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21일 사순 제1주일…양승국 신부님
2월 21일 사순 제1주일-루카 4장 1-13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루카 4, 1-13)
<큰 산 같은 예수님>
형제들과 ‘1박2일’ 비슷한 것을 하러 바닷가로 갔습니다. 큰 방파제가 하나 있길래, 답사해보려고 차를 몰고 방파제 쪽으로 향하는데, 진입로 양쪽에는 ‘유혹거리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수족관 마다 가득 차 있던 ‘자연산 횟감’들, 식당들로부터 풍겨 나오는 흐뭇한 냄새, 떠들썩한 분위기는 강하게 우리들을 손짓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마음 약해지면 절대 안 되,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 뭐야? ‘극한 체험’을 하러 왔는데, 초반부터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지.
그런 마음과는 달리 몸은 따로 놀았습니다. 마침 한 청년이 우리 차 앞을 가로막더니 맛있게, 푸짐하게, 그리고 싸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앞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뱃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꼬르륵 소리... 저는 단 몇 분 만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유혹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 근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죽어도 끄떡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지만 작은 바람 한 줄기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때 금강석 같던 다짐도 오래가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이런 우리 앞에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큰 산’처럼 여겨집니다.
악마의 유혹은 참으로 달콤했습니다. 악마가 눈앞에 펼쳐놓은 장밋빛 청사진,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유혹들 사이로 난 생명의 길로 홀연히 걸어가십니다. 그 달콤한 제안들 앞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길을 유유히 걸어가십니다. 참으로 당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聖人)이란 한 가지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성인들이 지닌 공통점 한 가지는 자신의 내면 안에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에너지들을 통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정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 ‘한 방향’이란 결국 영성적인 삶이겠지요. 가난한 이웃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이겠지요.
예수님의 일생 역시 비슷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자렛에서의 30년간 숨은 생활 동안 예수님은 많은 수련을 닦으셨을 것입니다. 자신 안에 들어있는 에너지들을 한 방향으로 통합하는 수련, 인류구원을 위한 희생의 삶이란 유일한 목표를 위해 많은 가지치기 작업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극도로 단순화시키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의 선택을 위해 부차적인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작업을 계속하셨습니다.
짧은 생애, 오직 한 가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만 충실했던 예수님,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작은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내면이, 예수님의 삶 전체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 양승국 신부님 매일 묵상글은 가톨릭 인터넷 굿 뉴스 오늘의 묵상 방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방에 가시면 매일 풍성한 묵상글을 올려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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