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2/21 대림 제4주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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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 루카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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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1,26-38)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

지난 달 저희 집에서는 아주 소박한 '가족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지난해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져 깜짝 놀랐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아이들, 초대형 사건' 등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아이들이었는데, '도저히 이런 데서 못 살겠다'고 기를 쓰며 도망가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딴 얼굴로 변해 무대에 섰더군요. 저희 아이들 특유의 조금은 멋쩍고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연주하는 진지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정녕 행복했습니다.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꽃 같은'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식이 끝나고 나니 한 꼬맹이가 저보고 기숙사로 꼭 올라오라더군요. 호기심에 따라 올라갔더니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었습니다. 비뚤비뚤, 그러나 꾹꾹 눌러쓴 편지였습니다. 창피하니 지금 여기서 읽지 말고 수도원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여기 온 지 한 달이 지났네요. 신부님이 저희들을 데리러 '비둘기장'(철창이 쳐진 임시유치장)으로 오실 때 솔직히 많이 '쫄았어요'(겁났어요). 그런데 나오자마자 점심으로 부대찌개도 사주시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주셔서 정말 마음이 놓였지요. 그리고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희한하게 답답한 게 뻥 뚫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신부님이 웃으시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실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신부님, 알라뷰 소마취 ㅋㅋ."
 
저희 아이들 한 명 한 명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투박하지만 맑은 샘물처럼 순수합니다. 마치 스펀지 같습니다.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도 압니다. 복잡하거나 계산적이지도 않습니다.

  순수한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수 그 자체였던 나자렛 시골 처녀 마리아를 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을 지녔던 마리아, 사심 없는 마음의 소유자였던 마리아, 질그릇같이 소박한 마리아를 인류구원 사업의 첫번째 협조자로 선택하십니다. 마리아의 언행 하나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얼마나 단순한지 모릅니다. 조금도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전혀 세상에 물들지 않습니다. 천사의 알림 앞에, 크나큰 하느님 초대 앞에 조금의 자만심도, 우쭐거림도 없습니다. 솔직하고 겸손하게 그저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제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듣고 난 마리아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그 초대를 수락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당대 잘 나가던 예루살렘 귀족 가문의 딸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시골 처녀 마리아를 당신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선택하셨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느님께서 선호하시는 삶의 유형은 마리아가 지녔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는 마리아가 지녔던 바로 그것입니다. 단순함, 소박함, 천진난만함, 순수함, 하느님을 향한 열린 마음, 하느님 부르심에 즉각 일어설 수 있는 준비된 마음….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간 쌓아두었던 서류들이며, 편지들, 잡지들,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꼭 드는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ㆍㆍㆍㆍ)/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이름을 알면 보이고 이름을 부르다보면 사랑하느니/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꽃잎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정일근, 쑥부쟁이 사랑)
 
  시인께서는 '사랑하면 보인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을 의미할까요? 그 사랑은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 하느님 중심적 사랑이겠지요. 흐리고 탁한 시선이 아니라 해맑은 시선, 꼬이고 꼬인 부정적 눈초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낙관적 눈망울을 지닌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사랑 말입니다. 청정한 시선, 공감과 경청, 연민으로 가득찬 시선…. 그런 눈으로 세상만사를 바라볼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 거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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