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와 가족 -- 강완숙 (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소공동체와 가족 - 강완숙 (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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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
1. 가족 이기주의 극복을 위한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2. 소공동체 안에서의 만남과 나눔
3. 소공동체 운영을 위한 제언
1. 가족 이기주의 극복을 위한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현재 한국 가족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는 긍정적인 면으로의 변화도 있지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양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가족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부정적인 현상들 중에서도 특히 우려되는 것은 가족 이기주의의 만연과 그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들 수 있다.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 중심적인 태도와 행위가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연대로 확산되지 못하고 배타적인 이기주의를 조장하여 다른 가족과의 갈등과 경쟁을 초래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사회 전체의 도덕적 통합성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주의가 시장 자본주의의 이기적 경쟁 논리에 의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우리 사회가 겪어온 노정은 참으로 다채롭고도 험난하였다. 불과 한 세기 만에 한국 사회는 농업생산 위주의 왕정체제에서 식민지 시절을 거쳐 국권 회복과 혼란기, 동족 전쟁과 분단, 전후 복구 시기, 경제개발에 따른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 민주화 시기 등을 거쳐 탈산업사회로의 진입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유대의 기반으로서,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한 양질의 인적 자원과 초기 자본의 조달 기지로서의 가족의 역할이 매우 컸으며, 이런 의미에서 가족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제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한국 사람은 누구나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족에 의존해 왔으며, 가족 중심적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족의 중요성에 비하여 가족을 지원하는 사회적, 정책적 배려는 미흡하였고 오히려 자녀의 양육과 교육, 노인 부양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을 가족에 미룸으로써 가족은 일종의 기능적 과부하 상태에 빠져 여러 병리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급격한 사회 변화의 와중에 기존의 공동체적 가치관이 해체된 상태에서 천민 자본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물질주의의 팽배와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하는 편법주의의 만연, 그리고 성숙한 개인주의 대신 이기적인 쾌락 추구의 경향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주의는 자기 가족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는 가족의 기능 상실 및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에, 다른 한편에는 가족 이기주의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적 윤리를 망각한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각종 반사회적인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이웃과의 갈등을 유발함은 물론, 자신의 가족에게도 해를 미치게 된다. 가족 이기주의는 얼핏 가족의 안녕에 기여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내 가족만은”, 혹은 “내 자녀만은” 이라는 배타적인 이기적 행태는 이기주의적 인성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당 가족의 통합성을 해치고 당사자의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게 되며, 또한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합의가 결여된 소비 위주의 피상적인 가족 관계는 가족 내에서 조차 서로를 대상화, 수단화하여 진정한 인격적 만남과 정서적 충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가족 이기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의 상호 존중 및 발달이라는 새로운 가족 윤리와 가족 문화를 창출하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다른 가족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보다 성숙한 공동체를 확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소공동체는 현재 한국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 이기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는 장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소공동체 안에서의 만남과 나눔
1) 만남 :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경험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사회가 분화되면서 과거 가족이 담당하였던 많은 기능이 외부의 전문화된 제도나 기관으로 이전되었지만 가족은 여전히 다른 사회 제도나 기관이 대신할 수 없는 특화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화된 가족 기능의 대표적인 것이 개인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심리적, 사회적 유대를 제공하고 다음 세대인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화하는 기능이다. 특히 자녀의 사회화는 사회의 규범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틀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가족은 가족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러한 사회화의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 결과 공동체의 규범과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개인적인 적응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장으로서 소공동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인정과 존중,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인간 행동의 가장 중심적인 동기 중 하나는 대인관계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아는 의미 있는 他者의 반영적 평가에 의해서 형성되며, 타인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 존중감과 안전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인간관계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필수적이며, 개인의 성격과 삶에 대한 기본 태도는 그가 경험한 대인관계의 質에 좌우된다.
< 삶에 대한 기본 태도와 인간관계 유형, Thomas Harris >
I'm OK, You're OK 자신과 타인 신뢰. 적극적. 문제해결 능력. |
I',m not OK, You're OK 자기 비하. 타인에 의존적. 끊임없이 타인의 칭찬과 관심추구 |
I'm OK, You're not OK 타인 불신, 경계. 적대적. 타이에 엄격, 타인 감독.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 성격. |
I'm not OK, You're not OK 체념, 위축, 자포자기. 냉소적. 자신과 주변세계에 의미부여 못함 |
그런데 물질의 소유와 성취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인정과 사랑은 대부분 개인이 가진 여러 유형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기 쉽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존재 자체로 인정받기 보다는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성취, 외모, 나이, 성별, 가족형태 등에 따라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이 차별적으로 주어지게 됨으로써 전면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되며, 한편으로는 “겉으로 보여지는 삶”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발달시키는 것 역시 어려워지게 된다.
< Johari's Window >
자신이 아는 | 모르는 |
Open (공개된 부분) | Blind(맹목 부분) |
Hidden (비공개 부분) | Unknown (미지의 부분) |
이러한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밀한 유대를 나누는 개방적 친교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는 진정한 만남의 경험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에 대한 태도와 인간관계의 틀을 바로잡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나눔 : 궁극적인 가치의 나눔과 격려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가족 이기주의는 중심가치의 상실에 따른 규범의 와해 및 이에 따른 심리적 공황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특히 무분별한 물질주의의 팽배에 의해 더욱 부정적인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즉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반사회적인 이윤 추구를 정당화함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웃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까지 물질적 기준에 맞추어 설정하고 평가함으로써 극단적인 소외와 가족 관계의 왜곡을 초래하기도 한다. 즉 배우자 선택 단계에서부터 물질적 소유와 성취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결혼생활에서도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줄 때에만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왜곡된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자녀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사회규범의 습득과 인성 형성은 도외시한 채 자녀의 능력과 희망을 무시하고 물질적, 사회적 성취를 위해 무조건 경쟁에서 이길 것을 강조함으로써 부모가 담당해야 할 사회화의 기능을 다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녀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질주의는 정신적 가치나 인간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가치지향을 뜻하는데,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인간주의가 물질주의의 방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가치체계 자체의 변화가 선행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으며, 산업화 등의 사회구조적 변화의 영향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물질주의는 윤리체계에 의해서 규제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의 소유가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신분적 지위를 대신하는 지위체계의 변화과정에서 급증하게 된 배금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수단에 상관없는 부의 축적과 과시적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금전적 성공” 또는 “부자 되기”와 같은 물질적 성공주의가 현대 한국사회의 지배적 가치로서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1) 그러나 이와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범죄를 비롯한 여러 일탈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가치혼란과 인간관계 훼손의 중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가족 이기주의와 맞물려 가족 내외에서도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에 개인이나 가족이 개별적으로 저항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과 사랑, 상호 존중과 배려라는 근원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실천해가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삶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역할이 필요한데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소공동체가 담당할 수 있다. 단 가치관과 관련된 변화가 현실적으로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의가 피상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가족생활과 관련된 제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소공동체 운영을 위한 제언
1) 구체적인 공동의 목표 및 실천과제의 선정과 실행방안 마련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특성이나 개별 가족의 특성 및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장단기 목표와 실천과제를 능동적으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공동체는 교육이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수동적으로 제공받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곳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소공동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표와 실천과제에는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의 기여, 세계의 소외 지역에 대한 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2) 효율적인 소공동체의 운영 및 모임의 진행을 위한 모델/지침 마련
소공동체 구성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및 원활한 소공동체 운영과 모임의 진행을 위한 다양한 모델이나 지침을 개발하여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이때 workshop 등을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 요청된다.
3) 경계의 설정과 문호 개방
기존의 소공동체는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별, 성별 모임이 일반적이었다.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포함된 가족 단위의 참여를 격려하고, 개인으로 참여하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 단위의 참여로 인하여 소공동체의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울 경우에는 전체 모임 뒤에 연령이나 성별 또는 실천 과제별로 소집단을 구성하여 별도의 모임을 갖고, 나중에 전체 모임에서 발표를 통해 논의된 사항을 공유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소공동체는 활동에 있어서 지역사회 내의 비신자 가족을 배려할 뿐 아니라 다른 소공동체와의 교류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소공동체 간의 교류와 협력은 개별 소공동체가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나 과제를 함께 펼칠 수 있게 하고, 또한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게 함으로써 자칫 소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폐쇄성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 이러한 소공동체의 경계 설정과 문호 개방의 정도는 어느 경우든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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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수진, 최준식. 현대 한국사회의 이중 가치체계(아산재단 연구총서 제 108집). 집문당.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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