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7/18 연중 제15주간 금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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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마태오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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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 12,1-8)


< 확대해석 >

며칠 전 전철 안에서 겪은 일입니다. 전반적으로 자리가 널널하길래 노약자 석에 앉은 제 잘못이 컸던 것 같습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한 중년남자가 자기도 거기 앉아있으면서 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더군요.

애써 모른 채 하고 혹시 열차표 살 돈이 남아있는지 용돈을 넣어 다니는 흰 편지봉투를 꺼내 살짝 열어보는 순간, 건너편 아저씨, 가만있지 않고 또 한 마디 건네십니다.

“어허, 저거 봐라. 어디서 뇌물 받았구나. 얼굴은 착하게 생겨가지고 그러면 못써. 이래 뵈도 나는 평생 나쁜 돈 한번 안받아봤어! 얼마나 받았어? 마누라한테 안 갖다 주려고 작전 짜고 있는 중이지?”

기가 차지도 않아서 대답하지 않으려다, 사람 좋게 생기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에이, 제대로 들켰네. 어찌 그리도 족집게같이 잡아내버리네.”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뒤로 순식간에 따발총 같은 질문공세를 폅니다. 나는 인테리어 하는 사람인데, 그쪽은 뭐하는 사람이냐? 나는 58년 개띤데 그쪽은 몇 년생이냐? 우리 큰 딸애는 올해 고3인데, 그쪽은 어떤가?

그리고 결론, 우리 이렇게 만났으니 앞으로 형 동생하자, 보아하니 내가 몇 살 형 같은데, 오늘부터 내가 형이다. 서울 올라오면 꼭 전화하라며 핸드폰번호도 교환했습니다.

내려오면서 속으로 엄청 웃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비가 아직 남아있나 확인하려는 제 행동이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웃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사람답지 않게 엄청 붙임성이 있는 사람, 초스피드로 가까워지려고 기를 쓰는 ‘지하철 형님’ 핸드폰에 제 핸드폰 번호를 찍어주면서, 이거 괜히 나중에 낭패 보는 것 아냐, 얼굴 생긴 것 보니 만만치 않은데 나중에 큰 코 다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엄청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지하철 형님’ 못지않게 확대해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가끔씩 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확대해석’ ‘과장된 추측’ ‘억측’입니다. (R)

상대방 의도는 전혀 그게 아닌데,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좁게 생각하다보니 사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적정선에서 서로 이해해주고, 서로의 상황을 고려해주는 노력,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내용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배가 고팠던 나머지 밀 이삭 몇 개를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비벼서 나온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바리사이들이 득달같이 예수님께로 달려와 따지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심심풀이삼아 밀 이삭 몇 개씩 끊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식사를 준비하려고 밀을 빻았다 던지, 반죽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을 끓이기 위해 장작을 패거나 불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밀 이삭 몇 개씩 먹은 것에 불과합니다. 생 밀 이삭 먹어봐야 또 얼마나 먹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제자들의 그 생각 없는 행위, 단순한 행동 하나 조차도 일로 생각했고, 안식일 규정에 어긋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 지나친 확대해석입니다. 억지입니다. 무리한 끼워 맞추기입니다.

안식일 규정의 근본적인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엿새간의 노동으로 피곤해진 육체에 하루간의 휴식을 제공함으로써 기력을 재충전하고, 활력을 되찾자, 이러한 휴식을 기반으로 더욱 열심히 하느님을 경배하고, 노동에 더욱 열심히 매진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안식일 규정이 설정되었겠지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안식일 규정이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인간을 편안히 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에 부담을 주는 규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안식일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 속에 살아가다보니, 안식일 규정이 백성들에게 선물이요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부담의 원인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가정공동체, 수도공동체, 교회공동체, 직장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규칙이나 규범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무엇에 앞서 구성원 각자를 위해서입니다. 공동선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성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의 규칙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까? 죽이는 것입니까? 사람을 성장시키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입니까? 사람을 꼼짝 못하게 가두어놓는 족쇄 같은 것입니까?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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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저에 대한 평가가
"독일 병정 같다."
"군대가 체질이다."
"케쉬타포 같다."
"에프엠이다."
"법 없이도 산다."
등등 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 위의 상관들은 이런 저를 좋아 했습니다.

그런데 절 따르는 아랫 사람이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게지요...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행동하자.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