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과 생명윤리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생명의 빛>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

시작하면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는 우주에 있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인류의 미래는 유전자 안에 있다는 사고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유전공학의 세기로 전망하는 시각이 점점 더 확산되고있다.
이 러한 시각은 언론 매체들이 유전공학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공학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언론매체는 유전공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아니면 아주 피상적으로 다루고있다. 유전공학에 수반되는 위험성과 함정에 대해서는 별로 기사화하지 않고 있다. 유전공학자나 관련 업계의 주장을 보도하는데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지만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학문의 자유를 구속하고 간섭한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연구 자체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유전공학의 육성에 있다는 논리 앞에 우리는 지금 유전 공학이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유전 공학 기술이 가져올 피해를 규제하는 운동에 연대해서 대응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있다.
우 리 나라의 경우 유전 공학과 관련된 문제를 적절하게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규가 아직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입법을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생명 윤리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여 '생명 윤리 기본법' 초안을 마련하기는 했으나, 언제 입법으로 이어질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아직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유전자 조작 실험이나 연구가 무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세기는 희망과 기대로 충만해 있지만 반면에 우려도 늘어나고 있다. DNA, 유전자 조작과 치료, 생명 복제, 게놈 프로젝트 등 기존의 생명 문화와는 그 유형을 달리하는 생명 문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생명'이라는 화두가 다시금 회자되는 시대를 살고있다.
유전공학의 기술은 생명체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른바 '꿈의 기술'이다.
하 지만 유전공학의 기술을 소수 집단의 점유물로 방관해서는 안된다. 유전공학을 대중의 관심사로 만드는 것이 현시점에서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유전공학에 대해 공개적인 찬반 논의와 토론을 확산시켜야 한다. 토론과 논의의 과정에서 유전공학이 기정의 사실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이 드러나야 한다. 즉 유전공학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 또는 여론의 조성이 필요하다.
유전 공학을 둘러싼 공감대 형성과 여론의 조성에 이 글이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 속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유전 공학에 대한 이해와 유전 공학이 안고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유전공학의 기본 개념

모 든 생명체의 기본 단위는 세포이다. 인간의 신체는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세포는 세포핵을 가지고 있는데 세포핵에는 23쌍의 염색체가 들어있다. 이 염색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 이른바 DNA(Deoxyribo Nucleic Acid : 디옥시리보 핵산 : 단백질)로서 이중나선의 모양을 하고있다고 한다. 인간의 DNA(유전자)는 약 3만여 개에서 10만여 개로 추정되고 있으며, 약 30억개의 염기쌍(A4 용지 약 200만장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염기쌍은 4가지 염기, 즉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그리고 C(시토신)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4가지 염기 가운데 A는 T와 G는 C와 서로 화학적으로 결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A와 G 또는 T와 C는 결코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DNA 한 개의 길이는 약 1.5m에 이르고, 인간의 모든 DNA의 길이를 합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를 1000번 왕복하는 길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DNA에 이른바 유전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은 이러한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연구 인력을 투입하였다.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 위한 기초 프로젝트가 바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2000년 6월 26일에 초안의 형태로 발표되었고, 2001년 2월에 최종안이 발표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초안은 약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쌍의 서열 또는 배열을 밝히는 1단계 작업의 결과이다. 이 1단계 작업을 비유적으로 설명해보면, 200만장의 쪽 번호가 뒤섞여 있는 것을 순서대로 맞추는 작업에 해당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2단계 작업은 염기쌍의 서열의 기능을 밝히는 작업이다. 즉 2단계 작업은 이른바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작업이다. 유전자의 기능, 유전자끼리의 상호 작용, 유전자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작업이다. 다시 비유적으로 설명해 보면, 쪽 번호가 뒤섞여있는 200만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쪽 번호 순서대로 맞추고 난 후(1단계 작업), 각 쪽에 기록된 문장을 해독해서 순서대로 다시 기록하고 그 상호 관련성을 밝히는 작업이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2)

유전공학의 세기 전망
인 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전공학 기술만큼 갑작스러운 기술적, 경제적 기회와 도전 그리고 위험을 가져온 기술은 없었다.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향후 약 25년 동안 우리의 삶은 과거 200년 동안 겪었던 변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유전공학이 유전자 단계에서 생명을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향후 25년 이내에 예상되는 변화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유전공학 회사, 연구 기관 또는 정부가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 기관, 조직뿐 아니라, 인간의 설계도를 구성하는 10만여 개의 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해독하고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미생물, 식물, 동물에 대해서도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삶의 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2) 세계의 농업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땅이나 흙을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옥외 농업 대신 저렴한 비용이 드는 옥내 농업이 발달할 것이다. 이는 옥내에 거대한 박테리아 탱크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조직을 배양함으로써 식량이나 섬유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 방식을 의미한다. 옥내 농업의 발달은 신석기 시대부터 20세기 후반, 이른바 녹색 혁명에 이르는 농업의 종말을 예고할 것이다. 옥내 농업으로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식량의 공급이 가능할 수 있으나 그 대신 농민들의 생활 기반이 뿌리째 뽑히는 사회적 격변이 예상된다.
3)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의 치료, 그리고 대체 연료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이익과 상업적 목적을 위해 새로운 유전자 이식, 박테리아, 바이러스, 식물, 동물들이 지구 생태계에 방출될 것이다. 이러한 방출은 지구 생물권의 불안정을 초래하거나 심지어는 매우 치명적인 유전자 오염을 확산시킴으로써 지구의 생물권 또는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4) 유전공학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지구와 지구 안에 살고있는 생명체를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오늘 날 핵무기가 지구와 인류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미래에는 유전공학 기술로 생산되는 생물 병원균(세균)이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다.
5) 성에 의한 생식을 대체하는 복제가 가능하여 동물이나 인간의 복제가 일상화될 것이다.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여 화학 약품이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다. 아울러 인간과 동물을 혼합한 잡종 키메라(반인반수)의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키메라는 실험 대상이나 장기 제공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 이식 또는 조작으로 동물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과 야생 세계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다. 그 대신 이른바 새로운 생물산업 시대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이다.
6) 시험관 속에서 난자를 수정한 후 인체 밖에 있는 인공 자궁을 이용하여 태아를 출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임신과 출산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정란, 인간 배아, 자궁의 태아 등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질병과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거나 기질, 행동, 지능 또는 신체적 특징(머리카락 색, 피부 색, 눈동자 색, 얼굴 생김새, 키 등등)을 미리 디자인하는 맞춤 인간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부모의 주문에 따라 맞추어진 아이들의 생산이 가능함으로써 이른바 우생 문명 그리고 유전자 차별이 출현할 것이다.
7)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상세하게 알게되고 자신의 생물학적 장래까지 미리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알게됨으로써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고용주, 보험회사 그리고 정부 기관이 교육 방식, 채용 여부, 보험료 납부와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이용될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인종 차별도 출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성이나 평등의 개념이 바뀔 것이고, 개인, 인종, 민족이 유전자형에 따라 유형화되고 고정됨으로써 유전자형에 따른 계급 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계급 제도의 출현이 발생할 것이다.
8) 유전공학 기술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적용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의식, 문명의 장래 그리고 생물권 자체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결과 유전 공학이 제공하는 편익에 사로잡혀 그 위험을 심사숙고하는 데에는 냉담할 것이다.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해독, 관리하고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될 것이다. 유전공학과 컴퓨터공학이 지난 40년 이상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이제는 기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그래서 '생물 정보학' 또는 '생물 데이타 은행' 등의 새로운 분야가 창출되고 있다. 유전공학은 생물 데이타 은행에 있는 풍부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여 자연 세계를 조작하거나 아니면 개조할 수 있다. 유전공학과 컴퓨터의 결합은 세계 역사상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산업시대의 경제가 마감되고 새로운 경제시대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이 전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3)

유전공학의 틀
21 세기를 유전공학의 시대로 예측하는 시각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20세기를 산업화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산업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는 물리학과 화학의 시대였다. 다시 말해서 원자와 전자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생산하였고 새로운 합성 물질을 만들었다. 20세기는 원자와 전자로 짜여진 경제 패러다임의 시대였다. 원자와 전자에 의존하는 경제 패러다임은 한계에 직면하고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있고, 21세기는 유전자로 짜여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유전공학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틀을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고자한다.
1) 특정한 경제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을 위해 유전자를 분류, 분리, 이동, 삽입, 재조합 그 리고 조작한다.
2) 유전자에 대한 특허뿐 아니라 유전자 분리, 조합, 조작에 의한 조직, 유기체에 대한 특허 가 부여되고, 이 특허 부여는 상업적 동기를 유발하여 새로운 자원의 이용을 촉발시킬 것이다.
3)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조작한 식물과 동물을 생물 산업 활동의 일환으로 지구 생물권에 방출한다. 통상과 무역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전세계적인 대규모 방출이 가능하다.
4) 약 10만여 개의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지도의 작성 - 2000년 6월 26일 유전자 지도 초 안 발표 - 유전자 검사, DNA 칩, 유전자 치료, 인간의 난자와 정자, 배세포에 대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등장한다. 이러한 조작 기술은 인종 개조와 상업적인 목적으로 추진되는 우생 문명의 출현을 가능케 할 것이다.
5) 유전자에 기초한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새로운 사회생물학이 등 장한다. 새로운 사회생물학은 후천성 이론(환경, 교육) 보다는 선천성 이론(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음)을 선호함으로써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을 광범위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간략하게 짚어 본 유전공학을 위한 다섯 가지 틀은 세계를 근원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다섯 가지 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섯 가지 틀은 각기 나름대로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점도 안고있다.
1) 유전자 분리, 재조합, 조작
이 기반은 이미 1950년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염색체와 유전자를 찾아내고 식별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유전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의료 유전학'이 등장하였다.
1968년: 염색체를 식별하는 과정을 발명하여 유전자 지도 작성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1973년: 약 50여 개의 유전자 지도 작성
1986년: 약 1500여 개의 유전자 지도 작성
1987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추진 제안
1988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사업 추진
2000년 6월 26일: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초안 발표
2001년 2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성
현 재 동식물은 물론 인간에 대한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른 바 데이터 은행에 축적하고 있다. 그 결과 유전자의 분리, 분류, 이동, 저장 기술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가운데에서 유전자 재조합, 즉 조작 기술이 가장 발전해 왔다. 유전자 조작은 일종의 생물학적 재봉틀에 비교된다. 이 기술은 유전공학과 관련된 기술 중 가장 극적인 기술 수단이다.
인류는 수 천년 동안 유용한 물건이나 도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생물을 융해시키고, 용접하고, 두들기고, 태우는 일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기술을 통해 경제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물을 잘라내고, 재조합하고, 삽입하고, 봉합할 수 있게되었다.
20세기는 물리학과 화학의 세기였으나,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 분명하고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은 모든 분야에 이미 실질적으로 적용되어 세계를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개조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단지 정보 제공의 차원에서 의학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 개조의 시도에 대해서 지적해 보고자한다. 우선 질병을 치료한다는 수단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 약품이 개발되고 있다. 인간의 피부, 신체 각 부위, 장기, 인공 자궁 등에 대한 제작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으며, 2020년 까지는 인간 인체의 약 55%가 실험실에서 배양된 장기로 대체될 전망이며, 이는 이른 바 '장기의 세트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전자 질병 검색과 치료를 위한 정보를 담은 이른 바 유전자 칩도 등장할 것이고,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어 아기를 생산하는 이른 바 '맞춤 인간' 또는 '주문 인간'의 시대가 등장할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복제의 가능성도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인류가 기대어 살아 온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바뀌고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비상한 능력과 가능성에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고있다. 유전 공학자, 유전공학 관련 회사와 업계의 대표들은 유전공학 기술이 가져다 줄 장점과 이익에 대해 열광적으로 선전하고있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이 모든 새로운 기술 혁명은 이익과 그에 따른 대가 모두를 가져온다.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은 결국 생물을 떠받치고있는 생태계와 사회 시스템의 파괴와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그 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참으로 유전공학 기술이 초래할 위험은 없을 것인가'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술은 참으로 인류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꿈의 기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4)

2) 생물 특허- 유전자 특허
20 세기의 산업시대에는 경제와 정치 세력들이 화석 연료와 값비싼 금속을 손에 쥐고 통제하여 세계 시장을 좌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지구의 유전자 자원을 통제하는 경제와 정치 세력들이 미래의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유전자는 유전공학 세기의 '녹색 황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과 정부 연구 기관들이 새로운 녹색 황금, 즉 유전자를 찾아내려고 모든 대륙을 뒤지고있다. 장래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줄지도 모르는 희소한 유전 형질을 가진 미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을 찾아내려고 한다. 유전 공학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수정한 다음 그것을 특허 받아 보호하려고 한다.
특히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북반구의 국가들과 남반구의 가난한 저개발 국가들 사이에 유전자 소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나타나고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중동 지역의 석유가 중동 국가의 국가 유산인 것처럼 유전자 자원 역시 자기 나라 국가 유산의 일부이므로 유전자 자원을 이용하는 보상과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북반구의 국가들은 유전자는 정교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여 조작 및 재조합 될 때에만 그 상품 가치 또는 시장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유전자를 채취한 국가에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각 국에서는 장래에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희귀 식물 종을 보호하기 위해 이미 유전자 저장 설비를 갖추고있다.
유 전자 특허 문제는 이미 1971년에 시작되었다. 미국 특허청에 해양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에 대한 특허가 출원되었다. 그러나 특허청은 생물은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허 출원을 거부하였다. 결국 소송의 제기 등 우여곡절 끝에 특허가 부여되었다. 이러한 특허의 허용은 유전자를 사유화하여 상품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결과 유전공학 기술은 학문의 옷을 벗어버리고 시장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특허 허용은 증권과 주식 시장에도 파급되어 유전공학 회사의 주가가 치솟기도 하였다.
1987년 미국 특허청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일변하여 동물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 유기체는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정을 공표 하였다. 이 결정으로 세계 경제를 산업시대로부터 유전공학 시대로 건너가는 길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특허는 발명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나 이제 발견도 특허의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유전자에 대한 특허 부여 결정은 일부 유전공학 회사들에게 배타적인 독점권과 통제권을 부여하게 되었다. 화학회사, 제약회사, 농업관련 회사 그리고 유전공학 회사들 사이에는 유전자, 유기체 그리고 이들을 조작하는 기술과 과정을 특허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있다. 그 결과 이른바 생물 해적 행위 또는 생물 식민주의가 쟁점으로 떠오르고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 전문가들은 북반구의 실험실과 기업의 회의실에 있는 반면 유전자 자원은 대부분 남반구 적도 생태계에 있다. 북반구의 다국적 기업들과 남반구 국가들 사이의 다툼은 앞으로 중요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분쟁으로 등장할 것이다.
지난 식민 투쟁의 역사는 자국 시장의 이익을 위해 풍부한 생물 자원 원산지에 대한 지속적인 수탈과 이용의 역사였다. 신세계에로의 탐험은 금, 은, 기타 희귀 금속을 찾아내는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식량, 섬유, 염료 그리고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새로운 생물 자원을 찾는 데에도 기여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이 신세계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탐험가, 선교사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은 상업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생물 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생물 자원을 찾아 답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오늘날에는 유전자를 찾아 탐사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유전자 사냥꾼'이 등장하고 북반구의 거대한 기업들은 상당한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희귀한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한 남반구 탐험 여행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자하고있다.
문제를 요약해 보고자 한다.
북 반구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새롭고 유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위험을 각오하고 장기간의 연구 개발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할 수 있으려면 특허로 보호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남반구의 국가들은 자국의 농부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긴 세월 동안 귀중한 약용 식물과 식용 식물을 개량하며 보존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남반구의 국가들은 유전공학의 혁명에 대한 그들의 기여에 대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입장과 주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동일하다. 즉 지구의 유전자 자원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상품화시켜 시장에서 판매하려 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를 지니고있다. 이제 돈이 과학 발전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등장하고있다.
유전자 특허 문제와 관련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특허의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인체의 사유화, 인체의 지적 재산권화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인간의 유전자 조사와 관련한 명백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으면서 방대한 영역의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 출원이 늘어나고 있으며,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 단계에 이르자 인간의 유전자를 특허 받으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가속되고있다. 심지어는 유전자의 기능이나 역할을 밝히기도 전에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도 있다. 유전자 특허 또는 생물 특허를 둘러싼 쟁점은 인류가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즉 유전자 특허를 둘러싼 논쟁은 생물의 본질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5)

3)유전자 조작된 동식물의 방출
유 전공학이 세계의 경제를 재편하고 사회를 개조하는데 영향을 미치면서 지구 환경에도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전공학은 그 기술을 이용하여 자연 세계를 조작할 수 있다. 종과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유전자를 대량으로 이전하여 수많은 생물의 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생물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여 지구 생물권에 방출하여, 이들이 번식하고, 변이를 일으키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땅, 물, 공기를 점령해 나간다는 것은 단지 상상이 아니다. 상업적 실험으로서 실제로 진행되고있다. 실험실에 만든 제2의 창조물을 지구 생물권에 방출하는 것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세 번째 요인이다.
이 와 관련해서 다국적 기업들이 유전공학 쪽으로 업종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종자 회사, 유전공학 회사, 농약 회사, 제약 회사, 의료 회사, 보건 및 건강 회사, 식품 회사, 음료 회사 등을 사들여 거대한 유전공학 단지를 조성하여 생물 산업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필요도 있다. 새로운 생물 산업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전망하고있다.
이와는 달리 인공적으로 조작된 생물을 지구 생물권에 방출함으로써 초래할 혼돈과 재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아 있다. 혼돈과 재앙으로서 우선,(1) 유전자 오염 현상을 지적할 수 있다.
오 염된 유전자를 지닌 생물이 번식하고 널리 퍼져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하여 지구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감소시킬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의 생물권을 개조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종과 종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량 품종을 만들기 위해 동물계나 식물계에서 서로 혈연 관계가 있는 종들을 지속적으로 교배시키는 방법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유전공학이 제공하는 유전자 접합 기술은 종과 종의 벽, 자연 자연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유전자를 접합하고 이전하는 기술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있다. 생물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유전자를 이전하고 조작하는 기술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묘기이다. 이 묘기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연을 상대로 실험하면서 환경에 매우 위험한 새로운 요소까지 만들어 내고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가 자연 환경에 방출될 경우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위험 요소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는 성장하고 번식하며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가 한번 방출되면 이를 다시금 실험실 안으로 회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미생물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회사들과 기업들은 잠재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이러한 위험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고있다.
(2)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의 방출은 단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유전자 기술을 세균전에 대비한 병원균을 조작하는데 사용할 경우 그 위험은 치명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 무기의 생산에도 유전자 기술이 이용될 수도 있다. 생물학 전쟁은 살아있는 생물체를 군사 목적으로 사용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버섯 균류 등이 생물학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 생물 병원균은 생식, 번식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바람, 물, 곤충 그리고 동물을 매개로 하여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대부분의 생물 병원균은 일단 한번 방출되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그 환경에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생물학 무기는 아직까지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방대한 독성 물질을 처리하고 저장하는데는 위험과 비용의 부담이 따르며, 병원균을 살포하는 데에도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생물학전을 치를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테러나 게릴라 작전으로부터 전면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군사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용도의 무기 생산이 가능해지고있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생물학 무기가 단지 방어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방어용 무기와 공격용 무기의 구별은 실제로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 전세계 약 17개국이 차세대 생물학 무기를 생산하여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 조작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고 이용도가 확대됨으로써 다음 세대들은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의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실험실에서는 그것이 공격용이든 아니면 방어용이든 유전자 무기에 대한 실험이 점차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우발적인 방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연구실 또는 실험실이 아무리 안전하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안전한 실험실 또는 연구실은 없다.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자연 재해가 발생하고 안전 수칙이 위반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금세기 핵분열 기술의 발견은 결국 원자 폭탄의 개발로 이어졌고, 원자 폭탄의 등장으로 인류는 스스로 자신의 종말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되었다. 유전자 또는 생물학 무기의 개발은 원자 폭탄의 등장 보다 더 확실하게 인류의 종말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있다.
(3)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체의 방출은 인간의 보건과 건강에도 위협을 가하고있다. 식량의 생산에도 유전자 조작 기술이 이용됨으로써 이른바 '유전자 조작 식품'이 등장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간의 건강이나 보건에 유해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6)

4)우생 문명의 재출현
인 간의 유전자 지도 작성, 유전 질환 및 유전자 결함 검사 기술의 향상, 새로운 생식 기술,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 조작 시술 등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네 번째 요소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상업적 우생 문명의 재출현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제공하고있다. 인간의 유전자 검사 및 치료법이 발전하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유전자의 구성을 재조작하여 우생학적으로 개량된 새로운 우생 인간이 등장하게될 것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그 속성상 우생학의 도구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우생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다.
우 생학은 생물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제거하는 소극적 우생학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물체나 종의 형질을 조작하는 적극적 우생학으로 구별된다. 우생학은 금세기 들어오면서 미국에서 가장 발전하여 미국이 우생학의 본고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전 형질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자 유전학자들과 사회 개혁 운동가들이 이것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우생 운동을 - 우생학적 인종 개량 운동 - 선동하였다.
우생 운동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혈통과 유전 형질이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 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 역시 혈통과 유전 형질이라는 사고로부터 출발하였다. 오늘날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생 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우생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생 운동이 다시금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과거의 우생 운동은 인종 정화를 목적으로 했으나 새로운 우생 운동은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효율성 증대, 성취 능력의 향상, 삶의 질 향상 등과 같은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지향하고있다. 과거의 우생 운동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공포와 증오가 그 동기로 작용했으나, 새로운 우생 운동은 시장 창출 세력과 소비자 욕구가 그 동인이 되어 전개되고있다. 새로운 유전학은 사회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익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지구상 생물의 유전자 우성을 조작하여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노력으로 인해 새로운 우생 문명의 세기에 진입하고 있다.
새로운 우생 문명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전자 치료

유전자 조작 기술은 궁극적인 치료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전자 조작 치료법은 두 가지 종류로 구별된다.
하나는 체세포 치료법으로서 체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인데 다음 세대에 유전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생식세포 치료법으로서 정자, 난자 또는 배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인데 다음 세대에까지 유전된다.
문 제는 유전자를 조작하여 치료하는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선 유전자 조작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치료는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있다. 다시 말해 조작된 유전자를 환자의 염색체에 삽입하는 과정이 무작위적이다. 즉 조작된 유전자가 염색체의 어느 부위에 정착할지 예측할 수 없다. 아울러 특정 부위에 삽입되어 정착된다 할지라도 제대로 기능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언론 매체는 여러 가지 유전자 치료 실험을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의료계와 유전 공학 산업계가 유전자 치료 실험에 큰 기대를 걸고있지만, 그 결과는 아직은 매우 실망스럽다.

유전자 검사

특히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이상이나 결함을 조사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태아 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유전자 이상 또는 결함 중에서 치료 가능성은 현재 약 15% 이하에 그치고있다. 나머지 치료가 불가능할 85%의 경우 부모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 태아를 낙태시키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하는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해야한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윤리적 딜레마를 야기 시킨다. 이러한 선택은 또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 검사가 잘못되어 정상적인 유전자를 결함이나 이상이 있는 유전자로 판별하여 태아를 낙태시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의 책임

향후 10년 이내에 우리는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게될 것이고, 유전자의 기능을 on 또는 off 시키는 기술도 개발할 것이다. 아울러 유전자를 재조합 하거나 조작하여 유전 암호를 변경시킬 수 있게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전 암호 가운데 어느 것을 영구적으로 변경시킬 가치가 있는지 그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포기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유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부모 자신의 난자와 정자의 유전자를 변경시키지 않고 운에 맡겨 자녀를 출산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 배아 또는 태아를 교정하여 자녀를 출산할 것인지를 결정하게될 것이다.

주문 아기(맞춤 아기)

유전자 조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이상이나 결함을 치료하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잔인하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는 행위와 유전자를 개량하는 행위 사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7)

5)유전자 사회학
유 전공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생사회학' 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도 발전하고있다. 이러한 학문은 인간의 행동 동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행동이 선천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것인가 하는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은 생물학적 유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선천적인 요인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물론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관련해서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전자의 역할을 더 우선시킨다. 선천성에 대한 강조와 주목이 유전공학의 틀을 구성하는 다섯 번째 요소이다.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유전 공학자들은 인간의 행동 또는 사고와 관련된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보를 얻게될 것이다. 이미 유전 공학자들은 정신 질환을 유전자의 결함 또는 이상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범죄 지향성,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유전자 기능 이상이 그 원인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회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어떤 점에서는 유전자의 구성에 따라 결정됨으로 현재의 사회 상태를 변경시키려면 먼저 유전자를 변경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 기분, 개성이 유전자의 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연구 결과가 매주 1건 정도로 발표될 정도로 점점 증가하고있다.
연 구 결과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더 나은 사회적 능력을 발휘하는 유전자군 ▲신기한 것과 스릴을 추구하고 흥분하는 성질과 관련된 유전자군 ▲심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자군 ▲자폐증, 강박증, 우울증, 주의력 결핍증 유전자군 ▲동성애 성향 유전자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의 발표는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있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 과학자들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후천성론을 선호하였다. 이와는 달리 사회 생물학자들은 환경의 변화는 단지 문제를 완화시킬 뿐이며, 근원적인 해결책으로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유전자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후천성론에서 선천성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선천성론은 인간의 운명은 유전자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즉 후천성론에서 선천성론으로 이동하게 되는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가?그것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 즉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다 줄 엄청난 잠재적인 이익에 대중의 관심을 묶어두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막대한 재정적 비용이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가 현재 많은 사회 문제의 뿌리가 되는 유전 질환을 포함하여 인간의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부단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론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좋은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는 결과적으로 열성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유전공학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인류의 진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식을 낳음으로써 사회가 퇴화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유인책을 사용해서 자발적으로 불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금전적인 유인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IQ테스트에서 100이하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되, 지능지수가 낮을수록 더 많은 돈을 지급하면 될 것이라는 제안도 등장하고 있다.
*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자들을 불임시켜야 하지 않을까?(2) 불임 정책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의사 또는 보건 전문가들은 태아 검사를 시행하여 유 전자 이상이나 결함이 드러날 경우 또는 지능지수가 낮을 경우 낙태하도록 권유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3) 노숙자 문제 - 유전자 차원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나고 있다.
1950 년대부터 1980년대의 사회 개혁가들이 사회악을 바로 잡으려는 열정에서 유전자 차원에서 인간을 개량해야 한다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현재의 사회 개혁가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너무 지나치게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유전자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유전자에 의한 인종 차별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별 유형이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그것이 바로 유전자형에 의한 차별이다. 현재 유전자형에 의한 차별 실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이러한 차별이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유전자 주홍글씨'를 달고 다니면서 보험과 교육의 혜택으로부터 제외될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 유전자의 기능과 작용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인종이나 민족 집단에 이르기까지 인종차별, 인종분리 그리고 인종확대가 확대될 수도 있다. 유전 공학자들은 이러한 유전자 차별이 미래에는 유전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있다. 즉 미래에는 유전자 귀족 계급과 유전자 평민 계급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 차별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우생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8)-교회의 가르침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복제 또는 생명복제와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에 국한시켜 교황청 '생명학술원'에서 발표한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이라는 자료를 인용하고자 한다.
1) 역사적인 배경
지식이 진보하고 분자생물학, 유전학, 인공수정법 등이 발전함에 따라 이미 오래 전에 동식물의 복제 실험과 성공적인 복제가 가능해졌다.
1930년대 이후로 인위적인 쌍둥이 분할 방법을 써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실험을 해 왔는데, 이러한 방법을 부적절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복제라 할 수 있다.
1993 년에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만은 2, 4, 8 난할기의 인간 배아에 대하여 실시하였던 쌍둥이 분할 실험 관련 자료를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해당 윤리위원회의 사전 승낙을 받지 않은 채 이루어졌는데, 당사자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윤리적 논쟁을 가열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2월 27일자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기사는 여론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아이언 빌머트와 K.H.S. 캠벨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에딘 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 팀의 노력으로 '돌리'라는 복제양이 탄생했다는 기사였다. 이 때문에 여러 위원회와 국내외 당국들은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새롭고도 당혹스러운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는 두가지 새로운 측면이 있다. 첫번째로 그것은 분할의 문제가 아니라 복제라고 정의되는 급진적인 기술혁신의 문제라는 점이다. 곧 그것은 핵의 유전형질을 제공하는 성체(成體)와 생물학적으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무배우자 생식이라는 문제이다. 두번째 이러한 형태의 정확하고 완전한 복제가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곧 동물의 일생에서 이미 분화하여 성장해 버린 단계의 체세포 DNA는 분화의 형태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이상 그들 본래의 분화력을 회복할 수 없고 따라서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킬 능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불가능성을 극복함으로써, 이제 인간복제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처럼 보인다. 인간복제란 체세포상으로 제공자와 똑같은 개체를 하나 이상 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건은 당연히 우려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초기,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던 시기가 지나자 일부에서는 연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고 언젠가는 가톨릭교회도 복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견도 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므로 시끄러운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그 일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2)생물학적 사실
인공생식의 한 형태라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복제는 두 배우자의 기여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성생식이면서 무배우자 생식이다.
그 러나 이 복제 기술을 인간에게 확대 적용할 때에도, 이러한 체구조의 복제가 반드시 존재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여햐 한다. 정신과 영혼은 인간에게 속한 모든 실체 가운데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고,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가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인공수정이나 복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심리적인 발달과 문화와 환경은 언제나 별개의 인격을 만들어 낸다. 쌍둥이인 경우에서도 그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곧 닮았다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복제에 수반되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대중의 기대나 미묘한 분위기는 적어도 올바른 시각에 놓여져야 한다.
인간복제가 인격의 근원인 정신을 포함할 수 없음에도, 인간복제에 대한 생각은 무한한 능력을 갈구하면서 이미 다음과 같은 가정적인 상황들을 상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곧 비범한 재능과 미를 지닌 사람들을 복제하기,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재생하기, 유전병들에 면역성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을 고르기, 인간의 성(姓)을 선택하기, 선별된 냉동 배아들을 생산하고 그것을 나중에 자궁에 이식시켜 여분의 장기들을 제공하는데 사용하기 등이다.
마 치 공상 과학과도 같은 이러한 가정적인 상황들과 관련하여, 복제가 '합당'하거나 '긍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제안들이 뒤이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복제기술을 적용한다고 예상할 때 이러한 통탄스러운 행위에 대한 인간학적 의미는 무엇인가?인간복제는 우생학적 계획에 속하므로, 그것은 조목조목 비난해 온 모든 윤리적 법률적 견해의 영향을 받기 쉽다. 한스 요나스가 말했듯이, 인간복제는 "방법상으로 가장 냉혹하고 목적상으로는 가장 비열한 유전자 조작의 한 형태이다. 그것의 목표는 유전 형질을 임의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적인 방법과는 달리 유전 형질을 임의로 균일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다인간복제는 생물학적인 측면이나 엄밀히 인격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있는 구조적인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성교(兩性交)를 기능의 측면에서 완전히 쓸모없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들은 철저히 이용되어 순전히 생물학적인 몇가지 기능(난자와 자궁을 제공하는 것)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다음호에는 교회가르침에 따른, 이러한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 윤리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9)-교회의 가르침

3)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윤리 문제
복제 과정에서 친자관계, 친족관계, 혈족관계, 어버이 관계 등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모 든 인위적인 행위처럼, 인간복제도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흉내'내고 '모방'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구성요소를 어떻게 초월하는지를 무시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진화가 덜 된 개체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식 형태로 축소된다. 인간복제는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을 마음대로 또는 순전히 실리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계획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조장한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본질은 정신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인격적 본질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격적 본질의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인간을 선별한다는 이러한 개념은 수적으로 한계가 있는 복제행위를 넘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예기치 못한 문화의 부산물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가치가 그들의 인격적 본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평가를 받아 선별될 수 있는 생물학적 특질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는 복제된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복제인간은 다른 존재에게서 '복사'(생물학적인 복사일뿐이라 하더라도)됨으로써 세상에 등장한다. 이러한 행위는 복제인간에게 근본적인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복제인간'은 복제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와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는 기대와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와 주목이 그의 인격적 주체성에 진정 타격이 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가 지적한 결과들 가운데 적어도 얼마만이라도 피하고자 애쓰면서 인간 복제 계획을 자궁에 이식하기 전까지의 시점에서 중단하겠다고 하는 생각도 도덕적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복제된 아기의 출생은 막고자 하면서도 배아와 태아의 복제는 여전히 허용하는 복제 금지령은 결국 배아와 태아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없애 버려야할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방법으로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그러한 실험은 비도덕적이다. 인간의 육체는 인간 개인의 존엄과 인격적 본질을 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게다가 복제 실험에 쓸 난자를 얻고자 여성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복제인간의 경우에서도 그것이 비도덕적인 까닭은 배아 단계라도 그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험목적으로 행해지는 시험관 수정까지도 철저히 단죄하는 모든 도덕적 이유가 인간복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 초인'에 대한 헛된 희망에서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행위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명백한 결과를 낳는다. 복제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비극적으로 서투르게 모방하려는 위험한 시도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와 지성을 주시면서, 창조된 세계를 맡기셨다. 인간은 단지 실천에 옮기지 말라는 요구만 받을 뿐 행동에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인간은 선과 악을 식별함으로써 스스로 이러한 제약을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다시 한번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과학기술을 해방의 도구로 변화시키느냐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고통을 끌어들임으로써 그것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다. 생명을 사랑의 선물로 보는 개념과 인간을 상업적 생산품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를 다시한번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을 언제 어디서나 단순한 수단과 대상이 아니라 목적과 가치로 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인간 복제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4) 인권과 연구의 자유
인 권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복제는 모든 인간 권리의 바탕이 되는 두가지 기본 원칙에 위배됨을 보여준다. 곧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는 원칙이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원칙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침해받게 되며, 복제 논리에 내재되어 있는 완전한 우생학적 선택 차원때문에 차별이 생기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인간복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제를 당한 사람의 존엄과 인간 생식의 존엄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절실한 문제는 과학탐구에 대한 요구와 반드시 존중하여야 할 인간 가치의 조화를 재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과학자는 인간복제를 도덕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굴욕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금지는 연구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연구의 창조성이 변질되지 않게 한다. 과학 연구의 존엄성은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가장 부요한 자원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있다.
과학연구가 인간에게 유익을 주면서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 주며, 영양실조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구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그것은 인류의 희망을 대변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과학자들의 재능과 노력에 맡겨져 있다.
교황께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서 상기시키시듯이 인간과 세계를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면서 과학이 인간과 사회의 선익에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인간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조적인 시각'을 길러 나가야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마치면서

우 리는 지금까지 유전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다가올 유전공학의 세기를 조망해 보았다. 그리고 유전 공학의 기본 틀을 살펴보면서 그 틀이 안고있는 윤리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지적하였다.

지 난 20세기가 물리학과 원자력 기술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가져다 줄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유전공학 기술이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얻은 지식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은 그 속성상 도구 제작인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배열하고 바꿈으로서 우리의 복리를 보장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이 가져올지 모르는 잠재적인 결과들을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뇌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고뇌는 유전공학 가술 그 자체의 이용을 찬성할 것인가 또는 거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뇌는 다가오는 유전공학의 세기에 어떤 종류의 유전공학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성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있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유전 공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정도에 머물고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유전 공학자들의 손에 맡겨 놓아도 괜찮은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우리 각자는 공유해야할 책임이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다른 어떤 기술보다 우리 개개인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가오는 세기의 유전공학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는 유전공학 기술자, 기업가, 정책 입안자 등 일부 소수만이 참여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 입장을 달리하는 전문가들 이외에 사회 구성원 전체도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각계 각층이 활발한 토론과 논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 미래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과 함께 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은 우리 각자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가치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고 성찰하게 만들고있다. 즉 유전공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속성상 스스로 중단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일 단 발동이 걸리면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과속을 통제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요청되고있다. 물론 과학 기술을 통제하는 제도와 법규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과학의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은 제도와 법규의 제정을 과학의 연구를 위한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하지만 과학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기 위해서는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과학 기술에 결코 지지를 보낼 수 없다.

과학 기술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눈부신 업적과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거듭 확인하는 철학적인 고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있다.

'할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해서는 안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낼 때 그리고 그 '할 수 있음'을 필요할 경우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과 결단을 내릴 때 과학은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준 업적의 수혜자로서 과학의 도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 그리고 '과학의 인간화'와 '과학의 그리스도화'를 위해 함께 고뇌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전공학이 가져올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위험에 관한 논의는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유전공학의 기술적 진보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있다. 그러므로 유전공학의 기술에 대한 허용과 제한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일반 대중의 의식화, 교육, 여론의 환기와 형성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유전공학이 기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권 행사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압력을 통해 다양한 유전공학 기술 가운데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어떤 기술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민주적인 여론 수렴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된다.

다가올 21세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펼쳐 보이는 세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그 동안 함께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동참하시고 앞장 서 주시기를 기대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