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벗 ‘요셉의원’ 고(故) 선우경식 원장

마지막까지 환자 돌보며 '약' 아닌 '사랑'을 처방

가난한 이들은, 병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까지도 보듬어주던 은인을 잃었다. 수많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은, 나눔의 참 모습을 거울이 되어 보여주던 본보기를 잃었다.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선물임을 발견했기에, 그래서 20년간 떠날 수 없었던 그의 진료실은 이제 주인을 잃었다.

4월 18일 선종한 요셉의원 선우경식(요셉) 원장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노숙자와 행려인, 외로운 아픈 이들에게 모두를 내주고도 더 줄 것을 찾았던 그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시대의 성인(聖人)'이라고 했다. 지난 2005년, 본지 칼럼 '방주의 창'을 집필하며 선우원장은 가난한 이들과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고인의 글에서 요셉의원과 함께 한 그의 20년 삶을 되짚어본다.

"예수님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이라 한다"(본지 2005년 5월 29일자).

고인은 의사였다. 미국에서 유학했고 서울의 종합병원 내과과장까지 지냈던 유능한 의사였다. 그런 그가 가난한 이들을 만났다. 1983년 신림동 '사랑의 집 진료소'에서 처음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산동네를 누볐다.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넘치고 넘쳐났다.

'가난한 환자에게야 말로 진정한 의사가 꼭 필요하다'. 1987년, 서울 신림동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의 삶이 시작됐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가난과 절망으로 망가진, 더럽고 게으르다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보는 일이다"(2005년 5월 29일자).

3개월을 버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스스로도 '2년만, 3년만'이라며 무료진료가 힘들고 고된 일이었음을 토로했다. 재개발에 밀려 요셉의원을 옮겨야 했고 쌀이 떨어지고 의약품이 바닥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환자들과의 숨바꼭질은 그가 술래였기 때문에 더 힘겨웠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기껏 치료해 내보내면 어디선가 술을 먹고 와 또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다. 술에 찌든 노숙자가 폭언을 퍼부을 때는 환자가 아니라 원수로 보였다. 헛수고요 어리석은 투자라는 갈등과 의심이 들었다.

"노숙인의 파란만장한 질곡의 개인사를 듣노라면 땅바닥에서 밟히는 망가진 꽃잎을 떠올리게 된다"(2005년 2월 27일자).

마음을 다잡았다. 기적을 찾아 나섰다. 환자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는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원장님의 진료방식은 독특했어요. 진료를 하시면서도 끼니는 챙겼는지 내복은 입었는지, 운동화는 헐었는지를 항상 보셨죠."

약보다는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처방전은 특별했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환자에게 밥을 줬고 내복이 없는 사람에게 옷을 입혔다. 꼬깃꼬깃해진 요셉의원의 약봉투를 주머니 속에 남긴 채 거리에서 죽은 환자의 보호자가 됐다. 세파에 망가져 떨어져 버린 꽃잎 같은 사람들이 요셉의원을 찾았고 그를 만났다. 20년간 42만여 명. 그의 진료실은 환자와 의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다.

"신앙의 눈을 뜨기에는 두이레 강아지만도 못한 나에게 예수님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계신 그런 분이다"(2005년 5월 29일자).

사람을 사랑하던 그도 사람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더 많은 환자들을 돌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내과 의사가 암에 걸렸다'고 웃으며 직원과 봉사자들에게 애써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4월 14일에도 그는 요셉의원을 찾았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하루 전날이었다. 암세포가 뼈까지 퍼져 통증이 심했다. 한 시간도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하지만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없다'며 진료실에 앉았다. 봉사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나흘 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강아지라며 자신의 일천한 신앙을 부끄러워했던 그는 꼭꼭 숨어계신 그 분의 곁으로 떠났다. 자신의 소망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돌보다가….

4월 21일 서울 명동성당. 선우경식 원장은 영정 속에서 웃고 있었다.

40 년 지기 조창환(토마스 아퀴나스) 시인은 '하늘에서 별이 되어 별처럼 쉬실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개처럼 살던 자신을 사람 만들어 주셨다며 '아버지'라고 외치는 안근수(안드레아)씨의 울먹임에도, 성당을 가득 메운 1500여 명의 흐느낌에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나겠다며, 내가 못다한 일은 여러분에게 맡긴다며, 그토록 찾던 예수님 곁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미소 짓고 있었다.

" 의사이자 신앙인인 내게 노숙환자란 생명과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환자이다. 당뇨를 앓는 환자들의 두 가지 화두, 즉 '밥'과 '인슐린'은 종종 세상 한 가운데서 신앙의 삶을 사는 일, 즉 선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올 여름, 7월의 뙤약볕에 당뇨병에 걸린 노숙자가 냉장고 한 귀퉁이를 신세지자고 할 때 선교의 땅 끝에 와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본지 2005년 4월 17일자 '선교와 인슐린' 중).

그가 세상을 떠난 4월 18일에도 영등포 쪽방촌 허름한 건물에 자리한 요셉의원은 문을 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승환 기자 swingle [at] catholictimes [dot] org

댓글

아주 오랜전..

제가 다니던 성당의 빈첸시오 회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진료계획을 세우는 진지한 모습을 잠깐 뵌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선한 행동이 또 하나의 홀씨가 되어 이 세상에 피어나기를 바라며, 이제는 주님의 곁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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