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해 설명해놓은 글모음입니다.
하느님과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
기독교 에서 신봉하는 유일신을 로마가톨릭교(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 개신교의 세력이 가톨릭교의 세력보다 더 큰 터라,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하느님'을 점차 밀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말할 나위 없이 둘 가운데 옳은 말은 '하느님'이다. 개신교 쪽에서 '하나님'을 고집하며 내세우는 가장 큰 커다란 논거는 그들의 신이 유일신, 곧 하나밖에 없는 신이어서, 우리말의 수사 '하나'에 존칭접미사 '님'을 덧붙여 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하나' '둘' '셋'같은 수사가 존칭접미사 '님'을 덧붙여 이 유일신을 존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하나' '둘' '셋'같은 수사가 존칭접미사 '님'과 어울리는 것이 아주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은 이들에게 별로 먹혀들지 않는다. 사실 '하나밖에 없는 분'이어서 '하나님'이라는 해석은, 독실한 신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마땅히 '하느님'이 되셔야 할 분이 '하나님'이 된 것은, 우리말 모음체계에서 '아래 아' 곧 '.'가 불안정해지며 빚어진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19세기말에 영국 선교사 존 로스와 존 메킨타이어가 한국의 신자들의 도움으로 누가 복음을 번역해 펴낸 '예수셩교 누가복음 전서'(1882년)에는 '하느님'이라는 형태와 '하나님'이라는 형태가 동시에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형태가 개신교 쪽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하나밖에 없는 분'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 해석은 뒷사람들의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자들 자신이 그런 뜻으로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셩교 누가복음전서'에 나오는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그 이전 형태는' 하느님'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은 '하늘'이 옛 형태인 '하늘'에 '님'이 붙으며 ㄹ이 탈락한 형태다. 마치 현대어에서 ‘아들’과 ‘딸’에 님’이 ㄹ이 탈락해서 ‘아드님’‘따님’이 되듯, 말하자면 '하느님'은 "하늘 님"의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느님'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외국 선교사들이나 초창기 개신교 신자들은 그들이 번역어로서 '하나님'을 사용할 때조차도 '하늘+님'을 생각했던 것이지, 오늘날의 개신교 신자들처럼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래 아'가 소실되면서 두 번째 음절의 '아래 아'는 아들로 번역하듯 '-'모음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방언에 따라서는 그것이 일정치 않았고, 또 '아래 아'가 상당기간 ' ㅏ'와 '-'사이에서 동요하기도 했다.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서>의 '하나님'은 그 방언의 흔적 또는 흔들림의 흔적일 뿐이다.
이 '하나님' 또는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기독교'라는 말도 흔히 잘못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의 종교는 천주교이고, 이희호씨의 종교는 기독교'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천주교 역시 기독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실상 언론매체에서 조차 점차로 '기독교'는 '개신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基督)'이 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중국사람들이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므로, 기독교는 '그리스도교', '예수교' '야소교(耶蘇敎; 耶蘇는 ‘예수’를 중국인들이 한자로 음역한 것)'와 같은 뜻이고, 그것은 영어의 '크리스채니티'나 이탈리아 말의 '크리스티아네지모'에 해당하는 말이다. '기독교'를 뜻하는 영어의 '크리스채니티'나 이탈리아 말의 '크리스티아네지모' 역시 우리말의 '기독교'처럼 '그리스도'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그 서양말들은 단순히 개신교만이 아니라 신구교를 가릴 것 없이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구세주로 받드는 모든 종파를 가리킨다. 당연한 일이다. 그 말들의 뜻이 '그리스도의 종교'니까.
또 다른 근거로는 유몽인(柳夢寅)의 저서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구라파국은 방언으로 대서(大西)가 있으니 기린단(伎利壇)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기린단은 곧 그리스찬의 한자 표기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가장 먼저 전래된 기독교 교파는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였고, 그래서 예컨대 17세기나 18세기에 살던 우리 조상들이 '야소교'라고 부른 것은 개신교의 어떤 교파가 아니라 천주교였다.
기독, 곧 그리스도는 로마 가톨릭 교도든 정교회 신자든 개신교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로서 영접하는 분이다. 그 '그리스도(기독)를 영접하는 종교'라는 의미의 '기독교'라는 말이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관행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독특한 관행이다.
에세이스트 -고종석- (1998년11월17일 한겨레신문 "창"에서 발췌)
가톨릭과 개신교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형제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비록 가톨릭교회, 동방교회, 개신교(성공회 포함)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주님이요 구 세주로 고백한다는 점에서 한 형제, 한 가족이다. 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성서를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방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 교리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등을 인정하지 않고 전례나 전통적 관습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 신교는 가톨릭교회와 달리 근본적인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계시의 원천에 관한 것으로, 가톨릭교회는 성서와 함께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전통(성전)을 계시의 원천으로 포함시키지만, 개신교는 성서만을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한다. 개신교에서 교황의 수위권이나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구원에 관한 것으로, 가톨릭교회는 믿음과 함께 올바른 행실이 따 라야만 구원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데 비해 개신교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죽 음 이후에 관해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천당 연옥 지옥에 관한 전통적인 가톨릭의 가르침과 달리 개신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세상 종말의 부활 교리만이 강조된다. 그래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이라든가 연옥에서 단련받는 영혼들에 대한 사상이 개신교에서는 별로 없다. 개신교에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나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교회와 가깝다. 근본적인 차 이점은 성공회는 교황의 교도권과 통치를 부정하는 면에서 개신교이지만, 성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가톨릭교회와 가깝다. 또한 성공회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교회의 성사를 인정한다.
1. 그리스도교의 타교파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경우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동 방교회와 성공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인 면에서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이들의 세례를 인정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경우, 그 세례가 합당한 방식에 의해 이뤄진 유효한 것이 라면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입교예식서에 규정된 '일치예식'만 하면 된 다.(교회법 제869조 2항,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58조, 제62조)
그 러나 그 외의 개신교 교파에서 세례를 받은 경우는 그 유효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면 예비자 교리를 거쳐 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개신교에서도 세례는 베풀지만 세례성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올바로 집전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 59-60조)
2. 가톨릭신자가 다른 교회에서 영성체 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가톨릭신자는 가톨릭교회의 교역자(사제)에게서만 성사를 받아야 적법하다.(교회법 844조 1항, 923조)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은 동방교회나 개신교 (성공회 포함)에서 영성체 할 수 없다.
그 러나 아주 예외적인 경우, 예를 들면 가톨릭 교역자에게 가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참으로 영적 유익이 있을 때 그리고 오류의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한해 고해와 성체 및 병자성사를 유효하게 보존하는 교회의 비가톨릭 교역자들에게 성사를 받을 수는 있다.(교회법 844조 2항) 그러나 이 규정이 개인의 편의를 위해 오용되면 안 된다.
3. 동방교회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서 성사를 받을 수 있는가?
가 톨릭교회는 동방교회 신자들의 경우 가톨릭의 성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온전한 친교가 없는 동방교회의 신자들이라도 고해와 성체 및 병자 성사를 자진해서 청하고 또 올바로 준비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이들에게 성사를 허락할 수 있다.(교회법 844조 3항)
4. 개신교에도 성체성사가 있는가?
가톨릭교회는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한 다. 그리고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는 '실체변화'를 교의적으로 믿고 고백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체조배와 성체거동과 같이 성체를 공경하는 다양한 신심행사를 한다.
그 러나 개신교는 성체성사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이해를 가톨릭과 달리한다. 부활절과 같은 주요시기에 예수의 최후만찬을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로 성찬예식을 기념하긴 하지만 실제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평화신문 박주병 기자]
천주교,기독교,예수교
예수교인가, 천주교인가?
우리 나라에서 그리스도교를 나타낼 때 천주교·예수교·기독교 등 여러 이름들이 쓰이고 있다. 이 이름들에는 어떠한 뜻이 담겨있고, 왜 우리 신앙을 주로 천주교라는 낱말로 부르게 되었는가? 우리 교회사에서는 천주교라는 낱말말고 다른 칭호는 없었는가?
1.천주와 천주교
종교신앙 이 전파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신앙이든지 현지 문화의 그릇 속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현지의 종교문화적 요소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과 합치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16세기 동양에 진출한 예수회의 선교론이었던 보유론(補儒論)이다.
보유론은 그리스도교와 동양사회의 유교가 서로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통한 면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유교의 신관에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적 교리가 보충될 때 동양의 유교문화는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그 런데 16세기 당시 동아시아 삼국의 보편적인 신앙의 대상은 ‘하늘’〔天〕이었다. 선교사들은 이 ‘하늘’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상징성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유론적 입장에서 이 낱말이 그리스도교의 신인 데우스(Deus)와 동일하게 견주어진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들은 신앙의 대상인 데우스, 곧 하느님을 한자어로 옮기려고 고심했다. 그 결과 선교 초기에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로 천제(天帝), 천존(天尊), 천리(天理), 천명(天命), 천운(天運), 천도(天道) 등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천주(天主), 천(天), 상제(上帝), 상주(上主) 등과 같은 낱말도 함께 나타났다. 이 가운데 ‘천주’라는 말마디가 점차 널리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천주라는 한자어를 처음으로 창안해 낸 이는 일본에서 선교하던 발리냐노(1539`-1606년) 신부였다. 그는 중국에서 유교적 적응주의 선교를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던 마테오 리치(1552-1610년)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발리냐노가 일본에서 개발했던 ‘천주’라는 낱말로 그리스도교의 신앙 대상을 번역하기로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양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에게 큰 이질감이나 거부감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 대상이 ‘천주’로 번역됨에 따라서, ‘천주교’라는 명칭도 나타나게 되었다. 천주교의 천주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신앙 대상이었던 ‘천(天)’과 그리스도교의 데우스 개념이 한데 어우러져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수용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텍스트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창조적으로 재해석되어 갔다.
2.천주교란 낱말의 수용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앙은 이웃 나라에서 간행된 한문 서적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곧, 17세기 초에 우리 나라에 천주교의 존재를 알려준 유몽인(1559-1623년)의 경우에는 기리단(伎利檀)이란 새로운 종교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천주교를 가리키는 일본어 기리시당[切利支丹]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그는 일본 경로를 통해서도 천주교에 관한 정보를 얻어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마테오 리치가 지어 1603년에 중국에서 간행했던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조선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중국에서는 천주교 신앙을 포함하여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일으킨 학문을 서학(西學)이라 불렀다. 사변적 경향이 강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학의 알맹이가 천주학(天主學)에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박해시대에 천주학이란 낱말에서 ‘천주학쟁이’라는 낮춤말도 나타났다. 천주학쟁이라는 낱말은 1880년에 간행된 「한불자전」(韓佛字典)에 수록되었다. 이를 보면,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주학이란 낱말이 보편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박해시대 조선사회에서는 천주학이란 말과 함께 ‘천주교’라는 낱말도 사용되었다. 천주교의 천주는 삼위일체적 개념으로서 성부·성자·성령을 포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3.예수학과 예수교에 대한 인식
한 국교회사의 초기 신자들도 하느님 아버지만을 공경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임을 고백했다. 한문 서학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 음이 비슷한 야소 기독(耶蘇基督, yesu-jidu)이라는 말로 옮겼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 또는 기독교로 부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한편, 한국 초기 교회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耶蘇敎〕로도 지칭하고 있었고, 예수학〔耶蘇學〕이란 낱말도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주문모 신부의 신문기록을 통해서 확실히 드러난다. 그는 ‘예수학’은 ‘그릇된 가르침’〔邪學〕이 결코 아님을 주장했다. 그는 ‘예수교’를 전하려고 국경을 넘어왔고, 예수를 공경하여 자기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교에서는 정결을 제일 중요시하고, 예수교의 십계에서는 나라에 대해 충성하기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예수의 초상을 걸고 미사를 집전했던 그는 신앙의 중심을 이처럼 예수님에게 두고 있었다.
또한, 당시 일반 신자들도 자신의 종교를 ‘예수교’로 불렀던 경우가 많았다. 1801년에 순교한 장덕유는 서울의 남대문 밖 이문동에 살면서 망건 장사를 하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수교를 믿고 있다고 말했고, 예수는 교주라고 규정했다. 김경애와 같은 아녀자도 자신은 “예수를 위해서 죽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초기 천주교회에서 예수는 중요한 존재였고, 예수교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따르던 자신들을 ‘그리스당’이라고 불렀다. 이는 ‘크리스티안’(Christian)이란 낱말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그리스당’이란 낱말에서 마지막 음인 ‘당’은 무리를 뜻하는 ‘당’(黨)으로 연상되는 효과가 있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당’이라 부르면서 ‘그리스도당’ 내지는 ‘기독당’으로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쓰이던 예수교는 곧 천주교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리스당은 천주교도임을 자칭하던 용어였다. 그러나 점차 교회 안팎에서 ‘예수교’보다는 천주교라는 낱말이 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기독교도’라는 말 대신 ‘천주교 신자’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천주교라는 용어와 기독교 또는 예수교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곧,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뜻하는 말로, 그리고 기독교나 예수교는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를 뜻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일이다.
기독교라는 낱말에는 천주교와 동방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모두 포괄되는 개념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전통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예수교로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천주교가 기독교나 예수교라는 이 좋은 말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우리도 예수교도이고 기독교도이며 천주교도인 까닭이다.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천주교(가톨릭)이란?
1. 천주교의 유래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기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신속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천주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300여 년 가까이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 마침내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곧이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지난 이천 년 동안 서구 문화와 문명의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되어 왔으며, 학문과 예술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 왔습니다. 또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면서 세계 평화와 인류애 증진을 위하여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약 10억 명(1998년 말 통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 천주교의 한국 전래
천 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지금부터 200여 년 전입니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 사람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서학(西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귀국하자마자 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드디어 지금의 명동 성당 부근의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외국인 선교사가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한 일입니다.
3.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교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학파 학자들은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적과 함께 접하게 된 새로운 종교, 곧 천주교의 가르침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이며 자매라는 가르침은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라는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던 사회에서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4. 온갖 박해를 딛고 성장한 한국 천주교회
한 국 천주교회의 성장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유교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지배층은 천주교 신자들을 동양 윤리의 이단자이며,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 온갖 박해를 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네 번에 걸친 커다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교사 영입과 성직자 배출을 위하여 힘쓰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1845년 김대건(안드레아)이 중국 상하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조선인 사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는 귀국하여 일 년도 채 안 된 이듬해에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배교(背敎)하겠다.”라는 한 마디만 하면 단란했던 가정, 잃었던 명예와 가산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던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이미 103명은 전세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공경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5.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
오 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런 모습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교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은 370만 명(1998년 말 통계)이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북한 형제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6. 성당은 하느님의 집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고, 신자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도와 수련의 집으로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입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 신자들은 손에 성수(聖水)를 찍어 성호경을 바치면서, 생각과 행동이 오직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성당의 중심은 천주교의 공적 예배인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祭臺)입니다.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성당 안에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감실(龕室)은 신자들이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7.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미사를 비롯하여 천주교의 공식적인 경신례(敬神禮)를 전례(典禮)라고 합니다. 전례는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뜻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거룩하게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천주교의 대표적 전례인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신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한 형제를 이루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신자들은 주일(일요일)마다, 그리고 교회가 정한 특별한 날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시간을 정하여 여러 차례 미사를 드리는데, 신자들은 편리한 시간을 택하여 미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미사에서 신자들은 주님께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면서 주님을 대하기 위하여 일어서고, 편안하게 주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앉는데, 이는 우리의 생활 관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8. 교구와 본당
교 회 역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도(道) 단위 지방 자치 단체와도 같은 커다란 지역을 일컬어 교구(敎區)라고 부르는데, 이는 교황이 임명한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신자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행정 구역을 말합니다. 교구는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本堂)으로 나뉘는데, 주교들의 협조자인 신부들이 상주하며 신자들을 보살핍니다.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효과적인 신앙 생활을 돕기 위하여 가까운 이웃의 몇몇 가구가 모여 구성하는 작은 공동체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 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교구와 본당에 소속되어 신앙 생활을 합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앞에서 본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처럼,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형제적 사랑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에 나아가 선교 사명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본당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터전입니다. 본당에는 신자들의 신앙 생활 지도를 책임지고 있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전교 수녀와 사무실 직원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9. 예비신자
세례를 받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예비신자’라고 부릅니다. 예비신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존 신자들과 하나가 될 형제 자매들입니다. 예비신자들은 신자들이 누리는 영적 혜택들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공식 경신례인 미사에는 물론, 여러 가지 기도 모임과 소공동체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비신자의 장례 역시 세례 받은 신자와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예비신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신앙 문제에 대하여 상담할 수 있으며,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신부나 수녀에게 기도를 청할 수 있습니다.
10. 형제애로 보살펴 주는 교회 공동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 안에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천 주교 신자들은 거룩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본당과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여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면서 형제적 사랑을 나누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형제애는 굳건한 신앙 생활과 친교의 바탕이 됩니다. 예비신자들도 이러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교회 공동체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