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 2월 22일 연중 제7주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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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연중 제7주일 - 마르코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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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르2,1-12)


<해질 무렵 긴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혹시 단 며칠만이라도 갇혀 지내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든 곳이 통제되는 생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생활 말입니다. 정말 숨이 막히는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소년원엘 다녀왔습니다. 다들 고생들이더군요. 화창한 주말 오후 당직 서시는 선생님들도 고생이고, 아이들 생각하며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서 찾아오시는 봉사자분들도 고생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폐쇄된 울타리 안에서 청춘의 혈기를 억누르느라 용을 쓰는 아이들이 고생입니다.

해질 무렵,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짠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신부님, 좋은 곳에서 밝은 모습을 만났어야 했는데...정말 죄송해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한 아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제 귓전을 울렸습니다.

갇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제 발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절실히 깨닫습니다.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도움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산다는 것, 정녕 큰 감사거리이자 큰 은총입니다.

언젠가 만난 한 환자가 기억납니다. 큰 사고를 겪고 나서 재활치료중인 형제였는데, 당시 아주 조금씩 회복 중이었지요. 자존심이 무척 강하셔서, 그리고 남 도움 받는 것 죽어도 싫어하시는 분이셨기에 가급적 당신 스스로 해내려고 기를 쓰셨습니다. 침대에 내려서 신발 한번 신는데 5분은 족히 걸렸습니다. 아주 작은 문턱이나 약간의 오르막만 있어도 그분에게는 정말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물건 하나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것 줍는 것이 그분에게는 정말 큰 작업이었습니다.

그분을 생각할 때 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신체 건강하다는 것,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 정말 큰 은총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큰 병치레하지 않고 산다는 것,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의 경우 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말기 중풍병자였습니다. 병세가 어지간했으면 부축이라도 받아서 예수님께로 왔을 텐데, 들것에 실려 온 것을 봤을 때,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병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중풍병자는 그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겨우 밥 한 숟가락 뜰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크게 선심 써야만 겨우 ‘볼일’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일이 오랜 세월 중풍병자가 해왔던 전부였습니다. 그저 환자의 목숨이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것이 환자 가족의 바람이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거두고 있던 가족들의 고초도 말 할 수 없이 컸습니다. 환자 못지않게 답답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중풍병자 가족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가족들은 ‘혹시나’하는 희망을 안고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들것에 실었습니다. 가족들은 큰 기대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치유를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로 주변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자니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희망했었기에 가족들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예의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한 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집 바깥에 나있는 계단을 향해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천장에 있는 지붕을 조심스럽게 뜯어냈습니다. 들것에다가는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는 방 한 가운데로 천천히 내려 보냈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 해도 해도 너무한 일, 도무지 예의가 아닌 일,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극진한 마음을 눈여겨보십니다.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팀플레이’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끝까지 병자를 포기하지 않은 가족들의 지극정성 앞에 탄복하십니다. 치유를 향한 그들의 적극성, 구원받고자하는 그들의 능동성,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간절하고도 열렬한 마음 앞에 예수님의 마음 또한 움직입니다.

오늘 제 안에 들어있는 중풍병자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마음의 질병을 바라봅니다. 제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번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자비, 연민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저 역시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 자비의 손길만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이런 말씀을 던져주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냥 ‘네 병을 치유시켜주마’가 아니라 죄를 용서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단지 외적으로 드러난 병에 대한 치유뿐만 아니라 내적인 치유까지 동시에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인파에 지레 겁을 먹고 집으로 발길을 되돌린 환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 예수님을 만났고, 그로 인해 치유와 구원을 받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분과의 만남을 통한 치유와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측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얼마나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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