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Salvation Army)

구세군(Salvation Army)
가) 명칭 및 특성
- 구세군은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부드(W. Booth)가 창설한 국제 규모의 교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전파, 신앙공동체 형성, 빈곤과 악의 타파를 통한 사회개혁을 지향한다.

- 교리는 감리교의 영향을 많이 받긴하였으나 특정한 교파의 교리를 초월하여 있으며, 성서를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 조직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군대식을 채택하고 있다.

나) 연혁
웨 슬리의 감리교회를 거쳐 개혁 감리교회 목사였던 부드는 순회전도를 둘러싸고 교단과 마찰로 1861년 세워진 천막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빈민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화적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빈곤과 죄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빈민가의 모든 문제는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 부드는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빈민가 전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이리하여 후에 구세군 운동이 된 빈민가 전도는 런던 중부 최하류 계층민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뒤 10여년이 지난 1875년 소위 ’기독교 전도회’(the Christian Mission)이라고 불리게 된 그의 전도회는 32개의 지회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드는 교회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이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보다 강력한 전도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복음전파에 있어서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그 호소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고안된 조직이 군대식이었다.

1878년 기독교 전도회는 군대식으로 개편되었고, 2년 뒤에는 명칭도 구세군으로 변경하였다.

1880 년부터 구세군은 해외로 진출하여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구세군은 행정상 영국 런던에 만국본영(萬國本營, International Headquarters)을 두고 각 국가별, 지역별 사령부(Territorial Headquarters)를 두고 있다.

또한 1950년 영적 군대로서의 구세군 병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국사관대학(The Salvation Army International Training Univeraity)을 세웠다.

다) 한국 구세군
빈민구제와 매춘, 음주 등의 사회악 근절을 위해 출발한 구세군이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은 1908년이다.

창설자인 부드 대장에 의해 파견된 윌리암 호가드 정령(正領)은 서울 평동에 ’구세군 대한본영’을 설치하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폐쇄된 해주, 개성 지방본영 및 서울, 충서, 충청, 충북, 경남, 전라 등 6개 본영이 있다. 매월 ’구세공보’를 발행하며, 월 2회 ’뉴스레터’도 발간한다.

산하기관으로는 구세군 사관학교, 기술학교, 신학원, 통신대학, 어린이집, 육아시설, 부녀시설, 양로시설 등 24개소가 있다.

황양주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