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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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마태오 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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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마태 8,5-17)


<마지막 남은 소원 한 가지>

아버지와의 사별, 어머니의 재가로 인한 생이별 끝에 보호시설에 입소한 어린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형제가 한 시설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형제는 또다시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저희 집에 온 동생은 눈만 떴다하면 형 걱정이었습니다. 자신은 여기서 그럭저럭 지내는데, 형을 이리고 데리고 오면 안 되겠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생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얼마 전 극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 남북이산가족 상봉 저리 가라였습니다. 동생은 얼마나 극진히 형을 챙기는지 모릅니다. 식사시간에도 형을 자기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하고는,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 형 밥숟가락에 얹어주며 “형,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형제가 다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마음이 짠해왔는지 모릅니다. 그 누군가가 아무리 극진한 사랑을 쏟아 붓는다하더라도 부모사랑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저 어린 것들이 부모 없이 한 평생 고생고생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슬픔을 지우고, 눈물을 감추며, 활짝 웃으며 그렇게 세상을 견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고달프고 우울한 현실과 잘 맞서고 있는 이 아이들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을 해맑습니다. 얼마나 싹싹한지 모릅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그래서 어른들을 얼마나 기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꼬마 형제가 다시 만나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이산가족들, 꿈결에서조차 고향생각에 눈물 흘리는 실향민들,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결과로 평생 마음고생 해 오신 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면 전쟁이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귀향할 수 있겠지, 누군가는 선산을 지켜야지 하면서 가족들과 생이별한 사람들, 피난길에 우왕좌왕하다가 가족들의 손을 놓쳐 그 뒤로 영영 이별한 사람들,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 세상을 뜬 사람들, 분단 이데올로기의 고착화로 인해 한 평생 피해만 보며 살아온 사람들... 돌아보면 우리 민족 전체가 피해자였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온 것이 30년이요, 50년이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요? 이제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지쳐버렸는지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립니다. 그게 가능하겠어?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거지, 하면서 포기하는 기색도 완연합니다.

아직도 휴전선 바로 이남지방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만 뜨면 북녘산천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이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제 거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오직 한 가지 소원 죽기 전에 통일되는 것 한번 보는 소원, 그리고 죽기 전에 꿈에 그리던 고향땅 한번 밟아보는 소원만을 지니고 하루하루의 삶을 겨우 이어갑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 아무리 고상한 이데올로기라고 할지라도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 어떤 좋은 명분이라 할지라고 인간을 파괴하고 살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통일’ 참으로 부담스런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 남북통일을 원치 않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통일은 6천만 동포가 함께 이뤄내야만 하는 첫 번째 숙제입니다. 선조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후손들을 위해 치러야 만하는 필수과목입니다. 남북통일, 우리민족 모든 구성원들이 늘 껴안고, 고민하고, 준비하고, 목숨바쳐야할 최우선적인 화두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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