시간적 공간적 격차를 뛰어넘어 다양한 신념 체계들이 공존하는 다원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하나의 절대적 신념 체계이기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신념은 자칫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으로 연결되기 쉽다. 특별히 유일신교의 신자들에게 이러한 종교적 신념 체계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워 타종교의 상징물은 우상으로 간주되며 나의 신념 체계와 다른 사람들은 저주받은 자, 적, 또는 사탄이 된다. 그리고 적 혹은 사탄에 대한 공격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 행위, 선택받은 자의 소명 또는 성스러운 과업으로 여겨지기에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엄청나게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면서 과격한 행동도 불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뉴욕 참사에서도 아주 잘 드러났다. 그러나 종교에서 제거되어야 할 적이나 타파되어야 할 우상은 인간을 고통 속에 빠지게 하는 여러 가지 사회악과 인간성을 유린하는 각종 관념이나 그릇된 가치관 곧 환경 파괴, 공해, 정보와 재화의 빈부 격차, 남녀 차별, 사회적 불평등, 부정부패, 살인, 강도, 생명 경시 풍조, 물신 숭배, 권력 숭배 그리고 성의 상품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선교 활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고전적 의미의 선교이든 넓은 의미의 선교이든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선교이든 그 활동에 있어 가장 강조되어야 할 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다종교 상황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선교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배타적이지 않으면서도 상대주의적인 종교 다원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극단적인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는 변증법적인 중용이다.
1) 정하권, [교회론] 제2편, 분도출판사, 1981년, 100-105면 참조.
2) 심상태, [그리스도와 구원], 성바오로 출판사, 1989년, 338-339면 참조.
3)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4) 교황청은 종교적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두 개의 문서를 내놓았다. 지난 1997년 국제신학위원회에서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들"을 발표하였고, 지난 2000년 8월 6일 신앙교리성에서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종교 다원주의에 관한 교회의 관심이 큰 것을 잘 드러내 준다.
5) R. 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김승철 옮김, 서광사, 1992년, 74면.
6) 한스 큉, "새 세계 질서를 위한 지구 윤리", [미래 사회와 종교],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 대회 발표 논문, 원광대학교, 2000년.
7) 선교 교령, 6항 참조.
8) 바오로 6세,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7항 참조.
9) [현대의 복음 선교]의 옮긴이는 '우리말 번역을 내면서'라는 글에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특별히 라틴어 Evangelizatio의 의미를 복음 선교, 복음화, 복음 선포, 전교, 선교, 복음화 활동 등으로 나열하면서 부득이한 곳을 제외하고는 복음 선교로 통일하여 번역하였다고 한다. 라틴어 어의 그대로 단순히 복음화로 번역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게 하는 번역이다.
10) 바오로 6세, 앞의 책, 18항.
11) 위의 책, 19항.
1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34항.
13) 토착화(Inculturatio)라는 표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 치릴로 선교 1100년을 기념하여 1985년에 발간한 회칙 [슬라브 민족의 사도]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슬라브 민족들이 사는 땅에 개척자적으로 행한 복음화 업적 안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토착화라고 부르는 모델을 발견한다. 그것은 토착 문화에의 복음화 육화인 동시에 교회 생활 안에서의 이 문화들의 도입이다"(21항).
14) 요한 바오로 2세, 앞의 책, 82면.
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 34항에서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이 이미 언급되고 있다. "선교 활동의 올바르고 질서 있는 실행은 복음의 일꾼들이 자기들의 임무 특히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나 문화와의 대화를 위해 학문적으로 훈련되고 또 그 실천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요구된다."
16) [교회의 선교 사명], 55항.
17) 위의 책, 57항.

일반 교리상식

신자들이 지켜야 할 6가지 의무

신자들이 지켜야 할 6가지 의무
1. 모든 주일과 대축일 (의무축일 6회) 미사참여
2. 정한 날에 금육, 단식재 지킴
3. 적어도 1년에 1번은 고해성사
4. 전어도 1년에 1번은 영성체
5. 교회의 유지와 사업을 위해 가정단위로 교무금을 내야 하고, 헌금을 각자 봉헌
6. 혼인법 준수

미국 교회의 의무축일 규정

미국 교회의 의무축일 규정
의무축일이란 주일과 동일하게 지내는 특별히 중요한 축일들을 말한다. 미국 주교회의가 결정한 내용을 나열해 본다.
1. Solemnity of Mary, Mother of God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2. Ascension of the Lord 예수 승천 대축일.
3. Assumption of Blessed Virgin Mary 성모 승천 대축일.
4. Solemnity of All Saints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5.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Virgin Mary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
6. Nativity of Our Lord Jesus Christ 예수 성탄 대축일.

단 1,3,4번의 축일이 토요일이나 월요일에 해당될 때에는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

공현

공현

(주의 공현 축일을 가리키는) 그리이스어 epifania 또는 teofania는 스스로를 드러냄, 유명한 존재가 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왕이나 황제의 도착(오심)과 관련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 용어는 신(神)의 발현 또는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동방 교회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의 성탄 축일을 epifania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1. 공현 축일의 역사

이 미 2세기에 영지주의자들이 1월 6일에 예수의 세례를 지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4세기 후반 에삐파니오(Epifanio)는 (동방교회의) 정통적인 공현축일에 대해 전해주고 있는데, (이날 동방교회는) 주님이 오심, 또는 주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심과 완전한 육화를 기념하였다. 요한 크리소스토모(+407) 시대에 안티오키아와 에집트에서 이 축일을 지냈으며, 축일의 대상은 예수의 탄생과 그의 세례였다.

공현 축일이 서방교회에 전해졌을 때 그 뜻의 변화가 있었으니, 이날 (서방교회는) 동방박사들이 새로 태어나신 구속주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것을 지내면서, "이교 세상에 예수께서 드러나심"을 기념하였다. 이 일화(동방박사의 방문)에 예수 세례와 가나에서의 첫 기적을 덧붙여 지냈다. 한편, 성탄축일이 동방교회에 들어가면서 공현축일의 본래 뜻이 사라지고 대신 공현축일에는 예수의 세례를 두드러지게 지내게 되었다.

동 방에서 공현축일이 나타나게 된 데는 서방에서 성탄축일이 나타나게 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특히 에집트에서 동지에 지내는 축일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이 확연히 더 길어진 때, 즉 동지(12월 25일)로부터 13일 후인 1월 6일 (주의) 성탄을 지냄으로써, 예수께서 참된 빛으로 드러나셨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하였다.

2. 현행 공현 전례거행의 대상

서방에 공현축일이 도입되면서 대부분의 서방 교회들은 주로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대표하는 이들이며 따라서 예수께서 모든 민족의 주님으로서 드러났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런 식으로 성탄과 공현축일이 확연히 구별되었으니,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 이후 거행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공현 감사송에 잘 나타나 있다. "주는 그리스도로 이루어질 우리 구원의 신비를 오늘 이교 백성들의 빛으로 계시하셨으니...."

미 사전례서나 시간전례서들에 제시된 모든 전례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보편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회를 깨끗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교회와 결합하신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와, 길을 잃고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다시 모으기 위하여 모든 백성 위에 세워진 표지인 선교하는 교회의 신비가 그 내용이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성당의 구유]
구유는 13세기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가 처음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 프랜시스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도 권장하였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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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어원과 유래]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현재는 Christmas로 표기법이 바뀌었다.
Christ는 '메시아(Messiah)" 또는 '성스러운 사람(Anointed one)'이라는 뜻이며, 'Mass"는 종교적 의식인 '미사'를 뜻한다.
즉, 초기에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미사 형식이었다.
24일 밤,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날 일몰까지로 쳤기 때문에 이 전야인 이브가 중요시되었다.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사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제 1 장"과 "누가복음 제 2 장"을 들 수 있다.

[촛불미사]
예 수는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참 빛이시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밤에 자정 촛불 미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가 이 세상 에 빛으로 등장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산타의 유래]
산타란 이름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전설로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다.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4세기경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출생한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후에 미라의 대주교가 되어,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그의 생전의 이런 자선행위에서 유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숭배하는데,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 특히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자의 전형으로 삼았다.
이 발음이 그대로 미국어화했고,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상상의 인물이 되어,어린이들이 더 정답게 부르다가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 러나 8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붉은 모자, 붉은 옷에 장화를 신은 흰 수염의 산타클로스가 북국에서 찾아와 큰 자루를 등에 메고, 집집마다 굴뚝을 타고 슬그머니 들어와 착한 어린이에게는 양말주머니에 여러 가지 선물을 넣어 준다는 이야기와 행사는 오래된 기원이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일로 보여진다.
그러나 산타가 빨간색옷을 입는 것은 아무런 종교적인 근거는없으며 코카콜라 광고에서 유래됬다 합니다.

대림시기

대림시기

(이)avvento (영)advent

I. 대림시기의 뜻과 역사

대 림시기(참조 →전례주년, II)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도 많지 않다. 대림시기 안에서 우리는 절제, 금욕주의적 관행과 관계된 요소들과 말 그대로 전례적인 성격의 요소들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로서의 대림시기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도래(종말의 재림)를 지내는 대림시기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대림시기는 서방교회의 전형적인 전례시기이다. 동방교회는 불과 며칠 간의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4세기 이후에나 대림시기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이때 대림시기는 종말론적인 대림(재림을 기다림)과 성탄 준비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성탄을 준비하는 데에 대림의 원래 의미가 있다는 사람과 종말의 재림을 기다리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전례개혁은 의도적으로 성탄 준비로서의 대림시기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의미로서의 대림시기의 성격을 보존하고자 하였다(전례력 지침 39).

II. 미사전례서의 대림시기 전례 구조

대 림시기는 4주간으로 되어 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전례는 6주간으로 되어 있다) 전례문들과 특히 이사야서를 거의 매일 읽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례시기는 일관된 모습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다음의 두 시기로 구분된다: ① 대림 첫 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 - 이시기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도래를 기다리도록 신도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② 12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 - 미사나 →시간전례의 모든 전례문들은 더욱더 직접적으로 성탄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림시기를 위한 두개의 감사송 역시 (대림시기의) 이 두 시기의 특성들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시기에 →마리아, 세례자 요한, 이사야 예언자가 부각된다.

교 회의 아주 오래고 보편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데, 다른 예언서들보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아주 어렵고도 결정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선택된 백성(이스라엘)을 위로하였던 큰 희망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가운데서도 더욱 의미 있는 부분들을 대림시기에 읽는데, 이 부분들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선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 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제 완성을 향해 흘러가는 순간에 그 이전의 역사 모두를 자신의 말과 존재로 종합한다. 그 결과 기대하는 마음이 구체화된다. 그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위해 (역사 안에) 개입하심을 드러내주는 표지이다. 메시아의 전령인 그의 임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이스라엘에게 '구원받는 깨침'(참조. 루가 1,77-78)을 제공하며, 이미 당신 백성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대림시기는 구원 신비와 마리아와의 관계, 그에 대한 마리아의 협조에 대해 강조하는 전례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은 전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마리아의 위치를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마리아) 신심을 덧붙임으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림시기를 가장 좋은 '마리아의 달(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의미로) 올바르지 않으니, 이시기는 본질적으로 주님 오심에 대한 신비, 마리아의 협조와 특히 연결되어 있는 신비를 지내는 때이기 때문이다.

대림시기 초반(12월 8일)에 지내는 무염시태 대축일이 대림시기와는 별개의 것이거나 대림시기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요소가 아니라 바로 신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무염시태의 마리아는 구원된 인류의 원형이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얻어진 가장 뛰어난 열매이다. 무염시태 대축일 감사송에 나와 있듯이 하느님은 마리아 안에서 "티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성자의 신부인 교회의 설립을 알리셨다."

III. 대림시기의 신학

대림시기가 주님께서 역사 안에 오심에 대한 모든 신비를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숙고한다는 점에서 대림시기의 신학은 풍부하다. 신비의 여러 측면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놀라운 통합을 이룬다.

대 림시기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역사적-성사적 차원을 기념한다. 대림시기의 하느님은 역사의 하느님이시다. 즉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의 모습을 드러내신 나자렛 예수 안에 온전히 오신 하느님이시다. 계시의 역사적 차원은 모든 인간의 완전한 구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기념한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계발 사이의 밀접한 연계를 기억한다.

대림시기는 그리스도교 신비의 '종말론적 차원'을 뚜렷이 드러내는 전례시기이다. 하지만 시간의 끝에 이르러서야 밝혀질 상속(약속)에 대해 다룰 뿐이다. 역사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이며, '주님의 날'(참조. 1 고린 1,8; 5,5)을 향하여 나아간다. 우리 인간의 육(肉) 안에 오셨고, 죽으신 다음 하느님께서 미리 뽑으신 증인들과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던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에 영광스러이 나타나실 것이다(사도 1,11). 이 지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구원을 '이미' 체험하면서, 심판관이요 구세주로서 주님이 영광스러이 다시 오실 때 완전히 드러날 구원, 우리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구원을 기다리며 산다.

대림시기는 하느님이 오심에 대한 참되고 깊으며 신비한 차원들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 한편,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교회와 각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선교적 임무에 대해서도 상기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교회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성부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신비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성령의 오심의 신비에 기초하고 있다.

IV. 대림시기의 영성

대림 전례를 드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삶의 태도들을 가지도록 불린다: 기쁨 중에 항상 깨어 기다림, 희망, 회개.

기 다리는 태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이룬다. 왜냐하면 계시의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당신의 신실함을 드러내신 약속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참조. 2고린 1,20). 대림시기 동안 교회는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히브리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 약속의 결정적 구현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굴을 맞대고" 바라다볼 날이 올 것이다(1 고린 13,12). 교회는 깨어 있으면서 기쁨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따라서 교회는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17.20)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림시기는 '희망의 하느님'(로마 15,13)을 기념하며 기쁨에 찬 희망을 체험한다(로마 8,24-25 참조). 대림 첫 주부터 부르는, 대림시기를 특징 지우는 노래는 시편 24이다: "주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뵙나이다. 내 하느님, 당신께 굳이 바라오니, 이 바람을 헛되이 마시옵소서. 원수들이 나를 두고 좋아라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자는 부끄러울리 없으리이다(시편 24, 1-3)."

역사 안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오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회개를 요청한다. 복음의 새로움이란 꿈에서 결정적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빛이다. 대림시기는, 특히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통해서 본 대림시기는, 주의 길을 준비하고 곧 오실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초대의 시기이다. 대림시기는, 예수께서 복된 이들이라고 부르신 겸손한 이, 온순한 이, '야훼의 가난한 이'의 태도를 배우도록 가르친다.

[베르가미니(A. Bergamini), 김인영 역]

대림절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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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시기에 관해 자세히보기는 여기를 클릭

대림환待臨環의 기원
대림환은 독일지방 민속에서 시작되었다. 어둡고 추운 12월에 상록수 잎을 모아서 새 봄과 새 빛을 희망하는 표시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전통을 살려서, 16세기에 들어 독일 전역에서 영원한 빛인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의 희망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삼게 되었다. 독일에서 시작한 대림환은 그 후 여러나라로 확산되어갔다.

대림환의 모습
전통적으로 대림환은 상록수로 둥근 원을 만들어 그 원 안에 4개의 촛불을 놓는다. 세개는 보라색이고 하나는 장미색을 쓰는데, 모두 흰색이나 또는 보라색을 쓸 수도 있다. 매일 저녁 식사 전에 촛불을 켜고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면 기도를 드린다. 첫 주에 한 개를 켜고, 다음 주에는 하나씩 더 켜는 식으로 12월 25일까지 켠다. 초를 켤 때에는 짧은 기도를 드린다.

대림환의 상징적 의미
첫째 둥근 원형이다. 둥근 것은 시작과 끝이 없듯이, 하느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분임을 상징한다. 그리고 푸른 환은 헬레니즘 시대에 승리의 월계관으로 쓰였고 오늘날에도 올림픽이나 국제 경기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환영하는 뜻으로 꽃으로 만든 둥근 관을 씌워 그가 승리자임을 알렸다. 이처럼 푸른 환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낸다.

둘째, 푸른 빛을 띤 나무로 만들어졌다. 전나무 또는 대나무, 소나무 가지도 사용할 수 있다. 푸른 나뭇가지를 보면 우리는 다시 봄을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푸름은 살아있고 성장하는 생명을 표시하며 희망과 미래를 나타낸다. 그래서 대림환을 볼 때 우리는 하느님께 선물로 받은 생명을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생각하게 되고, 또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게 된다.

셋째, 네 개의 초가 있다. 이는 대림시기 중 네 주일을 나타내며, 구약의 4천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은 세상의 모든 곳, 곧 온 세상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빛은 세상 모든 곳을 두루 비춤을 나타낸다.

넷 째, 주일마다 하나씩 새 초에 불을 붙인다. 빛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 빛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앞서서 인도한다. 그리고 초의 색깔을 보면 성탄 대축일에 가까워질수록 진홍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하신 말씀처럼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제 무엇에도 물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에서 대림절을 시작하는 예식(대림환기도)
첫 날에 대림환을 가정에 준비하고, 인도자는 말한다: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져
우리는 이 빛과 푸른 잎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주신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빛,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는 오십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말에 귀기울입시다:

어둠 속을 헤메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고,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 같아,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이사 9,1-2)

그리고 함께 기도한다:

오 하느님,
저희는 기뻐하며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이 초에서 나오는 빛처럼
그리스도의 축복이 저희에게 내리시어
저희 앞길을 밝히시고
당신의 진리에로 저희를 인도하여 주세요.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오니,
이 세상 어둠 속에,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보내 주세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 첫 촛불을 켠다.

매일 가정에서, 대개 저녁식사 전에 촛불을 켜서, 매 주 하나씩 들여 12월 25일까지 켠다. 장미색은 대림 3주일에 켠다. 초를 켤 때, 기도를 할 수 있다.

대림환에 불을 켜면서 드리는 매일 기도
첫 주
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님,
모든 민족의 소망이시며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시여
저희 가운데 오시어 임하소서.

둘째 주
모든 민족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인류의 참 기쁨이시여,
당신의 자녀에게 오시어 구원하소서.

세째 주
다윗의 열쇠인 예수 그리스도님,
하늘 문을 여시는 이여,
오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소서.

네째 주
지혜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세상 만물을 손에 품고 계신 이여,
오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소서.

교황께서 제안하신 새로운 로사리오의 신비

교황께서 제안하신 새로운 로사리오의 신비
즉위 24주년 기념일인 2002년 10월 16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로사리오"(Rosarium Virginis Mariae : The Rosary of the Virgin
Mary)라는 새로운 교황 서한(Apostolic Letter)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서한을 통해 교황님은 오늘부터 (10월 16일) 시작하여 내년 오늘까지를
로사리오 신심의 특별한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황님은 특별히 세상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위해 로사리오를 바쳐야 한다고 권고하셨습니다.

이 서한에서 가장 괄목할 점은 교황님께서 새로이 5개의 신비를 로사리오에
추가시킬 것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교황님은 로사리오가 복음의 요약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성모송을 반복하며 성모님의 눈을 통하여 예수님의 얼굴을
묵상하는 기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세기동안 로사리오는 15개의 신비, 즉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포함해왔는데, 이 안에 그리스도의 공생활이 결여되었었다고 교황님은
설명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황님은 이 서한의 19번에서 그리스도의 세례와 수난사이에
공생활에 관한 신비를 로사리오에 포함할 것을 제안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는 각 개인과 공동체에게 있다고 부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활을 통해 자신을 빛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새로운 신비를 "빛의 신비"라고 명명하셨습니다 :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이 세상의 빛입니다. (요한 9:5)" 이 신비를 Luminous Mysteries 혹은
Mysteries of Light 라고 이 서한에 기록되어 있는데, 편의상 임시로 '빛의신비'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더 적절한 타이틀을 부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서한의 21번에는 그리스도 공생활에 관한 이 다섯 개의 빛의 신비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으며, 각각의 신비에 관한 묵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 받으심
2)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자신을 드러내심
3) 예수님께서 회개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
4) 예수님께서 현성용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심
5)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의 성사적 표현으로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

교황님은 "요르단강에서의 세례가 빛의 신비의 첫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물에 들어가실 때에, 이 결백하신 분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고 (고린도 후서 5:21), 하늘이 크게 열리며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으며 (마태오 3:17), 그때에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수행하셔야 할 사명을 그분께 맡기셨습니다."

다음의 신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주신 첫 번째의 징표입니다 (요한
2:1-12). 최초의 신자이셨던 마리아의 중재 덕분으로,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을 때에, 제자들의 마음을 믿음에로 열어주셨다고 이 서한은
또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빛의 신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요청하시며 (마르꼬 1:15), 겸손한 신뢰로
그분께 다가오는 모두를 죄에서 용서해주셨습니다(마르꼬 2:3-13; 루가 7:47-48):
특별히 그분께서 세우신 교회에 (요한 20:22-23) 맡기신 고백성사를 통해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서 봉사하는 자비의 교회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라고 이 서한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의 빛의 신비를 설명하시면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돋보이는 빛의 신비는 바로 현성용입니다. 전통적으로 타보르산에서 일어났었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얼굴로부터 찬란히 빛났을 때에,
놀라마지않는 사도들에게 하느님께서 '그의 말을 들어라'(루가 9:35)라고
명하시어, 수난의 고통을 그리스도와 함께 할 것을 준비하게 하시고, 또한 부활과
성령에 의한 변모된 삶의 기쁨도 그분과 함께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빛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음식으로 내어 주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요한 13:1) 함께
계시겠다고 하시면서 인류를 향한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38번에서는, 교황님께서 이 빛의 신비를 목요일에 바칠 것을 제안하고 계십니다.
환희의 신비를 월요일과 토요일에, 고통의 신비를 화요일과 금요일에, 영광의
신비를 수요일과 일요일에 아울러 바칠 것을 제의하셨습니다. 현재의 관례로는,
월, 목요일에 환희의 신비를, 화, 금요일에 고통의 신비를, 수, 토, 일요일에
영광의 신비를 바치고 있습니다.

"어느 요일에 이 빛의 신비를 바치면 좋겠습니까? 현재 영광의 신비가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겹쳐서 바쳐지고 있고, 또 토요일은 특별히 성모님의 날이므로,
성모님의 존재가 현저한 환희의 신비를 목요일 대신 토요일에 바치면, 목요일이
비게 되므로 이 목요일에 빛에 신비를 바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교황님께서 제안하고 계십니다.

교황님 서한의 전문을 보시려면 다음의 웹 싸이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http://www.zenit.org/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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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재상서(上宰相書)

상재상서(上宰相書)
+찬미 예수님,

한국순교성인의 피정강의를 웹에서 다시 한번 듣다보니,
궁금증이 생겨 그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상재상서는,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란 뜻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교론서입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분은 체포될 것을
예상하시고 이 글을 저술해두었답니다. 1839년 1월에 체포되자,
이글은 재상 이지연에게 전달되었습니다.
- 나눔방에 교우님이 올려주신 내용입니다.

< 상재상서 >

엎 드려 아뢰옵건대, 맹자가 양자와 묵자를 사설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해칠까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요, 한유가 석가와 노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을 미혹하여 혼란케 할까 했어였습니다.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하고 해됨이 있는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들여 내 버리면 안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나라의 천주성교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몹시 원통스러운 말로 사교로 몰아 큰 법을 세워놓고 신유년(1801)을 전후, 많은 인명을 없애면서도 한 사람도 그 기원과 전통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 이 도를 배우면 유교에 해를 끼치겠습니까, 일반 백성을 혼란케 하겠습니까? 이 도인 즉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사용하고 늘 실행해야 할 도이오니 해가 된다던가 혼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감히 그 도리가 그릇되지 아니함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천지 위에는 주재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물이요, 둘은 양심이요, 셋은 성경입니다.

만물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집을 가지고 비유하건대 그 집에는 기둥과 지추돌이 있고 대들보와 서까래와 문과 창과 담과 벽이 서로 홀연히 합해지고 저절로 섰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친 사람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생각컨데 천지는 커다란 집입니다. 나는 것, 뛰는 것, 움직이는 것, 심어 자라는 것,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어찌 저절로 생겨 났겠습니까?

만일 저절로 이루어 졌다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그 위치를 지켜 그르침이 없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 순서를 그르치지 않습니까? 흥하고 망하고 번영하고 시들음을 지배하는 이가 누구이며 착한 자에게 복을, 음난한 자에게 화를 주장하는 자 누구이겠습니까? 높이 솟은 하늘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모든 세상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가는 것을 자연으로 돌림은, 이는 마치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하여 그 아비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리있까?
세상사람들이 한편의 묘한 문장이나 한폭의 명화를 보면 흠모하고 찬탄하여 반드시 누구의 재주로 된 것인가를 물어 결코 평범히 무시하여 그저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만물이 가지각색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한없이 많은 것도 역시 일종의 명작이요, 명화인데 예로부터 이제까지 거의 없다시피 드물게 이것만은 그 작자를 묻지 아니하는 것이 웬 일이오니까? 이 세상 사물이 질과 모와 작과 위의 넉자를 벗어나지 못하옵니다. 질은 재료요, 모는 상태요, 작은 작자요, 위는 이용함입니다. 가까이는 우리 몸에서나 멀리는 모든 물건에서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위대한 천지가 어찌 그 작자가 없겠습니까? 만물을 보고 그 주재가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일 밝은 낮이 캄캄해지고 우뢰와 번개가 서로 마주치면 어린 아이라도 떨며 무서워하고 눈을 부릅뜨며 발이 무거워서 몸둘 곳이 없음을 압니다. 이로써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시는 대주재께서 계심이 마음과 머리 속에 박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간에 어리석은 남녀들이 만일 당황하고 막다른 지경이나 슬프고 원망스러운 때를 당하면 천주를 불러 부르짖으나니 이것은 그 본연의 심정이요, 타고 난 천성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몰라 두려워함이 모두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하여 상주께서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적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 공의 전기가 경서와 사기가 있어 나려왔습니다.만일 정서와 사기가 아니었으면, 요 순 우 탕 문 무 공이 어떠한 사상이나 어떠한 제도를 전하였는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상이나 제도가 대쪽에 새겨지고 책 속에 적혀 있음으로 예로부터 옳다고보아 금석같이 믿습니다. 우리 성교의 전해옴도 경전을 통하여 된 것입니다. 천지창조부터 역사가 끊임없이 기록되어 구약과 신약에 뚜렷하게 증명되고 오늘에 이르러 집집마다 입으로 외오고 소리로 노래합니다.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실어다가 집에 채우더라도 해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글이 중국의 경서와 사기에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경서 가운데 이런 말들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역경에 “상제께 바치나이다” 시경에 “상제께 아뢰나이다” 서경에 “상제께 제사하나이다”하였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를 바칠 곳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공경하라 하늘을 두려워하라.

이 세 가지 증거를 들어 주재(천주) 계심을 이미 밝히 알았으니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심은 우리에게 그 복을 보내주시고 그 나타내시려고 하심을 마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만드사 우리를 덮으시고 땅을 만드사 우리를 실으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사 우리를 비추시고 초목과 금수와 금은동철은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나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가지가지 큰 은혜가 이와같이 한이 없은 즉, 인간의 본분은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입고 먹기만 하면 인류를 내신 큰 은혜를 저버림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비유하여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주어 쓰게 하였는데 그 아들이 그 집에 살며 살림을 쓰면서 제가 잘난체하며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근본을 갚는 뜻을 모르면 이것이 효도입니까 아니면 불효입니까?

계명이란 천주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열가지 계명입니다. 1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위에 흠숭하고, 2는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서를 하지 말고, 3은 첨례날(주일)을 지키고, 4는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는 살인하지 말고, 6은 사음을 행치 말고, 7은 도둑질을 하지 말고, 8은 망년된 증참을 말고, 9는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 열가지 계명을 종합하면 두가지로 돌아가니 즉,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남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 세가지 계명은 천주를 흠숭하여 섬기는 절차요, 아래 일곱가지는 자기를 닦고 성찰하는 공부입니다. 안씨의 네가지 말라는 것이나 대기의 아홉가지 생각이 이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충성과 관서와 효도와 우애와 인애와 의리와 예의와 지혜가 이 안에 들어 있어 터럭만치도 부족된데가 없습니다. 이 도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이 정돈될 것이요, 한나라에서 실천하면 나라가 다스려질 것이요, 온 천하가 실행하면 온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열가지 계명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할 수 없으며 몸으로 범하기 뿐만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 범함을 금합니다. 무릇 사람의 잘못은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서 그 행동을 그릇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천주의 계명은 행동만 다스릴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위태롭고 도를 구하는 마음이 미약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합니다. 사욕과 편정이 백방으로 유인하여 교만으로 꾀이고 분노로 꾀이고 탐도로 꾀이고 사음으로 꾀이고 질투로 꾀이고 해태로 꾀여 사람을 사지에 몰아 넣습니다. 스스로 경계하여 물리치지 아니하고 또 그때 그때 공격하지 아니하면 함정에 빠짐을 면치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싸움이 계속될 때 싸워 이기면 공이 되고 이기지 못하면 죄가 됩니다. 공과 죄의 판결은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으사 선을 아니 갚으심이 없고,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으사 악을 아니 벌하심이 없습니다. 만일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까지 없어진다면 상이나 죄를 어디다가 베푸시겠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죽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무릇 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혼이요, 둘째는 각혼이요, 셋째는 영혼입니다. 생혼은 초목의 혼으로 나서 자랄 수 있으나 앎과 깨달음이 없고 각혼은 금수의 혼으로서 앎과 까달음이 있으되 뜻과 이치도 모르고 옳고 그른 것도 모릅니다. 영혼은 사람의 혼으로서 능이 나서 자라서 알고 깨달을 수 있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도리를 추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 가장 높습니다. 사람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그 혼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모태에서부터 타고 난 것입니다. 어찌 초목이나 금수처럼 더불어 썩어 없어지겠습니까? 예전에 유학자들도 혼이 세가지가 있고 영혼이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3혼이 여러번 흩어진다 또는 혼이 올라가고 혼이 내려간다 하고 그 혼이 셋이 있고 영혼이 죽지 아니함이 분명합니다. 이미 죽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면 어디를 가야 하겠습니까? 선자의 영혼은 천당에 올라 상을 받고 악자의 영혼은 지옥에 나려 벌을 받습니다.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락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입니다. 만일 천당을 보지 않고 지옥을 보지 아니 하였다 해서 천당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면 이는 눈먼 사람이 하늘을 보지 아니하였다 해서 하늘에 해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일이 이치에 합하면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고 이치에 합하지 아니하면 보일지라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없음이 보고 못보는데 매이지 아니하고 다만 이치에 합함과 이를 합하지 아니함에 있을 따름입니다. 이치에 합한다면 천년후에 올 일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알아낼 수가 있으니 하필 내가 몸소 보아야 하겠습니까?

국가에도 상과 벌이 반드시 있습니다. 공로가 있는 자는 조정에 불려 올려 벼슬과 녹을 받게 하고 황금과 비단을 주고 죄가 있는 자는 쫒아내어 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합니다. 한 국가의 임금에게도 상벌의 권한이 있거늘 하물며 천지의 대군에게랴 그 상은 이 세상의 벼슬과 녹에 비할 바가 아니요 영원히 끝없는 고통입니다.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나리는 결정이 한번 이루어지면 다시는 변경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 세상 사람들이 영혼이 죽지 아니함을 밝히 알면서도 어디 있는 줄을 모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이미 영원한 상과 영원한 벌이 있은즉, 세상 일이 헛된 환상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년을 넘지 못하면서도 이로운 것만 탐하는 마당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봐 걱정하는 새 어느듯 늙음이 닥아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몸이 한번 죽으면 부귀공명이 필경 허무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물며 부귀공명은 한 평생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 티끌같은 꿈에서 깨나기가 어찌 그리 어렵습니까?

오! 이 세상의 복은 어그러져 완전치 못하고 천상의 복은 완전하여 어그러짐이 없습니다. 이 세상 복은 잠시 뿐이요, 천당의 복은 영원하여 잠시 뿐이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잠시 뿐인 이 세상 복을 얻고저 함은 완전하고 영원한 천당의 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비록 천당의 영복을 얻지 못할지라도 지옥의 후환만 없다면 세상의 잠시 영화를 도모하여도 좋겠지만 이 지옥의 영원한 벌을 어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해 깨닫지 못하다가 육신이 죽은 뒤에야 뉘우친들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므로 목을 끊을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 솥이 뒤에 있더라도 꿋꿋하게 굽히지 아니하는 자가 대대로 적지 않습니다. 이것도 진정한 교의 한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해 말하면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고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뛰어나고 오직 하나요 둘이 없는 교입니다. 어찌하야 지극히 거룩한 교라 하는고 하면 천주께서 친히 세우셨고, 예로부터 성인들이 대대로 뒤를 이어 그 옳음을 탄명하였고, 그 규칙을 정하여 생명을 바쳐서 증명하기까지 이르렀으니 지극히 거룩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공번되다 이르는고 하니,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고 젊음을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같이 봉행하여야 할 도이오니 지극히 공번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바르다 이르는고 하니, 광대명백하고 크고 평평하여 터럭만치도 치우친 행위나 바른 것을 도루시키는 일이 없으니 지극히 바르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참되다 하는고 하니, 천하에 교가 없는 나라가 있는 적이 없으되, 그 교가 참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노자나 장자는 허무사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선도와 불교는 환상과 망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이밖에 군소 사상과 미신과 방술은 입으로 논할 가치도 없으나 성교의 도리는 진실하여 거짓이 없어 영원히 그르치지 아니하니 지극히 참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완전하다 하는고 하니 초목으로 비유하면 이단교들은 어떤 것은 줄기가 있어도 가지가 없고, 어떤 것은 잎이 있어도 꽃이 없고, 어떤 것은 꽃은 있어도 열매가 없어 시작과 결말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접속될 수도 없으되, 성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어 천지와 천신과 마귀와 인류의 내력과 과거 현재 미래의 질서가 가지가지로 다 갖추어 있으니 지극히 완전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슬프다. 금과 옥을 가르켜 억지로 기와라 자갈이라 하고, 먹어서 이로운 것을 가지고 억지로 못먹는 것이라 하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할고. 또 말하기를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 하니 이는 성교의 주요한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계의 제 4계명이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충과 효의 두 글자는 만대에 변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육신을 봉양함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로되 성교를 봉행하는 사람은 더욱 절실히 삼가고 조심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김에 그 예를 다하고 봉양함에 그 힘을 다합니다. 충성을 임금님께 옮겨 자기 몸으로 하여금 생명을 없애 끓는 물 속에 들어가고, 타는 불을 밟기도 하여 감히 회피하지 아니 하나이다. 이대로 아니하면 계명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 되오니 이래도 과연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학설입니까?

다만 나라의 임금이 금하는 데도 백성이 실행하는 자 있고, 집안 아비가 금하는 데도 자식이 실행하는 자가 있어 이것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이것도 역시 말은 되오사 지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집안의 아비가 가장 중하나, 한 집안의 아비보다 높은 이는 나라의 임금이요, 한 나라 안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나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이는 천지의 큰 임금이십니다.

집안의 아비의 명을 듣고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아니 하면 그 죄가 무겁습니다.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 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는 더욱 커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이 임금의 명령을 일부러 어기려는 것이 아니오 부득이 한데서 오는 것인데, 이것을 들어 부모와 임금을 업신여긴다 함이 옳은 말이 오니까!

또 말하기를 재물과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 합니다. 재물의 융통은 예로부터 국가를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해야만 백성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만일 재물을 융통하는 법이 없으면 온 나라 안에서 살아나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좋지 못한 법이라 하여 도리어 금해야 될 일입니까?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고 하는 것으로 말하면 금수도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거늘 하물며 그것을 성교에 돌리려 합니까? 십계의 여섯째에 간음을 행하지 말라 하였고, 아홉째에 남의 아내를 원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 계명은 몸으로 범함이요, 아홉째 계명은 마음으로 범함입니다.성교에서 간음을 엄격하게 금함이 이와 같이 거듭 겹쳐 있는데도 여자를 융통한다는 말을 퍼뜨리니 어찌 이와 같이 윤리를 거스리고 떳떳한 질서를 어지러이 하는 교가 있겠습니까?

교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사리의 바르고 그름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얼토당토 아니한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배척하니, 외국의 교라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금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금이면 보배가 되듯이 교가 어디서 왔건 그 거룩함이 참되면 그 교의 전래함에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중국으로 말하면, 각국 사람들이 왕래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불교의 스라마나의 숭상도 버려둡니다. 외국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나, 일찍이 금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불교의 해 끼침이 오래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찰의 건축은 가장 사치를 다한 것이요, 금부처와 동불상들은 재산을 낭비한 것입니다. 저 불교는 인도의 이단입니다. 성교의 글을 훔쳤고, 성교의 규칙을 본떳으나 옳은 도리를 그르쳤고, 기강이 뒤집혔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붉은 빛깔을 망치는 자줏물이요, 못자리를 망치는 가라지입니다. 길흉화복의 설을 퍼뜨려 무식한 사람들을 공갈함이 이제 이르러 괴상한 폐풍이 되었습니다.

무당, 풍수, 점장이, 상장이와 같은 사람들 까지도 부녀와 아이들을 홀리고 혹하게 하여, 돈과 재물을 살살 낚아감을 예사로 보아 넘기면서 홀로 성교만이 포섭의 은전을 받지 못함은 어찌된 일입니까?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실을 살피면 그 인간이 어떠함을 알 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역적질을 하였습니까,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일찍이 간음을 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또 법에도 없는 형벌을 해서 천주를 배반케하고 더러운 폭설로 모독하는 사실이 허다합니다. 대저 천주는 만물을 만드신 큰 부모시오, 만물을 다스리시는 큰 주재십니다. 옛 성현들은 일이 생겼을 때 우러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해마다 계속 흉년을 당하고 있습니까? 백성과 나라가 곤궁에 빠진 이 때 바라건대, 우리의 어지신 임금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해뜰 무렵 진지를 잡수실 만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사 어지심을 베푸시고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흡족케 하시옵소서. 아!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님의 백성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이 인간들이 어찌하여 극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아낌이 없는고.

옥안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데가 없는 것 같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대저 목숨을 덜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교의 증거가 되고, 천주의 영광을 드러냄은 우리들의 분수에 있는 일입니다. 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할 때를 만나 한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처럼 쌓인 이 하회를 장차 백대의 후세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에 밝히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된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나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도의로 돌아와 금령을 늦추어 체포하는 법을 거두고 옥에 같힌 사람들을 내놓고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제 업을 즐기면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또 한 말씀드립니다.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바입니다. 살이 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 먹을 수 없거늘,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영혼의 양식은 진리와 덕행입니다. 아무리 지극한 효자라 해도 맛좋은 것이라해서 잠들어 있는 부모앞에 차려드릴 수 없는 것은, 잠들었을 동안은 먹고 마시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도 그렇거든, 하물려 영원히 잠들어 버렸을 때는 어떻하겠습니까? 쌀과 수수와 기장과 피와 향기로운 과일로 된 잿상을 차려 놓음이 헛된 일이 아니면 거짓된 일입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헛되고 거짓된 예로 어찌 이미 죽은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양반 집의 신주라고 하는 것도 천주교에서는 금하는 것입니다. 이미 정신의 기백과 육체의 골격이 서로 연결된 것이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노고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비라 어미라 함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데 목수가 만들 것이요,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것을 가지고 참 아비와 참 어미라 부릅니까? 바른 이체에 근거가 없고 양심이 허락지 아니합니다.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 끝 -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정하상 바오로
1795 - 1839(45세) 회장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바울로 정하상(丁夏祥)은 순교자인 정약종 아우구스띠노와 유세실리아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기도와 교리를 배워 깊은 신앙을 가졌으며, 한국천주교회 초기 평신도 지도자였다.

신 유박해 때 부친과 친형 철상(哲祥)이 순교하자 나이 7세인 정하상은 누이동생 정혜와 어머니를 모시고 마재(馬재:경기도 양주군)의 큰 댁으로 내려왔다. 20세때 단신 상경하여 조증이 바르바라 집에 머물면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고, 교리와 학문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하여 함경도에 귀양 중에 있던 조동섬 유스티노에게 찾아가 수년간 학덕을 연마하기도 했다.

1801 년 신유박해 이후,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신앙의 열기를 북돋우면서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 3회나 왕래하였다. 1823년부터는 국내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의 일을 보면서,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북경 주교를 통하여 교황청에 보내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교구 설정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1831년 9월9일 자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조선교구가 설정되었다.성직자 영입에 지속적인 노력으로 유방제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비밀리에 모셨고, 1837년에는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를 모셨다. 앵베르 주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정하상에게 신품성사를 베풀어 한국의 최초 성직자가 되기를 기대하였으나,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1839년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하였는데, 온갖 고통을 강인하게 참아 나간 모범을 보여 평신도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여유있게 나타내었다. 자신의 믿음을 순교로써 실증했었다.

정하상의 '상재상서'(上宰相書)는 한국 최초의 호교론서(護敎論書)이며,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박해를 중단시켜야 할 이유와 주장을 밝힌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피를 쏟는 형벌에도 태연자약하였고,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가면서도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녔다고 하니 신앙을 생활화한 산 표본이라 하겠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
대한민국

김대건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1882년 충청남도 내포 솔뫼(당진)에서 독실
한 천주교의 신자인 김제준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50세 때 천주교에 입
교하였는데 천주교 박해로 여러차례 검거되어 고초를 겪다가 1718년 옥중에서 순교했
다. 이에 김대건의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
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1839년 기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은 1836년(헌종2)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세례
를 받고 신학생으로 뽑혔다. 김대건은 최양업, 최방제 등과 함께 마카오로 가 그곳에
있는 파리 외방 선교회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중국어, 신학, 그리고 철학 등 새로운
학문을 두루 배웠다.

공부를 마친 김대건은 기해박해 이후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나라로 들어오려
고 했으나 두 번이나 실패했다. 1845년 1월 비로소 국경을 넘어 한양에 몰래 들어왔으
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매우 거세어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상하이로 건너갔
다.

그리고 그 해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김대건은 우리 나라 최
초의 신부가 되었다.

신부가 된 김대건은 프랑스의 페레올, 다블뤼 주교와 함께 상하이를 떠나 충청남도
강경으로 몰래 숨어 들어왔다. 그리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비밀리에 전교 활동을 펼쳤
다.

김대건은 이듬해 동료 선교사들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비밀 입국 통로를 알아보
기 위해 백령도 부근은 돌아보다가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김대건은 몇몇 대신들의 부탁으로 옥중에서 세계 지리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또 영
국에서 만든 세계 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심한 고문을 받다
가 효수형을 선고 받았다. 김대건은 신부들과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 뒤 서
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김대건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신부로 천주교에 대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천주교 교
리와 문화를 전파하다가 죽은 순교자이다. 김대건 신부는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
을 맞아 우리 나라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우리나라 순교자 102명
과 함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주보성인이란?

주보성인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이 세례명을 정하는 것처럼 여러 단체(학교, 병원, 성당, 회사, 등)도 주보성인을 정하여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 우리를 위한 기원을 청하고 생전에 그 성인의 가르침이나 삶을 본받고자 주보성인으로 모셔 존경하는 것입니다.

산호세 한인 천주교회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한국천주교회 초기 평신도 지도자이셨던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혼인은 성사

혼인은 성사
혼인 성사 생활

세례를 받은 한 남자와 역시 세례를 받은 한 여자가 이루는 결혼은 혼인성사가 된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결혼 생활은 혼인성사생활이 된다. 물론 그들의 결혼이 교회에서 인정하는 유효하고 합법적인 혼인성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와 증인들 앞에서 자유로이 혼인 합의를 표명해야 한다.
혼인성사생활을 시작한 부부의 사랑은 이전과는 달리 더 이상 순수 자연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성사적 은총을 가져다 주는 초자연적 사랑이 되어 그들 부부를 구원할 수 있는 은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랑의 부부 생활과 가정 생활로써 부부는 구원받는 것이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 달리 부부 자신이 성사를 이룬다. 두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곧 혼인성사이고 그 결혼은 부부 당사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가 세례를 받으면 그들의 결혼 생활도 혼인성사생활이 되는 것이다. 또한 혼인성사는 일회적으로 집전되는 다른 성사와 달리 '항구한 성사', '지속적인 성사'라고 말한다. 두 그리스도인이 혼인성사생활을 계속하는 한 혼인성사는 지속적으로 거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신자가 자신들의 혼인 생활이 갖고 있는 위와 같은 깊은 의미를 모르고 있으며, 혼인 생활의 종교적, 신비적, 성사적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혼인성사를 세례 받은 두 그리스도인의 결혼식으로서 교회에서 새 가정을 이루어 주고 축복하는 예식 정도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두 세례자의 혼인식은 혼인성사생활을 시작하는 예식일 뿐이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스스로 성사를 집행하고 스스로 성사의 은총을 받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그들이 주고받는 사랑은 성사적 은총, 구원의 은총을 지닌 사랑이 된다. 그들의 사랑하는 삶은 이제 성사적 삶이며 이 삶에서 그들은 구원받도록 배려된 것이다.
위와 같은 혼인성사의 본질을 좀더 깊이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성사혼(구원 질서상의 혼인)을 자세히 다루기 전에 먼저 모든 혼인(자연적 제도로서 혼인, 창조 질서상의 혼인)의 특성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1. 모든 혼인은 성사적이다
1) 비관주의

교회의 역사 중에는 혼인, 부부 사랑, 부부의 일치를 죄악시한 면이 있었다. 영과 물질의 대립 관계를 주장한 마니케이즘의 영향이었다. 물론 하느님께서 지으신 모든 영적, 물질적 피조물의 선성(善性)에 대해서는 아무도 다른 의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마니케이즘의 이원론이 개입되었던 것이다. 원죄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일부 흐름 때문에 인간의 역사적 실존 전체, 나아가서 부부 생활이 비관주의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교부 시대의 일부 신학 흐름에 따르면 원죄 이후 인간 실존은 세계와 역사의 질서에 혼돈을 가져온 존재이고, 영혼의 원의와 육체의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 존재이며, 천사적 존재 양식에 대한 갈망과 물질적 필요성 사이를 오가는 비참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인간이 이러한 존재라면 그들이 하는 혼인은 역사적 인간이 겪어야 하는 갈등 상황을 삶으로 드러내는 표지일 뿐이며, 영혼과 육신의 싸움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삶의 과정일 뿐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우리 인간이 죄를 지어 천사와 같은 상황과 계급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혼인은 인종의 성장을 위해서도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혼인 자체가 죄스러운 실재는 아니더라도 그것이 죄악의 결과인 것만은 틀림없게 되어 버린다. 나아가서 종말에 구원받은 모든 인간이 부활하는 것은 인간이 다시 천사와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남녀 양성으로 창조하신 것은 그들이 원죄를 지을 것을 미리 내다본 결과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원죄가 없었다면 성적 결합 없이 인간이 탄생할 뻔하였다. 성적 행위는 물론, 인간의 성 그 자체가 벌써 죄악에서 나온 것이 되고 만다. 실제로 예로니모는 "하와가 지상 낙원에 있을 때는 동정녀였다. ..... 동정이 그 본성에 주어졌는데 결혼이 범죄 이후 생겨났다."라고 했고, 아우구스티노는 "자녀 출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상대방에게 몸을 요구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를 얻자면 그 길밖에 없으니 괴로움 겪는 셈치고 그 요구에 동의하십시오. 그 행위는 아담의 죄벌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내린 벌에서 온 그것이 행여 유익한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육체 관계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노는 결혼의 세 가지 선을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자녀 출산, 상호 사랑과 충실, 성사적 표지였다. 그러나 그가 자녀 출산을 혼인의 선으로 말한 것은 자녀 출산을 단죄하면서 온갖 성적 방종은 허용하던 영지주의와 마니케이즘에 대항하려는 것이었지 부부 행위 그 자체를 좋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혼인의 세 가지 선을 말한 것은 이원론적 사고에 바탕을 둔 혼인의 기능에 대한 해석이었지 자연과 초자연, 창조 질서와 구원 질서의 관계를 바르게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구원이란 죄의 결과인 혼인과 부부 행위가 필요하지 않은 천사와 같은 원죄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부부 생활 그 자체의 원초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곧 초자연이 자연을 들어 높여 하느님의 원초적 창조 계획에 따른 존재 그 자체의 목적을 실현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거의 오늘날까지 이어 온 혼인 신학은 동정을 혼인보다 상위 개념으로 보고 혼인 신분의 여러 요소들을 평가할 때에는 언제나 비관주의가 작용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2) 모든 혼인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제도이다
오늘의 세계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그분의 손길을 애써 외면하는 세계이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는 인간이 하는 모든 혼인은 하느님에게서 유래되었다는 혼인의 신적 기원을 고수한다. 그것은 성서와 교회 전통, 교도권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 바로 혼인의 창시자" 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혼인에 대한 모든 가르침의 시초와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혼인의 신적 기원에서 다음과 같은 혼인의 특성들이 도출된다.

(1) 혼인과 가정은 자연적 제도이다
혼인이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결론 가운데 하나는 혼인과 가정이 자연적 사회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혼인은 인위적 제도가 아니고 가정은 사람이 만든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혼인과 가정의 본질, 구조적 법칙은 인간 본성의 창조자이신 하느님에게서 유래된 것이므로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간의 의지로 변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각개인이 혼인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그의 자유에 달려 있으나 일단 혼인의 신분을 택했다면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일부일처의 혼인 구조, 혼인의 개념과 목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정은 국가보다 우선하는 첫 번째 자연 사회다. 그것은 시기적으로도, 본성적으로도 그러하다. 따라서 국가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가정의 모습과 구조를 지배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또한 권력으로 가정 생활을 억압하고 가족 관계를 해체하고 분리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는 가정의 본질적 권리들을 인정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보조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2) 모든 혼인은 좋은 것이다
혼인이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에서 도출되는 또 하나의 결론은 혼인의 선성(善性)이다. 인간의 성, 남녀간의 사랑, 혼인과 출산은 분명히 자연스런 일, 적극적인 일, 선한 일임을 우리는 성서에서 그 증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성서의 어느 곳에서도 성을 본질적으로 멸시하거나 죄악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에 따른 차이, 남녀의 성적인 만남은 하느님께서 바라시고 확정하신 창조 질서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다. "보시니 좋더라."(창세 1,31)라는 하느님의 탄성은 그 어느 피조물보다 남성과 여성으로 된 인간을 향한 것이었다. 남녀 사이의 관계는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남자와 여자로 존재한다. 남자 또는 여자가 아닌 인간은 없다.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선언에도 포함될 정도로 인간 본성의 적나라한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며 서로를 위하는 것은 인간 본래의 아름답고 좋은 삶의 모습이다.
교황 요한 3세 시대, 551년에 열린 부라가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였다. "만약 누가 마니케우스나 트리쉴리아누스처럼 혼인을 단죄하고 출산을 기피하는 말을 한다면 그는 단죄 받을 것이다." 성, 혼인, 출산에 관한 성서의 낙관주의는 혼인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후 혼인 신학이 인격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 원천이다. 오늘날 성은 개별 인격 성장의 장, 사회적 성장의 장, 초월적 면모 등 인격적이고 전체적으로 인식하지 더 이상 출산의 도구나 또는 그 반대인 쾌락의 도구로 인식하지 않는다. 절대 신이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실재 가운데 하나인 혼인도 그분의 선성에 참여하는 선한 실재임에 틀림없다.

(3) 모든 혼인은 거룩하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실재이므로 좋은 것일 뿐 아니라 종교적 성격, 신비적 특성을 지닌 거룩한 실재이다. 남성과 여성, 두 배우자 사이에 흐르는 상호 유대는 하나의 신비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하느님의 당신 백성에 대한 충실성, 그분의 창조력이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곳이 바로 부부 사이이다. 하느님의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될 수 없는 신비이듯이 부부 사이의 유대도 하나의 신비인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부부 사랑의 네 가지 특성을 말했다. 그것은 전체성, 유일성, 불가분성, 출산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역시 그러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내어 주실 정도로 전체적 사랑을 당신 백성에게 쏟아 부으셨다. 그분의 사랑은 갈림 없는 유일성, 포기하지 않는 충실성과 불가분성을 지녔다. 그분의 인간 사랑은 새 인간을 창조하여 당신 나라로 부르시는 출산 능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신비스런 종교적 실재인 하느님 사랑과 부부 사랑은 참으로 닮은 점이 많다. 부부 사랑은 하느님 사랑이 가장 뚜렷이 외적으로 구현된 모습들 가운데 하나다.
교황 레오 13세는 "혼인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제도요 시초부터 어느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육화의 모형이었으므로 혼인은 외부적 원인에서가 아니고 그 기원에서 거룩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거룩하고 종교적인 성격은 인간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자연 본성에 부여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모든 참된 혼인은 존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서 거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순수 세속적 실재가 아니라 종교적 실재임에 틀림없다. 성과 결혼이란 결코 순수 인간적인 면모일 수만은 없다. 그 두 실재가 갖고 있는 창조 질서상의 진선미로써 스스로를 뛰어넘는 초자연적 실재인 것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성과 결혼이라는 실재 역시 그 자체 안에만 고유한 기초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배우자 사이의 상호 헌신은 그들 자신과 그 삶의 모습을 있게 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헌신과 수용의 구체적 형태인 것이다.

(4) 혼인은 성소(聖召)이다
혼인의 신적 기원이 지니는 가장 개인적이고도 실존적인 면모는 모든 혼인이 하느님의 성소라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 확실한 신학적 결론이다.
구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혼인의 신분은 하느님의 부름에 따른 것이며, 혼인 생활과 가정 생활은 인간이 당신의 부름에 응해서 하는 생활임을 가르치고 있다(시편 128; 잠언 19,4; 집회 26,3.14; 창세 2,18.22 등 참조). 신약성서에서도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논쟁을 하면서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부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마르 10,2-9 참조). 바오로 사도 역시 각 사람의 삶 모습은 하느님의 부름임을 밝히며 혼인 생활 역시 그 중 하나임을 말하고 있다(1고린 7,7.17.20 참조).
혼인이 하느님의 부름이라는 것은 역대 교도권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나는 하느님께서 혼인 생활로 당신을 섬기도록 불러 주신 자녀들에게 말한다. ...... 부부는 자기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고유의 성소를 완전히 따르며 고유한 방법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혼인성사로 견고케 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좀더 구체적으로 혼인에 부름을 받은 신자들의 임무를 밝혀 주고 있다. 사랑의 "인간 공동체 형성, 생명에 봉사, 사회 발전에 참여,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참여"가 그것이다. 물론 두 교황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혼인을 언급하였지만 다른 모든 자연 혼인도 배제하지 않았다.
성소는 사랑의 부름이다. 또한 성소는 어떤 신분과 그 신분에 따르는 임무에 대한 초대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사랑으로, 그분의 모상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났고 그 신분에 따르는 삶의 모습, 곧 그분의 동반자로서 사는 삶에 부름을 받았다. 이러한 기본 성소에 이어 모든 부부는 혼인의 성소를 받아 그에 따르는 구체적 임무 역시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5) 모든 혼인은 성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혼인도 처음에는 다른 외교인들의 혼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제가 참석하여 축복을 했지만 그들의 혼인은 그들 외부에서 부가되는 사제의 축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세례로, 곧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거룩한 종교적 실재로 여겼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혼인의 성사성은 교회의 시초부터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인의 혼인뿐 아니라 모든 혼인이 일정한 성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혼인 안에서 창조의 실재와 구원의 실재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맺음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충실의 상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완결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은약(恩約)의 모상이며 실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사혼이든 자연혼이든 모든 혼인은 그 최종 동기를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의 은약에 두고 있고, 혼인의 참되고 고유한 의미 또한 이 은약 안에 있다. 따라서 순수 자연혼은 없다. 모든 혼인이 다 성사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의도 안에서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모든 혼인이 성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토마스 데 아키노는 비영세자들의 자연혼은 가능태의 성사라고 하였다.
물론 본래적 의미에서 종교적 성격이나 성사성은 성사혼 안에서 그 진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혼인이 그 기원에서부터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적 일치의 징표며, 그 일치의 참여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그 안에서 작용하는 성사적 성격을 마땅히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혼인이 거룩하고 성사적이라는 것은 혼인의 목적을 살펴볼 때도 그러하다. 혼인을 통한 부부의 상호 일치와 완성이라는 개별 인격적 목적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치하는 외적 구현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자녀 출산과 교육이라는 혼인의 사회적 목적 역시 하느님과 공동으로 하는 창조 사업이며 공동의 교육 사업에 속하므로 그 안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거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성사는 이러한 모습으로 모든 혼인 안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혼인반지의 의미

혼인반지의 의미
보석과 반지의 아름다움
보석이라는 것은 매우 신비한 힘을 지닌 것 같다. 우선 그것이 지닌 신비로운 빛깔도 그렇거니와 또한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을 설레게 만든다. 보석에는 어떤 인공적인 물감으로도 물들일 수 없는 하느님의 색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이 반지를 장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로 인해 보석은 더욱 빛날 것이다. 왜냐하면 반지란 단순한 보석이 달린 고리를 뛰어넘는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담겨질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반지의 모양을 살펴보자. 그 환모양의 둥그러움에서 어떤 신비가 느껴지지 않는가? 돌고 돌아도 제자리에 오는 그러나 다시 정지하지 말고 자꾸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을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반지가 지닌 더 큰 매력은 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반지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갖는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백일이 되고 첫돌이 되어 처음으로 장식하는 것도 반지일 것이고 결혼예물의 중심이 되는 것도 반지이며 또한 오랫동안 인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들이 금혼식 때 나누는 것도 반지일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반지는 혼인성사의 신비를 표현하기도 하고 또 수도자들의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상징하기도하며 주교님들의 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중요한 상징을 가지는 것일까?

혼인반지의 유래
오늘날 결혼식에 예물로서 반지를 교환하는 것은 보편적인 행위이다.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예물로 반지를 교환한다. 한국의 장신구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관습은 서양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도 가락지라는 반지가 존재했으나 어머니가 딸이나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나 생각되며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것으로 정착된 것은 서양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양에서의 결혼과 관련지어 반지가 사용된 것은 문헌으로 알려진 바로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로마문화가 그리스의 헬레니즘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이므로 어쩌면 헬레니즘의 풍습이 로마에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로마시대에 반지는 약혼식에서 처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선물했는데 반지는 약혼의 정표로서 철로 만들어진 것이며 약혼 후에 신부는 이를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루치우스 안네우스 세네카(BC.90-AD.65년)나 플리니우스 체칠리우스 2세(AD.27-29년)의 기록에 의하면 약혼한 신부는 어떤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랑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서 반지를 끼었다고 한다. 히브리와 이집트 등의 셈족 문화권에서 반지는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고 특히 왕들에게는 인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에서도 물론 반지는 장식물로 사용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는 표지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노예들도 자신의 주인이 누구라는 고리를 차고 있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때 신랑이 일방적으로 신부에게 약혼의 의미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어떤 예물의 의미보다는 약혼식을 통해서 신부가 신랑에게 귀속되었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았겠는가 추정된다. 아무튼 이러한 로마의 관습은 그대로 교회에 이어지게 되며 초대교부 떼르뚤리아노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교회 혼인에 반지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이 교회 안에서 고착되었고 후에 반지를 축복하는 예절이 중세기에 스페인과 갈리아(오늘의 프랑스)지방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떼르뚤리아노가 이야기했지만 교회에서의 반지는 참으로 두 사람이 교환하는 인격, 다시 말해서 사랑과 신의의 표지가 되는 것이다.

혼인반지의 의미
반지는 인류가 청동기 문화를 구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 해온 오랜 장신구이며 다른 모든 것들이 수없이 그 모양을 바꿔왔음에도 그 형태가 오늘까지 거의 변형 없이 전해 내려온 장신구이기도 하다. 그러면 많은 다른 장신구들 중에서 왜 로마에서는 결혼식에 반지를 사용하였을까? 우리가 이 대답을 찾아낸다면 교회에서 어떤 생각에서 이 반지를 받아들였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로마문화는 헬레니즘 문화를 그 토대로 삼는다. 로마와 헬레니즘 모두가 반지를 혼인의 표징으로 사용했다면 우리는 그 근거를 헬레니즘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빌론과 이집트의 전승에서 반지는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태양신의 상징이며 또 하나는 왕권의 보증(인장반지)이기도 하였다. 혼인에 관한 세미나를 위한 작업을 하다가 나는 헬레니즘의 신화에서 반지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폴리크라테스는 왕이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고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힌 왕의 반지를 높은 탑 위에서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반지는 물고기가 삼켰고 한 어부는 그 물고기를 잡아 반지를 찾아내고 그 왕의 반지를 다시 폴리크라테스에게 가져다준다. 헬레니즘의 신들이 정한 운명을 인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여기서 그 반지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만약 혼인이 이와 같이 사랑과 신의로 매듭지어진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이라면 혼인에서의 반지는 그와 같은 사랑의 끈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반지는 바로 혼인에서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인간의 힘으로는 이제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결합의 상징인 것이다.
혼인은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창세1,27)에 의해 이미 확정지어진 운명이며 따라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이란 하느님의 창조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다시 확인하시며 혼인을 통해서 두 인격체가 하나가 됨을 선포하신다(마태 19,3이하). 더 나아가서 사도 바오로는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어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에페5,25) 가르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운명적인 일치의 상징으로 저 결혼반지는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교 문화였던 반지교환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더욱 상징화 시켰다. 오늘날 사제는 혼례식에서 반지를 축복하며 말하기를 반지는 부부가 나눌 사랑과 신의의 표지라고 선포한다. 또한 신랑신부는 반지를 교환할 때 자신이 마음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반지를 주노라고 온 하객(회중) 앞에서 선포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환인가? 그러나 참으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나누는 반지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의 혼인풍습과 반지 사용은 후 동정녀들의 표징이 되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상징하는 서원 반지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수녀님들은 그리스도와의 정주의 상징으로 반지를 끼는 것이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자신들의 삶을 기쁘게 하느님과 묶는 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에 이르러 제후들의 관습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주교님들도 자신들이 관장할 교구의 목자로서 양떼들과의 운명의 끈으로 자신을 묶기 위하여 목자의 반지를 끼고 사목에 임하시는 것이다.

이 완 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신부)

예수성심성월 (6월)

예수성심성월 (6월)

1.예수 성심 공경의 의의

예수의 성심을 공경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때문에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인격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기관이고, 예수님의 영혼에 그리고 천주 성자위(聖子位)에 결합되어 있어 공경의 대상이 된다. 마음의 상태를 제일 먼저 드러내는 기관이 심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슬픈 마음, 기쁜 마음이라는 말을 쓰고 심장을 이런 마음의 상징으로 삼는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들은 성심을 열심히 공경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확고히 다지고 많은 냉담자를 회개시켰으므로 예수성심 대축일 감사송에서 "모든이가 구세주의 열리신 성심께로 기꺼이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펴내나이다"하며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그 열정이 십자가를 선택하게 하였고 그분의 끊임없는 사랑이 성사 안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며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있다.

성 보나벤뚜라는 "십자가 위에서 잠드신 그리스도의 늑방(심장)에서 교회가 생겨나고,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419, 37)'라는 성서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느님의 성의(聖意)는 한 병사가 창으로 그 거룩한 늑방(심장)을 헤쳐 열어 우리 구원의 대가인 피와 물이 훌러나오도록 했다.

그분 성심의 은밀한 샘에서 흘러나온 이 피와 물은 교회의 성사에 은총의 생명을 베풀 힘을 주었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 게 하는 생명수가 되었다"(생명의 나무에서)고 했다.

2. 예수 성심 공경의 중요성

예수 성심을 믿는 마음으로 열성을 갖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그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내적 신심으로서의 정신적 측면이다.

(1)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기 위해 주의 생애, 수난, 성체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의 성심을 사랑하도록 힘써야 한다.

(2) 예수 성심을 사랑해야 한다. 성심의 사랑은 특별히 성체성사에 담겨 있으니 성체 앞에서 조배드리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공경해야 할 것이다.

예수 성심을 믿고 생활하는데 있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외적 신심이다.

외적 신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알아보면,

(1) 예수성심 대축일 : 성체성혈 대축일 후 금요일을 축일로 정하고 배반 당하신 성심을 위로한다.

매달 첫 금요일에 미사에 참여하면서 예수의 수난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팽개쳐져 있는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보상하는 지향을 두고 영성체하기를 아홉달 동안 계속한다.

(2) 성시간 : 죽음의 고통에서 고민하신 예수의 수난에 관하여 묵상하거나 합당한 기도를 바친다.

(3) 예수성심 성월에는 특별히 예수 성심께 자신과 가정을 봉헌하고 기도를 바친다.

예수 성심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 성심을 공경해야 한다. 특별히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은혜와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주님께 청해야 하겠다.

3. 예수성심의 약속

1674년 성년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꼭이 성체조배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성심을 열어 보이시고 죄인들의 냉담과 배은망덕을 탄식하시면서 "적어도 너는 온갖 힘을 다하여 죄인들의 배은을 보속하라"고 부탁하시면서, 그방법으로 자주 영성체하고 매달 첫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성시간을 가질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다음의 약속을 하셨다.

- 내 성심을 공경하는 자들의 지위에 요긴한 은총을 준다.
- 저들의 가정에 평화를 준다.
- 저들의 모든 근심 걱정중에 위로를 준다.
- 저들이 살아 있을 때와 특히 임종시에 저들의 의탁이 될 것이다.
- 저들이 경영하는 모든 사업에 풍성히 강복할 것이다.
- 죄인들은 내 성심에서 무한한 인자의 샘과 바다를 얻을 것이다.
- 열심한 자는 빨리 완덕에 나아갈 것이다.
- 내 성심 상본을 모시고 공경하는집안에 강복할 것이다.
- 사제들에게는 극히 완악한 마음이라도 감화시키는 은혜를 줄 것이다.
- 내 성심 공경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내 마음에 새겨 없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 누구든지 9개월 계속하여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통회의 은혜를 주어 은총 지위에서 죽게 할 것이다.

4.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의 올바른 정신

이 신심의 참 뜻은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의 인성이 갖고 있는 사랑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사랑을 갖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인간들을 구하시고자 하는 신적인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수난 당하실 때 그분의 마음을 한없이 커다란 고통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애통해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죄를 통회하고 보속함으로써, 그 고통을 감해 드리고 위로해 드린다는데 이 신심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이 신심은 그리스더의 사랑의 성심을 닮아가는데 그 뜻이 있으며 성서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올바른 신심이라 하겠다.

5.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행위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은 한마디로 예수님 마음에 대한 우리의 신심행위이다.

신심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하여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데 있다. 신심행위는 하느님의 신비와 하느님과 관련된 어떤 창조적 실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행위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사도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 각종 신심행위가 태동하여 교회 쇄신과 신자들의 영성생활의 활성화에 기여하여 왔다.

신심행위는 성사가 아닌 예배행위이며 이를 전례와 관련시켜 볼 때 준전례적인 행위와 비전례적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성체성사와 연관된 성체현시, 고백성사와 연관된 말씀의 전례 등 성사집전의 연장적 성격을 띤 신심행위들이다.

이와 달리 후자는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등 성사집전과 무관한 신심행위들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항상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지향하는 한 전례와도 관계를 지니지만 엄격히 말해서 전례는 아니고 전례에 비하여 2차적인 예배행위이다.

예수성심 성월의 신심행위에는 성시간,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 보속 등이 있고 특별히 교회에서는 성월기도로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한다.

1) 예수성심 봉헌

예수성심 봉헌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측면에서 감성적, 이성적 사랑의, 그리고 신성의 측면에서 신적인 사랑, 즉 사랑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심장을 봉헌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여 인격 전체를 예배하는 신심행위이다.

그 내용은 (1) 그리스도의 구속사랑을 모방하고 (2)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을 봉헌하며 (3)구속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죄의 보속을 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성심강림 후 둘째주일 다음 금요일에 교황 비오12세가 권고한 보속행위를 하면서 예수성심 축일을 지내고, 매월 첫금요일에 보속의 정신으로 미사참여, 영성체, 성시간을 가지며, 그리스도왕 대축일마다 자신의 봉헌, 예수성심 호칭기도, 가정봉헌 기도를 바친다.

2)성시간

성시간은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의 하나로서 한시간 동안 특별히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지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마태 26, 40)라고 한 성서말씀에 근거하여 시작된 성시간은 성체현시와 예수 수난에 대한 묵상, 장엄기도, 성가, 성체강복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공동체에 의해서 또는 개인적으로 이루어 진다.

6.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성모성심은 예수성심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예수성심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인간은 배은하기 때문에 모욕된 사랑에 대하여 보속하는 사랑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성모성심은 하느님이 예수께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그 목적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 마음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힘쓰시는도다"라고 한 성 프란치스꼬 살레지오의 말씀처럼 성모성심은 성총의 모친이시므로 자기 눈물로 우리를 낳으시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성모의 보혈로 된 예수성심에는 성모의 품성이 담겨있고 성모성심에는 천주성신의 전능으로 된 예수성심의 품성이 들어 있다.

< 발췌 : 디다케 1993년 6월호 >

가톨릭의 성령쇄신 체험

가톨릭의 성령쇄신 체험
가톨릭 교회의 많은 신앙 쇄신(renewals) 중의 하나인 성령쇄신은 1967년에 Duquesne 대학에서 몇명의 학생들과 신학교수들이 주말 피정을 갖는 중에 시작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시작이었으나 1990년에 이르러서는 세계적으로 7천 2백만이 넘는 신자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천 5백만명) 지금 전세계적으로 120개의 나라에 공인된 조직이 있습니다. 이 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요한 23세의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많은 분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오 성령이시여, ... 당신의 선물들을 풍성히 베푸시어 ... 오늘 우리의 이 시대에 새로운 성령강림절(Pentecost)로써 당신의 경이로우심를 새롭게 하소서." 이었습니다.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은 고린토 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의 쇄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개인의 서약을 새롭게 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서약은 교회의 역사에서 모든 진정한 쇄신의 중심이 되어 왔습니다. 이 서약은 성령님께서 다시 기름 바르심으로써 시작합니다. 이것은 때로 "성령세례"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이것은 개개인들이 성령을 주시는 장본인이신 예수그리스도께 자신들의 가슴속에 성령의 선물을 드러내 주십사고 청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디모테오에게 권고하기를,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II 디모테오 1:6)

이 것은 주로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해 받은 선물들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은사들의 수여와 더불어, 성령쇄신을 체험한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새롭고 깊은 개인적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기도에서 새로운 힘을, 성서에서 새로운 사랑을, 그리고 교회와 예식과 성사에대한 새롭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적 쇄신의 특징들은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하여금,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성령쇄신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승인은 1975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분은 직접 성령쇄신의 연중 대회(conference)를 로마에서 개최하도록 초대했습니다. 그 대회중의 특별강연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날로 더욱이 세속화 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세계 어느곳 어느 환경에서도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보게 되는, 성령쇄신보다 필수적인 것은 없습니다. ... 그러니 이 성령쇄신이 교회와 세계를 위해서 어찌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교황 바오로 6세를 뒤이어, 은사수행을 하는 단체들을 만났고, 그런 만남의 자리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부어주고자 하시는 선물들을 받을수 있도록 항구적이고 감사하는 이의 자세를 견지하십시오."

이 러한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지도에 힘입어, 미국, 캐나다, 그리고 남미와 유럽의 주교들은 성령쇄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목서한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주교들은 1984년에, 미국 교회 성령 쇄신을 위한 사목서한에서 이와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 은사적 쇄신은 복음증거의 전통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령께 힘입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은 사적 쇄신이 이 복음의 최우선의 진리를 견지한다면, 그것은 핵심적인 (선택적인 것이 아님) 복음의 요소들을, 즉, 하느님 아버지의 약속된 사랑,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 성령과 성사와 공동체의 힘, 기도, 은사, 그리고 선교의 필요성들을,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이 쇄신이 복음의 지속적인 진리의 핵심을 고수하는 한, 교회의 생명에 부수적인 것으로 제외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성령쇄신은 교회 내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쇄신은 교회의 심장부에 위치하는 것이기때문에 교구의 쇄신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Yves Congar의 말처럼, "성령쇄신은 교회를 위한 은총입니다."라는 견해를 성령쇄신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쇄신이 미국 주교단의 지원을 받을 것을 확신하며, 그 봉사자 여러분들이 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시기를 격려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은사에 관한 몇몇 이야기들은 명령인 것도 같습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렇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성 령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성화하시고 이끄시는 것은 성사와 교회 사목을 통해서만이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다른 수준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공동 이익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고리토전서 12:7)이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그 것이 훌륭한 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감사와 위안으로써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것이 교회에 매우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L.G. 12)

그러므로 모든 은사들은,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아니든,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은 하느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게 하고, 성령께서는 각자가 원하는대로 그 선물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고리토전서 12:11) 그러므로, 그것들이 어느 개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은 사도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에서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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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의 문제점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의 문제점

때로 여러분은 가톨릭 성령쇄신에 관한 불만의 소리를 어떤 외부인이나 아니면 회원이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 FAQ(자주 듣는 질문들)는 그런 것들중 대표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르기를 은사(charisms)를 원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전서 14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갈망하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종교가 단지 말뿐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인간 역사에의 개입을 경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것은 주로 부활을 의미 하지만, 은사들을 통하여서 지속적으로 드러내시는 부활의 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은사들이 신이 인간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가장 중요한 축에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이 당신 교회에 충분한 활력을 불어 넣으시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신 것같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이 거룩함(holiness)을 결코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사들은 우리를 거룩함에로 인도합니다.

은사의 활용은, 영의 현존감이나 기도의 효과나 또는 다른 영성적인 보화들을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를 교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이란 본래 자신이 열의를 가지고 행하는 모든 것에서, 심지어 그것이 아무리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교만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마더 데레사도 그녀의 엄청난 업적들로 유명 해졌기때문에 교만의 죄를 고해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고해소에 갔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죄를 지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그 죄들 중에서 전혀 교만의 죄는 없었다면 그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단지 교만에 빠지는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 불쌍한 이들을 돕는 것을 중단하려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러한 하느님의 엄청난 역사하심의 도구로 쓰이는 것때문에 때로 교만에 빠진다고 해서 은사를 추구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혹자는 은사현현을 신성한 웃음(holy laughter)이나 개처럼 짖는 것과 함께 묶어서 취급합니다.

어떤 은사수행자들(또는 성령봉사자, Charismatics)은 너무 극적으로 치우치다 보니까 다분히 지엽적인 영적 경험들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성한 웃음과 개처럼 짖는 것은 은사활동으로 볼수 없습니다. (이것은 토론토의 개신교 교회의 성령세례때 일어났던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영적 현상으로는 취급될수 있으나 엄격한 분별을 요하는 일입니다.

혹자는 은사를 수련하기보다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에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하느님의 방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 보시기에 충분히 훌륭하게 거룩한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만 보아도, 오순절 강론에서 삼천명을 회개시키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나중에 비겁한 행동으로 바오로 사도에게 엄청난 망신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어떤 거룩함의 최소기준 따위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이 온 인류에게 어떻게든 당신 자신을 주시기 위해 여념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다지 정결해 보이지 않는 수단들마저도 쓰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가 더더욱 거룩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사실인즉, 거의 모든 은사수행자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거룩함을 항상 추구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르기를 어떤 은사현현이 진실인지를 가리는 분별이 충분히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의미있는 비판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이 가짜인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성령쇄신운동보다 폭넓은 문제입니다. 마리아 운동 (Marian Movement)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것에는 훨씬 적은 분별이 적용되었었습니다. 수백만의 가톨릭신자들이 지난 2천여년간 영적 체험들을 했고, 그들중의 대부분은 분별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매우 적은 수의 사건들만이 교회에 분별이 요청되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진짜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더 잘된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교회측은 사실은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이 모든 체험들을 분별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교리에서는 은사현현을 교회측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매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은사현현이라기 보다는 교회 전체에 영향을 강하게 끼치는 경우들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혹자는 이르기를 은사수행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의 신앙방식에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많은 수의 은사수행자들은 매우 많이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현대 마리아 운동의 많은 부분이 은사수행자들에 의해서 촉진되었습니다.

사실 은사적 활동들은 로사리오보다도 더욱 전통을 지닌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 천년간은 로사리오 없이도 홀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사활동은 교회의 바로 시작부터 그 성장에 기폭제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Butler의 "성인들의 생애(Lives of the Saints)"를 읽어 보신다면, 은사활동이 교회에 매세기마다 복음이 전파된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게 될것입니다.

혹자는 이르기를 은사수행자들은 기도의 "메마름의 시기" 같은 것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분은 아마도 은사수행자들이 기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성령)대회에 별로 참석해 본 적이 없는 분이실 것입니다. 이 것은 그런 대회에서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화제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인들은 이 메마름을 체험했었고, 우리도 이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성장의 한 과정입니다. 기도에서의 메마름은 하느님의 은총이 부족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것은 대개 감각적 위안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런 위안은 하느님이 한 개인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는 동안에도 없을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메마름과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직접적 연관을 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주장하기를 "성령에 압도되어 쓰러지는 것"은 어떠한 성인전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한번은 종교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설교 도중 어떤 여인이 기절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즉,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의 거리에서 그의 설교를 듣다가 성령에 압도되어 기절해 버리곤 해서 이 것이 교회측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성령세례라는 용어가 신부님들이나 성인들에 의해 쓰였느지 아니면 그것이 어떤 교리적인 체계가 있는지를 의문시 합니다.

여러 학자들이 이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초대 교회 신부들이 체험했던 성령세례의 실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한 주목할만한 작업은 맥도넬신부와 몬테규신부에 의해서 작성된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성령세례" (Christian Initiation and Baptism in the Holy Spirit) 라는 책이 있습니다.

혹자는 성령쇄신운동에 주도적인 어떤 수호성인이 있느냐고 알고 싶어 합니다.

다른 예배형태(devotions)의 경우와는 달리 성령운동에는 교회공동체에 새로운 식견(insight)을 제공하는 점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 정도로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를 신앙생활의 근원점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나, 주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성령과 같은 것이지요.

혹자는 자기들이 성령쇄신을 거부한 것때문에 지옥에 가게 될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가톨릭 성령쇄신 지도자는 이와같은 주장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톨릭 성령쇄신 국제 지도자 협의회에서 자주 발표한 바와 같습니다.

초기의 가톨릭 성령쇄신은 규모 있는 개신교 오순절 교회들중의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었기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교리원칙을 받아 들이기 쉬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와같은 얘기를 들었노라고 주장하는 지도 모릅니다. 어떤 오순절 교파는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지도자들이 그런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주류 교파의 성령운동 초기 지도자들은 그러한 경직된 원칙을 거부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가톨릭 영성이론에는 이러한 경험이 바탕을 이룰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성령쇄신의 너무 많은 요소들이 개신교와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진실성을 의심한다고 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 기도의 중요성이랄지, 열심히 성서를 읽는 것이랄지, 복음전파 사명의 중요성이랄지, 회개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대,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하는 열망등 무수한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개신교들은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우리의 성사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우리 가톨릭이 이 모든 것들을 개신교와 공유한다는 이유때문에 거부합니까? 전혀 안그렇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많이 닮은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어떤 다른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이며 자매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굳이 교회의 자료들을 인용할 것도 없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기뻐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사실인즉, 우리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 하셨듯이, 주님안에서의 궁극적 화해를 청하는 기도의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성령쇄신을 따르기 보다는 어떤 개인적인 계시를 따르는 것에 보다 자신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신앙문제는 우리가 말씀에 확실히 기초해서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전통적인" 신앙 방식들에서 그러한 결실을 맺으신다면, 훌륭합니다!! 주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우리는 모든 진실된 영성들을 존중합니다.

혹자는 이르기를 은사수행자들은 고해성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다고 합니다.
가톨릭 성령쇄신의 초기 책자들중의 하나는 스캔런 신부에 의해서 쓰여진 고해성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성령쇄신 대회장에서의 고해성사 대기라인은 매우 긴 것이 보통입니다. 고해성사는 성령쇄신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중요시 여겨져 왔습니다.

성령기도회란 무엇인가?

성령기도회란 무엇인가?
앞으로 열거될 일련의 질문과 응답들은 "성령기도회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관련된 것으로서, 오클랜드 (미국인) 교구의 성령기도회 참가자나 지도자들을 위한 어떤 방향성과 명확성의 가시적 필요성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성령기도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비록 성령님은 다양한 기도모임들을 통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계시지만, 어떤 요소들이 결핍된 모임은 주예수께서 이루시는 성령기도모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같습니다.

우 리는 여러분과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사명들에 계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일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일부로 번성하기를 기도하며, 담대하고 겸허하게 성령의 선물안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봉사할 것이며, 우리의 하느님에대한 사랑과 지식이 계속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써 당신의 뜻에 완전히 일치 시키려 하신다는 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안에서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아멘.

성령기도회란 무엇입니까?

성 령기도회란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크리스챤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임과 동시에 각자 하느님을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기도 모임은 토론 모임이 아닙니다. 어떤 심리치료 모임도 아닙니다. 상담시간도 아닙니다.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기도모임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1. 하느님께대한 찬미와 흠숭과 경배.
2. 형제 자매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

성령기도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시 작성가, 시작기도, 찬미와 흠숭의 시간, 찬송, 예언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시어 말하게함), 심령기도 (찬송, 찬양 또는 예언의 기능), 심령기도의 해석, 치유나 기적이나 지식의 은사를 참석자들에게 거행함 (고린토전서 12장 참조), 성서봉독, 가르침, 증언, 체험나눔등입니다. (고린토전서 14:26-33 참조)

기도회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대개 한시간 반 이상입니다.

저도 남들처럼 손을들거나 남들처럼 기도해야 합니까?

아니오. -- 당신이 편하신대로 기도하십시오 -- 마치 예수님과 단 둘이 있는것처럼. 당신이 느끼기에 편한대로 기도하시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편하게 기도하고 있음을 존중해 주십시오.

저도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알렐루야!" 등을 따라 해야 합니까?

아 니오. -- 당신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성령님께 마음을 열고 단지 기도만 하시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왜 우리의 찬양을 원하시는지를 배워 나감에 따라, 우리의 찬양의 형태는 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대로만 기도하십시오.

이 기도회는 교구 소속입니까?

아니오. -- 이 기도회는 단지 개인들이 일주일에 한번 모여 예수님께 그 분이 응당 받으셔야할 찬양을 드리는 가족과도 같은 모임입니다. 모든 기도의 첫째 가는 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매일 영위하는 삶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청하는 성령의 은사란 무엇입니까?

고린토전서 12장-14장을 보십시오. 지혜, 지식, 믿음, 예언, 분별, 이상한 언어(심령언어, 방언 또는 성령기도라고도 불림 -- 사도행전 2장4절), 해석, 치유, 기적의 은사들입니다.

"성령세례"란 새로운 성사입니까?

아 니오. -- 그것은 우리가 세례/견진성사 때에 받아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더욱 드러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경험 속에서 이제까지는 부분적으로 밖에는 영위 되지 못했던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살아있는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과 성서와 매일의 기도생활과 신앙에 감사 드리는 새로운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기도회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해야만 합니까?

아 니오. -- 그저 나오셔서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을 체험하십시오. 우리가 점차 듣고, 찬양하고,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분을 협조하여, 그분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일부나마 돌려드리기를 우리가 원하도록 성령님께서 이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기도회에서 발언을 하는 분들은 성령님께서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 할지를 이끄시도록 하는 것을 배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증언(간증)"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이 당신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이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을 때에는 증언의 촛점이 이야기하는 당사자가 아닌 예수님의 영예와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요한 16:14 참조)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장할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하며 당신 자신을 주예수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시며 가르치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이야기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할 시간을 드리십시오.

둘째, 매일 시간을 내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으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십시오. 또한, 하느님께서,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서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을 경청하십시오.

세째, 기도와 성서말씀으로 새롭게 배운 것들을 실천 하십시오. (마태 7:24-27과 야고보 1:22-25 참조)

끝 으로, 당신처럼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갈구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곳인, 기도회에서 그 일부가 됨으로써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봉헌 하십시오. 여러 가르침들에 참석하여 배우도록 노력 하십시오.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직접 이루실 것입니다.

성령기도회는 성서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예. -- 주께서 이르시기를, "둘이나 셋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 18:19-20) 또한, 고린토전서 14:26, 사도행전 2:42, 묵시록 3:20-21, 묵시록 22:17을 참조 하십시오.

왜 노래합니까?

노 래(성가)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흠숭하는 한 방법입니다. 성어거스틴은 "노래로 기도하는 것은 두번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노래는, 잘 선택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느님께로 돌리고, 예수님의 현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기도회가 노래잔치로 흘러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노래나, 독서나, 예언 도중에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때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시는 때입니다. 우리는 고요히 집중하고,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서로 껴안으며 인사합니까?

이것은 형제애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행동입니다. (고린토전서 16:20, 고린토후서 13:12, 데살 5:26, 베드로전서 5:14 참조)

성령기도회는 감사축제(Eucharistic Celebration) 같은 것입니까?

다 른 것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기도회에서, 예수님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다른 방법으로 현존 하십니다. 미사나 성령기도회나 모두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의 몸을 이루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형식을 갖춘 제사가 아닌 격식 없는 모습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신심미사(Charismatic Mass)에서는 이 두가지 찬미 형태를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성서의 어디에서 성령에 관한 것을 읽을수 있습니까?

요한 14:16, 14:26, 16:17, 16:13. 사도행전 1:4, 1:8, 2:4, 2:17, 2:38, 4:31, 5:32, 8:17, 10:44-48, 19:5-6, 로마서 8:1-17, 8:26-27, 고린토전서 2:6-16, 3:16, 갈라 5:16-26과 그외 다수가 있습니다.

사탄은 진짜입니까?

예. -- 성서와 예수님과 우리 교회는 항상 사탄이 존재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따르는 것을 배우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기도는 왜 중요합니까?

다 음 성서 귀절들을 참고 하십시오. 마태 7:7, 7:21-22, 마르코 11:22-26, 루가 18:1, 요한 15:7,16, 에페 6:18-19, 골로 4:2, 데살1서 5:17-18, 야고보 5:16, 묵시록 8:3-4, 그외 다수.

성령쇄신

성령쇄신
명 칭:성령의 역사하심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구체적이고 생기있는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운동으로 '성령쇄신운동'(Charismatic renewal movement)이라 한다.

조 직:전국 성령쇄신 봉사자위원회는 각 교구 성령쇄신 지도신부와 교구 단위 평신도 대표 한명과 또한 위원회에서 임명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다.

정 신:성령쇄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할 뿐 아니라 성령의 입김을 체험하고자 그들은 개인으로 그리고 공동체로서 하느님과의 위격적 신앙관계를 맺도록 인도되었음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목 적:지속적인 기도와 성서연구, 성령을 힘입은 봉사활동과 사랑의 친교 모임인 기도회 등 생활 전반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과 공동체를 쇄신하여 하느님과 위격적 관계를 깊이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성령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효과있게 발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생생하게 증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활 동 1) 성령쇄신에 참여하기 위하여 주로 '8주간 성령세미나' 혹은 '2박 3일의 성령쇄신 묵상회'를 개최한다.
2) 성령쇄신자들을 위하여는 주 1회 성령기도회, 월 1회 '기도의 밤' 및 특별 세미나, 전국 성령쇄신 대회를 연 1회 개최하고 있다.

참 여:영세한지 일년 이상된 모든 신자들은 본당신부의 추천을 받아 세미나에 참가할 수 있다.

부활절 달걀의 의미

부활절 달걀의 의미
오래 전부터 부활절에는 색칠한 달걀 을 교환하거나 아이들에게 선물해 왔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 째 이야기 : 그리스도의 고난을 추모하는 수난절 기간에는 금식이 나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수난절이 끝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는 그 동안 먹지 않던 고기나 달걀을 먹는다. 부활절 아침식사로 오랜만에 식탁에서 맞는 달걀은 얼마나 아름답고 맛있는 것인지!

둘째 이야기 : 죽음을 깨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놀라움은바로 굳은 달걀 껍질을 깨치고 태어나는 병아리와 같다고 해서 달걀을 선물한다.

셋 째 이야기 : 십자군전쟁 당시에는 동양의 새인 닭을 가진 유럽 귀족이 얼마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닭이 없는 마을에 정장을 한 귀족부인이 시녀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긴 여행과 추위 때문에 몹시지쳐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량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부인은 계속 그마을에서 살게 되엇다.

그 녀는 본래 귀족 집안 출신 사람인데, 남편이 십자군에 출정한 후, 못된 신하에게 재산과 집을 빼앗기고 떠돌이 신세가 된 로잘린드 부인이었다. 로잘린드는 이 마을에 닭이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하게생각했다. 그래서 닭을 주선해 와서는 정성껏 기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부활절이 되었을 때 로잘린드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활절 아침 일찍이 마을 어린이들 을 모아놓고 "자, 여러분 지금부터 숲에 가서 각각 자기 나무를 만들어 놓고 돌아 오세요. 그러고는 함께 부활절 식사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은 환호성을 치며 숲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나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숲속으로 가세요. 자기가 만들 둥우리를 찾아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숲 에 다녀온 어린이들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된 달걀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반드시 도와 주신다."라는 로잘린드 집안의 가훈이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 은 부활절 선물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같은 날 오후 로잘린드는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고갰길을 넘어온 한 소년을 보았다. 그는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 가기 위해서 밤잠도안 자고 걸어 왔던 것이다. 로잘린드는 이 소년에게 사려깊은 위로와 함께 색칠한 달걀 한 개를 주어 가지고 가게 했다. 소냔은 여행을 계속하던 중에 어느 산길에서 부상당해 고통스러워하고있는 병사를 발견하고는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소년은 망설이던 끝에 어머니께 갖다 드리려던 갈걀을 내놓았다.

병 사는 그 달걀을 받아들자 깜짝 놀랐다. 자기 집아늬 가훈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돌아온 그 귀족 병사는 아내를 찾아 읍에서 읍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오랜 세월 동앙 고통스러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인데 마침내 달걀을 인연으로 해서 다시 찾게 되었다.

천주존재(天主存在)

천주존재(天主存在)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심.
죤 포엘이라는 신학자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연 날리는 아이의 비유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연을 날리는 아이에게 한 어른이 너는 네 연이 저기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는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끔씩 당겨지는 줄을 느끼며 연이 아직도 있다는 걸 안다고 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주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바꿀 때마다 변하지만, 어느 땅위에 살고 있더라고 그 위의 하늘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하늘로 우리와 함께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심.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 계시지만 위(位)로서는 세 위를 포함하여 계시니,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심. 이 도리(道理)는 하느님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어야 함.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세 위격이 일체를 이루신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서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오 3:16-17),
그 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18-20)의 성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심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느님은 죽은 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을 끝없이 주시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끝없이 주심.
글자 그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이 있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의 상과 벌은 이 세상에서 받는 상과 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받게 되는 상과 벌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하느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때 천국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삶의 상태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느님과 우리의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도움이 전혀 없이 우리를 만드셨으나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데려가실 때는 우리의 도움을 절대로 필요로 하십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모든 신앙생활에 우리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는다면 매사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되고 잃은 것이 있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고 그것이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갔다고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뿐 아니라 시간의 30분의 1도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한다면 그것이 곧 감사하는 삶의 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는 지대가 너무 낮아 여러 강물로부터 들어오는 물을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다른 곳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사해'에는 소금기가 지나치게 많이 축적되어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게되었고 결국 죽음의 바다, '사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내가 속한 공동체에, 사회에 환원시킬 때 우리의 삶이 진정 살아있는 생명체의 삶,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두 번째 방법은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내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늘 기도한다는 것은 늘 하느님과 같이 있고자 함을 의미합니다. 그분께 많은 청원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분을 그만큼 온전히 신뢰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을 닮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똑같은 무게를 지닌 두 번째 계명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면 제일 먼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루가 복음 10장 25절에서 30절에는 착한 사마리아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하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즉, 종족이나 종교, 성별, 나이, 신분에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사랑의 행위를 베푼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는 결론입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이런 의미에서 가장 일차적인 나의 이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를 갖고 구체적인 작은 화해의 행위(예를 들어 전화를 건다든 지, 카드를 보낸다든 지)를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용서하라는 말씀이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수를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이 모든 사람에게도 공통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 가며 살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생구속(降生救贖)

강생구속(降生救贖)

처음에 원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제2위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서 구속사업을 완성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구속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담의 죄가 가져온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원히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바뀌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서 11절 말씀에는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분의 부활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부활로 인해 내 부활이 보장될 때 그것이 내게 의미를 주게 됩니다. 부활의 문제 뿐 아니라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분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선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의 하루하루가 작은 부활을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십자성호의 의미

십자성호의 의미

1.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

2.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상기

3.이 동작으로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

금육규정 바로알기

금육규정 바로알기
육식을 금하는 금육 규정은 만14세로부터 죽을 때까지 지키도록 하고 있다. 금육에서 우유, 계란, 생선 등은 제외되며 금육을 하는 시기는 과거에는 우리 나라에서만 재의 수요일과 사순 시기의 매 금요일에 지키도록 하였으나 현재에는 재의 수요일과 연중 모든 금요일에 지키도록 하고 있다.
단,환자나 수험생 혹은 의무 복무중인 병사 등에 대해서는 금육을 관면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금육을 단순히 그 자체를 위해서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위한 금육을 강조하고 있다.

사순시기

사순시기
1. 사순 전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사 람들은 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일상적인 삶에서 반성을 하고 또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신앙인 들에게는 전례를 통하여 더욱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많이 갖는다. 특히 사순 시기의 전례는 인생의 광야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허영과 위선에 가득찬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듯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생화하기 위한 40일의 기간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신앙과 인간적 성숙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세속적 유혹과 불안으로 인해 앓기 쉬운 신앙인의 자세를 사순 기간의 삶을 통해서 되찾는 것이다.

그 러므로 사순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모든 신앙인 들은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기 3,19)는 말씀과 함께 머리에 재를 얹게 되는 상징적인 표현 속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지점을 생각하고 거기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바로잡기를 요청 받고 있는 것이다. 즉 세례 때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되찾아 바른 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이 사순 시기이다.

2. 사순 시기의 의미와 유래
부활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40일 간의 기간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전야제까지 계속된다. 사순 시기(40)의 의미는?

구약 성서에는
①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정화하기 위하여 40일 동안 비를 내리셨다.(창세기 6,5-7,22)
②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 생활을 벗어나 하느님이 약속한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은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며 준비해야 했다.(신명기 29,4)
③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주야를 재를 지켜야 했다.(신명기 9,18) ④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기 위하여 40일 간을 밤낮으로 걸어야 했다.

신약 성서에는
①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주야를 단식을 하며 준비를 하셨다.(마태 4,1-11)
② 그리고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셨다.(사도행전 1,3)

앞에서와 같이 성서에서 나타나는 40이라는 수의 의미는 참회와 속죄로 우리 생활 전체를 혁신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는 기간의 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 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사순 시기 40일의 의미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돌아오기를 초대하는 하느님이 마련한 은총의 시기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사순 시기에 우리가 조용한 마음으로 지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만 결코 부정적인 시간이 아니라 희망에 부풀어 생명의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40일이 되었을까?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현재와 같은 40일이 초대 교회로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① 박해 시기였던 초대 교회로부터 3세기 초 까지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부활 전 2-3일 간을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며 지내던 것이 사순 시기의 전부였다.

② 그런데 313년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처음으로 열린 니체아에서의 공의회(325년) 이후 부활을 준비하기 위하여 40일을 지내야 한다고 정하게 되었다.
그 때의 40일을 계산하는 방법은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즉 성삼일로부터 거꾸로 계산하여 40일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사순 시기의 시작이 오늘과 같은 수요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순 제1중에 해당되는 날이었다. 5주간 35일에 성주간의 성목요일 낮까지 하여 40일을 계산한 것이다.
사순절이 40일로 정해진 후에도 초기에는 이 기간에 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재를 지켰다는 생각, 그리고 대죄를 지은 사람에게 보속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또 새로 영세 받을 사람들을 잘 준비시키기 위하여 사순시기에 재를 지키게 된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도 주일만큼은 주님의 부활 경축하는 시기라는 생각에서 재를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34일에다 전에부터 지켜 오던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을 포함해서 36일 간 재를 지키며 지내 왔다.

③ 그 후 7세기경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때에 온전히 간 재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미 지켜 오던 36일에다 4일을 추가하여 지금과 같은 사순 시기가 확정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사순 시기의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되어 46일이 된 것이다.

3. 사순 시기에는 어떻게 살고 어떤 준비를 하는가?
40 일이라는 기간은 속죄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하느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합당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며, 장차 이루어질 중대 사건인 부활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기간이다. 그러기 위해 합당한 준비가 필요한데 크게 보면 외적 준비와 내적 준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준비를 모두 일컬어 넓은 의미로 사순 시기에 재를 지킨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재를 지킨다고 할 때는 대재인 단식과 소재인 금육을 말하는 것이다.
1) 외적 준비 이러한 준비는 소극적인 준비로 교회가 정한 단식과 금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본래 단식과 금육은 교회법규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실철하던 것을 교회가 법규로 도입을 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동기에서 자발적으로 재를 지켜 왔다. 예를 들면 기도에 열중하기 위해, 죄를 보속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리고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재를 지켜 왔다. 특히 부활 축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초창기부터 신자들 스스로 몇일 동안 재를 지켜 온 것이다. 본래 단식은 그 날 한 끼만 식사를 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저녁 식사만 하도록 하였다. 그 후 점차로 교회의 단식 규정이 세분화되면서 육식을 금하는 금육 규정이 첨가되었다. 오늘날 단식의 규정을 보면 단식은 만21세부터 만60세까지의 모든 사람이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 방법은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제대로 먹고 저녁은 요기만 하는 것으로 하고있다. 그 시기는 재의 수요일고 성금요일 1년에 2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나 수험생 혹은 의무 복무중인 병사 등에 대해서는 단식을 관면하고 있다. 그리고 육식을 금하는 금육 규정만은 만14세로부터 죽을 때까지 지키도록 하고 있다. 금육에서 우유, 계란, 생선 등은 제외되며 금육을 하는 시기는 과거에는 우리 나라에서만 재의 수요일과 사순 시기의 매 금요일에 지키도록 하였으나 현재에는 재의 수요일과 연중 모든 금요일에 지키도록 하고 있다. 단식과 마찬가지로 예외의 사람들에게는 관면을 하고 있다. 외적 준비 없이 내적 준비를 갖추기는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외적 준비인 음식 절제로부터 자신의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금육과 단식을 단순히 그 자체를 위해서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위한 단신과 금육을 강조하고 있다.
2) 내적 준비 이 준비는 적극적인 준비로서 하느님을 행하는 마음과 전례 예절을 통한 준비라 할 것이다. 회개와 속죄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전례는 사람들이 이런 적극적인 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미사 때나 말씀의 전례에서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하지 않으며 사제가 입은 제의의 색도 회개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색)이다. 그리고 전례의 말씀들은 온통 이런 준비를 계속할 수 있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들은 이 시기에 평일 미사에 까지 참석하며 하느님을 향한 회개의 삶을 다짐하고 교회가 배려한 사순절 특별 강론을 등에 참가하며 고백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이 부활을 앞둔 시기에 꼭 고백성사를 보고 부활 시기에 영성체를 하는 것을 교회법상의 의무규정으로 두고 있다.

4. 사순 시기에는 꼭 지켜야 하는 특별한 전례는 어떤 것이 있나요?
1) 사순 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 사순 시기의 시작은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이마에 재를 받으며 시작된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지난 해 성지 주일에 축성하여 한 해 동안 각 가정의 십자 고상 위에 걸어 두었던 성지 가지를 미리 걷어서 태운 후 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재의 수요일 미사의 강론이 끝난 후 사제는 기도를 하여 재를 축성한 다음 그 재를 찍어 자신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그으며 바르고 다음 모든 신자들에게 발라 준다. 이 때 사제는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시오."(창세기 3,19)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15)라는 권고를 한다. 이는 "그리하여 제 말씀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욥 42,6)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와 보속의 마음 자세로 재를 얹고 사순 시기를 지내라는 초대의 말씀인 것이다.
① 성서에 나타나는 재의 의식 구약 성서에는 욥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받으면서 자신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잿더미에 앉았고(욥기 2,8)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의 태도도 그러하였다.(요나 3,6) 신약 성서에서도 같은 의미가 마태 복음 11장21절에 나타난다. 이런 성서의 말씀과 같이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얹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깨우치고 조에 대한 보속을 준비하고 앞으로 다가올 부활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인 것이다.
② 재의 의미 성령의 지시에 따라 예수께서 광야로 들어섰듯이 우리도 머리에 재를 얹고 사순 시기의 광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십일 동안 우리는 화려함과 풍족함을 피하고 광야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앙인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즉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이마에 재를 받은 인간은 죽으면 모두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예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재의 수요일에 재를 받으며 우리는 인생이 무상함인 것을 인정하며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확고한 생사관을 확립하려는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2) 사순 시기의 절정인 성 주간 재의 수요일로 시작한 사순 시기는 성 주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성 주간은 성지주일부터 시작되는 사순 시기의 마지막 한 주간이다.

성주간 전례는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는 전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성 삼일과 부활 성야의 전례가 그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생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수난과 죽음,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그 분의 행적을 다시 더듬게 되고 생전에 하신 말씀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말씀과 행적들을 공동체 안에서 생활 속에 표현하고 생활화한 것이 바로 전례인 것이다.

중고등부 교사 연합회 사순 부활호 홍승권 신부님 강좌

자료 : Catholic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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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
1. 부활하신 그리스도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셨다…!"(루가 24,33-34). 부활사건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후 사흘 만에 돌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미리 말씀하신 대로(마태 16,21) 안식일 다음 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이 부활은 신앙생활의 중추가 된다. 가톨릭 교회의 신앙은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역사적 사건이며, 그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부활에 대한 성서 대부분의 증언은 성부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가르친다(마르 16,6; 루가 24,34; 요한 21,14; 로마 4,25; 1고린 15,4.12). 예수님의 부활을 성부의 인준의 표적이라고 본다면 예수님의 인성이 입은 영광은 성부의 업적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부활로써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완전히 드러나 영광을 받으신다.

부활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처형되어 참혹하게 죽은 한 사람이 생명에로 되살아났음을 굳게 믿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함은, 십자가에 처형된 그분이 만인의 주님이시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마태 28,18)이 그분에게 주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당신 제자들에게 치명적 타격이 되었다. 제자들은 파스카 사건을 두고 미리 하신 말씀들을 알아 듣지 못했으며,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에게 걸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먼저 무덤에 갔던 여인들이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가져왔을 때도 사도들은 믿지 않았다(루가 24,11).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몸소 나타나시자 그들은 허깨비를 보는 것이려니 하였다(루가 24,37). 사도 토마스는 부활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른 사도들의 증언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자기 눈으로 뵙고 그분의 못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고, 자기들한테 나타난 그분이 과연 돌아가신 그분인가를 확인하지 않는 한 믿지 못하겠노라 하였다.

많은 이들이 예수의 빈무덤, 사도들의 증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도들의 기적을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데 급급하였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부활 사건을 여러 방법으로 그럴 듯하게 설명해 보려는 인물들이 언제나 있었다.

부활 신앙이 계속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정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증인들은 믿음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분의 권능이 그들과 그들의 말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성 바울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보았던 인물을 많이 열거하고 있다(1고린 15, 3-8). 바울로가 고린토 1서를 쓴 것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바울로가 이 글을 쓰면서 언급하는 인물들은 대다수가 아직도 살아 있었으므로 그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는 본인들이 직접 다짐할 수 있었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해 온' 신조(信條)가 아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직후부터 놀랍고도 진지한 신앙과 활약이 일어났던 것이다.

성서는 한결같이 살아나신 예수님은 죽으셨던 바로 그분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육체를 갖고 현존하셨음을 강조하여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고 하시자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던 토마스도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7-29)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육체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부활한 육체로 계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렇게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두 눈으로 뵈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몸을 만져보게 하여 당신이 몸을 갖고 그 자리에 계심을 확인하도록 하셨다(루가 24,39).

2. 부활의 뜻

부활하신 사실은 근본적으로 중대하다. 성 바울로는 이를 단적으로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1고린 15,14.17-18).

사도시대의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의 성취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데 대한 성부의 답변이요, 죽기까지 순종한 종에게 내리시는 보상이라고 생각하였다(필립 2,7-8). 이리하여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특권을 얻으신 분으로 등장하신다. 부활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업을 성부께서 승인하시고 인준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변화했다. 그분은 여전히 같은 예수님이요, 여전히 우리의 형제이시요, 우리와 같은 살을 나누고 계시지만 지금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1고린 15,45)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다른 육체를 지니신 것이다(요한 11,38-44). 부활한 육체가 참 육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완성의 처지에 있던 육체와는 다르며 그것을 초월해 계신다(1고린 15,42-54).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 놓으셨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켜 '부패하지 않는 영적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1고린 15,20)이 되신 그분의 부활은 인간 변혁의 원형이시자 이 변혁의 시작이다. 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신앙에서 교회가 생기고 또 교회 안에서 신약성서가 생겼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그 자체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증언서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늘 함께 계시려고 세상에 오시어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가 마침내 부활하신 것이다.

3. 승천(昇天)

지상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수차 발현하시고,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사도 1,2), 예수께서는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사도 1,9). 그분은 부활하신 육체와 당신 영혼을 갖고 승천하셨다. 승천의 신비는 두 개의 다른 측면을 갖는다. 첫째는 예수님의 지금까지의 수고 수난이 환히 드러나 영광에 드시는 일이었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게 수행해 오신 당신의 봉사 직무를 종결지으신 시각을 말해준다. 루가는 부활과 승천 사이에는 40일의 기간이 있었다고 전했다(사도 1,3).

승천은 예수님과 세상과의 관계를 바꾸는 사건이다. 승천하여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게 된 것이다. 영광을 입으신 생명에 드심으로써 그분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자리잡으시는 것이다.

4.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존을 일시 거두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선물을 내려주시기 위함이었고(요한 16,7), 당신은 항상 교회와 함께 계실 것이다(마태 28,20). 신앙과 기도로 영위되는 교회의 생활에 그분은 현존하시며, 영광을 입으신 그분의 몸과 성사를 통한 만남에서 특히 함께 계신다. 우리의 사랑에 찬 생활에도 현존하신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죽음과 죄의 산물인 인간 사이의 소외, 억압, 착취, 분열을 타파하고, 일치의 성령을 따라 지역간의 적대감, 지역감정, 국수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하나로 만들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位)이심을 말해 준다.

1. 신앙의 신비로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하느님 자신에 관한 신비이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이며, 아울러 영원으로부터 같은 신성(神性)을 가지시면서 구별되는 세 위(位)가 계심을 믿는 것이다. 유일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하느님이 여럿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이신 하느님께 세 위가 계시다는 것을 '삼위일체'라 부른다. 그 세 위의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은총을 통해 우리는 삼위와 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삼위일체는 신앙의 신비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려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일체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가 드러났다(루가 3,22).

삼위일체의 신조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신조이다. 이 교리를 믿어야만, 그밖의 주요한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파악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는 하느님의 아들이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 그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되셨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한 분 하느님께 여러 위가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하느님이시며, 성부께 보냄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2. 구약 안에서의 삼위일체

구약성서는 유일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했다는 점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일부 선포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하느님께 여러 위가 계시다는 말은 없으며, 하느님의 내적 생명에 관해서도 계시하는 바가 없다. 하느님은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당신께 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셨다(계시헌장 2-4).

구약성서에도 하느님께는 구별되는 위격들이 계시다는 것을 희미하게 암시하거나, 그 계시를 준비하는 듯한 귀절이 몇 개 있다. 교부(敎父)들은 하느님을 지칭하는 복수명사(엘로힘)가 자주 쓰였다는 점과, 하느님의 이름과 속성을 세 번 거듭 부르는 일(신명 6,4) 등이 그것을 암시하는 것이라 풀이하였다.

3. 신약 안에서의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최후만찬 자리의 설교에서 예수님은 극진한 애정을 나타내시며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성자이신 당신은 성부께 보냄을 받으신 분이며, 당신이 올라가시는 대신 성부께 청을 드려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17. 29-35; 2고린 13,13; 1고린 12,4-6)라고 하시며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4. 삼위일체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는 구분되나, 성부와 성자와 똑같이 참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는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사랑이 있다. 그 지혜의 표현이신 이 말씀이 곧 성자이시다(요한 1,1-14). 성부와 성자는 가이없이 서로 사랑하신다.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는 사랑이 곧 성령이시다. 성령은 창조받지 않으신 분으로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으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으로, 완전한 성삼위의 사랑을 나누신다.

성 삼위께서는 드러나는 활동을 공동으로 하시나 특정한 영역에서는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일을 나누기도 하신다.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영원한 계획으로써 성자를 지상에 보내시어 인류를 구원하도록 하시고, 또한 교회를 세우시어 성령이 보호하고 인도하여 사람들을 성화시켜 구원으로 이끄신다. 현세에 있는 한, 우리 인간의 머리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언어는 하느님께 관한 이 숭고한 진리를 표현하는 데는 너무나 미비하다.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은 공동체이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을 드러내고 나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존재임을 체험해 가는 과정이다(요한 3,21).

한국천주교 역사

한국천주교 역사
1777.
이벽,권철신,정약전 등 주어사에서 강학을 열고 천주교 교리 연구 시작.

1784.
이승훈, 북경의 성당에서 예수회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 귀국.

1791. 6.
윤지충이 모친상에 제사 거부, 신해 박해 시작.

1794. 12
중국 주문모 신부 조선에 입국.

1800. 12
천주교 금령이 내리면서 신유박해 시작.

1815.
을해박해 일어남.

1831. 9. 9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교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

1839. 1
기해박해 시작.

1841. 8. 22
무염시태의 성모 마리아를 조선의 주보로 모심.

1845. 10.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충청도 강경을 통해 조선입국.

1846. 6.
김대건 신부 체포, 병오박해 시작.

1856.
충청도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 설립.

1859. 9. 24
기해 및 병오박해 순교자 82위 가경자로 선포됨.

1866.
병인박해 일어남.

1885.
조선교회 신자수 14,000여명.

1886.
신교의 자유가 어느정도 보장됨.

1893.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건립.

1911. 4. 8
조선 대목구가 서울 대목구로 개칭, 대구 대목구가 분리 설정됨.

1920. 8. 5
원산대목구 설정.

1925. 7. 5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한국순교복자 79위 시복됨.

1927. 3. 17
평양 지목구 설정.

1928. 1. 8
황해도 감목 대리구 설정.

1928. 7. 19
연길 지목구 설정.

1931. 9.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행사 서울에서 개최.

1937. 4. 13
연길, 대목구로 승격. 전주 지목구 설정, 광주 지목구 설정.

1939. 4. 25
춘천 지목구 설정.

1942.12.20
한국인 최초 노기남 주교 성성

1945. 8. 15
한국 해방.

1950. 6. 25
6.25 사변 발발.

1952. 7. 6
왜관 감목대리구 설정,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할.

1955. 9. 20
춘천 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1957. 1. 21
광주 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전주 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부산 대목구 설정.

1958. 6. 23
청주 대목구 설정. 대전 대목구 설정.

1961. 6. 6
인천 대목구 설정.

1962. 3. 10
대목구이던 13개 교구가 정식교구로 승격. 서울,대구,광주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어 3개의 대주교 관구로 나누어져 한국교회 교계체제 확립.

1963. 10. 7
수원교구 설정.

1965. 1. 1
한국어 미사경본 사용하기 시작.

1965. 3. 22
원주교구 창설.

1968. 10. 6
병인 순교복자 24위 시복식이 교황 바오로 6세의 집전으로 거행.

1969. 3. 28
서울 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
4월 30일 로마에서 추기경 서임됨

1969. 5. 29
안동교구 창설.

1971. 6. 28
제주 지목구 설정.

1977. 3. 21
제주 지목구 교구로 승격.

1981.10.18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 거행.

1984. 5. 6
103위 순교성인 탄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의해 순교복자 103위 성인반열에 오름.

성체조배 란?

성체조배 란?
성체조배 란 '성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께 대해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대화함'을 뜻하며,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성체조배는 조용한 성당에서 하나의 촛불에 의지해 홀로 두손모아 앉아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성체조배는 성체 안에서 현존하는 예수님과의 대화, 기도, 봉헌의 행위다. 성체조배를 통해 신자들은 진정한 사랑과 은총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성 알퐁소는 "하루 15분의 성체조배로 다른 여러 가지 신심행위를 24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최근 들어 성체조배를 하는 신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신자들은 성체조배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체조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친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은 청원기도 정도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성직자들은 성체조배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신자들이 성체안에 현존하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 체험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느끼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체조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서로 사랑하는 애인사이에서 특별한 대화술이 필요로 하지 않듯이 성체조배 또한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어떤 한가지 방법으로 성체조배를 규정지을 때 자칫 각 개개인의 개인적인 신심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체조배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초보 신자라면 지속적인 성체조배회가 제안하는 다음의 순서에 따를 수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기도하도록 너희들을 초대한다. 자녀들아! 기도를 통해서 평화와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기도로써 하느님의 은총의 풍성함 속에 있게 되기 때문에 기도가 너희 각자를 위한 생활이 되도록 하여라."
- 1989년 메주주고리에 메시지-

1. 성체를 향하여 큰 절을 한다.

2. 시작기도
"주님,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3. 하느님 현존의식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 하느님이 성체 안에 계시다는 것,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 하느님께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는 것 의식.
"예수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 또는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4. 성령께 의탁
"주님, 이시간 당신께 찬미, 영광 드리는 시간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5. 고요함에 머무름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능력이 필요함.

6. 자아인식
자기가 보임(상처받은 것, 기쁜 것등 강하게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떠오르거나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 떠오름).
주님께 보여드림-그대로 내어맡김
감사드림(오늘 내가 감사드릴 것이 무엇이 있는지?)

7. 성서묵상 (매일 복음말씀 또는 성서를 읽어가다가 마음에 닿는 구절)

8. 결심

9. 끝기도

10. 성체를 향하여 큰 절을 드린다.

성체 조배를 매일 하는 수도자의 경우 영적 독서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초보자의 경우 성서를 읽는 것은 좋으나 원칙적으로 성체조배는 예수님 과의 일대일 대화인 만큼 개인적인 영적 독서는 다른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보자의 경우 성체 앞에서 묵주의 기도를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성체조배에 익숙해지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윤승현(48, 엘리사벳) 간사는 "마음으로 느끼는 신앙을 살기 위해서는 성체조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매일 만나고 싶듯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는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은 신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천주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천주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천주교회는 사도들을 기초 삼아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종교입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합니다. 사도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승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파견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12사도 중의 으뜸은 베드로 사도이십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 11,18-19>

천주교회는 모진 박해에도 2,000년간 굳건히 성장하여 1997년 말 현재, 전세계 천주교(가톨릭) 신자는 9억7천여 만 명이고, 주교 4,257명, 신부 404,461명, 수도자 908,327명이 있습니다.

가정에 비치해야 할 성물

가정에 비치해야 할 성물
사제의 축복을 받아 성별된 것이나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을 성물이라 하는데 신자 가정에 비치해야 할 성물은 다음과 같다.

성서
성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이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신지,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지,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때이고, 우리가 기도할 때는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때이다 "라는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처럼 우리는 성서를 가까이 두고 매일 읽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사랑의 응답을 드려야 할 것이다.

가톨릭 기도서
기도서는 우리의 공동기도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며 주님께 대한 애정을 일깨워준다. 함께 기도할 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주께 대한 정이 메마를 때 기도서를 사용하면 좋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린이의 몫까지 준비하여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미사경본
미사경본에는 주일미사, 축일미사, 평일미사, 신심미사, 성사미사, 기원미사, 위령미사, 특별미사 때 바치는 고유한 기도문이 실려 있다. 미사는 사제와 신자가 함께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 기원과 속죄의 제사이므로 사제만이 바치는 부분과 신자가 바쳐야 할 부분이 있다.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미사경본을 보면서 사제와 함께 미사를 봉헌해야 할 것이다.

성가집
성가는 우리가 한 공동체를 이루어 아름다운 목소리로 더 열정적으로 더 장엄하게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혼자서 성가를 노래함도 좋으나 여럿이 모여 기도할 때 함께 성가를 부름은 공동체 정신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서와 함께 성가집을 준비해둘 것이다.

가톨릭 교리서
교리서는 성서와 성전에 근거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알고 또 실천해야 하는 진리를 요약한 책이다. 여러가지 교리서가 있으니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단계적으로 구입하여 읽을 것이다. 영세한지 오래된 신자일수록 계속 공부하여 자신의 신앙을 돈독히 하고 자녀들이나 이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을 다져가고 이웃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년에 한권의 교리서를 읽고 공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십자고상
십자고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께 희생제물로 드리신 모습이며, 주께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십자고상을 바라 볼 때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구하며,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의 축복을 받은 십자고상을 가족이 모이는 방이나 거실의 벽에 걸든지 탁상 위에 모시는 것이 좋으며 방마다 모시면 더욱 좋다. 되도록 품위있는 십자고상을 모시도록 하고, 깨끗이 보존하며, 기도할 때나 묵상할 때에는 이 십자고상 앞에서 할 것이다.

성모상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시고 우리의 어머니시다(요한19,26참고). 그러므로 우리가 성모 마리아상을 모시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성모상을 모실 때에는 사제의 축복을 받는 것이 좋고, 벽에 모신 십자고상 아래나 탁상 위에 모신 십자고상 옆에 모신다.

성화와 성상
예수님의 상[예수 성심상], 성모상[성모 성심상]과 함께 가족의 주보성인들의 성상이나 상본도 모실 수 있으나 십자고상이 항상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신자가정에 성상이나 성화가 모셔져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임을 드러내는 무언의 신앙고백 이기도하다. 성물이 파손되었을 때는 축복[방사]도 무효가 된다. 태울 수 있는 것은 태우고 그렇지 않으면 땅에 묻는 것이 좋다. 상본은 축복를 받지 않는다.

로사리오
로사리오란 장미꽃 다발이라는 뜻으로서 우리가 로사리오 기도를 하는 것은 장미로 엮은 꽃관을 성모마리아께 드리는 것과 같다는 상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로사리오[묵주]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구원의 역사를 묵상하면서 성모님께 우리의 성화와 이에 필요한 은혜를 전구해주시도록 비는 기도이며,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신자들이 열심히 그리고 자주 바치도록 권하신 기도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로사리오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로사리오를 잘 보이는 곳에 두거나 혹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다. 로사리오는 사제에게 축복을 받아 사용한다.

성수
성수는 영원한 생명과 죄의 씻음, 즉 성세성사의 은총을 상징하고 죽음의 세력을 멀리 해준다. 교회는 부활 성야의 예식 중에 물을 축성하여 나눈다. 각 가정에서는 이 성수를 조금씩 준비하였다가 기도할 때나 환자가 생겼을 때, 특히 임종 전후에 이를 뿌려 악의 세력을 멀리하게 한다. 성수를 사용할 때마다 통회하고 성세의 은총을 기억할 것이다.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그으며 "주여! 이 성수로써 내 죄를 씻어 없애시고, 마귀를 쫓아 몰으시고 악한 생각을 없이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것은 자기 죄를 씻고 성전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올 때 는 찍을 필요가 없다.

성 초
밀초는 수천 마리의 벌들이 만든 것이다. 우리 교부들은 벌들이 동정성과 단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교회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성초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한 예수의 몸을 상징하고 초심지는 생명과 힘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영혼을 상징한다. 또 성초는 스스로를 태워 빛과 열을 주므로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할 때, 특히 환자와 함께 기도할 때, 위령기도와 초상때 이 초를 켜고 영원한 빛의 근원이시며 그 빛의 전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광명으로 밝혀주시기를 기도한다.교회는 주의 봉헌 축일[2월 2일]에 초를 축성하고 나눈다. 이 때 초를 축성하지 못했을 경우 개별적으로 사제에게 축복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성지
성지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왕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표시한다. 교회는 4세기부터 예수수난 주일 즉 성지주일[부활 전 주일]에 푸른 나뭇가지를 축성하여 나눈다. 우리가 성지를 받는 것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주님을 따라 우리도 십자가와 부활신비[빠스카 신비]를 자신 안에 구현하겠다는 신앙고백이다.
성지주일 전례 중에 받은 성지는 집에 모셔둔 십자고상과 함께 두고, 왕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을 묵상하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할 것이다. 성지는 재의 수요일 전 주일까지 본당에서 모아 재의 수요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만일 그때까지 본당에 보내지 못하였으면 재의 수요일 이후에 집에서 정중히 태워 없앨 것이다.

기도상
가정마다 작은 상을 마련하여 흰 보를 덮고 그 위에 십자고상, 성모상, 성초, 성수, 성서, 묵주 등을 얹어 놓고 꽃으로 장식하는 정성을 드리면서 언제나 우리 가정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이 기도상을 중심으로 모인다면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을 더 잘 느끼게 되고 온 가족이 보다 깊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사

병자성사(病者聖事)

병자성사(病者聖事)
우리는 병자성사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파스카 신비)에 특별한 모양으로 참여하며, 그분의 위로와 용기를 받으며, 필요한 경우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을 얻게 된다.

1. 병자성사의 기원

우리 주님은 병자에 대하여 동정심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는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마태 11,5)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요한에게 밝혔다. 환자의 치료는 그리스도의 활동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마지막 심판에 관한 비유에서 벌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주지 않았다"(마태 25,36)고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반면에 상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다"(마태 25,43)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이 복음선포를 돕기 위하여 활동할 때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부활 후에도 비슷한 사명이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마르코 복음의 앞부분에서는 "그들은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병자성사의 도유에 관한 첫 암시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구마적 치유로 이미 존재하던 관습을 인준하시면서, 그 관습에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셨다(루가 4,18-19).

견진성사에서와 같이 우선 초대교회에서 행하여진 병자의 도유에 관한 기록을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다. "여러분 중에 앓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2. 병자성사의 대상자

중세 때는 죽을 것이 거의 확실한 사람에게만 이 성사를 베풀었다. 그래서 이 성사의 명칭이 '종부성사' 즉, '죽음의 성사'로 불리웠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 성사받기를 두려워하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병자성사는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만 베푸는 성사가 아니라 병과 노쇠로 위험상태에 있는 이들이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벌써 이 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병자가 죽음의 직전에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라든가 또는 같은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는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 위험한 병 때문에 외과수술을 받아야 할 때마다 병자는 수술 전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노환으로 말미암아 기력이 많이 쇠진해지는 노인들에게는 병세의 위험성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이 성사를 줄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그들이 이 성사로써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었으면 역시 병자성사를 줄 수 있다(약 7∼8세 이상).

사제가 병자한테로 불려갔을 때 병자가 이미 죽었을 경우, 사제는 그를 위해서 하느님께 그의 모든 죄를 사해주고, 자비로이 천국으로 받아 주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만, 병자성사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병자의 죽음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조건부로 이 성사를 줄 수 있다.

3. 예식

병자성사를 베푸는 이는 주교, 본당신부, 병원 원목과 이들의 위임을 받은 사제들이다. 이 예식은 인사, 시작예절, 참회식으로 시작한다. 말씀 전례가 그 다음에 온다. 친구와 친척이 기도와 노래에서와 같이 독서에도 참가하여 공동체적 분위기를 만들면 더 좋다. 먼저 참석한 사제 모두가 안수한다. 그리고 성사 집행자가 병자의 이마와 양손에 혹은 급한 경우에는 이마나 몸의 아무 부분에 기름바른다. 성유를 바르는 행위가 안수이기도 하다. 특히 이 기름바르는 예식과 그것에 따르는 기도가 성사적 표지이다. 병자의 도유 예식은 환자를 위한 특별기도로 끝을 맺고 주님의 기도, 혹은 영성체와 강복이 뒤따른다. 기름바르는 예식을 미사 중에도 할 수 있다.

4. 효과

"이 성사는 성령의 은혜로서, 성령의 도유는 아직도 속죄해야 할 어떤 죄과가 있다면 그 죄과와 죄의 결과를 씻어 주어, 병자의 영혼을 거뜬하게 해 주며, 견고케 해 주고, 그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를 일으켜 줌으로써 병자로 하여금 그 도움을 받아 병고와 고생스러움을 더 쉽게 참으며 마귀의 유혹에 더 잘 대항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될 경우에는 육신의 건강까지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병자성사 예식서 119).

혼인성사(婚姻聖事)

혼인성사(婚姻聖事)
그리스도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는가?
그리스도는 혼인성사로 부부를 당신과 교회와의 사랑에 일치케 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해서 서로 돕고 성화케 한다.

1. 성서에 나타나는 혼인

하느님은 혼인을 예정하시고, 창조의 절정 순간에 그것을 설정하셨다.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설화에는 혼인제도에 관해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창조설화에서는 출산이 강조되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 둘째, 설화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우정관계가 먼저 나온다.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창세 2,24). 충실한 일부일처제가 구약성서에서도 높이 평가되었다. 잠언서는 아내를 책임과 위엄을 가진 동업자로 묘사한다(잠언 31,10-31).

신약에서 혼인이 성사라고 표현한 것은 성 바울로의 에페소서이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32). 그리스도와 당신 교회와의 일치는 매우 친밀하여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적합한 비교는 없다. 또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표징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적절히 표현된다. 그리스도와 당신 교회와의 일치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남편과 아내의 결합도 교회와 그리스도의 일치의 신비와 연관되기 때문에 서로 거룩하게 한다.

2. 혼인과 독신

성 바울로는 혼인의 신성함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동정이나 독신생활 또한 권고한다(1고린 7,32-34). 교회는 혼인을 존중하며,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영생에 대한 신앙을 뚜렷이 증거하기 위하여 혼인의 축복을 포기하는 생활형태(독신생활)도 또한 존중한다. 이런 생활을 하도록 불림받은 사람에게는 동정생활이 자신을 더욱 철저하게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는데"(1고린 7,31), 동정생활은 영생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혼인성사로 결합한 사람들은 교회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보이는 표지이다. 독신자들은 혼인을 포기하지만 사랑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독신자들은 오히려 혼인이 표지하는 그리스도의 저 위대한 사랑을 특별한 방법으로 증거한다. 그들은 부부애가 거룩한 것이지만 잠정적 사랑이며,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서로의 완전한 사랑에 이르는 수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결혼소명과 독신의 소명은 서로 대립하기는커녕 사랑의 성덕을 추구할 그리스도인의 기본 소명 안에서 서로 돕는다.

3. 혼인의 세 가지 선익(善益)

혼인의 세 가지 선익은 자손, 정절, 성사(聖事)이다. 하느님이 혼인을 세우시고 성화하신 것도 그 선익을 위해서이다.
(1) 정절(부부애)
제2 차 바티칸공의회는 혼인을 '사랑의 공동체'(사목헌장 47)라고 부른다. 정절은 최소한의 소극적 의미에서 결혼 상대자가 아닌 어느 누구와도 성행위를 하는 것을 금한다. 그래서 정절은 부부애를 보호하는 보루이다.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는 조물주 친히 제정하셨고, 조물주 친히 그 법칙을 주셨으며, 결혼 당사자도 철회치 못할 인격적 동의로 맺은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교 적 부부애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수한 사랑의 결실과 애덕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랑은 인간의 전행복을 고려하며, 품위있게 사랑을 표현하게 한다. 주께서는 이 사랑을 당신의 은총과 특별한 은혜로써 정화시키고 완성하시고 높혀 주셨다(사목헌장 49).
상 호간에 주고 받는 사랑은 당사자간의 기본적 평등성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남편과 아내의 상호 의무는 동일하다는 매우 혁명적인 사상을 가르치시면서 부부평등의 기반을 쌓으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나아가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 10,11-12).
진실한 사랑의 유대는 이기심과는 달리, 상대방을 위해서 상대방의 이득을 추구하려는 자유스럽고 굳은 투신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지속성을 갖는다.

(2) 자손(출산)
자 녀 출산이 혼인의 기본되는 선익이라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확인하였다. 혼인의 목적은 '사랑의 나눔'과 '생명의 전달' 그리고 '상부상조'에 있다. 즉 한 쌍의 남녀가 사랑을 성취함으로써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며 서로의 역할 안에서 서로를 도와 주는데 있는 것이다. "혼인과 부부애는 그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자녀들은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이다"(사목헌장 50).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셨다. 창조에는 당신의 끝없는 선(善)을 연장하고, 보급하고, 나누어 주기 위한 것 외에 다른 동기가 없다. 부부가 자식을 낳으며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랑의 창조적 능력에 참여시키신 것이다. 교회는 인위적인 피임 방법을 거부한다. 성을 쾌락의 도구로 만들 위험성과, 하느님의 선물인 자녀 출산을 인위적으로 부정할 가능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인구문제를 모른체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수의 자녀를 갖는 것이 가정의 품위를 지키는 데 유리할 수도 있음을 교회는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교회는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자연피임법을 권장한다.

(3) 성사
①혼인성사의 집행자
혼 인성사의 집행자는 혼인 당사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이혼을 금지하시므로 교회는 혼인 과정을 조심해서 감독하고자 한다. 보통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사제와 두 증인 앞에서만 유효하게 혼인할 수 있다. 혼인식을 주례하는 사제는 "신랑 신부의 동의를 묻고 그 답을 받아야 한다"(전례헌장 77). 그가 주교이거나 본당신부이거나 대리자이더라도 그 부부가 혼인할 자유가 있고, 혼인성사의 중요성과 존엄성을 알기에 충분한 교육을 받고, 혼인의 목적과 의미를 알면서 진정한 혼인계약을 맺으려는 것인지 보살필 의무를 갖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성사를 받기 전 일정한 교육(예: 가나혼인강좌)을 받도록 하고 있다.

②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
혼인은 불가해소적 사랑의 계약이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원한 사랑을 상기시키는 거룩한 표징이다. 그 계약처럼 혼례를 마친 혼인성사의 효력은 절대로 풀리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창 세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듯 하느님께서는 '이혼'을 인정하시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분명하게 '이혼'을 엄금(마태 19,4-6; 루가 16,18)하시면서 그것이 창조주의 본래의 뜻이라고 명시하셨다(마태 24,35). 사도 바울로 역시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1고린 7,10-11. 39; 로마 7,2-3).
어떤 경우에 하느님은 사회관습법에 의한 혼인을 해소하는 것을, 다시 말하면 영세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맺은 혼인의 해소를 허락하신다. 비신자 부부 중에 하나가 신자가 된 경우에, 비신자가 신자와 평화롭게 살기를 거부하면 교회는 그 신자의 재혼을 허락한다. 교회는 성 바울로의 말씀(1고린 7,12-16)을 그렇게 이해하여 왔다. 이 권리를 '바울로 특전'이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간의 혼인성사이었고, 참된 혼인합의와 혼인성사를 받았으면, 한 배우자의 죽음으로가 아니고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교회는 굳게 선언하고 가르친다.

4. 혼인의 특수문제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또 신자들도 교회 밖에서 재혼하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이혼과 재혼을 허락할 수는 없다. 혼인 계약의 지속적 힘을 담대하게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남편, 아내, 자녀의 선익을 위하는 길이다. 그러나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교회는 부부가 공동생활을 피하여 별거하는 것을 허락한다.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는 부부가 계속 동거하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일 수 있다.

고해성사(告解聖事)

고해성사(告解聖事)
고해성사란 무엇인가?
고해성사란 하느님과 이웃을 거슬러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교회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에게 그 죄를 드러내는 것이다.

고해성사의 효과는 무엇인가?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벌을 면제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하고 또한 내 이웃과도 화해한다.

1. 고해성사의 제정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이렇게 해서 고해성사가 제정되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도와 그들의 후계자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교회 안에 고해성사를 제정하셨다. 영세 이후 죄에 떨어지는 신자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은총을 회복할 수 있다.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는 죄를 사하는 이 권한을 행사하였다. 교회가 이 권한을 이행하는 예식인 고해성사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계속적으로 죄를 사하신다는 믿음은 언제나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었다.

2. 고해성사의 형식

트렌트 공의회는 성 베드로에게 주어진 사죄권을 지적하면서, 재판 형식의 고해성사를 설명하고 정당화한다. 더 나아가 사제는 '판사'처럼 행동하면서 죄를 사한다고 트렌트 공의회와 현대 교회는 가르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죄권을 주시고, 사도들에게도 지상에서 푸는 권한을 주셨을 때에(마태 18,18), 인간의 사법심리 절차를 하느님의 정의의 표징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사도들로 하여금 그 이후에도 사죄권을 갖게 하셨다(마태 19,28).

범인인 죄인은 자신을 고소하고, 주님의 대리자 앞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통회하며 주님께 다가간다. 고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고해을 듣는 사제는 고해자의 마음 개방, 통회,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에 따라 죄를 용서해준다. 사제가 고해를 듣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이다. 그래서 사제에게 한 말은 절대 비밀의 의무로 보호받는다. 그 표지를 통하여 행동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판관이시다. "우리는 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이다"(로마 14,10).

3. 고해성사를 위한 세 가지 요구 조건

죄는 하느님과 맺은 우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형제, 자매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맺고 있는 친교를 깨뜨리는 것을 말한다. 고해성사는 바로 이러한 죄로 인한 파괴, 분열을 복구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그리고 내 이웃과 다시 화해시키는 성사이다. 그러기에 고해성사를 '화해의 성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죄는 자동적으로 용서되지 않는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 안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죄를 완전히 용서받자면 성사의 세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참회, 고백, 보속이다.

(1) 참회(또는 통회·痛悔)
제 일 중요한 것은 참회이다. 하느님을 침해하였음에 대한 진정한 아픔이 따라야 한다. 참회는 사랑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고, 죄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고, 또한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통회이어야 한다. 통회는 신앙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며, 인간 행동의 어떤 나쁜 결과에 대한 후회에 기초한 단순한 인간적 후회이어서는 안된다. 하느님 외에 아무것도 더 중요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하느님과의 우정을 끊는 모든 대죄에 대하여 슬퍼해야 한다.

(2) 고백
하느님의 법에 의하면 조심스러운 양심성찰을 해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대죄뿐 아니라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도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영세 이전에 범한 죄를 고백할 필요는 없다. 또한 한 번 고백하여 사죄를 받은 대죄를 다시 고백할 필요는 없다.

(3) 보속
교 회는 죄에 대한 '현세적 벌'이 있다고 믿는다. 하느님은 고해자가 자기 죄에 대하여 보상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고해자는 사제가 요청하는 '보속'을 함으로써 자기 죄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하여서 고해행위를 완수해야 한다. 보속이란 사제가 고해자에게 주는 실천행위를 채우는 것으로 자신의 죄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나 물질적인 손해를 진정으로 기워 갚고자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보속행위는 실제로 죄에 대한 치료약이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약으로써 생활개선을 위한 도움이 된다.

4. 완전한 참회(상등통회·上等痛悔)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이 참회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 위에 사랑하기로 한 하느님을 아프게 하였기 때문에 슬퍼하는 참회라야 '완전한 참회'라고 할 수 있다. 참회가 신앙의 다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면, 즉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처벌이 무서워서만 통회한다면 그 참회는 '불완전한' 것(하등통회·下等痛悔)이다.

중죄에 떨어졌던 사람이라도 완전한 참회를 하면 즉시 하느님과의 친교를 다시 맺게 된다. 그러나 특수한 환경에서가 아니면 대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신앙의 가족과의 관계를 파괴했던 사람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을 중대한 의무를 가진다.

5. 고해성사의 대상이 되는 죄

모든 죄가 하느님과 이웃을 거스르므로 큰 죄(대죄), 작은 죄(소죄)로 나누어 어떤 죄가 고해성사의 대상이 된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일반적으로 십계명을 거스르는 죄는 전부 고해성사의 대상이 된다. 주관적으로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무겁게 느껴지는 죄 또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하지만 사소한 죄에 대해서까지 병적으로 고해성사를 볼 필요는 없다. 고해성사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화해이지, 하느님의 벌을 피하는데 있지 않으며, 하느님은 우리에게 벌을 주려고 기다리는 판사가 아니시라 우리가 돌아오기를 고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잃었던 아들'(루가 15,11-32)에서 처럼 착한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또 미사 때 우리는 참회예절을 하는데, 이로써 우리의 사소한 죄는 전부 사해진다.

6. 대사(大赦)

약점을 가진 우리를 돕기 위해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대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사는 이미 용서받은 죄에 해당하는 현세적 벌의 전부나(전대사·全大赦) 부분의(한대사·限大赦) 면제를 말한다. 대사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한의 힘으로 죄의 용서를 이미 받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 일부를 나누어주며, 죄에 해당하는 현세적 벌의 양을 제거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교회가 대사에 부과하는 선행을 해야 한다.

7. 고해성사의 효과

고해에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죄인은 치료의 은총을 받아 회복하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며, 잃었던 아들과 같이 성부의 환영을 받는다(루가 15,20-24). 동시에 죄인은 공동체 안에 돌아와 공동체의 성찬 식탁(영성체)에 다시 참석한다. 고해성사는 실제로 세례의 거룩한 상태를 회복하거나 갱신한다. 세례의 거룩한 상태를 잃으면 고해성사로써 회복할 수 있다. 대죄를 범한 신자에게는 고해성사를 받고 죄의 용서를 청할 의무가 있다. 죄의 용서는 가능한 한 속히 청해야 한다. 교회법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 고해성사를 받으라고 요구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대죄를 지은 이들은 그때마다 가장 빠른 시기에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고해성사를 조심스럽게 자주 받는 것은 소죄의 치료에도 매우 유익하다.

잦은 고해성사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 안에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열심한 이에게는 고해가 깊은 회개를 하는 방법이고, 성령 안에 키워지는 방법이 된다. 이런 정신으로 교회는 규칙적이고 잦은 고해를 권장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성사를 병적으로 자주 보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8. 어린이 고해성사

유아가 세례를 받을 때에는 부모와 대부모가 유아를 대신한다. 그러나 지능이 발달하면, 어린이들은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준비하면서 자신들의 유아세례를 실현하고 재생시킬 수 있다. 어린이 고해성사는 너무 오래 지연되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의 논리적 사고가 성숙함에 따라 도덕적 양심에 비추어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는 능력도 수련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첫영성체를 하기 전에 첫 고해를 해야 한다. 고해와 영성체에 적절한 연령은 어린이가 추리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즉 만 9세쯤이다. 그 시기부터 고해와 영성체에 관한 법규를 지킬 의무가 시작된다.

9. 고해성사의 공동체성

초대교회에서 어떤 중죄를 범한 죄인은 파문되고, 공개적 보속행위를 해야 하였으며, 성목요일에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의 지체이므로 한 지체의 병은 몸 전체에 고통을 일으킨다. 적어도 개인의 실패는 몸 전체의 성장을 방해하고 활동력을 제한한다(1고린 12,26).

자신만을 직접 해치는 죄악도 공동체의 조화를 깨뜨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도둑질을 할 때 그는 타인을 침해하고, 그 사람과 가족에게 손해를 끼친다. 또한 그는 공동체 전체의 개방성과 상호 신뢰에 금이 가게 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 생명의 맥박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널리 퍼진 사회 부조리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의 사람이 어둡고 엄청난 부조리와 관련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양심성찰을 할 때에 자기의 사회적 책임과 죄악의 사회적 결과를 성찰해야 한다.

10. 고해성사 예식의 종류

고해성사는 공동예식과 개인적 예식 두 가지 방법으로 집행될 수 있다. 공동예식도 성사의 중요한 개인 요소는 보존되어야 한다. 각 고해자는 자기의 죄를 개별적으로 고해하고 개별 사죄를 받는다. 그리고 개인적 예식도 교회의 모든 전례행위가 그러하듯 공식적 요소를 갖는다. 고해성사는 보통으로 공식적으로 인가한 장소에서 집행되고, 중죄를 범한 사람은 사죄를 받을 때까지 성찬 식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영성체 할 수 없다).

공동고해는 고해의 교회적 성격을 더 명백히 드러낸다. 공동고해는 죄의 사회적 측면을 인정하며, 죄인이 하느님께 돌아오면 공동체와도 화해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공동고해의 독서, 성가와 기도는 참석자들을 통회시키면서 하느님의 가족으로 묶어 주고, 각 고해자가 개인적 회개와 새로운 결심을 깊이 하도록 돕는다. 개인고해에도 일정한 이점이 있다. 개인고해는 융통성이 많으며, 성사 집행이나 영성적, 사목적 지도를 병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수한 이유 때문에 개별적으로 죄를 고해할 수 없을 때에는 공동 사죄경으로써 성사적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지방주교가 규정한 중대한 요구가 있을 때에만 공동사죄를 줄 수 있다. 공동사죄를 받은 이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동사죄를 재차 받기 전에 개인고해를 해야 한다. 개별적 고해와 개별사죄만이 신자들이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정상적인 길이다.

11. 고해성사 예식

(1)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를 보기 전
①조용히 자신이 지은 죄를 알아 냄(양심성찰)
②지은 죄를 뉘우침(참회)
③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함
④고해소에 들어감

(2) 고해성사를 보는 방법(○는 고해자, †는 사제)
○(사제 앞에서 십자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당신이 범한
죄를 사실대로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십시오. ○아멘
○(고해성사 본 지가 언제인지를 말한다)
고해성사 본 지 (몇달, 몇주일) 됩니다.
(알아낸 죄를 일일이 구체적으로 고백한다)
○(죄의 고백이 끝난 후 사제는 훈계와 보속을 준다)
○(보속을 받은 후 통회의 기도를 한다)
내 하느님, 나의 범죄로 만유 위에 사랑받으셔야 할 당신의 마음을 상해드렸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나의 모든 잘못에 대하여 진심으로 통회하나이다. 또한 당신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범죄의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결심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공로를 보시고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사제는 고해자 머리 위에 손을 펴들고 사죄경을 외운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시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의 직무수행으로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
○아멘.
†야훼님 좋으시니 찬미합시다.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도다.
†주께서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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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聖體聖事)

성체성사(聖體聖事)
그리스도께서 왜 성체성사를 세우셨는가?
그리스도는 세상 마칠 때까지 교회로 하여금 십자가의 제사를 계속하고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가운데 당신의 구원 사업이 계속 이어지고, 당신 자신이 우리와 일치하는 가운데 우리끼리도 서로 하나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1. 교회 생활의 중심인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무엇인가?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곱 성사 가운데 으뜸되는 성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재현을 뜻하기도 하고(제사로서의 미사), 영적 생명으로 우리에게 넘겨 주신 당신의 몸과 피(성체와 성혈)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그분에게 속한다. 성체는 단순히 상징이나 예식이 아니라 인간이 예수님의 구속활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성사이다. 바로 이 이유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고 절정이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존하시고, 성체는 교회 안에 파스카 신비를 재현하므로, 성체성사는 교회의 모든 직무와 사도직의 "원천이고 절정"(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5)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자신과 노동과 모든 피조물을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하도록 불리우고 인도된다"(직무 5).

2. 성체성사와 구약의 파스카잔치

구약성서에 나타난 많은 제사에서 거룩한 잔치가 예배의 한 요소였으며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느님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노아(창세 8,20)와 아브라함(창세 15,9)의 경우에도 음식을 바치는 제사 가운데 하느님과의 계약이 맺어진다. 그 후 그들의 후손들이 이 계약 준수를 거절해도 하느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출애굽(이스라엘이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한 사건)을 통하여 구약에서 가장 큰 계약을 시나이산에서 맺으셨는데, 이러한 과정 가운데 잔치(음식을 나눔)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출애 12,3-5.11-14.17).

이렇게 식사는 해방이라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에집트에서 탈출하기 전 가족 단위로 음식을 나누었던 사건이 출애굽 사건 전체를 드러내 주는 상징으로 여겨져, 하나의 예식이 되어 대대손손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를 파스카 잔치라고 한다.
에집트로부터의 구원사건 전체가, 파스카 양과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나누어 먹는 의식으로 이루어진 파스카 잔치 예식을 통하여 계속 기념되었다. 이 잔치 때에 하느님의 백성은 자기들이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주님과 맺은 계약을 갱신하였다. 예수님 자신도 최후만찬 때 이 파스카 예식을 행하신 것으로 보인다.

3. 예수의 최후의 만찬: 성체성사를 세우심

예수께서는 언제 성체성사를 세우셨는가?
사 람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최후만찬을 하시던 중에 성체성사를 세우셨으니, 빵과 포도주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로다"라고 선언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계속 행할 것을 명하셨다.

사람들에게 붙잡혀 돌아가시기 전에 베푸신 최후만찬 때에 주님은 새로운 기념 제사를 세우셨다. 먼저 예수님은 파스카 예식을 거행하셨다. 이 거룩한 밤에 예수님은 다가올 새 선물에 관해서 말씀하셨고, 과거의 보배는 새 선물의 그림자나 모형에 불과했다고 하셨다. 그분은 새 계약의 규정을 선포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2).

저녁식사 도중에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을 하다가 예수님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26). 그분은 포도주가 든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20). 끝으로 그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4)라고 명령하셨다.

파스카 잔치와 마찬가지로 새 계약을 이루는 이 기념 제사(미사)도 제사인 동시에 거룩한 식사이다. 십자가의 제사를 피흘림 없이 재현하고, 그 제사의 구속 은총을 적용하는 미사성제에서 주님이 희생으로 바쳐진다.

4. 초대교회의 성찬례(미사)

초대 교회생활을 기록하던 당시의 교회저자들은 성찬예식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니, 성찬이 공동체의 기본적 행사였고,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장 잘 표시하고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성 루가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던"(사도 2,42) 예루살렘의 새로운 신자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던 초창기에 신자들은 보통 이웃에 있는 유다인 회당에서 행하던 성서 중심의 예식에 참석하고,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하여 서로의 집에 모여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복음과 새로운 생활이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사도 2,43-47).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성서 독서의 계획표와 기도문을 작성하였고, 오래지 않아 그것들은 기념제사 식사와 합류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말씀 전례와 성찬 예식의 병합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지내는 성찬예식에도 계속 남아 있다.

5. 미사(성찬례)

미사(성찬례)란 무엇인가?
미 사는 십자가 위에서 바칠 제사를,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식사의 형태를 빌어 행하신 것을 재현하는 제사이니, 이를 통하여 교회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면서 그분의 구원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동시에, 미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당신 몸과 피로 영적 음식을 취한다.

미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특히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제사를 성사적으로 거행한 최후만찬의 재현이다. 따라서 미사는 십자가 제사이자 파스카 잔치이다.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시는 것은 아니지만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십자가 위에서 한 번만 봉헌된 피흘린 제사가 재현되고, 그것의 기념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보존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구원의 힘이 우리가 매일 범하는 죄악을 용서한다.

십자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사에서도 예수님이 성부께 끝없이 무한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주례 사제이며 제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사에서는 교회가 예수님과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교회는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합쳐서 봉헌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제와 제물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1) 미사의 구조
미사는 크게『말씀전례』와『성찬전례』로 나눌 수 있다. 미사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①시작예식(始作禮式)
사제가 제대 앞으로 나옴
- 입당 - 인사 - 참회 - 자비송 - 대영광송
- 본기도(그날 미사의 주제가 드러남)
②말씀전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
- 제1독서(보통 구약에서 뽑으며, 그날 복음과 관계되는 구절)
- 화답송(성서의 시편으로서, 방금 들은 말씀에 대해 감사, 찬미드림)
- 제2독서(복음을 제외한 신약에서 뽑음)
- 복음 환호송(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미하라' 라는 뜻으로,
복음을 듣기 전에 백성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환호임)
- 복음 - 강론 - 신앙고백 - 보편지향기도
③성찬전례
주님의 최후만찬을 재현하면서 십자가 제사를 기념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면서 봉헌노래를 부르고 미사예물(헌금)
을 바침
- 예물기도 - 감사송 - 거룩하시도다 - 감사기도 - 주의기도
- 평화 예식 - 빵 나눔 - 하느님의 어린 양 - 영성체 전 기도 - 영성체 - 감사침묵기도 - 영성체 후 기도
④마침 예식
파견
- 강복 - 파견

(2) 제의(祭衣)의 색(色)
미사 중에 사용되는 색은 5가지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흰 색 무죄함과 환희, 부활의 상징으로서 순교하지 않은 성인들, 성모, 천사 축일과 부활, 성탄시기에 사용.
붉은색: 피(순교)와 사랑을 상징하며, 성령, 순교자 축일에 사용.
녹 색: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그리스도교의 희망을 상징하며
대림, 성탄, 사순, 부활시기가 아닌 연중시기에 사용.
보라색: 참회와 겸손의 표시로서, 대림시기, 사순시기에 사용.
검은색: 죽음을 상징하며 장례미사 때 사용.
이밖에 흰색 대신 노란색을 사용하기도 하고,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에 참회 가운데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장미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6. 미사지향과 미사예물

사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백성의 여러 가지 요구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성부께 미사를 봉헌한다. 하느님만이 이 완전한 숭배와 찬미를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하느님에게만 봉헌된다. 미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만인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총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지내는 것이다.

신자들이 자기들의 특별 지향, 죽은 이의 영원한 안식, 어떤 영신적인 또는 현세적 필요, 하느님께 감사의 표시 등을 위하여 미사를 드려달라고 청한다. 이런 청을 할 때에 보통으로 금전적 기부를 한다. 이 미사예물은 그것을 바치는 사람이 미사성제에 좀더 깊이 참여하고자 한다는 원의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미사예물의 봉헌자는 미사성제에 자신의 제물을 첨부하면서 교회와 사제들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돕는다. 결국 미사예물을 빌미로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신앙 자세라 할 것이다.

7. 교무금과 주일미사예물(헌금)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자기가 번 돈의 일부(원래는 십분의 일을 바쳤다)를 교회에 바칠 뿐만 아니라, 교회의 활동을 경제적으로 돕고 사제의 생활을 위해 돈을 희사하게 된다. 교무금(敎務金)은 각 신자가 교회(일반적으로 본당 신부)와 협의하여 매달 얼마씩 내겠다고 약속한 금액이며, 이외에도 매번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감사헌금이나 교회의 특별 활동(예: 성전 신축기금)을 위한 헌금을 한다.

이 모든 헌금 행위는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며 따라서 모든 재물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공동체적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8. 미사의 집전자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4)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셨다. 미사를 지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품성사를 통하여 부르시고 날인하여 당신의 대리자로 행동하도록 권한을 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도에 따라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교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축성의 말을 할 때에 신약의 제사가 재현되어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신자들도 자신들의 "왕다운 사제직"(1베드 2,9)의 힘으로 봉헌에 참여한다. 신자들이 영성체를 함으로써 또한 "사제의 손을 빌어서 제물을 봉헌할 뿐 아니라 그 제물을 사제와 함께 봉헌하며, 자기 자신도 제물로 봉헌하면서"(미사경본2, 서론 62), 신비체의 지체로서의 직책을 완전히 이행함으로써 봉헌에 참여하는 것이다.

9. 영성체(領聖體)

성체와 성혈은 무엇인가?
성 체와 성혈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교회는 미사 중에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이는 내 몸이요", "이는 내 피니라"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선언을 받아들여 성체와 성혈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심을 고백한다.

성체성사(성체와 성혈)를 받는 것을 영성체라고 한다. 영성체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자신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형제자매들과도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먹으면서, 말씀전례 때 들은 하느님의 말씀(말씀은 그리스도 자신이시다!)대로 살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보통 경우에는 하루 한 번만 영성체를 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 경우에는 하루에 두 번 영성체하는 것을 허락한다. 성체만 영하거나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우리 안에 모시게 된다. 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 모두에 온전하게 현존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영성체를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에 관한 하느님의 법은 없다. 교회는 신자들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사순절 시작과 부활시기의 끝 사이에 영성체 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성체를 자주 받아 영하여서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깊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주 혹은 매일이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를 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한다(교회헌장 42).

10. 영성체 준비

성체성사를 합당하게 받자면, 영세한 가톨릭 신자로서 은총 지위에 있고 성체에 관한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대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영성체 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대죄를 범한 사람이, 영성체를 해야 할 긴급한 사정이 있으나 고해성사를 볼 기회가 없으면 영성체 전에 완전한 통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후에 기회가 오면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신약성서는 영성체를 합당하게 할 중대한 의무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1고린 11,27-29).

우리가 영성체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음식과 술을 먹지 말 것을 교회는 명한다. 이 공복재(空腹齋)는 성체로써 우리가 받는 그분에 대한 외적인 존경의 공동표시이고 참회하는 준비이다. 환자와 노인에게는 15분의 공복재로 넉넉하다.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복재가 필요없다. 또, 물을 마시거나 약을 먹는 것은 허용된다.

11. 영적 음식으로서의 성체성사

성체성사의 가장 자명한 표징은 음식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파스카 잔치에서 사용되던 음식은 구약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방의 주식이었다. 서방교회에서는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최후만찬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성 바울로는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순수성과 새로움의 상징이라고 보았다(1고린 5,6-8).

포도주가 사용되는 미사에는 음식의 상징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최후만찬 때에 먹고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음식을 상징하고 있는 것과 잘 맞는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35.55).

12.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치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빵과 포도주가 그 자체로 일치의 상징이다. 많은 밀알이 모여서 빵을 이루고, 많은 포도알이 모여서 포도주를 이루듯이 하느님의 가족이 모여서 하나가 된다. 공동체가 빵을 나누어 먹는 그 자체가 일치를 상징한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단일성을 표시하고 동시에 실현한다". 사랑이 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를 이룩한다.

영성체가 강조하는 일치는 우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일치인 것이다(요한 15,4).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하여, 우리는 서로 함께 뭉치고 사랑의 활동을 통해서 서로를 위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성체성사가 세 번째로 상징하는 것은 우리의 천상 유산이다. 성찬예식 전체는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옥좌 주위에 모여서 하느님 자신을 영원한 보상으로 받을 것이다.

미사참례는 우리를 지상의 살아 있는 교회와 일치시킬 뿐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신앙으로 표시되어 우리보다 먼저 죽은 이들과도 일치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성제를 봉헌하며, 모든 성인들과 결합함으로써 천상의 예배하는 교회에 매우 밀접히 일치하는 것이다"(교회헌장 50).

13.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성체 안에 빵과 포도주의 외형 아래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는 교회의 신앙은 요한 복음에 기록된 예수님 자신의 설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요한 6,22-71). "나는 생명의 빵이다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48.51). 어떤 사람들은 이 약속이 믿기에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였다. 불신자들이 떠나갔어도 예수님은 당신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셨고, 당신 말씀에 대한 불신자들의 이해를 바꾸려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놓고, 당신은 실제로 시적으로나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도 않으셨다.

성체 안의 경이스러운 현존 양식은 독특하다. 교회가 믿고 기도하고, 자선사업과 신앙의 활동을 할 때에, 교회의 주교와 사제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성사를 집행할 때에,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나 미사 때에 이루어지는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의 현존은 참된 현존이라고 묘사될 만큼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 다른 여섯 가지 성사는 신자로 하여금 활동하시고 은총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상봉하게 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성체성사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사제가 예물을 들고 봉헌의 말을 했을 때 빵과 포도주는 없어지고, 그때부터 우리 앞에 놓여있는 빵과 포도주의 형체 안에 있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인 것이다. 예수님은 영성적으로 당신의 지식, 관심, 활동으로서만 현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방법으로, 전체적으로, 하느님이며 사람으로서, 실제적으로 또 영구히 현존하신다. 봉헌 후에 빵과 포도주의 외형이 남아 있는 한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계속 현존하신다.

14. 성체 신심

교회의 초기에 성체를 보존하던 중요 이유는 전례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환자와 죽어가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영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님의 성체를 존경스럽게 모셔가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 성체에 대한 신심은 깊고 넓혀져 갔다.

성체성사가 있는 곳마다 우리의 주님이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그래서 이 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어디서나 예배드려야 한다. 성체에 대한 예배는 무릎을 꿇거나 절하기, 성체조배 등 여러 가지 방법과 여러 가지 신심 행위로써 표현된다. 13세기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성인들의 힘으로 성체 대축일이 제정되었다. 가끔 성체를 보통으로 모셔두는 감실에서 제대 위로 모셔 내놓고 조배하는 방법(성체현시)도 있다.

성품성사(聖品聖事)

성품성사(聖品聖事)
성품성사란 무엇인가?
성품성사란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승하여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고 복음을 선포하도록 교회 안에 주교, 신부, 부제를 세우는 성사로서, 이 성사를 통하여 이들 성직자들에게 필요한 은혜가 베풀어진다.

그리스도는 왜 성품성사를 세우셨는가?
그리스도는 성직자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고, 거룩한 제사(미사)를 바치며,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그의 구속사업이 계속되도록 성품성사를 세우셨다.

1. 성품성사의 기원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최초의 성목요일에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시오"라고 하시면서 사도들에게 성품을 주셨다. 성품성사는 그리스도의 의도와 최초의 성목요일에 하신 예수님의 분명한 행동과 말씀에 그 기원을 둔다.

성품성사와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파스카 성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사제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바치셨다. 그런데 성체는 그 제사를 계속적으로 재현한다. 사제직은 하느님의 이 사업에 인간이 특별히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로운 사제직은 볼 수 있고 외적인 사제직이다. 우리 구세주 주님이 이것을 제정하셨고, 당신 몸과 피를 축성하여 봉헌하고 집행하는 권한을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에게 주셨다고 성서가 보여 주며, 가톨릭 교회의 전통도 항상 가르쳐 왔다.

2. 사제직(司祭職)

사제로 성품되는 사람은 세상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표징이 된다. 사제는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하므로 사제직은 그의 실존의 영구적 부분이 된다. 사제직은 하느님의 물릴 수 없는 선물이다.

성품성사를 받을 때에 사제는 "새로이 하느님께 축성되었고" 그들은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산 연장이 되어, 천상 효력으로써 온 인류사회를 재건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세기를 통하여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사제직은 기름발리움으로써 특별한 영적 인호가 새겨지고, 이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 행동할 수 있도록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

그리스도는 사제 안에서 여러 모습으로 사시고 행동하신다. 사제가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영속시키는 유일한 힘을 형성할 때에 표현된다(교회헌장 10). 사도들의 본질적 활동은 복음의 선포, 공동체의 구성과 지도, 죄의 용서, 병자의 도유, 성체성사의 거행, 인류를 구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그리스도의 사업의 연장 등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사제직에 성품된 사람들은, 성화하고 가르치고 다스린다. 사제의 모든 존재와 활동의 원천은 그리스도이시다. 사제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당신의 사제생활과 활동을 현세에서 계속 실현한다.

3. 항구한 사제직

사제직의 축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 번 사제로 성품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제이다. 한 사제가 어떤 이유로든 직무 행사에서 면제되거나 해임되어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의 이러한 특별 참여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사제직의 영구성은 사제가 성품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양식에서 나온다.

그래서 성품성사는 '종말론적 표징',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올 것을 가리키는 표징이다. 사제가 자신을 자유로이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날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인호를 받고 사제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활동할 힘을 얻고, 그리스도의 최상 권한에서 나오는 필요한 권한을 받는다.

4. 보편사제직과 직무사제직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신적 생명과 사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보편사제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품성사는 사제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명에 독특한 방법으로 참여하게 한다. 성품은 성품받은 이를 그리스도의 진정하고 권위있는 특별한 대리자로 만든다. 최후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직분상의 사제직을 별개의 성사로 제정하셨기 때문에 성품받은 이의 사제직은 신자의 보편사제직과 다르며 구분된다.

세례성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교, 사제, 부제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활동에 특수한 양식으로 참여하도록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5. 교회의 직무

신약성서에 여러가지 직무가 나오지만 정확하게 그 기능과 직명이 전부 규정되지는 않았다. 디모테오서, 디도서와 베드로 일서가 쓰여질 때에는 어떤 직분의 기능은 좀더 분명히 구분된다. 여기서 오늘날 성품성사의 핵심적 요소를 볼 수 있다. 주교의 안수는 한 사람을 사제로 날인한다는 핵심이 신약성서에 나온다.

오늘날 교회에는 성품성사가 세 가지 교계적 계층 혹은 품으로 나타나는데 주교품, 성품, 부제품이다. 이러한 직분은 초기교회에서도 구분되고, 교회의 초대교부들의 저서에서도 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는 주교(지도자), 사제(원로)와 부제에 대한 언급(필립 1,1)이 자주 나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지도자를 선정하시고, 그들에게 가르치고 지도하고 성화하는 권한을 주셨다고 신약성서는 확실히 말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동반자며 교회의 기초로서 그들이 갖는 역할 이행을 위한 특정한 은혜와 의무를 받았다.

사도들이 자기들의 일을 계승하기 위하여 선정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친히 확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보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조자와 후계자를 선정하였으며, 이들도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에게 안수하였다.

(1) 주교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이다. 그리스도의 의향대로 주교들은 사도들이 처음에 하던 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도직 계승은 실제로 주교들에게 이루어졌다. 주교들의 사명은 사도들과 그리스도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 교는 성품되어 지방교회의 구심점이 되고 일치의 원천이 된다. 그 일치는 특히 주교들이 사제와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성체의 제사를 드릴 때에 나타난다. 주교는 다른 주교한테서만 성품되며(교회헌장 21), 교회의 거룩한 오랜 숭엄한 전통은 주교만이 성품과 부제품을 주도록 제한한다. 주교는 견진성사의 통상 집행자이기도 하며, 지방교회의 공동체에서 일치의 원천이며 표징으로서, 예배에 있어 지도자이고, 공식적이고 전통적 전례자이며, 교구의 으뜸가는 교사이다.

(2) 사제(신부)
사제는 주교들과 더불어 성품성사에 참여한다. 사제는 주교를 도와 교구의 일정 지역을 담당하여 복음을 전하고 신도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사제는 주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면서 고해성사로써 죄를 사한다. 사제의 다른 기능은 설교, 교회를 위한 기도, 병자의 도유 외에 다른 성사를 집행하여 세례로써 사람들 안에 시작된 신적 생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비록 대사제직의 결정인 주교품을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권한 행사에 있어서 주교에게 매여 있지만 사제로서의 영예만은 주교와 함께 지니고 있다(교회헌장 28). 통칭 신부(神父)라고 불리는 이들은 재속사제(교구에 소속된 사제)와 수도사제(수도회에 소속된 사제)로 나뉜다.

(3) 부제
주교직이나 사제직과 마찬가지로 부제직도 성품성사의 일부이며 하느님이 제정하신 것이어서, 교회 안에 영구적 자리를 차지한다(필립 1,1).
부 제라는 직명은 '봉사'라고 하는 희랍어에서 나온 것으로 사도행전 6,1-4에서 보듯이 봉사하기 위한 직책이다. 부제는 교회에 봉사하며 이미 사도시대에 부제직의 임무가 크다고 인정되었다. 부제는 전례행사를 돕는다. 즉 부제는 성체를 분배하고 세례를 주며, 복음을 선포하고 설교한다. 부제는 신앙의 증인이며 옹호자이다.
초대교회에서 부제직은 공동체 안에 중요성을 갖는 영구직이었다. 그러다가 서방교회에서는 부제직은 잠시 동안만 행사되는 품이 되었으며, 곧 사제가 되려는 사람이 채우는 직책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영구 부제직을 복구시켰다. 유럽과 미국,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위시한 여러 나라에서 종신 부제직을 받아들였는데, 이들 종신부제들은 사회 안에서 일반 직장을 가지고 혼인도 하면서 교회의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주교들의 협의에 달려 있다.

6. 여성 사제직

교회 내에서 여성의 봉사는 초기에서부터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를 풍족케 하였다. 그러나 여성이 교회에서 사제나 주교로 성품된 적은 한번도 없다. 마리아도 교회 안에서 다른 어느 사람보다 더욱 큰 역할을 하였지만 아무런 사제 직무에 불리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당대의 사회적 압력에 대항하여,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앞에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고 강력하게 선포하였으면서도 여자를 사제직에 부르지는 않았다.

물론 남자나 여자나 아무 신자도 성품성사에 대한 권리는 갖지 않는다. 성품성사가 영성적 성장이나 개인적 완성을 위하여 필요한 은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품성사는 교회내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맞추어 신앙 가족의 선익을 위하여 좋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만 준다.
여성에 대해 사제직이 허락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법에 의해서라기 보다 관습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7. 사제적 소명의 표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사제직에 들어간다. 한 청년이 건강하고 상당한 지능과 사제직에 요구되는 성격을 가졌고, 또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사제적 활동을 하려는 소망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성소의 '표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명의 여부를 확인하는 임무는 교회에 있으며, 그 선정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품할 책임도 교회에 있다. 선택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요한 15,16).

성품성사는 교회 내의 한 특정 지위를 정해 주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다. 그것은 성사이며, 성사를 집행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할 권한을 준 것뿐 아니라 그런 권한을 거룩하게 행사하게 하는 은총도 주는 성사이다. 성품성사는 직무에 대한 특별 은총을 준다.

8. 사제의 독신제

교회의 초기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에 일편단심으로 생명과 마음을 바치기 위하여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가 있었다(1고린 7,32-35). 독신생활은 사제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더욱 비슷하게 한다. 성 바울로는 독신생활이 그리스도에게 봉사하는 데에 많은 자유를 주고, 그분께만 전적으로 투신할 수 있게 한다고 지적하였다(1고린 7,32-35).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설교하는 사제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크나큰 개인적 희생을 하며 일생을 살도록 교회는 원하고 있다. 사제의 독신생활은 종말론적 표지, 영생을 가리키는 표지라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사제생활을 강요받지 않기 때문에 사제의 독신생활 규정은 결코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독신생활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사제직에 응답한다. 독신생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완화할 권한이 교회에 있다. 그러나 교회의 경험과 신약성서의 메시지는 사제들이 생활화하는 이 특은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매우 좋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제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사제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하여 불림을 받았는지에 관한 사색과 묵상이 사제의 일상생활의 일부이어야 한다. 사제는 깊은 영성적 확신과 기도와 희생의 정신이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없다.

9. 사제의 권위: 봉사를 위한 권위

사제의 권위는 언제나 인간의 영적 선익과 일치를 지향하는 교회의 목적과 조화를 유지하면서 행사하여야 한다. 첫 번째 권위의 행사는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권위있게 해석하기를 요구한다. 두 번째 권위의 행사는 사제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 그리스도께서 부여한 권위를 가지고 그리스도교의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사명과 관련된다(요한 17,11). 결국 사제가 갖는 권위란,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한 권위이며 사제 자신을 위한 권위가 아닌 것이다.

10. 사제와 사회정의 문제

사제 본연의 사명은 정치, 경제나 사회적 질서의 사명이 아니라 종교적 질서의 사명이다(사목헌장 42). 그러나 사제는 자기 직무를 이행하면서 특히 인간의 불의와 억압의 문제가 아주 심한 지방에서, 좀더 의로운 사회질서 건설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일 사제가 사회, 정치적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 한다거나 거기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면, 이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선포하고 실현하여야 하는 예언자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제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 할 것이다.

사제는 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뜻대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정의가 필요하며, 이러한 정의를 해치는 불의를 고발하고 제거할 임무를 사제는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제가 직접 정치, 경제 문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으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개선책도 제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제는 자신의 신분에서 이탈하지 않고도 사회를 개선하는데 이바지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정의에 투신하는 경우에도 사제는 항상 교회적 일치를 유지하며, 복음과 부합하지 않는 말이나 폭력을 배척해야 한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며, 새로운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견진성사(堅振聖事)

견진성사(堅振聖事)
견진성사를 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견진성사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세상에 증거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된다.

견진성사 때 주교가 견진자의 이마에 바르는 기름(크리스마 라고도 불림)은 무엇을 뜻하는가?
구약시대에 예언자, 왕, 사제에게 기름을 부어 세운 전통에 따라, 성령의 상징인 기름을 받는 견진자는 이제 하느님의 예언자, 왕, 사제가 되어 세상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드러내고 전하는 자가됨을 뜻한다.

1. 견진성사의 기원

성체, 세례, 고해성사에 관한 뚜렷한 가르침은 복음에 있으나 견진성사에 관한 가르침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서에서 견진성사에 관한 말, 즉 기름 바르는 예식에 관한 말이 나온 때는 그리스도는 이미 승천하신 후였다.

2. 견진성사 기름(크리스마)의 뜻

원래 견진성사 때 사용되는 올리브 기름은 대개 고대세계에서처럼 팔레스티나에서도 값진 물품이었다. 용도가 다양한 만큼 의미도 풍부하였다. 아론은 도유(塗油)를 받아 대사제가 되었고, 그의 아들들도 그랬다(레위 8,12.30). 후에 사무엘은 사울을 도유하여 왕으로 세웠고, 다윗에게도 그랬다(1사무 10,1;16,13).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도유받음으로 성령을 받고, 비범한 결과를 내었다. 즉 사울은 예언하게 되고, 주의 성령은 다윗에게 급히 다가갔다. 이렇게 해서 기름은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보내진 은총의 참여이며, 성령의 오심을 상징하게 되었다.

3. 성령의 성사로서의 견진성사

견진성사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안수와 크리스마 성유(聖油)를 바름으로써 성령강림 일에 받은 성령의 은총을 전교회와 모든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성사이다. 견진은 전세계로 향하고, 교회 안에서 영구히 재현되는 성령강림이다. 견진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부르심이다.

4. 견진성사 집전자

견진성사로써 완전히 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까닭에, 한 지방교회의 우두머리인 주교가 견진성사를 베푸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정에 의해 교회가 위임하면 어느 사제든지 견진성사를 집행할 권한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통상적으로 주교만 성사를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 안수(按手)를 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성령을 주었다. 이렇게 주교의 집전을 통해서 성령을 받을 때에는 견진자를 교회와 또한 사람 속에서 증인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결합시키는 깊은 유대가 드러난다"(견진성사예식서 7).

5. 세례와 견진

교회 초기에는 세례 직후에 견진성사가 집행되었다. 세례는 재생이고 새로운 창조이지만, 성령으로써 완성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지도, 격려, 용기, 성장을 더 필요로 한다. 교황 바울로 6세는 "신자들은 세례성사로써 재생하고, 견진성사로써 강화되며, 성체 안의 영생의 음식으로써 유지된다"고 가르쳤다.

어른이 세례를 받는 경우, 세례 집전 사제가 즉시 견진을 베푸는 것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주교회의에서 사목적 이유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주교가 견진성사를 베풀도록 규정한 까닭에 어른 세례자라 할지라도 다시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교육을 받은 후에 주교로부터 견진을 받는다.

라틴 예식에 속하는 견진성사 예식서는 어린이들에 관해서 "견진성사의 집행이 보통으로 만 7세까지 지연되지만, 사목적인 이유에서 좀더 성숙한 연령에까지 지연되는 것을 허락한다"(견진성사예식서 11)고 하였다. 많은 곳에서는 사춘기 초기까지 견진성사를 연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교적 생활 전체가 재출생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어른 단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본다면(에페 4,13), 견진성사가 사춘기에나 더 늦게 집행되어도 아직도 입교의 성사로 보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

6. 성장의 성사

견진성사는 성장을 의미하며, 견진자가 성장하도록 요구하는 계속적 도전이다. 이 성장을 위해서도 생명이 요구되며, 견진자는 은총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견진은 순간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고, 또 즉각 성장을 위한 것도 아니다. 견진은 한 사람에게 한 번만 주어지고, 영구적 결과를 내는 성사 중의 하나로서 영구적 인호를 준다.

7. 견진성사의 효과

견진성사는 교회와 신자들의 생활 안에 성령강림을 영구화하는 성사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무한한 선물이며, 그것을 받는 사람은 "성령이 계신 성전"(1고린 6,19)이 된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성장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라고 하셨다. 견진으로써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여 옹호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교회헌장 11). 현세에서의 사도적 임무를 위한 평신도의 소명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평신도의 역할이 견진성사와 관련된다.

8. 견진성사 효과의 근원

견진성사는 다른 모든 성사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인 파스카 신비에서 효력을 받는다. "보통으로 미사 중에 견진성사가 집행되는 것은 이것을 의미한다"(견진성사예식서 13). 견진성사가 미사와 떨어져서 집행되어도, 그것의 원천은 역시 파스카 신비이다. 크리스마 성유(성 목요일에 주교가 축성한, 견진성사 때 사용되는 기름)도 견진자가 이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님이 받은 도유를 상기시킨다(마르 1,11).

세례성사(洗禮聖事)

세례성사(洗禮聖事)

세례성사를 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으면 원죄를 포함한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한 일원이 된다.

세례성사를 받는 사람은 교회 앞에서 무엇을 약속하는가?
악의 경향과 유혹을 끊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계명을 지키기로 약속한다.

세례성사의 통상적 집전자는 누구인가?
주교, 사제, 부제가 통상적 집전자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비가톨릭 신자를 포함한 아무라도 세례성사를 베풀 수 있다.

세례성사의 예식은 어떠한가?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무)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세례경을 외운다.

1.세례성사를 주는 시기

(1) 부활성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성탄, 부활, 성모승천 대축일(8월15일)과 그외 각 본당의 사정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세례성사를 베풀지만, 전통적으로는 부활성야, 즉 부활주일 전날 밤이 세례성사를 위한 시기이다.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약 3년간 예비신자로서 교리교육을 받은 후 사순절(부활을 준비하는 부활 전 40일간)에 집중교육을 받고 부활성야에 세례성사와 견진 및 성체성사를 받는다.
사순시기가 초대 예비신자들에게 세례 전 교육기간이었듯이 부활성야는 세례 준비, 세례 서약, 신앙 갱신 준비를 위해 가장 적당한 때이다.

부활성야 예식은 보통 성당 마당에서 행하는 빛의 예식으로 시작한다. 새 불에서 부활초에 불을 켠다. 부활 촛불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부활초를 들고 성당 안으로 행렬하는 가운데 먼저 주례자, 그 다음에 봉사자, 끝으로 모여 있는 다른 사람들이 파스카 초에서 자기 초에 불을 당긴다. 모두 구세사(救世史)의 절정에 이른 하느님의 빛의 영광 안에 기뻐하면서 부활찬송을 노래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세업적을 기록한 독서를 차례로 낭독한다.

제단 초에 불이 켜지고 대영광송이 시작되면 종이 울린다. 성서에 나오는 구세사를 요약하는 기도로써 물을 축성한다. 부활초가 물에 담구어지면 부활초가 상징하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세대(聖洗臺)는 생명을 주는 것이 된다.
세 례 서약을 선언하고 신앙고백이 이어지며 끝으로 세례를 준다. 이렇게 영세자는 하느님의 선민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사제직"(1베드 2,5)에 참여케 된다. 영세한 사람에게 세례의 순결의 표지인 흰 옷을 입히는 것으로서 예절이 끝난다. 영세자는 이로써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축하하고 신앙을 갱신하는 성체성사에 참여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2) 사순절
사순절은 극기와 신앙 갱신의 기간이므로 공동체 전체의 것이다. 사순절은 예비신자의 교육기간이지만 영세자를 위한 시기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모든 신자는 부활성야에 세례 서약을 갱신하면서 세례의 체험을 재생하고, 세례의 이해를 깊게 할 기회를 갖는다.
모든 극기 행위는 세례가 요청하는 완전한 개종,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된 사랑의 충동 하에 생활 전체를 반성하고 결단하여 재정비하는 완전한 내적 쇄신의 일부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타락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힘으로 좀더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리스도교적 극기는 전통적으로 기도, 단식, 자선행위를 포함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대개 단식보다는 충실한 기도와, 자선활동과 연결된 극기를 강조하는 것이 적당하며, 또 필요할지 모른다. 단식과 금육재가 사순절 때에 장려되지만 특별규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단식재를 지키고, 매 금요일에 금육재를 지킨다.
단식재를 지키는 날은 금육재를 겸한다. 금육재 날은 고기를 먹지 않으며, 단식재 날에는 한 끼는 정식으로 하되 두 끼의 식사 때에는 적게 먹는다. 단식재는 만 18세에서 60세까지 지킬 의무가 있고,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 까지 지켜야 한다.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신자들은 이 특별규정에서 면제되거나 관면을 청할 수 있다.

단식재와 금육재가 극기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환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 죄수, 실망한 사람, 영세민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모범을 생활로 증거해야 한다. 잘 먹던 사람이 단식함으로써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는 희사는 분명한 사랑의 행위이다.

2. 세례성사 예식

세례는 지망자를 성세수(聖洗水)에 세 번 침수하거나, 아니면 그의 이마에 물을 세 번 부으면서 집행할 수 있다. 위급한 경우 사도신경을(이것도 급하면 생략할 수도 있다) 바치고 세례경을 외우면서 세례받을 사람 위에 물을 부으면 충분하다. 물을 사용하면서 주례자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무)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위급할 때에 세례받은 어린이는 병이 완쾌되면 보례(보충 예식)을 받아야 한다.

각 세례 지망자는 여자의 경우는 대모(代母: 영적 어머니)를 남자의 경우는 대부(代父: 영적 아버지)를 정해야 한다. 대부모는 성숙한 사람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며, 영세자를 영성적으로 보살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으로 어느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세례 때에 지어준다. 물과 세례경은 영세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면서 영위하도록 불리운 삼위일체의 새 생명임을 상징한다.

3. 세례의 집전자

주교, 사제, 부제는 세례의 통상 집행자이다.

4. 세례의 주요 효과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함께 묻히는 것이다"(어린이세례예식서 6). 성세수는 우리의 죄를 씻어버리고 우리를 새 생명의 길에 올려 놓는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총은 용서하고 치유하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세례는 원죄를 사하며, 유아기가 지나서 영세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지은 개인적인 죄도 모두 사해진다.

세례 때에는 하느님의 특사(特思)로써 죄의 용서를 받는다. 원죄가 사해져도 원죄의 결과와 죄악에로의 경향은 남아 있다. 죄에로의 경향이 남아 있어 우리는 그것과 투쟁해야 하나, 이 경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그 경향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을 해칠 수 없다. 이 투쟁, 즉 우리 욕망과의 고통스러운 투쟁은 예수님의 죽음에 평생을 두고 참여하는 것이다.

영세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만 그분과 함께 죽는다. 세례는 우리를 교회의 성원이 되게 한다. 교회의 성원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포도나무에 접목되어(요한 15,4-6) 그리스도의 몸에 깊이 결합되는 것이다.
"생명의 말씀과 함께 물로 씻는 세례는 사람들을 하느님 본성에 참여케 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준다"(어린이세례예식서 5).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이며 동시에 새로운 출생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자녀는 부모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하느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어떤 양식이든간에 하느님의 본성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 틀림없다.

베드로 일서의 대부분은 세례와 세례의 효과와 뜻에 관한 묵상이다. 성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정신과 진리에 있어 하느님의 사제가 되게 하는 세례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1베드 2,9-10).

5. 어린이 세례(幼兒洗禮)

"이해도 못하고 개인적 투신도 못하는 어린이에게 왜 세례를 주는가? 부모가 어린이의 종교를 결정하여 선택의 자유를 없애거나 감소시키는 것은 부당하고 지각없는 것이 아닌가?" 교회법은 가톨릭 신자는 자녀가 출생 한 후 되도록 빨리 세례를 받게 하라고 명한다.
그리스도교의 거의 시초부터 전가족이 세례받을 때에 어린이 세례도 실시되었다. 예수님 자신이 어린이 세례의 신학적 이유를 제공하였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부모가, 특히 자기의 개종이 깊은 영성적 체험이 될 때에 그 체험에 자기 자녀들도 참여시키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자기 자녀들도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고, 자녀들의 전생활이 최후의 목표이고, 최상의 선이신 하느님께로 지향하기를 고대하지 않겠는가?

6. 세례의 종류와 구원 문제

교회는 복음 말씀을 따라(요한 3,5) 세례받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는 그리스도나 세례에 관하여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은 구원될 수 없음을 뜻하는가?

세례에는 물의 세례(수세·水洗)만이 아니라, '피의 세례'(혈세·血洗)와 '열망의 세례'(화세·火洗)도 있다. 피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받는다. 열망의 세례 범위는 넓다. 세례받기를 분명하게 원하였으나 그 바람이 이행되기 전에 죽은 사람은 열망의 세례를 꼭 받는다. 명확하게 혹은 묵시적으로 세례를 열망하였으나, 어떤 사정으로 세례성사를 받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열망의 세례를 받는다. 자신의 과오없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알지 못한 사람들도 선한 생활을 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만인에게 충분히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교회헌장 16)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그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칠 수 있다. 그들은 묵시적이지만 세례를 원하므로, 그것을 열망의 세례라 한다.

7. 세례와 성령의 인호(印號)

세례성사는 견진성사와 성품성사와 마찬가지로 영구적 인호 혹은 표징을 박아준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다른 성사는 한 번 이상 받을 수 있으나 세례, 견진, 성품성사는 한 번밖에 받지 못함을 뜻한다. 이 성사를 받은 사람이 대죄를 범해도, 이 성사의 결과는 존속되고 영구히 남아 있음을 뜻한다.

성 바울로는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우리에게 도장이 찍혔다고 한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에페 1,13).

사제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충분히 참여하고, 그분의 제사를 어디서나 재현하도록 서품을 받았듯이 모든 신자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기본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의무가 지워지며, 그리스도의 제사와 일치하여 자신들의 생활 전체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해도 그들은 세례를 다시 받지 않고, 고해성사로써 교회와 화해한다. 세례 인호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리스도인의 영구적 소명의 표징이고, 또한 하느님의 자발적이고 물리칠 수 없는 사랑의 표징이다.

교회의 성사

교회의 성사
세례성사: 새로운 생명과 생활방식

세례수에 상징적으로 침수(沈水)됨으로써 당신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된다.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당신은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한다(「전례헌장」 6항; 교리서 1086).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 안에 숨은') 그리스도의 입양된 형제 자매이지만, 그분의 몸의 가시적인 한 구성원이다(교리서 1266).

죄 에 대하여 죽은(원죄는 물론 본죄까지도 세례수로 말끔히 씻긴) 당신은 '마치 문을 통과하듯이' 교회 공동체에 입문했다. 당신이 돌이킬 수 없게 그리스도께 세례를 받은 것은 하나의 독특한 평생 소명의 시작이었다(교리서 1214-1216, 1263-1264, 1271).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례 소명을 여러 가지 본당 활동들을 통해서 수행한다. 예컨대, 본당 신부들을 도와 성체를 분배하고, 독서를 하며, 성서를 설명하고 성가대 활동을 하며, 전례 안내를주도하고, 주보를 나눠 주며, 본당사목위원, 구역장이나 반장, 레지오 마리애 단원, 빈첸시오회 회원, 주일학교 교사, 연령회, 그리고 그 밖의 여러 활동들에 참여한다(교리서 991).

어떤 사람들은 교리교사, 피정 프로그램, 성서 연구, 기도 모임, 매리지 엔카운터(ME), 선택, 교회문헌 연구 등의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 성령운동에 가담하여 함께 하느님을 찬미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례 신앙을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세례받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자신들의 세례 소명의 신비를 살아 내는 몇 가지 방식에 불과하다(교리서 898-913).

세례의 생명을 사는 한 가지 방식은 수도생활이라고 불린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특별한 은총에 유의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수도회에 들어가 '형제'(수사) 또는 '자매'(수녀)가 된다. 또 어떤 수도자들은 신부가 되어 수도생활과 사제적 직무를 병행하기도 한다(교리서 914-933).

축성된 수도자들로서 이 사람들은 가난, 정결,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들을 충실히 지키며 살기로 서약함으로써 하느님께 온전히 투신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설명하고 있듯이 그들의 생활은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이 봉헌은 세례성사에 의한 축성에 깊이 근거하며 이 축성을 더욱 풍성히 표현하는 특별한 축성인 것이다."(「수도생활 교령」 5항; 교리서 2102-2103)

세 례성사를 통하여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세례성사로 새로 난 모든 사람들 사이를 묶어 주는 일치의 성사적 끈'에 가담하는 것이다(「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22항). 당신은 세례성사를 결코 다시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을 하느님께 영원히 결속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 유대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은총과 신앙을 잃을 수는 있지만, 세례성사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당신은 하느님께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다. 이것을 '세례 인호'(洗禮印號)라고 부른다. 그 동일한 유대가 당신을 다른 모든 세례받은 사람들과 성사적인 방식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성사적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세례성사의 신비를 죽을 때까지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교리서 941, 1271, 2791).

성령의 봉인이며 성부의 선물인 견진성사(교리서 1285-1321)

견 진성사(堅辰聖事)는 세례성사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성령의 봉인(封印)과 성부의 선물을 받는 성사이다. 세례성사 및 성체성사와 더불어 견진성사는 입문성사이다. 견진성사를 통해서 신앙인은 성숙한 그리스도교 증인의 생활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의 깊은 현존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후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교리서 1302-1303).

만일 당신이 오늘 견진성사를 받는다면, 집전자는 그의 엄지손가락을 올리브 기름과 발삼 향을 혼합한 축성 성유에 적셔서 당신의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을 것이다. 이 행위는 동시에 안수 행위로서 사도시대로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성사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당신에게 도유하는 동안 집전자는 당신의 새로운 견진명(堅辰名)을 부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

이 말들은 초창기 교회 공동체와 연결된 말들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도(…)약속된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특전입니다."(에페 1,13-14; 교리서 1299-1300)

견진성사에 사용되는 '특은'(Gift)이라는 말은 대문자로 씌어지는데, 그것은 이 성사에서 우리가 받는 '선물'(Gift)이 바로 성령 자신이시기 때문이다(교리서 1293).

고해성사(교리서 1422-1498)

고 해성사(告解聖事)를 통해서 우리는 세례 이후에 저지른 죄들에 대한 하느님의 치유하시는 용서를 받게 된다. 이 성사는 '화해의 성사'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이 성사가 우리를 하느님과는 물론 교회와도 화해시키기 때문이다. 화해의 이 두 측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교리서 1468-1470).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그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죄는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약화시킨다. 우리가 고해성사에서 받는 치유는 자신에게는 물론 교회에게도 건강과 힘을 회복시켜 준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났거나 아주 멀어졌다면 그 해악은 그 죄인에게 돌아간다. 경죄(輕罪)는 그의 하느님과의 관계를 경직시키고, 사죄(死罪)는 그 관계를 단절시킨다(교리서 1854-1863).

죄 란 하나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고해성사는 하나의 기쁨에 찬 재결합이다. 루가 복음 15장에서는 이 기쁨을 호소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나치게 자비롭다고 비난한다. 이에 응수하여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 말씀을 들려 주신다. 첫번째 비유에서는 하느님이 마치 아흔아홉 마리 양을 내버려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에 비유되고 있다. 잃었던 양을 발견하게 되면 그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교리서 1443).

두 번째 비유에서는 한 여인이 잃었던 은전을 찾아 내고는 큰 잔치를 벌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신다.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루가 15, 10; 교리서 545-546)

세 번째는 고집스러운 아들의 비유이다.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 올 때, 아버지는 따뜻한 포옹으로 그를 맞이한다(교리서 2839).

당 신이 참으로 슬퍼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당신의 죄를 진지하게 고백할 때,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신다. 루가 복음에 묘사되어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엄격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느님보다도 더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반대로, 예수님에 의해서 계시된 아버지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착하시다. 그리고 당신이 이 성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예수님 자신도 그러하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고해성사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얼싸안고 치유해 주신다(교리서 1441-1442).

병자성사(교리서 1499-1532)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되었을 때, 당신은 죽음을 예감하게 되고,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만일 당신의 병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쇠약해지거나 노약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교리서 1499-1525).

이러한 상황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의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하느님을 대면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는 특별히 성사적인 측면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런 성사적 상황을 위한 하나의 성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병자성사이다(교리서 1522).

병자 성사는 죽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성사에서 당신이 죽음의 순간에 그분을 만난다는 관점에서 그분과 대화하도록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이 성사를 통하여 교회 전체가 하느님께서 당신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영원한 구원을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한다(교리서 1520).

당신이 반드시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만 이 성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병자성사와 거기에 수반되는 기도가 건강의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당신이 당장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쇠약하거나 노약할 뿐이라고 할지라도, 병자성사를 요청할 수 있고, 아니 꼭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 질병이나 노령 때문에 죽을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성사를 받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교리서 1514-1515).

병자성사는 당신으로 하여금 좀더 충만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렇게 동참함으로써 당신은 교회 전체의 영적 선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당신이 병자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좀더 충만하게 동참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더 충만하게 동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교리서 1521).

혼인성사: 생명을 주는 하나 됨의 성사(교리서 1601-1666)

어 느 시대 어떤 문명 속에서도,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서 어떤 신비로운 거룩함을 느껴 왔다. 거기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막연한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생명의 원천과의 하나 됨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예식들과 사회 규범들은 언제나 결혼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교리서 1601-1642).

예수님께서는 세례성사 때에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의 어떤 새로운 차원을 결혼에 부과함으로써 결혼을 혼인성사로 만들었다(교리서 1601).

혼 인에서 남편과 아내는 매우 실천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도록 부름받는다. 즉 서로의 가장 인격적인 필요들에 봉사하고 서로 자신의 개인적 생각과 느낌들을 진지하게 나눔으로써, 그들의 하나 됨이 언제나 살아 있고 성장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부부의 사랑은 혼인에 고유한 행위로써만 독특하게 표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사목헌장」 49항; 교리서 1643-1654)

또 혼인에서 부부는 자기들의 성사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도록 부름받는다. 그들의 명백한 친밀함에 의해서 부부는 어떤 특별한 것, 즉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것을 자기 자녀들 및 자기들과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뜨리게 된다. 혼인의 주요 목적과 자연적인 결과는 새로운 생명, 즉 자녀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 곧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교리서 1652-1658, 2366-2367).

부부는 단지 그들이 서로 참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생활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소명이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주는(…)위대한 신비'(에페 5, 32)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교리서 1616).

혼인은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사적인 타협보다 훨씬 더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성사적 소명이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통해서 그분의 몸인 우리와 하나 됨의 신비를 드러내고 심화시키는 한 매체이다. 이리하여 남편과 아내들은 그들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라는 에페소서(5, 21)의 권고를 따를 때 참으로 성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교리서 1617).

가톨릭 교회에서 부부의 성사적 결합은 배타적이고(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합이다) 불가해소적이다(죽기까지는 둘이 서로 한 몸이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스러운 하나 됨이 현실이 되는 구체적인 방식들이다(교리서 1643-1645, 2360-2379).

부모가 자기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좀더 친밀해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교리서 2201-2231).

성품성사: 직무적 사제직(교리서 1536-1600)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전체는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본성과 과제들에 동참한다. 이것은 그분의 사제직에 동참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교리서 787-796, 1268, 1546).

그러나 이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 너머에는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 성품성사(聖品聖事)를 통하여 받는 그리스도의 특수한 또는 '직무적 사제직'이 있다(교리서 901, 1547).

공 통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은 각각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동참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유형은 서로 상관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컨대, 성찬 제사에서 서품받은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그 희생제사를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백성들은 그 봉헌에서 사제에게 가담한다. 사제와 백성의 두 가지 역할은 상호 보완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교리서 901-903).

사제들은 성품성사의 충만함을 소유하고 있는 주교(主敎)들로부터 자신들의 사제직을 받는다. 주교는 사제들을 서품할 때, 그들에게 자신의 사제직과 사명에 동참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교리서 1562-1564).

사 제(司祭)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고 자신들의 백성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성숙시키는 권한에 속하는 모든 것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참한다. 그들은 세례를 베풀고 치유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하고 혼인성사와 병자성사에서 교회의 증인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제들은 '사제를 으뜸으로 하는 신자 공동체의 중심'(「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5항)인 미사를 거행한다. 모든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한다는 단일한 목표에 결합되어 있다(교리서 1565-1568).

사 제들이 서품받을 때, 그들에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행동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내적인 능력인 '특별한 영적 인호(靈的印號)가 새겨진다.'(「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2항). 이 특별한 내적 '인호'가 사제들을 서로 성사적 유대로 결합시킨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사실이다. 이 '구분됨'은 사제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교리서 1581-1584).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적하고 있듯이,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사람들의 선익을 위한 그 밖의 다른 직무들도 수행한다."(「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2항). 이것이 의미하는 한 가지는 백성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제들도 백성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사제들과 밀접히 결속되어 일하는 평신도들은 사제들이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내에서 지도자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교리서 910).

주교들과 사제들 외에, 부제(副祭)들도 성품성사에서 특별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주교에 의해 수여되는 부제직은 사제직에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사제 서품의 첫 단계로서 받는 성사이다. 그렇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고대의 부제품이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 하나의 고유한 권리를 지니는 직분으로서 복원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구들이 더 이상 사제직으로 나아가지 않는 부제들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종신부제'(終身副祭, permanent deacon)라고 불린다. 해당 지역 주교의 권한을 받아 일하는 종신부제들은 본당 사제들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한다(교리서 1569-1571, 1596).

성체성사(교리서 1322-141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의 제2장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聖體聖事)의 신비"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 최후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즉 미사)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대대로 영속화하고, 사랑하는 당신의 정배(貞配)인 거룩한 교회에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게 하여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에게 미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즉 죽음에서 영광된 새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교리서 1323, 1398)

이 신비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중심이며 정점이다. 그것은 '모든 복음 설교의 원천이며 정점'이고 '신자 공동체의 중심'이다(「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대한 교령」 5항; 교리서 1175, 1181, 1324-1327, 1392).

미 사가 거행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제의 인격 속에 그리고 특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하에 현존하신다. 모든 미사에서 그분의 죽음은, 피흘리지 않은 채 성사적인 방식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우리의 제사로서 봉헌되는 하나의 현존하는 실재가 된다.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제대 위에서 거행될 적마다 우리 인류를 위한 구원사업은 수행된다(교리서 1333, 1350, 1372).

미 사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월절(過越節) 희생물인 그리스도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분과 함께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 그 다음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의 생명의 빵이신 부활하신 주님을 받아 모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구원의 파스카 신비의 바로 핵심,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 속으로 들어간다(교리서 1330, 1356-1359).

주님의 만찬을 먹으면서 우리는 모든 시간을 재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한다(1고린 11, 26). 이 사랑의 향연을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온전히 한 몸이 된다.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과 함께할 우리의 미래는 하나의 현실이 된다. 우리가 나누는 식사 안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룰 하나 됨이 상징화되고 실재적이 된다. 미사에서 과거와 미래가 함께 실재적으로 신비 안에 현존하게 된다(교리서 1382-1398, 1402-1405).

만일 당신이 그것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지고 그것 속으로 들어간다면, 성체성사는 당신에게 그리스도를 사랑하도록 자극하며 당신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당신이 거룩한 신비를 외면하게 될 때, '신앙으로 고백하는 바를 행동으로 포착'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신비 안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성체성사가 보존되고 있는 장소로, 즉 감실(龕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로 되돌아온다면, 당신은 그분의 현존이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교리서 1066-1075, 1418).

종교개혁

기도는 교회 일치운동의 혼

기도는 교회 일치운동의 혼

우리나라 에서 그리스도교 일치주간 행사가 시작된지는 올해로 30년이 훨씬 지났다. 그러나 완전한 교회 일치는 아직도 요원하다. 기대가 컸던 이들은 '답보하는 교회'에 실망하기까지 했고, 소심한 이들은 '진리의 순수성'을 위해 더 폐쇄적인 태도를 굳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해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교회일치운동을 펼쳐왔으며, 이같은 활동을 전세계의 일치운동에 적지 않은 변 화를 가져왔다. 현대 교회는 특히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 등 문헌을 통해 이를 실천하면서 쇄신되어 가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세운 교회의 분열은 325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던 아리우스파의 배격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역시 교회 분열의 큰 줄기는 역시 동방교회의 갈라짐과 종교개혁이다. 869년부터 2년 동안 열린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최초로 동방교회를 서방교회에서 분리시키려 한 포시우스를 파문했고, 1054년에는 미카엘 체룰라리우스가 포시우스의 정신에 따라 서방교회와 시비를 하다가 파문되면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를 파문, 교회 는 둘로 갈라졌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분열을 가속화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분열은 영국왕 헨리 8세의 영국교회 독립 선언(1531년), 쟝 칼 뱅의 그리스도교 제도론 발표와 장로교 시작(1536년) 등으로 번져나갔다. 1545 년부터 19년간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일시적으로 프로테스탄트 대표들이 참석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개신교의 많은 주장이 배격됨과 동시에 가톨릭 교리의 대부분이 세밀하게 규정되고 기틀이 잡혔다. 이어 1589년에는 러시아정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재치권에서 독립, 모스크바 총주교좌를 세움 으로써 그뒤 많은 나라에 이와 비슷한 국가별 독립교회가 발족했다. 17세기 침례교 발족, 18세기 감리교 발족, 19세기 구세군 발족 등으로 교회는 계속 세포 분열하듯 나뉘어져 나갔다.

교회 일치운동은 1894년 교황 레오 13세가 성령강림대축일을 전후해 일치기도주간 실천을 장려하면서 시작돼 1908년 미국 폴 왓슨 신부가 '교회 일치기도 주간'을 준수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어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일치를 위한 공동기도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6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전신인 '신앙직제운동'에서 성령강림주일에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 설정을 제안했고 그 결실로 48 년 암스테르담 총회부터 시작해 91년 캔버라 7차 총회까지 이어지면서 교회일치가 활발하게 논의됐다.

1964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특히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기도야말로 교회일치운동의 혼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도주간의 준수를 장려한다. 특히 공 의회 문헌이 교회 일치성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성삼위의 고백과 신·망·애 삼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성서적이며 세계교회협의회의 선언과도 공통성을 가져다주었다.

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가톨릭은 동방교회 및 프로테스탄트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1967년에는 러시아정교회와 신학대화 및 사목활동 분야에서의 접촉을 가졌고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에서 이집트 콥트교회 총대주교 쉐누다 3세와 함께 그리스도교 교리를 담고 있는 신앙선언문에 서명했으며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방문해 신학 대화를 위한 '로마 가톨릭-정교회 합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70년대 들어 동방 교회와의 대화가 본격화됐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단들과의 교회일치운동은 67년 이후 루터교와 성공회, 감리교, 오순절교, 침례교 등 각 교단들과 협력 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다채롭게 진행됐다. 특히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교회일치운동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 교회일치운동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회칙은 1995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하나되게 하소서(Ut Unum Sint)'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대다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교회 일치에 대한 열망을 인정하고 수위권(首位權) 개방 문제를 언급하는 등 대화의 토대를 과감하고도 진지하게 제공하고 있다.

[평화신문 오 세 택 기자]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4)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4)
4. 역사적 반성 및 교훈
16세기의 종교개혁은 한 가톨릭 신부인 Luther의 교회 안에서 가톨릭적 교회쇄신에서 시작하여 정치적 개인과 경제, 사회적 상황에서 교회밖에서의 개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직접적 원인은 Luther자신의 개인적 성격과 사상과 더불어 중세 말기 종교적 배경에 있다. 신학에 있어서 교회생활과 연결되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이나 교리는 성서구절의 인용이나 학문적인 견해의 나열과 같은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삶과 그 방법을 일깨워주는 지혜를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 인간의 가치를 들어높히던 인문주의와 사도시대로의 복귀를 내세운 개혁의 요구와 종교개혁과 연결하여 볼 때에 인간성 회복은 우선 신을 전제로 해야 하며, 교회쇄신의 주창은 독실한 종교성을 갖추고 과격하거나 혁명적이기보다는 설득적이어야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은 교회의 내분에 그 원인이 있다면 우리는 교회의 일치에 유의해야 한다. 교회는 항상 그 내부로는 쇄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외부로부터는 침해의 위험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는 어떤 세속적, 물질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복음정신에 입각한 사랑과 이해의 연결이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중세 말기의 교회의 세속화는 종교개혁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세속화를 개탄하기 이전에 우리들 자신이 세속화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겠다. 성직자의 경우에, 신적 소명감과 영신적 사명의식 속에서 공인으로서 물욕과 명예욕에서 해방되어 세속적 직업이 아닌 사제직을 이러한 사욕의 충족을 위한 도구화하기보다는 사도적 청빈의 실천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중세 말기의 정치와 종교의 혼동에서 정교분권의 원칙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 입장에서 유의할 점은 교회가 동등한 자세에서 정치 속에 휘말리기보다는 그 위에서 국가의 사회논리와 도덕향상을 위해 충고와 격려로 선도적 역할을 해야겠다. 수도원은 무엇보다도 생활을 통해서 교회 영성의 활성화에 이바지해야 하며, 평신도의 교회예전의 참여에 있어서도 형식주의를 지양하고 그 참된 의미를 깨닫고 보다 적극 적인 신심행사에 임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생활해야겠다.

사목 67호, 1980년 1월, 14-25쪽 참조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3)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3)

3. 종교개혁의 종교적 원인

종교개혁의 종교적 원인을 고찰하는 데에 있어서 당시의 사회적환경 즉 정치적 상황, 경제적 상태, 그리고 사상적 배경 등을 무시할 수 없지만 여기서는 주된 이유가 된 종교적인 면 - 교회의 상태 - 에 제한하여 취급하고자 한다.

1. 그리스도교 사상

1) 유명론(唯名論)

14 세기부터 유럽 중부 지역과 영국은 신학의 쇠퇴기에 들어섰다. 중세 후기의 신학자들은 토론의 枝巧(지교)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대부분 순전히 외면적 문제에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세 후기의 신학은 실재적이 될 수 없는, 즉 교회생활을 외면한 단조롭고 표면적인 장황한 말마디로 격하된 스콜라 사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참된 신학이 교회생활 특히 그의 성사적 생활에 의해 조장되는 것이라면 이 시대의 신학은 죽은 신학이었다.

중세 말기의 신학의 대표적 인물로는 유명론(唯名論)을 내놓은 영국인 William of Occam이있다. Thomas Aquinas 사상의 舊方法(구방법)은 희미한 옛 모습일 뿐, 여기에 유명론의 新方法(신방법)이 대치되었다. 그런데 Occam의 신학체계는 근본적으로 非가톨릭적이었다. Thomas와 같은 스콜라 신학자들에 반대하여 자연계와 초자연계, 인간이성과 신의 계시 사이의 조화를 거부하였다. Luther는 그의 스승인 유명론자 Gabriel Biel을 통해서 Occam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자신을 Occam에 의한 신과 자연과의 내적 연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 자연에 의한 신의 존재증명을 거부하였다. 인간은 오직 신이 자신을 계시할 때에만 신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Occam의 인간이성과 자연에 대한 主義(주의)는 계시에 대한 굳은 신뢰와 대응하였다. 오로지 계시된 聖事(성사)만이 신앙의 원천을 형성한다고 주장하였다. Luther의 聖事唯(성사유)의 사상은 이런 견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아울러 Occam은 인간의 이성을 무력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오직 신앙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인식케 하고 인간의 구원을 이룩해 준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Luther의 信仰唯(신앙유)의 원칙이 이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Occam은 인간의 본능 자체는 무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것은 신의 은총 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Luther는 후에 이러한 恩寵唯(은총유)의 교의를 끌어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따라서 가톨릭 입장에서 볼 때에 Luther의 이단은 Occam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세 가지 唯(유)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있다.

2) 그리스도신적 인문주의는 14세기에 이태리에서 발단하여 15-16세기에 유럽 지역에 번진 지성적 운동이다. 인문주의란 명칭은 이 운동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의 앙양에 관심을 두는 데에서 나왔으며 또 이는 다른 인문주의 운동들과 구별하기 위해 르네상스 인문주의라고도 불린다. 이 운동은 고대 희랍과 로마 문학에 대한 심미적 태도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주의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태리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들의 조상인 로마인들의 고대 문화의 재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울러 이들은 객관적, 스콜라적, 체계적 사상을 경시하고 주관주의, 개인주의와 인간 각자의 경험에 치중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으며 새로운 과학적 방법, 즉 역사적, 철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방법은 원천에 비판적 탐구 및 복귀를 뜻하고 있다.

그런데 북부 및 서부 유럽의 인문주의는 그 개인주의적 성격에 종교적 의미를 적용하여 각 인간은 '성령의 궁전'으로 존중하였고 고대 원문, 원서로의 복귀에 있어서 고대적이기보다는 그리스도교적 원천, 즉 신약성서 - 특히 희랍어 신약성서 - 와 신부들의 저서를 강조하였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적 또는 성서적 인문주의란 용어가 나왔다. 한편, Luther가 성서를 강조하고 종교개혁을 사도시대로의 복귀로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는 종교개혁과 연결을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종교개혁의 길을 마련한 원인(遠因) 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자들은 내적 생활을 강조하면서 교회개혁을 주장하였지만, 혁명적인 인물들이 아니었으며, 후에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단결을 보존하기 위해서 가톨리시즘을 떠나 프로테스탄트를 따르기를 거부하였다.

2. 교회 상황

1) 중세적 일치의 약화를 초래한 역사적 사실들 중의 하나는 교황청의 Avignon, 즉 교황의 Avignon 생활이다. 이는 1305년 새로 선출된 프랑스인 Clement 5세가 당시에 이태리의 불안한 정정으로 인하여 교황청을 Avignon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어 Gregory 11세가 1377 성녀 Catharine of Siena의 독책으로 로마로 환도하기까지 70여년간 계속되었다.

6명의 Avignon의 교황들과 교황청 성직자의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고 그 사고방식도 프랑스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보편적 영신 지도자들이기 보다는 프랑스의 국가주의로 여겨져 다른 지역, 특 히 독일 지방에서 교황권의 세 력의 상실과 그 종교적 보편주의의 소멸을 갖고 왔다. 아울러 이들은 세력 증강에 집착하여 세속적 권한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교회세제를 확장시켜 교회생활의 어느 부분에도 돈과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교회세금의 미납은 성사수여 금령이나 교회의 공공 전례참석 금령 등 영신적 처벌의 대상이었다. 결과적으로 교황들의 지나친 중앙 집권화와 교황청 재정정책에 대한 악감은 유럽 전체에 번지게 되었다. 마침내 대사부의 논의는 종교개혁의 불을 붙이는 마지막 불꽃이 되었다.

그리고 중세의 그리스도교적 일치를 약화시킨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서구의 대분열 즉 교황청의 분규(1378-1417)였다. Gregory 11세의 서거(1378년) 이후, 16명의 추기경들은 프랑스인 교황의 선출을 저지하려는 로마 시민의 우려와 군대의 위협하에 타협하여 半프랑스인 Urban 6세를 새 교황으로 뽑았다. 그는 원만한 성격을 갖추지 못하여 교황청 성직자들 및 추기경들과 불편한 관계에 들어갔다. 곧이어 프랑스와 스페인의 추기경들은 교황선거가 강압에 의한 것이기에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또 하나의 교황 Clement 6세를 선출하였다. 이에 두 교황을 가진 교회의 혼란시대를 수습하기 위해 주교들과 추기경들은 Pisa에서 집회를 열어 두 교황을 파직시키고 Alexander 5세를 선출하나 이 교황은 곧 사망하였다. 다시 회의에서 John 23세를 선출하나 물러났던 다른 두 교황들과 그 추종자들이 승복치 않았다. 따라서 교황은 다시 세 명이 되었다. 이에 이러한 교회 상태를 수습하기 위해 Constance 공의회(1414-1418)에서 세 명의 교황을 면직 또는 강제해임 시키고 Martin 5세를 교황으로 내세움으로 교황청의 대분규는 끝났다.

이 사건은 교회를 부실성 시대로 이끌었다. 이제 대중은 진짜 교황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또한 이 분규는 교회 안에 불신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각 교황의 지지자들은 사방에서 - 교구, 수도원, 본당, 그리고 가정에서까지 - 충돌하였다. 교황들은 각자 반대파들을 파문하여 모든 그리스도 교회는 파문상태하에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공의회주의, 즉 교황보다 공의회가 우위에 있다는 학설을 발생케 하였다. 이 사상은위에서 언급한 Constance공의회에서 주창되어 Basle공의회(1431)에서 재확인되었다. 이 주장은 교황의 정치적, 영신적 권위는 약화되었고 로마 교황에 대한 Luther의 종교개혁을 더욱 쉽게 해주었다.

2) 종교개혁의 외침

12세기 말 이후로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사도시대의 교회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교회인들 사이에세도 일어났다. 즉 제4차 Lateran공의회(1215)는 교회개혁에 대해 취급하였고, 성인 Francis of Assisi(1118-1226)의 주요한 임무 도 교회개혁이었다.
개혁의 요구에는 교회의 악폐에 대한 비난도 들어있었다.

성 녀 Catherine of Siena와 성인 Bridget of Sweden은 당시의 교회 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5세기 말에는 개혁의 외침과 교회 악폐에 대한 불만은 일반화되어 갔다. 당시의 개혁의 대상은 고위성직자들과 교황청의 자본주의였다. 이 성직자들은 사치생활을 하면서 순박한 신도들을 착취하는 폭군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3. 성직자

1) 르네상스 교황들

르 네상스 교황들은 Nicholas 5세에서 시작하여 Leo 10세에 이르는 10명의 교황들을 말한다. 이들의 시대적 사명은 교회의 개혁과 회교도들과의 논쟁을 위한 서구의 단합이었으나 실천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주로 르네상스 교황들의 두 가지 역사적 과오에 있다. 첫째는 족벌주의였다. 그들 중의 일부는 교회의 재산, 영토를 사유화하고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자기들의 가족에게 분배하는 가족정치를 감행하였다. 둘째는 배타적 자기중심주의였다. 이러한 사상으로 르네상스 교황들은, 비록 그들의 개인적 취미의 소산인 문화적 업적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 그들의 본래의 종교적 사명인 교회개혁에 身하기를 소홀히 하였고 안일한, 더 나아가서는 비도적적 생활을 하였다. 아 울러 몇몇 교황은 증회의 방법을 통해서 교황에 선출되었다. 이러한 성직판매의 행위는 일반적으로 묵인되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교황은 교회의 영신적 지도자이기보다는 세속적 군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Nicholas 5세(1447-1458)는 탓할 데 없는 인문주의자였고, Vatican 도서관의 설립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회교도를 대항하여 방어전선을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Callistus 3세(1455-1458)도 역시 십자군운동에 전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으로 인하여 자기의 조카 두 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족벌주의적 과오를 범하였다.

Pius 2세(1458-1464)는 매우 유명한 인문주의자로서 40세까지는 나태한 생활을 하다가 뉘우치고 곧 신부, 주교가 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교회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회교도와의 충돌로 인하여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Paul 2세(1464-1471)는 선임 Pius 2세와 마찬가지로 족벌주의를 행사하지 않고 그의 교황 재위 기간을 보냈다.

Sixtus 4세(1471-1484)는 방지거회의 전직총장으로 그의 수도원에 많은 특권을 부여하면서 교회행정에 족벌주의 체제를 도입하였다. 그는 두 명의 조카를 추기경단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예술사에 있어서 Sixtus는 Vatican의 Sistine성당의 건립자로 기억되고 있다.

Innocent 8세(1484-1492)는 증회(주: 뇌물공세)의 방법을 통해서 교황에 선출되어 성청 행정의 타락, 교회개혁의 무관심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자기 친척인 13세의 소년을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Alexander 6세(1492-1503)는 교리상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나 그의 직무수행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Alexander의 재위 기간은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 시대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25세에 그의 삼촌인 Callistus 3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된후, 많은 성직록을 소유함으로 치부하였다. 그는 증회의 방법을 통해서 교황에 선출되었고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또한 Alexander는 족벌주의의 정영(政榮)을 실천하였고 가족들에게 정략적 결혼과 이혼을 감행하였다. 한때에 교회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실현하지 않았다.

Pius 3세(1503)는 Pius 2세의 조카로서 교회개혁을 약속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대관식이 있은 지 26일만에 사망하여 실천되지는않았다.

JUlius 2세(1503-1513)는 Sixtus 4세의 조카로서 증회를 수단으로 하여 교황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성직매매에 의한 교황선출은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Julius는 교황으로서 윤리적으로 탓할 것이 없었으나 성격이 횡폭하였고 그리스도의 대사제로 보다는 왕 또는 장군으로 처신하였다. 그는 교황령의 회복과 확장에 성공함으로써 교황권의 세속적 명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교황은 예술 애호가로서 유명한 미술 작품들의 제작을 명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Michelangelo의 Sistina성당의 천장화(天障畵)와 San Peitro 성당의 모이세의 석상(石像)과 Raphaaelo의 바티칸 궁전의 천장화 등이다. 그리고 새로운 베드로 대성전의 건설을 계획하여 이를 위한 대사부의 판매는 Luther의 95개조가 나오게된 동기가 되었다.
Leo 10세(1513-1521)는 그의 권세가인 가정의 배경으로 13세에 추기경이 되었다. 그는 윤리적 잘못은 없었으나 인생을 향유하는 데에 빠졌고 책임감이 없었다. 그의 책임감의 결여는 Luther에 대한 그의 반응에서 볼 수 있다. 이 교황은 Luther를 시시한 언쟁이나 좋아하는 수사로 여겼고, Luther의 항의 속에 내포되어있는 뜻이 무엇인지는 알 능력이 없었다. 그는 Julius가 시작한 제5차 Lateran공의회를 속개하여 교회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약간의 사소한 개혁에 그쳤다.

2) 재속성직자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의 고위성직자들은 중세 말기에 세 가지 입장으로 처신하였다. 즉 봉건영주, 문인들과 학자들의 후원자, 그리고 자신들의 교구를 보살피는 영신 지도자로 분류될 수있다.

그 러나 일반적으로 주교직이란 하나의 세속적 직업과 같은 평범한 인상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주교들은 신학이나 사제양성및 교육에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이런 생활을 하던 주교들은 한 교구의 정상적 수입으로는 부족하여 여러 성직록을 취득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임지 재(任地 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 이런 악 들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주교직이란 거의 독점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고위성직자들의 부조리한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겠다.

하급성직자들인 신부들은, 당시에 신학교가 설립되어 있지 않아서, 소수를 제외하고서 대부분이 신학교육이나 성직자로서의 훈련을 받지 못하였다. 품(品)에 요구되었던 것은 기초적 교리지식과 독서능력이 전부였다. 그러나 라틴어는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부들이 많았다. 또 성직자로서 비도덕적 생활을 하거나 사목적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신부들이 목자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실행하였다는 점도 고려해야겠다.

3) 수도원

일반적으로 수도원들도 병폐가 있었다. 이들은 입회자가 돌봄이없이 방종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휴식처로 보였고, 참다운 수도성소자가 거의 없었으며, 지원자는 누구든지 엄격한 심사없이 입회할 수 있었다. 이는 수도원들의 폐단의 중요 원인이 되었다. 귀족들이든 평민들이든 수도생활을 부양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피구로 생각하였다. 아이를 수도원에 보내려는 부모들은 그의 의향이나 자질은 아랑곳없이 마음대로 하였다.

소수의 새로운 수도원들이 창립되었지만 영향을 크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공동생활의 형제회', '공동생활의 자매회'와 'Windesheim 회'는 예외였다. 이들은 당시에 그리스도 중심의 내적, 개인적 신심을 강조하고 교회의 악폐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 쇄신을 주창하던 '현대의 신심'이란 신앙운동의 대표자들이 었다. Luther는 공동생활의 형제회가 경영하던 Magdeburg의 교회학교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던 형제회원들과 어느 정도의 정신적 내지 영적 교술을 갖게 되며, 이 신앙부흥운동은 Luther의 영성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또한 때때로 수도원의 성직자들은 재속성직자들과 충돌을 하였고 14-15세기 동안에는 다소간의 성공적인 개혁을 하기도 하나, 일부 수도원에서는 내분을 일으키키도 하였다. 한 예로 Luther가 속해있는 Augustine은수사회를 들 수 있다.

사목 67호, 1980년 1월, 14-25쪽 참조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2)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2)
2.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문제점
1. 역사적 원인
역사적 원인이란 개념은 오늘날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주 현대 역사서들 안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은 어떤 역사적 사건의 직접적 이유뿐 아니라 간접적 이유 즉 원인(遠因)까지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 이유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는 인간 자유의지 행위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엄격한 인과법칙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 원인은 많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하나의 역사적 원인이 같은 시대에 상이한 역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중세말기의 '현대의 신심'이란 영성운동은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 즉 가톨릭 쇄신과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아울러 역사적 원인은 그 결과를 설명하지만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에게 역사적 반성의 기회를 주며 역사적 교훈을 얻게 한다. 이러한 뜻에서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하겠다.

2.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견해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논의되고 있다. 많은 역사가들과 실학자들은 종교개혁을 일으켰거나 마련할수 있었던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자세하게 조사하였으나 아직 합의된 설명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가톨릭 학자들은 종교개혁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 특히 정치적, 논리적 사실들의 영향을 강조하였다. 즉 정치적으로는 왕과 제후들의 물욕, 중앙집권주의적 전제군주제의 발전과 국가주의의 성장을 들고 있었으며, 윤리적으로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비도덕적인 고위성직자들의 정치욕과 영신적 사명감의 망각들을 열거하고 있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저자들은 정치적 원인과 동시에 성직자, 특히 교황들과 聖廳의 성직자들의 타락 등의 비논리성을 강조하였다. 또 어떤 역사가들은 인류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사회적, 경제적 사실들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종교개혁을 그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신학적 표현 또는 결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 이후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및 비그리스도교의 역사가들은 세속적인 영향을 인정하지만, 그보다는 종교개혁의 종교적 원인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3.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입장
과거에, 수많은 가톨릭 지도자들은 교회 내의 악폐가 프로테스탄티즘의 발생과 성장 및 발달에 이바지하였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
우 리는 그 한 예를 교황 Adrean 6세가 Nurngerg 의회에 파견된 교황사절인 Francesco Chieregati에게 보낸 훈령에서 볼 수 있다. 이 훈령은 의회에서 1923년 1월 3일에 공개되었다. 여기서 Adrian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들과 성청의 성직자들 사이에 있었던 폐해는 Luther의 종교개혁의 기원에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Chieregati에게 이러한 과오들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교황 자신은 聖廳의 개혁에 있어 최대의 노력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공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종교개혁을 단순히 부정적 사건, 즉 반가톨릭적 사건으로 생각치 않는 이들이 있다.
그 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긍정적인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종교개혁은 교회(가톨릭)에 대한 적의의 증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참다운 종교적 열망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한 예로 비엔나의 성인이라고 불리우는 Clement Mary Hofbauer를 들 수 있다. 그는 독일 민족이 교회에서 탈퇴한 것은 그들이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은 이단자들이나 사상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심을 추구하던 이들에 의해서 뿌리박고 전파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본인의 입장에서도 이 주장은 납득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Luther도, 다른 종교개혁가들도 처음부터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치 않았고 가톨릭 신부로서 교회 안에서 비록 실패는 하였지만 교회개혁에 대한 가톨릭적 요구를 내세웠다.
바오로 6세는 제2차 Vatican공의회 제2 회기의 개막식에서 옵서버로 참석한 비가톨릭 종교자들에게 가톨릭이 그리스도교의 분열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였다.

사목 67호, 1980년 1월, 14-25쪽 참조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1)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1)
1. 종교개혁 -교회쇄신

오늘날 신학연구에서 교회와 관련하여 내놓고 있는 결론중의 하나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神人兩性(신인양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신성하다. 그러나 神的 實在(신적 실재)라는 점에서는 교회안에 과실과 죄악이 현존하여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구성 , 특히 지도자들의 행동이 인간적 동기 또는 인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교회가 그의 모델이며 이상인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내부에서 개혁의 외침과 쇄신운동이 일어났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이전에 있었던 대표적인 교회혁신의 움직임으로는 8세기의 Boniface의 교회제도의 개혁, 10-12세기의 Cluny 수도단체의 수도원쇄신 캠페인과 Gregorian개혁운동, 14세기의 '현대의 심신'이란 교회영성의 활성화운동, 15세기의 Jojn Hu ss와 Girolamo Savonarola의 교회개혁의 요구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혁신운동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다. 이는 신앙의 단일성과 기본을 파괴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思(사)를 여러 갈래의 新派思想(신파사상)으로 분열시켜 가톨리시즘과 프로테스탄티즘 - 루터주의, 칼빈사상, 영국 국교회주의등 - 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시대에는 두 가지 구별되어야 할 개혁운동이 있었다.
즉 교회 밖에서의 개혁과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다. 교회 밖에서의 개혁은 일반적으로 단순히 종교개혁, 다시 말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일으킨 개혁으로서, 가톨릭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 반란) 이라고도 불리며 여기에는 몇가지 유형이 구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Luther의 종교개혁, Ulrich Zwingli의 종교개혁, John Calvin의 종교개혁, 영국의 종교개혁 등이다.
한 편, 교회 안에서의 개혁은 즉 가톨릭 종교개혁은 가톨릭 쇄신 또는 반동 종교개혁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두 개의 용어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쉽지 않다. 현대의 저자들은 가톨릭 쇄신이란 말마디의 사용을 제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느누구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교회개혁의 움직임들이 가톨릭 교회 안에 있었다는 사실과 이런 교회내부의 쇄신운동들의 결과가 Trent공의회의 결정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자주 가톨릭 개혁운동을 반동 종교개혁만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문제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톨릭 교회 안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관계없는 그 발단 이전의 종교운동을 생각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동 종교개혁이라는 주장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쇄신운동을 촉진시켰을 뿐 아니라, 가톨릭의 태도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데에 있다.

사목 67호, 1980년 1월, 14-25쪽 참조

재미있고 알기 쉬운 사회교리 - 성염 교수

재미있고 알기 쉬운 사회교리

* 집 필 : 성염 교수 (서강대)

[1회]
나도 모르는 새에

성당 오니 참 좋더라! 우선 마음이 평안하고 주일마다 좋은 말씀 듣고 선량한 사람들과 사귀어 흐뭇 하더라. 교우들과는 술 한 잔을 해도 뒷끝이 없어 좋다. 주님의 축복 속에 내 아이 공부 잘하고 내 남편 사업 잘되고 식구들 건강하니 이 아니 고마운 일인가! 후세일랑 주님 손에 맡겨드리고....
그러다 보니 약간은 남 생각도 하여 한 마음 한 몸 운동에, 헌혈에, 사랑의 집 헌금, 이웃돕기 바자에 내것을 내주는 일도 조금씩 몸에 배어 좋다. 간간이 성당 마당에서 무농약 열무, 유기농 사과, 가톨릭 농민회 마늘과 고추가 팔린다. 내 식구 안심하고 먹일 먹거리라서 비싸다 않고 한 부대쯤 사들고 귀가한다. 내 생명도 자연의 생명도 다 귀하다는 강론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전번 주임 신부님은 성모회를 거들어 떡장수도 많이 하셨지....
사형제도를 폐지하자고,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지 말라고 서명을 하란다. 게시판에 붙은 저 태아 사진이며, 텔레비전에서 보는 소말리아의 앙상하게 굶어 죽는 사람들, 유고내전과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납덩이처럼 가슴을 내리누른다. 전같으면 그냥 보아넘겼는데.... 신앙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내가 달라져가는 기분이다. 신부님은 그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덕분이라는데, 글쎄 <사회 교리>가 도대체 뭘까?

[2회]
사회교리(社會敎理)?

열 십자(十)를 붓으로 쓰자면 가로 획을 먼저 긋더라? 아니면 세로 획을 먼저 긋더라? 잘못 쓰면 개칠을 한다고들 욕하는데.... 신앙생활 수십년이 되어도 "하느님 사랑이 먼저더라, 아니면 사람 사랑이 먼저더라?" 하며 머리를 갸웃둥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난다. 누구는 "네 온 마음으로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마태 22,37-38)는 말씀을 꼽고, 누구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읍니다"(1요한 4,20)는 말씀을 꼽는다.
우리가 모시는 십자고상은 땅에다 박는 기둥이 먼저고 양팔을 매다는 횡목은 그 다음이면서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먼저 나중 없이 하나로 묶어 준다. 그래 살다보니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양심대로 했다가는 장사 망합니다" 하는 소리가 입에 붙을 적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 <사회교리>이다.
또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셔서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 그 자손들을 일으키시고 보니, 남 없이는 사람 노릇도 못하고 구원과 멸망도 남들한테 잘하고 못하기에 달린 것이 우리 신세이다. 그래서 "현세에서 인간 사회 전체로 보아서나 개개인으로 보아서나, 사람다운 세상을 이루는 도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회의 가르침"이 <사회교리>이다.

[3회]
人間大道

우리가 날마다 바라보며 사는 (북한산)은 오르는 길이 많기도 하다. (칼바위능선)을 타든 (진달래능선)을 타든 (깔닥고개)를 넘든 (백운대) 산정에 오르기는 매한가지다. 산이 클수록 자락과 골짜기가 많아 오르는 길도 여러갈래이다. 우리 선조들 말씀대로 대도무문(大道無門), 하느님의 나라는 들어가는 문이 따로 없다. 그런데 문은 따로 없다지만 길은 외가닥이다.
어머니이신 교회가 우리한테 가르치는 <사회교리>라고 해서 힘들고 겁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사람 귀한 줄 알아라!"이다. 지금의 교황님은 1979년에 좀 어려운 말씀으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 달리는 그리스도교라고도 일컫는다"(인간의 구원자 10항)라고 하셨다. "사람답게 살아라!"는 교훈만 아니고, "사람을 살려라!"는 엄명이다. 교황님은 "인간이야말로 교회가 반드시 따라 걸어야 하는 첫째가는 길이다. 그리스도 친히 따라 걸으신 길이다"(14항)라고도 하셨다. 개인이든 하느님의 백성이든 구원에 이르는 길은 외길, 인간이라는 길이다.
알아듣기 힘들다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하리라!"(창세 9,6)는 말씀을 풀어준 것이 사회교리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이 가장 쉽고도 분명하다.

[4회]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누구를 닮으셨을까? 예수님의 얼굴이야말로 하느님을 꼭 닮으셨겠지만 예수님의 수의(壽衣)라고 전해오면서 이탈리아 도리노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 염포마저 가짜라고 드러났으니 예수님의 얼굴을 볼 길은 없을 듯하다. 그럼 하느님의 얼굴을 세상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번 인간대도(人間大道)라고,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외가닥길, 사람한테 잘 해주는 길이라 했다. 내가 세상 사람을 다 구제하지는 못할 터이고 그럼 누구한테 먼저 잘 해주어야 할까? 어머니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회교리라는 것은 기실 <하느님의 얼굴 바로 찾기>라고 하겠다.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소말리아 어린이와 얼굴이 신선처럼 벌건 미국의 팔순노인을 마주 세운다면, 국민학교도 못나온 막일꾼과 일류대학 교수님, 예수라면 말만 들어도 침을 뱉는 무신론자와 하느님만을 위하여 태어난 신부님, 뺑덕 엄마만큼 못생긴 공사판 아주머니와 미스 코리아를 마주 세운다면 누구 얼굴에 하느님이 보일까? 나같으면 대뜸 장수하신 영감님, 유식하신 교수님, 거룩하신 신부님, 어여쁘신 아가씨를 꼽고 싶다. 하느님께 복도 많이들 받으셨지....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딴판이다. "하느님의 얼굴은 가난한 사람들 얼굴에 있다!" 교회는 이것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한다.

[5회]
가난이 죄?

신앙인이 처음부터 분명히 알아둘 것은 가난은 악이요 범죄라는 사실이다. 우리 앞에 "하느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죄악의 희생자들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 수긍되지 않거든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작년에 노벨 평화상은 멘추라는 여성, 과테말라의 설흔 세 살 난 젊은 여성에게 돌아갔다. 최근에도 쿠데타가 일어난 과테말라 국민의 53퍼센트를 차지하고도 정치와 사회 그리고 교육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채 군부의 인종말살 정책의 대상이 되어온 인디안 원주민의 한 사람이다. 인디안들의 살길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다가 지금까지 수십명의 사제, 수녀들이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멘추가 열 두 살 때에 오빠가 농민 시위에 가담했다고 군인들에게 산 채로 불태워 죽임당했고 아버지는 총살당했고 군인들이 어머니를 강간한 뒤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그러니까 과테말라 인디안들의 가난은 천주교 국가인 그 나라에서 잘사는 신자들이 총칼든 신자 군인들을 앞세워 만든 죄악이다.
우리가 소말리아의 앙상한 해골들, 산 송장들을 텔리비젼이나 가톨릭 신문 2면에서 가끔 보았다. 그런데 인성회와 가톨릭신문 외에는 한국교회 어느 교구 어느 본당도 그곳을 돕자는 구체적인 모급 운동을 벌이지 않았다. 일년에 8조원의 음식 쓰레기를 내는 풍요한 한국 사회와 굶어죽는 소말리아 교회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눈뿐이다.

[6회]
세눈박이

십자가! 우리한테 얼마나 친숙한 표지인가? 성당 종탑에도 제단에도 우리집 안방에도 걸려 있고, 수녀님 복장에도 여교우들의 목에도 예쁘장한 금십자가가 반짝인다.
신앙인들이 남과 다른 데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눈이 하나 더 달린 점이다. 두 육안 사이에 신앙의 눈이 하나 더 달렸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세눈박이인 셈이다. 남들은 십자가가 사형대라는데 우리는 구원의 깃발이라고 부른다. 미신자가 보기에는 무슨 정치활동을 하다가 로마 당국의 손에 걸려서 처형당한 죄수의 시체가 매달려 있을 뿐인데 우리 믿음의 눈은 거기 없는 사람, 불쌍한 사람, 죄많은 인간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목숨을 내놓으셔야 했던 하느님의 아들을 뵙는다. 유다인들은 그분이 죽었다고, 그래서 끝장났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분이 죽어서 인류를 구하셨다고,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믿는다.
세눈박이라서 우리는 세상사도 조심해서 본다. 예컨데 어떤 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사람도 신문도 죄다 노동자들이 못된 사람들이라고 욕하지만 우리는 공정한 임금을 받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조심해서 본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직장을 잃고 감옥을 드나들면서 참교육을 외치는 일을 보면서 우리는 남들처럼 함부로 그들을 욕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권력자들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보라는 가르침, 그것이 <사회교리>이다.

[7회]
"엄마, 반찬 좀 많이 싸줘!"

초보운전이 아닌 바에야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도 경치를 감상하고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 주부들은 부엌일을 하면서도 래디오의 여성살롱 시간 프로를 다 들으면서 울고 웃는다. 처녀가 선을 볼 때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지만 머리 속은 자기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 헤아리고, 저 남자에게 내 인생을 걸 만한가 가늠하는데 온통 쏠려 있다.
신앙인들에게는 두 개의 육안 말고 신앙의 눈이 하나 더 달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세눈박이 인생이라서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방법이 특이하다. 똑같은 사건을 세속의 사건이자 하느님의 사건으로 본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는 신앙의 이중시각(二重視角)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학교 도시락 싸는 엄마 곁에 와서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보자. "엄마 엄마, 그 반찬 좀 많이 싸줘. 우리 반 애들이 참 좋아해. 애들이 울 엄마 요리 솜씨 최고래...." "엄마, 그거 싸지마. 애들이 다 뺏어먹어버려." 육안으로 보면 둘째 아이가 자기 몫을 빼앗기지 않고 잘 챙길 똑똑이라고 하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두 아이가 전혀 딴 인생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의 언행을 지혜롭게 관찰하는 이중시각이 있어야
만 <사회정의>를 가르치는 교회의 뜻을 알아듣게 된다.

[8회]
팔의 길이

"손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장안의 일류 복부인 얘기가 아니다. 여자들은 으례 깍정이들인데 남달리 남에게 잘 주는 사람, 그것도 쬐끔 주지 않고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을 말한다. 부잣집 맏며느리깜이라고들 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남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 팔이 남보다 길다는 것이다. 품이 넓다는 것이다. 품이 넓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품안에 맞아준다는 뜻이다. 욕심스런 우리네 뭉뚝한 팔도 처자식, 피붙이는 끌어 안는다(그것도 못하면 사람도 아니게?). 동료들, 계꾼들, 같은 쁘레시디움 단원들, 성당반 교우들은 품을 줄 안다. 그리고 세월이 가고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 팔이 조금씩 더 길어져서 측은한 사람들을 안아 주게 된다. 불쌍한 사람이면 보아 넘기지를 못한다. "정이 많은 마음은 부처님 마음이다(多情佛心)"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가 늙어, 죽을 때가 임박하여 과연 얼마나 신앙이 숙성했는가 스스로 재어보고 싶으면 자기 팔길이를 재보면 되리라. 팔의 길이는 우리 사랑의 크기, 이웃 사랑의 크기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신자는 마땅히 사회정의에 투신하여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결국 우리의 팔이 넓어졌을 때에만 알아듣는 말이다.

[9회]
밖으로 굽는 팔

어떤 노인이 자기집 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십니까?" 이웃이 물었다. "망고나무를 심는 중이오." 노인이 대답하였다. "아니, 그 나무에서 망고를 따 잡수실 생각입니까?" "그게 아니오. 나는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평생 즐겨 먹은 망고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심은 나무였음을 깨닫게 되었소. 그래서 이렇게 조금이나마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것은 그분들에 대한 내 감사의 표시라오." (안토니 드 멜로의 <맷돌> [타임기획]에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 맞는 말이다. 똑같은 몫돈이 나가도 친정식구한테 주는 마음하고 시댁식구 주는 마음이 그렇게나 다르다. "처삼촌 무덤에 벌초하듯"이라는 속담도 있고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있다. 정말 세속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한 팔은 안으로, 안으로만 굽는다. 교회의 <사회교리>를 배우면서 우리 팔을 밖으로도 뻗어 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안방에 걸린 십자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한숨을 짓게 되는데, 어느날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다. "저런, 저런, 저럴 수가...." 저기 십자가에 안으로 안으로만 굽어지는 팔을, 안으로 굽지 못하게시리, 하느님이 아예 못질을 해 버리시다니! 아아, 신앙이 저토록 힘들어서야!

[10회]
I.N.R.I

우리 목에 걸고 다니는 금붙이는 십자가나 방에 모셔둔 십자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 머리 위에 외국말로 I.N.R.I 넉 자가 새겨져 있다. 빌라도가 십자가에 써 붙인 죄목 <나자렛사람 예수, 유대인의 왕>을 첫 글자만 딴 것이다. 빌라도가 사형수 이름 앞에 굳이 <나자렛사람>이라는 출신지를 써넣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루살렘 집권층과 언론이 예수님을 다짜고짜로 미워한 이유 하나가 그분의 출신지였다. 가난한데다가 반골이어서 주는 것 없이 미운 갈릴래아 출신이었다. 예루살렘 당정협의회에서 예수를 처형하기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자 니고데모가 항의를 제기한다. "우리의 율법에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또 그가 무엇을 하였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소?" 그러나 여당사람들이 한 마디로 잘라말한다.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란 말이오?
성서를 샅샅이 뒤져 보시오.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소."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사람 아니라는 판단기준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를 뽑아온 모든 선거에서 우리는 지방색 하나로 모든 것을 결정해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저 옛날 예수의 십자가 명패를 읽고나서는 "아하, 갈리래아 출신이야? 그렇다면 죽어도 싸지. 죄가 있든 없든 그 지방 사람들은 씨를 말려야 해!"하던 유대인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11회]
아낌없이 주는 마음

(지난 가을,) 어느 본당에서 보좌신부님과 자모님 사이에 주고 받던 말 : "스테파노 잘 있읍니까?" "예 신부님, 고 3이라 정신 없어요." "그래도 주일미사에는 보내시지 않구요..." "대학에 붙고 봐야죠." "대학도 중요하지만 하느님도 계시고 천당도 가야하지 않겠어요?" "내원참 신부님도. 아니 대학 떨어지고 천당은 가서 뭘한대요?" ".... ...."
신앙의 눈이 하나 더 생기면 불편한 점이 여간 많지 않다. "제가 하느님께 섭섭하게 해 드린 게 뭡니까? 그렇다면 우리 아들놈만은 붙여 주셨어야죠!"라고 앙탈을 부릴 엄두가 안난다. 아무리 서러워도 "주여, 주여..." 하는 탄식이 고작이거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부모된 마음이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입시부정을 위한 학부모들의 엄청난 모험과 파멸을 신문지상에서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였다. 부모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고 있고 앞으로도 줄 게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주는 마음> 아닐까? 그런데도 대개는 그것만 빼고 다 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로다!" 허지만 우리 중의 누가 자기 귀한 자식을 내놓아 세상의 죄를, 이 나라의 사회악을, 자기 인생고를 짊어지게 하겠는가? 이 용기를 배워야만 하느님 마음을 알 것 같지만....

[12회]
헌금은 왜 하나?

"장사, 장사 해도 하느님을 상대로 하는 장사만큼 이익이 많은 장사가 또 없읍니다. 교회에 내는대로 갚아 주시고 헌금하는대로 열 배로 스무 배로 갚아주십니다...." 약장사 비슷한 이런 설교를 여러분은 성당에서 한번도 못 들었을 것이다. 많이 드리면 많이 갚아 주신다는 셈본은 하느님을 우리 부모만도 못한 장사꾼으로 낮추보는 불경죄다. 부모가 우리를 낳고 기르고 교육시키신 것은 자식인 우리를 사랑해서였지 우리가 잘해드려서가 아니었다. 부모 사랑을 배워서 형제간에 의좋게 살 줄도 익힌다.
헌금을 하는 것은 하느님께 배웠기 때문이다. <주는 마음을>! 우주를 내시고 내 생명을 주시고 당신 외아들도 내주셨다. 신앙생활하다 보니 우리 팔도 쬐금은 넓어지고 하느님 마음도 쬐끔은 배워서 우리도 뭔가 내놓을 줄 알게 된 것뿐이다. 내 수입의 일부나마 내어놓아 교회 공동체를 책임지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생각이다. 십일조니 교무금이니 주일헌금이니 해서 하느님이 우리한테 세금을 거두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이다. 그러니 우리 교회 공동체를 우리가 책임지는 것은 지당하다. 독신생활의 신분까지 감수하며 오로지 신자들에게 봉직하시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일, 우리가 모여 예배를 올리는 성당과 부속시설을 관리하는 일, 성당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교회된 우리의 당연한 본분이다.

[13회]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대한 반성
신앙과 선거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주님을 맞는 준비다. "두 사람이 들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둡니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둡니다"는 말씀에서, 데려가고 버림받는 기준은 무엇일까?
굳이 교회의 <사회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자라면 누구나 자기는 굶주리고 헐벗고 울고 신음하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무죄하게 옥에 갇히고 정의를 위하여 힘쓰는 사람을 아끼고 돌보겠다고 마음먹는다. 누구나 자기는 이 땅이 조금 더 정의로와지기 바라고, 없는 사람들도 사람 대접을 받고 살기 바라며, 민주화와 통일을 바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행동으로 나타낼 때에는 여지없이 자기 본색을 보인다. 이기적이고 악랄한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수십년간 주교님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닥칠 때마다 그 선거가 우리 나라에 내리시는 하느님의 구원에 매우 중요한 은총이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실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불의와 부정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중대한 기회라고 가르쳐 오셨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지방색이라는 집단이기심과 돈봉투 하나에 가난한 겨레와 나라의 구원의 역사을 팔아넘겨 오지 않았던가? 마땅한 후보가 없다면서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기회를 저버리고 연휴 여행이나 가지 않았던가? 금년에 와서 폭로되는 저 무시무시한 부정부패는, 사실상 여당이라니까 우리가 무조건 찍어준 우리의 대표요 우리의 정당이 아니던가?
정치와 투표까지 고백실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신앙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요, 사회교리에 조금씩 눈떠가는 조짐이겠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또한 이 나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니까....

[14회]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대한 반성
휘장 속의 만남

"문앞을 지나쳐 가버리시는 하느님이 나는 두렵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이다. 지나간 3공, 5공, 6공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의 때를 얼마나 자주 잃어 버렸던가 반성해 보자.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이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짓고난 다음, 모세는 그 장막 속에 들어가서 단독으로 야훼 하느님을 뵙고 명령을 받았다. 나이 30이 넘는 겨우들은 그간에 투표소의 휘장 속에 많이도 들어갔다. 거기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휘장 속에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과 단둘이서 마주 섰던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서 비리, 정보사 땅 사기, 건영 비리, 보안사 민간인 사찰, 한준수씨가 폭로한 관권부정선거, 군부대의 비리, 명동의 금융부정 등이 사회의 죄를 성찰했다. 감옥에 갇힌 양심수가 천명을 넘고 전교조 교사 1300명이 직장을 쫓겨난지 3년이 넘는다는 것도 생각했다. 이 정권과 우리 민족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저지른 이 엄청난 죄들이 검찰의 은폐로 다 숨겨져 버렸고 그릇된 언론들의 조작으로 다 잊혀지고 말았지만, 우리 신앙인만은 하느님 앞에서 이 죄를 통회하고 보속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는 그 공범자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했다. 나의 영원한 운명, 이 나라의 구원과 멸망은 투표소의 휘장 속에서 내가 찍는 한 표에 달려 있다는 엄청난 생각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저 부정의 원흉들에게 한 표를 던졌다!

[14-1회]
우리의 선택

로마인 총독은 자기 민족 지도자들의 손에 붙잡혀 대역죄를 뒤집어 쓰고 넘어온 유다인 죄수가 최후진술이랍시고 하는 말을 들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습니다." 재판관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진리가 무엇이오?" 우리도 이론적이고 교리적인 진리라면 곧잘 알아들을 것 같은데 진리가 현실에, 더군다나 정치 사건 속에 나타나면 거의 못 알아본다. 여하튼 무죄한 줄 알면서도 식민지 주민 하나를 사형에 처한 그의 정치적 행동에서 인간 빌라도는 자기 진심을 드러냈고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는 저주는 인류가 지상에서 사라지기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만 보시는 휘장 속에서 선택을 하였고, 우리가 뽑은 인물이 앞으로 5년간 행할 모든 언행과 정치를 하느님 앞에서 함께 책임지게 되었다. 아울러 나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지금까지 나의 선택으로, 내가 뽑은 정치가들 때문에 이땅의 가난한 이들이 얼마나 시달렸고, 무죄한 이들이 얼마나 많이 죽고 갇혔으며,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거짓과 불의와 부정이 일어났는가 성찰하게 된다. 정치와 투표까지 고백실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신앙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요, 사회교리에 조금씩 눈떠가는 조짐이겠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또한 이 나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니까....

[15회] 성탄후
헤로데의 경배

"구세주 빨리 오사...." 대림에 부르던 성가대로라면야 너나없이 쌍수를 들어 아기 예수님을 맞았을 법한데....
그토록 고대하던 구세주가 태어나셨는데, 하느님께서 때가 찼다고 여기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는데"(갈라 4,4), 그분을 맞아들이는 인간들의 태도는 너무도 놀랍고도 너무도 다르기만 하였다. 목자들을 보자.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천사들에게 들어서 처음 알게 된 이 가난하고 순박한 백성들은 "어서 베틀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곧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자 기겁을 하였다. 당장 국가안전회의를 소집하였고 정보국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고나서 헤로데는 외국인들을 접견한다.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 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 주시오." 약속대로 헤로데도 아기에게 경배하였다. 단지 그 경배라는 것이 특전부대를 보내어, 유다인의 왕으로 났다는 아기의 생일을 어림잡아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린" 학살이었다. 나의 본심이 과연 목자들 맘인지 헤로데 맘인지 몰라 두려울 때가 많다.

[16회] 새해에
시작과 끝

서양사람들은 정월을 <야누스의 달>(January)이라고 부른다. 머리 하나에 얼굴 둘을 지닌 로마 야누스 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 해의 끝과 또 한 해의 시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숨쉬고 있는 1993년 1월 3일은 정말 은총의 시간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하느님은 너의 동의없이 너를 창조하셨지만, 너의 동의없이 너를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
우리가 은근히 겁먹던 10월 28일의 휴거도 일어나지 않고, 저 비장한 대통령 선거도 끝나고 1992년이라는 시간은 영원한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불제자들이야 달리 생각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직선의 시간밖에 없기에, 내가 한번 펑크내어버린 시각은 영겁에 이르도록 돌아오지 않고 나는 그것을 수정하거나 회복할 길이 없다. 지난해 가까운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내 소임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 내 팔 안에 얼마나 많은 이웃을 보듬어 안을 수 있었는가에 따라서, 그 시간은 아마도 영원한 황금으로 도금되었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서 나의 삶과 처지를 하느님 은총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서 사느냐, 나의 팔을 조금이라도 널리 펴보고자 안간힘을 쓰느냐, 이 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책임지고자 하느냐에 따라서 금년도 나의 구원이 되거나 나의 심판이 되겠다.

[17회] 연초에
대학 떨어지고...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가 있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허해진 심정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까? 이 나라에 힘없고 돈없는 사람도 사는 세상 죽기 전에 한번 보았으면 하던 사람들, 30년을 두고 민주화투쟁을 해 오던 사람들, 천덕꾸러기로 살아온 호남인들, 전교조 선생님들, 감옥에 갇힌 이들과 그 가족들... 성금요일 주님 무덤가에 주저앉아 서럽게 서럽게 울던 사람들과, 드디어 <나자렛놈>을 해치웠다고 축배를 들며 잔치를 열던 사람들....
전기대학 입시결과가 발표되면서 얼마나 숱한 젊은 혼들이 허공에 뜬 발길로 거리를 헤매이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밤을 어버이들이 저리게 저리게 에어오는 가슴을 안고 잠을 설치고 있을까? 재수 삼수생들이 겪는 자신과 부모님께 대한 부끄러움.... 그런가 하면 집집이 전화를 걸어 아들의 합격을 알리고 잔치를 하고 축하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우린 살았다!")
신앙의 눈이 하나 더 생기고 내 마음의 팔이 한 치라도 넓어졌다면, 우리의 마음은 누구에게 쏠릴까? 하느님의 아들이 왜 헤로데 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갈릴래아 목수아들로 태어났는지, 왜 빌라도처럼 출세를 못하고 도리혀 그 사람 손에 걸려 죽었는지 알듯알듯하다.

[18회] 세례성사
서러운 세례

요르단강에서 예수님은 세례받는 이들 틈에 끼어서 세례자 앞에 섰다.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세례를 받자고. 거기에는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모인 가난뱅이들,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사람들, 가진것 없기에 모두 평등한 그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신이 누구신지 깨닫게 해 주었다. 가난한 죄인들 중의 하나로 줄서신 그 자세, 그 사람들 서러움과 신음과 가슴앓이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가짐 때문에,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서럽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시는 말씀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 맘에 든 아들치고 구약시대든 신약시대는 십자가 팔자를 면한 사람이 없는 연고이다. 세례... 자기가 죽어야 자기를 살리는 곳이다. 나 혼자 천당가기로 마음 먹으면야 천하에 쉬운 것이 세례요 신앙생활이지만 사회교리가 귀에 익으면 그렇지가 못하다.
이 강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강, 민족의 얼이 서린 물길, 제주도사람들의 한, 지리산의 한, 거창과 산청과 함양의 한, 광주의 한과 눈물과 한숨이 어우러진 저 강물 속으로 한국 교회가 몸을 담그면, 우리 겨레는 교회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 배달겨레의 귀에 익숙한 음성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19회] 견진성사
두려운 견진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는 자리에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다. 그러나 어떤 식의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지를 아지 못하셨다. 그래서 성령은 그를 "곧바로" 광야로 보내신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메시아상을 예수님의 머리에 심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무슨 일을 당하신지 우리는 복음서를 읽어 알고 있다.
"견진성사를 받아야 믿음으로도 어른이 된다." 맞는 말이다. 성령을 받으면 어른이 되므로 교회는 우리를 싸움터로 보낸다. 사회로 보낸다. 그곳은 어린이들의 전쟁놀이터나 전쟁영화를 찍는 촬영소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는 싸움터이다. 사기를 치고 뇌물을 주고 도둑질하고서 구차하게 살아남는 그리스도신자는 이미 산송장이다. 사랑과 정의와 선을 위하다가 사기당하고 쫒겨나고 얻어맞고 목숨을 빼앗기는 바보는,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살아남는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예언자가 되었다. 그리고 예언자로 불림받은 사람치고 제 명에 북은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후의 대예언자 예수님을 포함해서! 하느님이 전하라시는 말씀이 하나같이 정의니 민주니 통일이니 자유니 하는 불같은 소리라서, 세도있고 경건하고 글발이나 쓸 줄 아는 사람들한테 미움받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저 처럼 매서운 견진을, 저처럼 당차던 성령운동을 도대체 누가 방언이니 철야기도니 하는 기분풀이로 초쳐놓았을까?

[20회] 성체성사(1)
"개에게는 주지 말라!"

우리 본당의 어느 주일미사 풍경 : "여봇, 돌아와 앉지 못해욧?" "아니 왜 그러는 거야?" "잔말 말고 들어와요!" "왜 그래? 내 참..." 영성체 행렬에 끼어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을 강단있는 아내가 기여코 소매를 잡아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부인은 이어서 미사수건을 가다듬고 남편이 섰던 줄로 들어서면서 중얼거린다. "고따위 짓 하고 와서 영성체해? 성사도 안 본 주제에...."
낚시간답시고 주일미사를 빠졌는지, 꼬집히다 꼬집히다 술집 장면을 자백하였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죄인>이다.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는 사람은...." 그래서 성체는 죄인과 의인을 가르는 표다. (못된짓 했는지 안했는지 알아내는 표다!)
"경건하게 성체를 모실 순간입니다. 교우들, 즉 세례를 받으신 분들만 나오셔서 영성체하시기 바랍니다." 혼인미사나 장례미사에서 으례히 듣는 해설자의 안내 말이다. 그래서 성체는 신자와 미신자를 가르는 표가 된다.
"천상빵인 우리음식 자녀들의 음식이니 개에게는 주지말라." 성체축일에 부르는, 성토마스가 지었다는 송가의 한 구절.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개신교 신자도 성당 미사중에 영성체 못한다. 성체는 이단자와 정통 신자를 가르는 표가 된다. 아아, <일치의 성사>의 모습은 어디에 갔는가?

[21회] 성체성사(2)
"이 예를 행하여라!"와 "이것을 하여라!"

<가톨릭 성가>에는 성체성가가 무려 57편이나 실려 있다. 성찬이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많은 성가 그 많은 구절 중에서 내 옆 자리의 '이웃'교우를 쳐다보게라도 만드는 것은 전부 여섯 구절뿐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내 일신의 영생을 비는 애원, 천당에 한 자리를 주시기를 비는 것으로 그친다. 그리스도와의 사사로운 일치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것 없다는 생각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풀렸을까?
성경 구절 한 마디(1고린 11,24)가 잘못 풀린데서 유래한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미사 때에 수백 수천번을 들어 온 이 대목을 원문에 견주어 본다면, 공동번역 성경이나 미사경본에 나오는 "이 예를 행하여라!"는 틀렸고 원래는 그냥 "이것을 하여라!"이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의 번역이 어쩌면 우리 신앙생활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두 문장을 곰곰이 헤아리면 신앙의 신비가 보인다!

[22회] 성체성사(3)
<이것>과 <이 예>의 차이

<이것을 하여라>와 <이 예를 행하여라>는 어떻게 다를까? 한번 새겨보자. 주님의 만찬의 밤은 당신이 잡히시던 밤이었다. 죽음을 지척에 두신 시각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은 과월절에 쓰는 양을 "잡는 날"이었다. 일찌기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이면서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이것>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운명에 말려들어야 하는데 다행히 <이 예>를 하는 사람은 미사참례만 하면 된다. <이 예>를 행하는 사람은 그저 영성체만 하면 끝나는데 <이것>을 하는 사람은, 한심하게도, 이 사회와 민족의 죄를 뒤집어 쓰고 죽어야 한다. <이 예>는 그리스도를 성부께 제물로 바치고서 끝나는데 <이것>은 교회가, 우리가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일이다.
<이 예>를 하는 사람은 하얀 제대위 황금색 금잔에, 황금색 성반에 담긴 하이얀 밀떡만 우러르고 있다가 보약 먹듯이 영하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하는 사람은 옆사람의 누렇게 뜬 얼굴이며 깊은 한숨이며 속으로 곪아든 상처까지 쳐다봐야 한다. "빵을 쪼개시고" <내 생각해서 이것을 하여라> 하셨다면 우리도 우리 먹을 빵을 쪼개어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굶주린 이들을 우리가 먹는 밥상에 불러 들이는 일이다. 성찬이 이렇게 짐스러울 수가....

[23회] 성체성사(4)
모령성체(冒領聖體)

천주교 신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죄는 모령성체이다. 영성체를 하려다가도 마음이 께림칙하면 자리에 주저앉는다. 바울로의 경고가 무서워서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8-29절).
그런데 우리는 이 경고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일까? 이상한 것이 사람이어서 성경마저도 제멋대로 읽는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 사람이란 누군가? 고린토서 바로 앞대목에 정답이 나온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 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21-22절).
한 성당 안에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 착취하는 고용주와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죄다. 그러니까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제것만 챙기는 사람, 누렇게 뜬 옆사람 얼굴은 외면하고서 황금색 성작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남 줄 줄 모르면서 보약먹듯 성체를 받아먹는 사람은,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라면, 자기의 영원한 심판을 먹는 셈이다.

[24회] 고백성사(1)
고백실과 개수대

어느 고백실에서 있음직한 상상적인 장면 : "거래처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만 술김에 술집여자와 몸을 더럽혔읍니다." "부인께는요?" "재수없게 그만 들켜서 단단히 경을 쳤읍니다." "술집 여자는요?" "예? 그여자야 거래처한테서 돈을 받았으니까..." "그게 아니고 그여자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없으시냐는 말입니다." "그런 여자야 몸을 파는 게 직업이죠, 신부님. 저를 안 받았어도 딴 손님을 받았을 테고 거래처사람한테서 팁을 단단히 챙겼을 테니까...."
그의 고백에서 아내에 대한 신의의 배반은 안중에 없다("재수없게 그만 들켜서..."). 몸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 못하는 여성을 돈으로 유린한 짓도 대수롭지 않다("팁을 단단히 챙겼을 테니까..."). 그의 유일한 걱정은 몸을 더럽힌 일이요 그 일로 영혼이 더러워져 혹시 영성체 못하는 일이겠다. 언제부터 고백성사가 더럽힌 손발을 씻는 세면대, 영혼을 설거지하는 개수대가 되고 말았을까? 도대체 6계명을 빼놓으면 고백할 것이 별로 없는 성사가 되었을까?
"사회적 죄"(社會的罪)라는 말은 뜻도 모르게 되었을까?
이 사람이 고백하고 영성체하려면 먼저 아내에게 부정을 용서받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까? 술집의 그 96번 아가씨는 다름 아닌 나의 죄 때문에 거기 몸팔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할까? 한국땅 사내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매음이 있다는 "사회악"이 바로 자기 죄라는 것을 인정이나 할까?

[25회] 고백성사(2)
"또 판공성사야?"

"(성탄) 판공이 어제 같은데 또 (부활) 판공이라? 성사 볼 게 있어야 말이지... 죄라면 사는 게 죄지, 나야 법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인데.... 헌데 저 착하디 착한 수녀님들은 매주일 고백성사를 보신다니 이상도 하다. 죄를 지을래야 지을 건덕지도 없는 분들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백 꺼리가 없는 것은 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죄에 대한 감수성이 없어진 연고이리라. 다정한 사람끼리는 표정과 눈짓만으로도 상대방의 심경과 요구를 다 눈치챈다. 그 대신 미움이 싹튼 부부들은 상대방의 상처를 할퀴어주는 것이라면 할 말 못할 말, 할 짓 못할 짓을 가리지 않는다.
"사랑이 크면 죄가 무거워진다(?)" 내 한 마디, 동작 하나가 누구 마음을 상해 주지 않나 소심해진다. 이웃의 끼니 굶는 사람, 학교 못가는 아이, 버림받고 외로이 사는 아낙네나 노인, 철창에 갇힌 사람... 그들의 불행과 고통이 모두 내 탓으로, 내 죄로 여겨진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고 외쳤듯이, 주님을 닮아 팔길이가 늘어나는 신앙인은 고백 꺼리가 산더미처럼 많아진다.

[26회] 고백성사(3)
"성사 보기 힘드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되었을 때 맞아주지 않았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지 않았고... 이 지극히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4,45) 교우님, 소말리아에서만 작년에 3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전세계에 나라없는 피난민이 천만명이고, 한국에만 양심수가 천명이 넘었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곧이들으십니까? 말씀 그대로 심판받으시리라 여기십니까? "천만에요. 그냥
해보신 말씀이시겠죠. 내가 무슨 수로 저걸 다 지킵니까?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교리공부해서 세례받은 사람이라면 대죄(大罪)와 소죄(小罪), 원죄(原罪)와 본죄(本罪)라는 말뜻을 알 게다. 그런데 개인적 죄(個人的罪)와 사회적 죄(社會的罪)라는 말뜻을 구분하는 신자는 매우 적다.
사회적인 죄라는 것은 가정이나 동네나 국가, 혹은 전세계에서 "사람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고 온갖 불평등과 불의를 자아내는 체제"를 가리킨다. 사람마다 그런 상황을 조장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죄를 말한다. 예컨데 집집이 퐁퐁을 써서 (한강)이 죽으면 그 죄는 (서울) 사람 모두가 뒤집어 써야 한다. 탁아소가 없어 엄마가 파출부나간 틈에 불타죽은 어린이들의 죽음은 탁아소도 제대로 만들지 않은 (서울시)와 그 동네 사람들 죄악이다. 과거 이 나
라 정권들이 저지른 광주학살, 온갖 경제비리, 지역차별, 무수한 양심수의 고통은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에 투표한 국민 모두가 하느님께 심판받을 사회적 죄이다. "아이고, 성사 보기 여간 힘들게 만드시누먼...."

[27회] 병자의 성사(1)
종부성사를 받으면 영낙없이 죽는다(?)

세상에 천벌받을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참으로 한심한 질문이 하나 있다. "랍비, 누가 죄를 지어서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나게 되었읍니까? 저 사람입니까? 혹은 그의 부모입니까?" 그러니까 모든 불행과 질병은 죄값이요 하느님의 벌이란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병들고 불구된 인간은 무조건 죄인이란다. 그러니까 권세있고 부유하고 건강하고 장수하는 사람은 선인이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단다!
그래서 노인들은 병자의 성사 받기를 두려워한다. 얼마전까지도 이 성사를 종부(終傅: 마지막이 가까운)라고 불렀으므로 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끝장났다!"는 말로, 하느님의 사자(= 저승사자)에게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종부성사를 받으면 안죽을 병자도 영낙없이 죽는다는 미신도 생겼다.
예수님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생전에 어디를 가시든 예수님이 하시는 첫 번 일은 병자들을 낫게 하시는 일이었다. 굶주리는 사람들 만나시면 빵의 기적을 하시면서 가난과 질병을 퇴치하고자 애쓰셨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질병과 재앙과 사별로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교회는 인생의 중대한 고비인 질병과 죽음까지도 성유로 축성하여 하느님께 제사처럼 받치는 병자의 성사를 집전한다.

[28회] 병자의 성사(2)
"내가 왜 죽어?"

어설픈 부부관계를 두고 "돌아 누우면 남남"이라는 말이 있지만, 치통을 잃아본 사람이나, 골수암으로 고생하는 친지를 둔 사람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에 손쓸 것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 한다. 병자의 성사란 무엇인가?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도 의사도 손쓰지 못할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병자들의 손을 붙들어 주시는 성사이다. 그러니까 죽음의 성사가 아니라 생명의 성사이다.
신앙을 함께하는 이들의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시리라"(야고 5,15)는 희망이 이 성사의 원천이다. 그대신 만약 환자의 그 질병과 죽음이 그 사람의 빈곤과 과로, 공장의 공해나 공사장의 안전미비, 이 사회의 불의한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 성사는 바로 그 사고와 질병에 책임있는 사람들과 회사경영자들과 정부에 하느님의 심판을 일깨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도 정작 죽음을 피할 길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까? "내가 왜 죽어? 내가 왜 죽어?"라고 몸부림칠 것인가? "나는 어찌 살라고?"라면서 매달릴 것인가? 예수님은 당신 죽음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마태 26,28)이라고 여기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신 것은, 하느님 아들이라는 신분도, 훌륭한 가르침도, 놀라운 기적도 아니고, 다름 아닌 당신 죽음으로였다! 따라서 우리가 죽는 것은 죄값도 아니요 명이 짧아서도 아니다. 우리 주님이 죽으셨으므로 우리도 따라 죽을 따름이다.
그래서 병자의 성사는 모든 인간의 죽음을 축성해 주는 성사이다. 죽음이 무의미하다면 삶 전부가 의미없어지니까. 우리가 죽어 남들을 살리는 성사이다. 기왕 의사도 손댈 길 없는 상태라면, 죽어 하느님 앞에 가야만 가족을 영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부양할 수 있을 테니까....

[29회] 혼인성사(1)
"사랑이라는 굴레"

<빈첸시오회> 활동을 해 본 사람은 프레데릭 오자남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 회의 창립자요 당대 불란서 평신도 운동의 기수요 소르본느대학 교수였다. 그의 친구로 당대의 이름있는 신학자 라꼬르데르 신부는 오자남이 늦도록 총각으로 지내자 부디 사제가 되어 훌륭한 주교가 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오자남은 어여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였다. "불쌍한 오자남! 그 사람마저 덫에 걸리다니!" 라꼬르데르신부의 탄식이었다.
몇해 후 그 신부가 로마에 갔다가 교황 비오 9세에게 꾸중을 들었다. "신부님,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세우신 것은 일곱 성사라고 합디다. 그런데 신부님 말대로는 예수님이 여섯 성사와 덫 하나를 제정하신 셈입니다. 신부님, 결혼은 덫이 아니고 크나큰 성사올시다."(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강론).
날개가 없는 천사를 자처하는 자매들이여, "남편이라는 십자가, 자식이라는 십자가, 시어머니라는 십자가" 운운하며 서럽게 서럽게 탄식하는 자매들이여, 결혼은 분명 십자가가 아니고 성사올시다. 사목회 활동에 보태어 성체분배 몇차례 해보고서는 "처자식만 없다면 사제나 되어.... 하다못해 종신부제라도 되어..." 하면서 몽상에 잠기는 형제들이여, 마누라라는 존재가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을 뿐더러, 혼인은 덫이 아니고 성사올시다. 우리 구원과 멸망이 달린
성사올시다!

[30회] 혼인성사(2)
아담의 첫 마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는 첫날밤에 신랑의 입에서 나오는 첫마디가 부부의 일평생 금슬을 점치는 것이라 하여 금구(金口)라고 불렀다는데, 인간이 지상에 나타나 맨먼저 내뱉은 첫 마디가 무엇인지 아는가?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이 자기한테 데려오시는 하와를 보고서 아담이 "아,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살에서 나온 살... " 하던 감탄사("아!")였다고 한다.
부부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서도 두 사람의 첫번 만남에서, 결혼식에서, 첫날밤에 저절로 입밖에 새어나오던 "아!"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 둘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교회는 가정을 "운명 공동체"라고 부른다. 부부는 입맛만 닮는 게 아니라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도 닮는다. 돈과 "우리 것"만 찾고 자식들에게 가르치면 거기서 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둘이서 사랑하고 하느님을 모시고 자녀를 양육하면 그것은 작은 가정교회요 천국이 비치는 호수이다. 이기심과 부정으로 뒤얽혀 마치 두 마리의 독사처럼 물고 뜯는다면 굳이 사후 심판대까지 갈 것 없이 이미 지옥을 겪는 셈이다. 그때 아담의 감탄사는 온데간데없고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는 파렴치한 변명만 남는다.
그러니까 "저 원수하고 언제 헤어져 천당가노?" 하는 말은 착각이다. 어느 성인의 말을 기억하시라! 지상에서 최후로 눈을 감았다가 후세에서 눈을 뜨는 순간 제일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숨넘어 갈 때에 지상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똑같은 사람들에게 그곳에서도 에워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31회] 혼인성사(3)
사랑만이 정화한다

개돼지에게도 사람한테도 먹는 것보다 큰 즐거움이 없다. 그래서 밥을 먹는 가장 평범한 행동을 하느님은 성찬의 성사로 드높이셨다. 성(性), 인간의 행위 가운데서 가장 짐승다와 보이면서도 두 인간을 가장 긴밀하게 묶어주는 이 끈을 하느님은 혼인 성사로 격상시키셨다. 부부행위는 그래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처럼, 제사처럼 성스러운 의식이다. 제삼자가 훔쳐본다면 참으로 부끄럽지만 하느님만 지켜보아 주신다면 그것은 둘의 사랑으로 감싸인 더없이 경건하고 지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가장 귀한 선물도 인간은 가장 짐승답게 악용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느님의 모상인데 남성이 여성을 매춘과 포르노와 소비향락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 자기 살, 자기 뼈와 더불어 남성 자신이 전락한다. 혼외정사는 혼인의 성사를 모독하는 독성죄이다. 부부는 함께 구원받거나 함께 멸망하며 제삼의 방도가 없다.
세상에 정녕 못난이가 있다면 사내라는 것 외에 자랑할 것 없는 남자이겠다. 어디 가서나 개처럼 죽어 살면서, 이 사회의 엄청난 불의와 폭력에 저항은커녕 야합하고 복종하고 찬양하면서, 가정에 와서는 힘없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독재자로 군림하는 사람은 혼인성사를 모독하는 죄인이다.
그리고 가부장사회에서 하시당하는 여자들은 자신이 여자임을 부끄러워하고 멸시하게 마련이다. 산부인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지금도 딸을 낳고서 돌아눕거나 한숨짓거나 눈물흘리는 산모들을 얼마나 자주 보는가? 혼인성사의 이 많은 상처들은 신앙에 힘입은 사랑만이 정화할 수 있다.

[32회] 신품성사(1)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우리 본당에서 서품자가 나는 기회에 사용할 만합니다)
[금년에도 우리 본당에서는 사제 한 분이 탄생한다. 돌아오는 7월 16일 수유 2동 3반 교우 이봉춘(요아킴) 형제의 아들, 이충열(디도) 부제가 사제로 서품받을 것이다. 하루전인 7월 15일에는 수유 3동 6반 교우 장원애(아녜스) 자매의 아들, 김종한(분도)군이 부제로 서품된다.]
옛적부터 교회에서 사제는 그분을 내는 교회와 직결되었다. 쉽게 말해서 [수유]본당 사제는 [수유]본당 교우 가운데서 뽑아 서품하였다. 지금도 서품공시라는 것을 하여 부제가 사제직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인지 아닌지를 신자들이 정하고, 특히 부당한 점이 있으면 이의를 말할 여유와 권한을 주고 있다.
지금 교회제도는 [수유]본당 교우를 사제로 서품해도 [수유]본당의 사제로 남지 않고 [서울]교구라는 커다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일하게 된다. (어차피 시집보내는 딸이 있으면 집에 들여오는 며느리도 있듯이) 우리 본당에서 일하시는 신부님들도 모두 다른 본당에서 낸 분들이니까 섭섭해 할 것은 없다.
다만 우리 본당이 합심하여 젊은 교우 한 분을 사제로 바쳤다는 뜻으로, 부제품이나 사제품에 필요한 비용은 교우들이 한데 염출하여 부담한다. 그래서 7월 4일에는 축의금 봉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아들딸 시집장가보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생각한다면, 우리 [수유]본당 공동체가 키워서 하느님의 교회에 바치는 이 젊은이들을 위하여, 독신으로 살면서 오로지 교우들에게 봉사할 분들을 위하여 집집이 체면이 깎이지 않을 부조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새 사제에
게 필요한 것을 개인적으로 마련하고자 하면 [원장수녀님께] 의논드리면 된다.

[33-1회] 신품성사(2)
부처님 지고가는 당나귀

신부님이나 수녀님 처지를 부러워하는 교우들을 종종 본다. 결혼생활 실컷 누리다가 뭔가 좀 아니꼬울 때에,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식으로 그분들의 생활을 넘보는 것이다. 곁에서 "당신은 어차피 늦었으니 아드님 신학교에 보내고, 당신 따님 수녀원 보내시지 그래요?"라고 한 마디 하면 당장 꿈을 깬다.
사제직은 성령께서 주시는 카리스마 가운데서도 가장 철저하게 봉사하는 카리스마이다. (우리는 결혼생활과 사회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과 사람에게 봉사하는 카리스마를 받았다!) 그분들의 독신생활은 이 봉사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처자식이 있을 적에 남을 위해서 살고 남에게 잘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경험해서 알지 않은가?
사제직은 오로지 남을 위해서 사는 봉사직이지 특권이나 칭호는 아니다. 교우들이 제아무리 떠받들고 공경해도, 사제들은 자기가 부처님을 모시고 가는 당나귀 처지임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한테 절하는 것은 등에 지고가는 예수님 때문이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님을 실감하면서 산다.
우리의 대사제 예수님은 평신도이셨다. 더군다나 당대의 사제계급에게 미움 받아서 그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삶 자체가 하느님께 올리는 예배요 제사였다. 특히 그분의 죽음은, 우리 믿음대로, 만민을 죄에서 구하는 인류사의 가장 성스러운 제사였다. 교회는 이것을 신자 모두의 "보편 사제직"이라고 일컫는다.

[33-2회] 신품성사(3)
피곤한 어부

교형자매들이여, 사제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곧잘 우리의 험담에 오르고, 작은 결점에도 이러쿵저러쿵 우리가 불만스러워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 눈에 사제들은 자칫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그들의 선택과 소명이 그래선지 성덕의 첨단에 서 있지 못하면 입체감이 가장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주시는 힘으로 그침없이 상승하고 있지 않는 한, 측량키 어려운 가속도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사제들은 이방인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 없이도 잘 살고, 신자들이 십자가를 쳐다보지 않으며, 주일미사에서 귀에 솔깃한 위안의 말만 찾고, 제 가진 것 없는 사람과 나누어먹으라고 호소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설령 예수라도 그냥두지 않겠고 눈을 부라리는 세상에서 사제는 초라한 이방인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의 사제들은 피곤한 어부입니다. 이것은 비록 서양 교회의 모습입니다만 (한국 교회도 언젠가 이리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읍니다), 밤새 빈 그물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어부들, 그래도 혹시 잔챙이 한 마리라도 걸리기 바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고 말씀드리는 어부들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사제들 역시 갈바리아까지 스승의 뒤를 따라갑니다. 가나촌에서 최고급 포도주에 거나하던 베드로, 가파르나움에서 기적의 떡광주리를 들고 신바람나던 베드로, 다볼산에 그냥 있기가 좋다던 베드로, 그는 군중 맨 끝에서 슬금슬금 행렬을 따라가 먼 발치에서나마 스승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읍니다. 며칠 뒤 호숫가에서 세번 다짐하시고 세번 물으시자("너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본당에서 새로 탄생하는 사제와 우리 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사제들, 개인적으로 아는 다른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고 존경할 만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34회] 신품성사(4)
"아! 하느님의 사람이여" (1디모 6,11)

사제는 성숙한 남성입니다. 청춘이 그의 정신에서 시듦이 없고 인간과 자연에 항상 놀라워하고 다정다감하지만 발랄한 미혼자가 아닙니다. 그도 나약과 실수와 때로는 죄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는 "우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여, 그의 용기를 꺾지 마시고 그를 시험하지 마시오. 사십대 기혼자의 성숙과 평정이 갖추어진 남성이 되도록 거들어 주시오.
사제는 성실한 인간입니다. 은총에 겸허하게 순응하면서 하느님과 자기와 타인에게 성실하고자 애씁니다. 우리 죄의 실재성과 그 상흔을 들여다보고 부드럽지만 용기있는 음성으로 이야기해주는 사람입니다. 고백실을 물러나가는 우리의 쓰라린 다짐들이 거의 언제나 헛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하느님 사랑이 인간의 죄악과 배신에 꺾이지 않으신다는 소신을 품고 있읍니다. 그러니 고백실의 훈계와 강론과 충언을 귀담아 들으시오.
그는 교회의 사람입니다. 스무 세기의 긴 세월동안 언제나 주님의 괴이심을 받아 젊어지고 순결해지고 더욱 지혜로워지는 어머니께 아들다운 신뢰와 사랑을 바칩니다. 교회의 얼굴이 아무리 쭈그렁이고 심술궂고 고집스러워도 종국에 가서는 순종과 평화를 교회에 바치는 사람입니다. 그를 교회의 품에서 멀어지게 만들지 마시오. 줄기에서 떨어져나간 포도가지가 되어 말라버립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사랑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한테 들려주며 복음을 읽고 복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언어, 십자가의 언어로 말합니다. 자신과 자기에게 지워진 교우들의 죄과를 무릎꿇어 속죄하기에 그의 무릎에는 옹이가 들고 찌르는 가시가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와함께 미사를 봉헌할 적마다 그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따스한 안방에서 처자와 저녁기도를 올릴 때에 사제관의 고독한 그를 위하여 기도하시오.

[35회]
교회의 사회교리

반년을 두고 변죽만 울려 왔으니 본격적으로 <사회교리> 강좌를 시작해 볼까? 무슨 책을 교재로 삼을까? 공의회 문서(예: <사목헌장>)도 있고 교황님들의 회칙(예: <백주년>)도 있고 신학자들이 쓴 연구서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본당 서점이나 바오로서원에 들려 "사회교리에 관한 책좀 주셔요."라고 섣불리 주문했다가는 40권이 넘는 책을 안고 쩔쩔맬 것이다.
교리라니까 그래도 제일 권위있는 교리서를 따르기로 작정하자. 작년(1992) 10월에 교황님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라는 공식 교리서를 펴내셨다. 구교우들이 기억하고 있던 <천주교 요리문답>이 트렌토 공의회에서 나온 해가 1566년이니까 실로 426년만에 나온 천주교의 공식 교리서다. 이 새 교리서가 앞으로도 400년을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말 공식 번역서가 나오기까지도 족히 이태는 걸릴 테니까 우리 본당 교우들이라도 앞당겨 공부하자. 새 교리서의 사회교리는 제 2부, 제 1단, 제 2장 "인간 공동체"에 나온다. 첫 항목(1877)을 보자.
"인류의 소명은 인류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드러나고 성부의 외아드님의 모상으로 변모함에 있다. 각 사람이 하느님의 행복에 들어오도록 부름받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명은 개인적인 형태를 띤다. 그러나 또한 전체로 본 인간 공동체에 해당하는 소명이기도 하다."

[36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자식은 얼굴 생김새나 입맛, 목청과 걸음걸이만 부모를 닮는 게 아니다. 어버이의 성품이나 덕성은 물론 (기분 나쁘게도) 부모의 못된 성깔이나 멍청한 머리나 술 담배 노름 버릇까지 따라온다. 이쁘든 밉든 우리 자식은 우리 생김새를 쏙 빼닮는다. 죄많든 착실하든 사람이 하느님 모상이듯이....
"인류의 소명은 인류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드러나고 성부의 외아드님의 모상으로 변모함에 있다. 각 사람이 하느님의 행복에 들어오도록 부름받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명은 개인적인 형태를 띤다. 그러나 또한 전체로 본 인간 공동체에 해당하는 소명이기도 하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877항)
"사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유식한 철학자들은 "사람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대답하고 유식한 신앙인들은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다!"라고 답변한다. 무산계급의 유토피아, 유신시대, 주체사상, 신한국의 창조, 민주주의, 사회주의... 다 좋은 말이다. 다만 그런 정권하에서 사람이 피어나고 살만하면 그것은 좋은 정치, 훌륭한 사상이고 사람이 쪼그라들고 짓밟히면 나쁜 정치, 악한 사상이다. 사람이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구 맘대로 사람이 만물의 척도냐고? 하느님 맘대로다! 왜 그러냐? 사람이 하느님 모상이라서 그렇다!
나 혼자 하느님 모상이면 다 되는가? 천만에! 한 가족으로, 배달겨레로, 온 세계 인류로 하느님 모상이 되어야 한다. (수유)본당으로, (서울대)교구로, 전세계 가톨릭교회로 그리스도의 모상이 되어야 한다.

[37회]
"모든 사내는 늑대라..."

고대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시대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는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사람이 분수와 도리를 알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금세기에 와서도 무신론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철학자 마르셀은 "타인은 나의 구원이다!"라고 하였다.
부부간에 서로 "그대는 나의 태양, 그대는 나의 운명!"이라고 노래부를 수 있고, "저 웬쑤같은 화상을 안 만났더라면..." 하고 한탄할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두고 "하느님이 태워주신 내 분신..." 이라고 대견해 하기도 하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너같은 것을 자식이라고 낳았더냐?"고 탄식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나의 아내와 자식과 시부모로 인해서 지옥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구원받고 있는가? 교회의 가르침은 엄정하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목적 곧 하느님께 이르도록 부름받았다. 하느님의 세 위격의 일치와 사람들이 진리와 사랑으로 서로 이룩해야 하는 형제애 사이에는 어떤 유사함이 있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뗄 수 없다."(1878항)
다시 말해서 "인간은 사회생활을 필요로 한다. 사회 생활은 사람에게 덧붙여진 무엇이 아니라 그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타인들과의 교제, 상호 봉사, 그리고 형제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사람은 자기 능력을 발전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소명에 응답한다."(1879항)

[38회]
무자식이 상팔자라?

지난번 대학입시 부정이 터지면서 신문에 줄줄이 나오는 학부모 명단을 볼 때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났다. 마음 같아서는 마누라도 자식도 친구도 다 소용없고, 사업도 직장도 다 때려치우고 싶은 때도 없지 않다. 그럴땐 수녀님과 신부님이 왜 그리도 부러운지.... 헌데 새 교리서는 이런 푸념을 절대로 용서 않는다.
"사회라는 것은... 일치의 원리에 입각하여 유기적으로 결합된 개인들의 집합이다.... 사회로 말미암아 각 사람은 (과거의) "상속자"가 되고 "달란트"를 받는다. 그 달란트는 각자의 사람됨을 풍부하게 만들며 각자는 그것으로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는 자기가 속하는 공동체에 헌신해야 마땅하고,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공권력을 존중해야 한다."(1880항)
우리가 하느님께 받는 달란트는 결국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를 통해서 받은 것이다. 그러니 좋든 싫든 주부로서, 회사원으로서, 학생으로서 공동체에 이바지해야만 자기 완성과 구원을 얻는다. 허나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나라가 먼저인가? 철학한다는 사람들이 수 천년을 따져온 물음에 교회는 분명한 답을 내놓았다. 사람이 먼저다!
"모든 공동체는 고유한 목적에 근거하여 성격이 정해지며, 따라서 특정한 규범을 따른다. 그렇지만 모든 사회제도의 근원도 주체도 목적도 인간이며 또 인간이 아니어서는 안된다."(1881항)

[39회]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으니...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보고서도 가정의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은 바보다. 월남의 보트피플이니 유고내전을 보면서도 자기 나라가 중요함을 모르면 천치다. 국가와 법이 없으면 힘센 자와 도둑놈만 살아남는다.
"가정과 시민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 보다 직접적으로 상응하며, 인간에게 필요불가결하다. 사회 생활에 가능한대로 많은 수가 참여하는...단체들과 선거 제도를 만들어내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사회화는 개인의 자질, 특히 그의 창조 정신과 책임감을 신장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공헌한다." (1882항)
하지만 올해의 신문과 텔레비전은 지난 30년간 이 나라가 거대한 도둑떼 손아귀에 있었고 우리는 여당이라고 해서 멍청하게도 그 도둑떼한테 착실히 투표해온 것을 깨닫고 가슴을 치게 만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회화(社會化)는 또한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국가의 지나친 강압적 개입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위협할 수 있다. 교회의 가르침은 보조성(補助性)이라는 원리를 만들어냈다."(1883항)
사회와 국가가 도리혀 해를 끼치는 경우에 이를 막아주는 이 보조성의 원리라는 것이 뭐냐고?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내부 생활에 간섭하여 그 고유의 임무를 제거하면 안되고, (서울시나 도봉구청은) 통반과 성당과 학교를 지원해서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며, 이런 기관들은 가정이 올바로 살아가게 돕는다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빨리 하라는 것은 야당이나 재야인사들의 목청이 아니라 사실은 천주교의 교리이다.

[40회]
기름칠을 해야만...

뇌물을 안주면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법망에 걸리면 맨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검철청 브로커였다. 경찰은 흔히 젊은 국민을 두들벼 패는 지팡이였다. 월남전을 빼놓고는 한국 군대는 (이북)동포와 (제주도, 지리산, 광주에 사는) 국민을 상대로 전쟁해 왔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하느님은 모든 권한의 행사를 당신에게만 유보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이 그 본성의 고유한 역량에 따라서 스스로 행사할 정도에 있는 기능을 각 피조물에게 맡기신다.... 인간 공동체를 통솔하는 사람들의 지혜는 하느님의 이 처신에서 영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 섭리에 봉사하는 자로 처신하지 않으면 안된다."(1884항)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겠다고 입으로 떠벌이고서는, 기생충이 사람을 피빨아 먹듯이, 권력을 받은 사람들이 국민을 뜯어먹을 고기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공금은 다 제 돈이요 국토는 다 제 땅이었다. 우리는 강도들을 믿고 정권과 관직과 수사권이라는 식칼을 쥐어준 셈이었다.
교회는 한 마디 더 한다. "보조성의 원리는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를 반대한다. 이 원리는 국가의 개입의 한계를 분명하게 만든다.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조화시키고자 한다. 진정한 국제 질서를 수립하고자 한다."(1885항)

[41회]
중산층 천주교

"사회는 인간 소명의 실현에 불가결하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을 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 종속시키는 가치의 올바른 위계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1886항)
과연 천주교신자들은 물질과 본능을 정신적 차원에 복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얼마전 <가톨릭신문>에 난 기사들은 이 물음에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한다. 뱃속에 있는 자기 아이, 좁디좁은 자궁 속이라 도망도 못가는 태아를 의사의 손을 빌려 가위로 토막내서 죽여 없애는 낙태! 천주교 신자도 믿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똑같은 숫자로 낙태를 저지르고 있단다. 유교신자나 불교신자보다 낙태를 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단다. 주일에 갈데없어서 성당에 나 오는 것은 아닐 텐데....
"수단과 목적의 혼동은, 협조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에다 최종 목적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거나, 인간을 단순히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간주하게 만들어, 결국 불의한 구조들을 조성한다. 불의한 구조는 입법자 하느님의 계명과 상응한 그리스도교적 행동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1887항)
근자에 자식을 부정으로 대학에 입학시킨 부모, 돈을 상납하고 진급한 군인들, 국회와 공직에서 쫓겨난 사람들, 온갖 비리로 구속된 고위층 인사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유난히 많다는 검찰청 뒷이야기.... 하느님 축복으로 돈벌고 출세하다 보니(중산층의 교회!) 그리 되었을까? 아니면 신앙 따로 삶 따로 국밥을 차리다 보니 그리되었을까?

[42회]
폭력은 무조건 안되는가?

현총련파업이니 학생시위니 하는 사건을 텔레비젼 뉴스나 신문에서 접할 때에 등골이 오싹하는 교우들이 많다. 학생들이 맞아죽는 것은 "에이 참!" 한마디로 지나가지만, 경찰이 죽으면 분노를 터뜨리는 분들이 있다. 노동자들이 인권을 외치며 분신자살해도 "병신들!" 하고 넘어가다가 만일 기업주가 손해보는 일이 생기면 "노조의 배후에는 필시 빨갱이들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명분인즉 교회는 평화를 사랑하고 신앙인은 폭력을 절대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과연 맞는 말일까?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경제개발에 커다란 희망을 걸면서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공동선을 극도로 해치는, 명백한 압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혁명과 폭동은 새로운 부정과 새로운 불균형을 초래하며 인간을 파멸에로 이끌어간다"(민족들의 발전, 31항)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그뒤 20년이 지나서,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6년)는 "교회의 교도권은, 개인의 기본권과 공동선을 심대하게 손상시키는 명백하고도 장기화된 폭정을 종식시키는 최후수단으로서 무력투쟁을 용인한다"(자유와 해방, 79항)는 선언을 하였다. "...제외하면...폭력은 안된다!"라던 문장이 20년만에 "최후수단으로서 용인한다!"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1889 은총의 도움이 없으면 인간은 "한편으로 악에 떨어지는 비열한 마음과 다른 편으로 그 악을 쳐부순다고 착각하면서 그 악을 증가시키는 폭력 사이에나 있는 샛길, 대개는 좁은 샛길을 식별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43회]
간추린 사회교리 ①

지난 몇 주간은 작년에 로마 교황청이 발행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교리조목을 설명하면서 이러저러한 사설을 끼워넣었다. 지금까지는 새교리서 제 2부[= 지킬 계명], 제 1단[= 개론], 제 2장 <인간 공동체>의 제 1절 <인간과 사회>를 소개하였는데 사회생활에 대한 근본자세를 가르치는 내용이었다. 복습을 겸해서 한데 간추려 보자. <천주교 요리문답>을 기억하는 분들은 아래 나오는 조목조목을 외워두고 싶을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신앙인들의 <사회 생활의 참여>라는 제 2절을 다루겠다.

1890 하느님의 성삼위의 일치와 사람들이 서로 이룩해야 하는 형제애 사이에는 어떤 유사함이 있다.
1891 인간이 자기 본성에 맞게 발전하려면 사회 생활이 필요하다. 어떤 사회 단체, 즉 가정과 시민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 보다 직접적으로 상응한다.
1892 "모든 사회제도의 근원도 주체도 목적도 인간이며 또 인간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1893 단체와 선거 제도에 가능한대로 많은 수가 참여하도록 조장하여야 한다.
1894 보조성의 원리에 의하면, 국가나 보다 큰 사회가 개인과 중간 단체의 창의성과 책임을 대신해서는 안된다.
1895 사회는 덕성의 발휘를 용이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며 방해해서는 안된다. 가치의 올바른 위계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
1896 죄악이 사회 분위기를 전도시키는 곳에서는 마음의 회개와 하느님 은총에로의 회심을 호소해야 한다. 사랑은 정의로운 개혁을 촉진한다. 복음을 떠나서는 사회 문제의 해결이 없다.

[44회]
공권은 악마에게서?

지난 몇 달의 사정정국을 보면 우리나라 역사는 국민이 "도둑에게 열쇠 맡기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고" 살아온 역사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은 부정선거나 쿠데타나 광주시민의 학살을 수단으로 군인들이 돌아가면서 독차지하고는 떵떵거려왔다. 지금은 관청을 가도 공무원들이 좀 고분고분해졌지만, 전에는 "동냥을 가면 개부터 짖는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신앙인에게도 공권력(公權力)이라는 말이 달갑지도 못한 것으로 들려온다. 강도의 손에 쥔 식칼같아 섬찟하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는 "공권은 도덕적 차원에서 요청되는 만큼,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1899항)고 잘라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마저도, 사람들한테는 원래 국가도 정부도 필요없었지만, 원죄로 타락하여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폭력적이 되어 하는수없이 이를 다스릴 공권력이 필요해졌다고 가르친 적이 있었으므로 교회가 바로잡은 것이다.
1897 "인간 사회가 질서있고 또 번영하려면, 그 사회에 합법적인 공권이 있어서 질서를 보장하고 충분할 정도까지 공동선의 실현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1898 모든 인간 공동체는 그것을 통솔하는 공권이 필요하다. 이 공권은 인간본성에 본래의 토대를 갖는다. 공권은 시민 공동체의 단결에 필요하다. 그 임무는 가능한대로 사회의 공동선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45회]
8.15와 안도마

우리나라는 성모님과 인연이 많다. 우선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을 맞은 날이 성모승천 대축일이었고,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은 원죄없으신 성모님이다. 그런데 8.15마다 우리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할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죽였을 적에 경성 주교관은 처음에 그가 천주교신자일 리가 없다고 우겼다. 또 안의사가 사형당하기 전에 마지막 성사를 보고 싶다고 청했고 빌렘(홍)신부가 가겠다고 자청하였으나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안도마가 살인자라 하여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빌렘 신부는 사목자로서의 양심 때문에 주교의 명령을 어기고 안도마에게 최후의 고백성사를 주었다. 뮈텔 주교는 빌렘 신부에게 2개월 성직정지의 징계를 내렸고 결국 불란서로 보내버렸다.
뮈텔 주교의 처사는 살인을 금하는 엄격한 사목자의 입장이므로 정당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천주교의 태도와 대조적이다. 일제말 개신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많은 박해를 받고 있을 때에, 천주교는 예컨데, 명동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이 줄지어 남산으로 올라가 신사참배를 하고 내려오곤 하였다!
1990년 안도마 의사가 순국한지 80주년을 맞아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안도마 의사를 교회 안에서도 복권시키고자 시도하였으나 주교들의 냉담한 태도로 실패하였다. 지난 30년 군사독재하에서 저항하다 사형당하고 분신자살한 천주교신자들이 안도마 의사와 함께 교회에서 복권될 해방절은 언제쯤일까?

[46회]
<평화의 댐>과 신앙

편한대로 잘 잊어버리는 교우들은, 박정희장군이나 전두환장군이 통일주체 국민회의니 하는 거수기들을 동원하여 대통령이 되고 국민의 대통령선거권을 빼앗아버린 10년 역사가 까마득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배만 뜨뜻하게 먹여주면 고맙다는 생각이었으니까. (내 손아귀에 쥔 것 나눠먹자는 작자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았을 게고.)
1901 공권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질서에 속해 있다면, "정치 체제와 집권자 지명은 국민들의 자유 의사에 맡겨져 있다."
편한대로 잘 잊어버리는 교우들은,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낸 연극, 이북이 금강산 댐을 만들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참이니까 평화의 댐을 만들어 물길을 막자던 사기극에 바보처럼 놀아나고서도 화낼 줄을 모른다. 권력자가 짖으라는대로 짖어대는 관제언론에 바람이 들어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모아바치던 성금, 국민학생 코묻은 통장까지 욹어내던 돈이 아까운 줄 모른다.
1902 공권은 고유한 도덕적 합법성을 공권 자체로부터 이끌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공권은 전횡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자유와 책임 의식에 뿌리박은 도덕적 힘으로서", 공동선을 위하여 작용해야 한다.
교리서 두 구절로 미루어, 대통령을 뽑는 권리는 6.29선언으로 노태우장군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권리이다. 평화의 땜은 남한의 안보라는 공동선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안보라는 소수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80년대에 전두환정권에 항거하던 학생들을 욕하고 국민의 6월 항쟁을 욕하던 성직자들이나 교우들은 어디로 갔는가?

[47회]
대통령들의 자술서

있지도 않던 금강산댐 막을 평화의 댐을 세운다면서 코흘리게 동전까지 울거쓴 사기를 해명하라고 전두환씨에게 조사서가 갔다. 사람 죽이는 것 배운 무리들을 거느리고서 비행기 탱크 대포 같은 값비싼 장난감 사들이고 만들면서 수조원의 돈을 어디다 썼느냐고 노태후씨에게 조사서가 갔다. 조사서를 보낸 신앙상의 명분은 다음과 같다 :
1903 공권은 해당 공동체의 공동선을 도모할 때에, 또 그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정당한 수단을 사용할 때에 한해서 합법적으로 행사된다. 만일 집권자들이 불의한 법률을 반포하는 일이 있거나 도덕 질서에 상반되는 척도를 구사하는 일이 있다면, 그러한 처사는 양심에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그럴 경우에 공권은 분명히 공권이기를 중단하고 횡포로 전락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감사원에 보낼 답서는 한 줄로 나올 것 같다. "나를 대통령으로 찍어준 병신들에게 물어보라! 끝!" 미사 중에 이 글을 읽는 우리들이 지난 10년 텔레비젼 뉴스도 볼 줄 모르던 청맹과니나 벽창호가 아니었다면, 전두환씨와 노태후씨 말이 백번 옳다. "카인아, 네 불쌍한 동포들이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 말씀이 들려도 "이딨긴요? 저것들 눈에 안 보이게 싹 쓸어버리실 수 없나요?"라는 대꾸가 우리 목구멍까지 올라왔었으니까....
광주학살 사건을 알고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설교를 듣고도, 우리 눈앞에서 맞아죽고 분신한 대학생들의 의거를 보고서도 우리는 당당하게 표를 찍었다. 혹시 하느님께 받을 우리 심판을 찍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이... 군인이 좋아서, 전라도가 싫어서, 무엇보다도 내것 지켜주는 것이 고마와서 두 사람에게 내 투표로 공권을 맡겼었다.

[48회]
눈이 침침해서...

40대 후반을 넘기면 당장 나타나는 게 노안이다. 어느날 갑자기 눈이 침침해 지더니 신문 한 장을 보려고 해도 돋보기를 써야 한다. 바늘귀 끼는 일이 그렇게나 힘들어진다. 샛별같던 아내의 눈동자며 그이의 호수처럼 그윽하던 눈길은 까마득한 옛날이고, 흐리멍텅하고 벌게져가는 영감의 눈망울에다, 마누라 눈자위는 어찌 그리 질펀한지....
그래선지 주님 말씀이 새삼스럽다.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눈이 맑으면 당신의 온 몸이 밝고 당신의 눈이 흐리면 당신의 온 몸이 어두울 것입니다"(마태 6,22-23).
그렇다, 세상만사가 내 보기에 달렸다. 십자가 사형틀에 소름끼치는 송장이 매달렸는데, 신앙의 눈을 뜨면 구원의 깃발에 구세주께서 좌정하고 계시다. 얼굴만 보아도 밥알이 곤두서는 시어머니, 며느리도 사랑하려고 애쓰다 보면 내 구원을 손에 쥔 수호천사로 나타난다.
교회 공동체 가까이서 이런저런 봉사를 하다보면 상처받는 일이 간혹 있다. 그때마다 "내가 주님께 아낌없이 해드린 일들"이 계산에 떠오르는가 하면, "내가 뭐 아쉬워서..."라는 오만도 되살아난다. 겸손한 신앙, 만사를 공동체의 친교라는 관점에서 판단하고 언행하자면 오랜 인내와 신앙의 성숙을 기다려야 하리라. 우리가 시간과 재물과 정열을 교회에 바치고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루가 17,10)라고 고백하는 경지를
우리는 침침한 눈으로 희끄무레하게 내다보면서 살아갈 따름이다.

[49회]
누.네.띠.네

성당은 영화관이 아닙니다. 어둑컴컴한 극장에 옆에 누가 앉아있든 무슨 상관인가요? 스크린의 희비극과 스펙타클을 보며 울다가 웃다가 스트레스 풀고나오면 되지요. 자매님은 미사 중에 옆에 앉은 교우를 아시는지요? 제단위의 황금 성반에 담긴 하이얀 밀떡이야 지성으로 우러러 보시겠지만, 곁에 앉은 할머니의 누르끼리하게 병든 얼굴도 눈에 띠던가요? 어디 사는 누구고, 본명이 뭔지는 아시나요? <평화의 인사>를 할 때면 그 교우의 얼굴을 똑바로나 바라보시는지요?
성당에 오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한 몸"이라고도 가르치는데 미사 와서 옆사람이 안중에 없다면, 지매님은 성체라는 보약(補藥) 자숫고 혼자서 천당갈 일념뿐인가 봅니다. "나도 사람을 사귀고는 싶은데 성당은 워낙 쌀쌀맞은 데라서...."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당신부님께서는 "우리 좀 터놓고 사시다!"라는 사목지침에서 올해 <본당의 날>을 성대하게 치루기로 하셨답니다. 하루 반짝 행사가 아니라 나흘씩이나 하는 축제랍니다. <하느님과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이라는 아름다운 표어로, 사람 좀 사귀자고, 친교(親交) 좀 나누라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본당을 만들자고 이 축제를 마련하신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구하시지 않고, 한 가족, 한 본당, 한 나라로 구하신답니다. 우리는 천당에 들어갈 특석입장권 한 장을 사겠다고 줄을 서지만, 하느님은 가족으로, 반상회로, 본당으로 천국에 단체입장을 시키신답니다.

[50회]
박해자의 후손들

오늘은 영광스러운 103위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가운데 혹시 박해자들의 후손 계십니까? 이조 왕족의 후예, 박해를 주도한 재상들의 후손, 포도청 관리나 포졸들의 자손은 없읍니까? 물론 우리는 지금 천주교신자가 되어 있으니까 순교자의 후손이지 박해자의 후손은 아닙니다.
과연 대원군 박해 시대에 선량한 백성들은 우리의 순교선열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상감마마의 뜻을 어기고 서학을 믿는 대역죄인들, 서양 오랑캐의 패거리,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사르는 불효막심한 패덕자들, 한 마디로 죽일 놈들이 죄값으로 죽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 그들을 성인으로 받들고 순교지를 순례하고 그들의 이름에서 세례명을 붙입니다.
토마스 안중근 형제가 민족적 거사를 하였을 적에, 그런 살인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고 우겼고 최후의 고백성사마저 거절한 경성천주교(서울교구)가 80여년만에 그를 추도하는 미사를 올렸고 추기경님은 그를 의로운 신앙인의 귀감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입조심을 해야 합니다.
빈민운동, 노동운동, 민주운동을 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은 우리한테 비웃음 받아왔고, 전교조 선생님들을 교회 학교들이 먼저 쫓아냈으며, 침묵의 교회를 찾아간 사제와 교우들(문규현, 서경원, 임수경)은 옥살이를 했습니다. 순교성인들과 안중근 의사처럼 이 사람들이 몇해 후에 교회의 순교자요 민족의 의인으로 받들어질 때에, 여지껏 그들을 욕해온 우리는 어찌되겠습니까?

[51회]
극장식 스탠드빠

노래방이 생기기 전에 어지간히 많던 것이 극장식 스탠드빠였다. 추기경님과 우리 본당신부님이 <소공동체운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아마 지금도, 우리 성당은 극장식 교회였다. 신부님이 복사들을 데리고 제단에서 열심히 미사를 공연(?)하시면 우리들은 거룩한 열심으로 구경해왔다. 미사가 끝나면 부리나케 성당을 빠져나갔다. 치성은 드렸고 복은 받아놨으니까 아쉬울 게 없다는듯이...
새로 이사온 교우도 아니면서 성당에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신자, 일찌기 반상회에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사람, 본당신부님 성함이며 본당 살림이 어찌되는지 무관심한 교우, "주일미사는 나가고 교무금은 낼 테니까 더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사는 교우는 극장식 스탠드빠 성당이 편할 게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대답하셨다. "교회는 친교입니다." 서로 사귀는 것이다. 하느님과 사귀고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다. 사귐이 없는 성당, 사람들을 모르고 지내는 냉랭한 성당은 (천당가는 열차표 끊는 대합실이지) 교회가 아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 혼자서 천당가면 된다는 생각은 형편없는 착각이다. 지난 주 얘기대로,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구하시지 않고, 한 가족, 한 본당, 한 나라로 구하신다. 우리는 천당에 들어갈 특석입장권 한 장을 사겠다고 줄을 서지만, 하느님은 가족으로, 반상회로, 본당으로 천국에 단체입장을 시키신다." 교회는 개인입장권을 팔지 않는다!

[52회]
십자가의 비밀

<김 아무개, 청와대를 사칭하여 대기업 회장에게서 100억원을 갈취하다!>
달포전에 이런 신문기사가 났었다. 청와대 연줄만 있다면 눈딱감고 몇 억, 몇 십억을 갖다 바치는 것은 예사였다. 영수증도 현금보관증도 각서도 없이....
성당, 교회, 불당, 점보는집, 굿하는 집을 찾는 사람들 마음은 한결같다. 하느님, 하나님, 부처님, 성황님, 맥아더귀신... 이름이야 어떻든 하늘에 있는 분과 통하고 싶어 한다. 영험있는 무당한테 복채 두둑히 바치면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하여 부귀다남하고 장수출세한단다.
그런데 예수님 가르침은 정반대였다. 쉽게 말하자면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당신 아내나 남편과 화해하지 못하면 하느님과 화해는 없소! 시어머니, 며느리를 봐주지 못하면 하느님 섬긴다는 말은 헛것이오! 직장에서 성실하게 살지 못하면 성당 가서 벼라별 정성을 들여도 소용없소! 눈에 보이는 가난뱅이를 못 본체 하면 하느님 사랑한다는 말 거짓말이오!"
<본당의 날>은 교회가 곧 친교, 사귐임을 깨우치는 날이다. 금주간에 거행되는 우리 본당의 날 행사는 <하느님과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 이라는 표어를 내세운다. 십자가는 통나무 두 개로 되어 있다. 땅에서 하늘로 솟은 나무와 좌우로 뻗은 횡목으로 되어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느님께, 그리스도께 가까이가게 된다. 십자가 기둥처럼 높이높이 솟는다. 교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사귀고 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간다. 통나무 횡목처럼 사랑의 폭이
넓어진다. 다만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그냥 통나무다. 구원은 통나무에서 오지 않고 십자가에서 온다.

[53회]
모래사장의 할머니

<다섯 식구가 해변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백사장에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자그마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머리카락은 잿빛이었고 옷은 더럽고 남루했다. 할머니는 백사장에서 무엇인가를 연신 주어 가방에 담는 것이었다. 부모는 놀고있던 아이들을 급히 불러 그 늙은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타일렀다.... 며칠 뒤 그 부모는 할머니가 아이들의 발이 상하지 않게 해변 모래밭에서 깨진 유리조각을 줍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하는 노인임을 알게 되었다.>
(안토니 드 멜로, <맷돌>에서 [출판사: 타임기획])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씀은 하느님이 태초의 벽두에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사람의 삶도, 선익도, 행복도 혼자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
1905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부합하게 각 사람의 선은 필히 공동선과 결부된다. 그리고 공동선은 인간 개인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달리 규정할 수 없다. 외따로 살지 말고, 벌써 의화된 것으로 확인받기나 한 것처럼 자기 생각에만 잠겨서 살지 마시오. 그대신 함께 모여서 모든 이의 선에 도움이 될 것을 찾도록 하시오.
그렇다면 유식한 사람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공동선(共同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좀 어렵지만 교회는 이렇게 가르친다.
1906 공동선이라고 하면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보다 완전하고 보다 용이하게 자기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생활상 여러가지 조건들의 총체를 말한다."

[54회]
구역반의 아낙네들

덕성 여대 운동장을 우리네 친교로 가득 메우던 지난 주일, 우리 눈에 새삼스럽던 진실이 하나 있다. 신앙은 설혹 남성이 전파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존하는 것은 분명 여성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두레상을 차리며 울긋불긋 한복을 바쳐입고 또아리에 음식바구니와 술독을 이고 춤추며 들어오던 아낙네들, 가장행렬을 주도하며 여복으로 남장으로 줄지어가던 부인네들, 춤사위 흥겨울 제 노소를 막론하고 흥겹게 어우러지던 여인네들....
우리 자매들의 저 발랄한 정열과 솜씨와 재능을 어쩌다 교회는 하얀 미사수건으로 꼭꼭 뒤덮고 새까만 머리수건으로 가려두고 말았을까? 스무명에 가까운 본당 사목위원중에 자매가 겨우 두 분이요, 지금 교황님은 어째서 죽어도 여자에게는 사제 서품을 안 주시겠다고 우기실까?
1907 공동선은 인격을 인격으로서 존중함을 전제한다. 공동선의 이름으로, 공권력은 인간의 기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사회는 구성원 각자가 자기 소명을 이룩하도록 허용할 본분이 있다.
1908 공권은 각 사람이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에 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니, 음식과 의복, 건강, 일, 교육과 문화, 적절한 정보, 가정을 이룰 권리 등이다.
군더더기 한 마디 : 남편이 아직 입교를 않거나 냉담중이라 서러워들 마시오. 자매님 끈질긴 열심과 기도는 그이에게 "우리 마누라의 하느님"을 뵈드릴 날 있을 테고, 아무렴 그이에게 설마 막차표라도 못 끊어주겠소?

[55회]
<페리호는 거대한 관(棺)이었다!>

페리호 침몰로 인하여 한국 해운사상 두번째 큰 참사가 빚어졌다. 시신이 인양된 사망자만도 270여명이 되는 저 비참한 사고를 두고 천주교 믿는 우리 교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뭣 하러 집에나 있지 혼자 놀러갔다가 참변을 당해 처자식 과부 고아로 만들랬나?"(= 죽어서 싸다!). "쯧쯧, 되게 재수없는 사람들이지... 수십년 바다 낚시를 다녀도 나처럼 풍랑 한번 안 만난 사람도 있다구..."( = 난 살았다!). "당신도 배 가지고 있어봐. 170명 정원대로 태운다면 당신들 굶어 죽는다구. 머릿 수가 돈이야 돈!"(= 돈이 하느님이야!). "어쩔수없어. 당신도 항만청에 있어봐. 돈먹고 눈감아 주지 않을 사람 없다구. 우리나라 여객선 다 그렇구 그
렇다구"(직장은 직장이구 신앙은 신앙이라구!). "철도에서, 비행기에서, 배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났으니 이제 지하철에서 일어날 것이다"(= 하느님, 떼죽음 구경이 최곱니다!).
방금 꼬집은 우리의 속말 그대로들 한다면, 저 엄청난 참사가 죽은 사람 죄값이거나 재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 쉽게 말해서 하느님 뜻이다.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돈욕심과 사회부정이 저지른 참극을 염치없이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는 손을 턴다(이럴 때는 "하느님 뜻"이라고 하는 말이나 "하느님 탓"이라고 하는 소리나 똑같다).
페리호에 탄 300명을 죽인 사람들은 선주나 선장이나 항만청 직원들만 아니다. 난폭운전, 음주운전을 무슨 자랑처럼 떠벌이는 우리 자신을 볼 때에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페리호가 들어있음을 느낀다.

[56회]
동해를 똥해로 만들다 보면

성당 주보에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우스개 한 토막 : <한밤 중 조종사가 승객들에게 방송을 하였다. "지금 우리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위기를 구해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승객들은 조종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보다 정확하게 알고자 사제에게 갔다. 그러자 사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종사의 말은, 희망이 없다는 소리오."> (드 멜로, [맷돌]에서)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져 이민갈 별을 찾는다면서, 언젠가 지구가 전쟁과 공해로 사람 못살 땅이 된다면 도망갈 별을 찾는다면서 달나라로 화성으로 그 비싼 우주선을 쏘아올릴 무렵, 어느 과학자가 계산을 했단다. 지름이 20억 광년쯤 된다는 우주 어느 구석에라도 지구처럼 생물이 살만한 별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계산을 뽑아보았단다. 그런 별이 한 개라도 있을 확률은 10-14라는 숫자가 나왔다. 아예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하나뿐인 지구>를 너나없이 가꾸고 지켜야만 한다. 서울시민은 한강을 통해 똥물과 공장 폐수를 황해로 흘려보내고, 러시아와 일본은 원자력발전소 폐기물을 동해에 갖다 버리다 보면 우리 손자쯤에 가서는 태평양이 방사선에 오염되어 멸치 한 마리 못 먹는 날이 올 것이다.
1911 인간의 상호 의존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 결속은 점차적으로 전지구상으로 확대한다. 인류 가족이 그 구성원들의 타고난 존엄성을 평등하게 향유하며 한데 결속하기 위해서는 또한 보편적 공동선을 전제한다. 여기서 국제적인 공동체가 결성될 필요가 있다. 국제 공동체는... 지역 분쟁같은 특수 상황 속에서는... 난민들의 구조, 혹은 이민들과 그 가족들에게 대한 원조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57회]
교무금 납부증명서

11월쯤이면 월급쟁이들 연말정산이 한창이다. 정산을 잘하면 상당액수(공돈?)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인네들은 본당 사무실에도 교무금 납부 증명서를 떼러 온다. 하느님께 세금을 환불받는 증명서도 있어서 소개한다.
일제시대 예수님을 못 잡아먹어 이를 갈던 사람들은 주민세 자진납부기간을 틈타서 올가미를 쳤다. 일본순사들을 동행하고서는 예수님을 찾아왔다. "선생님은 사람 얼굴 안봐주시더구만요. 그럼, 에, 일본 천황폐하께 주민세를 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세금 내라면 친일파로 찍히고 내지 말라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제깍 수갑이 채워질 신세다.) "주민세 내는 동전 한닢 내놔봐요. 여기 누구의 모상이 새겨져 있지요?" "대일본 천황폐하의 모상올시다." "그럼
천황의 모상은 천황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모상은 하느님께 돌리시오!"
신한국, 수령동지, 옐친, 클린턴, 성당, 사찰, 교회당... 다 좋다. 거기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이, 더군다나 힘없고 돈없는 자들이 사람대접받고 살만한가? 그곳은 하느님 나라다! 가난뱅이 얼씬거리지 못하는가? 맘몬의 나라다! 결국 사람을 사람대접하면 하느님께 영원한 생명을 환급받을 것이니 참 좋다.
1929 사회 정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초월적인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의 궁극 목적이며, 사회가 지향하는 바도 곧 인간이다. 인간존엄성의 수호와 촉진을 창조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셨다. 이 존엄성에 관하여,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도 남녀 인간은 창조주께 엄정하게 책임을 진다.

[58회]
죽은 이를 사랑하는 계절

노란 이파리마저 거의 벗어버린 가로수들이, 쌀쌀해지는 요즘 날씨와 더불어, 우리에게 따스하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해주는 계절이다. 한 해의 자투리처럼 대접받는 이 11월에 교회는 우리더러 사랑하던 사람들, 눈 앞에서 사라지면서 마음에서 지워져가는 이들을 다시 한번 사랑하라고 일깨워준다. 그네들의 다정하던 이름을 입술에 떠올려 보라고, 그 사랑스럽고도 파리하던 얼굴을 허공에 그려보라고, 그들이 꺄르르 웃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속삭이거나 울부짓던 음성을 기억해 보라고, 그리고 저녁이면 짧은 기도를, 힘닿으면 위령미사 한번쯤 바치라고 충고한다.
우리 인간적 노력이 다할 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 하느님의 크고 든든한 손에 맡겨 보내노라는 믿음이야 없지 않았지만 그이들은 그다지도 가난하고 한스럽던 이승, 병상의 그 혹독한 고통으로부터 풀려나 지금은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 우리는 영원(永遠)이 무엇인지 불멸(不滅)이 무엇인지 감잡는다.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이 한 달이나마 고요한 시간이면 하느님 안에서 말을 걸고 귀기울여 본다.
그리고 혹시 우리 양심의 무덤에 묻혀있는 생명들, 이유야 어떻든 "지워달라!"는 한 마디 주문에 의사의 손으로 살해당한 생명들, 여태까지 잊혀지지 않는(무슨 수로 잊는단 말인가?) 단 한번의 생명을 영원히 앗겨버린 아기(감히 아기라 부를 자격이 있을까?)에게는 용서를 빌어야겠다, 아직 용서를 빌지 않았다면. 그리고 생전에 내가 사랑을 거절한 이들, 다정한 한 마디, 따뜻한 미소, 도움의 손길을 거절했던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품는다. 하느님의 품
에 안겨 있는만큼 그들도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리라, 연민과 용서의 시선으로.

[59회]
왕중왕의 판결문

교회달력으로 한 해가 끝나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나자렛 사람 예수를 우리가 왕중왕(王中王)으로 떠받드는 하루가 오늘이다. 그리고 한 두 주일 전후해서 이 왕이 인류역사의 종말에 집행하실 공심판을 예고하신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인류의 맨꼴찌로 태어나거나 임신해 있을 아기까지 전부 두 줄로 갈라 세우고 심판을 하시고 판결문을 낭독하신단다. 그 판결문이 그 판사의 입으로 미리 공표되었으므로, 우리로서는 미리 대처하기가 무척 쉬워졌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하도 여러번 들어서 줄줄 외우는 구절이다.
"에이, 요컨데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이겠죠. 남한테 잘 하라는 뜻이겠죠. 실천이야 별도 문제고요.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다 실행합니까?" 글쎄다. 원칙에서 그친다면 우리 모두가 편하겠는데, 만에 하나라도 저 두려운 날, 글자 그대로 집행하신다면 어찌할까나, 어찌할까나. 이천년전 미리 하신 말씀이라서 몰랐다고 발뺌을 할 길도 없고, 교회의 사회교리도 그리 가르쳤고....
1932 다른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고 적극적으로 타인들에게 봉사하는 일은, 타인들이 어느 모로든 각별히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에는 더욱 급박하다.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해 설명해놓은 글모음입니다.

하느님과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

하느님과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
기독교 에서 신봉하는 유일신을 로마가톨릭교(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 개신교의 세력이 가톨릭교의 세력보다 더 큰 터라,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하느님'을 점차 밀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말할 나위 없이 둘 가운데 옳은 말은 '하느님'이다. 개신교 쪽에서 '하나님'을 고집하며 내세우는 가장 큰 커다란 논거는 그들의 신이 유일신, 곧 하나밖에 없는 신이어서, 우리말의 수사 '하나'에 존칭접미사 '님'을 덧붙여 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하나' '둘' '셋'같은 수사가 존칭접미사 '님'을 덧붙여 이 유일신을 존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하나' '둘' '셋'같은 수사가 존칭접미사 '님'과 어울리는 것이 아주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은 이들에게 별로 먹혀들지 않는다. 사실 '하나밖에 없는 분'이어서 '하나님'이라는 해석은, 독실한 신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마땅히 '하느님'이 되셔야 할 분이 '하나님'이 된 것은, 우리말 모음체계에서 '아래 아' 곧 '.'가 불안정해지며 빚어진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19세기말에 영국 선교사 존 로스와 존 메킨타이어가 한국의 신자들의 도움으로 누가 복음을 번역해 펴낸 '예수셩교 누가복음 전서'(1882년)에는 '하느님'이라는 형태와 '하나님'이라는 형태가 동시에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형태가 개신교 쪽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하나밖에 없는 분'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 해석은 뒷사람들의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자들 자신이 그런 뜻으로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셩교 누가복음전서'에 나오는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그 이전 형태는' 하느님'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은 '하늘'이 옛 형태인 '하늘'에 '님'이 붙으며 ㄹ이 탈락한 형태다. 마치 현대어에서 ‘아들’과 ‘딸’에 님’이 ㄹ이 탈락해서 ‘아드님’‘따님’이 되듯, 말하자면 '하느님'은 "하늘 님"의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느님'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외국 선교사들이나 초창기 개신교 신자들은 그들이 번역어로서 '하나님'을 사용할 때조차도 '하늘+님'을 생각했던 것이지, 오늘날의 개신교 신자들처럼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래 아'가 소실되면서 두 번째 음절의 '아래 아'는 아들로 번역하듯 '-'모음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방언에 따라서는 그것이 일정치 않았고, 또 '아래 아'가 상당기간 ' ㅏ'와 '-'사이에서 동요하기도 했다.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서>의 '하나님'은 그 방언의 흔적 또는 흔들림의 흔적일 뿐이다.

  이 '하나님' 또는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기독교'라는 말도 흔히 잘못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의 종교는 천주교이고, 이희호씨의 종교는 기독교'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천주교 역시 기독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실상 언론매체에서 조차 점차로 '기독교'는 '개신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基督)'이 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중국사람들이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므로, 기독교는 '그리스도교', '예수교' '야소교(耶蘇敎; 耶蘇는 ‘예수’를 중국인들이 한자로 음역한 것)'와 같은 뜻이고, 그것은 영어의 '크리스채니티'나 이탈리아 말의 '크리스티아네지모'에 해당하는 말이다. '기독교'를 뜻하는 영어의 '크리스채니티'나 이탈리아 말의 '크리스티아네지모' 역시 우리말의 '기독교'처럼 '그리스도'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그 서양말들은 단순히 개신교만이 아니라 신구교를 가릴 것 없이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구세주로 받드는 모든 종파를 가리킨다. 당연한 일이다. 그 말들의 뜻이 '그리스도의 종교'니까.

또 다른 근거로는 유몽인(柳夢寅)의 저서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구라파국은 방언으로 대서(大西)가 있으니 기린단(伎利壇)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기린단은 곧 그리스찬의 한자 표기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가장 먼저 전래된 기독교 교파는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였고, 그래서 예컨대 17세기나 18세기에 살던 우리 조상들이 '야소교'라고 부른 것은 개신교의 어떤 교파가 아니라 천주교였다.

  기독, 곧 그리스도는 로마 가톨릭 교도든 정교회 신자든 개신교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로서 영접하는 분이다. 그 '그리스도(기독)를 영접하는 종교'라는 의미의 '기독교'라는 말이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관행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독특한 관행이다.

에세이스트 -고종석- (1998년11월17일 한겨레신문 "창"에서 발췌)

가톨릭과 개신교

가톨릭과 개신교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형제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비록 가톨릭교회, 동방교회, 개신교(성공회 포함)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주님이요 구 세주로 고백한다는 점에서 한 형제, 한 가족이다. 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성서를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방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 교리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등을 인정하지 않고 전례나 전통적 관습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 신교는 가톨릭교회와 달리 근본적인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계시의 원천에 관한 것으로, 가톨릭교회는 성서와 함께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전통(성전)을 계시의 원천으로 포함시키지만, 개신교는 성서만을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한다. 개신교에서 교황의 수위권이나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구원에 관한 것으로, 가톨릭교회는 믿음과 함께 올바른 행실이 따 라야만 구원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데 비해 개신교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죽 음 이후에 관해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천당 연옥 지옥에 관한 전통적인 가톨릭의 가르침과 달리 개신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세상 종말의 부활 교리만이 강조된다. 그래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이라든가 연옥에서 단련받는 영혼들에 대한 사상이 개신교에서는 별로 없다. 개신교에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나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교회와 가깝다. 근본적인 차 이점은 성공회는 교황의 교도권과 통치를 부정하는 면에서 개신교이지만, 성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가톨릭교회와 가깝다. 또한 성공회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교회의 성사를 인정한다.

1. 그리스도교의 타교파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경우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동 방교회와 성공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인 면에서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이들의 세례를 인정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경우, 그 세례가 합당한 방식에 의해 이뤄진 유효한 것이 라면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입교예식서에 규정된 '일치예식'만 하면 된 다.(교회법 제869조 2항,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58조, 제62조)

그 러나 그 외의 개신교 교파에서 세례를 받은 경우는 그 유효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면 예비자 교리를 거쳐 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개신교에서도 세례는 베풀지만 세례성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올바로 집전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 59-60조)

2. 가톨릭신자가 다른 교회에서 영성체 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가톨릭신자는 가톨릭교회의 교역자(사제)에게서만 성사를 받아야 적법하다.(교회법 844조 1항, 923조)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은 동방교회나 개신교 (성공회 포함)에서 영성체 할 수 없다.

그 러나 아주 예외적인 경우, 예를 들면 가톨릭 교역자에게 가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참으로 영적 유익이 있을 때 그리고 오류의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한해 고해와 성체 및 병자성사를 유효하게 보존하는 교회의 비가톨릭 교역자들에게 성사를 받을 수는 있다.(교회법 844조 2항) 그러나 이 규정이 개인의 편의를 위해 오용되면 안 된다.

3. 동방교회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서 성사를 받을 수 있는가?

가 톨릭교회는 동방교회 신자들의 경우 가톨릭의 성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온전한 친교가 없는 동방교회의 신자들이라도 고해와 성체 및 병자 성사를 자진해서 청하고 또 올바로 준비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이들에게 성사를 허락할 수 있다.(교회법 844조 3항)

4. 개신교에도 성체성사가 있는가?

가톨릭교회는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한 다. 그리고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는 '실체변화'를 교의적으로 믿고 고백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체조배와 성체거동과 같이 성체를 공경하는 다양한 신심행사를 한다.

그 러나 개신교는 성체성사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이해를 가톨릭과 달리한다. 부활절과 같은 주요시기에 예수의 최후만찬을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로 성찬예식을 기념하긴 하지만 실제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평화신문 박주병 기자]

천주교,기독교,예수교

천주교,기독교,예수교
예수교인가, 천주교인가?

우리 나라에서 그리스도교를 나타낼 때 천주교·예수교·기독교 등 여러 이름들이 쓰이고 있다. 이 이름들에는 어떠한 뜻이 담겨있고, 왜 우리 신앙을 주로 천주교라는 낱말로 부르게 되었는가? 우리 교회사에서는 천주교라는 낱말말고 다른 칭호는 없었는가?

1.천주와 천주교
종교신앙 이 전파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신앙이든지 현지 문화의 그릇 속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현지의 종교문화적 요소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과 합치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16세기 동양에 진출한 예수회의 선교론이었던 보유론(補儒論)이다.
보유론은 그리스도교와 동양사회의 유교가 서로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통한 면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유교의 신관에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적 교리가 보충될 때 동양의 유교문화는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그 런데 16세기 당시 동아시아 삼국의 보편적인 신앙의 대상은 ‘하늘’〔天〕이었다. 선교사들은 이 ‘하늘’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상징성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유론적 입장에서 이 낱말이 그리스도교의 신인 데우스(Deus)와 동일하게 견주어진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들은 신앙의 대상인 데우스, 곧 하느님을 한자어로 옮기려고 고심했다. 그 결과 선교 초기에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로 천제(天帝), 천존(天尊), 천리(天理), 천명(天命), 천운(天運), 천도(天道) 등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천주(天主), 천(天), 상제(上帝), 상주(上主) 등과 같은 낱말도 함께 나타났다. 이 가운데 ‘천주’라는 말마디가 점차 널리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천주라는 한자어를 처음으로 창안해 낸 이는 일본에서 선교하던 발리냐노(1539`-1606년) 신부였다. 그는 중국에서 유교적 적응주의 선교를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던 마테오 리치(1552-1610년)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발리냐노가 일본에서 개발했던 ‘천주’라는 낱말로 그리스도교의 신앙 대상을 번역하기로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양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에게 큰 이질감이나 거부감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 대상이 ‘천주’로 번역됨에 따라서, ‘천주교’라는 명칭도 나타나게 되었다. 천주교의 천주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신앙 대상이었던 ‘천(天)’과 그리스도교의 데우스 개념이 한데 어우러져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수용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텍스트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창조적으로 재해석되어 갔다.

2.천주교란 낱말의 수용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앙은 이웃 나라에서 간행된 한문 서적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곧, 17세기 초에 우리 나라에 천주교의 존재를 알려준 유몽인(1559-1623년)의 경우에는 기리단(伎利檀)이란 새로운 종교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천주교를 가리키는 일본어 기리시당[切利支丹]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그는 일본 경로를 통해서도 천주교에 관한 정보를 얻어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마테오 리치가 지어 1603년에 중국에서 간행했던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조선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중국에서는 천주교 신앙을 포함하여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일으킨 학문을 서학(西學)이라 불렀다. 사변적 경향이 강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학의 알맹이가 천주학(天主學)에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박해시대에 천주학이란 낱말에서 ‘천주학쟁이’라는 낮춤말도 나타났다. 천주학쟁이라는 낱말은 1880년에 간행된 「한불자전」(韓佛字典)에 수록되었다. 이를 보면,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주학이란 낱말이 보편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박해시대 조선사회에서는 천주학이란 말과 함께 ‘천주교’라는 낱말도 사용되었다. 천주교의 천주는 삼위일체적 개념으로서 성부·성자·성령을 포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3.예수학과 예수교에 대한 인식
한 국교회사의 초기 신자들도 하느님 아버지만을 공경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임을 고백했다. 한문 서학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 음이 비슷한 야소 기독(耶蘇基督, yesu-jidu)이라는 말로 옮겼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 또는 기독교로 부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한편, 한국 초기 교회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耶蘇敎〕로도 지칭하고 있었고, 예수학〔耶蘇學〕이란 낱말도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주문모 신부의 신문기록을 통해서 확실히 드러난다. 그는 ‘예수학’은 ‘그릇된 가르침’〔邪學〕이 결코 아님을 주장했다. 그는 ‘예수교’를 전하려고 국경을 넘어왔고, 예수를 공경하여 자기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교에서는 정결을 제일 중요시하고, 예수교의 십계에서는 나라에 대해 충성하기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예수의 초상을 걸고 미사를 집전했던 그는 신앙의 중심을 이처럼 예수님에게 두고 있었다.
또한, 당시 일반 신자들도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로 불렀던 경우가 많았다. 1801년에 순교한 장덕유는 서울의 남대문 밖 이문동에 살면서 망건 장사를 하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수교를 믿고 있다고 말했고, 예수는 교주라고 규정했다. 김경애와 같은 아녀자도 자신은 “예수를 위해서 죽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초기 천주교회에서 예수는 중요한 존재였고, 예수교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따르던 자신들을 ‘그리스당’이라고 불렀다. 이는 ‘크리스티안’(Christian)이란 낱말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그리스당’이란 낱말에서 마지막 음인 ‘당’은 무리를 뜻하는 ‘당’(黨)으로 연상되는 효과가 있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당’이라 부르면서 ‘그리스도당’ 내지는 ‘기독당’으로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쓰이던 예수교는 곧 천주교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리스당은 천주교도임을 자칭하던 용어였다. 그러나 점차 교회 안팎에서 ‘예수교’보다는 천주교라는 낱말이 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기독교도’라는 말 대신 ‘천주교 신자’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천주교라는 용어와 기독교 또는 예수교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곧,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뜻하는 말로, 그리고 기독교나 예수교는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를 뜻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일이다.
기독교라는 낱말에는 천주교와 동방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모두 포괄되는 개념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전통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예수교로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천주교가 기독교나 예수교라는 이 좋은 말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우리도 예수교도이고 기독교도이며 천주교도인 까닭이다.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천주교(가톨릭)이란?


천주교(가톨릭)이란?

1. 천주교의 유래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기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신속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천주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300여 년 가까이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 마침내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곧이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지난 이천 년 동안 서구 문화와 문명의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되어 왔으며, 학문과 예술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 왔습니다. 또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면서 세계 평화와 인류애 증진을 위하여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약 10억 명(1998년 말 통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 천주교의 한국 전래

천 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지금부터 200여 년 전입니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 사람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서학(西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귀국하자마자 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드디어 지금의 명동 성당 부근의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외국인 선교사가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한 일입니다.

3.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교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학파 학자들은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적과 함께 접하게 된 새로운 종교, 곧 천주교의 가르침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이며 자매라는 가르침은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라는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던 사회에서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4. 온갖 박해를 딛고 성장한 한국 천주교회

한 국 천주교회의 성장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유교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지배층은 천주교 신자들을 동양 윤리의 이단자이며,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 온갖 박해를 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네 번에 걸친 커다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교사 영입과 성직자 배출을 위하여 힘쓰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1845년 김대건(안드레아)이 중국 상하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조선인 사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는 귀국하여 일 년도 채 안 된 이듬해에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배교(背敎)하겠다.”라는 한 마디만 하면 단란했던 가정, 잃었던 명예와 가산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던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이미 103명은 전세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공경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5.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

오 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런 모습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교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은 370만 명(1998년 말 통계)이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북한 형제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6. 성당은 하느님의 집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고, 신자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도와 수련의 집으로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입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 신자들은 손에 성수(聖水)를 찍어 성호경을 바치면서, 생각과 행동이 오직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성당의 중심은 천주교의 공적 예배인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祭臺)입니다.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성당 안에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감실(龕室)은 신자들이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7.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미사를 비롯하여 천주교의 공식적인 경신례(敬神禮)를 전례(典禮)라고 합니다. 전례는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뜻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거룩하게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천주교의 대표적 전례인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신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한 형제를 이루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신자들은 주일(일요일)마다, 그리고 교회가 정한 특별한 날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시간을 정하여 여러 차례 미사를 드리는데, 신자들은 편리한 시간을 택하여 미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미사에서 신자들은 주님께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면서 주님을 대하기 위하여 일어서고, 편안하게 주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앉는데, 이는 우리의 생활 관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8. 교구와 본당

교 회 역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도(道) 단위 지방 자치 단체와도 같은 커다란 지역을 일컬어 교구(敎區)라고 부르는데, 이는 교황이 임명한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신자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행정 구역을 말합니다. 교구는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本堂)으로 나뉘는데, 주교들의 협조자인 신부들이 상주하며 신자들을 보살핍니다.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효과적인 신앙 생활을 돕기 위하여 가까운 이웃의 몇몇 가구가 모여 구성하는 작은 공동체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 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교구와 본당에 소속되어 신앙 생활을 합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앞에서 본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처럼,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형제적 사랑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에 나아가 선교 사명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본당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터전입니다. 본당에는 신자들의 신앙 생활 지도를 책임지고 있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전교 수녀와 사무실 직원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9. 예비신자

세례를 받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예비신자’라고 부릅니다. 예비신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존 신자들과 하나가 될 형제 자매들입니다. 예비신자들은 신자들이 누리는 영적 혜택들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공식 경신례인 미사에는 물론, 여러 가지 기도 모임과 소공동체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비신자의 장례 역시 세례 받은 신자와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예비신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신앙 문제에 대하여 상담할 수 있으며,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신부나 수녀에게 기도를 청할 수 있습니다.

10. 형제애로 보살펴 주는 교회 공동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 안에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천 주교 신자들은 거룩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본당과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여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면서 형제적 사랑을 나누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형제애는 굳건한 신앙 생활과 친교의 바탕이 됩니다. 예비신자들도 이러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교회 공동체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유전공학과 생명윤리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생명의 빛>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시작하면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는 우주에 있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인류의 미래는 유전자 안에 있다는 사고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유전공학의 세기로 전망하는 시각이 점점 더 확산되고있다.
이 러한 시각은 언론 매체들이 유전공학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공학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언론매체는 유전공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아니면 아주 피상적으로 다루고있다. 유전공학에 수반되는 위험성과 함정에 대해서는 별로 기사화하지 않고 있다. 유전공학자나 관련 업계의 주장을 보도하는데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지만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학문의 자유를 구속하고 간섭한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연구 자체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유전공학의 육성에 있다는 논리 앞에 우리는 지금 유전 공학이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유전 공학 기술이 가져올 피해를 규제하는 운동에 연대해서 대응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있다.
우 리 나라의 경우 유전 공학과 관련된 문제를 적절하게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규가 아직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입법을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생명 윤리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여 '생명 윤리 기본법' 초안을 마련하기는 했으나, 언제 입법으로 이어질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아직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유전자 조작 실험이나 연구가 무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세기는 희망과 기대로 충만해 있지만 반면에 우려도 늘어나고 있다. DNA, 유전자 조작과 치료, 생명 복제, 게놈 프로젝트 등 기존의 생명 문화와는 그 유형을 달리하는 생명 문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생명'이라는 화두가 다시금 회자되는 시대를 살고있다.
유전공학의 기술은 생명체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른바 '꿈의 기술'이다.
하 지만 유전공학의 기술을 소수 집단의 점유물로 방관해서는 안된다. 유전공학을 대중의 관심사로 만드는 것이 현시점에서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유전공학에 대해 공개적인 찬반 논의와 토론을 확산시켜야 한다. 토론과 논의의 과정에서 유전공학이 기정의 사실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이 드러나야 한다. 즉 유전공학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 또는 여론의 조성이 필요하다.
유전 공학을 둘러싼 공감대 형성과 여론의 조성에 이 글이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 속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유전 공학에 대한 이해와 유전 공학이 안고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유전공학의 기본 개념

모 든 생명체의 기본 단위는 세포이다. 인간의 신체는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세포는 세포핵을 가지고 있는데 세포핵에는 23쌍의 염색체가 들어있다. 이 염색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 이른바 DNA(Deoxyribo Nucleic Acid : 디옥시리보 핵산 : 단백질)로서 이중나선의 모양을 하고있다고 한다. 인간의 DNA(유전자)는 약 3만여 개에서 10만여 개로 추정되고 있으며, 약 30억개의 염기쌍(A4 용지 약 200만장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염기쌍은 4가지 염기, 즉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그리고 C(시토신)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4가지 염기 가운데 A는 T와 G는 C와 서로 화학적으로 결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A와 G 또는 T와 C는 결코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DNA 한 개의 길이는 약 1.5m에 이르고, 인간의 모든 DNA의 길이를 합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를 1000번 왕복하는 길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DNA에 이른바 유전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은 이러한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연구 인력을 투입하였다.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 위한 기초 프로젝트가 바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2000년 6월 26일에 초안의 형태로 발표되었고, 2001년 2월에 최종안이 발표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초안은 약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쌍의 서열 또는 배열을 밝히는 1단계 작업의 결과이다. 이 1단계 작업을 비유적으로 설명해보면, 200만장의 쪽 번호가 뒤섞여 있는 것을 순서대로 맞추는 작업에 해당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2단계 작업은 염기쌍의 서열의 기능을 밝히는 작업이다. 즉 2단계 작업은 이른바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작업이다. 유전자의 기능, 유전자끼리의 상호 작용, 유전자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작업이다. 다시 비유적으로 설명해 보면, 쪽 번호가 뒤섞여있는 200만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쪽 번호 순서대로 맞추고 난 후(1단계 작업), 각 쪽에 기록된 문장을 해독해서 순서대로 다시 기록하고 그 상호 관련성을 밝히는 작업이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유전공학의 세기 전망
인 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전공학 기술만큼 갑작스러운 기술적, 경제적 기회와 도전 그리고 위험을 가져온 기술은 없었다.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향후 약 25년 동안 우리의 삶은 과거 200년 동안 겪었던 변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유전공학이 유전자 단계에서 생명을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향후 25년 이내에 예상되는 변화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유전공학 회사, 연구 기관 또는 정부가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 기관, 조직뿐 아니라, 인간의 설계도를 구성하는 10만여 개의 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해독하고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미생물, 식물, 동물에 대해서도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삶의 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2) 세계의 농업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땅이나 흙을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옥외 농업 대신 저렴한 비용이 드는 옥내 농업이 발달할 것이다. 이는 옥내에 거대한 박테리아 탱크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조직을 배양함으로써 식량이나 섬유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 방식을 의미한다. 옥내 농업의 발달은 신석기 시대부터 20세기 후반, 이른바 녹색 혁명에 이르는 농업의 종말을 예고할 것이다. 옥내 농업으로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식량의 공급이 가능할 수 있으나 그 대신 농민들의 생활 기반이 뿌리째 뽑히는 사회적 격변이 예상된다.
3)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의 치료, 그리고 대체 연료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이익과 상업적 목적을 위해 새로운 유전자 이식, 박테리아, 바이러스, 식물, 동물들이 지구 생태계에 방출될 것이다. 이러한 방출은 지구 생물권의 불안정을 초래하거나 심지어는 매우 치명적인 유전자 오염을 확산시킴으로써 지구의 생물권 또는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4) 유전공학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지구와 지구 안에 살고있는 생명체를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오늘 날 핵무기가 지구와 인류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미래에는 유전공학 기술로 생산되는 생물 병원균(세균)이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다.
5) 성에 의한 생식을 대체하는 복제가 가능하여 동물이나 인간의 복제가 일상화될 것이다.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여 화학 약품이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다. 아울러 인간과 동물을 혼합한 잡종 키메라(반인반수)의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키메라는 실험 대상이나 장기 제공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 이식 또는 조작으로 동물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과 야생 세계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다. 그 대신 이른바 새로운 생물산업 시대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이다.
6) 시험관 속에서 난자를 수정한 후 인체 밖에 있는 인공 자궁을 이용하여 태아를 출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임신과 출산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정란, 인간 배아, 자궁의 태아 등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질병과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거나 기질, 행동, 지능 또는 신체적 특징(머리카락 색, 피부 색, 눈동자 색, 얼굴 생김새, 키 등등)을 미리 디자인하는 맞춤 인간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부모의 주문에 따라 맞추어진 아이들의 생산이 가능함으로써 이른바 우생 문명 그리고 유전자 차별이 출현할 것이다.
7)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상세하게 알게되고 자신의 생물학적 장래까지 미리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알게됨으로써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고용주, 보험회사 그리고 정부 기관이 교육 방식, 채용 여부, 보험료 납부와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이용될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인종 차별도 출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성이나 평등의 개념이 바뀔 것이고, 개인, 인종, 민족이 유전자형에 따라 유형화되고 고정됨으로써 유전자형에 따른 계급 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계급 제도의 출현이 발생할 것이다.
8) 유전공학 기술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적용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의식, 문명의 장래 그리고 생물권 자체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결과 유전 공학이 제공하는 편익에 사로잡혀 그 위험을 심사숙고하는 데에는 냉담할 것이다.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해독, 관리하고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될 것이다. 유전공학과 컴퓨터공학이 지난 40년 이상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이제는 기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그래서 '생물 정보학' 또는 '생물 데이타 은행' 등의 새로운 분야가 창출되고 있다. 유전공학은 생물 데이타 은행에 있는 풍부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여 자연 세계를 조작하거나 아니면 개조할 수 있다. 유전공학과 컴퓨터의 결합은 세계 역사상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산업시대의 경제가 마감되고 새로운 경제시대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이 전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유전공학의 틀
21 세기를 유전공학의 시대로 예측하는 시각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20세기를 산업화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산업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는 물리학과 화학의 시대였다. 다시 말해서 원자와 전자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생산하였고 새로운 합성 물질을 만들었다. 20세기는 원자와 전자로 짜여진 경제 패러다임의 시대였다. 원자와 전자에 의존하는 경제 패러다임은 한계에 직면하고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있고, 21세기는 유전자로 짜여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유전공학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틀을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고자한다.
1) 특정한 경제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을 위해 유전자를 분류, 분리, 이동, 삽입, 재조합 그 리고 조작한다.
2) 유전자에 대한 특허뿐 아니라 유전자 분리, 조합, 조작에 의한 조직, 유기체에 대한 특허 가 부여되고, 이 특허 부여는 상업적 동기를 유발하여 새로운 자원의 이용을 촉발시킬 것이다.
3)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조작한 식물과 동물을 생물 산업 활동의 일환으로 지구 생물권에 방출한다. 통상과 무역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전세계적인 대규모 방출이 가능하다.
4) 약 10만여 개의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지도의 작성 - 2000년 6월 26일 유전자 지도 초 안 발표 - 유전자 검사, DNA 칩, 유전자 치료, 인간의 난자와 정자, 배세포에 대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등장한다. 이러한 조작 기술은 인종 개조와 상업적인 목적으로 추진되는 우생 문명의 출현을 가능케 할 것이다.
5) 유전자에 기초한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새로운 사회생물학이 등 장한다. 새로운 사회생물학은 후천성 이론(환경, 교육) 보다는 선천성 이론(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음)을 선호함으로써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을 광범위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간략하게 짚어 본 유전공학을 위한 다섯 가지 틀은 세계를 근원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다섯 가지 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섯 가지 틀은 각기 나름대로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점도 안고있다.
1) 유전자 분리, 재조합, 조작
이 기반은 이미 1950년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염색체와 유전자를 찾아내고 식별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유전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의료 유전학'이 등장하였다.
1968년: 염색체를 식별하는 과정을 발명하여 유전자 지도 작성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1973년: 약 50여 개의 유전자 지도 작성
1986년: 약 1500여 개의 유전자 지도 작성
1987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추진 제안
1988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사업 추진
2000년 6월 26일: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초안 발표
2001년 2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성
현 재 동식물은 물론 인간에 대한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른 바 데이터 은행에 축적하고 있다. 그 결과 유전자의 분리, 분류, 이동, 저장 기술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가운데에서 유전자 재조합, 즉 조작 기술이 가장 발전해 왔다. 유전자 조작은 일종의 생물학적 재봉틀에 비교된다. 이 기술은 유전공학과 관련된 기술 중 가장 극적인 기술 수단이다.
인류는 수 천년 동안 유용한 물건이나 도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생물을 융해시키고, 용접하고, 두들기고, 태우는 일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기술을 통해 경제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물을 잘라내고, 재조합하고, 삽입하고, 봉합할 수 있게되었다.
20세기는 물리학과 화학의 세기였으나,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 분명하고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은 모든 분야에 이미 실질적으로 적용되어 세계를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개조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단지 정보 제공의 차원에서 의학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 개조의 시도에 대해서 지적해 보고자한다. 우선 질병을 치료한다는 수단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 약품이 개발되고 있다. 인간의 피부, 신체 각 부위, 장기, 인공 자궁 등에 대한 제작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으며, 2020년 까지는 인간 인체의 약 55%가 실험실에서 배양된 장기로 대체될 전망이며, 이는 이른 바 '장기의 세트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전자 질병 검색과 치료를 위한 정보를 담은 이른 바 유전자 칩도 등장할 것이고,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어 아기를 생산하는 이른 바 '맞춤 인간' 또는 '주문 인간'의 시대가 등장할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복제의 가능성도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인류가 기대어 살아 온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바뀌고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비상한 능력과 가능성에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고있다. 유전 공학자, 유전공학 관련 회사와 업계의 대표들은 유전공학 기술이 가져다 줄 장점과 이익에 대해 열광적으로 선전하고있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이 모든 새로운 기술 혁명은 이익과 그에 따른 대가 모두를 가져온다.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은 결국 생물을 떠받치고있는 생태계와 사회 시스템의 파괴와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그 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참으로 유전공학 기술이 초래할 위험은 없을 것인가'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술은 참으로 인류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꿈의 기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2) 생물 특허- 유전자 특허
20 세기의 산업시대에는 경제와 정치 세력들이 화석 연료와 값비싼 금속을 손에 쥐고 통제하여 세계 시장을 좌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지구의 유전자 자원을 통제하는 경제와 정치 세력들이 미래의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유전자는 유전공학 세기의 '녹색 황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과 정부 연구 기관들이 새로운 녹색 황금, 즉 유전자를 찾아내려고 모든 대륙을 뒤지고있다. 장래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줄지도 모르는 희소한 유전 형질을 가진 미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을 찾아내려고 한다. 유전 공학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수정한 다음 그것을 특허 받아 보호하려고 한다.
특히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북반구의 국가들과 남반구의 가난한 저개발 국가들 사이에 유전자 소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나타나고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중동 지역의 석유가 중동 국가의 국가 유산인 것처럼 유전자 자원 역시 자기 나라 국가 유산의 일부이므로 유전자 자원을 이용하는 보상과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북반구의 국가들은 유전자는 정교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여 조작 및 재조합 될 때에만 그 상품 가치 또는 시장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유전자를 채취한 국가에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각 국에서는 장래에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희귀 식물 종을 보호하기 위해 이미 유전자 저장 설비를 갖추고있다.
유 전자 특허 문제는 이미 1971년에 시작되었다. 미국 특허청에 해양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에 대한 특허가 출원되었다. 그러나 특허청은 생물은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허 출원을 거부하였다. 결국 소송의 제기 등 우여곡절 끝에 특허가 부여되었다. 이러한 특허의 허용은 유전자를 사유화하여 상품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결과 유전공학 기술은 학문의 옷을 벗어버리고 시장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특허 허용은 증권과 주식 시장에도 파급되어 유전공학 회사의 주가가 치솟기도 하였다.
1987년 미국 특허청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일변하여 동물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 유기체는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정을 공표 하였다. 이 결정으로 세계 경제를 산업시대로부터 유전공학 시대로 건너가는 길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특허는 발명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나 이제 발견도 특허의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유전자에 대한 특허 부여 결정은 일부 유전공학 회사들에게 배타적인 독점권과 통제권을 부여하게 되었다. 화학회사, 제약회사, 농업관련 회사 그리고 유전공학 회사들 사이에는 유전자, 유기체 그리고 이들을 조작하는 기술과 과정을 특허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있다. 그 결과 이른바 생물 해적 행위 또는 생물 식민주의가 쟁점으로 떠오르고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 전문가들은 북반구의 실험실과 기업의 회의실에 있는 반면 유전자 자원은 대부분 남반구 적도 생태계에 있다. 북반구의 다국적 기업들과 남반구 국가들 사이의 다툼은 앞으로 중요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분쟁으로 등장할 것이다.
지난 식민 투쟁의 역사는 자국 시장의 이익을 위해 풍부한 생물 자원 원산지에 대한 지속적인 수탈과 이용의 역사였다. 신세계에로의 탐험은 금, 은, 기타 희귀 금속을 찾아내는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식량, 섬유, 염료 그리고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새로운 생물 자원을 찾는 데에도 기여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이 신세계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탐험가, 선교사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은 상업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생물 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생물 자원을 찾아 답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오늘날에는 유전자를 찾아 탐사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유전자 사냥꾼'이 등장하고 북반구의 거대한 기업들은 상당한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희귀한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한 남반구 탐험 여행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자하고있다.
문제를 요약해 보고자 한다.
북 반구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새롭고 유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위험을 각오하고 장기간의 연구 개발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할 수 있으려면 특허로 보호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남반구의 국가들은 자국의 농부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긴 세월 동안 귀중한 약용 식물과 식용 식물을 개량하며 보존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남반구의 국가들은 유전공학의 혁명에 대한 그들의 기여에 대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입장과 주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동일하다. 즉 지구의 유전자 자원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상품화시켜 시장에서 판매하려 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를 지니고있다. 이제 돈이 과학 발전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등장하고있다.
유전자 특허 문제와 관련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특허의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인체의 사유화, 인체의 지적 재산권화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인간의 유전자 조사와 관련한 명백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으면서 방대한 영역의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 출원이 늘어나고 있으며,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 단계에 이르자 인간의 유전자를 특허 받으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가속되고있다. 심지어는 유전자의 기능이나 역할을 밝히기도 전에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도 있다. 유전자 특허 또는 생물 특허를 둘러싼 쟁점은 인류가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즉 유전자 특허를 둘러싼 논쟁은 생물의 본질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3)유전자 조작된 동식물의 방출
유 전공학이 세계의 경제를 재편하고 사회를 개조하는데 영향을 미치면서 지구 환경에도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전공학은 그 기술을 이용하여 자연 세계를 조작할 수 있다. 종과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유전자를 대량으로 이전하여 수많은 생물의 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생물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여 지구 생물권에 방출하여, 이들이 번식하고, 변이를 일으키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땅, 물, 공기를 점령해 나간다는 것은 단지 상상이 아니다. 상업적 실험으로서 실제로 진행되고있다. 실험실에 만든 제2의 창조물을 지구 생물권에 방출하는 것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세 번째 요인이다.
이 와 관련해서 다국적 기업들이 유전공학 쪽으로 업종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종자 회사, 유전공학 회사, 농약 회사, 제약 회사, 의료 회사, 보건 및 건강 회사, 식품 회사, 음료 회사 등을 사들여 거대한 유전공학 단지를 조성하여 생물 산업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필요도 있다. 새로운 생물 산업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전망하고있다.
이와는 달리 인공적으로 조작된 생물을 지구 생물권에 방출함으로써 초래할 혼돈과 재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아 있다. 혼돈과 재앙으로서 우선,(1) 유전자 오염 현상을 지적할 수 있다.
오 염된 유전자를 지닌 생물이 번식하고 널리 퍼져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하여 지구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감소시킬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의 생물권을 개조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종과 종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량 품종을 만들기 위해 동물계나 식물계에서 서로 혈연 관계가 있는 종들을 지속적으로 교배시키는 방법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유전공학이 제공하는 유전자 접합 기술은 종과 종의 벽, 자연 자연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유전자를 접합하고 이전하는 기술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있다. 생물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유전자를 이전하고 조작하는 기술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묘기이다. 이 묘기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연을 상대로 실험하면서 환경에 매우 위험한 새로운 요소까지 만들어 내고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가 자연 환경에 방출될 경우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위험 요소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는 성장하고 번식하며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가 한번 방출되면 이를 다시금 실험실 안으로 회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미생물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회사들과 기업들은 잠재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이러한 위험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고있다.
(2)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의 방출은 단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유전자 기술을 세균전에 대비한 병원균을 조작하는데 사용할 경우 그 위험은 치명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 무기의 생산에도 유전자 기술이 이용될 수도 있다. 생물학 전쟁은 살아있는 생물체를 군사 목적으로 사용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버섯 균류 등이 생물학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 생물 병원균은 생식, 번식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바람, 물, 곤충 그리고 동물을 매개로 하여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대부분의 생물 병원균은 일단 한번 방출되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그 환경에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생물학 무기는 아직까지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방대한 독성 물질을 처리하고 저장하는데는 위험과 비용의 부담이 따르며, 병원균을 살포하는 데에도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생물학전을 치를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테러나 게릴라 작전으로부터 전면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군사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용도의 무기 생산이 가능해지고있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생물학 무기가 단지 방어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방어용 무기와 공격용 무기의 구별은 실제로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 전세계 약 17개국이 차세대 생물학 무기를 생산하여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 조작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고 이용도가 확대됨으로써 다음 세대들은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의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실험실에서는 그것이 공격용이든 아니면 방어용이든 유전자 무기에 대한 실험이 점차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우발적인 방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연구실 또는 실험실이 아무리 안전하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안전한 실험실 또는 연구실은 없다.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자연 재해가 발생하고 안전 수칙이 위반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금세기 핵분열 기술의 발견은 결국 원자 폭탄의 개발로 이어졌고, 원자 폭탄의 등장으로 인류는 스스로 자신의 종말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되었다. 유전자 또는 생물학 무기의 개발은 원자 폭탄의 등장 보다 더 확실하게 인류의 종말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있다.
(3)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의 방출은 인간의 보건과 건강에도 위협을 가하고있다. 식량의 생산에도 유전자 조작 기술이 이용됨으로써 이른바 '유전자 조작 식품'이 등장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간의 건강이나 보건에 유해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4)우생 문명의 재출현
인 간의 유전자 지도 작성, 유전 질환 및 유전자 결함 검사 기술의 향상, 새로운 생식 기술,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 조작 시술 등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네 번째 요소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상업적 우생 문명의 재출현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제공하고있다. 인간의 유전자 검사 및 치료법이 발전하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유전자의 구성을 재조작하여 우생학적으로 개량된 새로운 우생 인간이 등장하게될 것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그 속성상 우생학의 도구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우생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다.
우 생학은 생물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제거하는 소극적 우생학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물체나 종의 형질을 조작하는 적극적 우생학으로 구별된다. 우생학은 금세기 들어오면서 미국에서 가장 발전하여 미국이 우생학의 본고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전 형질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자 유전학자들과 사회 개혁 운동가들이 이것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우생 운동을 - 우생학적 인종 개량 운동 - 선동하였다.
우생 운동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혈통과 유전 형질이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 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 역시 혈통과 유전 형질이라는 사고로부터 출발하였다. 오늘날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생 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우생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생 운동이 다시금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과거의 우생 운동은 인종 정화를 목적으로 했으나 새로운 우생 운동은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효율성 증대, 성취 능력의 향상, 삶의 질 향상 등과 같은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지향하고있다. 과거의 우생 운동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공포와 증오가 그 동기로 작용했으나, 새로운 우생 운동은 시장 창출 세력과 소비자 욕구가 그 동인이 되어 전개되고있다. 새로운 유전학은 사회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익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지구상 생물의 유전자 우성을 조작하여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노력으로 인해 새로운 우생 문명의 세기에 진입하고 있다.
새로운 우생 문명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전자 치료

유전자 조작 기술은 궁극적인 치료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전자 조작 치료법은 두 가지 종류로 구별된다.
하나는 체세포 치료법으로서 체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인데 다음 세대에 유전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생식세포 치료법으로서 정자, 난자 또는 배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인데 다음 세대에까지 유전된다.
문 제는 유전자를 조작하여 치료하는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선 유전자 조작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치료는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있다. 다시 말해 조작된 유전자를 환자의 염색체에 삽입하는 과정이 무작위적이다. 즉 조작된 유전자가 염색체의 어느 부위에 정착할지 예측할 수 없다. 아울러 특정 부위에 삽입되어 정착된다 할지라도 제대로 기능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언론 매체는 여러 가지 유전자 치료 실험을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의료계와 유전 공학 산업계가 유전자 치료 실험에 큰 기대를 걸고있지만, 그 결과는 아직은 매우 실망스럽다.

유전자 검사

특히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이상이나 결함을 조사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태아 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유전자 이상 또는 결함 중에서 치료 가능성은 현재 약 15% 이하에 그치고있다. 나머지 치료가 불가능할 85%의 경우 부모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 태아를 낙태시키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하는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해야한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윤리적 딜레마를 야기 시킨다. 이러한 선택은 또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 검사가 잘못되어 정상적인 유전자를 결함이나 이상이 있는 유전자로 판별하여 태아를 낙태시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의 책임

향후 10년 이내에 우리는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게될 것이고, 유전자의 기능을 on 또는 off 시키는 기술도 개발할 것이다. 아울러 유전자를 재조합 하거나 조작하여 유전 암호를 변경시킬 수 있게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전 암호 가운데 어느 것을 영구적으로 변경시킬 가치가 있는지 그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포기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유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부모 자신의 난자와 정자의 유전자를 변경시키지 않고 운에 맡겨 자녀를 출산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 배아 또는 태아를 교정하여 자녀를 출산할 것인지를 결정하게될 것이다.

주문 아기(맞춤 아기)

유전자 조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이상이나 결함을 치료하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잔인하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는 행위와 유전자를 개량하는 행위 사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5)유전자 사회학
유 전공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생사회학' 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도 발전하고있다. 이러한 학문은 인간의 행동 동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행동이 선천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것인가 하는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은 생물학적 유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선천적인 요인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물론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관련해서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전자의 역할을 더 우선시킨다. 선천성에 대한 강조와 주목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다섯 번째 요소이다.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유전 공학자들은 인간의 행동 또는 사고와 관련된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보를 얻게될 것이다. 이미 유전 공학자들은 정신 질환을 유전자의 결함 또는 이상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범죄 지향성,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유전자 기능 이상이 그 원인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회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어떤 점에서는 유전자의 구성에 따라 결정됨으로 현재의 사회 상태를 변경시키려면 먼저 유전자를 변경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 기분, 개성이 유전자의 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연구 결과가 매주 1건 정도로 발표될 정도로 점점 증가하고있다.
연 구 결과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더 나은 사회적 능력을 발휘하는 유전자군 ▲신기한 것과 스릴을 추구하고 흥분하는 성질과 관련된 유전자군 ▲심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자군 ▲자폐증, 강박증, 우울증, 주의력 결핍증 유전자군 ▲동성애 성향 유전자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의 발표는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있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 과학자들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후천성론을 선호하였다. 이와는 달리 사회 생물학자들은 환경의 변화는 단지 문제를 완화시킬 뿐이며, 근원적인 해결책으로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유전자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후천성론에서 선천성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선천성론은 인간의 운명은 유전자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즉 후천성론에서 선천성론으로 이동하게 되는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가?그것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 즉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다 줄 엄청난 잠재적인 이익에 대중의 관심을 묶어두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막대한 재정적 비용이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가 현재 많은 사회 문제의 뿌리가 되는 유전 질환을 포함하여 인간의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부단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론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좋은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는 결과적으로 열성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유전공학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인류의 진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식을 낳음으로써 사회가 퇴화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유인책을 사용해서 자발적으로 불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금전적인 유인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IQ테스트에서 100이하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되, 지능지수가 낮을수록 더 많은 돈을 지급하면 될 것이라는 제안도 등장하고 있다.
*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자들을 불임시켜야 하지 않을까?(2) 불임 정책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의사 또는 보건 전문가들은 태아 검사를 시행하여 유 전자 이상이나 결함이 드러날 경우 또는 지능지수가 낮을 경우 낙태하도록 권유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3) 노숙자 문제 - 유전자 차원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나고 있다.
1950 년대부터 1980년대의 사회 개혁가들이 사회악을 바로 잡으려는 열정에서 유전자 차원에서 인간을 개량해야 한다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현재의 사회 개혁가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너무 지나치게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유전자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유전자에 의한 인종 차별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별 유형이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그것이 바로 유전자형에 의한 차별이다. 현재 유전자형에 의한 차별 실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이러한 차별이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유전자 주홍글씨'를 달고 다니면서 보험과 교육의 혜택으로부터 제외될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 유전자의 기능과 작용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인종이나 민족 집단에 이르기까지 인종차별, 인종분리 그리고 인종확대가 확대될 수도 있다. 유전 공학자들은 이러한 유전자 차별이 미래에는 유전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있다. 즉 미래에는 유전자 귀족 계급과 유전자 평민 계급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 차별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우생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교회의 가르침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복제 또는 생명복제와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에 국한시켜 교황청 '생명학술원'에서 발표한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이라는 자료를 인용하고자 한다.
1) 역사적인 배경
지식이 진보하고 분자생물학, 유전학, 인공수정법 등이 발전함에 따라 이미 오래 전에 동식물의 복제 실험과 성공적인 복제가 가능해졌다.
1930년대 이후로 인위적인 쌍둥이 분할 방법을 써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실험을 해 왔는데, 이러한 방법을 부적절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복제라 할 수 있다.
1993 년에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만은 2, 4, 8 난할기의 인간 배아에 대하여 실시하였던 쌍둥이 분할 실험 관련 자료를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해당 윤리위원회의 사전 승낙을 받지 않은 채 이루어졌는데, 당사자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윤리적 논쟁을 가열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2월 27일자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기사는 여론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아이언 빌머트와 K.H.S. 캠벨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에딘 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 팀의 노력으로 '돌리'라는 복제양이 탄생했다는 기사였다. 이 때문에 여러 위원회와 국내외 당국들은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새롭고도 당혹스러운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는 두가지 새로운 측면이 있다. 첫번째로 그것은 분할의 문제가 아니라 복제라고 정의되는 급진적인 기술혁신의 문제라는 점이다. 곧 그것은 핵의 유전형질을 제공하는 성체(成體)와 생물학적으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무배우자 생식이라는 문제이다. 두번째 이러한 형태의 정확하고 완전한 복제가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곧 동물의 일생에서 이미 분화하여 성장해 버린 단계의 체세포 DNA는 분화의 형태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이상 그들 본래의 분화력을 회복할 수 없고 따라서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킬 능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불가능성을 극복함으로써, 이제 인간복제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처럼 보인다. 인간복제란 체세포상으로 제공자와 똑같은 개체를 하나 이상 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건은 당연히 우려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초기,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던 시기가 지나자 일부에서는 연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고 언젠가는 가톨릭교회도 복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견도 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므로 시끄러운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그 일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2)생물학적 사실
인공생식의 한 형태라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복제는 두 배우자의 기여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성생식이면서 무배우자 생식이다.
그 러나 이 복제 기술을 인간에게 확대 적용할 때에도, 이러한 체구조의 복제가 반드시 존재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여햐 한다. 정신과 영혼은 인간에게 속한 모든 실체 가운데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고,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가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인공수정이나 복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심리적인 발달과 문화와 환경은 언제나 별개의 인격을 만들어 낸다. 쌍둥이인 경우에서도 그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곧 닮았다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복제에 수반되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대중의 기대나 미묘한 분위기는 적어도 올바른 시각에 놓여져야 한다.
인간복제가 인격의 근원인 정신을 포함할 수 없음에도, 인간복제에 대한 생각은 무한한 능력을 갈구하면서 이미 다음과 같은 가정적인 상황들을 상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곧 비범한 재능과 미를 지닌 사람들을 복제하기,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재생하기, 유전병들에 면역성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을 고르기, 인간의 성(姓)을 선택하기, 선별된 냉동 배아들을 생산하고 그것을 나중에 자궁에 이식시켜 여분의 장기들을 제공하는데 사용하기 등이다.
마 치 공상 과학과도 같은 이러한 가정적인 상황들과 관련하여, 복제가 '합당'하거나 '긍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제안들이 뒤이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복제기술을 적용한다고 예상할 때 이러한 통탄스러운 행위에 대한 인간학적 의미는 무엇인가?인간복제는 우생학적 계획에 속하므로, 그것은 조목조목 비난해 온 모든 윤리적 법률적 견해의 영향을 받기 쉽다. 한스 요나스가 말했듯이, 인간복제는 "방법상으로 가장 냉혹하고 목적상으로는 가장 비열한 유전자 조작의 한 형태이다. 그것의 목표는 유전 형질을 임의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적인 방법과는 달리 유전 형질을 임의로 균일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다인간복제는 생물학적인 측면이나 엄밀히 인격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있는 구조적인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성교(兩性交)를 기능의 측면에서 완전히 쓸모없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들은 철저히 이용되어 순전히 생물학적인 몇가지 기능(난자와 자궁을 제공하는 것)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다음호에는 교회가르침에 따른, 이러한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 윤리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9)-교회의 가르침

3)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윤리 문제
복제 과정에서 친자관계, 친족관계, 혈족관계, 어버이 관계 등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모 든 인위적인 행위처럼, 인간복제도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흉내'내고 '모방'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구성요소를 어떻게 초월하는지를 무시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진화가 덜 된 개체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식 형태로 축소된다. 인간복제는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을 마음대로 또는 순전히 실리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계획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조장한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본질은 정신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인격적 본질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격적 본질의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인간을 선별한다는 이러한 개념은 수적으로 한계가 있는 복제행위를 넘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예기치 못한 문화의 부산물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가치가 그들의 인격적 본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평가를 받아 선별될 수 있는 생물학적 특질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는 복제된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복제인간은 다른 존재에게서 '복사'(생물학적인 복사일뿐이라 하더라도)됨으로써 세상에 등장한다. 이러한 행위는 복제인간에게 근본적인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복제인간'은 복제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와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는 기대와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와 주목이 그의 인격적 주체성에 진정 타격이 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가 지적한 결과들 가운데 적어도 얼마만이라도 피하고자 애쓰면서 인간 복제 계획을 자궁에 이식하기 전까지의 시점에서 중단하겠다고 하는 생각도 도덕적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복제된 아기의 출생은 막고자 하면서도 배아와 태아의 복제는 여전히 허용하는 복제 금지령은 결국 배아와 태아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없애 버려야할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방법으로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그러한 실험은 비도덕적이다. 인간의 육체는 인간 개인의 존엄과 인격적 본질을 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게다가 복제 실험에 쓸 난자를 얻고자 여성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복제인간의 경우에서도 그것이 비도덕적인 까닭은 배아 단계라도 그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험목적으로 행해지는 시험관 수정까지도 철저히 단죄하는 모든 도덕적 이유가 인간복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 초인'에 대한 헛된 희망에서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행위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명백한 결과를 낳는다. 복제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비극적으로 서투르게 모방하려는 위험한 시도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와 지성을 주시면서, 창조된 세계를 맡기셨다. 인간은 단지 실천에 옮기지 말라는 요구만 받을 뿐 행동에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인간은 선과 악을 식별함으로써 스스로 이러한 제약을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다시 한번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과학기술을 해방의 도구로 변화시키느냐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고통을 끌어들임으로써 그것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다. 생명을 사랑의 선물로 보는 개념과 인간을 상업적 생산품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를 다시한번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을 언제 어디서나 단순한 수단과 대상이 아니라 목적과 가치로 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인간 복제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4) 인권과 연구의 자유
인 권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복제는 모든 인간 권리의 바탕이 되는 두가지 기본 원칙에 위배됨을 보여준다. 곧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는 원칙이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원칙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침해받게 되며, 복제 논리에 내재되어 있는 완전한 우생학적 선택 차원때문에 차별이 생기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인간복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제를 당한 사람의 존엄과 인간 생식의 존엄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절실한 문제는 과학탐구에 대한 요구와 반드시 존중하여야 할 인간 가치의 조화를 재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과학자는 인간복제를 도덕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굴욕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금지는 연구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연구의 창조성이 변질되지 않게 한다. 과학 연구의 존엄성은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가장 부요한 자원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있다.
과학연구가 인간에게 유익을 주면서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 주며, 영양실조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구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그것은 인류의 희망을 대변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과학자들의 재능과 노력에 맡겨져 있다.
교황께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서 상기시키시듯이 인간과 세계를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면서 과학이 인간과 사회의 선익에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인간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조적인 시각'을 길러 나가야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마치면서

우 리는 지금까지 유전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다가올 유전공학의 세기를 조망해 보았다. 그리고 유전 공학의 기본 틀을 살펴보면서 그 틀이 안고있는 윤리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지적하였다.

지 난 20세기가 물리학과 원자력 기술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가져다 줄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유전공학 기술이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얻은 지식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은 그 속성상 도구 제작인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배열하고 바꿈으로서 우리의 복리를 보장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이 가져올지 모르는 잠재적인 결과들을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뇌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고뇌는 유전공학 가술 그 자체의 이용을 찬성할 것인가 또는 거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뇌는 다가오는 유전공학의 세기에 어떤 종류의 유전공학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성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있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유전 공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정도에 머물고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유전 공학자들의 손에 맡겨 놓아도 괜찮은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우리 각자는 공유해야할 책임이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다른 어떤 기술보다 우리 개개인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가오는 세기의 유전공학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는 유전공학 기술자, 기업가, 정책 입안자 등 일부 소수만이 참여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 입장을 달리하는 전문가들 이외에 사회 구성원 전체도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각계 각층이 활발한 토론과 논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 미래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과 함께 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은 우리 각자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가치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고 성찰하게 만들고있다. 즉 유전공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속성상 스스로 중단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일 단 발동이 걸리면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과속을 통제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요청되고있다. 물론 과학 기술을 통제하는 제도와 법규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과학의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은 제도와 법규의 제정을 과학의 연구를 위한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하지만 과학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기 위해서는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과학 기술에 결코 지지를 보낼 수 없다.

과학 기술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눈부신 업적과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거듭 확인하는 철학적인 고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있다.

'할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해서는 안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낼 때 그리고 그 '할 수 있음'을 필요할 경우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과 결단을 내릴 때 과학은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준 업적의 수혜자로서 과학의 도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 그리고 '과학의 인간화'와 '과학의 그리스도화'를 위해 함께 고뇌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전공학이 가져올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위험에 관한 논의는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유전공학의 기술적 진보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있다. 그러므로 유전공학의 기술에 대한 허용과 제한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일반 대중의 의식화, 교육, 여론의 환기와 형성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유전공학이 기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권 행사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압력을 통해 다양한 유전공학 기술 가운데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어떤 기술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민주적인 여론 수렴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된다.

다가올 21세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펼쳐 보이는 세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그 동안 함께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동참하시고 앞장 서 주시기를 기대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천주교의 단체들

성 빈첸시오 아 빠올로회

성 빈첸시오 아 빠올로회
명 칭:박애사업의 주보성인이며 "사랑의 사도"라 불리는 성 빈첸시오 아 빠올로(St. Vincent de Paul)의 정신을 실천하기 때문에 성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정 신:
회원들은 "마음으로 가난한 자"로서 곤경에 처해 있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
도움을 주면서 은인으로 자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리스도를 만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활 동:
회원들은 보다 가난한 사람들 즉 영신적이건, 물질적이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어떤 사람, 어떤 환경에 있든지 형제적 사랑으로 도운다.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않고 존경과 우정으로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조 직:회원들의 기본 단체를 "협의회"라 하는데 남성, 여성, 혼성으로 조직되고, 지역 협의회, 지구 이사회, 중앙 이사회(교구 단위), 전국 이사회, 총 이사회(세계)로 통합된다.
회 의:
회원들은 매주 1회 회합을 가지고 기도중에 사랑의 회의를 한다,
입 회:
본회에 뜻을 같이 할 이는 누구나 입회할 수 있다.

행복한 가정 운동 (H.F.M)

행복한 가정 운동 (H.F.M)
명 칭:하느님의 사랑받는 가정을 만들어 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자는 운동이다. 원래 한국 가톨릭 병원협회 내에 행복한 가정 연구 위원회가 "행복한 가정운동"(Happy Family Movement)으로 발전하였다.

조 직:가톨릭계 각 병원을 중심으로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 신:
모든 가정이 성화와 행복을 위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본래의 가정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가족계획 방법부터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나아가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고 부부간에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활 동:
"점액관찰법" "배란법" 등의 교제를 발간 배포하고 부부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과 대학생, 중고등학생, 공단근로자들의 성교육을 통하여 가정과 성(性)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쳐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행복한 가정 운동 (C.F.M)

행복한 가정 운동 (C.F.M)
명 칭:자신이나 타인의 가정을 개선하기를 갈망하는 부부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독특한 사명을 완수하기위한 그리스도 신자 가정운동이 "행복한 가정운동"이다.
정 신:그리스도적인 사랑을 자신의 가정과 다른 가정들로 하여금 일, 기도, 사도적 노력, 부부생활, 일상의 본분, 정신적 및 육체적 휴식, 생활의 시련 등 일상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적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크리스챤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노력한다.

목 적: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크리스챤 봉사정신으로 배우자로서, 어버이로서, 이웃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여러 형태의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므로 가정생활의 기준을 그리스도교적 수준으로 높이는 데 있다.
1) 도덕적, 경제적,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 신앙생활에 곤란을 당하는 이웃을 도와준다.
2) 부부가 함께 토의에 임하므로 이웃과 상호간에 자연스러운 친밀감을 조성한다.
3) 능동적인 전례 참여와 비그리스도적인 권력을 경계하기 위한 C.F.M 집회를 2주마다 갖는다.
그 방법은 (1)개회기도 (2)성경(말씀나누기)(3)전례공부 (4)활동보고 (5)사회 정화의 심의(6)다음 집회 안내 및 공지사항 (7)지도신부의 강평 및 강복

입 회:
본당신부의 추천을 받은 모든 가톨릭 신자 부부로서 C.F.M집회에 참석하면 된다.

푸른 군대(Blue Army)

푸른 군대(Blue Army)
명 칭:정식 명칭은 "파티마 성모의 푸른 군대"이다.
무신론자들의 "붉은 군대"에 대적하여 세상을 보호하고자 푸른 군대(파티나의 성모님은 푸른띠를 두르고 발현하셨음)창설한 것이다.

조 직:교구마다 지부가 결성되어 있고 전국 평의회의 지시에 따른다. 본부는 파티마에 있고 국제 사무국은 스위스에 있다.
각 지부에는 수 많은 쎌들이 있어 매주 회합을 갖고 기도하면서 활동을 점검한다.

정 신:붉은 군대를 회개시키고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1) 매일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묵상하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2) 일상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희생으로 바치며, 3)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 대한 신심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특별 신심
1) 대원들은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갈멜산 스카플라를 착용한다.
2) 매일 하루의 임무를 성화하기 위하여 아침 봉헌문을 바친다. 3) 매일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로사리오기도 5단을 바친다. 4) 하루중에 특히 유혹을 당할 때 봉헌을 갱신한다. 5) 5개월동안 연속으로 첫 토요일 신심 고백성사, 영성체, 봉헌의 뜻으로 로사리오 기도, 15분간 성모님께 기도)을 실천한다.
6) 푸른 군대의 외적 표시인 뺏지를 착용한다.
7)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 파티마의 메시지와 푸른 군대의 목적을 전파한다.
8)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매일 저녁 감사와 봉헌의 기도를 드린다.

활 동: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가 주신 메시지를 신앙과 회개와 기도와 일치와 평화의 복음적 메시지(교황 바올로 6세 1967. 5.12)로 전파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인다.

입 회:가입 신청서 서명함으로써 가톨릭 신자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부부 일치 운동(M.E)

부부 일치 운동(M.E)
명 칭:부부가 참으로 만남의 기쁨을 얻고 그 만남으로써 가정과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자는 운동으로서 Marriage Encounter라 한다.

조 직:지역 혹은 본당별로 M.E주말을 경험한 부부들의 나눔(Sharing) 모임이 있고 각 교구마다 M.E보급을 위한 사무국을 두고 전국 본부, 세계 본부가 있다.

정 신:하느님께서 부부에게 주시고자 하신 사랑을 찾기 위해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개방함과 동시에 진정한 대화로써 부부생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원래 M.E가 청소년 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부부가 평화를 희복할 때 청소년들을 비롯한 세상 모두에게 평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활 동: (1)2박 3일[주말]의 강습을 통하여 부부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이로써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얻게 하며, 혼인성사의 참 뜻을 더욱 깊게 깨달아 자녀들과 함께 성가정을 이루게 한다.
(2) 청소년들을 위하여 2박 3일의 선택[Choice] 과정으로써 청소년등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가족, 친구, 직장, 사회속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얼마나 성실히 대화하고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고등학교 졸업한 신자]
(3)약혼자들을 위하여 "기적을 이루는 사랑"이라는 과정이 있어 결혼의 참 가치를 가르치고 더 큰 행복을 보장한다.
(4)부부들을 위하여 "참 부부가 되는 길" "참 부모가 되는 길"등의 하루 강습 과정이 있다,

입 회:부부피정은 본당 신부의 추천을 받아 부부가 함께 사무국이 마련한 모임에 신청한다. 비신자도 참여할 수 있다.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B.W)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B.W)
명 칭:그리스도의 복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보다 나은 교회가 되며,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운동으로 M.B.W 즉 Movement for a Better World라 한다. 초창기에는 이운동을 '사랑의 십자군'이라 불렀다.

조 직:각 교구마다 추진회가 있어 그 지방에서 활동하고, 나라별로 추진회가 있고, 세계를 10지구로 나누어 추진하고 세계본부는 '세나클'(CENACEL)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있다.

정 신:하느님 나라 실현을 목표로 이상과 현실을 직면하고, 복음이 가르치는 새로운 가치에 자각을 하며 그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그 가치에 따라서 공동체적인 일치를 지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M.B.W는
1]교회와 세계 안에서 시대의 표지를 수시로 읽고 식별하는 예언성(Prophetic service)을 지니고,
2]모든 그리스도인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남녀로 구성되어 특정한 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직 분야에서 움직이고 추진하는 보편성(Universality)을 갖고,
3]획일이나 강요가 아닌 다양성 안에서 공동체적인 일치성(Unity)을 갖는다. 즉 회원간의 조화를 위해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고 화해하면서 일치를 이룬다.
4]보다나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쇄신 운동이기 때문에 임시성(Provisionary)을 갖는다.

활 동:묵상회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의 신앙생활을 쇄신시킨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계몽하고 교육함으로써 신자들의 의식을 개발시킨다.
묵상회는 3부로 구분되어 있다. 즉 자각, 회심, 실천이다. 묵상회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그리스도 공동체 묵상회 (2)새 본당상 (3)대화 (4)오늘의 복음선교 (5)기도 (6)자유로운 봉사 (7)카리스마와 식별 (8) 현대교육 (9)수도생활 쇄신 (10)현대교회를 위한 사제상 (11)해방 (12)미래적 방법론

입 회:본당신부의 추천을 받아 묵상회에 참여함으로써 가입된다.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Focolare)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Focolare)
명 칭:예수께서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 21) 하신 일치기도의 실현은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일이기에 마리아의 사업회(work of Mary)라 하고 이 회의 활동을 훠콜라레(Focolare)라 한다. 훠콜라레는 불이라는 뜻으로 벽난로를 뜻한다.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을 젠(GEN, New Geneation)이라 한다.

정 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형제들과의 일치를 생활화하고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간다.

목 적: 이 운동의 목적은 '사랑에 있어 완전한 자'되는 것이며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실현 시키고, 오류와 탈선으로 하느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영혼들을 회개시켜 하느님과 일치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모 임

. 마리아 뽈리[마리아의 도시라는 뜻]:연례 집회로서 회원과 이 운동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린다. 연령, 신분에 관게없이 전국에서 모여 3박 4일 동안 이 운동의 정신을 연구하고 일치를 체험하며 세상에 복음적 생활의 기쁨을 드러내 보인다.

하루 모임:  하루 동안 개최되는 마라아뽈리로서 여러 도시에서 모인다.

젠 대회: 젠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연례 피정이다.

소년, 소녀들의 오후: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중학교 3학년까지의 소년, 소녀들의 연례 모임이다.

생활 말씀 모임: 본부에서 매달 보내는 '생활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각자의 환경에서 어떻게 실천하였는지 그 경험을 나눈다.
새 가정 모임: 부부들을 위한 모임으로서 이 운동의 정신에 따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교황 회칙 등을 공부하고 그 경험을 나눈다.

영속하는 마리아 뽈리: 마리아 뽈리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로삐아노에 '작은 도시'를 이루고 43개국으로부터 온 500여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도시들은 일치의 생활이 가능함과 영속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꾸르실료(Cursillo)

꾸르실료(Cursillo)
명 칭: 꾸르실료는 스페인의 성지[Santiago de Composela,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 순례를 돕는 안내자를 위한 강습과정[Cursillo]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그대로 쓴다.
처음에는 '순례단 안내자를 위한 단기 강습'이라 했고 지금은 '크리스챤생활의 꾸르실'(Cursillos in Christianity)라 한다.

조 직: 꾸르실료는 조직이 아니지만 연락을 위해서 본당마다 대표자가 있고 그 지역의 꾸르실료 보급을 위해 교구마다 독자적인 사무국을 둔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적 사랑으로 서로 협조하기 위해 전국 협의체가 있다.

정 신: 이상, 순종, 사랑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인 공부, 신심, 활동을 계속한다. 이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활 동: 1) 꾸르실료는 직접적으로 교회나 세상을 위해서 활동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와 세상을 위해 사도직 수행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신자들을 양성한다.
머리에 이상(理想)을 심어주고, 그 이상이 희망(望德)으로, 그리고 이 망덕은 끊임없는 신심으로 성장함을 체험으로 가르친다.
마음에 순종(順從)을 심어주고, 그 순종이 믿음(信德)으로, 그리고 이 신덕은 끊임없는 신심으로 성장함을 체험으로 가르친다.
의지에 사랑(愛德)을 심어주고, 그 애덕은 적극적인 활동으로써 성장함을 체험으로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리스도 중심적, 복음적, 은총적 생활을 가능케 하고 따라서 교회와 세상에 봉사할 일군을 양성한다.
이 교육과정은 3박 4일이다.

2) 30세 미만 20세 이상의 청년 남녀를 대상으로 3박 4일의 청년 꾸르실료를 시행하여 정신적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시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해 내는 눈을 뜨게 하고, 젊은이들이 갖게 될 각자의 가정과 직장에서 사도직 수행을 위한 생활양식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입 회: 가톨릭 신자로서 본당신부의 추천을 받아 3박 4일의 꾸르실료를 받음으로 꾸르실리스따가 된다.

가톨릭 농민회

가톨릭 농민회
명 칭: 가톨릭 농민들이 자신들의 발전과 농촌 보호를 도모하기 위한 조직을 가톨릭 농민회(Catholic Farmer's Movement)라 한다.

목 적: 농민의 단결과 협력으로 농민의 권익을 위하고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여 농촌사회의 복음화와 인류공동체 발전에 기여한다.

활 동:1) 농촌보호-농토상실과 농토오염 등을 막기 위하여 농지실태조사를 하여 그 해결책을 촉구하고,
2)경제발전-생산, 판매, 소비에 있어 협동함으로써 농민의 이익을 도모하고,
3)문화발전-농촌의 고유 문화를 발전시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며,
4)법적보장-민주적 농업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활동한다.

조 직: 마을에 분회, 한 생활권(본당단위)에 지역협의회, 교구단위에 연합회, 나라별로 전국본부가 있고, 세계적으로 가톨릭 농민회 국제연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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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학생 운동(Pax Romana)

가톨릭 학생 운동(Pax Romana)
명 칭: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로마 지배 아래의 평화'란 뜻으로 그리스도에 의한 세속 지배라는 내용으로 사용된다.

조 직: 학생들로 구성된 단위 조직이 상부조직으로 묶어지고, 본부는 스위스에 있다.

목 적: 사랑의 정신으로 인격도야에 힘쓰며 대학과 사회에 복음의 정신을 전파하여 가톨릭 정신에 투철한 사회인을 배출함에 있다.

활 동: 개인 성화와 학원의 복음화에 힘쓰며 종교, 도덕, 학문을 연구함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제분야에서의 사도직을 연구한다.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명 칭: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프랑스어 Jeunesse Ouvriere Chretienne의 첫 글자들을 모아 J.O.C라 한다. 가톨릭의 노동청년들이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서, 청년 노동자들을 위하여 청년 노동자들에 의해서 노동사회를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젖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톨릭 노동청년회라 한다.

조 직: 30세 미만의 노동청년들로서 섹션(Section)을 이루고 교구 연합회, 전국 연합회가 있으며 벨지움의 수도 브뤄셀에 국제기구가 있다.

정 신: J.O.C의 이념은 모든 남녀 노동청년은 영원한 사명을 갖는데 이 사명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제로 수행한다.
회원의 사명은 자신의 환경을 성화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이고,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활 동: 투사들은 매주1회 회합을 가지며 '보고 판단하고 실천한다.'는 J.O.C의 원리에 따라 자기 생활을 반성하며 조사한 주위 환경 실태를 보고하고 분석 연구한다.

섹션을 이루는 회원을 투사(鬪士)라 하는데 그는
1) 다른 청년노동자와 함께 그 환경과 그 생활의 책임자이며,
2) 다른 청년노동자에게 삶의 의미를 알리고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는 교육자이며,
3)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향해 살고, 그 이상을 위하는 그리스도의 증거자이며,
4) 자기가 솔선해서 이상을 높이고, 자기의 친구이며 형제인 노동자의 구제를 위해서 자기의 생애를 바치는 사도이다.
이 를 위해서 대중 속에서 대중과 접촉하고, 노동자들에게 삶의 의의와 목적을 가르치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들의 환경과 사회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한다. 즉 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 가정생활, 사회생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구제하는 것이다.

입 회: 30세 미만의 가톨릭 노동청년으로서 소정의 투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설립일: 1958. 3.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마리애
명 칭: 레지오 마리애는 '은총의 중재자시요 하자없으신 마리아'의 강력한 지휘 아래, 레지오(軍團)으로 조직되어 세속 및 그 악의 세력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교회에 봉사하는 신자 단체이다.

조 직: 후원 부대인 협조 단원[기도와 선행으로써 도와줌]과 활동단원이 있는데 10여명의 행동단원들이 프레시디움(Praesidium 前線小隊)을 이루고, 여러 개의 프레시디움이 꾸리아(Curia 地方本部)를 이루고, 여러 개의 꾸리아가 세나뚜스(Senatus 地區本部 혹은 敎區本部)를 이루며, 세계본부를 꼰칠리움(Concilium)이라 한다. 이것은 로마 군대의 조직과 명칭을 그대로 따서 붙인 것이다.

정 신: 성모 마리아를 그대로 본받고자 한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깊으신 겸손, 완전한 순명, 천사적 친절, 끊임없는 기도, 다방면에 걸친 고행, 하자없는 정결, 영웅다운 인내, 천상적 지혜, 용감하고 헌신적인 하느님께 대한 사랑, 무엇보다도 마리아께서 최대로 닦으셨으며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지니셨던 그 신덕을 얻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할 수 없다고 핑계를 아니하고, 못할 것이 없는 줄로 생각하여"[준주성범 3권 5장 4절]무슨일이든지 다하고자 한다.

특별 신심:

활 동: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단장의 지시에 따라 둘씩 짝지어 매주 2시간 이상의 활동을 하고 매주 정한 시간에 회합을 하며 그 활동 내용을 보고한다.
활 동의 내용은 외교인 입교 권면, 냉담자 회두 권면, 초상집 돌보기, 환자 방문, 버림받은 사람들과 타락한 사람들 격려, 본당의 호구조사 협조, 가톨릭 서적보급 및 이동문고(移動文庫) 운영, 어린이들에게 고백성사와 영성체 권면, 소년 단체 및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 본당의 각종 신심회와 후원회의 회원 모집, 그밖에 본당신부의 요구에 따라 전례 지도, 주일학교나 예비자 교리반 지도 등이다.

입 회: 19세 이상의 충실한 신자로서 단원으로서의 의무를 다 할 각오가 있어 프레시디움에 가입신청을 하면 3개월 시험 기간을 거친 후에 단원대열에 든다.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아! 마더 데레사

아! 마더 데레사
"가난한 사람들 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병원 구경도 못해 보고 죽어가고 있는데 나에 대한 간호가 어찌 이리 극진합니까?"
이 렇게 데레사 수녀는 죽기 한 해 전 11월 23일 심장마비로 입원하면서 자책했다. 무한한 사랑을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서 실천한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20세기말의 천사, 79년 가난한 사람의 이름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세기의 성녀(聖女)가 마더 데레사였다.

1910년 8월 27일 알바니아에서 출생하여 20여년간 인도 캘커타에서 교사로 지낸 데레사는 2차 대전 중 수백만 명이 죽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았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베풀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할 만큼 이 세상에서 빈곤을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도시가 캘커타이다.

데레사는 이곳이야말로 하느님이 부르시는 현장임을 절감하고 38세(1948년)에 단돈 45루피(한화 1천80원)로 빈자(貧者)들의 안식처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하얀 '사리'(인도 여성들의 의상)와 이마에는 푸른 줄무늬가 있고 어깨에 십자가를 맨 수도복을 입은 수녀는, 전 세계 126개국 200여 도시에 600여개의 세계적인 자선 기관을 세웠다.

데레사 수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4천4백여명의 '제2의 데레사'들을 남기고 1997년 9월 5일 하늘나라로 갔다. 때마침 내린 '장대 빗줄기'는 하늘의 통곡인 양 캘커타는 울었다. 온 인류는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 데레사의 얼굴에서 '서로 사랑하십시오'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데레사 수녀는 세계가 기피하고 소외시켰던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 기쁨을 가져다 주는 화신(化身)이었다.

「빈자(貧者)들 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수녀를 2000년에 성인 반열에 올리도록 청원하는 호소를 전 세계로 부터 받은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데레사의 덕성과 행적이 시성(諡聖)에 적합한 지 여부를 판정하는 절차를 속히 진행하도록 지난 3월 인도 캘커타 교구에 지시했다.

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천주교 신자 안중근(토마스) 의사(義士)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31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안 의사(1879~1910년)는 황해도 청계동 성당에서 18세(1897.1.11)에 영세했다. 안 토마스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것은 국권 회복을 위한 전투 행위이다. 국가 방위를 위한 전투중 살상은 죄가 아니며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다.

대 륙 침략을 꾀하기 위해 러시아 대장(大藏)대신과 만나기 위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복부에 십자 표시를 새긴 세발의 권총을 쏜 후, 안 토마스는 혈서로 '독립자유'라는 글자를 써 넣은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 흔들며 '대한제국 만세'를 세 번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이토가 쓰러진 후 곧 죽자 십자성호를 긋고 "천주여, 포악한 놈을 무찌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기도 드린 후 러시아 헌병에게 태연히 포박되었다.

사형 집행 전 가족들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준생, 베네딕도) 을 성직자로 키워 주기를 유언했다. 또한 2천만 형제 자매들이 교육과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시키며, 성직자들은 민족 복음화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냉담한 교우들에게 신앙을 독려할 것을 당부했다.

그 리고 "대한 독립과 동아 민족의 행복을 위해 죽는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예수님의 성화를 간직한 채, "대한 독립 만세"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른 후 미소를 띠며 여순 형무소 교수대에서 그의 영혼은 거룩하게 하늘로 올라갔다. 이 날은 그가 때 맞춰 죽기를 원했던 예수님이 돌아 가신 금요일이었다. 안 토마스의 거룩한 애국 운동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안 의사의 신앙심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민족운동을 행동하는 신앙인의 큰 빛으로 널리 기리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언젠가 살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노예해방선언을 한 워싱턴의 에이브러햄 링컨 동상 앞에 모인 25만명 흑인들에게 마틴 루터 킹 (1929 ~ 1968) 목사는 흑인과 백인이 하나 되는 세계에 관한 자신의 소박한 꿈을 역설했다.

1963 년 8월 28일 이 날 워싱턴 행진에서 킹 목사의 열변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차별의 족쇄를 찬 채 걸름거리며, 가난의 섬에 고립되어 미국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고통 당하는 2,000만 흑인 형제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워싱턴의 이 집회 장면은 전 세계로 방영되었고 인류의 미래에 강한 확신과 용기를 주었다. 전 세계는 그 이듬해 비폭력주의 민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은 그에게 노벨 평화상으로 경의를 표했다.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킹은 "백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백 인 기득권층과 정부의 공권력에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던 흑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킹은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시오."(루가 6,27)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사랑의 힘을 주장한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를 접합시킨 사회개혁 방법을 찾았다.

백인의 인종 분리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피와 폭력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흑인 평등권 운동은 더욱 빛났으며, 킹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호소는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민권운동을 지휘했던 진정한 투사 킹은, 1968년 4월 4일 미국 멤피스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으니 3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미국이 특정인의 생일을 국경일로 삼은 것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마틴 루터 킹, 단 두 사람 뿐이다. 나라를 세운 사람이 워싱턴이라면 흔들리는 나라의 균형을 바로 잡아준 사람이 킹이다. 조상의 신분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 속에 함께 살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미국 가톨릭 교회 주교들은 2000년 1월 15일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가 20세기 순교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2000년 대희년 5월 7일, 킹 목사를 시민운동의 선구자로 순교자에 지명되기를 천거했다. 이에 교황청은 침례교도임에도 킹 목사를 '20세기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 하였다.

총탄에 맞고 쓰러지면서 킹은 20세기 인류의 가슴에 자유 평등의 숭고한 정신을 새기는 영원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절대자[행복]를 갈망한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다. 자기를 믿거나, 타인을 믿거나, 또는 이성(理性)이나 과학에 대하여 믿는다든지,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 존재나 힘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음[신앙.종교]의 동물이며 숭배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부단히 무언가를 추구(追求)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 목표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전, 권력, 명예, 애정 등을 획득하는 데에 열성을 쏟고 잇다. 열정은 때로는 종교인들의 절대자 숭배에 못지 않는다.

사 람은 현세적, 지상적(地上的) 어떤 것을 찾아 누려도 만족하지 못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무한히 착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한다. 모든 것에서 최고의 진선미(眞善美)인 절대자[신.하느님]를 갈망하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이 갈망이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있다.

1. 사람은 종교가 필요하다

어 버이와 자녀를 결합시키는 따스한 도덕적 관계를 효도라 한다. 종교는 창조주(創造主)의 하느님[절대자.신]과 피조물(被造物)인 사람을 결합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은애(恩愛)의 관계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 가장 근본[宗,종]되는 가름침[敎,교]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 무신론자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가장 중효한 문제는 종교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종교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의.식.주와 교통수단과 같은 물질 문제는 과학적 기술 개발로써 해결할 수 있다.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와 감정에 관한 것은 수양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지식과 같은 지성에 대한 것은 학식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한다.
생(生) 사(死) 존(存) 亡(망)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것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오로지 종교 밖에 없다.
삶의 극한 상황이나 절망에서 사람이 가진 어떤 것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 최후의 희망은 종교이다. 거기에 귀의(歸依)하여 구원을 얻고자 한다.

지 금까지 문화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어디서나 신령한[초월적.초인간적] 존재를 숭배하며, 이에 상응한 신앙과 종교적 행위들(기도 제사 예배 묵상)로써 하느님을 찾는 표현을 해 왔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종교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이러한 종교의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가지고 있으나,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 일컬을 수 있다.

인류 사회에는 윤리 도덕 준수가 절대 필요하다. 종교는 이 도덕의 최고 영역이며 기본적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종교를 필요로 한다.

2. 어느 종교나 다 같지는 않다

종교는 크게 나누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가 있다.

자연(自然)종교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하느님[天主=천주.신.절대자]이 있음을 깨닫고 양심에 따라서 섬기는 것이다. 이 종교는 수천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심혼(心魂)에서 발로되는 표현이며 심오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유교.불교]

계시(啓示)종교
사 람이 전연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본성(本性)과 진리[생명구원 영생]를 하느님이 직접 인간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나타나서 가르쳐 주심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는것이다. 즉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생활한 현존,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인간을 결합시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참되고 생활한 관계를 이루는 종교다. [그리스도교.유대교.회교]

3. 인간이 종교(하느님과 대화 사귐 신뢰, 신앙하는 깊은 생명의 결합)를 잊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 있다.

종교 무관심, 거절하는 이유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 무지와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思潮)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 그 분의 부르심을 듣고 달아나는 죄인인 인간의 태도 때문이다.

4.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길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깨달을 수 있는 길(하느님의 존재 증명)들은 물질 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하느님 존재의 증명

세계
세계의 움직임 변화 우연성 질서와 아름다움에서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변화하는 아름다움들은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 성 아우구스띠노)

인간
진 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善)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標識)등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이러한 영원의 씨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깨닫게 한다.

세 계와 인간이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지 못할 뿐아니라,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여러 가지 '길'들로써 '모두가 하느님 이라고 부르는' 제1원인이면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이 이성의 빛으로써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빛만으로 초자연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하느님 께서는 인간이당신과 친밀하게 되고, 오류없이 쉽게 이해하게 되도록 인간에게 계시(啓示.성서와 성전)의 빛을 주신다. 그리고 신앙으로 이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에게 은총(恩寵)을 주신다.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이 증거는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위배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하느님을 찾는 내용이 비록 결함과 오류가 섞여 불완전하지만 어느 민족이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민족도 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한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민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 개인과 민족은 하느님에 대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은 진리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건 모르건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악이 있는가

어째서 악이 있는가
만일 질서 있고 좋은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신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느님께서 악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왜 창조하시지 않으셨나?

1. 하느님께서는 진행의 상태로 세계를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항상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창조하실 수 있다. 그러나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궁극적 완성을 향해 가는, "진행의 상태"로서 세계를 자유로이 창조하기로 하셨다.
하 느님의 이 계획에 따라 이러한 생성에는, 어떤 존재들의 출현과 더불어 다른 존재들의 소멸이, 더 완전한 것과 더불어 덜 완전한 것이, 자연의 건설과 더불어 파괴가 포함되어 있다. 피조물이 자신의 완전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리적 선[완전함]은 물리적 불완전함 혹은 자연악(병, 천재지변)과 공존한다.

2. 천사와 인간은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지성과 자유를 지닌 피조물인 천사와 인간은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나아가야 하나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죄를 지었다. 그리하여 세계에는 물리적 불완전함[자연악]과 비교할 수도 없는 중대한 윤리적(도덕적) 악[죄:질병 고통 죽음 고역 산고 등과 자연악의 원인]이 들어오게 된다. 오직 하느님은 천사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여 이를 허락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윤리적 악의 원인이 되실 수 없다. 하느님께서 물리적 악과 윤리적 악을 허락하시는 것은 신비(神秘)이다.

3. 하느님은 악에서 선을 끌어 내신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최상의 선이므로, 신비하게도 악 자체에서 선을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있다.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최상의 선이시므로, 악 자체에서 선을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피조물들 안에 어떠한 악도 있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성 아우구스띠노) 이제까지 예가 없을 만큼 가장 큰 윤리적 악은 모든 인간의 죄가 하느님의 외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일이었다. 하느님은 이 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을 끌어 내셨다. 그렇다고 해서 악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가

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가
인간은 어떤 종류의 악(선의 결핍, 제한, 왜곡)을 경함할 때마다 고통을 겪는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그 고통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도덕적 범죄, 유대인 학살, 아프리카 흑인 노예 대학살, 각종 전쟁 등이다. 또한 자연의 힘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즉 지진 화산폭발 태풍 홍수 기근 전염병 등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감정을 다하여 하느님께 "왜?"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인간 고통의 뿌리에는 죄와 복합적 연루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고통의 "왜"에 대한 참된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가 흘러나오는 궁극 원천인 하느님의 사랑에 그 답이 있다.

"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3, 16) 이 말대로 하느님은 고통당하는 인간과 연대하시는 증거로 천히 인간편에 서신다.

2. 하느님의 외아들(聖子 성자) 그리스도가 고통을 없애려거나 그것을 설명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고 통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고통을 수단으로 하여 인간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 즉 십자가를 수단으로 인류 역사와 인간 영혼에 뻗어 내려있는 고통(악)의 뿌리를 쳐부수신다.

3. 그리스도가 죄없이 고통을 받으시므로 고통으로써 사랑과 선을 창조하신다

또 한 고난이 없었다면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전능하시다는 진리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최고 선(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끌어 내어지며 거기에서 끊임없이 새삼 새출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시작되는 샘이다. 하느님이 착한 이에게도 고통을 묵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인간은 고통 안에 구원의 뜻이 있고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며 육신을 능가하는 영(靈)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인간이란 인간 자신을 넘어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는데 고통이 바로 인간의 이 초월성을 가르쳐 준다.

5.「고통에서 배우라」는 말이 있다

「행 복은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불행은 언제나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고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시인 보에티우스가 말했다. 고통은 사람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교이다. 눈물이 눈 속에 끼여 있던 먼지를 씻어 주듯이 한 번도 눈물(고통) 너머로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이 참으로 어떻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어려움 가운데서 사람이 된다'는 말도 인간이 높이 불렸음을 밝혀 준다.

6.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신다

그러므로 고통은 세상의 구원의 도구이므로 초자연적이다. 또한 그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자기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므로 또한 깊이 인간적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신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신다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하느님께 응답하고 하느님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게 하셨다.

하느님의 말씀

인 간은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찾음은 손으로 더듬는 것과 같다. 그래서 흔히 길을 잘못 들어 거짓 신(神)에게 다가간다. 인간은 하느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더욱이 직접 말을 주고 받을 수도 없으므로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하나의 다른 길을 택하셨다. 그분 자신이 사람에게 다가 오시어 자신을 드러내 보이거나 말씀하시어 알려 주시고 또한 자신을 내어 주신다. 이를 '계시(啓示)라고 한다. 이 계시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뜻)은 업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왜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 물음에 결정적이고 풍부한 답을 이 계시로 주셨다. 불환전한 인간의 지혜는 모든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 계시를 받아 들이도록 점진적 [단계적]으로 인간을 준비시키신다. 여기에 독특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 담겨 있다.

1.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전 인류가 복을 받고 하느님을 알도록 마련하셨다

하 느님은 태초에 원조(原祖 아담 하와)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원조들의 타락에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어떤 한 사람(노아 아브라함 등)을 시켜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셨다. 또 그 사람이 속한 무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셨다.
특히 당신 계시의 역사를 시작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始祖)가 되게 하고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으셨다.
이 민족이 전 인류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해 줄 과업을 떠맡게 되었으며 이 민족을 통해서 모든민족이 복을 받고 하느님을 알도록 마련되었다.
하느님은 한 번 더 새롭고 독특한 선택을 하셨는데 이 민족 안에서 한 사람 동정녀 마리아님를 택하셨다.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영원한 행복)로 인도 할 구세주를 보내셨다. 이분이 바로 사람이 되시어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유대 왕이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1세가 로마 황제로 있을 때, 이스라엘의 한 딸(마리아)에게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직업은 목수였다.
하 느님 나라를 가르쳤으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이들을 살게 하시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며 스스로 하느님 자신임을 드러내셨다.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기간 중 본시오 빌라도 총독 치하(治下)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죽음을 이긴 부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福音 복음]이 되고 이 복음이 그로부터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하느님 아버지[聖父 성부]는 이분 안에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완전히 충만히 주신 계시의 완성이시다. 그 분 이후에는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하 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은 몇몇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이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성서(성경)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글로 적어서 전한 것이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별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내림을 준비하고 예언하신 하느님의 역사(歷史)이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신 역사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하느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이며 완성이다. 신약성서의 중심 주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부활, 교회 창립 등이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그들의 무리[교회]는 이 모든 것을 '거룩한 유산'으로서 오늘까지 보존하고 전하고 있다.

3.하느님은 구원의 역사를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다

하 느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님에게 까지 이르며, 그 분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세상 끝 날까지 인류 구원이 완전히 이뤄지기 위해 계속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계속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의해서만 사람의 최종 목적과 행할 바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 뿐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인생의 참보람을 맛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님

예수 그리스도님
1.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구원하시는 하느님" [YHWH(Yahweh 야훼)]을 뜻한다

이 이름만이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은 하늘 아래 없다.

야훼

네 개의 자음자 YHWH로 된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부여하신 이름이다. 이 이름의 본래의 발음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과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Yehovah(여호와)로 부르나, 더 정확한 발음은 Yahweh(야훼)임이 입증되었다. 이 이름의 뜻은 "나는 있는 나다." (출애 3,14)라는 의미로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낸다. 유대인들은 존경의 표로 이 이름을 절대로 발음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Adonai 주님) 그리스어로 기리오스(Kyrios 주님) 라틴어로 도미누스(Dominus 주님)로 읽었다.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서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2.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 부음을 받는 이"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아(Messiah 救世主 구세주)를 그리스어로 의역한 존칭이다.

하느님으로서 세상 구원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이 분은 하느님 성부께 대한 친자(親子) 관계로서 성부의 외아들이시며 하느님 자신이시다.
예 수 그리스도님을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라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며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신명 6,4-5)
오직 하느님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듯이 한다. 또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으로서 주권'을 뜻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주의 주님이시며 역사의 주님이시다.

3. 그리스도님은 천주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의 중심이다

이유는 모든 종교가 인간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리스도님은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님은 인간이 완성되는 길이요 진리이며 인류의 중심이다

사람이 누리고자 하는 최고 의 행복이요 생명이며 모든 마음의 기쁨이다. 인류의 종말이요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다.

5. 신비스러운 그리스도님의 전생애와 우리의 친교

그 리스도님의 삶 전부가 연속되는 가르침이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 그 분의 침묵과 고통, 그분의 기적, 기분의 기도, 사람을 위하시는 그분의 사랑,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울이시는 그분의 각별한 애정,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상의 전적 희생을 받아들이심과 그분의 부활, 이 모두(전생애)가 그분 말씀의 체현(體現)이었고 하느님 아버지의 계시 완성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요한14,9)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성부께서는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루가 9,35) 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하느님 계시의 전달

하느님 계시의 전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원하신다. 즉 예수 그리스도님[완전한 계시자]을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며 그 계시(啓示)는 세상 극변까지 전해져야 한다. 이 계시 전달은 주님의 명(命)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 구두(口頭,口傳 구전)로

사도(예수 그리스도님의 열두 제자)들은 그리스도님의 말씀과 대화와 업적에서 배운 것과, 성령의 영감(靈感)에서 얻은 바를 설교로 전하고 모범으로 보여 주고 가르침으로 전했다(요한21,25).
이는 기록되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문서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의 원천이다.이를 성전(聖傳)이라 한다. 따라서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더욱 확실히 밝혀주는 것이다.
즉 교회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교리 가르침, 실천적 관행과 행동 규범, 경신(敬神) 의식, 종교적 체험이다. 예를 들면 예로부터 전해 오는 공의회 [세계주교회의]의 문헌과 역대 교황의 권위있는 문헌, 교부(서기96~760년 그리스도님의 저술가)들의 문집 등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제1세대는 아직 기록된 신약성서를 가지지 못했으며, 신약 성서 자체가 살아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성서 유일주의를 주장하는 개신교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2.문서(文書)로

사도들과 그 측근의 제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구원의 소식을 글로 기록 했다. 이를 성서(聖書)라 한다. 이 '성서'만으로 모든 계시에 대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다.

하느님의 계시는 두 가지 방법 [입으로 전한 말(구전,전통) 글로 쓴 기록(성서) : 2태살 2,15] 으로 전해진다. [개신교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만이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다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 "적혀지고 침묵하는 말씀"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님)의 종교이다.
왜냐하면 성서 전체는 단지 책일 뿐이며 그 하나의 책은 그리스도님이시다. 성서 전체가 그리스도님께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서 전체가 그리스도님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기 때문이다.

3.교도권(敎導權)

교 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권위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 루가10, 16)에 바탕을 두고,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성서]과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성전]에 대한 유권적 해석[교도권(敎導權,가르치는 직무)의 행사]을 한다.
그러나 이 교도권이 하느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고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한다. 즉 성전과 성서와 교회의 교도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다.

성서의 정경(正經)

성서의 정경(正經)
교회는 사도 전승(傳承)에 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돼야 할 지를 판단했다.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서의 "정경"이라 한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 46권(예레미이야서와 애가를 한 권으로 보면 45권) 과 신약성서 27권이 들어 있다. 신약성서 중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전한 4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주요한 증언이므로 모든 성서의 핵심이다.

1. 그리스어 칠십인역 46권과 히브리어 유대교 경전 39권

구약성서의 권 수에는 천주교(46권)와 개신교(39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 근원을 살펴 본다.
이 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 여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 =셉튜어진트(Septagint) 희랍어판]이라 한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된 구약성서의 정경(正經) 39권이 있다. 이를 제 1경전(정경)이라 한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을 합친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13~14장), 에스델서 일부 (10,4~16,24)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 이라 한다.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제 2경전]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다.

2.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리스오 칠십인역 46권을 성서로 인정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 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 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에서 300 구절을 사용했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태 6,14 / 집회서 28,2
마르코복음 6,15 / 집회서 48,9~10
루가복음 13,27 / 1마카베오서 3,6
루가복음 24,4 / 2마카베오서 3,26
요한복음 3,12 / 지혜서 9,16
로마서 1,20~32 / 지혜서 13,10~19
1베드로서 1,6~7 / 지혜서 3,5~7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근원이시며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 [天主 천주]이시다. 천주교는 이러한 하느님을 믿는 계시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세우셨다. 또한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님 으로부터 유래하므로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한자음역 基督敎 기독교)라 한다.
그 리스도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를 '그리스도교인(Christian)'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주교를 가톨릭[Catholic '전체성' '완전성'의 뜻을 지닌 '보편적 (공번된)']교라 부른다. 빛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보편적인 분이시다. 그분이 교회 안에 계시므로 교회는 항상 어디서나 보편되다.("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새 백성을 이루도록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교회를 파견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그 본질상 선교적이며 보편되다.

1. 교회의 이름

교 회는 단순히 건물을 뜻하거나 자선이나 도덕적 정신적 수양을 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그리스어 Ekklesia)란 말은 '불러 모음'을 뜻한다('Church'란 '주님께 속한 모임'의 뜻). 하느님께서 온 세상에서 모으시는 백성이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聖體 성체]으로 살아, 머리(Head)이신 그리스도님의 몸이 되며 성령(聖靈)의 성전(聖殿)인 하느님의 백성이다.

2. 교회의 기원과 설립

교 회는 우주 창조 때부터 이미 예시(豫示) 되었으니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에 참여하도록('하느님의 가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점차로 형성되어 실현되어 왔다. 하느님 백성을 모으기 위한 직접적인 준비는 이스라엘을 하느님 백성(교회)으로 선택하심으로써 시작되고 놀랍게 준비되었다. 이는 장차 모든 민족을 모으는 징표가 된다. 구약시대(그리스도 강생 전)는 교회의 전역사(前歷史)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降生)하심(신약시대)으로써 말씀과 활동으로 교회를 창립하셨다. 신앙과 세례로 그리스도님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음으로써 하느님의 가족(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이 된다. 성령 강림으로 그 교회가 세상에 드러났다.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관념이 아니다. 성 베드로의 후계자들과 다른 사도들의 다스림으로 역사안에 계속 살아 있는 존재이다. 교회의 생명은 그 창시자가 부활하여 현존(現存)하시는 주님이라는 데 있다. 교회는 세상의 박해를 견디고 하느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그 순례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스도님의 나라(하느님의 나라)인 교회는 지상에서 이미 이 나라의 시작과 싹이 된 것이므로 그분의 나라는 이미 지상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지금 주님은 와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신다. 세상 종말에 교회는 모든 지상의 구원된 이들이 하늘의 영광안에 모임으로 완성될 것이다.

3. 천주교의 교리

하느님의 외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 되기 위해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님이 그 중심이다. 그 내용은 서로 연결된 네 부분으로 나뉜다.

신앙고백(12항 참조)
그리스도의 신비의 기념(13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삶(14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기도(13항 참조)

천주는 유가의 상제
그 리스도교를 중국에 처음 소개한 마태오 리치가 유교 경전에 상제(上帝) 혹은 천(天)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절대신이므로 한자로 천주(天主)라고 번역했다.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이익은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이다."고 했다.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은 삼국유사에서 전승된다.

그리스도교(기독교)용어의 잘못 사용
우리나라 개화기(1876~1910)에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아 '야소' (耶蘇 예수의 한자 음역)교라 했고 또한 천주교와 야소교로 구별하기도했다. 뒤에 와서 가톨릭과 예수교로 구분했으며 특히 예수교를 '기독교' '개신교'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기독교 基督敎)'라는 용어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인 여러 교회와 교단으로 개신교(참조 제20장 제24장) 만을 일컫는 말로 어느덧 잘못 사용되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
계시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자비로 친구를 대하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을 당신과 일치하도록 초대하신다. 이러한 초대에 인간이 응답한다. 이 응답이 신앙이다.

사도신경 [12절 신앙 고백]

①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③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님께 잉태되어 나시고,
④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⑥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⑦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⑧ 성령을 믿으며,
⑨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⑩ 죄의 용서와,
⑪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⑫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이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선물이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천주교회는 초창기부터 성전과 성서에 바탕을 두고 모든 사람을 위해 간결하고 규범적 신앙 조문을 결집.요약해서 전달해 왔다. 이러한 신앙의 요약.종합들을 '신앙 고백' (신앙 선언) 혹은 신경(신경)이라고 부른다. 여러 신경들 중에서 특별히 두가지가 있는데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이다.

사도신경(使徒信經)

1. 사도들의 신앙 요약이다

열두 사도들의 수로써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전체를 상징하기 위해서 신경을 열두절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 신경은 사도들[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로]의 신앙 요약이며 가장 오래되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2. 천주교회의 정체(正體 Identity)이다

천주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알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시되는 천주교의 정체(正體, Identity)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하는 것 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들의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창세기1,1) 창조의 진리가 위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두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다.

3.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어 주시기 위해 세계를 창조 하셨다. 하느님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바로 이 영광을 위해서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

4. 인간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이다

구원의 역사 전체는 바로 성부.성자.성령 이신 참되고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인간들과 화해하시고, 그들을 당신과 결합시키기 위한 길과 방법의 역사 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經綸(경륜:하느님 자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의 생명을 주시는 모든 업적) 이다. 무한히 행복한 인간의 삶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신앙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

천주교의 전례

천주교의 전례
천주교의 의식을 전례(典禮, Liturgy)라 한다. '전례'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함을 뜻한다. 우리의 구속주(救贖主)이시고 대사제 (大司祭)이신 그리스도님께서 전례를 통해서 당신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교회를 통해서 우리 구속을 위한 사업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님의 행위인 전례는 그분 교회의 행위이기도 하다. 교회에는 미사(Missa, 聖餐祭 성찬제)와 칠성사(七聖事,Sacrament) 그 외에 전례가 있다. 전례의 중심은 미사이다.

미사 Missa(Mass)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상의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의 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교회 안에 물려준 천주교회의 만찬 제사이다. 이 미사는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다.

1. 성사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셨으며 그로써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은총의 유효한 표지인데 일곱가지가 있다.

그리스도교 입문(기초) 성사

세례(洗禮) : 그리스도님 안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다. (마태 28,19~20)

견진(堅振) : 행동과 함께 하는 말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성령을 준다.(사도 8,15~17)

성체(聖體) : 그리스도 안에 변화되도록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신자들을 양육한다. (마태 26,26~28)

치유의 성사

고해(告解 고백 告白) : 세례 받은 후 지은 죄의 용서를 준다.(요한 20,23)

병자(病者 종부 終傅) : 중병이나 노쇠로 고통을 겪고 있는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 평화 용기의 은혜를 준다. (마르 6,13)

구원을 위한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

성품(聖品 신품神品) : 신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거룩한 권능[가르치는 직능(예언직), 성화(聖化)하는 직능(사제직), 다스리는 직능(왕직)]을 준다. (루가 22,19~20)

혼인(婚姻)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가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혼인계약이다. (마태 19,4~6)

2. 기도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다. 기도에는 찬미, 감사, 청원, 참회 네 종류가 있다. 이를 완전하게 가르친 기도는 그리스도가 직접 지어준 "주님의 기도"(마태 19,6~13)이다

주님의 기도 (전 복음서의 요약이며 성서의 핵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나아가는 길
악에서 구하소서. ─┘

서로 사랑하시오

서로 사랑하시오
양심은 인간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판단하며, 행한 행동을 평가하는 이성(理性)의 실천적 판단을 증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양심은 개인의 윤리성 뿐 아니라, 윤리의 보편적.객관적 규범이므로 신법(神法)의 진리이다. 그러나 환경과 교육의 성격에 따라 사람마다 주장이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양심은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는 심판관이다.
그 러므로 양심의 교육이 필요할 뿐 아니라, 양심이 도덕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양심대로만 살면 된다는 윤리는 위험하다>. 따라서 양심의 판단보다도 다른 윤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십계명과 사랑의 계명과 교회가 정한 법들인데 하느님을 향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삶, 참 행복의 길)을 인도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는 윤리 분야에 교사 역할을 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구원의 어머니가 된다. 대립과 반목이 있는 곳에 화해를 심는 지혜롭고 사랑에 찬 안내자이다.

1. 십계명("열 조목")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당신이 생명으로 들어가고자 하면 계명들을 지키시오." 하고 말씀 하심으로써 예수께서 십계명의 중요성을 확인하셨다.(마태 19,16~17)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 네 온 정성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마태 22,37)

첫 째 계명 : 한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흠숭하고 사랑하라.
둘 째 계명 :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셋 째 계명 :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출애 20,2~10 신명 5,6~15 참조)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르 12,31)

넷 째 계명 : 부모에게 효도하라.
다섯째 계명 : 사람을 죽이지 말라.
여섯째 계명 : 간음하지 말라.
일곱째 계명 : 도둑질하지 말라.
여덟째 계명 : 거짓 증언하지 마라.
아홉째 계명 :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열 째 계명 :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출애 20,12~17 신명 5,16~21 참조)

십계명은 하느님의 율법을 요약하고 선포하는 생명의 길이다. 또한 유기적 일체를 이루고있으므로 계명마다 전체를 가리킨다. 한 가지 계명이라도 어긴다면 그것은 계명 전체를 어긴다.

십계명의 첫째 말씀은 하느님의 지배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참된 하느님께 향하게 하여 인간을 다른 모든 예속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지상의 어떠한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다음으로 우리 부모를 공경하고 또 당신께서 우리 선익을 위해 공권을 주신 사람들을 공경하기를 원하셨다. 즉 부모가 잘나거나 못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항상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만이 하느님의 부성과 모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표지이다. 부모 덕분에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의 선익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권위만이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다.

2. 사랑의 계명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선언하셨다.

새 계명
"나는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 (요한 13,34 15,12 15,17)

황금률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대로 해 주시오."(마태 7,12)

또 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으며 두 가지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다 같이 가장 큰 계명임을 가르치셨다.(마태 22,37~39) 이는 새로운 법이며 복음의 법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다른 모든 계명의 근원이 되는 유일한 계명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이다.

3. 교회가 정한 법

교회는 자신의 고유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며, 원활한 신자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교도권(敎導權)으로 법을 제정한다. 법 제정의 근거는 성서와 성전 그리고 자연법[양심]이다.

4. 참된 행복의 길

인 간은 잉태될 때부터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영원한 참된 행복을 운명적으로 누리도록 되어 있다. 그 길은 소유나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다. 사람됨(존재)의 차원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가난.온유함.자비.평화야말로 하느님께5서 인간 마음속에 심어주신 행복 욕구에 응답하는 진정한 길이다.

참된 행복 선언(삶의 대헌장)

참된 행복은 지상재화(地上財貨)를 사용하는 데 식별기능을 정해주며,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참된 행복 선언은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는 그리스도님 안에서 삶의 대헌장(大憲章)이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배부르게 되리니.
복되어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받으리니.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
복되어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 5,3~10)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비록 무신론자라도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의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자를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Anonynous Christian) 이라 한다.

1. 익명의 그리스도인

인간 쪽에서 보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신론자일 수 있어도, 하느님쪽에서 보면 인간이 본성적으로 신적 성품을 모시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로 고백하고 있는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비(非)그리스도인, 설령 무신론자라도 그들의 구원 가능성에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 하기를 원하시는"(1디모 2,4)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원 가능성을 비관적(悲觀的)으로 본다는 것은 온 인류를 구원 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 뜻을 과소 평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란 단지 겉으로 드러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여,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인들을 함부로 앝보거나 배척 해서는 안될 뿐 아니라, 형제적 자세로 대화할 수 있으며, 인간 사랑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표현이다. 결코 무신론자나 타 종교인이게 그리스도교적 이름을 강제로 씌우려는 의도는 아니다.
진정한 자아사랑,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데 다른 종파라는 것이 제약이 될 수 없다. 무신론자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얼마든지 맹목적인 그리스도교 신자 이상일 수 있다.

2. 명시적(明示的, 참된) 그리스도인

그저 교적부에 이름을 올려 놓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서 인간에게도 요청하는 사랑의 정신("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2)을 구체화 시키는 사람이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를 연장(延長)하는 사람이다(마더 데레사 수녀, 안중근 토마스 의사 등, 1~2항 참조). 그리스도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일지라도 '명시적'으로 그리스도의 활동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 든지 있을 수 있다.

3.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

그 리스도께서는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명백한 말씀으로 강조하셨다. 모든 사람이 마치 문(門)을 통하는 것처럼 세례(洗禮)를 통하여 들어가는 교회의 필요성을 확인하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구원의 정상적 방법이다. 그러나 본인의 탓 없이 복음(福音.그리스도)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길로써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다.

천주교와 조상 제사

천주교와 조상 제사
인(仁)을 핵심으로 하는 유교는 효(孝)를 통해 인을 실현하며 모든 덕의 근본을 효라 한다. 이 효에 의해서 사람됨을 평가한다.
효의 정신은 생명을 준 부모와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 있다. 이 효도는 부모 생시뿐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하여 이어간다(중용 19장).

제사는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생시와 같이 공경하는 효도의 증표다.
그러므로 유교의 조상 제사는 복을 구함에 있지 않다. 자녀로서 부모와 선조에게 보본(報本)과 보은(保恩)의 효를 계속 실현하는 데 있다.

조상 봉제사(奉祭祀)에 대해 천주교는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미신이 아닌 관습을 그대로 허용한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점을 강조한다.

조상에 대한 올바른 효도

1. 조상의 영혼[귀신]
신(神)처럼 숭배할 수 없다.

2. 길흉화복
조상의 영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3. 죽은 후
조상의 영혼[귀신]이 살아서 배회한다든지, 음식으로써 그 영혼을 공양한다든지, 또는 제사 때에 일시적으로 강생하여 제물을 즐겨 먹고 축복 해 준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상상(想像)일 뿐이다.

4. 죽은 이의 영혼 살아 생전에 닦은 행실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천국 혹은 지옥 그리고 연옥 (煉獄:천국에 가기전 단련 받는 중간 처소)의 심판을 받는다. 교회는 천국에 들지 못하고 연옥에서 보속(補贖)하고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한다.

천주교와 사회

천주교와 사회
사회 질서와 발전은 인간 복지를 목적으로 한다. 진리에 바탕을 두고 정의 위에 건설되어 사랑으로 활기를 띠어야 한다. 천주교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업들을 하여 사회 전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힘쓴다. 현대인이 사회 연대 책임을 주요한 의무로 여기고 지키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자선 사업 기관 - 114,238개
천주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선사업기관으로 봉사하고 있다.
병 원 5,541개, 진료소 14,833개, 결핵요양원 5,617개, 나병원 811개, 노인 장애인 요양소 11,973개, 고아원 6,661개, 결혼상담소 8,755개, 특수학교 8,927개, 행려자 시설, 약국, 무료 급식소, 헌혈사업, 안구은행, 양로원, 소년원, 미혼모 시설, 결연 사업 등이 31,922개이다.

교육기관 - 173,758개이다. 유치원 53,790개, 초등학교 83,345개, 중고등학교 32,904개, 대학교 등 고등 교육기관 3,719개, 사회 교육센터 9,080개 등이 있다. 그리고 교구 및 수도회 성직자 양성 기관은 총 6,655개(신학교 4,220개, 신학원 2,435개)이다.

언론 사업 - 신문사, 방송국 등으로 건전한 사회 여론 조성에 이바지한다.

천주교와 세계

천주교와 세계
교회는 결코 현세적 야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는 진리를 증거하고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할 뿐이다. 그 세계관은 세 가지 면에서 살펴 본다.

1. 국제주의

하 느님은 모든 이의 아버지요 구원자이시다. 그 뜻을 실현하는 곳이 세상이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현세의 나라가 아닌 천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세적 국제주의와 다르나 국제주의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인류애를 촉진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 천주교는 다방면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이를 돕고 있다.

2. 전쟁

인간이 죄인(罪人)인 한 전쟁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랑으로 결합되어 죄를 극복하면 폭력도 극복할 수 있다고 천주교회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가져오는 악과 불의를 볼 때 전쟁을 피하기 위해 무리없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기도한다.

"주님, 기아와 병마와 전쟁에서 구해 주소서"

국가의 정당 방위를 위해 전쟁은 가능하다.

과학(원자,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막대한 무차별의 파괴를가져온다. 이런 파괴는 정당 방위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전면전쟁(全面戰爭)이므로 하느님과 인간 자신을 거역하는 범죄이므로 교회는 단호히 단죄한다.

3. 평화 - 정의의 실현이다

이 정의는 사랑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지상의 평화이다. 이러한 사랑을 인류에게 가르치신 분이 그리스도님이시다. 그리스도님은 평화 자체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알고 사랑의 계명을 받은 그리스도 신자는 지상의 평화 를 실현하는 데 특별한 사명 을 띠고 있다.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다."(마태 5,9)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극히 가깝게 본받은 아씨시의 성인 프란치스꼬의 유명한 "평화의 기도"가 있다.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천주교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에 힘쓰는가를 보여준다.

천주교회의 역사

천주교회의 역사
천주교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종교이다.

1. 서기(西紀)

그리스도님 탄생의 기원이며 천주교의 기원이다.

2. 고대 교회(1~604년)

교회 창설부터 311년까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참혹하게 박해하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함으로써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392년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으로써 세계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루게 된다.

3. 중세기 교회(605~1500년)

1054년에 콘스탄틴의 총주교가 천주교회의 교황권을 거부하여 동방 정교회(東方 正敎會 그리스 정교회 Greek Orthodox Chuech)를 세움으로써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와 1차 분열이 된다.

4. 근세기 교회(1500~1965년)

1517년 천주교 신부인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교황권에 반대하고 이탈하여 개신교 (改新敎 Protestantism) 를 세우므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천주교와 개신교로 2차 분열된다.
교 황 요한 23세(1958~1963)는 교회의 현대세계에 대한 적응을 목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하였다. 교회는 안으로 자각과 밖으로 개방을 목표로 '아조르나멘토' (Aggiornamento 적응-개혁과 쇄신)란 담대한 표어로써 오늘날 세계와 대화 중에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류 구원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공의회 : 종교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전 세계의 천주교 주교들의 회합.

5.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베드로가 첫째 교황에 임명된 후, 현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까지 264대에 걸쳐 천주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 오고 있다.

세계 천주교 현황(2000년 1월 1일 현재)
신자 수 : 10억4천5백여만명
전 세게 인구의 17.4%
아시아 인구의 3.0%

성모 마리아님과 성화상 공경

성모 마리아님과 성화상 공경
예수그리스도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이 예수께서 살았고, 접촉한 장소와 사물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고 성지(聖地)로서 존경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님을 따라 산 성인들에 대하여도 사랑과 경의를 다 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의 공경

마 리아님은 구세주의 구세(救世)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성모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의 일치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리아님은 그리스도님의 "어머니"요 그리스도님의 지체들인 신자들[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오래전부터 마리아님에 대한 교회의 신심(信心)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원을 위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얻어주는 마리아님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님의 중재 역할을 감소 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사실 마리아님의 온갖 영향은 그리스도님의 넘치는 공로에서 나온다. 마치 그리스도님의 사제직에 성직자나 평신도가 여러 모양으로 참여함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과 같다.

1. 천주교회는 하느님과 마리아님을 혼돈하지 아니한다.

하느님께는 마리아님을 포함하여 만물 위에 높이 공경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바치므로, 마리아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님을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 사랑과 공경을 드린다.

2. 천사와 성인을 초월하는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예(禮)는 상경지례(上敬之禮)이다

천사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예는 공경지례(恭敬之禮)이다.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께 기도하는 것은 전구(傳求, 代禱 대도)로 청한다.

3.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고, 하느님께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소서" 한다.

성화상의 공경

성상(聖像: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님의 형상, 성모 마리아님과 성인들의 상)이 상징하는 그 대상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국기 앞에 경례하는 것은 그 국기가 표시하는 조국에 대한 것과 같다.
성화상은 주로 그리스도님을 그리는데,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하느님에게서 본 것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상 자체에 신성(神性)이나 덕능(德能)이 있다고 경배하면 우상 숭배가 되고 십계명 중 첫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천주교는 십계명 중 첫 계명(출애20,3~4; 신명5,6~7)에 대해 개신교처럼 무조건 형상 제작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신 자체로 숭배 하려고 만드는 것을 금한다고 해석한다.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을 상징적 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셨다.
구 리뱀(민수21,4~9; 요한3,14~15)과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25,10~22; 1열왕 6,23~28)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성화상을 성당이나 가정에 모시는 것은 무언의 신앙 고백이며 기도를 고무시킨다. 또한 사람의 심정을 성스럽게 자극하여 성상이 표시하는 인물의 덕행과 위업(僞業)을 본받게 한다. 우상 숭배가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

한국 천주교회 역사
1592년 4월 일본의 풍신수길은 15만 7천여 명의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 출정(出征)을 계기로 일본은 국내에 크게 퍼진 천주교를 없애고자 했다. 선봉장으로 천주교 신자들만으로 편성된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 흑전장정(黑田長政 구로다 나가마사)를 비롯하여 오도순현(五島純玄 고지마 쥰겐), 천초종원(川草種元 야마쿠사 다네모토) 등 5만여 명이었다. 1593년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인 전교회장(후간 에이온)과 함께 소서행장이 머물고 있던 경상도 웅천성에 왔다. 왜군 신자들을 돌봐 주었으나 별로 전교 활동을 못하고 1595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임 란 7년 후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 4만여 명 중에 장기(長崎)지방 근처에서 7천 명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덕천막부(德川幕府)의 금교정책은 1611년부터 1720년까지 1백여 년 계속되었다. 조선인 신자 7천 명도 모두 순교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인질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데리고 갔는데, 북경에서 소현세자는 아담 샬 신부와 사귀게 된다. 세자가 북경에 있는 동안 조선인 2~3명이 세례 받았다고 한다.

우 리나라 실학(實學)운동의 선구자는 지봉 이수광(1563~1628년)이다. 특히 마태오 리치 신부가 지은 책 "천주실의" 등을 보고 새로운 실학을 일으켰다. 이 서적이 전승되어 그 후 8대손에 이르러 천주교를 믿는 운동이 일어 나고 후손들이 순교하게 되었다.

이수광의 실학운동이 이어 오는 중에 1백여 년 지나 천주교 연구 운동이 한강 유역 광주에서 남인 학자 이익과 그 문인들 사이에 일어났다. 특히 천주실의를 애독하면서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上帝)와 같다"고 했다. 1760년 경에 이익의 제자 안정복을 비롯하여 선비들 사이에 천주교 서적을 서학[西學:서양에서 들어온 학문, 天學: 천주를 믿는 학문]이라 하여 크게 읽혀졌다.

이익과 안정복 사이에 논의되던 천주교는 마침내 믿는 신앙 운동으로 발전 하였다. 거의가 남인파 학자들로 권철신.일신 형제, 이벽과 정약전.약종.약용 [1762~1836년, 다산(茶山), 요한] 삼형제 등이다. 이들은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천주교 교리연구 강학회를 열고 신앙운동을 일으켰다.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에 참석한 이승훈(당시 27세)은 부친이 동지사로 북경 가는 편에 따라가 그 곳 천주당에 갔다 이벽의 부탁대로 거기서 40여일 머무는 동안 필담(筆談)으로 교리를 배우고, 1784년 2월 귀국 길에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조선인 선비로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귀국 후 명례동[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을 중심으로 이승훈, 정약전 삼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조선 교회를 창립 하였다.

1784년 겨울부터 김범우의 집에서 주일(主日)행사를 거듭 한 것이 관헌에 발각되어 모였던 신자들이 모두 잡히게 되었다. 김범우는 태형을 받은 후 귀양살이에서 죽었다. 첫 번째 순교자이다. 1791년 신해년에 조상 제사 문제로 박해를 받았다. 이것이 그 후 1백년 동안 거듭되는 박해의 표면적 이유가 되었다.

1801 년 신유년 박해, 1839년 기해년 박해, 1846년 병오년 박해(조선교회 첫 김대건 신부 순교), 1866년 병인년 박해(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1871년까지 1만여 명 순교 : 일본은 1868년 구미 각 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화로서 명치유신이라는 정치 개혁을 하였다)

1886년 한.불 수호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양국인이 서로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가직 되었고, 1만 2천여 명의 신자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프랑스 성직자들은 자유롭게 전교하고, 개신교도 종교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1892년 명동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1896년 대원군의 부인 민씨(고종의 어머니)가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에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가 한국에 왔으며, 수 많은 순교자들 중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전 세계 교회는 이 분들에게 합당한 공적 공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 현황(1999년 1월 1일 현재) 신 자 수 : 384만5천864명 (전체 인구 4천685만8천463명의 8.2%)
주 교 : 22명
신 부 : 2,800명
수 도 자 : 8,139명
교 구 : 15개
본 당 : 1,147개(공소 1,148개)
해외 교포 신자 : 102,398명(미국 64,802명)
58개 국가(사제 : 140명, 수녀 : 98명)
교포 본당 : 137개(집회소 75개)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모든 개신교의 교파(갈라진 형제들 :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진 여러 교회와 교단)는 그 기원이 사도 시대에 있지않다. 모두 근대에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서 몇 사람이 갈라져 나가서 독립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오늘 한국 주요 교파는 루터교회, 감독교회[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 100 여 교파가 있다(1985년 12월 31일 현재). 전 세계에는 350여 교파가 있는데 대개 위의 교파에서 분열된 것이다.

1. 루터교회

독 일인 루터(1483년~1546년)는 천주교회의 신부이다.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자로서 정통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주장했다. 1517년에 교황권을 거부하고, 교회에서 파문 된 후 미사, 성체, 성직자와 수도자의 독신 생활을 반대 하였다. 드디어 1530년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루터는 대사(大赦) 논쟁을 계기로 하여 당시에 교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대한 불만을 모두 표현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종개혁은 순수한 종교적 사건은 아니다. 한국 루터 교회는 1959년 '루터란아워'라는 방송 선교를 통해서 시작했다.

2. 성공회[영국 감독교회]

1534년 영국 왕 헨리8세가 중혼(重婚) 문제로 가톨릭에서 이탈하여 교황권까지 거부하고, 국왕이 교회의 최고 통치자가 되는 영국 국교(國敎) 로서 교회를 세웠다. 성공회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889년에 시작되었고 현재 서울, 부산, 대전교구로 나누어져 있다.

3. 장로교회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1509~1564)이 교회 행정제도는 교황제도가 아니고, 신도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장로회 제도를 주장하였다. 또한 성경만을 신앙 규범으로 삼고 절대적 예정설을 강조하였다. 낙스가 이를 전파하여 1560년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장로교회를 창립하였다. 이 교회는 스크틀랜드의 국교회(國敎會)가 되었고, 영국과 미국 장로교회 확산의 중심지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장로회 의사 알렌에 의하여 장로교 선교가 본격화 되었다. 1907년 독립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창설되었으나, 해방 후 신앙 및 신학 노선의 갈등과 지방색, 교권 등이 겹쳐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재건파, 고신파, 조선신학교[기장]파, 예장통합파, 예장합동파 등 53개 교단이 있다.

4. 감리교회

1739년 영국 성공희 사제 요한 웨슬레(1703~1791년)가 세웠다. 그 후 교회 제도와 교리 문제로 몇 차례 분열되었다. 미국 감리교회는 1784년 웨슬레가 파견한 선교사 코크가 세웠다. 남북전쟁으로 남.북 감리교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합동하여 연합감리회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감리교회의 일본주재 선교사 맥레이가 와서 세웠다.

5. 성결교회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동양선교회인데, 이는 1901년 미국인 카우만이 일본에서 창설했다.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의 정신을 따르며, 선교회로 유지되다가 1907년 한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1962년 이후 두 교단으로 분열되었다.

모든 개신교파의 공통점은 성서 유일 규범주의와 성서 자유 해석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인류
하 느님은 시초에 한 인간 본성을 만드시고, 죄로 인해 흩어진 길 잃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온 인류)을 당신 아들의 교회로 다시 불러 모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교회]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는 인류가 일치와 구원을 다시 찾는 곳이므로 하느님과 인류, 인간과 인간이 화해를 이루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인류 안에 하나 밖에 없다.
따라서 '로마에 살고 있으면서 인도 사람이 자기 지체(肢體)임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효과있고 영구적으로 성령의 일치 안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님께 전 인류를 하나로 모으고 있다.

성서읽기 오십이주

일주

일주
본 성서문제 시리즈는 52주(약1년)에 걸친 것입니다. 과정을 모두 마치면 신구약을 모두 읽고 묵상하게 됩니다. 참고로, 문제는 한국의 한 교구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오 6,33)

일주:마태오 복음 1,1 - 21,27

마태오 복음 : 마태오는 "하느님의 아들"이란 뜻으로서 팔레스티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썼읍니다. 다섯편의 연설집, 구약의 논법 사용,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회의 복음교리서입니다.
쓰여진 시기 : 예수 어록과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로 하여 쓰여진 것으로 보아 교회와 유다 백성 사이에 결별이 일어났던 서기 70년 경 이후로 추정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는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1장) (답) 성령

2.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까?(4장) (답)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3. 우리 자신은 그리스도인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어떻게 한다고 하셨습니까?(5장) (답) 아무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4. 기도, 자선, 단식은 유다인의 3대 신앙 행위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회개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6장)
(답)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5. 기도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6장)
(답)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데서 아버지께 기도

6. 단식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6장)
(답)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단식

7. 너희가 듣고 본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걸으며 )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 귀머거리가 (들으며 )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 )이 전하여 진다.(11장)

8. 마태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답) 세리

9.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답)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10. 말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2,35절을 읽고 난 뒤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 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어 놓는다.

11. 우리 생활 전체를 주님 중심으로 살지 않을 때 사탄의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무어라고 꾸짖으셨습니까?(16장)
(답)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내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12. 예수께서 수난에 대해서 두 번째 예고하신 곳은? (답) 갈릴레아

13. 네가 완전한 (사람 )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 )을 다 팔아 (가난한 )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 )를 얻게 될 것이다(19장)

14. 제자들의 자리다툼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20장)
(답)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15. 예수님은 길가의 무화과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셨지만 잎사귀 밖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답)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주

이주
마태오복음 21,28 - 마르코복음 11,11

"때가 다 되어 하느님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코 1,15)

마 르코 복음 :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다른 복음서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이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죽음, 부활 안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생생한 예수님 사건의 증언 록이다.
쓰 여진 시기 :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13장의 내용을 볼 때 서기 70년경으로 보고 있다. 유다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70년에는 예루살렘마저 함락됨으로써 이 본문이 예언인지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쓰여졌는지에 따라 70년 전후로 조정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
1. 우리는 천국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복을 입지 않고 그 잔치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하신다 하였습니까?
(22장)
(답)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데 내어 버린다.
2. 첫째 가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고 하십니다.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3. 주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오실 지 모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25장)
(답) 미련한 처녀는 등은 있으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4. 예수께서 (빵 )을 들어 축복하시고 받아먹어라. 이것은 ( 내 몸 )이다. 하시고 이것은 나의 (피 )다. (너희 죄 )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 )의 피다.(26장)

5. 베드로는 결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안을 것을 장담하지만 결국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우리 자신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는 없는지요? 묵상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장소 두 곳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26장) (답) 바깥 뜰, 대문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신 다음 성전 휘장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답) 위에서 아래로 두 폭으로 찢어짐.

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준 사명은 무엇입니까?(28장)
(답) 복음선포

(마르코 복음)
8.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를 부르시면서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하신 말씀은?(1장) (답)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9. 우리의 기도와 희생과 선행은 불우한 이웃을 치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누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까?(2장)
(답) 네 사람의 믿음

10. 오그라든 손을 펴 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봉헌을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3장) (답) 손을 펴라

11.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와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을 땅에 심어 놓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4장)
(답) 큰 가지가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12, 우리는 긴 고통 중에 있을 때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5장)
(답)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음

13. 안에서 나오는 것,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입니까?(7장) (답) 악한 생각들

14. 8장 35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15.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큰 소리로 청한 내용은?(9장)
(답)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 주십시요.

삼주

삼주
마르코복음 11,12 - 루가복음 10,37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르코 10,15)

루 가 복음 : 공관복음서 중 세 번째 나오는 루가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나 마르코 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꽤 많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전해 준다. 특별히 '소외 받는 이들의 복음서'라 불리는 루가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찬미와 기쁨, 희망과 평화의 분위기로 넘치고 있다.
쓰여진 시기 : 서기 50-60년경에 쓰여진 예수님의 어록과 70년경에 쓰여진 마르코 복음서를 참조해서 80-90년경에 쓰여졌다고 본다.
목적 : 이미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드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전달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는 히브리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구세주'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마르코 복음)
1.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우리는 봉헌의 참 의미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12장44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2. 무서운 재난이 닥쳐올 때 주님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누구를 위하여 줄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13장)
(답) 주께서 뽑으신 백성을 위하여

3.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무엇이든 )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 )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의 뜻대로 하소서.(14장)

4. 빌라도는 예수께 "너는 할 말이 하나도 없느냐?" 하고 다시 물었을 때 예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셨습니까?(15장)
(답)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5. 예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갈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 대장이 한 말은?(15장)
(답) 아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6. 예수님을 바위로 파서 만든 무덤에 모신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입니까?
(15장) (답)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16장)
(답) 막달라 여자 마리아

8.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 )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 )도 쫓아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 )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16장)

(루가복음)
9. 성모님의 순종은 목숨을 바치는 순종이었습니다. 천사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마리아의 응답은?(1장)
(답)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0. 예수님의 탄생 목자에게 알린 천사와 수많은 군대가 나타나 함께 하느님을 찬양한 내용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2장)
(답) 하늘 높은 곳에서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1. 나눔은 사랑이 수반되어야 하며 사랑은 마음의 회개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군중이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요한의 대답은?(3장) (답) 속옷 두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12. 하느님의 신실성에 도전하는 사탄은 우리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유혹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보라고 유혹할 때 예수님은 대답은?(4장)
(답)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13.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 너는 이제부터 (사람 )들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 )을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를 따라 갔다.(5장)

14. 열두 사도의 이름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6장) (답)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시몬, 유다, 가리옷 사람 유다

15.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준 죄 많은 여인의 이름은?(7장) (답) 마리아

사주

사주
루가복음 10,38 - 요한복음 6,15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1)

요 한복음 :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임을 말해준다. 저자는 공관복음서를 이미 알고 있었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신비의 깊은 영상과 보완적인 측면을 기억에서 되살리려고 애쓴 것으로 보아 '공관복음서들의 보완'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쓰여진 시기 : 이집트에서 발견된 2개의 빠삐루스 조각이 중요하다. 가장 오래된 사본이 서기 125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이미 요한 복음서가 에집트에 알려졌음으로 보아 복음서는 서기 100년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루가 복음)
1.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는 종은 어떻게 됩니까?(12장) (답)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2. 우리 역시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답) 아예 잘라버려라

3. 우리는 모두 천국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재물이나 명예나 욕망 때문에 하느님의 초대에 거절하는 일은 없는지요? 청해야 할 손님에서 초대된 세 부류사람들의 핑계는 무엇입니까?(14장) (답) 세상걱정

4. 잃었던 양은 성자의 사랑에 대하여, 잃었던 은전은 성령의 사랑에 대하여, 잃었던 아들은 성부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15장에서 '잘 들어 두어라' 라는 말씀이 몇번 나옵니까? (답) 2번

5. 요한 때까지는 (율법 )과 예언자 시대였다. 그 이후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 )이 선포되고 있는데 누구나 그 (나라 )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하늘 )과 (땅 )은 사라져도 (율법 )은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6장)

6.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17장) (답) 목에 연자멧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7.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바리사이파 와 세리의 기도 중에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까?(18장) (답) 세리

8. 자케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나서 회개의 표시로 자기 재산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였습니까?(19장) (답)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9. 20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제외한 인물의 이름을 모두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요한, 카이사르, 모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10.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 사람에게
(박해 )를 받겠지만 (머리카락 )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 )을 얻을 것이다.(21장)

11. 22장-23장까지 '사람'이라는 단어가 몇번 나옵니까? (답) 57번

12. 내 (아버지 )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 )을 받을 때까지(예루살렘 )에 머물러 있어라.(24장)

(요한복음)
13. 맹물과 같은 우리를 성령을 보내시어 단 포도주와 같이 바꾸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누구의 부탁으로 이루어졌습니까?(2장)
(답) 예수의 어머니

14. 물과 (성령 )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육 )에서 나온 것은 (육 )이며 (영 )에서 나온 것은 (영 )이다.(3장)

15. 인간의 영적, 육적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4장 14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16. 5장에서 '아버지' 란 단어가 몇 번나옵니까? (답) 20번

17. 하느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5장)
(답) 하느님을 증언하는 일

오주

오주
요한복음 6,16 - 사도행전 3,10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사도행전 17,27)

사 도행전 : 사도행전은 교회의 기원과 성장에 관하여 전해주는 책이다.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을 배경으로 예수 승천에서부터 30여년간인 서기 30년경부터 61년까지 초기 교회 생활을 알려준다.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성령의 복음서' 라고도 한다. 사도행전이라는 책명은 2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다.
집필동기 : 예수 승천 이후 교회의 성장을 전하고자 했다. 교회의 탄생과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당시 로마 지배하에 겪는 온갖 시련과 박해를 극복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함으로써 하느님 백성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 나갈 것을 일깨우고 있다.

(요한복음)
(요한복음)
1. 예수님께서는 제 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위해서 힘쓰는 사람은 어떠하다고 하였습니까?(7장)
(답) 정직하여 그 속에 거짓이 없다.

2. 너희가 내 (말 )을 (마음 )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 )이다. 너희는 (진리 )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 )가 너희를 (자유롭게 ) 할 것이다.(8장)

3. 제자들이 예수님께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하신 대답은?(9장) (답)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성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모두 누구라고 불렀습니까?(10장)
(답) 신

5. 다시 살아난 나자로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가져다주심을 체험합니다.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11장)
(답)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6. 밀알 하나가 (땅 )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 )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 )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 )을 보존하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12장)

7. 13장은 사랑의 기준을 제시해준 장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시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의 교훈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실천하면 무엇을 받습니까? (답) 축복

8. 너희가 나를 (사랑 )하면 내 (계명 )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 )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 )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 함께 계시도록 할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 )의 (성령 )이시다.(14장)

9. 15장 10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0. 예수께서는 어떤 것이 죄라고 지적하신다고 하십니까?(16장)
(답)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11. 17장에서 '영광'이라는 단어가 몇번 나옵니까? (답) 8번

1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그렇게도 환호하던 무리들이 금방 마음이 바뀌어 악을 쓰며 예수님 대신 누구를 놓아 달라고 합니까?(18장)
(답) 바라바

13. 예수의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십시오.(19장)
(답) 어머니, 이모,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여자 마리아

14.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토마에게 부활을 확인시킨 후 토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20장)
(답)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도행전)
15. 1장에서 '사도' '사도직' 이란 단어가 몇 번나옵니까? (답) 10번

16. 2장28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보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17.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어떻게 하였습니까?(2장) (답)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육주

육주
사도행전 3,11-21,26

사도행전 : 사도행전은 교회의 기원과 성장에 관하여 전해주는 책이다.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을 배경으로 예수 승천에서부터 30여년간인 서기 30년경부터 61년까지 초기 교회 생활을 알려준다.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성령의 복음서' 라고도 한다. 사도행전이라는 책명은 2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다.

집필동기 : 예수 승천 이후 교회의 성장을 전하고자 했다. 교회의 탄생과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당시 로마 지배하에 겪는 온갖 시련과 박해를 극복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함으로써 하느님 백성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 나갈 것을 일깨우고 있다.

1. 하느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위해서 그 종을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며 다시 살려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3장) (답) 예수, 하나도 빠짐없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여 그를 통해서 축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

2. 박해를 당한 사도들이 기도할 때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다 마치자 모여있던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4장) (답)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3. 대사제 앞에선 사도들은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고 하면서 이어서 어떤 말을 하였습니까?(5장)
(답)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4. 자유인의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렸는데 그들이 스테파노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6장)
(답)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였기 때문

5.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하느님께 은사를 청한다면 그것은 죄를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마술사 시몬이 제자들에게 청한 것은 무엇입니까?(8장) (답) 권능을 주어 내가 손을 얻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요.

6.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 )을 부어 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 주시고 (악마 )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10장)

7. 헤로데 왕이 벌레에게 먹혀 죽은 이유는 무엇입니까?(12장)
(답)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

8.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목자와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 때 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12장) (답) 그를 위하여 하느님께 줄곧 기도를 드렸다.

9. 바울로의 1차 전도 여행 때 바르나바와 바울로는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바울로의 말을 듣고 이방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13장) (답)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정된 사람들은 모두 신도가 되었다.

10.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 (신도 )들을 위하여 (원로 )들을 뽑아 세우고 (단식 )하며 (기도 )한 뒤에 그들이 믿는 주님께서 (원로 )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빌고 떠났다.(14장)

11. 15장 8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그들에게도 내리셔서 우리와 똑같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12. 필립비 감옥에 갇혔던 바울로와 실라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16장) (답) 간수와 온 가족

13. 그곳 유다인들은 (데살로니카 ) 유다인들보다 (마음 )이 트인 사람들이어서
( 말씀 )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바울로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 )를 연구하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예수 )를 믿게 되었다. (17장)

칠주

칠주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사도행전 21,27 - 로마서 13,10

로 마서 : 로마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다. 그리스도교 교리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고, 특히 로마서는 바울로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유다인 종교관과 그리스도교 종교관의 차이점을 깊고 논리 정연하게 기록하였으며 또한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의한다는 하느님의 의를 제시하였다.
저자 및 집필 시기 : 바울로가 로마에 있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야기하듯 이 편지를 썼다. 집필 시기는 서기 57∼58년 겨울 바울로가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도중 고린토에 잠시 머무르면서 쓴 것으로 보여진다.
집필 동기 : 로마는 정치적으로 로마 대제국의 수도이며 지리적으로 세계로 통하는 길목으로 복음 선포의 중심지로 적합한 곳이다. 바울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의무를 안고 로마를 직접 방문하기에 앞서 그곳 신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이 편지를 썼다. 또한 그는 자신의 편지를 통해 복음 선포시 필요한 교리 적인 체계들을 요약 전달하고, 당시 로마 교회 안에 발생했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사도행전)
1. 바울로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권하였지만 바울로의 대답은?(21장) (답) 주 예수를 위해서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묶일 뿐만 아니라 죽을 각오까지도 되어 있습니다.

2. 의회에서 진술을 했던 그날 밤 주님께서는 바울로에게 찾아 오셔서 하신 말씀은?
(답)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에 관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3. 바울로가 정의와 절제와 장차 다가 올 심판에 관해서 설명하자 펠릭스 총독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24장)
(답) 두려운 생각

4. 아그리빠가 바울로에게 "나를 설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말하자 바울로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답) 쉽게든 어렵게든 저는 전할 뿐 아니라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5.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 오더라도 주님의 배(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하다가 영혼마저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7장에서 선원들은 배에서 빠져나갈 속셈으로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 하면서 거룻배를 물위에 띄웠을 때 바울로가 백인대장과 군인들에게 한 말은?(27장)
(답) 저 사람들이 이 배를 떠나가면 당신들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6. 우리는 세상의 온갖 유혹에 물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아무리 우리를 유혹해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뱀에게 물린 바울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28장)
(답)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뱀을 불속에 떨어 버렸다.

(로마서)
7. 1장 2절을 쓰시기 바랍니다.
(답)이 복음은 성서에 있는 바와 같이 일찍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꾸준히 (선)을 행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진리)를 물리치고 옳지 않은 것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9.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무엇을 알려 줍니까?(3장)
(답)무엇이 죄인지 알려줌

10. 아브라함이 '만민의 조상'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하느님에 대한 믿음

11. 고통은 인내할 수 있는 힘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한다면 더 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5장 4-5절을 쓰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12.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무엇이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습니까?
(답) 죄

13, 9-11장까지에서 '성서'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옵니까?
(답) 8번

팔주

팔주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고린토 1서 10,31)

로마서 13,11-고린토후서5,21

고 린토서(1) : 고린토서(1)은 로마서 다음에 나오는 서간(편지글)성서로,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서간문에는 고린토 교우들이 처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어 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아는데 중요한 성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송가'도 13장에 실려 있습니다.
고린토서(2) : 고린토서(2)는 '고린토 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로 초대 교회의 선교 상황과 바울로 사도의 선교 활동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삼위일체 신앙을 가장 명백하게 담고 있는 성서이기도 합니다.
쓰 여진 시기 : 사도 바울로가 2차 전도 여행 때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며 하느님 말씀을 전한 고린토 교회가 성도덕의 문란과 분쟁으로 심각한 혼란에 빠졌음을 전해듣고 3차 전도 여행을 하는 중(서기 54-57년경) 에 에페소에서 머물면서 쓰여진 것입니다.
쓰 여진 목적 : 고린토 교인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분열과 음행은 결코 바울로가 전한 '십자가의 복음'의 내용이 아님을 상기시키면서 한 분 하느님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깨웁니다. 자유, 결혼, 우상 숭배 등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도 함께 일러줌으로써 참된 교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애쓸 것을 사랑 안에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 어둠의 (행실 )을 버리고 빛의 (갑옷 )을 입읍시다. 진탕 (먹고 ) 마시고 (취하거나 ) 음행과 (방종 )에 빠지거나 (분쟁 )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 )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13장)

2. 성서의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무엇을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까?(15장)
(답) 교훈

(고린토 1서)
3.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 )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 )들이 하는 일 보다 (지혜롭고 ), 하느님의 (힘 )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 보이지만 사람의(힘 )보다 강합니다.(1장)

4. 여러분 자신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3장)
(답) 멸망시킴

5.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무엇에 있다고 하였습니까?(4장) (답) 능력

6. 여러분은 낡은 누룩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나서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5장)
(답) 순수한 반죽

7.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6장)
(답) ①음행한자 ②우상숭배 하는 자 ③간음하는 자 ④여색을 탐하는 자나 남색을 탐하는 자 ⑤도둑질하는 자 ⑥탐욕을 부리는 자 ⑦ 약탈하는 자

8. 하느님께서는 (값 )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인간 )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7장)

9.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8장)
(답) 사랑

10. 9장 16절을 기록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죄가 미칠 것입니다

11. 10장 13절을 기록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여러분이 겪은 시련은 모두 인간이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신의가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힘에 겨운 시련을 겪게 하니는 않으십니다. 시련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주실 것입니다.

12.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총을 주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12장)
(답) 공동이익

13. 13장에서 '사랑'이 몇번 나옵니까?
(답) 17번

14. 하느님께서 바라는 것은 무질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14장) (답) 평화

(고린토서 2서)
15.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표로 우리 마음에 무엇을 보내 주셨습니까?(1장)
(답) 성령

16.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내세워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고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누구에게 주셨습니까?(5장)
(답) 그리스도

구주

구주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이다."(고린토2서 4,18)

고린토후서 6,1 - 골로사이서 4,18

갈 라디아서 : 바울로는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를 강요하며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여 사도적 권위와 가르침을 위태롭게 만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에 맞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이로써 유다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분열을 막고 갈라디아 교회의 신도들을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이끌고자 했습니다.

에페소서 : 에페소서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비'를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서간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인 교회를 통해 전 인류에게 미치고 있는 구원, 곧 그리스도와 인류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로서의 교회를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 립비서 : 바울로는 제 2차 전도 여행 중에 이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역시 옥중 서간으로 바울로 자신의 마음을 사르고 있던 신앙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글을 옮긴 것인데 그리스도안에서 갖는 희망과 기쁨을 전하고 있습니다.

골 로사이서 :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도록 골로사이 성도들을 일깨우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여러 가지 언어, 문화 및 종교들이 교류되면서 골로사이 교회는 유다교, 그노시스 사상, 그리스도교가 혼합되면서 예수의 신성부정, 천사숭배와 지나친 금욕생활 강요 등 그릇된 이단설에 침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 하고자 올바른 교리와 권유로써 골로사이 교회에 도움을 주고자 쓰여진 것입니다.

(고린토2)
1. 우리는 (순결 )과 (지식 )과 (끈기 )와 착한 (마음 )을 가지고 (성령 )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 )과 진리의 (말씀 )과 하느님의 (능력 )으로 살고 있습니다.(6장)

2. 하느님의 뜻을 따라 겪는 상심은 어떤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합니까?(7장)
(답) 회개

3. 9장 6절을 기록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이점을 기억하십시요.

4.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10장)
(답)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

5. 바울로 사도는 자신의 고통을 세 번이나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2장)
(답) 교만

6. 13장 5절을 기록하시고 자신의 믿음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여러분은 자기의 믿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따져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7.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까?(2장)
(답) 그리스도

8.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12장)

(에페소)
9.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무엇을 주셨습니까?(1장)
(답) 성령

10.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서슴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3장)
(답)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11. 4장 32절을 기록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요.

12. 성도들은 추잡한 말과 어리석은 이야기나 점잖지 못한 농담 따위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말은 무엇입니까?(5장)
(답)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말씀

(필립비서)
13. 1장 20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털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4. 예수님은 하느님께 얼마만큼 순종하셨습니까?(2장) (답)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15.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애물 )로 생각됩니다. 나는 (그리스도 )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 )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 )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 )가 되려는 것입니다.(3장)

십주

십주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카서, 디모테오서, 디도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데 살로니카서 : 데살로니카 전, 후서는 서기 50년경에 사도 바울로가 친히 쓴 서간으로서 신약성서 중 제일 먼저 쓰여진 성서입니다. 항구도시이며 마케도니아 주의 수도로 번영과 명성을 누렸습니다. 바울로가 제 2차 전도 여행 때 이곳에 복음을 선포하면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교우들에 대한 바울로의 사랑과 애정을 엿볼 수 있으며 초대교회의 신앙과 문제점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책입니다.

디모테오서 : 바울로가 제자 디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교회의 직분, 교계제도와 조직, 지도자의 선택과 이단 응 교회의 사목자에게 주는 조언과 충고를 신고 있어서 디도서와 함께 사목서간 이라고 불립니다.

디 도서 : 바울로가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서 디모테오서와 마찬가지로 사목자의 자격과 자질을 강조하고 이단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칠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며 신도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행을 행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필레몬서 : 종의 주인 필레몬과 그의 종 오네시모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모든 인간 관계가 바뀌어짐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로서 주된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으로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대사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카서)
1.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어떻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까?(2장) (답)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2.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 )을 키워 주시고 풍성하게 해 주셔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 )하듯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 )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 )하게 되기를 빕니다.(3장)

3.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살라고 부르셨습니까?(4장) (답) 거룩하게

4.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입니까?(5장)
(답) 항상 기뻐하십시요. 늘 기도하십시요. 어떤 처지에서든지 늘 감사하십시요.

5. 데살로니카서 2서 1-2장에서 '영광'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옵니까? (답) 5번

6. 바울로 사도가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한 이유는 무엇입니까?(2장)
(답)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디모테오 1, 2서)
7. 건전한 교설이란 무엇입니까?(1장)
(답) 복되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복음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8. 4-5장에서 '그대'라는 단어가 몇번 나옵니까? (답) 13번

9.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6장) (답) 유혹에 빠지고 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10. 모든 (악 )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귀하게 )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2장)

(디도서)
11.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은총은 우리를 훈련해서 어떻게 살게 해 주십니까?(2장)
(답)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 줍니다.

(필레몬서)
12. 바울로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내면서 누구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 주라고 합니까?(1장)
(답) 나(바울로)를 맞는 것처럼

(히브리서)
13. 천사들은 어떤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입니까?(1장) (답)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 즉, 구원의 유산을 받은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임

14. 4장12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15. 6∼8장에 "대사제"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옵니까? (답) 8번

16. 하물며 (성령 )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 )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 )는 우리의 (양심 )을 깨끗하게 하는데나 (죽음 )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9장)

17.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1장) (답) 인내

십일주

십일주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야고보 2,24)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묵시록1-9장

야고보서: 야고보서는 참된 신앙은 세상의 부귀를 멀리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베 드로서 : 그리스도교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베드로 1서는 박해받고 있던 소아시아 지방의 신도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며 그리스도의 수난에 함께 하는 시련의 의미를 일깨워 신자다운 생활에 용기를 주며, 베드로 2서는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과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위협받자 신자들에게 재림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불러 일으켜 교회 내에 퍼져있던 온갖 불신과 오류를 바로잡고자 쓰여졌습니다.

요한서 :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평등한 어린 자녀임을 가르쳐 신도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명을 되새기며 선을 행하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요한 1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이웃사랑을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2서는 이단자들의 그릇된 사상을 경계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잃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요한 3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파견된 이들을 받아드릴 것을 당부합니다.

유다서 : 이단자들의 실상을 고발하고 장차 그들이 받을 심판을 이야기하며, 또한 신자들이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가도록 구약성서와 사도들의 말씀을 상기시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안에서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구해야 합니까?(1장)
(답)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2. 욕심이 잉태하면 어떻게 됩니까?(1장)
(답)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옴

3.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무엇을 이겨냅니까?(2장)
(답) 심판

4.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는 무엇이 생기기 마련입니까?(3장)
(답) 분란과 온갖 더러운 행실

5. 사람이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4장) (답) 그것이 곧 죄가 됨

6. 믿고 구하는 기도는?(5장)
(답)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용서받을 것입니다.

(베드로서 Ⅰ,Ⅱ서)
7.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Ⅰ서 1장)
(답)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

8. 세상의 종말이 가까왔으니 (정신 )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 )하십시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 )으로 (사랑 )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 )를 (용서 )해 줍니다.(Ⅰ서 4장)

9. 우리의 근심 걱정을 누구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까?(5장) (답) 하느님

10. 하느님께서는 특히 어떤 자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까?(Ⅱ서 2장) (답) 거짓 예언자,
안인, 하느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

(요한서 Ⅰ,Ⅱ,Ⅲ 및 유다서)
11. 생명의 말씀은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요한 Ⅰ서 1장) (답) 천지 창조 전부터

12.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Ⅰ서 2장) (답)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13.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Ⅰ서 3장)
(답)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해야 함

14. 그리스도의 교훈을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Ⅱ서 1장) (답)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다.

15. 선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에게서 난 사람입니까?(Ⅱ서 1장) (답) 하느님

16. 우리를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유다서) (답) 하느님

(요한묵시록)
17. 1장 3절을 기록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믿음이 성취될 시각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18. 승리하는 자들에게는 무엇을 먹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2장)
(답)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 )도 하고 (징계 )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히 (노력 )하고 네 (잘못 )을 뉘우쳐라.
(3장)

십이주

십이주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요한묵시록 21,6)

요한묵시록10,1 - 창세기 21,34

요한묵시록 :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으로서 편지 형태의 머리말과 맺음말,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간과 여러 가지 환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 자 와 집필 시기 :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썼다고 밝히고 있으나 복음서와 서간의 저자가 묵시록까지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요한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유배당한 파트모스섬에서 1세기 말경 집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집필동기 : 로마 제국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 하여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를 거부함에 따라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저자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환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어린양, 죽음을 통해 부활하신 분임을 일깨워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을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의 눈으로 현재 세계의 움직임을 바라보도록 이끌었으며 아무리 가혹한 박해를 당하더라도 신앙에 충실하도록 일깨우고 있습니다.

창세기: 우주, 인류와 하느님 벡성의 기원을 묘사하며,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하느님 백성이 되기위한 준비단계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요한묵시록)
1.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과 그분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영원 무궁토록 군림하실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몇 장 몇 절입니까? (답)

2. '이제부터 ( )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은 ( )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 )께서 옳은 말이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 ) 될 것이다.(15장)

3.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16장)
(답)

4. 그들은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겠지만 마침내 누가 승리할 것입니까?(17장)
(답)

5. 하느님의 허락으로 모시옷을 입었는데 이 고운 모시옷은 무엇을 상징합니까?(19장)
(답)

6.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20장)
(답)

7. 나는 ( )자에게 ( )의 ( )을 ( ) 마시게 하겠다.(21장)

8. 신약성서의 맨 마지막 절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답)

(창세기)
9. 창세기 1장에서 '보시니 참 좋았다' 라는 말씀이 몇 번 나옵니까?
(답)

10.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시어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2장)
(답)

11. 여자가 열매를 따먹은 이유는 무엇입니까?(3장)
(답)

12.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사람은 누구입니까?(5장) (답)

13. 노아는 모든 일을 누구에게서 분부 받은 대로하였습니까? (답)

14. 금방 딴 올리브 이파리를 물고 온 동물은 무엇입니까?(8장) (답)

15.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11장) (답)

16.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장면에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롯은 어떤 선택을 합니까?(13장) (답)

17. 14장 20절을 기록하시고 자신의 봉헌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답)

18. 15-17장에서 '아브라함'이 몇 번 나옵니까? (답)

19.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소돔과 고모라 때문에 빌 때 하느님은 죄 없는 사람이 최소한 몇 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까?(18장) (답)

5분 묵상

(시련/고통) 두 개의 꽃병

(시련/고통) 두 개의 꽃병

영국의 조지 왕은 형인 엘버트 빅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이어받은 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긴장된 생활에서 오는 불안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소도시의 한 도자기 공장에 들르게 되었다. 평소 도자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도 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된 그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두 개의 꽃병은 같은 원료와 같은 타일을 사용하여 무늬까지 똑같은 것이었는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공장장에게 물었다.
"두 개의 꽃병이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지만 그 느낌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다르오. 하나는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니 이곳에 전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곳에 두기엔 형편없는 것 같소.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두는 것이오?"
왕의 물음에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합니다.
저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이곳에 전시해 둔 것은 그런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 리에게 주어진 어떤 고통도, 지나고난 다음, 주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선물을 받을때에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더욱 크게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이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한 축복이라는것을 믿는다면, 담담하게 겁내거나 피하지 말고, 오늘을 지내야 할것입니다. 모든것을 주님께 의지하면서….

간절한 기도

간절한 기도

한 마리의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지만,
결코 토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간절히 원하십시오.
지금 무엇을 하지 못하거나
일이 안 되는 것은 그만큼 간절히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행한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힘이 모자랄지라도 간절하게 원할 땐
자랑스런 용기와 적극적 행동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커다란 능력이
발휘되는 법입니다."
지금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간절하게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은 예민하게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게으르고 둔감한 마음의 하늘엔 감사의 별이 환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사물들에 대해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만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평화로운 마음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용서와 화해만이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알아듣고 먼저 용서를 청하고 먼저 용서하는 그 마음엔
평화에 뿌리내린 감사가 늘 푸른 산처럼 버티고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하느님과 이웃의 도움을 청하는 빈 마음,
호흡하듯 끊이없이 기도하는 마음 안에 열린 넓이와 깊이로 감사하는
마침내 큰 사랑으로 이어지고 오늘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삶의 축제가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투명한 유리창처럼 마음을 갈고 닦는 선함과 순수함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습관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다 보면 매일매일
감사할 일들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 올라 맑은 물 한 동이씩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퉁명스럽지 않은 다정함으로 남을 배려하며 그 누구도 모질게 내치지
않는 마음, 자신의 몫을 언제라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소중이 여기는 마음을 지니다 보면 늘 감사에 가득찬 어질고
부드러운 눈길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기적인 자기 도취, 독선적인 오만함에 빠지지 않는 겸허함과 온유함입니다.
남을 섣불리 비난하기 전에 그의 좋은 점부터 찾아서 칭찬하고 격려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감사의 인사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후렴처럼 자주
새어 나옴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가끔은 슬프고 우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뜻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쓰는 너그러움입니다. 남에게 우울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밝은 쪽으로 시선을 두는 지혜를 구하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감사의 환한
미소를 띨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거울

거울

거울은 마음에도 있습니다.
벽에 걸린 거울은 내 얼굴을 비추어 보이게 하지만,
내 마음의 거울은 평소의 나의 모든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어 보이게 합니다.
고요한 가슴에 손을 얹고,
그리고 내 마음의 거울에 내가 지낸
오늘 하루를 자세히 비추어 봅시다.
때묻은 얼굴이 보입니다.
또 찢어진 옷자락이 보입니다.
일그러진 얼굴,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거울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있어야 하고 자주 보아야 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다시
곱고 단정하게 매만져 봅시다.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서야
밖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고요한 저녁 시간에는,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보고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깨끗하게 닦아 놓아야 하겠습니다.

요즘 숙녀들은 어디를 가서 앉든지
우선 거울을 꺼내 봅니다.
식당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부지런히 거울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 얼굴을 정성스럽게 매만지는데
그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자주 보고, 자주 닦으니,
그 얼굴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니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마 거울을 보는 데서 이루어진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이 좋은 습관으로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에 한번만이 아니고,
어디를 가나 앉으나 서나
고요히 내 마음의 거울에 나의 행동,
나의 깊은 생각,
나의 인생을 비쳐보고 부지런히 닦아내야 하겠읍니다.
아무리 훌륭한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닦지 않 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아무리 좋은 인품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주 그 마음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보고
씻어내고 닦아내지 않으면,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파괴는 거울의 깨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것은 양심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양심을 잃어버린 다음에는 인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양심이 깨어진 다음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를 찾아낼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차분히 살펴보지 못하고
서두르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속의 거울을 보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울인 양심이깨어진 것입니다.
거울이 없이 무엇을 보고
아름다움을 꾸밀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마음의 거울,
양심의 거울을 소중히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싶은책 에서-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그분의 길을 따라

그분의 길을 따라
참으로 감사하신 분,
사랑스런 분,
하지만 하늘나라로 떠나신 다기에 더 이상
그 분을 뵈올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낙심의 상황에서
그분을 다시 뵈올 수 있다는 약속을 오늘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와 함께 하셨듯이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하셨듯이
오늘의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남은 건 나의 고백과
내 안에 그분을 잉태하는 신앙인의 삶만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분을 따라 사는 신앙의 길.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질 삶의 길이,
대지를 적시는 빗물처럼
생명을 담고 나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다시 주님을 뵐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걸어갈 때
우리도 부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멘.

기도

기도
기도는 그리스도의 기도에서 그 모범을 찾을 수 있지만 꼭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식의 정해진 틀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을 쉬듯이 신앙인인 우리 역시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얻으려면 기도해야 하고 아무리 서툴고 부족할 지라도 하느님과 나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진실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삼아 교회 안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온 기도의 대표적인 예들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1) 공동기도

-미사(성찬례):
미 사는 그리스도교 생활과 기도의 원천이요 정점이다. 미사중에 "이것은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몸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는 예수님의 성찬례로 상징되는 구원행위를 본받음으로써 그 영적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흘러넘쳐 이웃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성무일도(시간전례):
교 회의 구성원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하루의 중요한 시간에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류구원에 이바지하며 이를 통해 하루 전체를 성화하는 교회의 공적 기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특별히 공동기도의 성격을 강조하여 적어도 대축일과 축일에는 사제나 수도자뿐 아니라 평신도들도 함께 아침, 저녁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 개인기도

- 소리기도:
교 회가 정한 기도문 (염경기도)을 마음 속으로 뜻을 생각하며 읽거나 외우면서 바친다. 기도서에 실린 여러 가지 기도,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 '성체조배 때의 기도' 등을 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을 일치 시키려고 노력한다.

- 영적독서
하느님과 더 가까이 관계를 맺기 위하여 성서나 그 외 여러 가지 신심서적을 읽는다. 수도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영적독서를 기도생활을 위한 훈련인 동시에 기본요소로 삼고 있다.

- 묵상기도
의지적으로 마음을 주님께 향하는 묵상기도는 하느님과 나의 일대 일 관계로 이루어진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이나 생각, 물질이나 이기심으로 인한 애착등을 없애고 하느님과 친밀한 대화를 하면서 우정을 나눈다.

- 관상기도
전 통적인 의미에서 관상은 지성, 의지, 감정, 감각 등의 자연적 능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기안에 특별한 방법으로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초자연적을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이다. 이 관상기도는 개인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기도방법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다.

참된 기도를 위한 몇가지 권고

1) 다른 관심사는 제쳐두고 미음의 준비를 하라. 기도하기 전에 성서를 읽는 것도 좋다.
2) 당신의 삶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의식하고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느껴보라.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20)
3) 당신의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리라 기대하며 확신을 갖고 기도하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오 21,22)
4) 당신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지혜를 받아들여라. 하느님을 설득하려 하지말라.
5) 당신의 사랑과 갈망을 다 기울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라. 하느님의 이끄심에 당신을 온전히 맡겨드리고, 당신의 삶을 그분께 내어 드려라.
6) 겸손하게 기도하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말라.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7)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라. 한결같이, 항구히 기도하라.
8)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라. 어느 누구도 기도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말라.

기도2

기도2

성서 안에서 예수님과 관상적 체험을 하기 위해서 다음의 다섯가지의 열쇠를 드립니다.

1. 머물라 ; 거기에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하여.
네! 거기에 머무십시오. 온 마음과 온 정신이 머무십시오.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당신과 이야기하는 그 사람이 당신에게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딴데 있는 듯한...

2. 그분을 간절히 원하라 ; 그분을 찾기에 배고파 하십시오.
그분의 오심과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준비하는 마음입니다. 당신에게 그분을 보여 주시기를, 말씀해 주시기를, 그리고 어떻게 그분의 말씀을 깊이 경청할 수 있는지 인도해 주시기를 청하십시오.

3. 귀기울이라 ; 깊은 신앙과 존경으로 그리고 신뢰심을 가지고 그분에게 귀 기울이십시오.
그분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싶은 갈망의 마음으로,
내포된 뜻을 찾으려 하지 말고,
평화와 감사의 자세로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의 의미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에 생각두지 말고, 결론, 해결점 등에 대하여도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마치 아빠 무릎에 앉아 평화스럽게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4. 그분이 하시도록 맡기라.
무엇을 하시도록 이냐고요?
단순히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머무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 안에서 일하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말씀하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을 붙잡아 주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위로를 주시도록 내맡기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당신을 용서하시고 용기 주시도록, 만일 그분이 원하신다면 당신에 게 건조함도 암흑의 체험도 주시도록 맡기십시오.
오직 그분이 하시도록 그분에게 온전히 신뢰심을 두십시오.

5. 그분에게 응답을
어떤 방법으로든 당신은 그분에게 응답하기를 원하거나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당신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자유롭게, 우러나는 대로 응답하십시오.
당신 마음 안에 있는 말씀을 드리십시오.
당신이 느끼는 것을, 불평까지라도.
당신이 무엇을 말할지도 모를 때 당신 안에 계신 성령께서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단순히 "예수님" 하고 부르는 속삭임도 좋은 응답의 기도이며 혹은 감사와 찬미의 단어를 반복하는 것도 깊은 사랑의 응답입니다.
- 관상적 기도는 느낌이며 귀기울임입니다.
- 관상적 기도는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예수님, 성령을 의식하며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 관상적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 는 것입니다.
- 관상적 기도는 의식적으로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이고 사랑이신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도록 내 맡기는 것이며 그분의 성령을 우리 안에 채 워주시도록 맡기는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생활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그분에게 내놓는 것입니다.

기도3

기도3

기도는 무언가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나는 매일 영성체할 때마다 예수님께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보호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사고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의 기도>를 기도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는 성인의 길로 인도받을 것입니다.
<주의 기도>에는 하느님, 우리 자신, 그리고 이웃 등
모든 이들이 들어 있습니다.

침묵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침묵은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우리 형제 자매들과 기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줍니다

기도4

기도4

기도는 신앙을, 신앙은 사랑을,
그리고 사랑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봉사를 낳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침묵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마더테레사의 ’말씀’중에서 -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길 위에 있습니다.
좁은 길이든, 넓은길이든, 순탄한 길이든, 험한 길이든
모두가 자기 길 위에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열심히 걷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길을 사랑하게 되고
또 새 길도 만나게 됩니다.
중국 속담에 가던 길을 끝까지 걸어야
새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멈춘 사람 앞에는
영원히 새 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도 아름답지만
내 앞의 길은 더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고 위로입니다
언제 어디에 도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걷는 우리가
새롭게 알고 느끼는 설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

나누어 준다는 것

나누어 줄 줄 알아야 높아진다네
물을 나누어 주는 구름은 드높고
물을 저 혼자 간직하는 바다가 낮은 것처럼

- 인도잠언시집

나의 바이올린

나의 바이올린

추운 겨울 저녁. 영국 런던 시내의 한 악기점을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헌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었다.
“무얼 찾으십니까?” 주인이 묻자
그는 “저는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팔 수 없을까요?
저는 무엇을 먹어야 하니까요.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냥 사 주세요.”

그래서 악기점 주인 벤츠씨는 5달러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벤츠씨는 그 사람이 떠난후 5달러를 주고 산 바이올린을 무심코 켜 보았다.
손잡이 활을 줄에 대고 한 번 당겨보니 놀라운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랄정도로 풍부한 음색과 선율이었다.

벤츠씨는 급히 환한 불을 켜고 바이올린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먼지 투성이의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 보고 그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엔 기절할 만한 글씨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년 제작)
악기점 주인 벤츠씨는 그 바이올린이 행방불명되어 1~2백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찾으려고
애썼던 거장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임을 알게 되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바이올린을 판 사람을 찾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배가 고파서 밥 몇 끼니 먹을 수 있는 값 5달러에 팔아 버린 바이올린은 무려 10만달러 짜리였던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 남루한 바이올린 주인이 바이올린의 가격을 제대로 알아 정가격에 팔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듯 비참한 생활을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 만큼이나 깊이 생각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나 또한 그 바이올린 주인처럼 10만달러보다 더 귀중한 나의 삶을
단지 먹고 살겠다는 이유만으로 혹시 5달러짜리로 취급하고 있지나 않은지.

나의 삶은?

나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한 대로 얼굴 씻고 밥 먹고 일터에 나가,어제 한 대로 맡은 최소한의 일을 요령껏 때운 다음,술판이 있으면 거기에서 떠들거나 아니면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에 빠지다가 잠들어 버리는 일을 거듭하는 삶과,
아 침에 눈 뜨자 마자 삶을 주관하는 존재에게 '또 아름다운 하루를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침묵과 사랑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속에서 맡은 일을 꾀부림 없이 넉넉하게 해결한 다음,집으로 일찍 돌아와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이루는 영원한 진리를 생각하며 나누는 일을 거듭하는 삶과는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삶일까?

사람을 만날 때,그를 경쟁의 대상이나 비교의 상대쯤으로만 생각하면서 늘 긴장 속에서 순간마다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희비(喜悲)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삶과,
사람을 만날 때,그를 친화의 대상이나 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늘 푸근함 속에서 안정된 침묵과 말을 드러내는 삶과는 어느 것이 더 성숙한 모습의 삶일까?

한 해를 보낼 때,삶의 무상함을 더욱 탓하면서 또다시 나이를 먹었다는 탄식만 드러내거나,앞으로 남아 있는 불확실한 시간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보태고만 있는 삶과,
한 해를 보낼 때,지난 한 해를 내려 주신 크고 작은 많은 은혜에 대해 고맙게 기도하면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열어 주시는 무한한 은혜의 손길에 자신이 밝게 얹혀 있음을 환하게 느끼는 삶과는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일까?

죽음을 생각할 때, 그것이 삶의 완전한 끝이라는 숨막히는 답답함을 얻으면서 삶의 의미가 온통 고통 속에만 잠기고 있음을 아프게 바라보는 삶과,
죽 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다만 이 세상의 삶을 정리하는 일일 뿐임을, 또 그것은 저 세상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연결 고리임을 믿으면서,영혼의 힘을 자라게 하는 자기 반성을 통해 큰 두려움 없이 죽음을 극복하고 있는 삶과는 어느 것이 더 정확하고 숭고한 삶의 모습일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한 마을에 그것도 서로 옆집에 너무도 다르게 살고 있는 두 집이 있었다
. 한 집은 오손도손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비해 그 옆집은 하루가 멀다하고 식구끼리 매일 다투고 살았다. 하루는 매일 다투다 못해서 옆집에 다정하게 사는 가정을 좀 본받기 위해 온 가족이 그 집을 방문하였다.
"저희는 가족끼리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다투는데 어떻게 하면 이 집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희는 다툴 일이 없던데요?"
마침 행복한 집의 딸이 방문 온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과일을 담을 접시를 꺼내다가 그만 깨뜨리고 말았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그만 조심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엄마가 같이 유리조각을 주워 담으며 말했다.
"아니다. 엄마가 하필이면 그런 곳에 접시를 두었구나."
엄마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오. 내가 아까 보니까 접시를 둔 모양이 위태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바로 두지를 못했소. 미안하오."
그 집을 방문했던 가족들은 그 집 식구들의 대화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당신이 아니시면

당신이 아니시면

주님,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실 계획이 있으셨으며
그렇다고 왜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며, 버림받을까봐 마음 졸이고
혹시 다른 길이 있었나 기웃거리며 힘을 다 써버렸습니다.

주님, 당신이 오라는 길, 멋모르고 따라 갔다가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가슴에는 온통 시퍼렇게 멍까지 들었습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끈질기게 부르시는 당신 앞에 있는 힘 다 빼고
어떻게 쓰여지고 싶다는 저의 의지마저도 다 내 던져 버리고,
오로지 저를 온전히 비우는 모습으로만 설 수 있게 해 주소서!

당신의 음성이 들릴 때 그저,
당신이 아니면 갈 곳도 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멘.

***** 이 시는 필립보네리 형제가 기도회 중에 자작시를 낭송한 것이나 여러 가족들이 너무 좋아 하시어 다시 기억해 보고자 싣습니다.

로마를 터키 수도로 만들어 주세요

로마를 터키 수도로 만들어 주세요

어느날 밤 엄마는 그의 아들 토마스의 취침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사랑의 하나님, 로마를 터키의 수도로 만들어 주세요!"
너무 놀란 엄마는 토마스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니?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인데, 로마를 터키의 수도로 만들어 달라니?"
아들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엄마, 제가 오늘 학교에서 지리 시험을 봤거든요." ^^;;

마치 내가 하는 기도가 매번 이런식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세다고 자랑하는 헤라클레스가 어느날 아주 좁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길 한가운데 사과 크기만한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불쾌한 심정으로 그것을 발로 찼다. 그러자 사과만한 그것이 어느새 수박처럼 커졌다. 흥분한 헤라클레스는 다시 발로 그것을 힘차게 걷어찼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것이 바위만큼 커져버렸다.
더욱 열이 오른 그는 들고 있던 커다란 쇠몽둥이로 그것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것은 더욱 커져 아예 좁은 길을 막아버렸다.
결국 산더미만하게 변해버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씩씩거리며 노려보고 있는데
아테네 여신이 나타났다.
아테네 여신이 그 산더미만한 물건에 웃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작은 사과 크기가 되어 길 한모퉁이에 툭 떨어졌다.
깜짝 놀란 헤라클레스에게 아테네 여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을 더이상 건드리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 마음속에 있는 화와 같아서 건드리지 않고 두면 작은 채로 있지만 건드릴수록 더 커진답니다. 화는 낼수록 더 커지는 법이지요. 조금만 참으면 곧 잊혀지는 것이 화랍니다.”

우리 커지는 화를 작은 콩으로 만들어 주님께 봉헌 합시다.

말(言)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주지요.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요.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기도해줄게."
"넌 항상 믿음직해." "넌 잘 될 거야!"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들어내는 데 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지요.
오늘 우리도 주위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봅시다.

더욱이 우리 성령 가족들에게는
우리 곁에 있는 가족이 행복할 때 우리도 더욱 더 행복해 진답니다.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흙을 가져다 붓고
자신이 좋아하는 온갖 아름다운 씨앗들을 심었다.
그런데 얼마 후
정원에는 그가 좋아하는 꽃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들레가 피어났다.

민들레는 아무리 뽑아도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또 피어났다.
민들레를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써 봤지만
그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노란 민들레는 다시 또다시 피어났다.

마침내 그는 정원 가구기 협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 정원에서 민들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민들레를 제거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이미 그가 다 시도해 본 것들이었다.
그러자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것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류시화님의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이라는 잠언 시집의 서문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겠소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겠소

장기려 박사가 부산 복음병원의 원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복음병원에는 가난하거나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이 그에게 진찰이라도 받아 보고 죽겠다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치료를 받고 나면 치료비와 약값을 낼 형편이 못 되는 환자들 때문에 자신의 월급에서 대신 갚아주느라 그는 늘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그의 방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이렇게 늦은 밤에 나를 찾아왔나요?"
그가 부드럽게 묻자 청년은 용기를 얻은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저의 어머니가 수술을 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치료비 때문에 퇴원을 못해서 …. 어머니를 퇴원시켜 주시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돈을 나중에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큰소리로 흐느껴 울며 애원했다. 그러자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가 청년의 두 손을 꼭 잡아 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소란스럽게 합니까. 이런 얘기는 조용조용하게 해야지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당신이 언제 나갈 건지 내게 알려 주면, 그 시간에 맞춰 내가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을 테니 조용히 나가시오. 대신 조건이 있소."
청년이 무슨 조건이든지 다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문을 열어 줬다고 소문을 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난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만 지켜주면 됩니다."

솔직함

솔직함

누구나 잘못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솔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솔직함은 겸손이고 두려움 없는 용기입니다.
잘못으로 부서진 것을 솔직함으로 건설한다면
어떤 폭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가장 연약한 사람이 솔직할 수 있으며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심미안

심미안

"어떤 것에서 곧바로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심미안을 지니고 있다는 표시이다."
"세상에는 좋은 점만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고, 나쁜 점만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수많은 단점들 중에서 우연히 찾아내게 된 단 하나의 장점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자들이야말로 진실로 훌륭한 심미안을 가진자들이다."

문둥이 성자 다미안 중에서

나는 좋은 점만 찾는 부류인가 아니면 나쁜 점만 보는 부류인가?

언제나

언제나

희망은 그를 지탱해주고, 사랑은 그를 격려해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영혼의 믿음이 희미해지고,희망이 사라지며,
사랑이 약해지는것을 허락하신다면, 영혼은 그의 십자가와 함께 머물러야 하는데,
그때 영혼은 암흑과 곤경과 약함으로 인해 괴로워 한다.
특히 이러한때 하느님은 그 영혼을 시험해 보신다.
이때야말로 하늘의 도우심과 마리아의 보호가 필요한 순간이다.

위안을 받고있을때 하느님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세상의 모든것이 우리를 향해 미소를던질때 우리의 영혼에
날개가 달린듯이 느껴질때!!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러한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에게 있어 기쁨은 아픔과 같은것이다.

그는 태양빛으로 가득차있을때처럼,암흑에 뒤덮혀있을때에도
똑같이 하느님을 사랑한다.

밤낮을 가리지않고 매일매일 쉬지않고 싸우자.
어떤때는 영적으로 그분의 사랑에 도취되어, 또 다른때는
비참하기그지없는 인간적인 상황속에서 땅바닥을 기면서...

전진하자!!
모든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언제나 마리아와 함께...

+. 주님, 당신의 빛을 저에게 주시어 깨달음을 얻게하시고
거룩한 통회를 주시어 울수있게하시고
믿음을주시어 오로지 그믿음에 의지하게하시고
희망을주시어 흔들리지않게 하소서..

모든것위에 모든것을 초월하시는 당신의 사랑으로
저를 채워주소서.. 아 멘
[복자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 ]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지만
마음과 생각이 통하여
작은 것에도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실수로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믿음과 애정이 가득하여
어떤 일에도 변함없이
나를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불만으로 가득한 지친 시간이지만
긍정적이고 명랑하여
언제라도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질투와 욕심으로 상심하는 날들이지만
이해심과 사랑이 충만하여
나를 누구보다 가장 아껴주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그 많은 선물들을 갖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나 이지만,
하루하루 힘들다고 투정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늘의 당신 모습은

오늘의 당신 모습은

한 나이 많은 목수가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지금부터는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의 가족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되어 극구 말렸지만 목수는 여전히 일을 그만 두고 싶어 했습니다. 목수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훌륭한 일꾼을 잃게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말하고는 마지막으로 손수 집을 한 채 더 지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목수는 ‘물론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일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형편없는 일꾼들을 급히 모으고는 조잡한 원자재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 되었을 때,고용주가 집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을 보는 대신, 목수에게 현관 열쇠를 쥐어주면서 “이것은 당신의 집입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이 저를 위해 일해준 보답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목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 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목수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수리를 할 필요가 없는 튼튼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수리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집에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잘못된 방향으로 인생을 살려하고 있으며, 열심히 살기보다는 단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차선책으로 견디려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리고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 즉 자신이 대충 지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이라는 집을 나의 집이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더라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이 목수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짓고있는 집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못을 박고 판자를 대거나 벽을 세우는 매 순간마다 정직하게 지으십시오. 당신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 집은 당신이 만들어 갈 인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단 하루만 살게 되더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당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이 얼마나 분명합니까? 오늘의 당신 모습은 과거 당신이 선택한 것이며 그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당신 삶은 바로 지금의 태도와 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듯 우리도 이웃을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잠시라도 마음에 원한을 품는 일없이 즉시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입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조건을 붙이거나 제한을 두지 않고 온전히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한번 용서했으면 결코 지나간 일을 들추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물에 흘려보내듯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진정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무례나 모욕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그 사람과 접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십시오.
저 자신도 많은 잘못을 저질러 이웃의 용서를 받아야만 했으니까요.
모쪼록 겸허한 마음으로 용서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기도생활

우리의 기도생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하는 도중에도 때때로 하느님께 간단한 말씀을 드림으로써 대화를 한다. 내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는 시간 - 그것은 바로 이런 간단한 기도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기도는 바로 신앙인의 호흡이며 물이며 산소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신자의 표시이다.

우리는 기도로써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용서를 청하고, 필요한 은총을 구하며 하느님께 사랑을 드린다.

우리의 생애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해서는 생활 자체는 물론이요 하느님께로 향한 마음을 기도로써 표현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

우 리의 순간순간 삶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서 평생이 되기 때문에 하루를 잘 살면 일생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기도들은 제 때에 정성껏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매사를 신앙의 눈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일이며, 여기에 비로소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응답하려는 기도가 따를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늘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바라야 한다. 우리의 최후 목적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친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기도라는 대화의 수단으로써 늘 하느님과의 친교를 다져 나아가야한다. 그리스도인은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면서 기도와 활동을 조화시켜 하나의 현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생의 즐거움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데 있습니다.

원하는 게 많았습니다

원하는 게 많았습니다

원하는 게 많았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하고
한가롭기를 원하고
잃지 않기를 원하고
쌓아 두기를 원하면서
진실로 가난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갖고 싶었고
이름을 날리고 싶었고
잘난 사람이고 싶었으면서
정말 낮은 사람이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괴로워하는 것만으로
내 할 일
다한 것도 아닌데
괴로워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편협되게 사랑하고
더불어 고통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날마다
죽겠다 말하고도
실제로는 조금도
죽어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의 힘으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내가 살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기도로
다른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내가 살아왔다는 것을

나보다 더 나를 아끼는
다른 이들의 기도가
위태로운 나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기억해 주는
다른 이들의 애틋한 기도가 있어
휘청거리면서도 내가
이렇게 살아 있음을

이제야 겨우 알았습니다.

<작가미상> (어느 수녀님의 詩 중에서)
-제목은 임의로 붙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들의 생활속에 존재하는 십자가는 과연 어떤것인가?
우리들은 각자 앞에 놓여진 어떤 어려움을
자기의 십자가로 생각하며 고통 스러워하나
가만히 새겨보면 모두가 우리 스스로 만든
우리 자신들의 문제인것을.....

오직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감히 내 십자가가 무겁다고 힘들다고 보채는 자신이
생활이 기도가 많이 부끄러운 아침 입니다
그러나 주님 용서 하십시오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는 주님만이 주시는 감사와 기쁨이 있기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있읍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 정갈한 냉수 한그릇에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던 옛 어머니 들의 슬기를 생각하며
냉수 한 그릇이 주는 틔없이 맑은 마음의 뜻을
나누는 소중함을 일깨움니다

피땀 흘리신 십자가를 순명 하셨기에
부활의 영광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도 결코 부끄러움 없이 두려움 없이
자기의 십자가 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순종하게 하소서

죄는 용서 받았으나 죄의 자국은 그대로

죄는 용서 받았으나 죄의 자국은 그대로

어느 마을의 한 과부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아들을 두어 몹시 마음 아프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과부는 여러 생각 끝에 아들을 불러 말했다.

"내가 너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수없이 타일렀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니 이제부터는 네 스스로 좋지 못한 일을 했다고 느낄 때마다 저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도록 해라."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이라는데 그 정도도 못하랴 하고 마음먹었다. 이날부터 아들은 기둥에 못을 박기 시작했고 어느덧 더 이상 못을 박을 곳이 없게 되었다. 그날밤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가 스스로 못된 짓이라고 생각한 것만도 저렇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남이 볼 때는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을까?"

그리고 아들은 밤새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아들은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눈물을 닦아라. 네가 네 죄를 뉘우쳤다면 너는 그것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좋은 일만을 하도록 하고 그 때마다 저 기둥의 못을 한 개씩 빼도록 하렴."

아 들은 그날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둥에 꽉 차있던 못이 말끔히 다 빠졌다. 그러나 기뻐하기보다는 기둥의 못은 다 빠졌지만 못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자 오히려 가슴이 더 아팠다. 그 후 아들은 못자국을 볼 때마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의 못자국을 지우기 위해 더욱 착한 일을 하며 지냈다.

그렇습니다. 남에게 용서를 해 주었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못자국은 오랜시간동안 성령의 힘으로 씻겨 내지 않는다면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될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로서 아픈 흔적을 지워야 하겠습니다.

<출처 미상>

주님 당신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주님 당신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주님 당신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그러나 그 옳음을 알기까지는 제게 많은 시간과
판단착오와 실망을 거듭 느껴야
그 때서야 전 당신의 뜻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주님 당신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내 고집으로 당신의 음성 보다는 내 음성에 취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사람들을 대하고.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 것임을
전 뼈 절이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나 믿지 말아야 함을..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필요도 없음을
주님 당신만이 전부 입니다.
주님 당신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콩 세 알 이야기

콩 세 알 이야기

아들이 감을 따고 있었다. 아버지가 감을 광주리에 담으면서 말했다.
"까치밥으로 감 서너 개쯤은 남겨 두어야 한다."
아들이 물었다. "우리 먹기에도 부족한데 왜 까치밥을 남겨야 하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새들과도 나누어야지. 우리만 독식해서는 안된다."
이해가 안된 듯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농부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는다. 왜 그러는
줄 아느냐?"
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한 알은 공중의 새들 몫이다." "또 한 알은요?" "땅 속의 벌레들 몫이지." 아들이 말했다. "그럼 한 알만이 주인의 몫이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나누는 마음 없이 한 알만 심어 수확을 기대하다가는 빈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 돌과 작은 돌

큰 돌과 작은 돌

두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려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첫번째 여인에게 큰 돌 열개를,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 여러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큰 돌을 들고 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말합니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으나, 많은 작은 돌들은 원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져온 너는 한때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에 겸허하게 견디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찮은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 졌다.
너는 다른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면서 자기가 죄에 더욱 깊이 빠져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

행복은 어디에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형에게
아우가 말참견을 하였다.
"그렇다면 형님,
행복은 종착역에 있겠군요?"
형이 한마디로 잘랐다.
"아니다. 여행 도중에 있다."

- 정채봉님의 ’모래알 한가운데’중에서

황금물고기

황금물고기
어느연못에 황금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다른 물고기들이 황금물고기를 부러워하며 가까이 다가가려했다. 하지만 황금물고기의 자세가 너무 도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황금물고기는 혹 자신의 비늘이 빠질까봐 다른 물고기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골라 다녔고, 마을의 축제때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황금물고기는 늘 혼자였다. 황금 물고기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만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슬펐다.

그 러던 어느날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다른 연못에서 이사 온 물고기가 황금물고기의 아름다움에 반해 말을 걸어왔고, 황금물고기는 그 물고기를 반갑게 맞았다.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이사온 물고기가 어느 날 황금 물고기에게 부탁했다. "친구야, 네 아름다운 비늘을 하나만 내게 주렴. 우정의 상징으로 그걸 고이 간직하고 싶어." "그래!"황금 물고기는 선뜻 자신의 황금 비늘 하나를 떼주었다. 그리고 너무도 좋아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자신도 기뻐했다. 그런데 연못의 다른 물고기들도 너도나도 황금 물고기에게 몰려와 똑같은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비늘 하나만 달라고. 그럴 때마다 황금물고기는 쾌히 승낙했다. 마침내 황금비늘을 다 나눠준 황금물고기는 보통물고기처럼 평범하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생겨 황금물고기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어 느날 밤, 우연히 연못 근처를 지나던 어떤 사람이 연못 전체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 연못 안 물고기들이 하나씩 나눠 갖고 있는 황금비늘이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지혜의 바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