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교회 일치운동의 혼

기도는 교회 일치운동의 혼

우리나라 에서 그리스도교 일치주간 행사가 시작된지는 올해로 30년이 훨씬 지났다. 그러나 완전한 교회 일치는 아직도 요원하다. 기대가 컸던 이들은 '답보하는 교회'에 실망하기까지 했고, 소심한 이들은 '진리의 순수성'을 위해 더 폐쇄적인 태도를 굳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해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교회일치운동을 펼쳐왔으며, 이같은 활동을 전세계의 일치운동에 적지 않은 변 화를 가져왔다. 현대 교회는 특히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 등 문헌을 통해 이를 실천하면서 쇄신되어 가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세운 교회의 분열은 325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던 아리우스파의 배격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역시 교회 분열의 큰 줄기는 역시 동방교회의 갈라짐과 종교개혁이다. 869년부터 2년 동안 열린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최초로 동방교회를 서방교회에서 분리시키려 한 포시우스를 파문했고, 1054년에는 미카엘 체룰라리우스가 포시우스의 정신에 따라 서방교회와 시비를 하다가 파문되면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를 파문, 교회 는 둘로 갈라졌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분열을 가속화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분열은 영국왕 헨리 8세의 영국교회 독립 선언(1531년), 쟝 칼 뱅의 그리스도교 제도론 발표와 장로교 시작(1536년) 등으로 번져나갔다. 1545 년부터 19년간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일시적으로 프로테스탄트 대표들이 참석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개신교의 많은 주장이 배격됨과 동시에 가톨릭 교리의 대부분이 세밀하게 규정되고 기틀이 잡혔다. 이어 1589년에는 러시아정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재치권에서 독립, 모스크바 총주교좌를 세움 으로써 그뒤 많은 나라에 이와 비슷한 국가별 독립교회가 발족했다. 17세기 침례교 발족, 18세기 감리교 발족, 19세기 구세군 발족 등으로 교회는 계속 세포 분열하듯 나뉘어져 나갔다.

교회 일치운동은 1894년 교황 레오 13세가 성령강림대축일을 전후해 일치기도주간 실천을 장려하면서 시작돼 1908년 미국 폴 왓슨 신부가 '교회 일치기도 주간'을 준수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어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일치를 위한 공동기도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6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전신인 '신앙직제운동'에서 성령강림주일에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 설정을 제안했고 그 결실로 48 년 암스테르담 총회부터 시작해 91년 캔버라 7차 총회까지 이어지면서 교회일치가 활발하게 논의됐다.

1964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특히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기도야말로 교회일치운동의 혼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도주간의 준수를 장려한다. 특히 공 의회 문헌이 교회 일치성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성삼위의 고백과 신·망·애 삼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성서적이며 세계교회협의회의 선언과도 공통성을 가져다주었다.

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가톨릭은 동방교회 및 프로테스탄트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1967년에는 러시아정교회와 신학대화 및 사목활동 분야에서의 접촉을 가졌고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에서 이집트 콥트교회 총대주교 쉐누다 3세와 함께 그리스도교 교리를 담고 있는 신앙선언문에 서명했으며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방문해 신학 대화를 위한 '로마 가톨릭-정교회 합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70년대 들어 동방 교회와의 대화가 본격화됐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단들과의 교회일치운동은 67년 이후 루터교와 성공회, 감리교, 오순절교, 침례교 등 각 교단들과 협력 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다채롭게 진행됐다. 특히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교회일치운동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 교회일치운동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회칙은 1995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하나되게 하소서(Ut Unum Sint)'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대다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교회 일치에 대한 열망을 인정하고 수위권(首位權) 개방 문제를 언급하는 등 대화의 토대를 과감하고도 진지하게 제공하고 있다.

[평화신문 오 세 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