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장 심오한 문제와 하느님의 은밀한 판단을 탐구하지 말 것

1. 주의 말씀: 아들아, 심오한 문제와 하느님의 은밀한 판단에 대하여 변론함을 삼가라. 즉 하느님께서 왜 이 사람을 이렇게 버려 주시고 저 사람에게 어떻게 은총을 주시는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큰 괴로움을 당하고 저 사람이 왜 이런 높은 지위를 얻었을까 변론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깨닫기는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일이며, 하느님의 판단을 탐지하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변론도 당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네게 이런 생각을 일으키던가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이런 문제를 내거든 선지자의 말씀을 빌려 대답하기를 "야훼여, 당신은 공정하시며 당신의 결정은 언제나 옳사옵니다."(시편 119,137)하고, 또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시편 19,9)하라. 나의 판단은 사람의 이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므로, 변론할 것이 못되고 다만 두려워할 것뿐이다.

2. 또 성인들의 공로에 대하여 연구하지 말고 변론하지도 말라. 즉 어느 성인이 어느 성인보다 더 거룩하다든지 누가 천국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였다든지 하는 문제를 취급하지 말라. 이런 모든 문제는 흔히 싸움과 쓸데없는 쟁론을 일으키고 또 교오와 허영심을 기를 따름이다. 이 사람은 이 성인이 낫다고 하고, 저 사람은 저 성인이 낫다고 하고 서로 교오하게 다투므로, 거기서는 질투와 분쟁이 난다. 이런 것을 알려고 하고 연구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유익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성인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주는 불목의 하느님이 아니요 평화의 하느님이신 까닭이다. 이 평화는 자기를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참된 겸손에 있는 것이다.

3. 어떤 사람들은 열정으로 인하여 이 성인이나 저 성인에게 더 뜨거운 정으로 이끌리나, 이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정이라기보다도 사람의 편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모든 성인들을 주성한 이는 나다. 내가 은총을 주고, 내가 영광을 주었다. 나는 각 성인의 공로를 알고, 자애로운 강복을 먼저 그들에게 주었다. 나는 천지 개벽 이전부터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미리 알았고 그들을 세속에서 간선하였다. 그들이 나를 먼저 간선한 것이 아니다. 내가 저들을 은총으로써 불렀고 자비로써 이끌었고, 내가 저들을 여러 가지 시련으로써 단련시켜 끝까지 인도하였다. 내가 심대한 위로를 주었고 내가 항구한 마음을 베풀었으며 내가 저들의 인내지덕에 화관을 주었다.

4. 나는 첫째 성인도 알고 말째 성인도 안다. 나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품어 준다. 나는 모든 성인들 때문에 찬송을 받을 것이요, 성인들을 이렇게 높은 품위에 이르게 하고, 아무런 자기의 공로 없이도 그들을 미리 간선하였으니, 각 성인 때문에 찬미와 영예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극히 작은 성인이라도 경홀히 보는 사람은 큰 성인도 공경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작은 성인이거나 큰 성인이거나 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성인 중 하나의 명예를 감소하는 이는 나의 명예와 천국에 있는 모든 이의 명예를 감소한다. 모든 성인들은 다 사랑의 연결로써 하나가 되어, 생각이 같고, 또 다 하나가 되도록 서로 사랑한다.

5. 또 그보다도 더 고상한 것은, 성인들이 자신보다도, 제 공로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기를 초월하고 또 자기 사랑하기를 끊어서 오로지 나를 사랑하여 나아가며, 이 사랑을 누리면서 쉰다. 그들을 이 사랑에서 떼어 내거나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들 안에 영원한 진리가 충만히 있고, 멸하지 못하는 사랑의 불이 타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즐거움만 좋아할 줄 아는 육체적 금수적 사람들은 성인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변론하지 말라. 제 생각대로 덜하기도 하고 더하기도 할 뿐, 영원한 진리에 의합한 대로 생각하지는 못하는 까닭이다.

6. 많은 이 가운데, 특히 신광(神光)을 별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완전한 영적 사랑으로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드물다. 아직도 본성적 감정과 인간의 우정으로 이 사람에게나 혹 저 사람에게로 이끌리니 세상에서 되듯이 천당에서도 되는 줄만 안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신광을 받은 사람들이 천상적 묵시로 인하여 명상(冥想)하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다.

7. 그러므로 아들아, 네 지식을 넘는 이런 일에 대해서 부질 없이 호기심으로 변론할 생각을 말고, 오직 하느님의 나라에서 극히 작은 자나 되려고 힘쓰고 도모하라. 천국에서 누가 더 거룩하고 누가 더 높다는 것을 안다 해도, 이런 지식으로 인하여 내 앞에 자신이 더 겸손해지고 나의 이름을 더 찬미하는 것이 없다면, 그런 지식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 차라리 자기 죄가 크고 덕이 적다는 것, 또 자기가 성인들의 완덕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를 생각하는 자는, 성인 중에 누가 크고 누가 작다는 것을 변론하는 자보다 하느님께 더 의합한 일을 행한다. 쓸데없는 수고를 다하여 성인들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신심 있는 기도와 눈물로 간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영화로운 전달을 청하는 것이 낫다.

8. 사람들이 만일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쓸데없는 말을 억제할 줄 안다면, 성인들도 매우 만족해 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다 내게로 돌려보내니, 자기의 무슨 공로가 있다고 스스로 무슨 영광을 취할 생각조차 없다. 이는 내가 끝없는 사랑으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까닭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넘치는 즐거움이 충만하여, 영광에 부족한 게 없다. 행복에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 성인들은 누구나 그 영광이 높을수록 그 만큼 겸손하여 내게 더 가깝고 더 사랑스러운 법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 앞에 제 월계관을 놓으며 어린양 앞에서 엎디어 "찬양과 영예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소서."(묵시 5,14)라고 경배했다고 기록되었다.

9. 하느님의 나라에서 끝자리를 차지할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누가 천국에서 더 높은지 알려 한다. 위대한 자만 있는 천국에서 제일 천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여도 이것이 큰 것이니, 거기서는 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마태 5,6). 또 사실 하느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가장 보잘것없는 자가 천 명으로 불어나고 가장 하잘것없는 자가 강대한 민족을 이루리라."(이사 60,22),또 같은 전지자의 "백세를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벌을 받을 자라 할 것이다"(이사 65,20)하는 말씀이 죄인에 대해서 맞게 되리라. 천국에서 누가 높은 자가 되는지 서로 다투던 제 자들은 다음 대답을 들었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18,3).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마태 18,4).

10. 어린아이와 같이 자유로이 스스로 겸손하여 하지 않는 자 에게는 화 있으리라. 이는 천국의 낮은 문이 그를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세에 위로가 많은 부자들에게는 화 있으리라. 가난한 자들이 천국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은 밖에서 부르짖으며 서 있으리라. 겸손한 자들아, 즐거워하고 가난한 자들아, 용약하라. 진리의 길을 끝까지 걷기만 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