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이 십자가를 하나씩 받았습니다. 목적지까지 그 십자가를 결코 버려서는 안 되고, 그 까닭은 목적지에 도달할 때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가 유난히 크고 무거워 보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부분을 잘라 내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 바로 앞에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고 온 십자가를 걸쳐 놓고 골짜기를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가 잘라 낸 길이만큼 모자라 자기 십자가로는 결코 골짜기를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어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에서 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14-18).
하느님 사랑의 절정=구세주의 오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와 그 후계자들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끌어 오신 인류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 안에 실제로 들어오심으로써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인류 구원 계획을 완전한 방식으로 실현하시려고 당신과 본질이 같으신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파견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요한 3,16 참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예수 그리스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한 구약성서의 메시아 탄생 예고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신 구세주이십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잃지 않으시면서 인성을 취하셨으므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결정적인 자기 계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호칭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친교와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알며”(요한 10,15),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고”(요한 5,19),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요한 16,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이고”(요한 10,30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으면 곧 하느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요한 14,9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아빠’(Abba)는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매우 친근한 말입니다. 이러한 호칭은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듯 친밀한 애정과 온전한 신뢰를 가지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심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마태 5,45 참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마태 7,11 참조), 못난 자식일지라도 애지중지 아끼시는(루가 15,11-32 참조)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대로 실행하시려고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아버지께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으셨습니다”(필립 2,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앞에서 읽어 본 ‘착한 목자’에 관한 설교와 같이,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으셨지만, 당신 스스로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으며, 자주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예고하셨고, 그 고통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6,21; 17,22-23; 20,18-19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를 위한 사랑으로, 또 아버지께서 구원하시기를 바라시는 인간들에 대한 사랑으로 수난과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이 세상에 오셨으며”(마르 10,45),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도 당신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르신 것입니다(루가 22,42 참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을 열어 주시고 구원받을 자격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거이며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언하신 대로 돌아가시고 묻히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죽으면 썩는 인간 육체의 제약에서 온전히 벗어난 영광과 불멸의 몸, 곧 “영적인 몸”(1고린 15,44)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택하셨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죽음의 세력에서 그분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당신의 부활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로마 6,4) 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가 맞이하게 될 부활의 원천이 되어(1고린 15,20-22 참조)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거이며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고린 15,14) 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셨습니다(사도 1,3-11 참조). 예수님의 승천은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것,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드님으로서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모든 주권이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그분께도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령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습니다(요한 20,30-31 참조).
인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시며 구세사의 정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시어 십자가에서 당신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과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당신의 부활로써 우리에게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뜻하지 않은 괴로움을 당할 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꿋꿋하게 이겨 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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