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를 바라보며’
[특별기고]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를 바라보며’
- 말씀안에 삶·신앙 나눌 구심점 필요
- 물질 풍요에서 비롯된 개인주의 극복하고 복음에서 삶의 가치 찾으려 소공동체 형성
- 본당과 유대 적어 ‘친교모임’ 될 위험 내포, 신앙공동체 고유성·실천활동 지침 찾아야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제5차 소공동체 전국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설렘과 기대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미국 소공동체 전국대회와 본당 탐방 및 소공동체 모임 참여를 통해 필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공동체의 비전과 희망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고 한국 교회 소공동체의 긍정적 가치와 힘 그리고 풀어야 할 과제 역시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소공동체는 ‘운동’(movement)이 아니다. 소공동체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교회’이다.” 이번 대회에 강사로 초빙되었던 호세 마린스 신부(‘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 저자)의 말이다. 소공동체가 단순히 한 시대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운동’이라면 그 창시자와 그에 따른 카리스마가 존재하겠지만 소공동체는 그것을 기초 놓은 사람도 교본도 없다. 오로지 그 안에 말씀과 교회의 본질적 사명만을 내포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소공동체의 창시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교회를 세우시고 이끄시는 성령이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많은 지역교회에서 작은 기초교회 공동체들이 태동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이미 30여 년 전부터 소공동체 중심의 교회상을 향한 움직임과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은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국 교회 역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시아 교회가 선포한 것과 같이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을 실현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추진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미국 소공동체 전국대회는, 세계 각 대륙이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작은 기초교회 공동체를 통해 싹터왔음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자리였다.
미국에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교회 ‘쇄신’(renew) 프로그램이 개발 보급되었고 소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전국차원의 조직이 탄생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1990년부터는 이미 5년마다 소공동체 전국대회를 개최해왔을 뿐만 아니라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연구자들이 소공동체에 대한 체험과 노력을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소공동체에 대한 실천과 이론이 상호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소공동체는 물질적 풍요가 빚어낸 지나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환경 속에서, 신앙인들이 서로 인정(人情)을 나누고 삶의 참된 가치를 복음에서 찾고 실천할 수 있는 이웃과 공동체를 필요로 하면서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소공동체는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 병자들을 돕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식별과 참여 등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실제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끌어 낸 것도 필자가 방문했던 잔다르크 본당의 한 소공동체였다. 이렇게 소공동체는 성령의 역사 속에 미국 교회 안에서도 새로운 교회상을 꿈꾸며 하느님 백성들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문화에 익숙한 필자의 눈에 비친 미국의 소공동체는 아직 풀어가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었다. 미국의 소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보편교회와의 유대는 비교적 낮아 보인다. 미국 교회 소공동체들 중 약 75% 만이 본당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도 많은 공동체들이 가톨릭의 이름으로 소그룹 모임은 하고 있지만 본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본당과 유대를 갖고 있는 소공동체들도 본당으로부터 지속적인 양성이나 프로그램을 제공받지 못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미국의 소공동체는 가톨릭교회 신앙 공동체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일반 사람들의 모임과 별로 차이가 없는 친교 모임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미국 교회 본당은 또한 속지적(屬地的) 차원의 본당 경계가 희박하여, 본당 환경과 전례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신자들이 자신들이 다닐 본당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소공동체도 그들이 사는 지역과 관계없이 친한 친구, 또는 취미나 사회적 배경이 비슷한 이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임은 구성원 간에 강한 결속력과 친밀감을 경험하게 하지만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있는 사람들만의 모임이 될 수 있고, 폐쇄적이며 가난한 이들을 교회 공동체로부터 더욱 소외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또한 미국의 소공동체에는 말씀을 중심으로 삶과 신앙을 나누고 실천 활동을 이끌어줄 적절한 형태의 지침이 없었다. 가톨릭교회의 소공동체 모임을 특징지어주는 내용과 형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미국 소공동체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와는 달리 한국 소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큰 힘, 장점들이 있다. 모든 본당에 구역 반이라는 소공동체가 조직되어 있고 많은 평신도들이 교구, 지구, 본당의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소공동체 지도자로 훌륭하게 양성되었으며,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적어도 복음나누기 7단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나눔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한국의 소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우리 소공동체가 너무 경직되고 형식적인 것처럼 보이거나 자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복음나누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 소공동체가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차이’에 대한 인식과 수용 그리고 서로 다른 지역교회이지만 교회 쇄신을 위한 소공동체의 비전과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한다는 신뢰와 확신을 바탕으로 서로 배우고 발전해가야 한다는 점이다.
칼 라너가 ‘미래의 교회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처럼 소공동체는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백성들이 주체적으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수행하는 보편교회의 구체적 현존이다. 소공동체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추상적인 교회를 실현하기 위한 교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초대교회가 누렸던 첫 경험의 순간을 향해 역류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교회상이다. 소공동체는 교회 쇄신의 여정에서 성령의 인도로 우리 시대가 경험해보는 교회상일 뿐이다.
전원 신부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대표)
사진설명: '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 저자 호세 마린스 신부와 함께. 왼쪽부터 서울 통합사목연구소 노주현 연구원, 호세 마린스 신부, 서울대교구 정월기 신부, 필자.
기사입력일 : 200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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