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8 연중 제10주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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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연중 제10주일 - 마태오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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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9-13)


<죄인들의 하느님>

밖에서 맴도는 한 아이와 천신만고 끝에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약속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허탕을 친 것입니다. 꽤 먼 길이었기에 김도 새고 맥도 빠진데다 배도 고픈 나머지 혼자서 근처 식당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식당 음식이 깔끔해서인지, 아니면 그날 근처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인지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손님, 여기 자리 났습니다"고 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제게 안내한 자리 맞은편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동석을 하게 됐지요. 잠깐이었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또 식사를 하는 시간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숫기가 없는 저이기도 하지만 뭐라고 말 걸기도 뭣하고 해서 그저 서로 딴 방향을 바라보며 그렇게 껄끄러운 모양새로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날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한 식사는 식사(食事)가 아니라 식사(食死)였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단단히 체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식사는 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친구나 친지들, 동료들, 적어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하는 것이 식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식탁에 앉는다는 말은 서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서로 일치한다는 것, 서로 친구 사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 서로 존중하는 사이라는 것, 서로 한 마음, 한 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식탁에 앉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는 당대 가장 손가락질 받던 부류 사람들과 한 식탁에 앉으십니다. 회개한 세리 마태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마태오의 친구 세리들이 잔뜩 몰려왔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유상종'이라고 세리 못지않게 밑바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죄다 몰려와서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메시아가 세리와 창녀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는 것, 당시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큰 스캔들, 스캔들 중에 가장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특히 폼 잡기 좋아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그들은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서서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의 본질을 명백하게 선포하십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다시 한 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위로의 손길을 느낍니다. '나이 들면 좀 나아지겠지?'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죄를 덜 짓겠지?'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입니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죄와 악습의 굴레를 괴로워하면서도 과감하게 벗어 던지지 못한 부끄러운 날들이었습니다.

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란 기도를 끝도 없이 반복해온 제게 하느님께서 이런 말씀을 건네십니다.  "도저히 현실성 없는 계획-의인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거라. 나는 죄인의 하느님으로, 죄인을 도와주러 이 세상에 왔단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건설하고자 하셨던 공동체는 죄인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공동체, 나약한 인간들의 갖은 악습과 인간적 결함, 그간 쌓아온 깊은 상처를 감싸 안는 공동체, 그래서 결국 인내와 사랑과 진심 어린 형제적 충고를 통해 정화의 길을 걷는 회개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죄로 인해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들을 단 한번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들 그 사이에 자주 머무르셨습니다. 그들의 절친한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딱함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자비의 예수님 앞에 죄인들도 더 이상 실망치 않게 됐으며, 더는 외롭지 않게 됐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인들도 새 삶을 희망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은 약자의 주님, 가난한 사람들의 하느님, 죄인들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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