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법


지는 법

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은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

강요당한 자기상실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부정만이

자기 긍정의 유일한 길인 셈이다.

그 길이 어둡고 외롭다고 회피할 때

남은 선택은 비굴한 변절 아니면 죽음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살이나

한때 정의를 외쳤던 사람들의 변절은

어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다.

모든 비극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받은 상처조차도

함께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기억과 연상을 통해 머리나 심장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몸으로 해야 하는 체험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과 한몸이 될 수 없는 한,

상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더구나 진정한 상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상흔을 껴안고
자기 부정을 감행한 사람만이

타인과 몸으로 만날 수 있다.

모든 상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다.

관계가 깊어지면 상처도 깊어진다.

그래서인가 나이가 많을수록

엷은 형식적 관계에 만족하는 것을

삶의 지혜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몸으로 함께하는 만남과 소통을

처음부터 포기한 이들에게

사랑이 찾아올 수 없으며

그 덕에 상처도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꽉 짜인 기능적 연관관계뿐이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

남편과 아내,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자본가와 노동자만 있고

사람은 없다.

각자의 역할과 기능만 있을 뿐

삶의 의미와 자유는 없다.

상처받지 않으려 한쪽은 권위를 앞세우고,

다른 쪽은 생각을 멈춘다.
지는 것을 모르는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한 이유다.
-박용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