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자자한 가톨릭 `약혼자 주말` 프로그램 [중앙일보에서 삽질했슴]
자동차·비행기 몰기보다 힘든 `결혼 운전법` 배우기 너도나도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 꾸려지는 출발점, 그게 바로 '결혼'이다. 삶에서 '결혼'은 이후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무척 큰 변수다. 그런데도 변수에 대한 준비를 하는 이는 드물다. "집과 가전제품, 가구는 다 마련했는데 또 무슨 준비?"라고 묻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또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결혼 후 어떻게 살까'를 혼수품 1호로 챙기는 이들이다.
이형욱(32)씨와 권슬기(26)씨. 두 사람은 이달에 결혼식을 올린다. 사귄 지는 7년 째다. 이젠 상대방의 사소한 습관도 척척 알아본다. 그런데 둘은 지난달 '엉뚱한' 결정을 내렸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두 사람이 가톨릭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에서 운영하는 '약혼자 주말'을 신청한 것이다. '약혼자 주말'은 예비 부부(혹은 결혼한 지 1년 이내의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카운셀링 프로그램'이다. 7년이나 사귀고도 신청한 이유는 '서로 더 잘 알기 위해서'다.
지난달 13일 둘은 서울 한남동의 성 꼰벤뚜알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프로그램 일정은 2박3일, 비용은 1인당 10만 원이었다. 잠은 따로 따로 자야 했다. 모두 스물다섯 커플이 참여했다.
권씨는 처음 소개시간부터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자기 소개가 아니라 파트너를 소개하라고 하더군요. 상대방의 사랑스러운 점이 뭔지 말이죠." 적잖게 당황했다. 평소 생각도 않던 문제였다. "어, 어… 하다가 오늘 아침 일이 떠올랐죠. 수도원으로 오는데 제 곁으로 택시가 '휙' 지나갔어요. 오빠가 그때 저를 챙겨줬죠." 권씨는 그 얘길 한 뒤에야 깨달았다. "어? 그때 '고맙다'는 말을 안 했네."
그런 식이었다. 2박3일간 진행된 15개 프로그램은 모두 '상대'를, 또 '자기'를 돌아보게 했다. 예비 신랑인 이씨는 "앞에서 강연만 하는 딱딱하고 일방적인 진행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라고 했다. 강단에는 결혼 10년차, 20년차 부부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고부간 갈등''가족의 치부''성문제'등 가슴 밑바닥에 있던 얘기들을 몽땅 끄집어냈다. "그분들의 삶에서 우러난 생생한 해결책이 큰 도움이 됐죠."
두 사람도 7년간 사귀면서 무지하게 싸웠다. 권씨는 돌아보니 '대화법'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가령 닭갈비를 먹을 때 저는 오빠가 뼈를 발라주길 바래요. 그런데 저는 얘기를 안 하죠. 알아서 해줬으면 하고요. 그러다가 끝내 안 해주면 토라지고 말죠. 집에 바래다준다고 해도 버스 타고 혼자서 가버렸어요. 상대는 끝내 이유도 몰랐죠." 이런 게 결혼 생활에선 '요주의 대상 1호'. 할 말은 가슴에 담아두어선 안 된다고 한다. "꼭 이야기를 해야 함을 배웠죠. 대신 상대방에게 상처를 안 주는 식으로 말이죠. 이젠 자신 있어요."
그렇게 '약혼자 주말'을 거친 후 계속 모임을 갖는 이들도 있다. 이종찬(32.회사원).김경미(31) 씨 부부는 2004년에 결혼했다. 물론 '약혼자 주말'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껏 '약혼자 주말'에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덕을 많이 본다"고 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프로그램을 퍼뜨릴 수 있는 '씨앗'이 되고 싶었어요." 2개월 된 딸을 안고 있던 김씨도 덧붙였다. "아이가 크면 꼭 '약혼자 주말'을 권하고 싶어요. 결혼 생활이 힘들 때마다 윤활유가 되거든요."
1997년부터 시작된 '약혼자 주말' 프로그램은 올해 11년째를 맞는다. 입소문을 통해 지금껏 여길 거쳐간 이들만 1300여 명이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프로그램이 열린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김완석(43)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운전을 해도 학원에서 미리 배우잖아요. 비행기는 몇 년씩 배우고 나서야 조종간을 잡죠. 결혼은 비행기보다 운행하는 게 더 어렵잖아요. 평생을 같이 살아도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요. 그런데도 변변한 준비 없이 다들 결혼이란 조종석에 앉더군요."
김신부는 결혼을 겨울과 봄에 비유했다. 모든 게 얼어붙은 겨울이지만, 봄에 온도만 살짝 올라가면 싹이 나고 꽃이 핀다. "부부 관계도 그렇죠. 말 한마디만 잘해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다 풀리는 법입니다." 약혼자 주말 문의 02-318-2079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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