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생활로 인도하는 훈계

제 1장 내적 행동 거지

1.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 21)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로 향하고 이 가련한 세상을 끊어라, 그러면 네 영혼이 고요할것이다. 바깥 사물을 가벼이 보고, 안의 일에 주의를 다하여 공부를 하라. 그러면 하느님의 나라가 네 안에 이르는 것을 보리라. 하느님의 나라는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니"(로마14,17),이는 악한 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네 안에 마땅한 자리를 준비하여 놓으면, 그리스도 께서 너를 위로해 주시면서 네게 임하시리라. 그 모든 영광과 모든 아름다움은 안으로부터 있고 또 그분은 그 안에 있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신다. 그분은 내적 생활을 하는 사람을 자주 찾으시며, 그와 더불어 유쾌히 담화하시고, 기쁜 위로를 주시며, 평화를 가득히 내려 주시고, 놀라운 우정을 표시해 주신다.

2. 그러니 충실한 영혼아, 이 그리운 정배(淨配)를 위하여 네 마음을 꾸며라. 그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다만 그리스도께 자리를 드리고, 다른 모든 것이 들어오기를 허락치 말아라. 네가 그리스도를 가지면 부요하고 만족하리라. 그분은 너를 돌보아주실 것이요, 모든 일에 성실히 간섭하시어, 사람의 도움을 바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급히 변하고 빨리 힘을 잃으나, 그리스도께서는 변함이 없이 영원히 그대로 계시고, 끝까지 우리 옆에 굳게 서 계실 것이다.

3. 어떤 사람이 네게 유익하고 사랑스러울지라도, 그도 역시 약하고 또한 죽을 인생이니, 지나치게 의뢰할 바 못 되며, 또 간혹 너를 거스리고 네게 반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걱정할 것도 없다. 오늘 너와 같이 있던 사람이 내일은 갈릴 수도 있고 또 그와 반대로도 될 수 있으니, 사람은 바람과같이 변하기를 잘한다. 너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라. 하느님은 네 두려움도 되시고 네 사랑도 되셔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너를 대신하여 대답하실 것이요, 더 낫다고 생각하시는 바를 잘해 주실 것이다.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은 없다"(히브리13,14). 그리스와 친밀히 결합해 있기 전에는 한 번도 안정을 얻지 못할 것이다.

4. 여기서 무엇을 두루 살펴보느냐? 이곳은 네가 편안히 살 곳이 못 된다. 네 처소는 하늘에 있어야 할 것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면서 볼 것이다. 만물은 다 지나간다. 너는 또한 그들과 더불어 지나간다. 그러니 너는 무엇에 애착하여 잡힐까, 망할까 주의하라. 네 생각은 지존하신 하느님께 있어야 할 것이요, 그리고 기침 없이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말씀을 올려라. 고상한 문제와 천상 것을 고찰할 수 없거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오상에 즐겨 거처하라. 예수의 상처로 피하고 예수의 보배로운 오상으로 신심을 다하여 피하면, 고통 중에 많은 격려가 될 것이요, 남들이 경천히 본 다고 그리 문제삼지 않고, 훼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잘 참게 될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역시 사람들에게 많은 천대를 받으셨고, 매우 궁핍한 지경에서도, 많은 곤욕 중에 계실 때에도 친척들과 친우들에게 버림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괴로움을 받으시고 천대를 받고자 하셨거늘 너는 어찌 감히 무슨 일이 좀 있다고 원망하랴! 그리스도께서도 반항하는 자와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거늘, 네게는 모든 사람이 다 동무와 은인이 되기를 바라느냐? 네게 조금도 거슬리는 것이 없다면, 무엇으로 네 인내가 화관(花冠)을 얻겠느냐? 만일 아무 거슬림도 받지 않으려 하면, 어찌 그리스도의 벗이 되겠느냐?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려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통을 참아라.

6. 한번이라도 예수의 품속에 들어가 그분의 타는 사랑을 조금 맛보았을 것 같으면, 자기의 편리와 불편을 상관치 않고 이미 받은 치욕으로 즐거워하리니, 예수의 사랑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경천히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참으로 내적생활(內的生活)을 하는 사람, 모든 절제 없는 감정에서 해방된 사람은, 자유로운 하느님께로 향하고, 정신적으로 자기 위로 올라 평화스러이 쉬게 되리라.

7. 남의 평판(評判)과 평가(評價)를 따르지 않고 본래 있는 그대로 판단하는 사람은 명석한 사람이니, 사람에게 배웠다기보다 하느님께 배운 사람이다. 안으로 닦고 바깥 일을 천히 여기는 사람은 신심적 수업을 행함에 곳을 가리거나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영신적인 사람은 자기 정신을 쉬이 집중시키니, 이는 언제든지 제정신을 온전히 바깥 일에 흩어 놓는 때가 없기 때문이다. 바깥 일이나 시간상 긴요한 사무라 할지라도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음은, 일이 닥치는 대로 자기를 그 일에 순응(順應)시키는 까닭이다. 자기 마음을 잘 배치하고 정돈한 사람은 남의 탄복할 행위와 망측한 소행을 살피지 않는다. 사람이 무슨 일에 관심을 가지면, 갖는 그만큼 장애와 분심이 된다.

8. 네가 참으로 착하고 정결했으면, 모든 것이 네게 선이되고 진보가 되리라. 그러나 너는 아직 너 자신을 완전히 극복하지도 못하고, 또 모든 속사를 떠나지도 못하였으므로 많은 것이 불만스럽고 또 가끔 마음이 산란케 되는 것이다. 속사에 대한 순결치 않은 애착심(愛着心)처럼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것은 다시없다. 네가 만일 바깥 위로를 버린다면 천상 사정에 맛들이고 마음의 즐거움을 자주 느낄 수 있으리라.

제 2장 겸손된 복종

1. 누가 네 편에 있든지 혹 반대편에 있든지 걱정 말고,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록 행하고 힘써라. 너의 좋은 양심을 보존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너를 잘 보호하시리라. 하느님께서 도와 주시고자 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사악(邪惡)이라도 그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일 네가 잠잠하고 참을 줄을 안다면 의심 없이 주께서 도우시리라. 그분은 너를 구할 시간과 방법을 아시니 너는 너를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모든 일에 도와 주시는 모든 혼잡에서 구원하심은 하느님의 일이다. 우리가 겸손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우리의 허물을 남들이 알고 책망하는 것이 가끔 매우 유익한 일이다.

2. 사람이 제 허물로 인하여 자기를 낮출 때에는 남을 쉽게 위로하고 자기에게 성낸 이의 마음을 쉬이 만족케 한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겸손한 이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며, 겸손한 이를 굽어보시어 큰 은총을 내리시고 그를 낮추신 후에는 영광으로 올리신다. 겸손한 이에게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다정히 당신께로 이끄시며 당신께로 청하신다. 겸손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여도 평화를 잃지 않고 잘 있으니 그는 세상에 마음을 붙이지 않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모든 사람들보다 도 낮은 자라 생각되지 않거든, 완덕에 무슨 진보를 하였다고 생각지 말아라.

제 3장 착하고 순량한 사람

1. 너는 너 자신을 먼저 평화한 가운데 보존하라. 그러면 남에게 평화를 줄 수 있으리라. 순량한 사람은 박학한 사람보다 더 많은 유익을 준다. 악습에 걸린 사람은 좋은 것이라도 악하게 만들고, 악한 것을 쉽게 믿는다. 순량한 사람은 모든 것을 선으로 돌린다. 평화한 가운데 잘 있는 사람은 남을 의심치 않는다. 모든 일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항상 불안한 사람은 가지가지의 의심이 일어나 번민을 느끼고 결국 에는 자기도 편히 못있고 남도 편히 못 있게 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끔 말하고 해서 유익한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은 무엇을 할 의무가 있다고 잘 살필 줄을 아나. 자기의 의무는 소홀히 한다. 그러니 너 자신에 대한 걱정을 하라. 그러면 당연히 남의 걱정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2. 너는 네 행동을 핑계 대어 두호하고 가릴줄을 잘 알면서, 남의 이유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네 형제는 잘 양해해주고 너 자신은 잘못한 줄로 자복함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남이 너를 양해하기를 원하거든 너도 남을 양해해 주어라. 보라, 너는 참다운 사랑과 겸손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참다운 사랑과 겸손은 자신에게만 분노할 줄 알고, 남에게는 도무지 분노하거나 역정을 낼 줄 모른다. 착하고 양순한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이는 누구나 다 자연히 좋아하는 바요, 또 누구든지 평화를 즐기며, 자기와 감정이 같은 이를 더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무정하고 성질이 악한 사람이나, 반항하는 사람이나, 우리의 마음과 맞지 않는 사람과 더불어 무사히 화목하게 살아 나가는 것은, 하느님의 큰 은혜요, 매우 아름답고 사내다운 일이다.

3. 사실 자기도 안온히 지내고 남과도 화목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기도 불안하고 남도 안온히 있지 못하게 하여 남에게도 곤란을 주고 자신에게도 항상 더 큰 곤란이 되는 사람이 있다. 또 평화한 가운데 자기를 안온히 지배하면서 다른 사람도 평화한 가운데 살게 하려고 힘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가련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평화는 바대를 당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 겸소되이 참아 가는 데 있다. 그래서 참을 줄을 잘 알면 알수록 그만큰 평화를 누리를 것이다. 그 법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이긴 승리자요, 세상의 주권자요, 그리스도의 벗이며 천국의 상속자다.

제 4장 순결한 마음과 순박한 지향

1. 사람이 세상 것을 떠나 위로 오르는 데 두 날개가 있으니 즉 순박과 날개다. 지향에는 받드시 순박이 있어야 할 것이요, 감정에는 반드시 순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순박으로는 사람이 하느님께로 향하고 순결로는 그분을 얻어 누리게 된다. 네가 안으로부터의 무슨 절제 없는 정에서 벗어나면, 어떠한 선한 행동이라도 네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과 남의 유익 외에는 아무 것도 네게 뜻하지 않고 찾지 않는다면 안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네 마음이 바르면 모든 조물은 생명의 거울이 될 것이요, 거룩한 학문을 가르치는 책이 될 것이다. 조물이 미소하고 천하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선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미소하고 천한 것은 없다.

2. 네가 안으로 착하고 조촐하면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볼것이요, 잘 알아들을 것이다. 조촐한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투시한다. 누구나 제 속에 머금은 그대로 밖으로 판단한다. 이 세상에 무슨 즐거움이 있다면 이는 과연 마음이 조촐한 사람의 소유물일 것이다. 또 어느곳에 무슨 곤란이 있고 걱정이 있다면 이는 양심이 악한 자가 제일 잘 경험할 것이다. 쇠가 불에 들어가면 녹이 없어지고 온 덩어리가 빛남과 같이, 사람이 완전히 하느님께로 향하면 게으른 생각이 벗겨지고 새 사람으로 변한다.

3. 사람이 냉담하기 시작하면 그 때에는 조그마한 수고하도 무서워하고 밖으로 무슨 위로가 있으면 즐겨 받는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이기기 시작하고 하느님의 길을 씩씩하게 밟기 시작하면, 전에 어렵다고 생각하던 것이 쉽게 여겨질 것이다.

제 5장 자기를 살핌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믿을 수 없으니, 가끔 은총도 없고 지각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빛이 있다 해도 미소한 것이요, 그것도 소홀히 하는 탓으로 급히 잃어버린다. 또 우리는 안으로 이와같이 눈먼 것을 깨닫지 못하는 때가 자주 있다. 자주 우리는 잘못하고도 핑계하여 악을 더한다. 어떤 때 우리는 사욕(私慾)에서 한 것을 열정으로 할 것처럼 생각한다. 남의 조그마한 잘못을 책하면서 우리의 더큰 잘못은 상관치 않고 지낸다. 남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만한 괴로움을 받아 참게 되는지는 꽤 빨리 깨닫고 헤아리지만, 우리가 남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것은 깨닫지 못하낟. 자기 사정을 바르게 잘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남에 대하여 엄하게 판단할 것이 없을 것이다.

2. 내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일을 첫째로 힘쓰고, 또 이렇게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돌보는 사람은, 남의 장단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적 생활을 하고 신심 있게 살자면 남을 들어 말을 말 것이요, 자신을 특별히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네 생각이 오로지 너 자신과 하느님께만 있다면밖에 무슨 일이 있다 할지라도 별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너 자신에 생각을 두지 않은 때 네 생각은 어디 있었느냐? 또 너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이리저리 모든 일에 참견하였을 때 무슨 신통한 효험을 보았느냐? 참다운 평화와 화합을 바라거든 반드시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너 자신만 눈앞에 세워 놓고 나아갈 것이다.

3. 그러므로 네가 온갖 세상의 걱정을 물리치고 자유스럽다면 크게 진보할 것이다. 네가 잠세의 것을 중히 여기고 있으면 매우 퇴보할 것이다. 단순히 하느님이나 혹 하느님께 관계되는 것 외에는 큰 것도 없고, 높은 것도 없고 유쾌한 것도 없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다. 어떠한 위로든지 무슨 조물에서 오는 것이면 전혀 헛것으로 생각하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하느님 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천히 본다. 하느님 홀로 영원하시고 무량하시며, 모든 것을 채우시고 그분 홀로 영혼의 위로시오, 마음의 참된 즐거움이시다.

제 6장 어진 양심의 즐거움

1. 착한 사람의 영광은 어진 양심이 증명하여 주는데 있다. 양심을 어질게 가져라. 그러면 항상 즐거운 것이다. 양심이 어질면 많은 수고를 참아 견딜 수 있고, 역경 중에라도 많이 즐거울 것이다. 양심이 악하면 두려움이 그칠 사이 없고 편한치가 못하잗. 네 마음이 너 자신을 책하지 않는다면 유쾌 하고도 평한할 게 아니겠느냐? 무엇이든지 잘한 다음이 아니면 즐거워 말아라. 악한 사람은 참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마음속에 평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악인들에게 무슨 평화가 있으라?"(이사 57,21)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평화한 중에 살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재앙도 미치지 않을 것이며 또 누가 감히 해치라."고 악인들이 말한지라도. 그말을 믿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갑자기 분노하실 때가 있을 것이니, 그때에는 악인들의 행위가 허무로 돌아갈 것이요, 그들의 생각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2. 사랑이 있으면 곤란 중에 있음을 영광으로 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렇게 영광을 삼는 것은 주의 십자가로 영광을 삼는 것이다. 사람이 주고받는 그 영광은 잠깐이다. 세속의 영광에는 항상 근심이 따른다. 어진 사람들의 영광은 그 양심에 있고, 사람들의 입에 있지 않다. 의인들이 즐기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것이며, 하느님 안의 것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진리에 대한 즐거움이다. 참되고 영원한 영광을 원하는 사람은 잠세(潛勢)의 영광을 도모하지 않는다. 참세의 영광을 찾거나, 혹 찾지 않아도 진심으로 자신을 경천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덜 사랑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칭찬을 듣거나 책망을 듣거나 무관심한 사람은 그 마음이 매우 고요하다.

3. 양심이 깨끗한 사람은 만족을 누리기 쉽고 평화를 누리기도 쉬을 것이다. 네가 칭찬을 듣는다고 더 거룩해지지 않고, 책망을 듣는다고 더 천해지지도 않는다. 너는 그대로 너다. 하느님께서 아시는 그것보다 더한 가치를 가졌다 할 수 없다. 너는 네 속이 어떠한지 잘 살핀다면, 밖에서 사람들이 너를 자기고 무엇이라 하든지 상관치 않을 것이다. 사람은 얼굴을 보고 가치를 헤아리나, 하느님은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신다. 사람은 행동을 살피고, 하느님은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신다. 사람은 행동을 살피고, 하느님은 그 뜻을 살피신다. 항상 잘하면서도 자기는 변변치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겸손한 영혼의 표다. 무슨 조물의 위로를 받고자 하지 않는 것은, 깨끗한 마음과 내적 의탁의 표다.

4. 밖에서 남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긴 분명한 증거다.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이다"(2고린 10,18). 안으로는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 나가고, 밖으로는 어떠한 정에든지 잡히지 않을 만큼 산다면, 이는 내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제 7장 예수를 만유 위에 사랑함

1.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예수로 인하여 자기를 천히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이를 버릴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 홀로 모든 것 위에 사랑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조물에 대한 사랑은 거짓 것이요, 오래가지 않는다. 예수의 사랑은 미쁨이 있고 항구성이 있다. 조물에 마음을 붙인 사람은, 사라지는 조물과 함께 사라지리라. 예수를 품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영원히 안도(安堵)하리라. 모든 벗이 다 너를 버려도, 너를 떠나지 않을 사람, 네가 나중에 망하도록 버려 두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친구로 사귀어 두어라. 네가 좋듣지 싫든지 모든 사람과 헤어질 때가 한 번은 받드시 있고야 말 것이다.

2. 사나 죽으나 예수께만 의지하고 그분의 성실함에 오로지 너를 맡겨라. 그분은 모든 이가 다 힘을 잃어도 혼자서 너를 도우실 수 있다. 너의 사랑하는 분은 다른 사람을 네 마음에 두기를 허락치 않으신다. 그래서 그분은 홀로 네 마음을 차지하시기를 원하시고 마치 왕이 자기 어좌(御座)에 앉아 있음과 같이 네 마음에 계시기를 원하신다. 네 안에 조물에 대한 마음을 없앨 줄을 잘 안다면 예수께서는 감심으로 너와 같이 사시게 될 것이다. 무엇이나 예수를 떠라 사람들에게서 희망한 것이 있다면, 거의 전부가 실패에 돌아갈 줄을 알아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믿지도 말고 의탁하지도 말아라. "모든 인생은 한낱 풀 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이사 40,6).

3. 사람의 겉모양에 드러나는 것만 살핀다면 속기를 잘할 것이다. 네가 다른 데서 위로를 찾고 유익을 구하면 자주 해를 받을 것이다. 네가 모든 일에 예수를 찾는다면 과연 예수를 얻을 것이다. 네가 너를 찾으면 과연 너를 얻었으나 이것이 네게 망함이 되리라. 예수를 찾지 않는 사람이라면, 온세상과 그의 모든 원수들보다도, 자기 자신이 자기를 더 해칠 것이다.

제 8장 예수와 더불어 친밀히 지냄

1. 예수께서 가까이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좋고 어려울 것이 없지만, 예수께서 좀 멀리하시면 모든 것이 어렵다. 우리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위로가 없고, 있다 해도 변변히 않고 예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마음에 위로가 크다.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요한 11,28) 할 때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발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가지 않았느냐? 예수께서 우리를 찾으시어 눈물을 멈추게 하시고 영원의 신락을 주시는 그 때는 참으로 복된 때다. 예수께서 없으시다면 네 마음은 얼마나 마르고 빡빡하랴! 예수를 원치 않고 다른 무엇을 원한다면, 이는 얼마나 미련한 일이며 헛된 일이랴? 이는 온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손해가 아니냐?

2. 예수를 떠난다면 세상이 무엇을 네게 줄 수 있으랴? 예수를 떠나 사는 것은 큰 지옥이요, 예수와 같이 사는 것은 즐거운 낙원이다. 예수께서 너와 같이 계신다면 어떠한 원수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예수를 얻어 만난 사람은 아름다운 보배를 얻을 것이요,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해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예수를 잃은 사람은 그 손해가 너무나 크니, 온 세상은 잃은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보았다. 예수 없이 사는 사람은 극히 가난한 자요, 예수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큰 부자다.

3. 예수와 같이 사는 법을 아는 것은 큰 예술(藝術)이요, 예수를 떠나지 않게 모시는 것은 큰 지혜다. 너는 겸손하고 양순하라. 그러면 예수께서 너와 같이 계실 것이다. 겸손과 평화를 보존하라. 그렇게 하면 예수께서 너와 더불어 머물러 계시리라. 네가 바깥 사물을 탐하기 시작하면 급히 예수를 쫓을 것이요, 그 은총을 잃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쫓아 그분을 잃었다면, 이제 누구에게로 가면 누구를 벗으로 사귀랴? 너는 벗이 없이는 잘 살 수 없으리라. 예수께서 너의 제일 사랑하는 벗이 되시지 않는다면, 너는 너무나 비참하고 위로 없는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고 즐거워한다면 몹시 미련한 짓이다. 예수의 마름을 상해 드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이 너를 거스르는 것이 낫다.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 분이 되어야 한다.

4. 사람은 다 예수로 인하여 사랑한 것이요, 예수는 예수 자신 때문에 사랑할 것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하나만 특별히 사랑할 것이다. 그분은 홀로 착하시고 아무리 미쁨 있는 벗이 있다 하여도 그분만큼 미쁨 있는 벗이 없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또 그분 안에서 벗이나. 원수나 다 사랑할 것이다. 또 벗이나 원수나 다 같이 예수를 알고 사랑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께 간구할 것이다. 너는 특별히 찬미를 받고자 하지도 말고, 특별한 사랑을 받고자 하지도 말아라. 이는 비 할 때가 없으신 하느님께만 마땅한 것이다. 네 마음에 어느 사람을 두어익히 생각할 것도 아니요, 남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아 주목을 받지도 말아라. 네 안에는 예수께서 계셔야 할 것이다.

5. 너는 어느 조물에서든지 거리낌없이 안으로 조촐하고 자유스로유러야 한다. 네가 장애 없이 "주의 어지심"(시편 34,8)을 맛들이려거든, 모든 것을 다 벗어 버리고 마음을 조촐히 하여 예수께 향하여 있어야 한다. 과연 네 안의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비질하여 깨끗이 한 다음에, 예수와 더불어 결합하는 이러한 정도에 이르자면,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내리고 또 너를 이끌지 않으면 안 되리라.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이르면 모든 일을 다할 만한 힘이 있지만 은총이 물러가면 즉시 궁핍해지고 약해져, 책찍질이나 받기 위하여 살려 주는 것 같이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에 마음으로 답답하여 실망할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안온히 가지고 하느님의 성의를 따를 것이요, 일신에 당하는 모든 환결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참아 받을 것이다. 무릇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 올 것이요, 밤이 새면 날이 밝을 것이요, 비바람이 지나면 화창한 일기가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제 9장 위로가 없을 때

1.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면 사람의 위로를 업신 여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도 없고 하느님의 위로도 없이,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즐겨 마음의 유배(流配)를 견디고자 함은 어려운 일이며, 매우 위대한 일이다. 또한 모든 일에 자기를 찾지 않고 자기가 세운 공로를 생각지 않는 것은 퍽 위대한 일이다. 은총이 있어, 마음에 좋고 신심이 난다면,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 이런 좋은 시간은 누구나 다 원하는 바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이끄신다면 그는 참으로 유쾌히 말을 타고 가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이 어려움을 모른다는 것이 이상할 것이 무엇이냐? 전능하신 분의 손이 그를 붙들고, 제일 훌륭한 안내자가 그를 이끄시지 않느냐!

2. 사람이 무슨 위로가 되는 것을 곧잘 좋아하지만,자기 편익을 모도하지 않기는 퍽 어렵다. 치명 성인 라우렌시오는 자기가 모시던 사제와 세상을 함께 이겼으니, 이것은 세상에서 무슨 즐거움이 될 만한 것은 다 천히 보고, 또 자기가 극히 사랑하는 하느님의 대사제 식스토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이 떠나 이별하였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는 조물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조물주를 더 사랑하였고, 인간이 위로를 구하는 것보다도 하느님의 원의를 따라 행하려 하였다. 너도 그와같이 하느님을 사랑함에 필요 하다면, 아무리 없지 못할 벗이요, 극히 사랑하는 벗이라 할지라도 떠나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벗이 너를 버리고 떠났다고 괴로워 말아라. 우리는 다 한 번은 서로 떠나고야 말 것이다.

3.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이기고 자기의 모든 정을 하느님께로만 모으고 있자면, 먼저 오랫도안 많은 전투(戰鬪)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자기를 믿고 있게 되면, 오래지 않아 사람의 위로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이요, 그리고 덕행을 부지런히 닦는 이라면, 이런 위로에 이끌러 떨어지지 않고, 그런 감각적 낙을 찾지도 않고 도리어 심히 자신을 시련(試鍊)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려운 일을 참아 견딘다.

4.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께서 영신적 위로를 주시거든 감사하게 받아라. 그렇지만 네 공로로 생각지 말고 지나치게 즐거워하지도 말고, 헛되이 무엇을 과분(過分)히 바라지도 말아라. 도리어 은혜를 받앗음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을 더 둘 것이요, 그리고 네 모든 행동에 있어 주의를 더하고 조심을 더하라. 무릇 이러한 시간이 지나면 시련이 따라올 것이다. 하느님의 위로가 끊어지거든, 그렇다고 즉시 실망하지 말아라. 겸손과 인내를 다하여 하느님의 찾으심을 기다리고 있어라. 하느님은 네게 더 큰 위로를 주실 수 있다. 하느님의 길을 걸어 본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새삼스럽게 보이지도 않고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름난 성인들과 예날 선지자들에게도 그런 변천이 없지 않았다.

5.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은총을 누릴 때 말하기를 "이제는 절대로 안심이다."(시편 30,6)하였다. 그러나 은총을 잃은 후에는 자기가 당한 것을 생각하고 "야훼께서 얼굴을 돌리셨을 때에는 두렵기만 하였사옵니다."(시편 30,7)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라도 그는 실망치 않고 더 정성스러이 하느님께 간구하기를 "야훼여, 이 몸은 당신계 부르짖었고 당신께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야훼여, 부디 이 애원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주소서. 야훼여 부디 도와 주소서."(시편 30,8.10)하고, 마침내 자기 기도가 들어 하락됨을 받아 좋은 결과를 낸 것을 증거하여 말하기를 "당신은 나의 통곡하는 슬픔을 춤으로 바꿔 주시고 베옷을 벗기시고 잔치 옷으로 갈아입히셨사옵니다."(시편 30,11) 하였다. 그렇게 큰 성인들도 이러한 변천을 면치 못하였거늘, 우리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으로서, 어떤 때는 열심한 마음이 있고 어떤 때는 마음이 차다고 실망할 것이 없다. 성령이 오시고 물러가시는 것은 당신 뜻대로 하시는 까닭이다. 성 욥이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욥기 7,18) 하였다.

6. 그러니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에 의지하고 살랴? 오로지 하느님의 무한한 인자를 바라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고 무엇에 의지하여야 되겠느냐? 착한 사람들이 있고 신심 있는 형제들이 있고, 충실한 벗들이 있고 거룩한 서적이 있고, 아름다운 문구(文句)가 있고, 듣기 좋은 노래가 있고, 시(詩)가 있다 할지라도 은총이 나를 떠나고, 나 자신이 궁경(窮境)에 버림을 받았다면 이 모든 것이 별로 도움이 될 것이 없고, 별로 재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이런 때는 참는 수밖에 없고, 하느님의 의향을 따라 나 자신을 희생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7. 한 번도 은총의 물러감을 느끼지 않고, 열심히 쇠하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는, 그렇게 신심 있고 충실한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어느 성인을 막론하고 처음에나 혹은 후에나 한 번도 시련을 당하지 않을 만큼 그렇게 고상한 탈혼상태에 이르고, 그러한 신광(神光)을 누린 성인은 하나도 없다. 무릇 하느님을 위하여 무슨 곤란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을 신묘(神妙)하게 관상하는 데 합당한 이가 아니다. 흔히 보면 무슨 시련이 있는 것이 머지 않아 받을 위로의 전조처럼 되어 있다. 무릇 시련을 당하여 잘 나간 이에게는 하느님의 위로가 허락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묵시 2,7)하셨다.

8. 하느님께서 위로를 주시는 것은 사람이 역경을 잘 참아 나가기에 필요한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다. 위로가 있은 후에 시련이 다시 있는 것은 잘했다고 자긍할까 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마귀는 자지 않고 네 육신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 좌우편에는 원수가 쉬지 않고 너를 노리고 있으니 싸울 준비를 그치지 말아라.

제 10장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함

1. 너는 일하러 왔건만 왜 편히 쉬려 드느냐? 위안을 누리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잘 참으려고 준비하고 있어라. 또 무슨 즐거움을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려고 준비하고 있어라. 세속 사람일지라도 영혼에 위로가 항상 있고 즐거움이 항상 있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랴? 영혼의 위로는 세상의 모든 오락과 육신의 괘락을 멀리 초월하는 까닭이다. 세속의 괘락이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혹 헛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누추한 것이지만, 영신의 낙은 덕행에서 발하고, 하느님께서 조촐한 마음이 있는 이에게 내려 주시는 것인만큼, 오로지 기쁘고 조금도 누추함이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신탁은, 아무도 항상 제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시련이 없는 동안이 오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정신의 헛된 자유와 자기를 너무 믿는 것은, 주께서 방문하시는 데 적지 않게 방해가 된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내려 위로해 주심은 오죽이나 잘하시는 일이냐?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것을 하느님께로 돌려 잘 감사치 않음으로 잘못한다. 우리는 그러기에 은총을 주시는 분에게 배은 망덕하고, 근원되는 분에게로 모든 것을 전혀 돌리지 않으므로 은총의 선물이 항상 내리지 않는다. 감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은총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교오한 사람의 경우는 겸손한 사람이 보통으로 받는 것도 빼앗기게 된다.

3. 나는 통회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 위로를 원치 않고, 교오한 마음을 내게 하는 신묘한 관상기도(觀相祈禱)를 탐하지 않는다. 뜻에 맞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며, 모든 원의가 다 순결한 것도 아니요, 귀하다고 다 하느님께 의합한 것도 아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이 더욱 일어나고, 두려운 마음이 커지며, 나 자신을 망각(忘却)하는 데 더욱 주의가 깊게 되는 그러한 은총을 나는 기꺼이 받는다. 하느님께 은총을 받음으로써 훈계받고, 감히 그 은총을 잃음으로써도 훈계받는 이는 제가 무슨 잘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요, 도리어 자기를 가난하고 헐벗은 것을 자백할 것이다.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드리고, 네 것은 네가 차지하라. 즉 하느님께는 은총을 받은 것을 감사하고, 네게는 네 잘못을 돌리고, 죄의 마땅한 벌을 받을 줄로 생각하라.

4. 너는 항상 제일 낮은 곳에 있으라. 그러면 너에게는 제일 높은 곳이 주어질 것이니, 극히 높은 것은 극히 낮은 것이 없이는 서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극히 높은 성인은, 자기 생각에는 극히 비천하게 자기를 보니, 그들이 영광스러운 지위에 실상 있을수록 자기 자신을 더 천히 보게 된다. 진리와 천상의 영광만 생각하는 이들은 헛된 영광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 기초를 두고 또 그 안에 견고케 세운 이들이니, 교오를 발할 수가 없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다 하느님께로 돌리는 이는 남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고, 다만 하느님께만 그 영광을 구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본체와 모든 성인들로 인하여, 만유 위에 찬미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항상 하느님만 향하여 나아간다.

5. 그러므로 너는 아무리 작은 은혜를 받았을지라도 감사하라. 그러면 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생길 것이다. 너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큰 것으로 생각하고, 소홀히 여길 만한 것이라도 특별한 은혜로 생각하라. 은혜를 베푸시는 이의 지위를 생각 한다면, 작은 것이 없고 천한 것이 없다. 은혜를 내리시는 이는 지존하신 하느님이시니, 어찌 작은 것이 있을 수 있으랴? 벌을 내리시고 매를 때리신다 할지라도 감사 하여야 한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잘 보존하려 하거든 은총을 받을 때는 감사하여야 할 것이요, 은총을 잃을 때눈 참아야 할 것이다. 은총을 잃었거든 다시 주십사고 기도할 것이요, 얻었거든 잃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고 겸손할 것이다.

제 11장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의 수가 적음

1. 이제 예수를 사랑하는 이들 중에 천국을 탐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위안을 구하는 사람은 많으나, 곤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잔치의 벗을 많으나, 재 지키는 벗은 적다. 누구나 다 예수와 더불어 즐기려 하지만, 그분을 위하여 고통을 참겠다는 사람은 적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되 떡을 뗄때까지만 따르고, 수난의 잔을 마시는 데까지 가는 사람은 적다. 그분의 기적을 숭배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십자가의 모욕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하되, 곤란을 당하지 않는 때만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기리고 그분에게 축원하되, 자기가 무슨 위로를 받을 때만 그렇게 한다. 예수께서 당신을 숨기시고 잠깐 그들을 떠나실 것같으면, 원망을 발하기도 하고, 혹은 너무 낙담하기도 한다.

2. 예수를 사랑하되 그 사랑이 자기의 무슨 위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다만 예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곤란과 마음에 어떠한 번민이 있다 할지라도, 위안을 극히 누릴 때와 다름없이 예수를 찬미한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께서 한 번도 위안을 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그래도 항상 예수를 찬미하고 항상 감사하리라.

3. 예수께 대한 사랑이 순수하여 자기의 편익이라든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섞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위안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다 품팔이하는 사람이라 함이 옳지 않으랴? 자기의 편함과 이익만을 항상 도모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보수없이 하느님을 섬김 만큼 충실한 이는 어디 있는가?

4. 정말 모든 것을 다 버렸다 할 만큼, 그렇게 영혼의 일에 착실한 사람은 드물다. 정말로 마음으로 가난하고 모든 조물을 내버린 사람은 어디 있는가?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다"(잠언 31,10).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다 준다 할지라도,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보속을 많이 하였다 할지라도, 그래도 별로 장한 것이 없다. 학문을 다 연구했다 할지라도, 아직도 멀다. 무슨 큰 덕행이 있고 타는 듯한 신심이 있다 할지라도 아직도 퍽 크게 부족한 것이 있다. 즉 무엇보다도 필요한 한 가지가 없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떠나 후에 또한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벗어 버리며, 사사로운 사랑은 조금도 가지지 않음이다. 자기가 하여야 할 바를 다한 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줄로 스스로 생각하여야 한다.

5. 비록 무슨 큰일이라고 할 만한 일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직 장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사실에 있어서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 자백하라.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가 17,10) 하신 진리의 말씀과같이 하라. 그렇게 하게 되면 참으로 마음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이 될 것이며, 다윗 성인과같이 과연 "외롭고 괴로운 이 몸입니다."(시편 25,16)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와 모든 것을 버릴 줄을 알고, 자기를 말째에 두고자하는 그러한 사람보다 더 부요한 이가 없고, 더 세력 있는 이가 없고 더 자유스로운 이가 없다.

제 12장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

1. 많은 사람들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하시는 이 말씀을 모진 말씀인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저주 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속에 들어가라."(마태 25,41) 하시는 이 마지막 말씀을 듣기가 한층 더 모진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십자가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벌을 선언(宣言)할 때에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는 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와 생활을 일치하게 하게 한 모든 이는, 판관 그리스도 대전에 안심하며 나아가리라.

2. 그러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 십자가 지기를 왜 두려워하느냐? 십지가에는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는 생명이 있고, 십자가에는 원수의 공격을 막는 병기가 있다. 십자가에는 천상의 아름다운 맛이 흐르고, 십자가에는 마음의 용기가 있고, 십자가에는 영신의 즐거움이 있으며, 십자가에는 덕의 극치(極致)가 있고, 십자가에는 성화(聖化)의 원만함이 있다. 십자가가 아니면 영혼도 구하지 못하고 영생도 얻을 희망이 없다. 그러니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라. 그러면 영생의 길을 갈 것이다. 예수는 자기 몸에 십자가를 지시고 너를 앞서 나아가시어(요한 19,17), 그 십자가 위에서 너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는 그와같이 네 십자가를 지고 네 십자가에서 네 생명을 바칠 간절한 원의를 가지라고 하신 것이다. 네가 그분과 더불어 죽으면 그분과 더불어 살 것이다. 그분과 더불어 형벌을 당하면 그분의 영광에 너도 참섭할 것이다.

3. 보라, 모든 것이 십자가에 있고, 모든 것이 죽음에 있다. 거룩한 십자가의 길밖에 또 날마다 극기(克己)하는 길 밖에는 생명으로 인도하고 참다운 마음의 평화로 인도하는 다른 길이 또 어디 있는가! 네 뜻대로 어디든지 가 보고, 네 원의대로 무엇이든지 찾아 보아도, 위로는 거룩한 십자가의 길보다 더 고상한 길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아래로는 더 안전한 길을 얻지 못할 것이다. 네 뜻과 네 생각대로 모든 것을 배치하고 마련해 보아도, 네가 항상 좋든지 싫든지 무슨 곤란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또 이렇게 항상 십자가를 만날 것이다. 혹 네 육신이 괴롭든지 혹 네 영혼에 영신적 번민을 느끼든지 할 것이다.

4. 어떤 때는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요, 어떤 때는 다른 사람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가끔 너 자신이 네게 괴로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괴로움을 면하기 위하여나 혹 감하기 위하여는 약도 없고 위로도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뜻은 네가 위로 없이 곤란을 받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시고, 또는 오로지 너 자신을 당신께 맡기기를 바라시며, 곤란을 당하는 데서 겸손한 마음을 발하도록 힘쓰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와같이 고난을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닫지 못한다. 십자가는 항상 준비되어 있고, 사방에서 너를 기다린다. 네가 어디로 달아나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없으니 이는 어디로 가든지 너 자신과 같이 가고, 너 자신을 항상 만나기 때문이다.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려다보라. 밖으로 나가 보고 안으로 들어와 보라. 이 모든 방면에서 십자가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안으로부터의 평화를 누릴 마음이 있고, 영원한 월계관을 얻을 마음이 있으면, 어느 곳에 가든지 인내할 필요가 있다.

5. 네가 불평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면, 십자가가 너를 지고 네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리고 갈 것이다. 비록 이 세상은 아닐지라도 저곳에서는 곤란이 끝나리라. 그렇지 않고 억지로 지고 간다면, 네게 짐이 될 것이요, 또 너 자신을 괴롭게 할 것이며, 참기는 참아야 할 것이다. 한 십자가를 내버리면 의심 없이 다른 십자가를 만날 것이며, 아마 그것은 전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6. 죽은 인생으로서는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을 너만은 피할 줄로 아느냐? 성인 중 누가 십자가 없이 또는 곤란 없이 지내셨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사시는 동안 한 시간을 괴로움 없이 지내신 적이 없다. 그분의 말씀이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가 24,26) 하셨다. 그런데 너는 어찌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 외에 다른 길을 찾는냐?

7. 그리스도의 온 일생은 십자가요 순교였거늘, 너는 편함을 원하고 즐거움을 찾는냐? 괴로움 받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이 세상에서 찾는다면, 이는 그르치는 일이요, 크게 그르치는 일이다. 이는 현세의 생활이란 괴로움이 가득하고 주위에 십자가가 둘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영신으로 높이 오를수록 그만큼 자주 무거운 십자가를 만나게 되니 유배의 고역은 사랑으로 인하여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8. 그렇지만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로 곤란을 당하여도 위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자기 십자가를 잘 참아 견디는 것으로써 성공의 보수가 크게 불어나는 것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사람이 십자가를 불평 없이 지게 되면, 그 괴로움의 무거운 짐이 하느님의 위안을 바라는 신뢰심으로 변한다. 그리고 육신이 괴로움을 받아 누릴수록 그만큼 영혼 안에 은총을 받아 기운을 얻는다. 또 어떤 때는 그리스도와같이 십자가를 져 보겟다는 열정으로 고난을 사모하고 역경을 원하여, 곤란과 가난이 없이는 살 마음이 없을 만큼 그런 용기도 발한다. 이는 사람이 하느님을 위하여 괴로움을 많이 받고 중히 받을수록 그만큼 하느님께 위합한다는 것을 믿게 되는 까닭이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의 작용이다. 사람이 본성으로 싫어하고 피하는 것에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착수하고 사랑할 만큼 그러한 힘을 연약한 육신에 주는 것이 은총의 작용이 아니고 무엇이냐?

9.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사랑하여 육신을 괴롭게 하여 정복하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영예를 피하고 모욕을 즐겨 받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자기를 천히 보고 남에게 천히 여김 받기를 원하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요, 무슨 역경이든 손해든 잘 참으며 이 세상의 무슨 행복을 원치 않음도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너 자신을 살펴보면, 이런 일은 하나라도 네 힘으로 할 수 없는 둘로 알리라. 그러나 하느님께 간구하면 하늘로부터 이런 용기가 내릴 것이니, 네 아래에 세상과 육신이 정복되리라. 그리고 신앙의 병기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기만 들었다면, 원수 마귀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10. 그러므로 너를 위하여, 너를 사랑하여 그 위에 죽으신 네 주의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착하고 충실한 종과같이 씩씩하게 지도록 정신을 차려라. 가련한 이 현세에서 당하는 많은 역경과 여러 가지 불편을 잘 참아 받도록 마음을 가다듬을 것이니, 네가 어디 있든지 네 환경이 있으리라. 또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거지 악의 곤란과 고통을 면할 방침이 없으니 잘 참는 수밖에 없다. 주의 벗 되고 구분과 더불어 한몫을 받으려 하면, 주의 잔을 달갑게 마셔라. 위로에 대한 것은 하느님께 맡겨라. 하느님은 당신 성의대로 위로에 대하여 배려하실 것이다. 너는 오로지 곤란을 참아 받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또 그런 것을 가장 큰 위로로 여길 것이니, 너 혼자 모든 곤란을 참을 수 있을지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로마 8,18)

11. 괴로움이 네 마음에 맞고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곤란에 맛들이게 되는 경우에 이르거든 그 때에 너는 이 세상에서 만복의 터를 발견한 줄 알고, 네가 실상 잘 있는 줄로 생각하라. 네가 괴로움을 당하기를 꺼리고 피하고자 하는 동안에는 잘 있지 못하고 또 어디를 가든지 곤란이 너를 따를 것이다.

12. 너는 하여야 될 것, 즉 참고 죽기를 결심하면 빨리 잘되고 네가 평화를 얻으리라. 네가 성 바오로와같이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갔을지라도(2고린 12,2),곤란을 당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주겠다." (사도 9,16)하셨다. 그러므로 네가 예수를 사랑하고 영원한 그를 섬길 마음이 있으면, 곤란을 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13. 바라건대,너도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무슨 괴로움을 당할 만하다면 이는 네게는 얼마나 큰 영광이 되겠으며, 하느님의 성인들에게는 얼마만한 즐거움이 되겠으며, 남에게는 얼마만한 건설이 되랴! 곤란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나. 모든 이가 다 인내의 덕을 장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목적을 위하여 큰 고생을 참아 받으니, 너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만한 고생을 달갑게 참아 받아야 할 것이다.

14. 너는 우리의 생활이 끊임없이 죽음에 있어야 할 것을 각오하라.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에 대하여 죽을수록 그만큼 하느님께 살기를 시작하리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곤란을 잘 받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천상의 것을 알아들을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뜻으로 곤란을 당하는 것보다 더 하느님께 의합하고 네게 더 유익한 것이 이 세상에 다시는 없다. 많은 위로를 받아 누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놓고 택하라 하면, 괴로움을 택해야 할 것이 아니냐? 괴로움을 당하면 그리스도를 닮고 성인들과 같아진다. 우리의 공로와 우리의 완덕의 지위는 신락과 위로를 많이 받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경우를 많이 당하고 괴로음을 잘 참아 견디는 데 있다.

15. 사람이 구령하는 데 곤란을 당하는 것보다. 더 낫고 더 유조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말씀으로라도 가르쳐 주시고 표양으로 보여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밝혀 십자가를 지라 권유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24)하셨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을 다 읽어 살펴본 바에 위하여, 이런 결론을 내는 것이 당연하니, 곧 "우리가 하느님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사도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