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17일 토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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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토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마르코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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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2,13-17)


<시집(詩集)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시대 유럽이나 근동지방에서 세관원들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세리를 공공연하게 ‘도둑’이라고 칭했습니다. 헤론다라는 사람은 세리들에 얼마나 질렸는지 이런 표현을 남겼습니다. “세리들이 가까이 오면 집이 공포에 떤다.”

유다 세계 안에서 세리들은 더욱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세리들은 자신들이 거둔 세금을 침략자인 로마 제국에 상납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들에게 매국노, 배신자, 배교자라고 불렀습니다. 유다 문학에서 세리들은 ‘도적’ ‘살인자’와 동등한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리들은 증인으로 법정에 설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이 얼마나 백성들을 착취했었는지는 성서 상의 기록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 3장 12-13절에서 세례자 요한은 세리들을 향해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당시 세금을 징수할 때 세율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객관적인 액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정한 세율 보다 훨씬 많이 세금을 책정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산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레위라는 세리는 하는 행동을 봐서 하급 세리가 아니라 일정 지역에 대한 세금징수권을 지닌 세리, 총청부인에게 얼마간의 금액을 지급하고 하청을 맡은 세리로 여겨집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 받고 따라 나서면서 상급자의 허락 없이 직장을 떠나는 모습, 또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세리 사회에서 꽤 잘 나가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접고 예수님을 따라나서기로 결심한 레위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아마도 레위가 잔치를 계획한 이유는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동고동락해왔던 동료 세무관들과의 송별회도 겸했겠지요.

당대 사람들로부터 공공연하게 손가락질 받던 거물급 세관원들이 속속 도착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유유상종이라고 여러 부류의 많은 죄인들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호기심에 찬 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공적인 죄인들과 한 식탁에 앉으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리들과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정 타는 행위였습니다. 죄인들과의 상종을 금한다는 그들의 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토록 유다 전통 안에서 한 식탁에 앉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너랑 나랑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시였습니다.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꽤나 큰 친밀감의 표시였습니다. 같은 식탁에서 빵을 나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우정과 존중의 표시였습니다.

세리들과 한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유쾌하게 식사를 즐기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위안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새해를 맞아서 제발 죄 좀 그만 짓고 살아가자고 얼마나 많이 다짐을 했습니까? 그러나 작심삼일입니다. 어느새 과거의 부끄러운 악습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평생 죄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가 봅니다. 생각의 죄, 마음의 죄, 눈을 다스리지 못한 죄, 입을 단속하지 못함으로 인한 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좌절해서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와 같은 죄인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아직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희망과 가능성으로 충만한 시기입니다. 너무 조금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랍니다. 아직 까마득하게 남은 이 한해,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주님을 향한 시집을 준비하듯 그렇게 살길 기원합니다.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이성선, ‘새해의 기도’-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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