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성모님 발현지
교회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379회(1984년 현제)의 성모님 발현의 대부분이 18세기(1830년~1984년)이전의 것이며 1984년 이후에도 발현 보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교회는 그 진실성 여부를 가리는데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지금도 성모님의 발현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1975 년 일본 아끼다의 성체봉사 수녀회에 모셔진 목각 성모상을 통해서, 1985년 우리나라 나주의 한 가정에 모셔진 조그만 성모상을 통해서도 심오한 기적의 사실들이 알려지고 있지만, 지난 150년동안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모님의 발현지로 인정된 곳은 극히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모님의 발현은 그 외적 상황이 각기 다르더라도 내적인 메세지는 심오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죄악과 절망으로 상처난 인류를 치유하시려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요한 19, 23-29)의 의도를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는 것이다. 때문에 발현때 마다 강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일생을 묵상할 수 있는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실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할 일 일것이다.
교회가 성모님 발현의 사적 계시에 대하여 신중하게 대처하는 이유도 그 의미를 왜곡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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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리
◈ 성모설지전 (聖母雪地殿)(Beauraing)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당인, 로마의 성 마리아(Santa Maria Maggiore) 대성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있다.
콘 스탄티누스 황제 때인 352년 8월 5일, 로마에 요한이라는 독실한 귀족 신자 부부와 교황 리메리오(352 ~366)의 꿈에 동시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위한 성전을 세울 것을 요청하고 그 징표로 8월 한 더위에, 에스퀄리노 언덕에 하얀 눈을 내리셨고 눈의 성마리아 대성전이 세워 진것이다.
역대 교황들은 이 성전을 개축하고, 성모의 일생을 담은 성화로 실내를 장식,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체워 로마의 4대 성당의 하나로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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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티키아리와 폰타넬레(Montichiari Fontanelle)
이 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 20km 떨어진 조그만 마을 몬티키아리의 간호원 피에리나 질리는 1947년 12월 8일부터 7차례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보았다. 흰베일에 보라빛 옷을 입으신 성모 마리아는 가슴을 큰칼 셋에 찔려 우시는 모습 또는 흰색, 붉은색, 황금색의 장미가 달린 흰옷을 입으신 모습으로 오시어 '신비로운 장미'의 호칭으로 공경받기 바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자루의 칼은 대죄 중에 있는 자, 성소를 버릴 뿐만 아니라 교회와 적이 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상징이며, 세 송이의 장미는 기도와 보속과 희생 정신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해주셨다.
1966년 2월 성모의 발현을 다시 예고받은 피에레나는 몬티키아리의 한 지역인 폰타넬레에서 4월 17일 정오에 마리아를 뵙고, 그곳에 있는 우물에 치유의 능력을 부여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말씀을 들었다. 1968년 부터 1973년까지 '신비로운 장미'이신 마리아는 믿음과 감사, 사랑과 청원의 기도, 보속을 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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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 과달루페 (Guadalupe)
과 달루페의 성모님 발현은 시대적으로 450년이나 앞선 것이다. 1531년 12월 9일 부터 12일까지 동정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으로 개종한지 얼마되지 않은 한 맥시코 원주민후안 디에고에게 발현 하셨다. 아즈텍 인디언 후안이 집에서 약 40리 떨어진 틀라데롤코의 프란치스코의 수도원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다가 맥시코시의 북서 테베작 산에 이르렀을 때 태양 같은 옷을 입은 귀부인이 나타나 한 임무를 맡기셨다.
"나의 자녀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들아. 나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주님이시고, 만사가 그분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참하느님의 어머니, 완전하고 영원한 동정 마리아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사람들을 위한 나의 보호를 드러낼 것이며, 여기에 성전이 세워지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나는 너의 자비스런 어머니, 이 땅에 결합되어 사는 모든 이의 어머니, 온 인류의 어머니, 나를 신뢰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어머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울부짖음과 슬픔을 들을 것이며, 그들을 치료하고 고통을 완화시키겟다. 나의 의향을 수마라가 주교에게 전하라."
후 안이 전하는 귀부인의 원의를 믿기 위한 징표를 청하는 주교에게 성모 마리아는 카스틸라 장미 한 다발을 보냈다. 한 겨울 테체작산 꼭대기에 피어난 장미를 후안은 틸마(망토) 앞자락에 고이 담아 주교와 둘러선 사람들 앞에 펼첬다. 그러자 더욱 확실한 표징이 나타났다. 꽃들이 흘러 내린 틸마에는 발현하신 귀부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과달루페의 영원한 동정 마리아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신 귀부인의 말씀에 따라 테베직 언덕에는 과달루페의 성모 성전이 건립되었다. 인디언語로 과달루페는 "돌 뱀을 쳐부수다"라는 뜻이다. 멕시코에 국경이 없고.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39년 밖에 안 된 시절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로 말미암아 8년 만에 원주민 800만 명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쟁 포로들의 심장을 파내어 전쟁의 신에게 바치던 풍습과 해마다 2만명 이상의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피의 재물로 바치던 우상, 곧 "돌뱀"이 사졌다. 새 하와인 마리아, 뱀의 머리를 짓 밟은 여인(창세, 3.15; 묵시 12.)은 멕시코 및 남북 아메리카의 수호자가 되었고, 이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싼 것이다.
【바티칸=외신종합】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2월 18일 시성에 필요한 기적을 공식 인정 받은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와 파드레 비오 신부, 후안 디에고 등 세 명을 시성하기로 했다고 공식발표했다.
교 황청 시성성 장관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은 "에스크리바 신부(1902~1975)는 오푸스 데이(Opus Dei)의 창설자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평신도의 거룩함을 증진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에 복음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추 기경은 또 파드레 비오 신부(1887~1968)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아들로 겸손한 카푸친회 수사이며 기도와 고해성사에 평생을 헌신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로 성흔을 보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후안 디에고는 1931년 12월 멕시코에서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을 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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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 파리 (Paris)
1830 년 7월 18일 파리의 위드박 (Rue de Bac)에 있는 성 빈첸시오의 애덕자매회의 가타리나 라블레는 잠을 청하던 차에 한 소년의 부름을 들었다. "빨리 성당으로 오세요, 동정 마리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망서리던 가타리나가 성당으로 갔을 때 제대위의 초가 모두 켜저 있었고, 잠시 후 비단 옷 끌리던 소리가 나더니,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나 사제의 의자 위메 좌정하였다. 부인은 가타리나에게 가까이다가오도록 하시고는 말씀 하셨다.
"필요할 때나 고통스러울 때에 이리로 오너라. (왼손으로 감실을 가리키시며) 저곳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단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너는 고통을 당하겠지만 그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다......프랑스에 위기가 닥치고 있구나. 왕권은 무너질 것이고...... 그때 너는 이 제대로 오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제대 앞에서 모두들 위로와 힘과 은총을 풍성히 받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위기는 극에 달할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여길 때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동정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시며 계속하셨다. "십자가는 내동댕이쳐지고 멸시받을 터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다시 여는 것과 같다. 거리는 온통 피바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예언대로 파리는 7월 혁명으로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성 빈첸시오 애덕자매회 본원은 그러한 소요에서 보호되었다. 그 해 11월 27일 오후 5시 30분경 기도하던 가타리나는 소성당 오른편에서 다시 마리아를 뵈었다. 빛나는 흰옷에 베일을 쓰,시고, 작은 지구의를 손에 들고, 뱀에 감긴 지구를 발로 밟고 계신 마리아는, 보석 반지들을 낀 손가락을 통하여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빛을 발하고 계셨다. 모든 시선을 손에 집중하고 있는 가타리나에게 마리아는, "이 빛에는 나에게 간구하는 이들에게 내려줄 은총의 상징이 있다"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이 환시를 이해하게 된 가타리나는 동시에 마리아를 둘러싼 타원형의 빛 가운데,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달아드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를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모습대로 메달을 주조하라. 이 메달은 은총의 메달로서 이것을 지니는 사람은 누구나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이들에게도 은총을 충만히 내릴 것이다."하고 외쳤다. 예수 성심과 성모성심으로 된 메달의 뒷면도 나타났다.
한편, 평소 가타리나를 지도하던 알라델 신부는 전에도 성 빈첸시오의 심장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고 말한 바 있는 가타리나를 의심하여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12월 말 다시 발현하신 동정 마리아의 의향을 간절히 전하는 가타리나의 태도에서 진정 성모님의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신부는, 수도회 총장신부와 주교의 허락하에 메달 주조에 착수하였다. 1832년 6월 30일에 나온 최초의 메달은 이단에 빠진 어느 주교를 임종석에서 회개시키는 기적을 선두로 갖가지 치유를 일으켰다. '기적의 패'는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갔고, 복된 수녀로서 일생을 마친 가타리나 라블레는 194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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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살레트(La Salette)
성 모 마리아는 고원 목장도 찾아가셨다. 그레노블교구 라 살레트에 있는 해발 1800m의 목장에서 1846년 9월 19일 멜라니 갈바(14세)와 막시민 지로드(11세)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공 모양의 물체에서 나와 우물 가의 돌 위에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비통히 우시며 들일을 하면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 거룩한 이름을 불러 함부로 저주하며 대소재를 지키지 않은 죄 때문에 수확이 결딴나고 대기근이 들 것이라 하셨다. 또 7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부모의 품에서 중병으로 죽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보속하게 될 것을 경고하시며, 아이들에게 각각 한 가지의 비밀도 말씀하셨다. 또한 사람들이 회개하면 돌과 바위들이 곡식 더미로 화할 것이고 풍성한 감자 수확을 거두리라는 희망도 아울러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발현은 그후 프랑스 정체가 제3공화정이 되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직자들의 저지 등으로 흐지부지되었다. 단, 그레노블 주교는 1851년 이 발현이 사실임을 인정하였고,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기념 성당을 세웠다. 도시와는 다른 산의 정기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을 위하여 상설 고백소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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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르드(Lourdes)
루 르드는 오트 피레네도의 타르브 평야에서 그치는 산맥의 마지막 기복과 라브당 산의 일곱 계곡의 물이 흐르는 하구에 위치한다. 루르드의 성채는 피레네의 요새였고,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는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8회에 걸쳐 벨라뎃다 수비루(14세)에게 발현 하셨다.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가 친구및 동생과 함께 땔감을 구하러 들로 나가 개울을 건너려고 양말을 벗을 때였다. 아주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부인이 저만치 서 계시는 것이었다. 별 말씀 없이 부인은 아기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결함 그리고 모성의 부드러움을 지닌 채 푸른 띠를 나부끼며 정성스레 합장한 손으로 묵주알을 굴리고 계셨다.
당시 프랑스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물결의 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멀리하고 있었던 터라 발현에 대해 말하는 벨라뎃다는 정부 당국과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발현 장소에 가는 것마저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3월의 발현때 '나는 원죄없는 잉태'라 하심으로써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선포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교의를 확인하신 마리아는 기적의 샘을 솟게 하셨다. 즉 벨라뎃다로 하여금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이 귀한 그 지방의 마사비엘 동굴에 샘을 파게하시고, 그 물로 불치의 병자들을 속속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동정 마리아의 루르드 발현은 1862년 공인되었고, 잡목으로 둘러싸인 벽지의 동굴 속에 '원죄없는 잉태'의 성모상이 1864년 최대의 성황리에 안치되었다. 발현 후 50년 동안 4,000건 이상의 난치병 치유 사실이 보고되었고, 신앙의 기쁨을 찾은 이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1872년부터는 순례자가 더욱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그 수는 연간 200만명을 넘는다. 실로암(요한 9:10)과 베짜타연못 (요한 5:4)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을 마리아는 오늘도 루르드의 샘을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벨라뎃다는 1866년 루르드를 떠나 수녀가 되었으며, 35세를 일기로 1879년 선종하였고 1933년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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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맹(Pont-main)
1871 년 1월 17일 저녁 날씨가 어떤가 보려고 창고에서 문 밖에 내다보던 바베데트(12세)는 위가 넓은관을 쓰고 5각형의 금별들이 수놓인 푸른 옷차림의 부인을 보게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임박으로 프랑스 서부 전체가 공포에 떨 때 성모님은 브르타 마엔 북쪽 풍맹에서 외젠을 비롯한 일곱 어린이들에게만 자신을 보여 주시며, "내 자녀들아, 기도해라. 그러면 단시일 내에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실 것이고, 나의 거룩한 아들이 그 마음을 움직이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한자한자 찍어내어 아이들로 하여금 군중을 위하여 읽게 하셨다. 발현한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배로 커지면서 글자가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모였던 6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발현이 계속되는 동안 삼각별 셋만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 밤 독일군의 진군은 중단되었고, 11일 후인 1월 28일에는 휴전이 조인되었다. 성모님의 보호를 구하며 징집되었던 39명의 풍맹 청년들은 무사히 귀가했다. "항상 기도하라"라는 복음 말씀외에는 한마디도 더 첨부하지 않은 마리아의 메세지가 전해지자, 하루에도 수천 명씩 교회로 몰려왔다. 이 성모 성지는 1872년에 공인되었고, 1900년 성당이 축성되었으며, 성모상이 세워졌다. 그것은 진한 남빛 바탕에 금별이 수놓인 옷차림의 마리아가 슬픔에 잠겨 피범벅의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를 두 손으로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금 내미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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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 녹(Knok>
1845~6 년의 기근으로 2백만 명 이상이 죽어가던 아일랜드는, 1879년 또 한 차례의 기근으로 그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 해 8월 21일 녹 마을의 두소녀와 성당의 가정부는 저녁 7시경 성당 서쪽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상셋이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15명이 모여들었더니, 흰옷을 입은 성모님이 미사를 드리는 사제처럼 손을 든 채 가운데 계시고, 오른편에 손을 합장하고 기도드리는 성 요셉, 왼편에 책을 들고 강론하는 자세의 주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더 왼쪽에는 소박한 제대 위에 커다란 십자가와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놓여 있으며, 그 주위를 광선과 별들, 공중에 떠 있는 천사들의 무리가 에워싼 것을 9시 넘어까지 볼 수 있었다. 이 짧은 발현의 핵심은 주교를 통해 제대와 결합된 마리아, 희생되신 은총의 중재자 어린 양과 함께 곤경에서 보호하시는 아일랜드의 모후 마리아에게 있다. 성모 마리아는 녹에서 특별히 공경받으시며 은혜를 내리고 계신 것이다.
다음은 현지 교민이 보내온 사연을 수정없이 그대로 싣습니다. 1999.12.10
아 릴랜드 서부해얀 지역인 마요(영어: 애란어: County Mayo Contae Maigheo)군에 있는 녹 성모 성지 이야기를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마요군민인데 자주 그 성모성징에 순례갔습니다. 실수 하나 있는데 영어로 녹은 Knock이라고 습니다. 이는 그 마을의 애란어 이름 Cnoc의 영어화입니다. Cnoc이란 언덕이란 뜻입니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신 후에 그 곳의 애란어 이름은 Cnoc Mhuire라고 합니다. 뜻은 마리아의 언덕. 그래서 여러분이 쓰신 Knok이란 말 틀립니다.
함께 나타난 주교는 복음사가 성 요한이었는데 그분의 왼손에 복음서 또는 성서를 들고 있고 왼손은 설교하는듯 올려 있습니다.
무언의 발현이었는데 상징적으로 말한 것은 묵시록과 관련된 메시지입니다.
어 린양의 신부인 교회의 견본이 되시는 마리아와 천상에 영광 안에서 그분과 그분의 외아드님을 관상하고 있는 성인들은 아일랜드인들에게 현세의 고생을 무릅쓰고 마침네 성모님의 기도와 미사 때에 재현되는 어린 양의 수난과 부활 승리의 공로 덕분에 승리하겠다고 약속한다는 메시지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평화와 선 Siochain agus maitheas
황진혁 베르나르디노 형제 An Brathair Bearnairdin O Mo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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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 파티마(Fatima)
파 티마의 성모 발현은 이제까지의 모든 발현보다 세계사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의미심장하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와중이던 1917년 4월 6일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서유럽의 역사에 개입하였고, 동유럽에서는 12월 7일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2의 이데올로기 세력을 계획하여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한편 바티칸에서는 몬시뇰 파젤리(교황비오 12세)의 주교 서품식을 5월13일 거행하고, 그를 독일 대사로 파견하여 평화를 위한 중재를 시도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평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즈음 프리메이슨 단원들은 성 베드로 광장 에서 『사탄이 바티칸을 지배해야 한다. 교황은 사탄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는 깃발과 루치페르가 미카엘 대천사를 내동댕이치는 그림을 나부끼며 창림 200주년 기념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겨한 까닭에 당시 신학생이었던, 1982년 시성된 M.콜베는 <성모의 기사회>를 창설하였던 것이다.
군주정치에서 셰계 혁명을 거쳐 민주정치로 발돋음하던 역사적 전환기 1917년의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성모 마리아는 6번 에 걸쳐 발현하여 세계 평화를 위한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들을 남기셨다. 어린 목동들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와 히야친타(7세)가 점심을 먹고 묵주의 기도를 끝내려 할때 번개가 번쩍 하였다. 폭풍우가 닥칠까 무서워 급히 양떼를 몰고 내려오던 어린 목동들은 좀더 강한 번개가 다시 치는 것을 본 순간 너도밤나무 위에 찬란한 빛을 발하는 여인이 서 계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천국에서 왔으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부인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달 13일 그 발현 장소에 오면 10월에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세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하여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칠 것을 당부하신 부인은 세번째 발현때 『사람들이 나의 요청을 실천한다면 러시아는 회개하고 평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전세계에 악을 행하고 전쟁과 교회에 대한 박해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나의 티없는 성심이 승리라리라. 교황은 러시아를 나에게 봉헌할 것이며, 얼마 동안 세계에는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날 지옥에 대한 환시를 본 세목동들은 전율하였다.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때 성모님은 기념 성당을 지을 것과 죄인의 회개및 용서를 위해 보속할 것을 당부하고 두팔을 펼치고 하늘로 오르셨다. 그 발현을 지켜보려고 모였던 7만 명의 군중은 퍼붓던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태양이 활활 타는 수레바퀴처럼 돌며 색색의 빛줄기를 뿜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는가 했더니, 멈춘 다음 그들을 향하여 떨어지려는 광경에 접하였다. 모두들 겁에 질려 " 주 예수여, 저희들이 여기서 죽게 되었습니다."하고 부르짖자 태양이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난' 하늘의 큰 표징(묵시12장)으로 종말론적 성격을 띠는 이러한 파티마의 발현을 통하여 평화의 모후는 악의 세력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우신 것이다. 세 어린이에게 주신 세 가지 비밀 중 한 가지는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다. 파티마의 성모 메시지는 후세 사람들이 언제나 시대의 조류와 함께 검증하고 돌아볼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세계를 다시 한번 평화의 모후께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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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 보랭(Beauraing)
파 티마의 성모 메시지가 느리게 전파되는 동안 성모 마리아는 벨기에에서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셨다.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까지 보랭의 다섯 어린이들에게 잠깐씩 여러 차례 발현하시고는 '원죄없이 잉태된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인 당신의 성심을 사랑하고 더욱 착한 사람이 될 것, 주님을 위하여 항상 희생을 바치고 기도하기를 그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마지막 발현 때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어둠에 싸인 정원에 불 같은 공을 하늘로 떠올려 찬란한 불꽃으로 폭발하며 쏟아지는 기적을 보이셨다. 그날 저녁부터 보랭은 은총을 내리시는 마리아의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1943년 2월 19일 관할 주교 안드레아 샤르는 이 발현을 사실로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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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뇌(Banneux)
1933 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반뇌에 사는 마리에트(12세)에게 8번 나타나셨다. 당신을 철저히 신뢰할것을 바라시며 루르드처럼 샘터를 지적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반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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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 가라반달(Garabandal)
1961 년 6월 18일 스페인의 산골마을 산 세바스티안 데 가라반달에 성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남의 사과를 몰래 따먹고 놀던 콘치타(12세),롤리(12세),히야친타(12세)와 마리쿠르스(11세)에게 7월 12일 '가르멜산의 성모'가 발현하리라는 예고를 했다. 과연 7월 12일이 되자 흰옷과 파란 망토에 왕관을 쓰고, 오른판에 스카풀라를 두른 귀부인이 처음 천사가 나타났던 카예하에 나타나셨다. 그후 1965년 11월 3일까지 몇 차례 더 발현하여 사람들이 아이들을 통해 드린 물건에 친구하고 돌려 주시기도 하며, 때로는 갓난아기 예수를 안고 오시어 아이들의 팔에 안겨 주시기도 했다. 어느날 롤리와 히야친타가 사람들이 성모님의 목소리나마 듣고 싶어하므로 말씀하시기를 청하고 사람들이 녹음을 시도하자, 성모님은 "아니, 나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셨는데, 그것을 많은 사람이 듣고는 깊은 감명을 받아 진실성을 믿었다. 그러나 곧 녹음을 다시 틀었을 때에는 그 음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 심사 계류중인 이 발현지에서 탈혼 또는 부르심의 무아경 속에서 목격자들이 행진을 하기도 하고, 지상의 어느 감실로부터 미카엘 대천사가 날라온 성체가 아이들의 혀 위에 나타나는 것이 비데오 카메라에 담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발현에 따른 메세지 중 1965년 6월 18일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미카엘 대천사가 전한 것은 아래와 같다.
" 전에는 잔이 채워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넘치고 있다. 많은 추기경, 주교, 사제들이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많은 영혼들을 그리로 데려가고 있다. 성체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느님께서 분노를 거두시게 해야한다....너희는 지금 마지막 경고를 받고 있다.....보다 많은 희생을 바치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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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고슬라비아
◈ 메주고예(Medugorje)
1981 년 6월 24일부터 시작된 이 발현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날 오후 늦게 메주교예의 포드브르산에서 전방 2,3백 야드쯤 되는 지점에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산책하던 미르야나 드래지세빅(16세)과 이빈가 이반코빅이 보았으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실리 만무하다는 농담을 하며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 이빈가, 미르야나, 마리야 파블로빅, 비카 이반코빅, 이반 드래지세빅과 야코브콜로 등 6명의 청소년들이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유고슬라비아 정부 당국의 비상한 관심속에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널리 알려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틀림없는 성모님의 발현이라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제관, 그리제바코산의 십자가 곁, 야고보 성당등 자리를 옮겨가며 발현하시는 성모 마리아는, '기도와 단식'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하시며, 자연법칙을 중지시킬 수도 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동아출판사刊 성서의세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