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수녀들이 갑니다 (조선일보)
故 이태석 신부 헌신했던 남수단에서 10월부터 봉사
학교·병원 하나 없는 그곳… “이태석 신부의 꿈 이루도록 많은 분들 기도해주세요”
'울지마 톤즈'의 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가 헌신했던 남수단에 한국의 수녀들이 간다. 이 신부가 먼저 떠난 뒤, 아직도 그곳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다.
24일 서울 방배동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만난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는 "다음 달 초 파견지인 남수단 굼보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진료소와 급식소 운영은 어떻게 할지, 현지 언어와 음식 적응은 어떻게 할지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수원의 김순희 브루노 수녀, 광주의 송원심 레뎀따 수녀와 브라질·일본에서도 각 한 명씩 까리따스회 수녀 모두 5명이 함께 가게 됐다.
▲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맨 뒷줄 왼쪽 흰옷 입은 사람)가 지난 2월 초 굼보를 방문했을 때 현지 아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남수단은 반세기에 걸친 내전을 막 끝내고 오는 7월 독립을 앞두고 있다. 오랜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수녀들이 가게 될 굼보는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서 차로 20분 거리로,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다. 학교, 병원, 상가는 물론 제대로 된 집도 찾아보기 힘든 황무지 같은 곳이다. 하지만 류 수녀는 "무척 즐거울 것 같아 가슴이 뛴다"며 해맑게 웃었다. 류 수녀는 이전에도 파푸아뉴기니 밀림 속 원주민 마을에서 4년,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늘 솟아오르는 필리핀의 쓰레기 매립지 '스모크 마운틴'에서 6년을 봉사와 헌신으로 보냈다. "밀림 속에서 말라리아를 달고 살 때도, '정말 이제 죽는구나' 싶었던 순간에도 항상 살아났거든요. 수단 사람들도 키만 껑충하게 컸지 다들 온순하고 착해 보여요. 무섭거나 그런 건 하나도 없다니까요."
까리따스 수녀회가 수단에 진출하는 데는 이태석 신부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까리따스회는 이태석 신부가 속한 살레시오회의 '가족 수도회'다. 이 신부는 의사가 돼 사제서품을 받은 뒤 까리따스회가 운영하는 전남 순천의 성 가롤로 병원에서 임상 훈련을 했다. 수단으로 간 뒤에는 까리따스회 출판사 '생활성서사'의 월간지에 매달 글을 기고했다. 이를 모은 것이 그의 유일한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다.
수단에서 일하면서 이 신부는 까리따스회에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현지 상황이 열악한 탓에 직접 말을 꺼내진 않았다. 작년 1월 이 신부 선종(善終) 직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살레시오회 수단 지부장이 이 신부와 까리따스회의 인연을 알게 된 뒤 로마의 까리따스회 총원(본부)에 수녀 파견을 청원했다. 한국 수녀들의 수단행은, 어찌 보면 이태석 신부의 유지(遺志)였던 셈이다. 10월 중순쯤 류 수녀 등 2명이 먼저 남수단 주바로 들어갈 예정이다.
현지 상황은 난관투성이다. 한낮 기온은 44도, 물과 음식은 부족하고 풍토병은 넘친다. 수녀들의 거처는 물론, 진료소와 급식소 건축은 아직 예산도 마련되지 않았다.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모든 것이 막막해 보이는데도 류 수녀는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 애가 탄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가장 하느님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남수단에서 톤즈는 사실 여러 도시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곳 사람들은 반세기 내전 속에서도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낼 만큼 의지가 강하거든요. 조금만 도와주면 금세 제 힘으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이태석 신부님의 못다 이룬 꿈도 이룰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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