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17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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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마태오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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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3-48)


<오늘 내 사랑이 비록 작고 초라할지라도>

몇 년 전 저희 수도원에서 한 평생 겸손했던 한 평 수사님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오현교 타대오 수사님, 형제들에게 위문편지나 축일 축하 편지를 쓰실 때면 늘 오소인(小人)이라고 즐겨 쓰시던 분, 형제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베풀면서도, 자신을 위한 식탁에는 멸치 한가지로 족했던 분, 한국 살레시오회 초창기 멤버셨기에 어쩔 수 없이 평생토록 수도원 내 굳은 일만 도맡아 해 오셨던 정녕 겸손했던 분이셨지요.

새까만 후배들이 줄줄이 버티고 있음에도 언제나 가장 먼저 공동체 경당에 도착하셔서 이것 저 것 미사 도구며 준비물을 챙기시던 분, 자그마한 체구의 수사님께서 등치가 산만한 후배들의 고민을 자상하게 들어주시고, 일일이 등을 두드려주시던 수사님은 진정 저희 한국 살레시오회의 거목이셨습니다.

한 평생에 걸친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던지 5년 전 위암이 발병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일을 해오셨으면서, 그만하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도회를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면서 수사님은 열심히 투병생활에 임하셨습니다.

항암제 기운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어떻게 해서든 수도회에 도움이 되어보겠다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뛰어드시던 수사님은 정말 저희 후배들의 귀감이셨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드러눕기도 앉아있기도 힘겨워서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수그리고 계시던 수사님, 그 와중에도 미사나 기도를 꼭꼭 챙기시던 수사님, 그 고통 속에서도 수도회의 일치를 위해 눈물로 호소하시던 수사님이셨습니다.

그런 수사님의 영정 앞에 백여 명의 저희 후배들이 모였습니다. 한 목소리로 연도를 드렸습니다.

연도를 드리고 있는데, 수사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빙긋이 웃으시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툭툭 등을 두드려주시던 손길도 느껴졌습니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목소리로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이, 양 신부, 잘 되고 있어? 별 일 없고? 몸은 괜찮냐? 쉬어가며 천천히 해!”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특히 수사님과 함께 동고동락하셨던 분들, 수녀님...많은 분들이 마치 사랑하는 삼촌이라도 여읜 듯 슬픔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수사님께서는 온화한 성품과 친화력, 들을 줄 아는 ‘큰 귀’를 바탕으로 공동체나 사업체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의견이 분분할 때, 불화의 조짐이 보일 때, 그로 인해 공동체 일치가 흐트러질 기미가 보이면 백방으로 뛰어다니시면서 중재를 서시곤 하셨지요. 부드러움, 편안함,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떠나신 수사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보통 사람’들의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통념적인 사랑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사랑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겠지요.

예쁜 아이들, 귀여워해주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고, 성적 좋은 아이들,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게 인사 잘 하는 사람, 내 비유를 잘 맞춰주는 사람, 내게 뭔가 하나라도 챙겨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환대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그런 사랑을 뛰어넘어서야만 합니다. 갈 때 까지 간 아이들, 반평균 점수 다 깎아먹는 아이들, 마구잡이로 대드는 아이들조차도 품에 안아줄 줄 아는 사랑입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왠지 밉상인 사람, 그저 보기만 봐도 껄끄러운 사람조차도 그러려니 하고 함께 걸어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높은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우리 사랑이 계속 성장해서 언젠가 당신이 지니셨던 그 큰 사랑 가까이 따라오도록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지닌 사랑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꾸준히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큰 사랑, 완전한 사람은 힘들지라도, 좀 더 큰 사랑, 좀 더 나은 인간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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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도 하느님과 같이 완전한 사랑을 가지기를 말입니다.
너무나 큰 것을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래도 보잘 것 없을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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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