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원교구 복음화국에 2005년에 실시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입니다. 참고자료로 올려드립니다.
시 간 | 프 로 그 램 |
09:30-10:00 | 접 수 및 성 가 |
10:00-10:50 | 강의 1. 복음화란 무엇인가? |
11:00-12:00 | 강의 2.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
12:00-13:00 | 점 심 식 사 |
13:00-13:30 | 소공동체가 배우기 |
13:30-14:20 | 강의 3.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
14:30-15:20 | 강의 4. 복음나누기 방법 및 복음나누기 7단계 |
15:30-16:30 | 파 견 미 사 |
현대에 이르러 사회는 특별하게 어느 곳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 도시화되었고, 나머지도 급속하게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과정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추세로 말미암아 교회 역시 도시들이 가지는 특징들을 안고 있다. 즉, 대형화를 비롯하여 익명화 현상이 거의 전반적으로 교회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사회에서 누리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 그리고 소속감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실정이다. 수원교구 역시 몇 년 사이 괄목할 만한 교세 성장을 이루었지만 성장 자체가 본당의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여 사목자들과 신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어렵고, 신자들은 유대감을 상실하여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과연 ‘세상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화 되고 있는가? 신자들이 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교회가 오히려 세속화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우려를 끊임없이 갖게 된다.
이미 시대의 징표를 읽은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현대 세계로의 적응’ (Aggiornamento) 이라는 주제로 교회 전반에 걸친 변화와 쇄신을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들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적 삶을 통해 세상을 성화시켜 나가는 일은 점점 힘겹게만 보인다. 더구나 삶의 자리 도처에는 그리스도에 반하고, 교회전통을 위협하는 사고와 동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고개를 들고 있다. 교회와 그 신자들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유혹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은 자신이 먼저 뼈를 깎는 쇄신의 과정을 겪음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 말씀에 비추어 삶을 반성하고, 복음의 빛으로 스스로를 정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세상을 복음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화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노력해 온 모든 것(예비자 입교, 성사생활, 단체활동 등)이 복음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방식에 수동적이 측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더 나은 복음화, 즉 ‘새로운 복음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신자 공동체의 삶이 주체가 되는 보다 능동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그토록 부르짖는 복음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신자들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자.
1. 복음화란 무엇인가?
1) 복음서에 나타나는 ‘복음화’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고 말씀하시며 당신 친히 나자렛 회당에서의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이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 18-19)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 졌다”(루가 4, 21)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실제로 묶여있고 눈먼 이들을 만났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수를 따랐고, 악령 들린 이가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어 예수를 따라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절름발이와 나병 환자들과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어드렸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시는 곳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셨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소외받고 억눌린 이들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모든 것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복음화’이다.
이처럼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복음’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다. 그렇다면 ‘복음화’라는 것은 ‘복음을 통해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참된 사랑 안에서 내 삶과 가정이, 내 이웃과 나라가 복음을 통해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 바로 복음화인 것이다.
2) 복음화의 정의
‘복음화’(Evangelizatio)라는 말은 1960년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 공식적으로 수록되었고, 1974년 10월 “현대 세계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로마에서 개최된 제3차 주교대의원회의를 기점으로 교회의 본질적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공식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 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복음화를 “복음 안에 선포된 그리스도 신비에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통틀어 복음화라고 한다. 그러므로 애덕의 증가와 성사 집행 없이는 온전한 의미에서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 더구나 그리스도께 대한 기쁜 소식의 선교 없이는 복음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신약 성서에 의하면 복음화의 중심점은 그리스도 신비의 선포인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규정된 “복음화”의 개념은 1975년 12월 8일 반포된〈현대의 복음선교〉를 통해서 정착된다. 즉 “복음화는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2고린 2,17)라고 한 것과 같이 그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화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화 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이다.
간혹 복음 선교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는 복음화의 풍부하고, 역동적인 참모습을 부분적 또는 단편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3) 새복음화
1980년대에 들면서 “새로운 복음화” 내지 “새복음화”라는 용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용되었다. 즉 라틴 아메리카 복음전래 50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1983년 3월 9일 아이티의 수도 포르 토 프랭스에서 제 19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정기총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정기총회에서 행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연설문에 “새 복음화”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새복음화는 복음화가 일단 이루어진 지역에서 반복하여 복음화를 시도하는 재복음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새복음화는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하며,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역사를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언어로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리킨다. 때문에 ‘새복음화’는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나아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해방을 선포하는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시대의 뜻”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교회의 새로운 자세를 의미한다.
2. 복음화의 요소
1) 말씀의 선포(예언직)
복음화에 있어서 복음을 해설하고 교리를 설명하는 말씀의 선포는 그 기본을 이룬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 14-17)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신앙은 말씀을 통한 복음 선포를 전제하고 있다. 즉 복음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아 생활하고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복음 나누기를 통해 삶과 신앙의 일치를 이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2) 생활의 증거(왕직)
말과 일치된 생활은 언어로 표현된 진리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선포하는 사랑은 추상화되고 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라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 9, 27)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격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바오로 사도처럼 성실히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증거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왕다운 자유의사로 성부께 순종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차지했듯이, 제자인 우리도 왕다운 자유로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님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우리의 이웃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3) 성사생활(사제직)
말씀과 생활의 증거로 비신자들을 신앙에 귀의시킨 다음에는 성사를 통하여 초자연적 생명으로 인도하고 이 생명이 더 풍부해지도록 해야 한다. 즉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거룩한 삶을 살아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모든 일 - 기도, 사도직 활동, 결혼생활, 가정생활, 노동, 심신의 휴식 등 - 을 성령 안에서 행하며 생활의 번민을 잘 극복해 낸다면,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영적 제물이 되어, 미사 때 혹은 다른 전례를 통해 정성되이 성부께 봉헌된다.
교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해설하는 말씀의 선포를 복음화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성사로 말미암은 내적 변화와 새 생활은 그 도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선포(예언직) → 생활에서의 증거(왕직) → 성사생활(사제직) → 내적변화와 새생활
3. 복음화 과정
일반적으로 복음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복음 말씀을 들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은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분께서 외치신 기쁜 소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가 복음화 되기 위해서는 복음을 먼저 접해야 한다. 처음으로 교회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접하게 되며, 기존의 신자들은 복음말씀을 지속해서 듣고 묵상하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시오”(1베드 3, 15)라는 말씀처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누구나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에 찬 태도로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믿는 바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교리도 알고 있어야 한다.
2) 복음적 삶을 증거함
복음은 다른 무엇에 앞서 삶의 증거로써 선포되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듣고서 감명을 받기 보다는 자기가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써 감명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복음적 삶 또한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스스로가 그 기쁜 소식대로 살 때 자신이 복음화 될 수 있고, 우리 주변의 이웃들-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 영세는 했으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고통 중에 어떤 절대자를 찾는 사람, 타종교를 가진 사람 등-은 우리의 삶을 보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돼, 그들을 신앙에로 모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스스로가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삶을 각자의 생활로써 구현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고 신앙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믿지 않는 이들을 신자들의 공동체에 초대함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사회 안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리스도인들 삶의 모습에서 부분적으로 복음을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이들 중에 기쁜 소식을 부분적으로 체험해 보았거나, 또는 체험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신자들의 공동체에 초대해야 한다. 즉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소공동체로 그들을 초대하여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성사의 은총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 한다.
4) 사도직에 참여
신자들의 공동체로 초대 받은 사람들은 입교식과 세례성사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나아가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복음을 맛본 사람들이 이 복음을 깊이 묵상하고 자신의 삶 안에 맑게 투영함으로써 참된 복음적 그리스도인으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복음의 선포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자신의 주위를 복음화 시켜야 할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신자들의 활동을 ‘사도직’이라 부른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사도직으로 부여받았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신자 전체에 맡겨진 사명과 개별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교회와 세상안에서 수행해야 할 사도직을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는 실질적인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다.
복음말씀을 들음 → 말씀을 복음적 삶으로 세상에 증거함 → 믿지 않는 이들을 공동체로 초대하여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참여시킴 → 복음 선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도직에 참여
4. 복음화를 위한 노력
우리 교회 안에서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현재까지 계속되어 왔다.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신앙인들이 있다. 즉,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가정을 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신자들이 있고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 하거나 심지어는 일생을 바쳐가며 교회와 사회에 헌신해 온 신자들이 있다. 그리고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복음을 실천해 온 성직자, 수도자,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자기 삶의 자리와 일터에서 묵묵히 복음을 실천해 온 신앙인들이야말로 우리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이제 이들을 좋은 표양으로 삼아 소공동체를 통해 신자들 모두가 복음을 듣고 나누며 일상생활에서 복음을 실천하여 세상을 향한 복음화에 앞장서야 한다.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찬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절정에 달한 구원의 사건이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용해되어 변화되도록 촉구하는 새로운 만남이요 생명의 축제이다. 따라서 이 신비는 우리의 삶과 생활 안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이러한 성찬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공동체이다. 이제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해 이웃과의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향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잘것없는 작은 사람들끼리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어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복음화의 사명을 실천하였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잘 정비된 조직이나 제도도 없었고 많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건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형제처럼 돌보며 사귐과 섬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셨듯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모여 그들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이웃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따라서 공동체는 소수였지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공동체의 원형인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오랜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속 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셨듯이,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살아 있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끊임없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도들이 그 험난한 상황에서도 기쁘게 복음을 전하여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였듯이, 우리도 실망과 포기를 기쁨과 희망으로 승화시켜 새복음화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이러한 노력들은 바로 소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복음화 안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5. 우리의 현실과 과제-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현재 수원교구는 계속적으로 신자수와 본당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각 본당 공동체의 규모는 친교의 공동체를 체험할 수 있는 단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단기간동안 괄목할만한 교세성장을 이루면서도 성장 자체가 본당의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여 복음 정신에 입각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멀어져 가고 있다는 우려를 부인할 수 없다.
즉 편향된 외적 성장이 지속되어온 가운데 사목자들은 신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매우 어려워 졌고,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상실하여 교회 공동체는 갈수록 그 속이 비고 껍질만 두터워 지게 되었다. 따라서 본당들은 공동체 중심이기 보다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이 많아졌다. 이렇게 본당의 모습이 외적으로 비대화됨에 따라 울타리 밖에 있는 양들에 대한 시선의 증대뿐만 아니라,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을 돌보는 것에도 힘이 모자라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타파하기 위해 수원교구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으며, 이 시노두스를 통해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라는 양대 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갈 수원교구의 새로운 복음화 정책이며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역사회와 세상 복음화의 실현을 위해서 모두의 힘을 집중시키고, 조직과 시간과 재정의 지원을 통해 시노두스의 결과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물론 시노두스 결과문의 구현으로써 수원교구가 복음화의 모든 측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내적 성숙인 자신의 복음화와 세상 복음화를 위하여 요람의 구실을 하는 ‘소공동체 활성화’와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면, 수원교구는 앞으로 더 큰 문제들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체할 수 없이 뛰어야 한다. 개인의 복음화를 넘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목표와 방법들이 정해졌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 일어나 가자”(요한 14,31)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다함께 일어나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들어가는 말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한 교회의 당면 과제는 복음화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복음화 사업을 지속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만 느껴지고 있다. 교회 외적으로는 급격한 도시화와 개인주의의 팽배, 공동체 정신의 결여, 심한 빈부의 격차, 농촌의 공동화 현상, 도시 빈민 지역의 확산, 윤리의식의 부재, 신영성주의의 확산 등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적으로는 소속감의 부재, 익명화, 신앙의 미성숙, 교회의 중산층화 등의 문제들이 복음선포에 걸림돌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자신의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선포를 위한 새로운 방법,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새복음화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소공동체 활성화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복음 중심적 삶을 토대로 생활의 변화와 이웃간의 친교를 통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새시대 새변화의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본 강의에서는 먼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하여 알아보고 ‘소공동체 활성화’가 대두되게 된 교회 내 외적인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소공동체에 대한 의미와 그 필요성을 심도있게 다루어 볼 것이다.
1. 교회의 공동체성
교회는 왜 공동체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안에서 또 그분의 행적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공동체의 원형인 삼위일체 하느님
“하느님은 최고의 선(善)이시며, 이 최고의 선이란 바로 사랑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은 흘러넘쳐야 하기 때문에 자신 안에 폐쇄적일 수 없고 흘러 넘쳐야 하기에 상대방을 필요로 하게 된다”(빅토르의 리처드).
그러므로 한분이신 하느님(성부)은 사랑의 원리와 관계성 안에서 두 위격, 즉 성자, 성령과 일치를 이루시고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신다. 인간은 사랑 안에서 하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적 친교 안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2) 인류 창조와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 26-27)라고 말씀하시면서 삼위일체의 어떤 한 위격이 아니라 세 위격의 이름으로, 그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아담을 먼저 지으신 후 그가 깊이 잠든 사이 그의 일을 거들 짝(이브)를 만들어 내셨다(창세 3, 18-21).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류 창조시에도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한쌍의 부부를 내시어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안배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이스라엘 민족과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를 선택하셨다. 또한 에집트 종살이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시나이 산에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으며,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과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셨다.
4) 성가정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신비로운 방법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 이 세상 구원의 첫 발을 내 딛으셨다.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예수님께서 이루신 성가정은 공동체의 가장 기초 단위이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정공동체의 모범이 되었다.
5)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룬 소공동체
예수께서는 공생활 이후, 항상 제자들과 함께 소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심으로써 가장 완벽한 소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왜냐하면 그 소공동체는 식사, 잠자리, 재산공유, 함께 기도 함 등의 완전한 의미의 생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계명이 새롭게 규정되고(마태 25, 40), 공동체를 통한 기도, 기원의 효력과 당신의 존재성의 확실한 근거의 말씀(마태 18, 19-20)은 모든 이들을 공동체의 삶에로 강력하게 초대하는 것이라 하겠다.
6) 초대교회 공동체 - 소공동체의 이상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 2, 43-47).
이 말씀 안에는 교회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참된 공동체적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
공동체(Community)란 자연적으로 생성된 인간의 모임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로, 생활과 운명을 같이하는 소규모의 조직체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사회(Society)라는 말과는 구분해서 쓰인다. 공동체의 개념으로 묶어지는 것은 가족, 종족, 민족 등이 있으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공동체에 귀속된다. 개인은 반드시 공동체에 속해서만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공공(公共)의 복지를 유지해야 하며 공동체를 긍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2) 공동체의 교회적 의미
성서를 통해서 교회의 관점으로 보는 공동체의 의미는 혈연, 지연, 정신적 차원의 자연적으로 귀속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에서의 공동체는 보편주의 안에서 모든 인간이 동일 사명과 성총을 부여받은 주님의 자녀들 및 그리스도의 형제들의 공동체, 즉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 ‘몸의 지체로서의 공동체(바오로적인 그리스도 신비체사상)’를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인류)공동체는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나고 질서 잡혀지고 지배되며, 그 목표를 향하여 이끌림을 받는 ‘인류적 가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 교회 공동체의 내․외적 상황들
1) 교회 외적 상황들
①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 신중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이성과 주관을 가치판단의 척도로 삼으려 함(예: 니체“신은 죽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② 개인주의적 상황들의 심각성 : 핵가족 제도로 변화, 무분별한 산아제한, 분배정의의 혼란, 적자생존의 원칙, 혈연, 지연 중심주의, 집단이기주의.
③ 영적인 만족 보다 (가상)현실적 만족에 치우침 : 황금만능주의, 세속주의, 전생 및 윤회설, 향락주의.
④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 심령술, 최면, 마인드 컨트롤, 기, 단학, 풍수지리, 신비주의
2) 교회 내부적 상황들
① 교세 성장의 둔화
영세자 비율이 87년을 고비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하여 93년에는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원교구도 2003년도까지의 5년 영세자 비율을 볼때, 점차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② 영성적 활기의 부족
냉담율, 주일미사 및 평일미사 참례 비율, 판공성사, 고해성사 참여율, 영성체자 비율, 교무금 책정, 본당 단체 활동 등등 점차적으로 소원해지는 모습이 발견됨.
③ 교회의 세속화
④ 신앙 이기주의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의 합이라는 사실이 점점더 빛을 잃고 있다. 신앙 공동체가 운명적 공동체의 성격이 있음을, 그래서 회개를 통한 공동체정신의 회복 없이는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을 더욱 더 깊이 깨달아야 한다.
⑤ 본당의 대형화와 그에 따른 익명화
수원교구는 새영세자를 통해서 본당의 교세가 확장되는 것 보다는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 신자들의 증가로 도시 또는 그 근교 본당들이 대형화 되고 있다. 본당이 대형화 되면 될 수록 위의 ①-④의 상황들은 더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으며,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실현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공동체 소속감의 부재를 불러 일으켜 익명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⑥ 교회의 중산층화 및 권위주의
⑦ 가톨릭적 미신
기도 묵상, 전례상의 필요성에서 아니라 마음의 위로 내지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성물, 성상 등을 올바르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고상, 묵주, 성수 등을 목에 걸고 다니거나, 차에 감고 다니거나, 심지어 병이 낫는다고 마시는 행위는 부적신앙이나 하느님을 자동판매기 내지 장사꾼으로 전락시키는 과오에 떨어질 수 있다.
3. 소공동체의 개념 이해 및 특성
1) 소공동체의 개념
소공동체는 삶의 터전이 같은 신자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신앙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고 각자의 신앙을 정화하고 북돋우며, 복음의 빛을 지역 사회에 비추고 활동함으로서 세상을 쇄신하는 복음화 운동의 주체이다. 소공동체는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작은 교회이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자주 신자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로마 16, 5 ; 1고린 16, 19)였고, 예수님께서는 “단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계신다”(마태 18, 20)라고 하셨다. 따라서 단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에 모이는” 공동체는 ‘교회’, 즉 ‘작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공동체는 10-15가구로 구성된 작은 교회이다.
② 함께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성직자나 소수의 평신도가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가 참여하는 교회이다. 소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은 연령,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복음을 나누고 함께 활동하고 함께 복음을 선포할 뜻이 있는 이들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평신도 사도직을 강조하였다. 즉 교회에 맡겨진 복음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평신도 고유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을 지적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함께하는 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2) 소공동체의 요소 및 특성
① 구성원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인다.
소공동체는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돌아가면서 모이는 것이 특징이다. 매번 구성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인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② 복음 나누기를 한다.
모임은 항상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소공동체 모임 안에 항상 부활하신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눔으로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며 그분께로부터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신앙이 심화, 쇄신되며 자신의 복음화 뿐 만이 아니라 세상의 복음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복음 나누기 방법에는 복음나누기 7단계, 공동응답, 복음 그림나누기, 아모스 방법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③ 활동을 한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 2, 26)이므로 복음 나누기를 통해서 나눈 신앙은 활동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 즉 자신들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공동체를 통하여 성장하는 신앙인들은 개인적인 신앙 차원을 넘어, 이웃과 교회 공동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보다 구체적인 신앙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즉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봉사활동, 선교활동, 성화활동을 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④ 보편교회와 일치한다.
소공동체는 보편교회와 일치하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모임이라도 보편교회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지향하는 소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 본당과 일치하고 교구와 일치하며 보편교회와 일치하여야 한다. 즉 동일한 전례 및 성찬 전례에 참여하고 동일한 복음을 읽으며 동일한 성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 안에서 서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4. 소공동체의 필요성
소공동체의 필요성을 찾는다면 한 마디로 ‘공동체란 바로 교회이며 볼 수 있는 구원의 성사가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공동체는 ‘교회의 교회 됨’을 지향한다. 즉, 소공동체는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행정 구역 단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교회요, 보다 큰 교회가 설 마당이 된다. 따라서 소공동체는 하나의 작은 교회(로마 16, 5; 1고린 16, 19; 골로 4, 16 참조)이면서 보다 큰 교회인 본당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1) 소공동체는 교회의 원형이다.
초대교회는 소공동체를 통해서 신자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김과 나눔, 그리고 친교가 이루어졌다. 소공동체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교회 모습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현재의 본당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대형화, 익명화로 인하여 교회 본연의 복음화 사명을 유연하게 수행하기가 어렵기에,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현대의 이상적인 공동체 상을 찾아야 한다.
2) 현대 사회에 가장 적합한 복음화의 방법은 소공동체이다.
대형화, 익명화,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는 소공동체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 그리스도인을 교회로 데려와 세례를 받게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복음의 빛으로 재복음화, 새복음화, 사회복음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세상 전체를 복음화 시키는 데는 소공동체가 가장 복음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이다.
3) 평신도 양성의 장으로서 소공동체는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평신도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그리스도의 정신 안에서,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소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성숙을 기하고, 가진 것(영적으로 성숙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다 내어 놓을 수 있는 좋은 장이 된다.
나오는 말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복음적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소공동체 운동은 현시대의 요청에 가장 적합한 교회적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소공동체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며, 말씀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서로 이웃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체험하며 그 체험을 나누고, 나눈 것을 함께 실천하는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명심하자.
“소공동체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적인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된 것이다.”
-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선언 -
수원교구에서는 3년여에 걸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고 그 결과물인 ‘소공동체 활성화’라는 거대한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소공동체의 올바른 정착 및 발전은 교회 구성원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능동적인 참여와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 소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소공동체 봉사자들의 열의와 의지 없이는 소공동체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공동체 활성화’ 사목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봉사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수행하여 왔다. 이는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소공동체 운영을 돕기 때문이며,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소공동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소공동체와 가장 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소공동체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운영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자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에 앞서 사전적 의미의 ‘봉사’ 개념과 비교하여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개념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참된 봉사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짚어 볼 수 있겠다.
1. ‘봉사’란 무엇인가
1) 사전적 의미의 봉사
봉사란 자발적인 의도에서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거나 사회에 참여하는 무보수의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말한다. 봉사는 자원봉사(自願奉仕)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원해서 받들고 섬긴다’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봉사활동은 자발성, 공익성, 무상성, 계획성 및 지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활동이라 하겠다.
① 자발성
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동기에서 스스로 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옳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강제로 하는 일이라든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따른 당연한 임무 수행은 봉사활동이라 할 수 없다.
② 공익성
봉사활동은 타인이나 사회를 위한 활동이다. 즉, 남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국가의 발전을 위한 활동, 더 나아가 전 인류의 번영을 위한 활동이다. 그것은 자기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서부터 국제 난민을 돕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무한대의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익성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③ 무상성
봉사활동은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남을 돕는 활동이다. 오직 진실로 남을 돕는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보람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비나 식사 등과 같이 봉사활동에 꼭 필요한 경비나 물질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것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④ 계획성 및 지속성
봉사 활동은 사전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이 점에서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선행과는 구분된다. 선행이란 선한 동기에서 남을 도와주는 행동, 곧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선행 그 자체를 보람 있는 것으로 여겨 남을 도와주는 착한 행동이다. 이렇게 볼 때 봉사활동도 선행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나 봉사활동은 선행 가운데에서도 특히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되는 활동인 것이다.
바람직한 봉사 활동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하여 봉사 대상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봉사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에 능숙해 져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내면화 될 때 더 좋은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고, 봉사하는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나아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 수준의 활동보다는 단체나 조직을 통한 활동이 효과적이다.
2)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흔히 세속의 지식인들은 ‘봉사’라는 개념을 아주 거창하게 말하곤 한다. 때론 그들에게 있어서 봉사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상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비단 세속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봉사자라는 허울 아래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봉사’라는 말은 자신을 좋은 사람 또는 희생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남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봉사’라는 뜻을 ‘서비스’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럼 서비스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서 서비스(Service)란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생산‧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 의미와 더불어 기업에서 사용되는 뜻으로는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자와 고객간 상호관계에 의한 활동들’을 의미한다. 또한 서비스는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라는 말은 라틴어의 '세르부스'(Servus)에서 그 어원을 갖는데 세르부스는 '종, 노예'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낮고 미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황님의 모토(moto)인 ‘세르부스 세르비오룸 데이’(Servus Serviorum Dei, 주님의 종들의 종)를 보면 서비스라는 말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종들의 종’이란 말에서 주님의 종들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 즉 우리를 의미하며, 종들의 종은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시겠다는 교황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봉사’라는 개념을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봉사자가 되고자 했을까? 가장 낮은 사람, 즉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타인에 의해서 또는 본당 신부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봉사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종,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종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결국에는 그분의 종, 세상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 봉사자들의 몫이라 하겠다.
우리 대다수는 스스로 봉사자가 되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 하신 것’(필립 2, 7-8)처럼 ‘봉사자’라는 사명이 비록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주어진 몫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모범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봉사자’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해 보자. 봉사라는 원의를 상기에서는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봉사자들은 이런 수동적인 종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봉사자(종)는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며 움직이는 ‘자원봉사자’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원봉사자(Volunteer)란 라틴어 Voluntas(볼룬따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원봉사의 근원은 자유의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 또는 자선(Caritas)에도 있다. 이 자선이라는 말은 희랍어로는 카리스, 즉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뜻을 지니며, 또 유대에서는 이 말이 ‘이타주의 정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자원봉사라는 말의 어원적 뜻은 ‘자유의지로서 실천하는 사랑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의 봉사 자세
1) 봉사의 기본자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남을 섬겨야 한다. 자비와 연민에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종’이라 스스로 칭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사실 안에서, 참된 종의 모습으로 남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벗으로서 그분과 함께 하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명예로움인 동시에 엄중한 의무와 책임이 뒤 따르는 직위,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봉사자로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사도 6, 4; 루가 1, 2). 따라서 봉사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 기쁜 소식이 가르치는 대로 주님과 모든 이를 기꺼이 섬겨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작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성서를 통해 주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루가 19, 17) 큰일을 맡기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은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여야 한다.
둘째, 보답을 생각 않는 성실함이어야 한다. 보답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직업이지 선행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성실함은 보답을 생각 않는 것이다. 은총이나 은혜를 기대하고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고용인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셨고, 우리는 그분의 벗으로서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셋째, 항구해야 한다. 만일 단 한번만 혹은 단 하루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단 한번에, 단 하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끝까지 항구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2) 부르심에 대한 응답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즉, 소명에 대한 응답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직무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사랑으로 빚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알맞은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을 통해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맞게 끌어 나가기를 바라신다. 즉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봉사직에로, 예수님을 통해서 세우신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봉사직에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자발성에 기인하거나 임명된 의무 수행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조력자로 이웃사랑을 통한 하느님 흠숭의 완성자로 불리움 받고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① 성서에 나타나는 부르심의 예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어라.”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출애 3, 10-12 :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이없다”] (예레 1,4-8 :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느님).
②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모습
우리들의 대부분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세나 예레미야의 경우와 같이 주저하고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업으로, 가사로, 취미나 문화활동으로 모두 바빠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담당할 일의 양이나 대인관계 등, 부담스럽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직책을 맡고 보니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봉사직으로 부르심에는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순명’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기적의 결실을 우리는 믿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우리의 한계와 약점을 하느님 앞에 다 드러내고 “자! 이래도 쓰시렵니까?”하고 절규할 때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응답해주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 41, 10).
3) 계획성 및 지속성
위에서 봉사는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봉사자들은 사전에 할 일을 찾아 계획하고 이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질서 있고 능률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충분한 사전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또는 본당의 지시사항에만 따른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보람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직은 특별한 사정(이사 등)이 생기지 않는 한 일정기간(2-3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봉사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대인관계 속에서 서로의 앎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활동 안에서 생기는 대인관계의 부조화 등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선임 봉사자들의 자문과 개인적인 기도와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3.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제1차 수원교구 시노두스 최종문헌에서 소공동체는 ‘작은 교회이요, 함께 하는 교회’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 함께하는 교회의 봉사자로서 봉사를 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먼저 환한 웃음과 미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쁨을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우리 본당 공동체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웃음과 함께라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공동체 봉사자가 가져야 할 자세
①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안의 목자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본당의 사목자인 신부님처럼, 작은 교회의 또 다른 목자가 되어야 한다. 사목이란 말은 목동이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교회에 속한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 바로 목자의 일이다. 따라서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최고의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작은 교회인 소공동체의 또 다른 목자로서 봉사자는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하고 특히 힘들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참된 봉사직을 수행할 능력과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복음말씀 안에서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늘 복음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복음 안에서 살며 이웃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서로 나누자. 반장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 3).
②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의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그 구역, 반의 성모님이자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가 어머니의 심정으로 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면 그 반은 반드시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공동체로 성장한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성모님은 죽음을 건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고 강한 여인으로서 정의가 도래하는 세상을 꿈꾼 여인이었다. 또한 예수님과 늘 일치하는 삶을 사셨다. 이는 성서에 잘 드러나고 있는데,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당시 늘 예수님 주변에 계셨으며(가나의 혼인잔치, 아들을 만나러 오신 성모님) 돌아가실 때에는 십자가의 길에 함께 계셨고, 성령이 내려오실 때에는 교회와 함께 계셨다. 이러한 성모님처럼, 어머니처럼 반원들의 희노애락을 같이 해주는 봉사자가 있는 한 그 소공동체는 활성화되고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1데살 2, 7).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1데살 2, 8).
③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 안의 샘물이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장점, 은총,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도록 돕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성령께서 머무시는 궁전임을 잊지 않고, 반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또한 각자의 모습을 통해서 무한히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봉사자는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반원들에게 신앙에 도움이 되는 교리 상식이나 주일의 가르침을 함께 읽음으로써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반원들에게 성서공부, 신자재교육에 관한 정보를 늘 제공하고 되도록 함께 성서를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반에 예비신자가 있다면 함께 교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보살피며 견진 대상자들을 본당 견진반에 등록시키고 첫영성체 할 어린이들을 파악하여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사정에 따라 피정을 할 수도 있고 또한 소공동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교육적 열의는 누구나 소공동체의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차기 봉사자를 양성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전 2, 7).
④ 소공동체 봉사자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지 않고 내면을 보고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표정을 보고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또한 짜증을 내거나 화내지 말아야 한다. 구성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또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고통을 겪는 구성원의 이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볼 수도 있다. 사정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하고 그 구성원의 고통이 하루빨리 아물수 있도록 조용히 기도하는 봉사자이어야 한다.
또한 소공동체 봉사자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토록 겸손하셨듯이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행하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말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 하고 이르셨다”(1사무 16, 7).
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자.
완벽 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사람을 어떤 틀에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황에 따라 대화 주제나 내용이나 형식을 달리해야 한다. 죽을 먹을 사람에게 밥을 주면 배탈이 난다. 형식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에 유동적으로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이끄시도록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간직한다.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믿고 신뢰하되 그들은 소중한 인격체임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서로 실망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신뢰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신뢰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도록 한다.
소공동체 봉사자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봉사자 자신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다. 사제나 수도자에게 상담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상처를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의 상처를 통해 반원들을 깊이 만나고 이해할 수도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회개하고 잘못을 빨리 깨닫고 고쳐 나가도록 노력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늘 귀를 기울인다.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오소서 성령이여!” 라는 화살기도를 늘 하도록 하자. 고통과 십자가, 상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과정임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간다는 생각을 갖자. 상처를 받더라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지는 자세를 가지면 그 상처나 고통은 주님 안에서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간수는 한밤 중이었는데도 그 두 사람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 33).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에제 34, 16).
⑥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봉사자는 늘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 섬기고, 봉사하고,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어 놓고 배우려고 하자. 가르치는 자세보다는 배우는 자세를 갖고 배우는 중에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잘 알고 똑똑한 봉사자가 되기보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가 되도록 애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의 불길을 막아 버리고 구성원들의 기를 꺾어 버리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는 성령의 이끄심에 귀를 기울이고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여 그들의 말과 생각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진실 되고 따뜻하고 끈기 있게 주님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늘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구성원들의 변화나 삶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발견된 것을 소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나눔으로써 소공동체의 성장을 돕는다.
“그들이 가르치고 일러 준 말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한 말들을 되새겨 보게”(욥 8, 10).
⑦ 기도하는 자세
소공동체 구성원들 한 사람씩 기억하며 기도한다. 기도로 시작한 일은 반드시 열매가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의 집안에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가족은 자연스럽게 기쁜 마음으로 따라온다. 구성원들의 상담을 들어주고 그것을 기도로 봉헌한다. 냉담자의 말을 듣고 적절한 대답을 못하더라도 귀담아 듣고 기도하여 주면 성령께서 위로와 힘을 주신다. 신부님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신부님께 연락해서 연결해 준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함께 해주시고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으며 늘 기도하자.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마태 19, 26).
⑧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공동체에 파견된 사도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사도이다. 교회의 제일 중요한 사명은 복음 선포에 있다. 즉 세상 끝까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야 한다. 이는 봉사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구성원들과 함께 예비자를 교회에 인도하고 그들이 교리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하며 영세 후까지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선교 세미나 등에 참여하여 선교 방법을 공부하고 방문선교나 가두 선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늘 주님이 함께 계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자. 하늘에 반장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자.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하느님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 1, 4-10).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가10, 20).
⑨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자.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도록 한다. 노인들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는다. 그들의 어려움과 기쁨을 들어주고 함께 한다.매 순간 만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화한다. 지금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하늘나라가 바로 여기 있음을 체험한다. 다른 이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 사람에게서 칭찬이나 보상을 받기보다 주님께 희망을 두도록 하자.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마태 25, 31-46).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 3, 20).
⑩ 말씀에 맛들이자.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늘 성서를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여 하느님 말씀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책이며 하느님 나라로 가는 사랑의 지도이다. 구역장, 반장은 늘 성서 안에서 삶의 해답을 찾고 영원한 희망을 꿈꾸어야 한다. 또한 되도록 성서공부에 참여하여 성서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어느 단체나 모임보다도 소공동체 모임은 철저히 말씀 중심,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성서에 맛 들여야 나눔이 풍부해 질 수 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로마 1, 17).
2) 자발성과 적극성
봉사를 하는데 있어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自發性)이다. 어느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봉사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없다.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흔히 우리가 겪게 되는 난관이나 어려움에 대해 의연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소공동체 봉사자로서 봉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봉사에는 그에 따르는 기쁨과 보람도 몇 배로 증폭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억지로 하는 봉사가 아닌 내 자유의지로 하는 봉사가 될 때 진정한 봉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손수 선택하신 우리를 기쁘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을 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소공동체 봉사자로 뽑아 세우시고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사명을 완수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순명과 겸손, 열성뿐이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부족하지만, 기쁘게 하겠습니다”라고 겸손히 대답할 때 주님은 힘을 주시고 축복해주시며, 봉사자가 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축복과도 같은 보람을 느끼게 해주신다. 봉사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격은 학력이나, 재산, 자격증, 외모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자 하여 적극적으로 행하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소공동체 봉사를 하다보면 그만두고 싶고, 힘든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힘드니까 그냥 관두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지만 그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신앙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방법, 즉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중에 항상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힘들고 봉사를 하기 싫을 때, 봉사하는 일에 의욕이 떨어질 때 가장 먼저 예수님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구하라, 받을 것이다”(마태 7, 7) 라는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1. 복음 나누기란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 모임의 핵심이며, 성서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즉, 우리 삶의 문제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복음의 실천을 계획하는 것이다.
성서에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 18, 20),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 14)라는 말씀이 있다. 이런 말씀들은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말씀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그리고 말씀의 실천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서는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알아듣게 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거룩한 책(하느님의 말씀)이다. 디모테오 후서 3장 15-16절에서는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입니다.”
성서의 많은 말씀 중에서 특히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 활동,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어가며 죽은 예언자, 즉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당신에 관한 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때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식탁에서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길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 13-35)하고 나누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성서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여 뜨거운 감동을 느꼈으며 성체를 나눔으로써 말씀이 완성되는 것을 체험했다.
이처럼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쉽게 유도하는 방법이 바로 복음 나누기이다. 또한 복음 나누기는 성서 공부와는 다르다. 성서 공부는 말 그대로 성서 내용의 객관적인 사실을 연구하고 언어, 연대, 의미를 공부하는 학문적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 나누기는 ‘그분을 만나는 것’, 즉 말씀의 조각(단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고 그 말씀을 듣고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과 일치시킨다.
-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 모임의 핵심이다.
- 복음 나누기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쉽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 복음 나누기는 성서 내용의 객관적인 사실을 연구하고 언어, 연대, 의미를 공부하는 학문적인 공부가 아니라 나와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 복음 나누기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 안에서 실천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2. 복음 나누기 종류
복음 나누기의 종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복음 나누기 7단계’와, 개인을 넘어서서 이웃과 지역, 사회로 복음의 정신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응답’, 그리고 사회, 정치, 경제의 정의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아모스 방법’, 누구나 쉽게 복음의 말씀을 알아듣고 문맹자라도 이미지를 통하여 말씀에 접근하도록 하는 ‘복음그림 나누기’ 방법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의 방법들이 있으며, 지금도 계속 다양한 복음 나누기의 방법이 연구되어지고 있다. 수원 교구에서는 현재 복음 나누기 7단계 외에 공동응답과 그림으로 복음 나누기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복음 나누기의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각각의 소공동체에 알맞은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 방법들은 겸손하게 하느님과 살아가는 일(복음 나누기 7단계)과 다정하게 이웃을 사랑하는 일(공동응답), 정의를 실천하는 일(아모스 방법)등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복음 나누기 7단계로서 이 방법이 숙달 된다면 어떤 내용의 복음 나누기 방법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복음 나누기는 훌륭한 성서 지도자나 능력 있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복음 나누기 7단계 및 여러 방법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나누며, 체험한 사랑을 행동으로 드러내도록 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도나 나눔이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잘 듣고 그대로 나누면 된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집중력, 그리고 신뢰이다.
- 복음 나누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7단계, 공동응답, 아모스나누기, 복음 그림 나누기 등등)
- 복음 나누기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 복음 나누기에 필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집중력, 그리고 신뢰이다.
3. 복음 나누기 7 단계
1) 복음 나누기 7단계의 목표
복음 나누기 7단계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①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②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과 만나도록 돕는다.
③ 나눔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심화시켜 주도록 격려한다.
④ 소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개인적인 유대를 깊게 한다.
⑤ 모임 안에 신뢰감을 키운다.
⑥ 공동체 활동을 계획하도록 영성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2) 복음 나누기 7단계 시작 전
① 성호경
소공동체 모임의 시작을 여는 기도로 성호경을 긋는다. 성호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내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가장 짧은 기도라 할 수 있다. 이는 소공동체 모임 자체가 성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임임을 나타내며, 소공동체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② 시작성가
마음을 다해 부르는 성가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며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소공동체 모임에서 부르는 성가는 전례시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급적 전례시기에 맞는 성가를 선택하여 부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여러 곡을 선정하여 너무 오랫동안 부르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싫증을 느낄 수 있으므로 소공동체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적당하게 부르는 것이 좋다.
③ 출석확인 및 인사 나눔
출석 확인은 소공동체원 각자의 이름과 세례명을 부른다. 호명에 대한 응답 후 모두는 “환영합니다”또는 “반갑습니다”라고 답례해 주는 것이 좋다. 또한 인사 나눔은 새로 참석한 구성원, 예비신자, 오랫동안 쉬었던 신자, 다른 지역의 신자가 참석했을 때에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더불어 인사를 나누게 한다.
☞ 성호경부터 인사 나눔까지는 10분이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 성호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내 자신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긴 가장 짧은 기도행위이다.
- 시작성가는 너무 길게 또는 너무 짧게 하지 않고 적당히 부르는 것이 좋다.
- 출석확인은 성명 본명을 함께 부르고, 다함께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로 답례한다.
- 위 세 가지가 10분을 넘지 않도록 유의한다.
3) 복음 나누기 7단계 단계별 내용
① 1 단계 : 초대 기도를 바친 후 함께 소공동체 기도를 바친다.
“한 두 분이 기도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다 함께 소공동체 기도를 바칩시다.”
초대기도는 자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초대기도는 예수님 생전에 사람들이 집으로 주님을 초대했듯이 우리도 따뜻하게 주님을 우리 집으로, 우리 마음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초대기도는 짧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이웃을 초대할 때 누구나 “꼭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라든지 또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어서 오세요”, “찾아오시느라 힘드셨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한다. 이 말들은 심오하게 생각하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한 뒤에 하는 말이 아니다. 주님을 초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치 이웃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 “어서 오십시요”라고 인사하듯이 짧은 말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주님께 초대기도를 바친다. 초대기도는 살아있는 삶의 언어로 바친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는데 중점을 둔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초대에 응하셔서 우리와 함께 자리하심을 체험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주님을 초대할 때는 되도록 소공동체 모임 초기 단계에서는 각 구성원들이 서로 돌아가며 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난 뒤에 어느 정도 스스럼없이 모두가 초대기도를 할 수 있다면 한 두 사람이 예수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한다.
개별적인 초대의 기도 후에는 별도로 ‘아멘’이라고 마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아멘’이라는 마침기도를 바치게 될 경우에 간혹 복음 나누기의 흐름자체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바로 이어지는 소공동체 기도문의 내용 속에도 초대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이 기도로써 마침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공동체 모임 구성원들의 협의를 통해서 한 사람이 종합적으로 ‘아멘’이라고 마침할 수도 있다.
☞ 초대의 기도를 바친 후에는 소공동체지나 모임 리플랫을 이용하여 ‘소공동체 기도문’을 바친다.
- 초대기도는 되도록 짧게 한다. 예수님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초대의 기도는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현존을 느끼는데 중점을 둔다.
- 초대의 기도가 너무 형식적이지 않도록 한다.
- 매번 기도하는 사람만 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② 2 단계 : 성서 본문을 2번 읽는다.
“ ...복음 ...장을 펴주십시오.”
“어느 분이 ...장 ...절에서 ...절까지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십시오.”
진행자는 그 모임에 해당하는 성서 본문을 발표한다. 이때 진행자는 “○○복음을 찾아 주십시요”라고 한 뒤 참석자들이 모두 찾았는지를 돌아 본 후 다 찾았으면 “어느 분이 ○○장 ○○절부터 ○○절까지 읽어 주십시요”라고 요청한다.
한 번에 복음과 장, 절을 다 알려주지 않는 것은 한꺼번에 알려주게 되면 혹시라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빨리 찾지 못했을 때 “몇 장인가요?”, “몇 절인지 듣지 못 했어요”라는 질문으로 1단계에서 이루어진 기도 분위기가 깨어지면서 어수선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복음을 봉독할 때는 진행자 스스로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진행자의 역할은 단지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행자는 초대의 기도, 복음 봉독과 같이 다른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서를 봉독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자신의 입을 빌려 말씀을 하고 계심을 깨닫고 또렷한 음성과 정확한 발음으로 뜻과 의미가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봉독한다. 또한 듣는 사람은 지금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심을 믿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쳐” 복음 말씀을 들어야 한다.
복음을 봉독하고 난 후에는 미사나 말씀의 전례에서처럼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복음 나누기는 공식적인 전례행위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며, 또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복음 나누기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과정에 맥이 끊겨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구성원들이 조용히 기도하는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다.
- 복음을 알려줄 때는 모든 사람이 잘 찾을 수 있도록 장과 절을 구분하여 천천히 진행한다.
- 진행자가 복음을 봉독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 성서를 봉독하는 사람들은 내 스스로가 복음을 봉독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내 입을 통해서 선포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기도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 복음을 봉독하고 난 후에 ‘주님의 말씀입니다’라는 선포 말씀을 생략하는 것이 좋다.
③ 3 단계 : 성서 본문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묵상한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세 번씩 읽어주십시오.”
“어느 분이 성서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주십시오.”
성서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짧은 구절 중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각자 돌아가면서 천천히, 세 번 크게 외친다. 이때는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한 번씩 외칠 때마다 잠시 침묵을 지킨다. 똑같은 구절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은 성서 본문 안의 상황에 잠기도록 하는 것이고 매 구절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든 참석자들이 그 말씀을 마음속으로 반복할 기회를 주어 마음 안에 말씀이 메아리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께서 각자에게 전달하시는 말씀을 말한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짧은 구절이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박힐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훈계하시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게하시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시어 우리가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나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다.
만일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없다면 본문에 나오는 어떤 단어라도 읽으면 된다. 왜냐하면 모임 안에서 다른 이가 외치는 구절로 인해, 또는 내가 외치는 말씀으로 인해 어떤 감동이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를 말씀 안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외치는 말씀은 모두 보석과 같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말씀을 외침으로써 모두에게 자기가 캐낸 보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보석과도 말씀을 외치다 보면 마음 안에서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참석자가 돌아가며 자신에게 와 닿는 말씀을 외친 후에는 다시 한 번 성서의 본문을 읽는다.
- 세 번씩 외칠 때 중간에는 반드시 침묵을 지킨다. ‘“예수님”(침묵)... “예수님”(침묵)... “예수님”(침묵)... ’
- 기도하면서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찾지 않도록 유의한다.
-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없으면 성서본문의 어떤 단어라도 택해서 외치고 묵상한다.
④ 4 단계 :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하며 주님께서 각자 마음 안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읍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진행자는 이때 몇 분 침묵할 것인지 분명하게 말해주어 분심이 들지 않도록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외적 침묵뿐만이 아니라 내적 침묵도 따라야 하고 집중력도 있어야 한다.
침묵하는 동안 주님의 현존 앞에 조용히 앉아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분이 개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기다린다. 물론 이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을 수 있고 또 내면의 시끄러움 때문에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동안 침묵 안에서 그분을 만나도록 노력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한다.
묵상할 때에는 내가 외친 구절에 대해 어떻게 나눌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묵상이 어렵다면 눈을 감고 바로 내 앞에 주님께서 앉아계신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앞에 앉아계신 주님께 내가 외친 구절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주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는지 상상해 본다. 이때에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떠올리며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한다. 이러한 묵상들은 지속적으로 복음 나누기를 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될 수 있다.
- 묵상하는 사람들이 분심이 들지 않도록 침묵시간을 분명히 알려준다.
- 주님과 함께 앉아서 마음으로 대화하는 시간임을 명심한다.
- 들리지 않으면 들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안된다고 딴 생각으로 보내지
않는다.
⑤ 5 단계 : 각자의 마음속에 들려주신 말씀을 나눈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각자의 마음속에 들려주신 말씀을 나눕시다.”
* 나누기가 끝난 후 해당되는 ‘주일의 가르치심’을 읽는다.
여기서 하는 나눔은 4단계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나 자신이 그 시간에 느낀 점, 체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다.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발표하지 않도록 한다. 이때 나눔은 고백성사와는 다르다. 또한 나눔 중에 본인이 거북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누지 않아도 된다.
나눔에 있어서 주의할 사항은,
ⓐ 나눔을 하면서 성서 본문에 대한 설명이나 설교 및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참석자가 설교나 성서를 가르치려고 든다면 반대하지 말고 받아들인다. 만약에 모임에서 직접적으로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표현을 한다면 설교 및 설명을 하는 장본인이 무안해하고, 소공동체 모임에 나오는 것을 꺼려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받아들이되, 소공동체 모임 전후에 반장이나 구역장은 그 사람에게 조용히 귀뜸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구성원들에게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시행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하므로 별도로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이러한 일은 줄어들 것이다.
ⓑ 나누기를 시작할 때는 언제나 “저는”이라고 시작한다. “우리는”이라고 시작한다면 설교나 훈계, 토론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 아니라 “우리는”으로 시작하다 보면 남에 대한 비난과 책임전가 혹은 비평이 될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영적인 분위기와 친교를 깨뜨리는 일로써 삼가 하여야 할 나눔 태도이다. 개인적인 나눔은 구성원 간에 신뢰감과 친밀함을 조성하게 된다. 서로 말씀을 나누다보면 각자가 겪는 생활과 신앙의 갈등의 어려움 등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각자가 가지는 어려움들이 남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임을 알게 되어 서로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 나누기 중간에 절대 끼어들거나 또는 토를 달거나 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발표가 끝날 때에는 “이상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등 적당한 언어로 끝내고 들은 참석자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등으로 화답할 수 있다. 쉽게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강제로 나누게 하기 보다는 나눔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하여 주고 다음 기회에 준비토록 한다.
ⓓ 만일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 구절 때문에 난관에 부딪힌다면, 그 자리에서 성서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모임 후에 알려준다거나 다음 모임 때에 그 뜻을 알려 주면 된다.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이 모임은 성서 공부나 성서 가르침이 아니라 복음 나누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소공동체 모임에서 서로 간에 나누었던 내용을 소공동체 모임 밖에서는 발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모임에서의 나누는 내용들이 주로 개인적인 문제나 갈등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모임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가족간 그리고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복음을 나누었던 내용들은 다른 곳에서 얘기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5 단계에서의 하느님 말씀을 서로 나누는데 있어 한 사람이 꼭 한 가지씩만 나눔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모두가 발표하고 난 후 추가하여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 제약이 따름으로 너무 많은 나누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한 묵상 중(4단계)에 내가 택한 성서 구절(3단계)보다 다른 사람이 외친 성서 구절이 더 마음에 와 닿게 되었다면 내가 택한 성서구절 대신에 다른 사람이 외친 성서구절로 묵상하여 나눔을 해도 된다. 그리고 특별히 나눌 것이 없지만 성서 본문 전체 내용에서 묵상되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누어도 된다.
☞ 5 단계에서 서로가 하느님 말씀을 나눈 후 소공동체지에 나오는 ‘주일의 가르치심’을 읽는다.
- 나눔을 할 때 몇 사람만 집중적으로 나누지 않도록 유의한다.
- 강제로 나눔을 하게 하지 말고, 어렵다면 다음 기회에 준비토록 한다.
- 짧게라도 어떤 느낌으로 대화했는지를 언급한다.
- 나누기를 할 때 “저는” 또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다른 사람의 나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아야 하며, 성서를 잘 안다고 해서 해설하지 않는다.
- 나눔의 내용은 소공동체 모임 밖에서, 혹은 다른 이들에게 밝히지 않는다.
⑥ 6 단계 :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눈다.
“지난주에 공동체(각자)가 정했던 실천 사항을 보고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공동체(각자)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정합시다.”
* ‘5분 신앙상식’을 공부하고, 공지사항, 건의사항, 차기장소 결정을 한다.
6단계에서는 소공동체가가 일상적인 삶에서 당면한 과제와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적 삶을 살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논의한다. 활동의 주제는 공동체의 삶에 관한 것이나 개인의 생활에 관한 것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공동체 활동은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본당 내 외적인 활동들과 기도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개인의 생활에 관련된 실천은 개인적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 및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들을 의미한다.
이런 활동을 정할 때는 첫 번째로는 지난주에 공동체가 혹은 개인이 결정한 활동이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각자 한사람씩 나눈다. 만일 활동하지 못했다면 지난주에 결정했던 활동사항들을 계속적으로 더 실행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활동을 정하여 실천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두 번째로 이번 주에 할 일을 공동으로 정하고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소공동체에서 정한 활동시간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함께 모여서 활동하는 그 시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활동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도록 한다.
※ 소공동체 모임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예
◉ 개인 차원
ⓐ 성체조배
ⓑ 매일 묵주의 기도 바치기
ⓒ 구역 신자 이름(본명) 외우기
ⓓ 미사 시작 20분 전에 와서 묵상하기
ⓔ 특정한 이웃을 위해 매일 주모송 바치기 등
◉ 공동체 차원
ⓐ 선교활동
㉠ 이웃에게 신앙 권면
㉡ 예비신자 돌보기 (교리시간 동행, 대부모 서기, 교리 시간 중 예비신자 자녀 돌봄, 세례식 때 구성원이 참석하여 축하하기)
㉢ 유아세례 권면 및 대부모 서주기
㉣ 예비신자 가정 방문
㉤ 냉담자 파악 및 방문
㉥ 전입 신자 방문
㉦ 가두선교 참여하기
ⓑ 전례활동
㉠ 주일 전례 때에 독서 및 신자들의 기도, 성가 봉사
㉡ 전례시기에 따라 신앙에 도움을 주는 장식물 만들기(대림초, 성탄트리, 부활계란, 가시나무 십자가...)
㉢ 반 별 십자가의 길, 피정, 성지순례
㉣ 성가 배우기
㉤ 공동으로 성서 읽기
㉥ 원하는 가정에 돌아가면서 기도해 주기
㉦ 봉성체가 있을 경우 함께 참여하기
ⓒ 봉사활동
㉠ 구역 내 환자 방문 및 도움이 필요할 경우 도와주기
㉡ 병원에 입원한 신자 및 예비신자 방문
㉢ 구역 내 독거 노인 및 새싹가정을 방문하여 노력 봉사하기
㉣ 연도 및 상가(喪家) 돕기
㉤ 혼인 및 회갑 및 기타 노력 봉사가 필요한 가정에 가서 봉사하기
㉥ 장애인 가정 돕기 및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 봉사자로 참여하기
㉦ 본당 청소에 참여하기
㉧ 재소자 방문하기
㉨ 외국인 노동자에게 관심 갖기
㉩ 복지 시설, 단체를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봉사자 활동하기
ⓓ 친교활동
㉠ 반 모임 시 친교를 위한 놀이(윷놀이, 간단한 다과회....)
㉡ 선교 가능한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차 마시기
㉢ 신앙과 관련되는 음악회, 미술전시회, 박물관, 기타 기관 함께 방문하기
㉣ 본당의 친교 행사에 참여하기(성가경연대회, 성극 대회, 부활그림 그리기 대회, 본당 체육대회....)
ⓔ 교육활동
㉠ 주일학교 교육 협조하기
㉡ 성서공부하기
㉢ 신자 재교육에 적극 참여하기
㉣ 예비신자 교리공부 도와주기
ⓕ 대사회적 활동
㉠ 동네 골목 청소하기
㉡ 환경보호에 앞장서기(물 아껴쓰기, 일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쓰레기 분리 철저하게 하기, 재활용품 사용하기)
㉢ 사회 도덕성 회복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기(공공장소 깨끗이 사용하기, 공공 물건 아껴 쓰기)
㉣ 올바른 문화 정착하기 (사치품 안 쓰기, 과도한 혼수품 안 하기, 폭력, 선정 영상물 모니터링 하여 항의하기, 지역 내 교육환경에 대하여 관심 갖기)
㉤ 생명을 살리는 모든 운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서명운동에 참여하기
㉥ 농촌지역 신자들과 연결하여 무공해 농산물 구매하기
이 외에도 소공동체의 특성상, 본당 특성상 꼭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정하여 실천한다. 소공동체 활동은 교회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이 온전히 실천되어야 하는 장이다. 소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해야 할 뿐 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증거 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이 실천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활동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나 마찬가지다. 소공동체 활동은 소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신뢰심을 더해 주고, 구성원들이 서로 일치하여 활동을 실천해 감으로써 공동체가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같이 땀을 흘리며 서로가 이웃과 지역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활동을 할 때 서로는 참되게 일치할 수 있고 공동체는 활성화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기도도, 복음 나누기도 살아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공동체가 너무 활동 중심의 모임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의 세 가지 직무(예언직, 사제직, 왕직)처럼 말씀선포와 기도, 그리고 사랑의 봉사 활동이 균형있게 어우러져야 진정한 공동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동사항을 정한 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신자 재교육 차원에서 소공동체지의 ‘5분 신앙상식’을 공부한다. 이는 공동체가 교리적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또한 신앙상식을 공부한 후 본당 또는 구역의 공지사항을 알리고 차기 모임 장소와 차기 진행자를 선정한다. 차기 진행자를 선정하는 이유는 복음 나누기 진행자를 모임 때 마다 돌아가며 함으로써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복음 나누기를 진행하여 나머지 구성원들이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돌아가면서 복음 나누기 진행하다보면 새로운 지도력(봉사자)을 공동체 안에서 발견할 수 있고 구성원 모두가 복음 나누기를 진행해 봄으로써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게 하며, 자발적인 공동체가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소공동체 모임은 단순한 기도 모임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 활동은 공동체의 성화와 일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는 것이다.
- 반드시 공동체가 실천 가능한 활동을 정하고 실천한다.
- 구체적인 활동을 정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안배한다.
- 활동사항을 실천하지 못했을 때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차기에 실천할 수 있도록 검토한다.
- 사정상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활동시간에 맞추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 활동사항에 대해 서로 나눌때 각자의 느낌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⑦ 7 단계 : 자유롭게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진행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도는 모임 중에 체험한 것이나 감사할 사항, 또는 일상생활에 있었던 어려움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것, 이웃의 문제, 하느님께 대한 감사, 찬미 등 어느 주제로든지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성서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응용하여 자신의 기도로 사용할 수 있다.
자유로이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의 삶을 봉헌하게 한다. 또한 자발적인 기도는 자유기도를 하기 어려워하는 신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기도 생활에 성장을 가져오게 한다.
7단계의 마침기도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기도하면 진행자가 정리하여 마무리 한다. 진행자가 마무리를 하게 되면 같이 모인 공동체의 구성원은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기도하도록 안배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포함하면 더욱 좋다.
- 자발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연습한다.
4) 복음 나누기 7단계 후
① 소공동체가를 함께 부른다. 소공동체가는 힘 있게, 그리고 활기찬 템포로 부르는 것이 좋다.
②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서 세 개의 기도문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함께 기도를 바친다. 혹 특별한 지향을 위해 모임 끝에 기도를 할 수는 있으나 너무 길게 하지 않도록 한다.
③ 성호경으로 모임을 끝마친다.
- 모임시간이 길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였는지 확인한다 .
4. 소공동체 모임 후
소공동체 모임은 되도록 한 시간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다. 만일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숫자가 많다 하여도 한 시간 반은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의 시간이 넘어가면 기도 분위기가 산만해져서 알차고 정겨운 소공동체 모임을 가지기 어렵다. 또한 시간을 많이 가지면 오히려 이야기의 초점이 다른 데로 흐를 수 있으므로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는 것이 좋다.
소공동체 모임 후에는 간단하게 차 한 잔 정도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은 괜찮다. 복음 나누기 시간에 나누지 못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만 이때도 남의 흉이나 참석하지 못한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소공동체 모임 후에 꼭 지켜야 할 일은 부담이 가는 식사 준비나 특별한 상차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소공동체 모임에 본당의 신부님, 수녀님이 참석하였다고 하여 특별한 다과를 준비하고 식사를 차린다면 다음 모임 시에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오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 있으므로 이때도 특별한 상차림이나 식사 준비는 하지 않도록 한다.
- 소공동체 모임 후에 별도의 음식을 차리지 않도록 한다. 꼭 하고 싶으면, 차 한 잔 정도가 적당하다.
- 모임 후 일치시간이 있다면 너무 길게 하지 않는다(개인 가정에 피해가 갈 수 있다).
- 너무 길게 또는 너무 짧게 모임이 진행되었는지 점검한다.
5. 복음 나누기 7단계 평가
일년에 두세 번 정도 복음 나누기를 잘하고 있는지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평가를 하도록 한다.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는 더욱 활기차고 성숙된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단 계 | 평 가 |
1단계 주님 초대 |
짧게 기도하였는가? 한 사람이 계속 기도하지 않았는가? 형식적인 기도가 되지 않았는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체험을 하게 했는가? |
2단계 성서 읽음 |
모두가 해당되는 성서 내용을 다 찾고 나서 시작 했는가?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외쳤는가? 독서자는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고 있는가? 듣는 사람은 정성스럽게 집중하여 듣고 있는가? |
3단계 마음에 와 닿은 구절 |
모든 사람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참석자가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외쳤는가? 개인 구절을 외칠 때 적당한 침묵은 지켰는가? 다른 사람이 외칠 때 잘 들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구절을 생각하느라 초조해하지는 않았는가? |
4단계 침묵, 말씀 들음 |
침묵시간은 적당 했는가? 실제로 침묵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외적 침묵뿐만이 아니라 내적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했는가? |
5단계 나눔 |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나눔에 훈계를 한다거나 비판을 하지는 않았는가? 모두가 나누었는가? 나누는 시간은 적당했는가? |
6단계 활동 정함 |
활동은 정했는가? 활동에 모두가 참여하였는가? 소공동체 상황과 활동능력에 맞는 활동을 정했는가? 활동 결정에 모두가 참여했는가? 주님과 함께 활동하였는가? 활동의 과정은 정당했는가? 활동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
7단계 자유기도 |
스스럼없이 기도 하는가? 혼자서 기도를 독차지 하지는 않는가? 너무 자주 염경기도로 대체하지는 않는가? |
소공동체 모임 후 |
음식을 차리는 문제로 부담을 주지는 않았는가? 모임이 끝난 후 너무 잦은 식사시간을 갖지는 않았는가? 복음 나누기 시간보다 더 길게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는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