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월 14일 주일 한가위…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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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주일 한가위 - 루카 1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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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루카 12,15-21)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연초에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문간 방 안에는 아주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 할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집 분위기가 약간은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저는 조금 오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켜보려고 그 할머님께 새해인사도 드릴 겸, 농담도 건넬 겸, 큰 소리로 이렇게 인사드렸습니다.

“할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러나 너무 오래 사시지 마시고 100살까지만 사세요.”

그 말을 마친 저는 썰렁했던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지려니 했었는데,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습니다. 할머니 얼굴도 안 좋아지시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난처해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할머니 올해 연세가 99세였습니다. 99세 할머님께 100살까지만 살라고 했으니 얼마나 속상하셨겠습니까?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이 엄청 높아져서 OECD회원국 평균을 따라잡는다는 이야기 들으셨죠? 여성들은 80세 남짓, 남성들도 75세 정도라고 하니 대단한 수치입니다.

오늘 추석입니다. 먼저 떠나신 선조들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날들도 헤아려보며 ‘죽음’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봐야하는 날입니다.

과연 몇 살까지 살다 이 세상 떠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80살까지? 아니면 100살까지? 그도 아니라면 150살까지?

혹시 200살까지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대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이미 친구들은 다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아들들이나 손자들도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새해만 되면 KBS, MBC, SBS, 세계 기네스 협회에서 다들 찾아와 난리들일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놀라지 마십니다. 올해 200세를 맞이하시는 어르신이 아직도 멀쩡히 살아계십니다. 그럼 취재나간 리포터를 연결해보겠습니다.”

그 정도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불행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임종자들을 떠나보내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죽음은 해결사입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방황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 악습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이 처절한 소외감, 이 심연의 고독,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한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죽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죽음을 통해 거칠고 험난했던 오랜 여행길을 마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군요.

그 오랜 세월, 상처와 고통의 나날을 접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마지막 날, 인생 종치는 날, 밥숟가락 놓는 날, 쫄딱 망하는 날, 무작정 슬퍼할 날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그간 힘겹게 지고 왔던 모든 멍에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날, 기쁜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날,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먼저 떠난 분들 위해 제사상을 차려놓고 아직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신 분들도 많으시지요.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도 경황없이, 잘 있으란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그가 야속하기도 하겠지요. 마음이 허전하고, 싱숭생숭하시겠지요.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우리보다 훨씬 사정이 낫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원망도 없는 곳에서, 자비하신 주님 품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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