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의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

“사과는 빨갛다는 고정관념을 버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약한 모습의 그리스도
부인과 자식 버린 고통을 자화상적으로 표현

작년 어느 일간지 신문을 통해 마더 테레사 수녀에 관한 짤막한 기사를 접하고 한참 동안을 그분 생각을 하며 보낸 적이 있다. 몇 줄 되지 않는 짤막한 기사는 ‘인도로 가서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라’는 하느님의 육성을 듣고 인도로 떠나 평생을 빈민들과 함께 했지만 그 분 역시 과연 하느님이 계시는지 때때로 회의에 빠지면서 괴로워했다는 내용이었다.

지위, 돈, 권력 등의 정도를 떠나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세속적인 소원을 가지고 있고, 신앙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그것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한다. 기도가 전부 이루어질 수는 없고, 그럴 때마다 과연 하느님이 존재하시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평범한 인간인 우리들의 이치다. 예수께서도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춤추고 기뻐하며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예수께서 잡혀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 가서 드린 기도는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루카 22, 39~42) 라며 체념, 포기, 두려움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었다.

고갱의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에서 예수는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느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등을 구부리고 있는 붉은 머리의 예수는 녹색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더 이상 어떤 반항도 대항할 기운도 없이 체념한 듯 보이고 앞으로 닥쳐 올 수난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 슬픔에 가득 차 있다. 예수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하고 그 눈물을 닦으려는 듯 여위고 파리한 두 손으로 손수건을 붙들고 있다. 화면의 오른편에는 멀리서 예수를 잡으러 유다와 병사가 오고 있다.

고갱은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에서 고뇌하는 예수를 통해 그 당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을 투영했다. 고갱은 지난 번에 소개한 ‘반 고흐’의 정신발작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다. 이 그림은 떠나지 말라고 매달리는 반 고흐를 뿌리치고 떠난 직후 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얼굴은 고갱의 자화상이다. 죽음을 앞둔 예수만큼 고갱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반 고흐를 그리스도와 같이 생각했고, 고갱을 마치 유다처럼 냉정하고 매몰찬 사람으로 돌리는 분위기였다. 고갱의 얼굴을 한 예수의 붉은 머리는 귀를 자르는 발작을 일으킨 반 고흐의 자해 사건을 다시 상기시킨다. 성경에 의하면 유다가 병사들을 이끌고 오자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 스승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빼들고 대사제의 종의 귀를 잘랐다.

예수의 머리는 귀가 잘린 대사제의 종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귀를 자른 반 고흐가 흘린 피로 물든 고갱의 모습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귀가 잘린 자는 대사제의 종이며, 귀를 자른 자는 정의로운 예수의 제자다. 고갱은 자신을 예수의 제자로, 귀가 잘린 반 고흐를 대사제의 종에 비유하여 자신의 정당함을 항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모두 자기만의 고민과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반 고흐 입장에서 보면 고갱은 가해자이지만, 고갱은 자신만의 수많은 고통이 있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인과 자식을 버려야 했고 또한 반 고흐도 버려야 했다. 고갱의 그림에서 수난 받는 예수는 고갱과 동일시된다. 물질적 고통,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자유에의 갈망, 무엇보다 예술을 향한 욕망은 자신도 절제하지 못하는 본능이었고 항상 고통이 뒤따랐다.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의 붉은 머리는 앞으로 예수가 흘릴 피의 수난을 상징하기도 하고, 고갱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인생의 수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머리의 붉은 색은 종교적 상징성을 떠나서 회화를 강렬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그림에서 색채로서의 순수성이 상징성보다 더 중요하다. 종교적 의미나 개인의 일화적인 이야기는 단지 그림의 내용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필요할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회화의 조형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색은 자연의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칠해지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조화, 구성, 조형성을 위해 선택되는 것이다. 이것을 색채의 자율성이라 부른다.

고갱이 이룩한 ‘색채의 자율성’으로 인해 화가들은 강이 푸르다고 청색을, 사과가 빨갛다고 붉은 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화가들은 회화의 조형적인 구성을 위해 얼마든지 강을 노란색으로 사과를 검정 색으로, 자신이 칠하고 싶은 색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갱은 누구보다도 먼저 회화는 ‘추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선구자적인 화가이다.

회화는 자연과 상관이 없다. 독립된 세계다. 고갱이 탐구한 ‘색채의 자율성’은 20세기 추상미술의 탄생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김현화(베로니카)
숙명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지난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오르세미술전은 인상파 전후기 그리고 세잔까지 20세기 이전의 최고 명화를 감상한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고갱의 작품으로는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화가의 자화상’과 ‘타히티의 여인’이 선보였다.

고갱은 1889년 프랑스 퐁타방 부근 성당의 채색 나무십자가상을 모델로 ‘황색의 그리스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경건해야 할 그리스도의 모습이 브르타뉴의 농부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1년 후 고갱은 ‘황색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갱은 인간 내면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타히티 자연 속에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현재 타히티에는 고갱 기념관(Paul Gauguin Museum)이 있다. 이곳에서는 아쉽게도 진품을 구경할 수는 없지만 복제품과 그의 생애를 소개한 판넬이 전시돼있다. 또 그가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아뜰리에도 재현해뒀다.

고갱의 작품은 여타 거장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개인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유명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을 비롯해 특히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엘브라이트 녹스 이아트 갤러리, 워싱톤 내셔널 갤러리, 보스톤 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주정아 기자 stella [at] catholictimes [dot] org
기사입력일 : 2008-02-17

고갱의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