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위기인가? 그 대안은? - 서춘배 신부


소공동체로 엮어진 교회, 효과적인 복음화 수행에 적합

한국교회는 위기상황인가? 교세증가율은 둔화되고 냉담자는 속출하고 교회를 찾는 예비신자는 줄고 있다. 젊은층의 교회이탈도 눈에 띈다. 당연히 적극적인 선교의지와 함께 마땅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복음화가 무엇인지 다시 규명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복음화율이라는 말을 한다. 신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그 사회는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단순논리다. 그러나 이런 양적인 면에만 관심을 두는 패러다임은 빈곤 심리에서 출발한다. 늘 허기질 수밖에 없다. 타종교와의 관계에서도 제로섬 상황이 연출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남미나 과거 유럽 국가들의 대다수 국민들은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다. 그렇다고 복음화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복음화란 종래의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오던 전교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신자로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소공동체를 시작하던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의 93년 사목교서의 일부다. 우리가 어떤 복음화를 목표로 해야 할 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지금 교회가 가지는 도덕적인 힘, 영향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대사회적 면에서만이 아니라 교우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교회가 단호하게 금하고 있는 인공유산이나 이혼율이 비신자와 다를 바가 없다. 회칙과 교서 등 교회의 가르침과 사목자의 설교가 교우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앙과 삶의 분리현상은 우리 교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일각에서는 더욱 강도 높은 교육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교육할 것인가.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 20).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키도록」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가 지키고 행할 것인가. 바로 세상 속의 평신도들이다. 그렇다면 평신도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이야말로 복음화를 이루는 핵심이고 주체이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사제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성화되어야할 피동적인 존재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사목은 한마디로 평신도의 역량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삶을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투철한 평신도를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 그 대안이 바로 본당의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공동체다. 소공동체 안에서 약한 이들도 교회의 지체로서 존중되며(1고린 12, 12~27참조)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소명에 소공동체 사목은 우선 충실하다.

소공동체는 어떤 의미에선 스스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자조모임이다. 가정문제에서부터 삶의 모든 부분을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고 실천해나갈 것이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차츰 역량은 커질 것이다. 소공동체는 고정된 틀에 매인 획일적인 사목도 아니다. 농촌이면 농촌, 도시면 도시, 학력이 있든 없든 모든 이를 담아낼 수 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찾아 나서게 되는 열려져 있는 사목이다. 적어도 복음에 입각하여 삶을 나누면서 소박하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를 극복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지나친 본당중심 사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단체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좋은 신자의 표지로 삼았을 뿐이다. 사목자는 단순한 성무집행자로 만족할 수 없다. 사목자는 관할구역 전체를 염두에 두는 선교사요 교우들의 일상 삶에 관심을 내는 어버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삶의 현장을 중시하고 평신도 스스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익혀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복음화의 열매는 본당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짐을 명심해야한다.

김추기경은 퇴임 후 피데스(FIDES)지와의 인터뷰에서 교구장 재임 30년 동안 가장 큰 업적은 소공동체의 발전이라고 밝혔다(가톨릭신문 98년 5월24일자). 당시에도 논란이 없지 않았던 소공동체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것은 바로 소공동체야말로 교회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소공동체로 엮어진 교회」는 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교회의 자기존재양식이다. 신앙과 삶을 통합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의미의 복음화다. 총체적인 사목이며 새롭게 보이지만 원천으로서의 교회 모습인 것이다.

- 가톨릭 신문 2004. 12. 5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