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도입에 대한 성찰 - 강우일 주교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도입에 대한 성찰 - 강우일 주교
가. 제5차 아시아 주교 연합 총회(V FABC Plenary Assembly)
인도네시아 렘방에서 1990년 7월 17일-27일에서 개최되었고, 아시아 16개 주교회의 소속 참석자, 전문가, 성좌 대표, 그리고 다른 대륙의 대표 등을 포함하여 모두 16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회의는 주교들의 회의이지만 16명의 평신도들이 이에 동참하였고 “1990년대의 아시아 교회가 당면하는 도전과 이에 대한 응답” 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 회의 기간 중 그룹 작업, 기도 모임, 전체 모임, 전례, 친교 모임 등에서 주교들만이 아니라 사제, 수도자, 평신도도 함께 하여 아시아 교회의 풍요로운 체험을 나누고 사귐을 갖는 새로운 장이 마련되었다.
최종 선언문에 드러난 4가지 요점:
I. 도입
II. 도전과 희망
a. 아시아에서의 누룩과 변화의 도전
b. 계속되는 불의의 도전
c. 교차로에서의 도전
III. 현대 아시아 교회의 복음 선교
a. ‘선교’의 의미의 쇄신
b. 아시아에서의 선교 유형
c. 평신도의 역할
d. 아시아 교회의 얼굴
IV. 영으로 살아감: 사목적인 응답 - 4가지
a. 당면하는 사목적 과제
b. 구체적인 사목적 방향
신앙 선포, 아시아 사회에 봉사,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의 온전성 추구.
신앙의 심화.
c. 1990년대의 새로운 교회의 존재 양상
A new way of being Church in the 1990's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응답
d. 이 시대의 영성
지역적으로도 방대하고 인구도 세계에서 제일 많은 아시아 대륙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거기에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이 아시아 대륙이 교회에 그만큼 많은 도전을 해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많은 도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새로운 존재 양상이 반드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총회 마지막 선언문의 발췌:
“주님께서는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쇄신을 위하여 다른 종교적 전통에 속한 이들, 선의의 사람들과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도록 명하고 계신다. 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서는 교회 전체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교들과 사제들은 평신도들의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평신도들 자신은 복음적 가치에 따라 아시아의 사회를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평신도들이야말로 다양한 문화, 또 사회 생활의 기본적인 구조를 복음화 할 수 있는 최전선의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가톨릭 신자의 삶에서 사회적, 직업적 제반 활동과 종교 생활이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될 일이다(현대 사목 헌장 43항).
이를 위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 교리를 배우고, 오늘의 아시아 사회를 더욱 의롭고 정에 넘치는 사회로 탈바꿈하려는 마음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양성된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들 사회의 복음화 일꾼이 될 수 있다. 즉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를,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전문인들이 다른 전문인들을,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들을, 가정이 다른 가정을 복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시아 사회의 변화를 위한 누룩이 될 것이다.”
제5차 FABC 총회는 선교의 개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촉구하면서 이는 각 지역교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는 보다 적극적인 평신도들의 교회 활동 참여를 유발할 수 있는 합당한 양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나. LUMKO
남 아프리카(South Africa) 주교회의 소속 교리 신학원 부설 기관인 LUMKO에서 30여년에 걸친 연구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검증해 온 총체적인 사목 연수, 사목자들과 animator들을 위해 한 달간 이루어지는 훈련 과정은 참여하는 교회(Participatory Church)를 기본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신자들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인 봉사로 표현하며 공동체로서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촉진하는 효율적인 지도자를 양성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이다.
즉 ‘공동체들이 모여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교회(communion of communities)이며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가 다 인정받고 활성화되는 교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우리 모두의 전인간적인 해방을 이룰 때까지 다른 종교와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까지 그 친교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교회다’(FABC 5차 총회 선언문 8.1.3).
다. 1991년 9월 9일-10월 5일, 타이 후아힌 LUMKO 1개월 과정
아시아 9개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8명의 사제, 11명의 수도자, 7명의 평신도 등 총 46명이 참가하였고 소공동체(SCC)의 도입과 활성화를 통하여 본당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한 연수를 하였다.
* 복음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성찰 : 단순히 예비 신자를 모아들여 세례 주는 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더 종합적인 개념이다.
* 신자들이 공동체로 복음화를 일구어 가는 도구로 복음 나누기를 활용해야 한다.
*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아시아에서 우리들의 이웃과 우리들의 희망을 나누는 방법이다.
연수의 평가:
타이 사제-‘현재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참례와 기도문 암송을 신앙 생활의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신앙 형태는 하느님 말씀과 유리되어 있다. 소공동체에서의 복음 나누기는 사제가 없을 때도 자발적으로 하느님 말씀과 접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이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제-‘우리 젊은 사제들은 사목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에 대한 기본 노선을 찾고 있다. 우리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 대단히 미성숙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사목의 기본과 방향,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 연수를 그런 우리들의 갈망을 채워 주었다. 나는 미래를 향한 사목적인 비전을 얻었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도구도 배운 것 같다.’
싱가포르 사제-‘우리 신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도구를 배웠다.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얻었고 교회 안에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이를 위하여 지도자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라. 1992년 8월 동아시아 지역 평신도 대회
‘교회 생활에서의 평신도의 참여’를 주제로 마카오, 홍콩, 일본, 대만, 한국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사회 속의 교회 :
- 복음적 가치가 요구하는 것, 교회의 사회 교리에 대한 평신도들의
인식 결여
- 개인 신심에 머물고 사회의 변화와 이웃의 필요에 대한 관심 부족
- 현대 소비 문화 영향으로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복음적인 과제와
사명에 민감하지 못함
-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교회 사회 교리를 평신도 양성과정과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함
본당에서의 교회 생활:
- 본당이 신자들의 신앙과 활동의 가장 중심
_ 본당 사목 평의회와 소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신자들의 참여와 양성
을 구현 가능
- 소공동체를 구축, 유지, 성장 시켜나가기 위하여 지속적인 양성과
사후 care가 필요하므로 교구 차원의 Mobile Team이 필요
- 본당 생활에서 여성들이 실질적인 결정 과정에서의 참여가 요청
- 친교와 일치의 정신을 육화해 나가기 위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서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 나가는 지속적인 양성이 필요
-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전례, 활성화 요청
마. 1993년 ASIPA
199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 사이에 말레이시아 Petaling Jaya에서 FABC Office of Laity와 Office of Human Development 공동 주최로 Consultation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의 목적은 FABC 총회의 비전을 실현해 가기 위한 창조적인 방법의 발견과 모색이었다. 즉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노력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의 종합적, 체계적 양성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 모임에서 과거 3년 사이에 아시아 여러 곳의 교회에서 LUMKO 계획이 광범위하게 전파 보급되었음이 인정되었고 이에 대한 성찰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양성은 이론적인 주입식 강의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느님 구원의 징표요 도구이다.
아시아 여러 교회에서 도입되고 적용되고 있는 LUMKO 계획은 아시아의 각 지역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되고 운용되어야 함에 공감하였다. 즉 LUMKO 계획에서 도입된 여러 가지 교재와 방법론이 아시아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것과 도움이 되는 사례를 잘 검토할 필요를 느꼈다.
이러한 관점에서 LUMKO 계획을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교회상을 찾아 나서는 사목적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는 LUMKO라고 하기보다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라고 불리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 Asian;
* 아시아 지역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 아시아 사람들이 오랜 역사 속에 지녀온 종교심성을 전제하고
* 아시아 지역의 여전한 불의, 가난, 군사화의 상황을 바라보고
* 수많은 젊은이들을 염두에 두고
* 다양한 희망적 표지를 바라본다; 교회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젊은이들의 활력, 여성 운동, 환경 운동
2. Integral;
+ 내용면에서,
* 불의를 용인하지 말고 일어서야
* 교회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
* 직접적인 복음 선포
*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
* 모든 피조물의 조화 추구
* 신앙의 심화
* 소공동체 지향
*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중심으로
이 모든 요소들은 ‘현대 복음 선교’ 그리고 ‘인간의 구원자’ 안에 나타난 복음화의 복합적 과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선교 개념의 정립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 사목 활동의 주체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협력과 연대가 전제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Integral.
+ 아시아 대륙 전체, 국가 차원, 교구, 본당, 소공동체 차원의 수직적, 수평적 관계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Integral.
3. Pastoral ;
새로운 교회상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Pastoral.
4. Approach ;
어느 한 가지의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풀뿌리 차원에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공동 사명을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깨닫도록 일깨우는 종합적이고 경험적인 공동체 건설의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Approach.
* 복음 나누기로 하느님 말씀과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합하고
신앙을 심화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
* 모든 것을 심어주는 리더십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리더십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일
* 혼자서 모든 것을 지시하는 리더십에서 팀 구성원과 나누는 리더십
으로 나아가는 일
* 의사 결정의 과정, 계획, 실천 모든 단계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
* 하느님 말씀과 일상 생활을 통합하는 토착화의 길을 모색.
* 사회적 의식을 계발하고 사회적 필요에 그리스도교적인 응답을
찾아가는 실천적인 과정을 포함
바. 1990년대 초의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도입 과정
한국 교회는 1984년 선교 200주년을 맞아 기념 신앙대회, 기념 사목회의, 기념 사업, 기념 정신 운동 등을 전개하며 선교 200년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설정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계기는 한국 사회 안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위상에도 큰 변화를 주었고 제2의 도약을 겨냥하는 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9년 세계 성체 대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교회는 다시 한 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방문을 받고 세계 교회와 함께 함으로써 선교 3세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1970년대가 한국 가톨릭 교회가 한국 사회의 사회 정의 문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시대였다면 1980년대는 한국 교회 교세 성장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성장하고 팽창한 한국 교회는 그러한 외형적 성장에 비해 그 외적인 성장을 근접 지원하고 지탱할 수 있는 내적, 영성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아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정체성 위기라 함은 ‘우리 교회는 밖으로는 급성장하는데 속도 충분히 익어가고 있는가?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이대로 좋은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인가? 제3 세기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은 어느 곳인가?’ 이런 질문이 우리 내부에서 솟구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인 성찰의 소리가 선교 200년을 지내고 세계 성체 대회로 세계에 그 200년의 열매를 보인 한국 교회에 90년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단한 성장과 활력을 갖추기 했으나 한국 교회는 정말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 제기가 교회 여기저기서 서서히 부각되고 있었다.
92년 10월에 내가 어느 수녀원에서 강의한 강의록을 들쳐보았다.
그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2천년대를 향한 한국 교회 안의 수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들어 가보니 1부에서는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2부에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가?’ 라는 내용이었다.
이제부터 12년 전 즉 1992년 10월에 내가 했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이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성찰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한국 교회의 성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큰 변화를 이룩했다. 적으로 신자가 30년 동안 6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존재라면 그런 점에서는 과연 어떤 성장이 있었나? 오늘의 본당 하나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볼 때 주변 지역 사회 속에 얼마나 파고 들어가 있으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떤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본당 사목의 현실은 대부분 내향적, 자기 보존적 양상을 띄고 있다.
1961년 1991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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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당수 29 147 5배
신자수 83,775 1,019,514 12배
신자/본당 2,888 6,935 2.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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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본당수 261 883 3.3배
신자수 492,464 2,923,386 5.9배
신자/본당 1,886 3,310 1.7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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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방문을 나가면 년간, 월간 행사 내역, 성사 집행 통계, 단체 현황, 교육 현황, 재정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본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본당 신자 자신들을 위한 것, 본당 자체를 위한 것이다. 지역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거기에 본당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애로점이 무엇이라고 하는 보고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목자들은 예비 신자를 모아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단체에 가입하도록 권장하고 사순절, 대림절에는 특강을 마련하고, 봄철이나 가을철에 성지 순례나 체육 대회 등의 행사로 본당 분위기를 활발하게 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성당 문밖에서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물론 70년대, 80년대에 국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교회가 대사회 발언도 하고 태도 표명도 하고 또 구체적인 증거의 행동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적, 정치적인 차원에서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백성들의 일반 사회 생활, 지역 사회의 차원에서는 외부와 거의 무관하게 살았다. 우리가 열심히 선교하여 신자는 6배로 불려놓았으나 세상 속에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도, 행동하지도 못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복음화’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신다. ‘복음화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17항) ‘복음화는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힘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야심, 활동,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18항) 또한 ‘복음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상, 생활 양식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19항).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전교는 했지만 진정한 복음화 작업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느님 나라를 진실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복음화를 이루어 가야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골조 공사만 하고 지붕도 안 덥고 벽도 안 세우고 문도 해 달지 않았다. 이것은 비단 한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세계 교회 모두가 반성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2천년대를 향해 새로운 복음화 Nova Evangelizatio를 강조하고 계신다(교회의 선교 사명).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당시 서울 대교구에서는 2천년대 복음화의 핵심과제로 FABC에서 시작된 교회의 소공동체 건설과 활성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또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지역적 특성이 소공동체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당시 서울 대교구의 본당 평균 신자수가 대체로 6천-7천 명에 달하고 있었고 본당 신자 중 많은 수가 세례 후 냉담 상태에 들어가고 있고, 본당의 신심 단체에 가입한 사람, 본당 신자 전체로 보면 10% 정도의 사람들만이 사제와 비교적 가까운 접촉을 가지며 사목적인 혜택을 받을 뿐 나머지 90%에 달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소속감도 적고,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서울 대교구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2천년대 복음화의 핵심 과제로 FABC가 제시한 소공동체 건설을 선택했다. 당시 서울에는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실시해 온 구역 반의 월 모임이 존재하고 있기는 했으나 이것은 주로 본당의 행사를 안내하거나 교구에서 제시한 묵상 자료를 듣고 기도 좀 하는 것으로 끝내는 행정적인 성격이 강한 조직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반상회 같은 것이었다. 소공동체 구성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인데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이 없었고 또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과 교회 안에서의 신자들의 신앙을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연결하고 통합하는 안목이 전혀 감지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서울 대교구는 소공동체 구성과 활성화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는 교회관에 따라 교회의 내적인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면서 10년에 걸친 장기 사목 계획을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서서히 소공동체를 심고 교구 전체의 사목적인 체질을 개선하기로 방향을 설정하였었다.
처음에 이런 장기 사목계획을 설정하고 소공동체 건설을 교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때 비판, 저항, 비협조적인 자세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소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본당에서는 눈에 띄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본당 반모임에서는 교우들이 자신들의 삶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반성하고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를 공동으로 모색한 끝에 여러 가지 실천 방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시내 전세 값이 2배로 갑자가 올랐을 때 그 본당 교우들은 안올리기로 결심하였고 실천하였다. 또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복음을 읽고 신자로서 시장 안에서 어떻게 증거의 생활을 하는가를 모색하던 수산 시장 상인 교우들은 시장에서 상인들끼리 싸움하지 말기, 생선 속여서 팔지 않기, 생선에 물감 안 칠하기를 실천했다. 이런 모습을 본 주변 상인들이 함께 동참하고 영세를 받는 사람도 생겼다. 또 어떤 본당에서는 소공동체를 시작한 이후 남편들의 생활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설거지 같은 것은 꿈도 안 꾸던 남편이 조금씩 아내를 돕기 시작했고 자고 나서 이부자리 정리하는 것도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사례는 아주 드문 사례였다. 대부분은 한참동안 헤맸다.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더구나 그것을 생활과 연결시키는 일은 더 부담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웃 신자들 간에 우선 많이 알고 지내게 되었다. 성경이라면 깜깜하던 가톨릭 신자들이 조금씩 하느님 말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러한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의 체질 개선 노력은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 전체에 서서히 확산되어갔다. 특별히 확산시키려고 권유하거나 주교회의에서도 말한 적이 없다. 아시아 대륙 차원에서도 서서히 확산되어 갔다. 이웃 나라 일본 교회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나가사끼 교구, 삽포로 교구에서 요청하여 소공동체에 관한 내용과 현실을 설명하고 소개하여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의 전망
한국에서 소공동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지 12년이 넘었다. 나는 처음에는 10년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사실 소공동체 건설이란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초적인 방법론이고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에 나아가는 과정이란 기나 긴 여정일 수밖에 없다. 사실 교회는 초대 교회 이후 끊임없이 변화의 역사를 겪어 왔다. 그 변화의 한 페이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변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대단한 도약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의 외적인 조직보다 내적인 체질의 개선이 요구되고 또 그런 변화를 살고 있다. 한국 교회가 활성화하려고 애쓰는 소공동체는 그런 교회 역사의 본류의 중심을 함께 살아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요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어 가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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