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7 연중 제9주간 토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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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 마르코1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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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38-44)


<그리운 신부님>

정말 웃기는 인간들인 불쌍한 율법학자들, 그들은 오늘도 예수님으로부터 신나게 야단을 맞습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꼭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입니다.

수도생활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데, 가난한 아이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하느님으로 섬겨야하는데, 새싹 같은 소중한 후배들을 하늘처럼 섬겨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을 따라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가진 것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고, 모범이 되기는커녕, 백성들을 갈팡질팡 방황하게 만드는 율법학자들의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지적의 가장 구체적인 대상은 위선입니다. 탐욕입니다. 교만입니다. 언행의 불일치입니다. 그로 인한 거짓가르침입니다.

백성들은 기가 막히게 알지요. 누가 착한 목자인지, 누가 악한 목자인지를.

무엇보다도 그들은 가난한 민중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축척한 부의 출처는 가난한 과부들이었습니다. 착한 목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첫 번째 기준은 가난한 목자임이 분명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율법학자들은 조금 배웠다고, 가방끈이 길다고 엄청 뻐겼습니다. 못 배운 사람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길을 갈 때면 단 한 번도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안하무인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기를 쓰고 연단에 앉으려고, 그래서 폼 한번 잡으려고, 매스컴 한번 타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들의 위선적인 신심생활이었습니다. 마음은 콩밭에 가있으면서 기도할 때는 엄청 거룩한 척 했습니다.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깁니까?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치고, 눈을 치켜뜨고, 정말 꼴불견이었습니다.

이런 율법학자들의 해도 해도 너무한 위선에 마음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예수님이셨기에 목숨까지 걸고 그들의 위선을 질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힘겨운 세상,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복음을 증거 하는 착한 목자, 자신의 구체적인 삶 전체를 통해 또 다른 예수님을 보여주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매월 일선 사목자들을 위해 발간되는 ‘사목’이란 잡지가 있습니다. 최근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사목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목자료들을 제공하는 좋은 잡지입니다. 사목자들 뿐만 아니라 신자들께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기에 구독을 권유합니다.

이번호 ‘내가 만난 그리스도인’이란 꼭지기사에 제가 존경하는 신부님에 대한 글이 실려서 너무나 반가웠고 행복했습니다.

“1978년 겨울 한가운데의 어느 토요일 오후라고 기억된다. 교적을 옮기느라 본당을 방문하고, 성체조배를 하려고 성당에 들어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큰 마스크를 쓰고 작업복 차림을 한 어떤 분이 성당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가뜩이나 추운 실내 공기에 유리창까지 열려 있어 단 몇 분도 있지 못하고 성당을 나오면서, 직장이 없어 성당 청소를 해야만 하는 왜소한 체구의 그 아저씨의 처지가 안타깝고 측은하였다. 그런데 그분이 본당신부님이신 서정술 신부님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1980년 겨울, 꾸르실료 교육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이 고마워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선 본당 청소를 해볼까 하여 어느 토요일에 성당에 갔더니 그 아저씨, 아니 본당 신부님께서 여전히 혼자서 성당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성당에서 그 일에 몰두하고 계신 그 모습은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다.

신부님께서는 당신이 쉬시는 월요일이면 농사짓는 교우 집을 방문하시어 땀 흘리시며 일손을 빌려 주셨고, 소독저가 방안 가득 쌓여있는 교우 집에서 소독저 포장을 척척 해내시며 교우들과 어울려 국수도 삶아먹고 김치 한 가지의 조촐한 식사를 즐겨 드셨다. 된장 뚝배기에 수저를 점벙점벙 담그시며 소탈하게 식사하시는 모습이 마음 편한 이웃 아저씨 같았다.”(조두이, ‘내가 만난 그리스도인’ 사목 329호 참조).

제 마음 깊숙이 언제나 제가 나아가고픈 이상향으로 남아계시는 그리운 신부님, 오랜 날들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양떼 곁에 착한 목자로 남아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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