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8/11 월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8월 11일 월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마태오 17장 22-27절
제자들이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마태 17,22-27)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사판, 클라라>
성녀 클라라의 삶은 당시 보통 사람들 시선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클라라는 당시 숱한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특급 신부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었습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스승 예수님의 가난의 모범을 정신이나 이상, 영성으로만 추종한 것이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실제로, 구체적으로,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심이후 한 평생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했습니다. 완벽한 가난의 실천을 가로막는 무수한 장벽들과의 피나는 투쟁이 그의 일생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 역시 사부 프란치스코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복사판’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은 마치 프란치스코의 삶의 거울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두 분이 그토록 가난을 사랑했고, 그 가난을 온 몸으로 살았고, 그 가난에 목숨을 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난은 모든 덕의 배경이더군요.
클라라가 한 평생 하느님께로 시선을 고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생애가 완벽한 예수 그리스도 추종의 걸작품일 수 있었던 것은 가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라라가 그토록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이란 보석을 온 몸에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클라라 자매가 원장 수녀로 봉사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수녀의 수도복이 너무 낡아서 더 이상 기워 입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자신의 수도복이 그나마 괜찮다는 느낌이 들자 주저 없이 그녀의 수도복과 자신의 수도복을 바꿔 입었습니다.
한번은 식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니 빵이 약간 부족해보였습니다. 클라라는 그럴 때 마다 남몰래 식사를 중단했습니다.
또 다른 일이 우리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듭니다.
탁발을 나갔던 수녀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클라라 수녀는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수녀 한 사람이 원장 수녀님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발을 뒤로 뺐습니다.
괜찮다, 절대 안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클라라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았습니다. 그것도 상대방 수녀의 발로, 그것도 입을 얻어맞았습니다. 클라라의 입을 제대로 걷어찬 수녀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빙그레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조금도 염려 마세요. 난 괜찮아요!”
사색이 된 수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클라라는 몸을 구부려 자신을 걷어찬 발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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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늘따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고 혼란스럽습니다.
묵상도 잘 되지않습니다.
네 생각이 너무 앞서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럴 때는 한 발 물러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면서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내 생각 비우기...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