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아! 마더 데레사

아! 마더 데레사
"가난한 사람들 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병원 구경도 못해 보고 죽어가고 있는데 나에 대한 간호가 어찌 이리 극진합니까?"
이 렇게 데레사 수녀는 죽기 한 해 전 11월 23일 심장마비로 입원하면서 자책했다. 무한한 사랑을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서 실천한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20세기말의 천사, 79년 가난한 사람의 이름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세기의 성녀(聖女)가 마더 데레사였다.

1910년 8월 27일 알바니아에서 출생하여 20여년간 인도 캘커타에서 교사로 지낸 데레사는 2차 대전 중 수백만 명이 죽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았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베풀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할 만큼 이 세상에서 빈곤을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도시가 캘커타이다.

데레사는 이곳이야말로 하느님이 부르시는 현장임을 절감하고 38세(1948년)에 단돈 45루피(한화 1천80원)로 빈자(貧者)들의 안식처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하얀 '사리'(인도 여성들의 의상)와 이마에는 푸른 줄무늬가 있고 어깨에 십자가를 맨 수도복을 입은 수녀는, 전 세계 126개국 200여 도시에 600여개의 세계적인 자선 기관을 세웠다.

데레사 수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4천4백여명의 '제2의 데레사'들을 남기고 1997년 9월 5일 하늘나라로 갔다. 때마침 내린 '장대 빗줄기'는 하늘의 통곡인 양 캘커타는 울었다. 온 인류는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 데레사의 얼굴에서 '서로 사랑하십시오'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데레사 수녀는 세계가 기피하고 소외시켰던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 기쁨을 가져다 주는 화신(化身)이었다.

「빈자(貧者)들 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수녀를 2000년에 성인 반열에 올리도록 청원하는 호소를 전 세계로 부터 받은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데레사의 덕성과 행적이 시성(諡聖)에 적합한 지 여부를 판정하는 절차를 속히 진행하도록 지난 3월 인도 캘커타 교구에 지시했다.

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천주교 신자 안중근(토마스) 의사(義士)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31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안 의사(1879~1910년)는 황해도 청계동 성당에서 18세(1897.1.11)에 영세했다. 안 토마스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것은 국권 회복을 위한 전투 행위이다. 국가 방위를 위한 전투중 살상은 죄가 아니며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다.

대 륙 침략을 꾀하기 위해 러시아 대장(大藏)대신과 만나기 위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복부에 십자 표시를 새긴 세발의 권총을 쏜 후, 안 토마스는 혈서로 '독립자유'라는 글자를 써 넣은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 흔들며 '대한제국 만세'를 세 번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이토가 쓰러진 후 곧 죽자 십자성호를 긋고 "천주여, 포악한 놈을 무찌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기도 드린 후 러시아 헌병에게 태연히 포박되었다.

사형 집행 전 가족들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준생, 베네딕도) 을 성직자로 키워 주기를 유언했다. 또한 2천만 형제 자매들이 교육과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시키며, 성직자들은 민족 복음화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냉담한 교우들에게 신앙을 독려할 것을 당부했다.

그 리고 "대한 독립과 동아 민족의 행복을 위해 죽는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예수님의 성화를 간직한 채, "대한 독립 만세"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른 후 미소를 띠며 여순 형무소 교수대에서 그의 영혼은 거룩하게 하늘로 올라갔다. 이 날은 그가 때 맞춰 죽기를 원했던 예수님이 돌아 가신 금요일이었다. 안 토마스의 거룩한 애국 운동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안 의사의 신앙심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민족운동을 행동하는 신앙인의 큰 빛으로 널리 기리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언젠가 살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노예해방선언을 한 워싱턴의 에이브러햄 링컨 동상 앞에 모인 25만명 흑인들에게 마틴 루터 킹 (1929 ~ 1968) 목사는 흑인과 백인이 하나 되는 세계에 관한 자신의 소박한 꿈을 역설했다.

1963 년 8월 28일 이 날 워싱턴 행진에서 킹 목사의 열변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차별의 족쇄를 찬 채 걸름거리며, 가난의 섬에 고립되어 미국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고통 당하는 2,000만 흑인 형제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워싱턴의 이 집회 장면은 전 세계로 방영되었고 인류의 미래에 강한 확신과 용기를 주었다. 전 세계는 그 이듬해 비폭력주의 민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은 그에게 노벨 평화상으로 경의를 표했다.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킹은 "백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백 인 기득권층과 정부의 공권력에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던 흑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킹은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시오."(루가 6,27)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사랑의 힘을 주장한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를 접합시킨 사회개혁 방법을 찾았다.

백인의 인종 분리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피와 폭력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흑인 평등권 운동은 더욱 빛났으며, 킹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호소는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민권운동을 지휘했던 진정한 투사 킹은, 1968년 4월 4일 미국 멤피스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으니 3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미국이 특정인의 생일을 국경일로 삼은 것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마틴 루터 킹, 단 두 사람 뿐이다. 나라를 세운 사람이 워싱턴이라면 흔들리는 나라의 균형을 바로 잡아준 사람이 킹이다. 조상의 신분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 속에 함께 살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미국 가톨릭 교회 주교들은 2000년 1월 15일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가 20세기 순교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2000년 대희년 5월 7일, 킹 목사를 시민운동의 선구자로 순교자에 지명되기를 천거했다. 이에 교황청은 침례교도임에도 킹 목사를 '20세기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 하였다.

총탄에 맞고 쓰러지면서 킹은 20세기 인류의 가슴에 자유 평등의 숭고한 정신을 새기는 영원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절대자[행복]를 갈망한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다. 자기를 믿거나, 타인을 믿거나, 또는 이성(理性)이나 과학에 대하여 믿는다든지,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 존재나 힘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음[신앙.종교]의 동물이며 숭배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부단히 무언가를 추구(追求)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 목표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전, 권력, 명예, 애정 등을 획득하는 데에 열성을 쏟고 잇다. 열정은 때로는 종교인들의 절대자 숭배에 못지 않는다.

사 람은 현세적, 지상적(地上的) 어떤 것을 찾아 누려도 만족하지 못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무한히 착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한다. 모든 것에서 최고의 진선미(眞善美)인 절대자[신.하느님]를 갈망하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이 갈망이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있다.

1. 사람은 종교가 필요하다

어 버이와 자녀를 결합시키는 따스한 도덕적 관계를 효도라 한다. 종교는 창조주(創造主)의 하느님[절대자.신]과 피조물(被造物)인 사람을 결합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은애(恩愛)의 관계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 가장 근본[宗,종]되는 가름침[敎,교]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 무신론자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가장 중효한 문제는 종교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종교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의.식.주와 교통수단과 같은 물질 문제는 과학적 기술 개발로써 해결할 수 있다.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와 감정에 관한 것은 수양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지식과 같은 지성에 대한 것은 학식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한다.
생(生) 사(死) 존(存) 亡(망)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것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오로지 종교 밖에 없다.
삶의 극한 상황이나 절망에서 사람이 가진 어떤 것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 최후의 희망은 종교이다. 거기에 귀의(歸依)하여 구원을 얻고자 한다.

지 금까지 문화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어디서나 신령한[초월적.초인간적] 존재를 숭배하며, 이에 상응한 신앙과 종교적 행위들(기도 제사 예배 묵상)로써 하느님을 찾는 표현을 해 왔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종교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이러한 종교의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가지고 있으나,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 일컬을 수 있다.

인류 사회에는 윤리 도덕 준수가 절대 필요하다. 종교는 이 도덕의 최고 영역이며 기본적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종교를 필요로 한다.

2. 어느 종교나 다 같지는 않다

종교는 크게 나누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가 있다.

자연(自然)종교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하느님[天主=천주.신.절대자]이 있음을 깨닫고 양심에 따라서 섬기는 것이다. 이 종교는 수천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심혼(心魂)에서 발로되는 표현이며 심오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유교.불교]

계시(啓示)종교
사 람이 전연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본성(本性)과 진리[생명구원 영생]를 하느님이 직접 인간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나타나서 가르쳐 주심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는것이다. 즉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생활한 현존,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인간을 결합시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참되고 생활한 관계를 이루는 종교다. [그리스도교.유대교.회교]

3. 인간이 종교(하느님과 대화 사귐 신뢰, 신앙하는 깊은 생명의 결합)를 잊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 있다.

종교 무관심, 거절하는 이유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 무지와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思潮)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 그 분의 부르심을 듣고 달아나는 죄인인 인간의 태도 때문이다.

4.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길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깨달을 수 있는 길(하느님의 존재 증명)들은 물질 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하느님 존재의 증명

세계
세계의 움직임 변화 우연성 질서와 아름다움에서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변화하는 아름다움들은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 성 아우구스띠노)

인간
진 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善)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標識)등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이러한 영원의 씨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깨닫게 한다.

세 계와 인간이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지 못할 뿐아니라,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여러 가지 '길'들로써 '모두가 하느님 이라고 부르는' 제1원인이면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이 이성의 빛으로써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빛만으로 초자연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하느님 께서는 인간이당신과 친밀하게 되고, 오류없이 쉽게 이해하게 되도록 인간에게 계시(啓示.성서와 성전)의 빛을 주신다. 그리고 신앙으로 이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에게 은총(恩寵)을 주신다.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이 증거는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위배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하느님을 찾는 내용이 비록 결함과 오류가 섞여 불완전하지만 어느 민족이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민족도 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한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민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 개인과 민족은 하느님에 대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은 진리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건 모르건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악이 있는가

어째서 악이 있는가
만일 질서 있고 좋은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신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느님께서 악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왜 창조하시지 않으셨나?

1. 하느님께서는 진행의 상태로 세계를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항상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창조하실 수 있다. 그러나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궁극적 완성을 향해 가는, "진행의 상태"로서 세계를 자유로이 창조하기로 하셨다.
하 느님의 이 계획에 따라 이러한 생성에는, 어떤 존재들의 출현과 더불어 다른 존재들의 소멸이, 더 완전한 것과 더불어 덜 완전한 것이, 자연의 건설과 더불어 파괴가 포함되어 있다. 피조물이 자신의 완전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리적 선[완전함]은 물리적 불완전함 혹은 자연악(병, 천재지변)과 공존한다.

2. 천사와 인간은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지성과 자유를 지닌 피조물인 천사와 인간은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나아가야 하나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죄를 지었다. 그리하여 세계에는 물리적 불완전함[자연악]과 비교할 수도 없는 중대한 윤리적(도덕적) 악[죄:질병 고통 죽음 고역 산고 등과 자연악의 원인]이 들어오게 된다. 오직 하느님은 천사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여 이를 허락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윤리적 악의 원인이 되실 수 없다. 하느님께서 물리적 악과 윤리적 악을 허락하시는 것은 신비(神秘)이다.

3. 하느님은 악에서 선을 끌어 내신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최상의 선이므로, 신비하게도 악 자체에서 선을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있다.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최상의 선이시므로, 악 자체에서 선을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피조물들 안에 어떠한 악도 있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성 아우구스띠노) 이제까지 예가 없을 만큼 가장 큰 윤리적 악은 모든 인간의 죄가 하느님의 외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일이었다. 하느님은 이 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을 끌어 내셨다. 그렇다고 해서 악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가

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가
인간은 어떤 종류의 악(선의 결핍, 제한, 왜곡)을 경함할 때마다 고통을 겪는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그 고통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도덕적 범죄, 유대인 학살, 아프리카 흑인 노예 대학살, 각종 전쟁 등이다. 또한 자연의 힘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즉 지진 화산폭발 태풍 홍수 기근 전염병 등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감정을 다하여 하느님께 "왜?"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인간 고통의 뿌리에는 죄와 복합적 연루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고통의 "왜"에 대한 참된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가 흘러나오는 궁극 원천인 하느님의 사랑에 그 답이 있다.

"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3, 16) 이 말대로 하느님은 고통당하는 인간과 연대하시는 증거로 천히 인간편에 서신다.

2. 하느님의 외아들(聖子 성자) 그리스도가 고통을 없애려거나 그것을 설명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고 통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고통을 수단으로 하여 인간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 즉 십자가를 수단으로 인류 역사와 인간 영혼에 뻗어 내려있는 고통(악)의 뿌리를 쳐부수신다.

3. 그리스도가 죄없이 고통을 받으시므로 고통으로써 사랑과 선을 창조하신다

또 한 고난이 없었다면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전능하시다는 진리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최고 선(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끌어 내어지며 거기에서 끊임없이 새삼 새출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시작되는 샘이다. 하느님이 착한 이에게도 고통을 묵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인간은 고통 안에 구원의 뜻이 있고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며 육신을 능가하는 영(靈)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인간이란 인간 자신을 넘어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는데 고통이 바로 인간의 이 초월성을 가르쳐 준다.

5.「고통에서 배우라」는 말이 있다

「행 복은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불행은 언제나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고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시인 보에티우스가 말했다. 고통은 사람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교이다. 눈물이 눈 속에 끼여 있던 먼지를 씻어 주듯이 한 번도 눈물(고통) 너머로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이 참으로 어떻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어려움 가운데서 사람이 된다'는 말도 인간이 높이 불렸음을 밝혀 준다.

6.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신다

그러므로 고통은 세상의 구원의 도구이므로 초자연적이다. 또한 그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자기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므로 또한 깊이 인간적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신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신다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하느님께 응답하고 하느님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게 하셨다.

하느님의 말씀

인 간은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찾음은 손으로 더듬는 것과 같다. 그래서 흔히 길을 잘못 들어 거짓 신(神)에게 다가간다. 인간은 하느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더욱이 직접 말을 주고 받을 수도 없으므로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하나의 다른 길을 택하셨다. 그분 자신이 사람에게 다가 오시어 자신을 드러내 보이거나 말씀하시어 알려 주시고 또한 자신을 내어 주신다. 이를 '계시(啓示)라고 한다. 이 계시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뜻)은 업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왜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 물음에 결정적이고 풍부한 답을 이 계시로 주셨다. 불환전한 인간의 지혜는 모든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 계시를 받아 들이도록 점진적 [단계적]으로 인간을 준비시키신다. 여기에 독특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 담겨 있다.

1.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전 인류가 복을 받고 하느님을 알도록 마련하셨다

하 느님은 태초에 원조(原祖 아담 하와)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원조들의 타락에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어떤 한 사람(노아 아브라함 등)을 시켜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셨다. 또 그 사람이 속한 무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셨다.
특히 당신 계시의 역사를 시작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始祖)가 되게 하고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으셨다.
이 민족이 전 인류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해 줄 과업을 떠맡게 되었으며 이 민족을 통해서 모든민족이 복을 받고 하느님을 알도록 마련되었다.
하느님은 한 번 더 새롭고 독특한 선택을 하셨는데 이 민족 안에서 한 사람 동정녀 마리아님를 택하셨다.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영원한 행복)로 인도 할 구세주를 보내셨다. 이분이 바로 사람이 되시어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유대 왕이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1세가 로마 황제로 있을 때, 이스라엘의 한 딸(마리아)에게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직업은 목수였다.
하 느님 나라를 가르쳤으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이들을 살게 하시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며 스스로 하느님 자신임을 드러내셨다.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기간 중 본시오 빌라도 총독 치하(治下)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죽음을 이긴 부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福音 복음]이 되고 이 복음이 그로부터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하느님 아버지[聖父 성부]는 이분 안에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완전히 충만히 주신 계시의 완성이시다. 그 분 이후에는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하 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은 몇몇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이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성서(성경)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글로 적어서 전한 것이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별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내림을 준비하고 예언하신 하느님의 역사(歷史)이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신 역사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하느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이며 완성이다. 신약성서의 중심 주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부활, 교회 창립 등이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그들의 무리[교회]는 이 모든 것을 '거룩한 유산'으로서 오늘까지 보존하고 전하고 있다.

3.하느님은 구원의 역사를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다

하 느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님에게 까지 이르며, 그 분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세상 끝 날까지 인류 구원이 완전히 이뤄지기 위해 계속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계속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의해서만 사람의 최종 목적과 행할 바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 뿐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인생의 참보람을 맛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님

예수 그리스도님
1.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구원하시는 하느님" [YHWH(Yahweh 야훼)]을 뜻한다

이 이름만이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은 하늘 아래 없다.

야훼

네 개의 자음자 YHWH로 된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부여하신 이름이다. 이 이름의 본래의 발음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과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Yehovah(여호와)로 부르나, 더 정확한 발음은 Yahweh(야훼)임이 입증되었다. 이 이름의 뜻은 "나는 있는 나다." (출애 3,14)라는 의미로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낸다. 유대인들은 존경의 표로 이 이름을 절대로 발음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Adonai 주님) 그리스어로 기리오스(Kyrios 주님) 라틴어로 도미누스(Dominus 주님)로 읽었다.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서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2.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 부음을 받는 이"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아(Messiah 救世主 구세주)를 그리스어로 의역한 존칭이다.

하느님으로서 세상 구원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이 분은 하느님 성부께 대한 친자(親子) 관계로서 성부의 외아들이시며 하느님 자신이시다.
예 수 그리스도님을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라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며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신명 6,4-5)
오직 하느님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듯이 한다. 또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으로서 주권'을 뜻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주의 주님이시며 역사의 주님이시다.

3. 그리스도님은 천주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의 중심이다

이유는 모든 종교가 인간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리스도님은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님은 인간이 완성되는 길이요 진리이며 인류의 중심이다

사람이 누리고자 하는 최고 의 행복이요 생명이며 모든 마음의 기쁨이다. 인류의 종말이요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다.

5. 신비스러운 그리스도님의 전생애와 우리의 친교

그 리스도님의 삶 전부가 연속되는 가르침이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 그 분의 침묵과 고통, 그분의 기적, 기분의 기도, 사람을 위하시는 그분의 사랑,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울이시는 그분의 각별한 애정,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상의 전적 희생을 받아들이심과 그분의 부활, 이 모두(전생애)가 그분 말씀의 체현(體現)이었고 하느님 아버지의 계시 완성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요한14,9)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성부께서는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루가 9,35) 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하느님 계시의 전달

하느님 계시의 전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원하신다. 즉 예수 그리스도님[완전한 계시자]을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며 그 계시(啓示)는 세상 극변까지 전해져야 한다. 이 계시 전달은 주님의 명(命)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 구두(口頭,口傳 구전)로

사도(예수 그리스도님의 열두 제자)들은 그리스도님의 말씀과 대화와 업적에서 배운 것과, 성령의 영감(靈感)에서 얻은 바를 설교로 전하고 모범으로 보여 주고 가르침으로 전했다(요한21,25).
이는 기록되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문서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의 원천이다.이를 성전(聖傳)이라 한다. 따라서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더욱 확실히 밝혀주는 것이다.
즉 교회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교리 가르침, 실천적 관행과 행동 규범, 경신(敬神) 의식, 종교적 체험이다. 예를 들면 예로부터 전해 오는 공의회 [세계주교회의]의 문헌과 역대 교황의 권위있는 문헌, 교부(서기96~760년 그리스도님의 저술가)들의 문집 등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제1세대는 아직 기록된 신약성서를 가지지 못했으며, 신약 성서 자체가 살아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성서 유일주의를 주장하는 개신교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2.문서(文書)로

사도들과 그 측근의 제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구원의 소식을 글로 기록 했다. 이를 성서(聖書)라 한다. 이 '성서'만으로 모든 계시에 대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다.

하느님의 계시는 두 가지 방법 [입으로 전한 말(구전,전통) 글로 쓴 기록(성서) : 2태살 2,15] 으로 전해진다. [개신교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만이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다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 "적혀지고 침묵하는 말씀"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님)의 종교이다.
왜냐하면 성서 전체는 단지 책일 뿐이며 그 하나의 책은 그리스도님이시다. 성서 전체가 그리스도님께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서 전체가 그리스도님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기 때문이다.

3.교도권(敎導權)

교 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권위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 루가10, 16)에 바탕을 두고,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성서]과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성전]에 대한 유권적 해석[교도권(敎導權,가르치는 직무)의 행사]을 한다.
그러나 이 교도권이 하느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고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한다. 즉 성전과 성서와 교회의 교도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다.

성서의 정경(正經)

성서의 정경(正經)
교회는 사도 전승(傳承)에 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돼야 할 지를 판단했다.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서의 "정경"이라 한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 46권(예레미이야서와 애가를 한 권으로 보면 45권) 과 신약성서 27권이 들어 있다. 신약성서 중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전한 4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주요한 증언이므로 모든 성서의 핵심이다.

1. 그리스어 칠십인역 46권과 히브리어 유대교 경전 39권

구약성서의 권 수에는 천주교(46권)와 개신교(39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 근원을 살펴 본다.
이 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 여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 =셉튜어진트(Septagint) 희랍어판]이라 한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된 구약성서의 정경(正經) 39권이 있다. 이를 제 1경전(정경)이라 한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을 합친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13~14장), 에스델서 일부 (10,4~16,24)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 이라 한다.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제 2경전]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다.

2.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리스오 칠십인역 46권을 성서로 인정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 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 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에서 300 구절을 사용했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태 6,14 / 집회서 28,2
마르코복음 6,15 / 집회서 48,9~10
루가복음 13,27 / 1마카베오서 3,6
루가복음 24,4 / 2마카베오서 3,26
요한복음 3,12 / 지혜서 9,16
로마서 1,20~32 / 지혜서 13,10~19
1베드로서 1,6~7 / 지혜서 3,5~7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근원이시며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 [天主 천주]이시다. 천주교는 이러한 하느님을 믿는 계시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세우셨다. 또한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님 으로부터 유래하므로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한자음역 基督敎 기독교)라 한다.
그 리스도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를 '그리스도교인(Christian)'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주교를 가톨릭[Catholic '전체성' '완전성'의 뜻을 지닌 '보편적 (공번된)']교라 부른다. 빛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보편적인 분이시다. 그분이 교회 안에 계시므로 교회는 항상 어디서나 보편되다.("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새 백성을 이루도록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교회를 파견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그 본질상 선교적이며 보편되다.

1. 교회의 이름

교 회는 단순히 건물을 뜻하거나 자선이나 도덕적 정신적 수양을 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그리스어 Ekklesia)란 말은 '불러 모음'을 뜻한다('Church'란 '주님께 속한 모임'의 뜻). 하느님께서 온 세상에서 모으시는 백성이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聖體 성체]으로 살아, 머리(Head)이신 그리스도님의 몸이 되며 성령(聖靈)의 성전(聖殿)인 하느님의 백성이다.

2. 교회의 기원과 설립

교 회는 우주 창조 때부터 이미 예시(豫示) 되었으니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에 참여하도록('하느님의 가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점차로 형성되어 실현되어 왔다. 하느님 백성을 모으기 위한 직접적인 준비는 이스라엘을 하느님 백성(교회)으로 선택하심으로써 시작되고 놀랍게 준비되었다. 이는 장차 모든 민족을 모으는 징표가 된다. 구약시대(그리스도 강생 전)는 교회의 전역사(前歷史)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降生)하심(신약시대)으로써 말씀과 활동으로 교회를 창립하셨다. 신앙과 세례로 그리스도님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음으로써 하느님의 가족(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이 된다. 성령 강림으로 그 교회가 세상에 드러났다.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관념이 아니다. 성 베드로의 후계자들과 다른 사도들의 다스림으로 역사안에 계속 살아 있는 존재이다. 교회의 생명은 그 창시자가 부활하여 현존(現存)하시는 주님이라는 데 있다. 교회는 세상의 박해를 견디고 하느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그 순례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스도님의 나라(하느님의 나라)인 교회는 지상에서 이미 이 나라의 시작과 싹이 된 것이므로 그분의 나라는 이미 지상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지금 주님은 와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신다. 세상 종말에 교회는 모든 지상의 구원된 이들이 하늘의 영광안에 모임으로 완성될 것이다.

3. 천주교의 교리

하느님의 외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 되기 위해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님이 그 중심이다. 그 내용은 서로 연결된 네 부분으로 나뉜다.

신앙고백(12항 참조)
그리스도의 신비의 기념(13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삶(14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기도(13항 참조)

천주는 유가의 상제
그 리스도교를 중국에 처음 소개한 마태오 리치가 유교 경전에 상제(上帝) 혹은 천(天)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절대신이므로 한자로 천주(天主)라고 번역했다.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이익은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이다."고 했다.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은 삼국유사에서 전승된다.

그리스도교(기독교)용어의 잘못 사용
우리나라 개화기(1876~1910)에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아 '야소' (耶蘇 예수의 한자 음역)교라 했고 또한 천주교와 야소교로 구별하기도했다. 뒤에 와서 가톨릭과 예수교로 구분했으며 특히 예수교를 '기독교' '개신교'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기독교 基督敎)'라는 용어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인 여러 교회와 교단으로 개신교(참조 제20장 제24장) 만을 일컫는 말로 어느덧 잘못 사용되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
계시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자비로 친구를 대하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을 당신과 일치하도록 초대하신다. 이러한 초대에 인간이 응답한다. 이 응답이 신앙이다.

사도신경 [12절 신앙 고백]

①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③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님께 잉태되어 나시고,
④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⑥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⑦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⑧ 성령을 믿으며,
⑨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⑩ 죄의 용서와,
⑪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⑫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이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선물이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천주교회는 초창기부터 성전과 성서에 바탕을 두고 모든 사람을 위해 간결하고 규범적 신앙 조문을 결집.요약해서 전달해 왔다. 이러한 신앙의 요약.종합들을 '신앙 고백' (신앙 선언) 혹은 신경(신경)이라고 부른다. 여러 신경들 중에서 특별히 두가지가 있는데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이다.

사도신경(使徒信經)

1. 사도들의 신앙 요약이다

열두 사도들의 수로써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전체를 상징하기 위해서 신경을 열두절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 신경은 사도들[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로]의 신앙 요약이며 가장 오래되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2. 천주교회의 정체(正體 Identity)이다

천주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알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시되는 천주교의 정체(正體, Identity)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하는 것 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들의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창세기1,1) 창조의 진리가 위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두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다.

3.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어 주시기 위해 세계를 창조 하셨다. 하느님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바로 이 영광을 위해서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

4. 인간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이다

구원의 역사 전체는 바로 성부.성자.성령 이신 참되고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인간들과 화해하시고, 그들을 당신과 결합시키기 위한 길과 방법의 역사 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經綸(경륜:하느님 자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의 생명을 주시는 모든 업적) 이다. 무한히 행복한 인간의 삶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신앙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

천주교의 전례

천주교의 전례
천주교의 의식을 전례(典禮, Liturgy)라 한다. '전례'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함을 뜻한다. 우리의 구속주(救贖主)이시고 대사제 (大司祭)이신 그리스도님께서 전례를 통해서 당신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교회를 통해서 우리 구속을 위한 사업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님의 행위인 전례는 그분 교회의 행위이기도 하다. 교회에는 미사(Missa, 聖餐祭 성찬제)와 칠성사(七聖事,Sacrament) 그 외에 전례가 있다. 전례의 중심은 미사이다.

미사 Missa(Mass)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상의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의 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교회 안에 물려준 천주교회의 만찬 제사이다. 이 미사는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다.

1. 성사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셨으며 그로써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은총의 유효한 표지인데 일곱가지가 있다.

그리스도교 입문(기초) 성사

세례(洗禮) : 그리스도님 안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다. (마태 28,19~20)

견진(堅振) : 행동과 함께 하는 말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성령을 준다.(사도 8,15~17)

성체(聖體) : 그리스도 안에 변화되도록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신자들을 양육한다. (마태 26,26~28)

치유의 성사

고해(告解 고백 告白) : 세례 받은 후 지은 죄의 용서를 준다.(요한 20,23)

병자(病者 종부 終傅) : 중병이나 노쇠로 고통을 겪고 있는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 평화 용기의 은혜를 준다. (마르 6,13)

구원을 위한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

성품(聖品 신품神品) : 신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거룩한 권능[가르치는 직능(예언직), 성화(聖化)하는 직능(사제직), 다스리는 직능(왕직)]을 준다. (루가 22,19~20)

혼인(婚姻)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가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혼인계약이다. (마태 19,4~6)

2. 기도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다. 기도에는 찬미, 감사, 청원, 참회 네 종류가 있다. 이를 완전하게 가르친 기도는 그리스도가 직접 지어준 "주님의 기도"(마태 19,6~13)이다

주님의 기도 (전 복음서의 요약이며 성서의 핵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나아가는 길
악에서 구하소서. ─┘

서로 사랑하시오

서로 사랑하시오
양심은 인간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판단하며, 행한 행동을 평가하는 이성(理性)의 실천적 판단을 증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양심은 개인의 윤리성 뿐 아니라, 윤리의 보편적.객관적 규범이므로 신법(神法)의 진리이다. 그러나 환경과 교육의 성격에 따라 사람마다 주장이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양심은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는 심판관이다.
그 러므로 양심의 교육이 필요할 뿐 아니라, 양심이 도덕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양심대로만 살면 된다는 윤리는 위험하다>. 따라서 양심의 판단보다도 다른 윤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십계명과 사랑의 계명과 교회가 정한 법들인데 하느님을 향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삶, 참 행복의 길)을 인도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는 윤리 분야에 교사 역할을 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구원의 어머니가 된다. 대립과 반목이 있는 곳에 화해를 심는 지혜롭고 사랑에 찬 안내자이다.

1. 십계명("열 조목")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당신이 생명으로 들어가고자 하면 계명들을 지키시오." 하고 말씀 하심으로써 예수께서 십계명의 중요성을 확인하셨다.(마태 19,16~17)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 네 온 정성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마태 22,37)

첫 째 계명 : 한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흠숭하고 사랑하라.
둘 째 계명 :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셋 째 계명 :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출애 20,2~10 신명 5,6~15 참조)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르 12,31)

넷 째 계명 : 부모에게 효도하라.
다섯째 계명 : 사람을 죽이지 말라.
여섯째 계명 : 간음하지 말라.
일곱째 계명 : 도둑질하지 말라.
여덟째 계명 : 거짓 증언하지 마라.
아홉째 계명 :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열 째 계명 :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출애 20,12~17 신명 5,16~21 참조)

십계명은 하느님의 율법을 요약하고 선포하는 생명의 길이다. 또한 유기적 일체를 이루고있으므로 계명마다 전체를 가리킨다. 한 가지 계명이라도 어긴다면 그것은 계명 전체를 어긴다.

십계명의 첫째 말씀은 하느님의 지배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참된 하느님께 향하게 하여 인간을 다른 모든 예속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지상의 어떠한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다음으로 우리 부모를 공경하고 또 당신께서 우리 선익을 위해 공권을 주신 사람들을 공경하기를 원하셨다. 즉 부모가 잘나거나 못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항상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만이 하느님의 부성과 모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표지이다. 부모 덕분에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의 선익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권위만이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다.

2. 사랑의 계명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선언하셨다.

새 계명
"나는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 (요한 13,34 15,12 15,17)

황금률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대로 해 주시오."(마태 7,12)

또 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으며 두 가지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다 같이 가장 큰 계명임을 가르치셨다.(마태 22,37~39) 이는 새로운 법이며 복음의 법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다른 모든 계명의 근원이 되는 유일한 계명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이다.

3. 교회가 정한 법

교회는 자신의 고유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며, 원활한 신자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교도권(敎導權)으로 법을 제정한다. 법 제정의 근거는 성서와 성전 그리고 자연법[양심]이다.

4. 참된 행복의 길

인 간은 잉태될 때부터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영원한 참된 행복을 운명적으로 누리도록 되어 있다. 그 길은 소유나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다. 사람됨(존재)의 차원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가난.온유함.자비.평화야말로 하느님께5서 인간 마음속에 심어주신 행복 욕구에 응답하는 진정한 길이다.

참된 행복 선언(삶의 대헌장)

참된 행복은 지상재화(地上財貨)를 사용하는 데 식별기능을 정해주며,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참된 행복 선언은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는 그리스도님 안에서 삶의 대헌장(大憲章)이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배부르게 되리니.
복되어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받으리니.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
복되어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 5,3~10)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비록 무신론자라도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의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자를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Anonynous Christian) 이라 한다.

1. 익명의 그리스도인

인간 쪽에서 보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신론자일 수 있어도, 하느님쪽에서 보면 인간이 본성적으로 신적 성품을 모시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로 고백하고 있는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비(非)그리스도인, 설령 무신론자라도 그들의 구원 가능성에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 하기를 원하시는"(1디모 2,4)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원 가능성을 비관적(悲觀的)으로 본다는 것은 온 인류를 구원 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 뜻을 과소 평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란 단지 겉으로 드러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여,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인들을 함부로 앝보거나 배척 해서는 안될 뿐 아니라, 형제적 자세로 대화할 수 있으며, 인간 사랑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표현이다. 결코 무신론자나 타 종교인이게 그리스도교적 이름을 강제로 씌우려는 의도는 아니다.
진정한 자아사랑,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데 다른 종파라는 것이 제약이 될 수 없다. 무신론자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얼마든지 맹목적인 그리스도교 신자 이상일 수 있다.

2. 명시적(明示的, 참된) 그리스도인

그저 교적부에 이름을 올려 놓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서 인간에게도 요청하는 사랑의 정신("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2)을 구체화 시키는 사람이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를 연장(延長)하는 사람이다(마더 데레사 수녀, 안중근 토마스 의사 등, 1~2항 참조). 그리스도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일지라도 '명시적'으로 그리스도의 활동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 든지 있을 수 있다.

3.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

그 리스도께서는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명백한 말씀으로 강조하셨다. 모든 사람이 마치 문(門)을 통하는 것처럼 세례(洗禮)를 통하여 들어가는 교회의 필요성을 확인하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구원의 정상적 방법이다. 그러나 본인의 탓 없이 복음(福音.그리스도)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길로써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다.

천주교와 조상 제사

천주교와 조상 제사
인(仁)을 핵심으로 하는 유교는 효(孝)를 통해 인을 실현하며 모든 덕의 근본을 효라 한다. 이 효에 의해서 사람됨을 평가한다.
효의 정신은 생명을 준 부모와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 있다. 이 효도는 부모 생시뿐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하여 이어간다(중용 19장).

제사는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생시와 같이 공경하는 효도의 증표다.
그러므로 유교의 조상 제사는 복을 구함에 있지 않다. 자녀로서 부모와 선조에게 보본(報本)과 보은(保恩)의 효를 계속 실현하는 데 있다.

조상 봉제사(奉祭祀)에 대해 천주교는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미신이 아닌 관습을 그대로 허용한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점을 강조한다.

조상에 대한 올바른 효도

1. 조상의 영혼[귀신]
신(神)처럼 숭배할 수 없다.

2. 길흉화복
조상의 영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3. 죽은 후
조상의 영혼[귀신]이 살아서 배회한다든지, 음식으로써 그 영혼을 공양한다든지, 또는 제사 때에 일시적으로 강생하여 제물을 즐겨 먹고 축복 해 준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상상(想像)일 뿐이다.

4. 죽은 이의 영혼 살아 생전에 닦은 행실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천국 혹은 지옥 그리고 연옥 (煉獄:천국에 가기전 단련 받는 중간 처소)의 심판을 받는다. 교회는 천국에 들지 못하고 연옥에서 보속(補贖)하고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한다.

천주교와 사회

천주교와 사회
사회 질서와 발전은 인간 복지를 목적으로 한다. 진리에 바탕을 두고 정의 위에 건설되어 사랑으로 활기를 띠어야 한다. 천주교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업들을 하여 사회 전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힘쓴다. 현대인이 사회 연대 책임을 주요한 의무로 여기고 지키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자선 사업 기관 - 114,238개
천주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선사업기관으로 봉사하고 있다.
병 원 5,541개, 진료소 14,833개, 결핵요양원 5,617개, 나병원 811개, 노인 장애인 요양소 11,973개, 고아원 6,661개, 결혼상담소 8,755개, 특수학교 8,927개, 행려자 시설, 약국, 무료 급식소, 헌혈사업, 안구은행, 양로원, 소년원, 미혼모 시설, 결연 사업 등이 31,922개이다.

교육기관 - 173,758개이다. 유치원 53,790개, 초등학교 83,345개, 중고등학교 32,904개, 대학교 등 고등 교육기관 3,719개, 사회 교육센터 9,080개 등이 있다. 그리고 교구 및 수도회 성직자 양성 기관은 총 6,655개(신학교 4,220개, 신학원 2,435개)이다.

언론 사업 - 신문사, 방송국 등으로 건전한 사회 여론 조성에 이바지한다.

천주교와 세계

천주교와 세계
교회는 결코 현세적 야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는 진리를 증거하고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할 뿐이다. 그 세계관은 세 가지 면에서 살펴 본다.

1. 국제주의

하 느님은 모든 이의 아버지요 구원자이시다. 그 뜻을 실현하는 곳이 세상이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현세의 나라가 아닌 천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세적 국제주의와 다르나 국제주의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인류애를 촉진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 천주교는 다방면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이를 돕고 있다.

2. 전쟁

인간이 죄인(罪人)인 한 전쟁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랑으로 결합되어 죄를 극복하면 폭력도 극복할 수 있다고 천주교회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가져오는 악과 불의를 볼 때 전쟁을 피하기 위해 무리없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기도한다.

"주님, 기아와 병마와 전쟁에서 구해 주소서"

국가의 정당 방위를 위해 전쟁은 가능하다.

과학(원자,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막대한 무차별의 파괴를가져온다. 이런 파괴는 정당 방위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전면전쟁(全面戰爭)이므로 하느님과 인간 자신을 거역하는 범죄이므로 교회는 단호히 단죄한다.

3. 평화 - 정의의 실현이다

이 정의는 사랑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지상의 평화이다. 이러한 사랑을 인류에게 가르치신 분이 그리스도님이시다. 그리스도님은 평화 자체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알고 사랑의 계명을 받은 그리스도 신자는 지상의 평화 를 실현하는 데 특별한 사명 을 띠고 있다.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다."(마태 5,9)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극히 가깝게 본받은 아씨시의 성인 프란치스꼬의 유명한 "평화의 기도"가 있다.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천주교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에 힘쓰는가를 보여준다.

천주교회의 역사

천주교회의 역사
천주교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종교이다.

1. 서기(西紀)

그리스도님 탄생의 기원이며 천주교의 기원이다.

2. 고대 교회(1~604년)

교회 창설부터 311년까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참혹하게 박해하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함으로써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392년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으로써 세계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루게 된다.

3. 중세기 교회(605~1500년)

1054년에 콘스탄틴의 총주교가 천주교회의 교황권을 거부하여 동방 정교회(東方 正敎會 그리스 정교회 Greek Orthodox Chuech)를 세움으로써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와 1차 분열이 된다.

4. 근세기 교회(1500~1965년)

1517년 천주교 신부인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교황권에 반대하고 이탈하여 개신교 (改新敎 Protestantism) 를 세우므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천주교와 개신교로 2차 분열된다.
교 황 요한 23세(1958~1963)는 교회의 현대세계에 대한 적응을 목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하였다. 교회는 안으로 자각과 밖으로 개방을 목표로 '아조르나멘토' (Aggiornamento 적응-개혁과 쇄신)란 담대한 표어로써 오늘날 세계와 대화 중에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류 구원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공의회 : 종교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전 세계의 천주교 주교들의 회합.

5.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베드로가 첫째 교황에 임명된 후, 현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까지 264대에 걸쳐 천주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 오고 있다.

세계 천주교 현황(2000년 1월 1일 현재)
신자 수 : 10억4천5백여만명
전 세게 인구의 17.4%
아시아 인구의 3.0%

성모 마리아님과 성화상 공경

성모 마리아님과 성화상 공경
예수그리스도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이 예수께서 살았고, 접촉한 장소와 사물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고 성지(聖地)로서 존경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님을 따라 산 성인들에 대하여도 사랑과 경의를 다 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의 공경

마 리아님은 구세주의 구세(救世)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성모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의 일치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리아님은 그리스도님의 "어머니"요 그리스도님의 지체들인 신자들[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오래전부터 마리아님에 대한 교회의 신심(信心)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원을 위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얻어주는 마리아님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님의 중재 역할을 감소 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사실 마리아님의 온갖 영향은 그리스도님의 넘치는 공로에서 나온다. 마치 그리스도님의 사제직에 성직자나 평신도가 여러 모양으로 참여함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과 같다.

1. 천주교회는 하느님과 마리아님을 혼돈하지 아니한다.

하느님께는 마리아님을 포함하여 만물 위에 높이 공경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바치므로, 마리아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님을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 사랑과 공경을 드린다.

2. 천사와 성인을 초월하는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예(禮)는 상경지례(上敬之禮)이다

천사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예는 공경지례(恭敬之禮)이다.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께 기도하는 것은 전구(傳求, 代禱 대도)로 청한다.

3.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고, 하느님께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소서" 한다.

성화상의 공경

성상(聖像: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님의 형상, 성모 마리아님과 성인들의 상)이 상징하는 그 대상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국기 앞에 경례하는 것은 그 국기가 표시하는 조국에 대한 것과 같다.
성화상은 주로 그리스도님을 그리는데,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하느님에게서 본 것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상 자체에 신성(神性)이나 덕능(德能)이 있다고 경배하면 우상 숭배가 되고 십계명 중 첫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천주교는 십계명 중 첫 계명(출애20,3~4; 신명5,6~7)에 대해 개신교처럼 무조건 형상 제작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신 자체로 숭배 하려고 만드는 것을 금한다고 해석한다.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을 상징적 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셨다.
구 리뱀(민수21,4~9; 요한3,14~15)과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25,10~22; 1열왕 6,23~28)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성화상을 성당이나 가정에 모시는 것은 무언의 신앙 고백이며 기도를 고무시킨다. 또한 사람의 심정을 성스럽게 자극하여 성상이 표시하는 인물의 덕행과 위업(僞業)을 본받게 한다. 우상 숭배가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

한국 천주교회 역사
1592년 4월 일본의 풍신수길은 15만 7천여 명의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 출정(出征)을 계기로 일본은 국내에 크게 퍼진 천주교를 없애고자 했다. 선봉장으로 천주교 신자들만으로 편성된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 흑전장정(黑田長政 구로다 나가마사)를 비롯하여 오도순현(五島純玄 고지마 쥰겐), 천초종원(川草種元 야마쿠사 다네모토) 등 5만여 명이었다. 1593년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인 전교회장(후간 에이온)과 함께 소서행장이 머물고 있던 경상도 웅천성에 왔다. 왜군 신자들을 돌봐 주었으나 별로 전교 활동을 못하고 1595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임 란 7년 후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 4만여 명 중에 장기(長崎)지방 근처에서 7천 명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덕천막부(德川幕府)의 금교정책은 1611년부터 1720년까지 1백여 년 계속되었다. 조선인 신자 7천 명도 모두 순교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인질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데리고 갔는데, 북경에서 소현세자는 아담 샬 신부와 사귀게 된다. 세자가 북경에 있는 동안 조선인 2~3명이 세례 받았다고 한다.

우 리나라 실학(實學)운동의 선구자는 지봉 이수광(1563~1628년)이다. 특히 마태오 리치 신부가 지은 책 "천주실의" 등을 보고 새로운 실학을 일으켰다. 이 서적이 전승되어 그 후 8대손에 이르러 천주교를 믿는 운동이 일어 나고 후손들이 순교하게 되었다.

이수광의 실학운동이 이어 오는 중에 1백여 년 지나 천주교 연구 운동이 한강 유역 광주에서 남인 학자 이익과 그 문인들 사이에 일어났다. 특히 천주실의를 애독하면서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上帝)와 같다"고 했다. 1760년 경에 이익의 제자 안정복을 비롯하여 선비들 사이에 천주교 서적을 서학[西學:서양에서 들어온 학문, 天學: 천주를 믿는 학문]이라 하여 크게 읽혀졌다.

이익과 안정복 사이에 논의되던 천주교는 마침내 믿는 신앙 운동으로 발전 하였다. 거의가 남인파 학자들로 권철신.일신 형제, 이벽과 정약전.약종.약용 [1762~1836년, 다산(茶山), 요한] 삼형제 등이다. 이들은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천주교 교리연구 강학회를 열고 신앙운동을 일으켰다.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에 참석한 이승훈(당시 27세)은 부친이 동지사로 북경 가는 편에 따라가 그 곳 천주당에 갔다 이벽의 부탁대로 거기서 40여일 머무는 동안 필담(筆談)으로 교리를 배우고, 1784년 2월 귀국 길에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조선인 선비로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귀국 후 명례동[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을 중심으로 이승훈, 정약전 삼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조선 교회를 창립 하였다.

1784년 겨울부터 김범우의 집에서 주일(主日)행사를 거듭 한 것이 관헌에 발각되어 모였던 신자들이 모두 잡히게 되었다. 김범우는 태형을 받은 후 귀양살이에서 죽었다. 첫 번째 순교자이다. 1791년 신해년에 조상 제사 문제로 박해를 받았다. 이것이 그 후 1백년 동안 거듭되는 박해의 표면적 이유가 되었다.

1801 년 신유년 박해, 1839년 기해년 박해, 1846년 병오년 박해(조선교회 첫 김대건 신부 순교), 1866년 병인년 박해(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1871년까지 1만여 명 순교 : 일본은 1868년 구미 각 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화로서 명치유신이라는 정치 개혁을 하였다)

1886년 한.불 수호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양국인이 서로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가직 되었고, 1만 2천여 명의 신자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프랑스 성직자들은 자유롭게 전교하고, 개신교도 종교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1892년 명동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1896년 대원군의 부인 민씨(고종의 어머니)가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에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가 한국에 왔으며, 수 많은 순교자들 중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전 세계 교회는 이 분들에게 합당한 공적 공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 현황(1999년 1월 1일 현재) 신 자 수 : 384만5천864명 (전체 인구 4천685만8천463명의 8.2%)
주 교 : 22명
신 부 : 2,800명
수 도 자 : 8,139명
교 구 : 15개
본 당 : 1,147개(공소 1,148개)
해외 교포 신자 : 102,398명(미국 64,802명)
58개 국가(사제 : 140명, 수녀 : 98명)
교포 본당 : 137개(집회소 75개)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모든 개신교의 교파(갈라진 형제들 :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진 여러 교회와 교단)는 그 기원이 사도 시대에 있지않다. 모두 근대에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서 몇 사람이 갈라져 나가서 독립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오늘 한국 주요 교파는 루터교회, 감독교회[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 100 여 교파가 있다(1985년 12월 31일 현재). 전 세계에는 350여 교파가 있는데 대개 위의 교파에서 분열된 것이다.

1. 루터교회

독 일인 루터(1483년~1546년)는 천주교회의 신부이다.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자로서 정통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주장했다. 1517년에 교황권을 거부하고, 교회에서 파문 된 후 미사, 성체, 성직자와 수도자의 독신 생활을 반대 하였다. 드디어 1530년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루터는 대사(大赦) 논쟁을 계기로 하여 당시에 교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대한 불만을 모두 표현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종개혁은 순수한 종교적 사건은 아니다. 한국 루터 교회는 1959년 '루터란아워'라는 방송 선교를 통해서 시작했다.

2. 성공회[영국 감독교회]

1534년 영국 왕 헨리8세가 중혼(重婚) 문제로 가톨릭에서 이탈하여 교황권까지 거부하고, 국왕이 교회의 최고 통치자가 되는 영국 국교(國敎) 로서 교회를 세웠다. 성공회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889년에 시작되었고 현재 서울, 부산, 대전교구로 나누어져 있다.

3. 장로교회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1509~1564)이 교회 행정제도는 교황제도가 아니고, 신도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장로회 제도를 주장하였다. 또한 성경만을 신앙 규범으로 삼고 절대적 예정설을 강조하였다. 낙스가 이를 전파하여 1560년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장로교회를 창립하였다. 이 교회는 스크틀랜드의 국교회(國敎會)가 되었고, 영국과 미국 장로교회 확산의 중심지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장로회 의사 알렌에 의하여 장로교 선교가 본격화 되었다. 1907년 독립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창설되었으나, 해방 후 신앙 및 신학 노선의 갈등과 지방색, 교권 등이 겹쳐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재건파, 고신파, 조선신학교[기장]파, 예장통합파, 예장합동파 등 53개 교단이 있다.

4. 감리교회

1739년 영국 성공희 사제 요한 웨슬레(1703~1791년)가 세웠다. 그 후 교회 제도와 교리 문제로 몇 차례 분열되었다. 미국 감리교회는 1784년 웨슬레가 파견한 선교사 코크가 세웠다. 남북전쟁으로 남.북 감리교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합동하여 연합감리회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감리교회의 일본주재 선교사 맥레이가 와서 세웠다.

5. 성결교회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동양선교회인데, 이는 1901년 미국인 카우만이 일본에서 창설했다.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의 정신을 따르며, 선교회로 유지되다가 1907년 한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1962년 이후 두 교단으로 분열되었다.

모든 개신교파의 공통점은 성서 유일 규범주의와 성서 자유 해석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인류
하 느님은 시초에 한 인간 본성을 만드시고, 죄로 인해 흩어진 길 잃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온 인류)을 당신 아들의 교회로 다시 불러 모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교회]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는 인류가 일치와 구원을 다시 찾는 곳이므로 하느님과 인류, 인간과 인간이 화해를 이루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인류 안에 하나 밖에 없다.
따라서 '로마에 살고 있으면서 인도 사람이 자기 지체(肢體)임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효과있고 영구적으로 성령의 일치 안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님께 전 인류를 하나로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