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5/19 연중 제7주간 월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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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마르코 9장 14-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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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마르 9,14-29)


<온 세상 곳곳을 다 다녀봤지만>

5월 19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마르코 9장 14-29절
요즘 많은 분들이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 電話詐欺))이란 신종 사기 수법에 넘어가 곤혹을 치르기도 합니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입니다.

전화 사기범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어린 자녀가 납치당한 것처럼 가장해서 돈을 송금하게 합니다. 갑자기 마음의 평정을 상실한 부모님들은 손쉽게 넘어갑니다. 멀쩡한 대낮에 눈 뻔히 뜨고 사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법원이나 금융기관, 경찰서 등 국가 공공기관 직원으로 사칭해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훔쳐가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판을 짜놓고,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놓고 덤벼드니,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한번 속은 사람들, 그래서 꽤나 큰 충격을 입은 분들의 피해는 금전적 피해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신적, 심리적 피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게 됩니다. 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일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일단 의심을 지니게 됩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저 사람이 또 나에게 사기 치려고 다가오는 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면, ‘뭔가 분명히 흑심을 품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보니 대인관계가 상당히 위축되고, 관계맺음 방식이 왜곡됩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디 한군데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절친했던 친구로부터도 배신을 당합니다. 믿었던 상사로부터도 내침을 당합니다. 가족들도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사기범들은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정이 훨씬 나은 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걸어도 불안하지 않을 신의의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존재 전체를 다 바쳐도 괜찮은 분, 우리 모든 것을 다 맡겨도 안심되는 분, 신뢰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 전체, 영혼과 삶 전체를 맡길 곳은 오직 주님 당신뿐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 그래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오직 주님께만 신뢰를 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말끔히 치유시켜주시면서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들, 조금의 의혹도 지니지 않고 하느님께 미래를 맡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큰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깊은 내적 평화입니다. 충만한 행복입니다.

높이 올라가 계신 분들,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느라,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 견제하느라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큰 부(富)를 소유한 사람들, 혹시나 누군가 빼앗아가지 않을까 지키느라 행복할 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깊은 내적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충만한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다. 소박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소외 받은 사람입니다. 낮은 곳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디 가도 믿을 사람 한명 없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 곳곳을 다 다녀봤지만 믿을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그였기에, 오직 단 한분 하느님께만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였기에, 그래서 오직 주님께만 신뢰를 두는 그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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