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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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 루카 1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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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29-32)


<특별한 그 무엇을 찾지 마십시오>

교회전통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길은 단 한 가지가 아니라 지극히 다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갈망하고 찾는 누구에게나 그 사람에게 적합한 방법, 지극히 개별적인 양상으로 접근하십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 역시 너무도 다양해서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봉쇄수도원에서 한 평생 고독과 침묵, 극기와 은둔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잡한 시장 한 가운데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함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쇄신운동을 통해 강렬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신수련이나 다양한 묵상법을 통해 자신 안에 깃들어계신 하느님을 발견해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견뎌나감을 통해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안에 깃든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치병,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의 투쟁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야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산이나 여행을 하면서 자연 속에 숨어계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체험은 각 사람의 성향이나 기호, 체질에 따라 방법이나 강도가 지극히 다양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통해서 순식간에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년 이상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겨우 하느님 체험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하느님의 손길에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풍같이 부드러운 하느님의 손길에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하느님을 체험함에 있어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곳저곳 기웃기웃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그러다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이에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것이 시시해지고 하느님의 자취는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특별한 그 무엇을 찾지 마십시오. 너무 조급히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무 지나친 기대도 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이란 단 한 번에 끝장을 보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 평생을 두고 계속 추구해야할 그 무엇입니다.

비록 지루하더라도 언젠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실 그날을 인내로이 기다리십시오.

귀찮게 여겨지는 매일의 가정사로부터 도망가지도 마십시오. 열심히 이 세상을 사십시오. 오직 하나! 자신에게 적합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찾으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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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양승국 신부님 매일 묵상글은 가톨릭 인터넷 굿 뉴스 오늘의 묵상 방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방에 가시면 매일 풍성한 묵상글을 올려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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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짧은 생각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표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표징이다.
이 표징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문제일 따름인 것 같다.
이 일상의 삶 속의 표징을 볼 수 있을 때
자유와 평화는 이미 내게 와 있을 것이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신앙의 눈으로 오늘 하루를 볼 수 있는 은총 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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