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수원교구에서는 3년여에 걸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고 그 결과물인 ‘소공동체 활성화’라는 거대한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소공동체의 올바른 정착 및 발전은 교회 구성원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능동적인 참여와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 소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소공동체 봉사자들의 열의와 의지 없이는 소공동체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공동체 활성화’ 사목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봉사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수행하여 왔다. 이는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소공동체 운영을 돕기 때문이며,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소공동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소공동체와 가장 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소공동체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운영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자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에 앞서 사전적 의미의 ‘봉사’ 개념과 비교하여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개념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참된 봉사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짚어 볼 수 있겠다.

1. ‘봉사’란 무엇인가

1) 사전적 의미의 봉사

봉사란 자발적인 의도에서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거나 사회에 참여하는 무보수의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말한다. 봉사는 자원봉사(自願奉仕)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원해서 받들고 섬긴다’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봉사활동은 자발성, 공익성, 무상성, 계획성 및 지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활동이라 하겠다.

① 자발성

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동기에서 스스로 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옳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강제로 하는 일이라든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따른 당연한 임무 수행은 봉사활동이라 할 수 없다.

② 공익성

봉사활동은 타인이나 사회를 위한 활동이다. 즉, 남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국가의 발전을 위한 활동, 더 나아가 전 인류의 번영을 위한 활동이다. 그것은 자기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서부터 국제 난민을 돕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무한대의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익성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③ 무상성

봉사활동은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남을 돕는 활동이다. 오직 진실로 남을 돕는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보람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비나 식사 등과 같이 봉사활동에 꼭 필요한 경비나 물질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것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④ 계획성 및 지속성

봉사 활동은 사전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이 점에서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선행과는 구분된다. 선행이란 선한 동기에서 남을 도와주는 행동, 곧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선행 그 자체를 보람 있는 것으로 여겨 남을 도와주는 착한 행동이다. 이렇게 볼 때 봉사활동도 선행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나 봉사활동은 선행 가운데에서도 특히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되는 활동인 것이다.

바람직한 봉사 활동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하여 봉사 대상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봉사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에 능숙해 져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내면화 될 때 더 좋은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고, 봉사하는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나아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 수준의 활동보다는 단체나 조직을 통한 활동이 효과적이다.

2)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흔히 세속의 지식인들은 ‘봉사’라는 개념을 아주 거창하게 말하곤 한다. 때론 그들에게 있어서 봉사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상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비단 세속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봉사자라는 허울 아래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봉사’라는 말은 자신을 좋은 사람 또는 희생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남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봉사’라는 뜻을 ‘서비스’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럼 서비스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서 서비스(Service)란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생산‧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 의미와 더불어 기업에서 사용되는 뜻으로는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자와 고객간 상호관계에 의한 활동들’을 의미한다. 또한 서비스는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라는 말은 라틴어의 '세르부스'(Servus)에서 그 어원을 갖는데 세르부스는 '종, 노예'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낮고 미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황님의 모토(moto)인 ‘세르부스 세르비오룸 데이’(Servus Serviorum Dei, 주님의 종들의 종)를 보면 서비스라는 말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종들의 종’이란 말에서 주님의 종들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 즉 우리를 의미하며, 종들의 종은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시겠다는 교황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봉사’라는 개념을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봉사자가 되고자 했을까? 가장 낮은 사람, 즉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타인에 의해서 또는 본당 신부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봉사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종,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종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결국에는 그분의 종, 세상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 봉사자들의 몫이라 하겠다.

우리 대다수는 스스로 봉사자가 되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 하신 것’(필립 2, 7-8)처럼 ‘봉사자’라는 사명이 비록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주어진 몫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모범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봉사자’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해 보자. 봉사라는 원의를 상기에서는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봉사자들은 이런 수동적인 종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봉사자(종)는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며 움직이는 ‘자원봉사자’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원봉사자(Volunteer)란 라틴어 Voluntas(볼룬따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원봉사의 근원은 자유의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 또는 자선(Caritas)에도 있다. 이 자선이라는 말은 희랍어로는 카리스, 즉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뜻을 지니며, 또 유대에서는 이 말이 ‘이타주의 정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자원봉사라는 말의 어원적 뜻은 ‘자유의지로서 실천하는 사랑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의 봉사 자세

1) 봉사의 기본자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남을 섬겨야 한다. 자비와 연민에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종’이라 스스로 칭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사실 안에서, 참된 종의 모습으로 남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벗으로서 그분과 함께 하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명예로움인 동시에 엄중한 의무와 책임이 뒤 따르는 직위,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봉사자로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사도 6, 4; 루가 1, 2). 따라서 봉사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 기쁜 소식이 가르치는 대로 주님과 모든 이를 기꺼이 섬겨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작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성서를 통해 주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루가 19, 17) 큰일을 맡기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은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여야 한다.

둘째, 보답을 생각 않는 성실함이어야 한다. 보답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직업이지 선행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성실함은 보답을 생각 않는 것이다. 은총이나 은혜를 기대하고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고용인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셨고, 우리는 그분의 벗으로서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셋째, 항구해야 한다. 만일 단 한번만 혹은 단 하루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단 한번에, 단 하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끝까지 항구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2) 부르심에 대한 응답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즉, 소명에 대한 응답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직무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사랑으로 빚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알맞은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을 통해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맞게 끌어 나가기를 바라신다. 즉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봉사직에로, 예수님을 통해서 세우신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봉사직에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자발성에 기인하거나 임명된 의무 수행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조력자로 이웃사랑을 통한 하느님 흠숭의 완성자로 불리움 받고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① 성서에 나타나는 부르심의 예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어라.”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출애 3, 10-12 :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이없다”] (예레 1,4-8 :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느님).

②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모습

우리들의 대부분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세나 예레미야의 경우와 같이 주저하고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업으로, 가사로, 취미나 문화활동으로 모두 바빠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담당할 일의 양이나 대인관계 등, 부담스럽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직책을 맡고 보니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봉사직으로 부르심에는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순명’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기적의 결실을 우리는 믿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우리의 한계와 약점을 하느님 앞에 다 드러내고 “자! 이래도 쓰시렵니까?”하고 절규할 때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응답해주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 41, 10).

3) 계획성 및 지속성

위에서 봉사는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봉사자들은 사전에 할 일을 찾아 계획하고 이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질서 있고 능률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충분한 사전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또는 본당의 지시사항에만 따른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보람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직은 특별한 사정(이사 등)이 생기지 않는 한 일정기간(2-3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봉사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대인관계 속에서 서로의 앎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활동 안에서 생기는 대인관계의 부조화 등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선임 봉사자들의 자문과 개인적인 기도와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3.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제1차 수원교구 시노두스 최종문헌에서 소공동체는 ‘작은 교회이요, 함께 하는 교회’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 함께하는 교회의 봉사자로서 봉사를 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먼저 환한 웃음과 미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쁨을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우리 본당 공동체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웃음과 함께라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공동체 봉사자가 가져야 할 자세

①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안의 목자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본당의 사목자인 신부님처럼, 작은 교회의 또 다른 목자가 되어야 한다. 사목이란 말은 목동이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교회에 속한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 바로 목자의 일이다. 따라서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최고의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작은 교회인 소공동체의 또 다른 목자로서 봉사자는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하고 특히 힘들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참된 봉사직을 수행할 능력과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복음말씀 안에서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늘 복음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복음 안에서 살며 이웃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서로 나누자. 반장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 3).

②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의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그 구역, 반의 성모님이자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가 어머니의 심정으로 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면 그 반은 반드시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공동체로 성장한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성모님은 죽음을 건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고 강한 여인으로서 정의가 도래하는 세상을 꿈꾼 여인이었다. 또한 예수님과 늘 일치하는 삶을 사셨다. 이는 성서에 잘 드러나고 있는데,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당시 늘 예수님 주변에 계셨으며(가나의 혼인잔치, 아들을 만나러 오신 성모님) 돌아가실 때에는 십자가의 길에 함께 계셨고, 성령이 내려오실 때에는 교회와 함께 계셨다. 이러한 성모님처럼, 어머니처럼 반원들의 희노애락을 같이 해주는 봉사자가 있는 한 그 소공동체는 활성화되고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1데살 2, 7).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1데살 2, 8).

③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 안의 샘물이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장점, 은총,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도록 돕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성령께서 머무시는 궁전임을 잊지 않고, 반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또한 각자의 모습을 통해서 무한히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봉사자는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반원들에게 신앙에 도움이 되는 교리 상식이나 주일의 가르침을 함께 읽음으로써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반원들에게 성서공부, 신자재교육에 관한 정보를 늘 제공하고 되도록 함께 성서를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반에 예비신자가 있다면 함께 교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보살피며 견진 대상자들을 본당 견진반에 등록시키고 첫영성체 할 어린이들을 파악하여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사정에 따라 피정을 할 수도 있고 또한 소공동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교육적 열의는 누구나 소공동체의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차기 봉사자를 양성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전 2, 7).

④ 소공동체 봉사자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지 않고 내면을 보고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표정을 보고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또한 짜증을 내거나 화내지 말아야 한다. 구성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또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고통을 겪는 구성원의 이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볼 수도 있다. 사정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하고 그 구성원의 고통이 하루빨리 아물수 있도록 조용히 기도하는 봉사자이어야 한다.

또한 소공동체 봉사자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토록 겸손하셨듯이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행하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말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 하고 이르셨다”(1사무 16, 7).

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자.

완벽 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사람을 어떤 틀에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황에 따라 대화 주제나 내용이나 형식을 달리해야 한다. 죽을 먹을 사람에게 밥을 주면 배탈이 난다. 형식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에 유동적으로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이끄시도록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간직한다.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믿고 신뢰하되 그들은 소중한 인격체임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서로 실망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신뢰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신뢰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도록 한다.

소공동체 봉사자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봉사자 자신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다. 사제나 수도자에게 상담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상처를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의 상처를 통해 반원들을 깊이 만나고 이해할 수도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회개하고 잘못을 빨리 깨닫고 고쳐 나가도록 노력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늘 귀를 기울인다.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오소서 성령이여!” 라는 화살기도를 늘 하도록 하자. 고통과 십자가, 상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과정임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간다는 생각을 갖자. 상처를 받더라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지는 자세를 가지면 그 상처나 고통은 주님 안에서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간수는 한밤 중이었는데도 그 두 사람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 33).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에제 34, 16).

⑥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봉사자는 늘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 섬기고, 봉사하고,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어 놓고 배우려고 하자. 가르치는 자세보다는 배우는 자세를 갖고 배우는 중에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잘 알고 똑똑한 봉사자가 되기보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가 되도록 애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의 불길을 막아 버리고 구성원들의 기를 꺾어 버리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는 성령의 이끄심에 귀를 기울이고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여 그들의 말과 생각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진실 되고 따뜻하고 끈기 있게 주님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늘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구성원들의 변화나 삶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발견된 것을 소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나눔으로써 소공동체의 성장을 돕는다.

“그들이 가르치고 일러 준 말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한 말들을 되새겨 보게”(욥 8, 10).

⑦ 기도하는 자세

소공동체 구성원들 한 사람씩 기억하며 기도한다. 기도로 시작한 일은 반드시 열매가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의 집안에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가족은 자연스럽게 기쁜 마음으로 따라온다. 구성원들의 상담을 들어주고 그것을 기도로 봉헌한다. 냉담자의 말을 듣고 적절한 대답을 못하더라도 귀담아 듣고 기도하여 주면 성령께서 위로와 힘을 주신다. 신부님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신부님께 연락해서 연결해 준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함께 해주시고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으며 늘 기도하자.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마태 19, 26).

⑧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공동체에 파견된 사도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사도이다. 교회의 제일 중요한 사명은 복음 선포에 있다. 즉 세상 끝까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야 한다. 이는 봉사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구성원들과 함께 예비자를 교회에 인도하고 그들이 교리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하며 영세 후까지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선교 세미나 등에 참여하여 선교 방법을 공부하고 방문선교나 가두 선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늘 주님이 함께 계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자. 하늘에 반장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자.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하느님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 1, 4-10).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가10, 20).

⑨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자.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도록 한다. 노인들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는다. 그들의 어려움과 기쁨을 들어주고 함께 한다.매 순간 만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화한다. 지금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하늘나라가 바로 여기 있음을 체험한다. 다른 이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 사람에게서 칭찬이나 보상을 받기보다 주님께 희망을 두도록 하자.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마태 25, 31-46).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 3, 20).

⑩ 말씀에 맛들이자.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늘 성서를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여 하느님 말씀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책이며 하느님 나라로 가는 사랑의 지도이다. 구역장, 반장은 늘 성서 안에서 삶의 해답을 찾고 영원한 희망을 꿈꾸어야 한다. 또한 되도록 성서공부에 참여하여 성서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어느 단체나 모임보다도 소공동체 모임은 철저히 말씀 중심,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성서에 맛 들여야 나눔이 풍부해 질 수 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로마 1, 17).

2) 자발성과 적극성

봉사를 하는데 있어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自發性)이다. 어느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봉사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없다.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흔히 우리가 겪게 되는 난관이나 어려움에 대해 의연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소공동체 봉사자로서 봉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봉사에는 그에 따르는 기쁨과 보람도 몇 배로 증폭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억지로 하는 봉사가 아닌 내 자유의지로 하는 봉사가 될 때 진정한 봉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손수 선택하신 우리를 기쁘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을 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소공동체 봉사자로 뽑아 세우시고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사명을 완수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순명과 겸손, 열성뿐이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부족하지만, 기쁘게 하겠습니다”라고 겸손히 대답할 때 주님은 힘을 주시고 축복해주시며, 봉사자가 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축복과도 같은 보람을 느끼게 해주신다. 봉사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격은 학력이나, 재산, 자격증, 외모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자 하여 적극적으로 행하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소공동체 봉사를 하다보면 그만두고 싶고, 힘든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힘드니까 그냥 관두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지만 그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신앙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방법, 즉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중에 항상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힘들고 봉사를 하기 싫을 때, 봉사하는 일에 의욕이 떨어질 때 가장 먼저 예수님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구하라, 받을 것이다”(마태 7, 7) 라는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