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7/20 연중 제16주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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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연중 제16주일 - 마태오 1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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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3,24-¬43)


<기다리시는 하느님>

저는 어지간해서는 병원 신세를 안지고 끝까지 버텨보는 체질입니다. 병원 문을 들어서면 솟아오르는 왠지 모를 두려움, 병원 특유의 냄새, 복잡한 절차를 싫어하지요. 어지간한 병은 제가 개발한 '민간요법'으로 버틴 지가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간단한 문제였지만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생겨서 가까운 동네 병원엘 들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치료차 병원에 간 저는 여러 가지로 많이 놀랐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눈에 띄는 친절, 첨단화한 진료기구에 따른 신속 정확한 진단과 처방….

'야! 정말 세상 좋아졌다! 이런 병원이었다면 진작 왔을 텐데…'하는 후회가 절로 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특히 저를 진료해주신 의사 선생님의 친절과 인내는 가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증세에 대해서 차근차근 물어보신 의사 선생님은 세밀하게 검진을 마친 다음, 증상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상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한테만 특별히 친절한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 뒤에 성격이 꽤나 거칠고 급한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제 진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횡설수설하시는 할머니를 마치 아기 다루듯이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할머님! 이 분 진료 다 끝나가니 잠깐만 이 의자에 앉아 계셔요. 금방이면 되니 조금만 참으세요."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병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아주 중요합니다. 정확한 진단에 따른 적절한 투약과 조치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환자를 대하는 치료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자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환자의 아픔과 상처를 내 아픔과 상처로 여길 때, 환자 앞에 끝없이 인내하고 친절을 베풀 때 치유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부족한 인간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인내와 자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도자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발버둥치지만 되돌아보면 언제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생활이었습니다. 때로 부끄러움이 지나쳐 비참했던 생활, 그래서 절망도 많이 했고 좌절도 많았던 삶이었습니다. 기나긴 방황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께로 돌아설 때마다 언제나 기쁜 얼굴로 꼭 끌어안아주시며 한없는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셀 수도 없이 용서를 계속하셨습니다. 제 인생은 한 마디로 부족한 저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인내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밀 이삭 가운데 섞여 있는 가라지를 즉시 가려내 불태우지 않고 추수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하느님과 관련된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 의사 선생님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인내는 예수님 특기였습니다. 인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양성하실 때 가장 널리 사용하시던 '전매특허'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토록 잦은 실수와 과오를 거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베드로에게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앞에 예수님은 끝없이 인내하십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그 모질던 박해자들의 채찍질과 조롱, 모독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보복의 펀치'를 날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묵묵히 인내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오른편에 좌정하십니다.

이웃의 무례한 행위나 모욕적 언사 앞에 인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시련, 그 앞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한다고 마음먹을 때, 주님을 위해, 주님으로 인해,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할 때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다면… 기다림만 배우면 삶의 절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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