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10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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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마태오 5장 17-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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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장 17-19절)


<참된 관상가의 모습>

요즘 많은 분들이 추구하고 갈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깊이 있는 기도생활입니다. 깊은 내면으로의 여행입니다. 결국 진지한 영성생활, 다시 말해서 관상기도입니다.

관상생활에 몰입하게 될 때 얻게 되는 은총은 놀랍습니다. 참 하느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결과 그의 영혼은 마치 잔잔한 호수 같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그의 존재를 가득 채우기에 그 어떤 외부환경에도 동요되지 않고 참 평화를 누립니다.

관상생활은 반복되는 단순화 작업의 결실입니다. 지속적인 가지치기의 결과입니다. 복잡다단했던 나의 삶을 단순화 하고 또 단순화하고, 더덕더덕 거추장스러웠던 내 생활을 가지치고 또 가지 칠 때, 결국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기도요 묵상, 하느님이요, 나인 것입니다.

이렇게 관상이란 세상을 향해 드리웠던 내 영혼의 닻을 거두어 하느님께로 내려놓는 작업입니다. 관상이란 내 마음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입니다. 내 영혼 깊숙이 자리하고 계시는 참 보물인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여정입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 뿐, 그 한 가지만이 나를 충만케 하고, 그 한 가지만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그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는 생활이 결국 관상생활입니다.

다행스런 것은 더 이상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관상생활이 더 이상 심산유곡에 자리한 관상수도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관상기도에로 초대됩니다.

인간이 정말 위대한 이유는 내공이 제대로 쌓인다면, 영혼이 샘물처럼 맑다면, 혼잡한 세상 한 가운데서도 충만한 영성생활, 만족한 관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내면이 충실하다면, 그의 영혼이 하느님 현존으로 가득하다면 최악의 외부적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당당하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 특별히 관상하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가난한 이웃들의 필요성에 응답할 줄 아는 사람, 고통 받는 이웃들의 울부짖음을 식별할 줄 아는 사람...

참된 관상가는 더 이상 인적이 드믄 산꼭대기에 홀로 머물지 않습니다. 관상생활을 깊이 하면 할수록 이웃과의 유대가 깊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멍에가 곧 내 멍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곧 내 고통이 되어야 합니다.

사순절은 관상가가 되는 시기입니다.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기입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 머물고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시기입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관상기도에 전념할 때, 내면으로의 여행을 계속할 때, 나를 비우고 또 비울 때, 내 삶을 단순화시키고 또 단순화시킬 때, 작은 계명 하나 하나 역시 아주 의미 있는 계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 역시 중요한 일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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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짧은 생각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이 그냥 말로는 안 된다.
몸으로 보여주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키게 된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손발을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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