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
1. 부활하신 그리스도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셨다…!"(루가 24,33-34). 부활사건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후 사흘 만에 돌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미리 말씀하신 대로(마태 16,21) 안식일 다음 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이 부활은 신앙생활의 중추가 된다. 가톨릭 교회의 신앙은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역사적 사건이며, 그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부활에 대한 성서 대부분의 증언은 성부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가르친다(마르 16,6; 루가 24,34; 요한 21,14; 로마 4,25; 1고린 15,4.12). 예수님의 부활을 성부의 인준의 표적이라고 본다면 예수님의 인성이 입은 영광은 성부의 업적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부활로써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완전히 드러나 영광을 받으신다.

부활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처형되어 참혹하게 죽은 한 사람이 생명에로 되살아났음을 굳게 믿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함은, 십자가에 처형된 그분이 만인의 주님이시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마태 28,18)이 그분에게 주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당신 제자들에게 치명적 타격이 되었다. 제자들은 파스카 사건을 두고 미리 하신 말씀들을 알아 듣지 못했으며,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에게 걸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먼저 무덤에 갔던 여인들이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가져왔을 때도 사도들은 믿지 않았다(루가 24,11).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몸소 나타나시자 그들은 허깨비를 보는 것이려니 하였다(루가 24,37). 사도 토마스는 부활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른 사도들의 증언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자기 눈으로 뵙고 그분의 못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고, 자기들한테 나타난 그분이 과연 돌아가신 그분인가를 확인하지 않는 한 믿지 못하겠노라 하였다.

많은 이들이 예수의 빈무덤, 사도들의 증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도들의 기적을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데 급급하였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부활 사건을 여러 방법으로 그럴 듯하게 설명해 보려는 인물들이 언제나 있었다.

부활 신앙이 계속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정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증인들은 믿음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분의 권능이 그들과 그들의 말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성 바울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보았던 인물을 많이 열거하고 있다(1고린 15, 3-8). 바울로가 고린토 1서를 쓴 것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바울로가 이 글을 쓰면서 언급하는 인물들은 대다수가 아직도 살아 있었으므로 그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는 본인들이 직접 다짐할 수 있었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해 온' 신조(信條)가 아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직후부터 놀랍고도 진지한 신앙과 활약이 일어났던 것이다.

성서는 한결같이 살아나신 예수님은 죽으셨던 바로 그분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육체를 갖고 현존하셨음을 강조하여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고 하시자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던 토마스도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7-29)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육체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부활한 육체로 계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렇게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두 눈으로 뵈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몸을 만져보게 하여 당신이 몸을 갖고 그 자리에 계심을 확인하도록 하셨다(루가 24,39).

2. 부활의 뜻

부활하신 사실은 근본적으로 중대하다. 성 바울로는 이를 단적으로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1고린 15,14.17-18).

사도시대의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의 성취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데 대한 성부의 답변이요, 죽기까지 순종한 종에게 내리시는 보상이라고 생각하였다(필립 2,7-8). 이리하여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특권을 얻으신 분으로 등장하신다. 부활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업을 성부께서 승인하시고 인준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변화했다. 그분은 여전히 같은 예수님이요, 여전히 우리의 형제이시요, 우리와 같은 살을 나누고 계시지만 지금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1고린 15,45)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다른 육체를 지니신 것이다(요한 11,38-44). 부활한 육체가 참 육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완성의 처지에 있던 육체와는 다르며 그것을 초월해 계신다(1고린 15,42-54).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 놓으셨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켜 '부패하지 않는 영적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1고린 15,20)이 되신 그분의 부활은 인간 변혁의 원형이시자 이 변혁의 시작이다. 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신앙에서 교회가 생기고 또 교회 안에서 신약성서가 생겼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그 자체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증언서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늘 함께 계시려고 세상에 오시어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가 마침내 부활하신 것이다.

3. 승천(昇天)

지상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수차 발현하시고,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사도 1,2), 예수께서는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사도 1,9). 그분은 부활하신 육체와 당신 영혼을 갖고 승천하셨다. 승천의 신비는 두 개의 다른 측면을 갖는다. 첫째는 예수님의 지금까지의 수고 수난이 환히 드러나 영광에 드시는 일이었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게 수행해 오신 당신의 봉사 직무를 종결지으신 시각을 말해준다. 루가는 부활과 승천 사이에는 40일의 기간이 있었다고 전했다(사도 1,3).

승천은 예수님과 세상과의 관계를 바꾸는 사건이다. 승천하여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게 된 것이다. 영광을 입으신 생명에 드심으로써 그분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자리잡으시는 것이다.

4.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존을 일시 거두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선물을 내려주시기 위함이었고(요한 16,7), 당신은 항상 교회와 함께 계실 것이다(마태 28,20). 신앙과 기도로 영위되는 교회의 생활에 그분은 현존하시며, 영광을 입으신 그분의 몸과 성사를 통한 만남에서 특히 함께 계신다. 우리의 사랑에 찬 생활에도 현존하신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죽음과 죄의 산물인 인간 사이의 소외, 억압, 착취, 분열을 타파하고, 일치의 성령을 따라 지역간의 적대감, 지역감정, 국수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하나로 만들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