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회 소공동체의 역사와 현황
- 다양성 안에서 본질에 충실하며 성장
- 신자 20명 중 1명꼴 소공동체 참여
- 인식부족 어려움 딛고 연대 활성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대표 전원 신부와 의정부교구 서춘배 신부(구리본당 주임) 등 한국교회 소공동체 관계자들은 8월 3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을 방문, 미국교회 소공동체 현황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교회에 비해 미국교회 소공동체는 비교적 한국교회에는 낯설다. 본지는 소공동체 관계자들의 이번 미국 방문을 계기로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역사와 현황, 특징을 소개한다. 아울러 미국 소공동체 현황을 보고 돌아온 전원 신부의 특별기고문을 통해 한국교회 소공동체의 발전 전망을 알아본다.
자료제공=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신앙과 삶을 연결시키는 고리 ‘소공동체’ - 미국 소공동체 역사와 현황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태동은 30여 년 전인 1978년, 뉴왁(Newark)대교구가 ‘쇄신(Renew)’ 프로그램을 개발한 데서 비롯됐다.
프로그램 실현 핵심을 ‘소공동체’라고 천명한 쇄신 프로그램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특히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을 통해 나타난 교회 비전과 사목방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쇄신 프로그램을 계기로 미국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소공동체가 생겨났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소공동체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미국 로욜라대학교 사목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교회 내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소공동체는 6만여 개이고 미사참례 신자 20명 중 1명꼴로 소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또 소공동체의 75% 이상은 본당과 연계돼 있으며 구성원 상당수가 본당 활동에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소공동체가 신자들의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결과라며 매우 인상적이고 고무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공동체 정착과 활성화 기여 - 미국교회 소공동체 관련 조직들
소공동체 정착과 활성화에 어려움도 있다. 많은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본당 활성화를 위한 많은 다른 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도 있으며, 특히 젊은 신자들의 소공동체 참여가 저조한 것도 문제다. 소공동체에 대한 주교들과 사제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미국교회가 당면한 과제이자 도전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도 다를 바 없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교회 소공동체가 꾸준히 성장한 데는 3개 소공동체 관련 전국조직의 역할이 크다. 이 조직들은 모델 개발과 활동가 양성, 네트워크 구축, 포럼 개최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조직 모두가 다양성 안에서도 소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목적, 소공동체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성찰을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는 점은 주목받는다.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며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세상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표지이며 성사’라는 점을 조직운영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디트로이트대교구 아더 바라노우스키(Arthur Baranowski) 신부가 창립한 ‘본당을 공동체로 건설하기 위한 국가 연대’(NAPRC, The National Alliance of Parishes Restructuring into Com munities)는 교회 쇄신을 위해서는 본당 구조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창립자의 이름을 딴 소공동체 모델인 ‘바라노우스키 모델’은 미국 내 90여 개 교구에 전해졌으며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300여 개 본당이 이 모델을 채택해 소공동체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소공동체를 위한 북미 포럼’(NAFSCC, North American Forum for Small Christian Communities)은 소공동체 활동가들을 지원하고자 구성된 조직이다. NAFSCC는 소공동체 관련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자료를 나누며 다른 소공동체 프로그램과의 네트워크 조성을 위한 포럼을 개최한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60여 개 교구가 NAFSCC의 회원이다.
‘소공동체 연대’(SCCC, Small Christian Community Connection)는 지역 소공동체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상호 지원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소공동체 발전을 지향하고 있지만 특정한 모델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전국적으로 700여 명의 회원을 둔 연대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자는 뜻에서 명칭을 ‘부에나비스타’에서 ‘소공동체 연대’로 고쳤다.
소공동체 본질 기초로 다양성 인정 - 미국교회 소공동체 특징
인종전시장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사회다. 때문에 미국교회 소공동체는 이러한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 아래서 이해해야 한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소공동체 관계자는 “너무도 다양한 소공동체 모임이 미국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공동체의 모습을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와 모습을 갖춘 소공동체에 대한 미국교회의 대응은 탄력적이고 유연하다. 미국교회는 소공동체의 모든 요소를 갖추지 못한 여러 형태와 단계의 소그룹까지도 소공동체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소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탄생과 성장의 발전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라는 거시적인 맥락에서다.
다만 이러한 탄력적인 소공동체 활성화 노력 속에서도 미국교회는 소공동체의 본질적인 요소, 즉 소공동체를 통한 기도와 신앙나눔, 상호지원, 지속적인 배움, 봉사, 선교활동 등을 과제로 제시한다. 대부분의 소공동체 모임은 본당 구조나 조직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운영되며 특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공동체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모범 모델과 모임 방법은 교구나 본당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다.
◎성 바오로·미니아폴리스 대교구 성 잔다르크본당 소공동체 모임
수렴된 의견 실천으로 결실
미국 신자들은 어떻게 소공동체 모임을 할까.
지난 8월 15일 오후. 이레네씨의 집에서 소공동체 모임이 열렸다. 2주 만에 한 자리에 모인 구성원들의 종교는 제각각이다. 이레네씨는 루터교 목사이고 이날 초대된 손님은 감리교 신자다. 피터씨와 토마스씨는 성 잔다르크본당의 평신도다. 종교가 다른 구성원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색적이다.
2~3시간가량 진행되는 모임의 시작은 20분간의 ‘기도와 묵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어떤 형태로든 기도를 바친다. 이어 ‘신앙 나눔’을 갖는 데 이 때 각 구성원들은 미리 준비된 초에 불을 붙인 후 지난 2주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간에는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도 함께 한다.
신앙 나눔이 끝난 후에는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간다. 성경이나 신앙서적 혹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토론 주제나 성격은 이전 모임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토론 후에는 이에 따른 ‘실천활동’을 정한다.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이나 생각들을 한 데 모아 소공동체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어 짧은 기도와 전례를 통해 모임을 마친다.
미국교회 소공동체 모임은 대체로 2주일에 한번 구성원 가정에서 열린다.
구성원은 8~12명 정도. 특별히 지도자를 뽑지 않고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어 맡는다.
1만여 명의 신자가 다니는 성 잔다르크본당에는 100여 개의 소공동체가 구성돼 있으며 현재 30~40개 소공동체가 활성화 돼 있다. 소공동체가 본당의 공식적인 조직은 아니지만 사목협의회 임원 대부분은 소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본당 내에 ‘소공동체 위원회’도 만들어져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본당의 한 소공동체가 전쟁반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시작했고 본당 정의평화위원회의 도움으로 전쟁반대 집회를 열었다. 소공동체가 주축이 돼 개최한 집회에는 약 4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소공동체의 작은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물로는 그 성과가 무척 크다.
이승환 기자 swingle [at] catholictimes [dot] org
기사입력일 : 2007-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