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장 자신의 약함과 현세의 고역

1. 제자의 말: 주여, 나를 거슬러 나의 불의함을 고하고 나의 약점 늘 당신께 말하고자 하나이다. 나는 가끔 조그마한 일을 당해도 번민하고 근심하나이다. 뜻을 정할 때에는 용맹히 행하기도 하지만, 조그마한 시련만 있어도 큰 걱정거리가 되나이다. 흔히 매우 변변치 않은 일에서 큰 유혹이 생기나이다. 아무 유혹이 없어 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느 틈에 조그마한 욕망으로 거의 패하게 됨을 깨닫게 되나이다.

2. 그러므로 주여, 나의 천함을 보시고, 당신이 모든 방면에서 잘 아시는 나의 연약함을 살펴보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내가 빠져 드는 이 수렁에서 건져 주소서"(시편 69,14). 내가 이처럼 약한 것을 볼 때, 자주 마음이 울렁거리고 당신 대전에 부끄러워하나이다. 내가 무슨 시련에 동의(同意)하기까지 이르지는 않지만, 사욕이 이처럼 나를 귀찮게 하여 성가시고 괴롭사오니, 이렇게 날마다 싸움 중에 지내는 것이 매우 어렵사옵니다. 여기에서 나는 연약함을 알았으니 즉 지겨운 여러 가지 환상(幻想)이 항상 더디 물러 가고 쉽게 또다시 들어오는 까닭이옵니다.

3. 극히 용맹하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며, 신자들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여, 원컨대 당신 종의 수고와 고통을 굽어보시고, 어떤 환경에 있든지 모든 일에서 돌보아 주소서. 천상의 용기를 내려 내 힘을 더 주어, 영혼에 아직도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가련한 육체가, 즉 묵은 사람이 다시는 일어나 거스르지 말게 하여 주소서. 이 육체를 거슬러 반드시 이 가련한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싸워야 하나이다. 오! 곤란과 곤궁이 없지 못한 이 현세의 생활은, 모든 것에 올가미가 가득하고 원수가 많은 이 현세의 생활은 그무엇이라 하여야 옳게사옵니까! 한가지 괴로움이니 시련이 물러가면 다른 것이 닥쳐오고, 또 이미 들어온 시련과 싸워 아직도 끝을 못 낸 동안에, 뜻밖에 다른 여러 가지 시련이 들어오나이다.

4. 이렇게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는 이 생활을, 이렇듯 많은 재앙과 가난에 구속을 받는 이 생활을 어찌 사랑할 수 있나이까? 이러한 여러 가지 죽음과 벼을 낳는 이 생활을 어찌 생명이라고 하겠나이까! 그러나 이 생활을 사랑하는자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생활에서 만족을 구하려 하나이다. 세속이 거짓되고 헛됨을 자주 사람이 깨달으나, 육체의 사욕이 너무 세력을 잡앗으므로 그리 쉽게 세속을 떠나지도 못하나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세속을 사랑케 하는 것도 있지만, 또 세속을 경천히 보게 하는 것도 있나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괘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을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1요한 2,16). 세속을 미워하고 세속에 대해 염증을 내게 하는 것은, 그 원욕의 결과가 되는 모든 벌과 괴로움이옵니다.

5. 그러나 슬프게도 세속에 젖은 그 마음은, 나쁜 쾌락에 이끌리고 사욕을 채우는 것을 복락으로 생각하나이다. 이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덕의 참된 가치를 깨닫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이옵니다. 세속을 전혀 천히 보고, 거룩한 규율 아래 하느님을 향해 거룩히 살려고 힘쓰는 자는 모든 쾌락을 참으로 거절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천상적 복락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고, 또 세속은 그 얼마나 심히 그르치고 여러 가지로 속는지 자세히 보게 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