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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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 마태오 2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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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17-28)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인 십자가>

임종을 목전에 둔 환자를 강요해서 무리하게 유산상속을 가로채려다 쇠고랑을 차게 된 사람의 기사를 읽고 참으로 시대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종환자들의 머리맡에 앉아 있을 때 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호흡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환자들이 받는 단말마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이제 곧 홀로 떠나야한다는 것,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가족들은 보통 어떻게 처신합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잡아줍니다. 걱정이 대단한 환자의 귀에 대고 이제 그만 안심하고 편안히 떠나라고 속삭입니다. 함께 힘겨워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의무이겠습니다.

오늘 내일 하는 사람에게, 그 끔찍한 임종의 순간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위로와 기도인데, 그 순간 누군가가 환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떠나시면서 저한테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번만 하세요. ○○동 아파트, 그거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대신 성묘 하나는 제가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이제 떠나시면 무용지물일텐데, 지난 번 저랑 같이 투자해서 매입한 건물, 그것 제가 잘 관리하게 허락해주세요.”

그런 말을 듣는 환자, 정말 괴로울 것입니다. 죽어가는 자신에게 위로의 말마디는 고사하고자기 몫을 챙기려드는 사람들 앞에 할 말을 잃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바로 그 같은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도중, 열두 제자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메시아로서 환호와 박수갈채의 순간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피하고만 싶은 십자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남아있는 것은 초조한 심정으로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코스를 묵묵히 밟아나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고독해보입니다.

이런 예수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번민하시고,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기가 너무나 괴로우셨던 나머지 ‘피땀’까지 흘리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앞에 제자들의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임종자를 강요해서 유산을 가로채려는 나쁜 심보의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두 제자가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인사 청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좌에 앉게 되면, 국무총리와 당대표 자리를 보장해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죽음의 골고타 언덕을 향해 묵묵히 올라가시는데, 제자들은 자기들 욕심 채우느라 바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슬프셨겠습니까? 제자들조차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얼마나 고독하셨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의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아버지께서 제시하신 그 길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한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십자가 없이 구원 없고, 십자가 없이 영원한 생명도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일입니다.

우리 영적 여정 안에서 십자가는 쇄신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길 바랍니다. 죽음 역시 우리 일생을 잘 정리하고 영원한 하느님의 품안에 완전히 잠기는 일생일대 가장 큰 축복임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깨달음 중에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가 결국 은총이라는 그 깨달음이 빨리 이루어지면 질수록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다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지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시절, 제게 다가왔던 수많은 십자가를 떠올려봅니다.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지만, 그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얼마나 더 교만하게 살아가겠는가, 그때 그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얼마나 안하무인격으로 살아가겠는가 생각하며 주님께서 주신 제 십자가에 감사를 표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그 모든 실패와 좌절, 고통과 십자가야말로 우리를 보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느님의 손길임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체험하는 갖은 불행한 사건들은 우리를 보다 영적인 인간, 기도하는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자각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빕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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