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과 함께 하는 프란치스코의 생애 (1182-1226)
1181-1182년, 탄생: 아씨시에서 장사에 열정적이고 부자인 옷감장사를 하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프랑스계인 ‘돈나 피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 : 활기차고, 똑똑하고, 마치 그의 아버지처럼 돈에 더 허영적인 젊은이로 성장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굉장히 관대했다.
1202년, 11월, 전쟁 참여: 페루지아와 아씨시 사이의 전쟁에 기사가 되는 꿈을 따라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패전하여 포로가 되었다.
1203년, 감옥에서의 한해 : 페루지아 감옥에서 한 해를 지내고, 그는 아파서, 집에 돌아왔다.
1204년, 영이 깨어남 : 길고 신비로운 병은 몸을 약하게 하고, 영을 깨어나게 했다.
1205년, 그러나 그의 야망은 다시 전쟁을 향해서 만들었으나 스폴레토(Spoleto)에서 꿈을 꾸고 멈추었다. “프란체스코, 종 또는 주인 중에 누가 더 너에게 더 이로우냐?”
그는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겠다고 근본적으로 결심하고 아씨시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자주 성찰과 묵상을 위해 혼자가 되었다. 어느 날, 문둥병자를 만나서, 자신을 이기기로 결심하고 문둥병자에게 ‘평화의 포옹’을 해주었다.
1205년, 목소리를 들음 : 고독한 장소를 찾다가 버려진 아주 작은 산 다미아노 성당에 들어갔다. 십자가 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그를 부르고 무너져가는 교회를 고치라는 초대하는 소리를 듣는다.
1206년, 그의 새로운 삶은 그의 아버지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그를 주교 앞에서 모든 상속과 재산을 거부하도록 이끌었다. 프란치스코는 옷을 벗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기쁘게 그의 믿음을 두었다. “지금부터 더 이상 저는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속합니다.”
1206년, 여름, 십자가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은둔자의 옷을 입고 산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가난한 여인들이 오리라고 예언했다.
1208년, 2월 24일. 성 마티아 축일에 복음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로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지팡이나 식량 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루가 9.1-6). 은둔자의 옷들을 벗고, 단순한 통옷에 끈으로 허리를 매고 맨발로 다니면서 회개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1208년, 4월 16일. 첫 동반자들이 그의 삶을 함께 나누기를 청하였다.
베르나르도와 피에트로, 그후에 실베스트로, 에지디오, 필리포 등, 8명이 되었을 때, 그들을 둘씩 짝지어 세상의 내 방향으로 파견했다.
점점 그 수는 늘어났고,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형제들을 위해서 교황에게 재가를 받기위한 원의에서 ‘생활의 규칙서’를 작성한다.
1209년, 교황 인노체소 3세는 꿈을 통해서 확인한 그들에게 회개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허가했다. “주님과 함께 가서 회개를 설교하시오”
1212년, 팔마 주일 밤에 아씨시의 귀족가문의 18세된 글라라가 집에서 도망쳐서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이 있는 포르지운콜라(Porziuncola)에 찾아왔다.
프란치스코는 복음 말씀 대로 살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환영하고,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살도록 했다. 곧 발로 다른 새로운 자매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프란치스코는 항상 주님과 그분의 창조물들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갔다.
그는 순교할 것을 결심하여, 비신자들의 땅을 향해 자주 모험을 했다.
1219년, 술탄으로부터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여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술탄은 그를 우아한 환대로써 맞이했다.
1223년, 그레치오(Greccio) 성탄절 밤에 아기 예수님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이 구유를 구상하게 했다.
1224년 9월 15일. 베르나(Verna)의 산 위에서 십자가상의 세라핌을 보고 주님의 오상을 받았다.
1225년, 산 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글라라를 방문하여, 심한 눈병을 치료 받았으나 아무런 회복도 없었다.
어느 날, 주님은 고통 중에 있는 그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으로 위로했다. 그 다음 아침에 프란치스코는 ‘창조물들의 노래(태양의 노래)’를 작성했다.
1226년 9월, 프란치스코는 누이인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자신을 포르지운콜라로 옮기도록 했다. 옮기는 동안 잠시 머물러 아씨시를 축복하였다.
축복을 한 후, 형제들은 그를 맨 땅에 맨 몸으로 뉘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드렸다. 10월3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종달새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축제를 지냈다.
1226년 10월 4일, 그의 몸이 아씨시로 옮겨졌는 데, 산 다미아노 성당 앞을 지날 때 글라라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