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생각] 착하고 성실한 종이 받을 기쁨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마태 25, 14~30

우연히 가톨릭 신문을 보다가 반성되는 부분과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어 모든 교우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착한 종의 모습을 떠올리며,,

착하고 성실한 종

쓸모없는 종

어느 본당엘 가든 반드시 있게 마련인 분열에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은 사목 책임자인 주임 신부에게 그 잘못이 있습니다만, 지역 유지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며 교만에 가득 차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도 한몫을 합니다.

그 같은 교우들에게 볼 수 있는 잘못을 기원전 106~43년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이며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어떻게 예견하였는지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여섯 가지 잘못에 대하여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첫째, 남을 깎아 내리면 자신이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사람, 둘째, 어떤 일을 자신이 이룰 수 없으니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셋째,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로 걱정하는 사람, 넷째, 대중의 잘못된 편견을 생각없이 따르는 사람, 다섯째, 생각의 발전과 진보를 무시하며 독서하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 여섯째, 다른 사람에게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지적대로 본당 발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같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뒤에서 말이 많고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변화와 발전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며 현재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들 곁에는 늘 불만과 마찰과 불화와 분열이 따라 다닙니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은 언제나 ‘전에는’, ‘옛날에는’, ‘전임 신부 때에는’ 등의 과거형입니다. 그 때에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서 생색내기에 급급했던 그들은 늘 과거에 집착하며 떠벌립니다.

그리고 남이 칭찬받는 것에는 쌍심지를 켜고 험담을 하다가도 자신이 무슨 직책을 맡았을 때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또한 자신의 그릇된 의견을 따르는 이들과 어울리며 주임 신부를 자신의 손안에 주무르려 듭니다. 그들은 언제나 보이는 성과나 행사에 만족하려 하며, 거기에서 인기를 얻고 흐뭇해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냉담을 밥 먹듯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훌륭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과 아집이 그 귀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마지막 날 듣게 될 경고의 말씀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밝히십니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 30)

글을 쓰다 보니 착한 교우들이 아닌 제 이야기를 썼습니다.

기쁨을 나누어라

2007년 12월 31일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는 487만3447명으로 총인구 5003만 4357명의 9.7%를 차지하고 전년에 비해 2.2%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직자 수는 총 4148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직자 1명당 1175명을 책임져야 하는 숫자가 됩니다. 물론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도시 본당의 경우에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부 1명당 천 명이 넘는 교우들일 경우, 보좌신부 없이 사목한다는 것은 사목이 아니라 ‘사무’가 될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제가 교우들을 목자의 마음으로 가까이 하며 사목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사무적으로 대할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칭찬받는 착하고 성실한 교우, 많은 일을 맡길 수 있는 교우들이 더욱 절실한 실정입니다.

사제 혼자 사목을 할 수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모든 일이 분업화, 전문화되었기 때문에 평신도들의 역할이 그만큼 커지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은 아직도 교우들 중에 사제의 애로사항과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사제들이 살아갈 수 있고 보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늘 한결같은 심성과 믿음을 지니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말씀과 행동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맡았던 교회 내 직책에서 물러나면, 그 직책에 대한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말없이 후임자를 보필합니다.

그분은 결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을 때가 좋았었다는 입에 발린 소리에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때론 그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그래가지고 어찌 본당과 역사가 진보하겠는가?”하며 꾸짖기까지 합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패거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때문에 분열과 상처없이 모든 일이 원활히 해결되어 갑니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작은 일에 성실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탈렌트를 썩히는 법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사제의 영원한 협력자인 평신도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분들을 기쁘게 초대하십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 21)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