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8/26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양승국 신부님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 마태오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마태 23,23-26)
<생각할수록 불쌍한 사람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생각할수록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틈만 나면 예수님 주변을 정탐합니다. 틈만 나면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그들의 본업처럼 여겨집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밥 먹듯이 예수님으로부터 강력한 질타를 당합니다. 때로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독설도 듣습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생각할수록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열두제자 못지않게 복음서 안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 못지않게 자주 예수님을 만났었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도중 때로 깊이 서로를 공감했는가 하면 때로 의견이나 논리가 평행선을 달려 적대감에 치를 떨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예수님 주변에서 지내면서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만났었고 주의 깊게 예수님을 관찰하면서 예수님과 삶을 나누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 너무나도 새로우신 분, 너무나도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였기에 마음깊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도 완고했기에 예수님께서 파고드실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목전에 두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예수님은 제발 좀 정신들 차리라고 신랄하게, 아주 강도 높게, 아주 구체적인 예까지 하나하나 들어가며 자존심 상하는 말을 그들에게 던지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릇된 삶을 반드시 개선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독설을 던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끝내 그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절대로 열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왜 예수님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한 장황한 질책을 낱낱이 빠트리지 않고 소개하고 있고, 그들을 고발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보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층 인사들, 가르치는 사람들을 향해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또 형제 안에서, 스승 안에서, 선배들 안에서, 교회 안에서, 또 우리 자신들 안에서 많은 것들을 봅니다. 좋은 것도 보고, 나쁜 것도 보고, 적당한 것도 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은 보고 배우고 따라가되, 어떤 모습은 보아도 보지 않은 척 해야 할 것이며,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될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식별력입니다.
식별의 영원한 기준은 복음적 기준입니다. 매사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의식을 지닌다면 복음적 식별력을 지니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일상 안에서, 또 형제들 안에서, 내 안에서 반드시 반 복음적 요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요소들을 수시로 식별해나가려는 노력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23장 같은 경우, 장 전체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강경한 경고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3장 전체에 걸쳐 신랄하게 지적하고 고발하고 호통을 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그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이 야단만 맞고 있을 것입니까?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예수님의 질타 이면에 깃들어있는 예수님의 의도, 마음을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행실,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참된 지도자, 참 신앙인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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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신부님 묵상글이 어제와 꼭 같이 올라 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우물에서 매일 성경 묵상글 옮겨 왔습니다.
나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멋진 남자 주인공과 예쁜 여자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살아가는 장면들이 인위적이고 물질을 좇는 가치관을 더 부추기는 듯해서다. 차라리 스포츠 중계를 더 즐겨보는 편이다.
어느 날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미국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호기심에 조금만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잠자기 전에 꼭 한 편씩 본다.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는 성범죄를 다룬 형사물 ‘Law & Order’라는 프로그램이다. 한 편 시청하는 데 50분 정도 소요되는 단막극으로,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성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를 이해하게 되고,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성범죄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드라마 속의 범죄자는 여느 형사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흉악한 사람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주변에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가까운 친지, 친구일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겉모습이 깔끔하고 신사 같은 품위를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절대 그런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다.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도 그들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속은 썩어문드러져 냄새나는 시궁창이면서도 겉모습은 향기 좋은 비누로 한 겹 두르고, 비싼 옷으로 그럴싸하게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쾌락과 적당히 타협하고 남들도 모두 약간의 유혹에는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고 합리화하며 진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을, 내 행동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포장지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행여 성당에서만, 신자들과 함께 있을 때만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성당을 다닌다며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위험한 범죄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내 안을 잘 다스리며 살아야겠다. 내 안을 투명하고 깨끗하게 잘 닦으며 지내야겠다. 성전에서 ‘주님!’만을 외치며 살 것이 아니라 늘 온몸으로 삶에 대해 알려주시는 ‘주님처럼’ 행하며 주님을 따라야겠다.
김정임(인천 인동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