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0/9 연중 제27주간 목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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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루카 11장 5-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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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5-13)


<나에게 영혼을 달라>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께서 평생에 걸친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모토가 있는데, 그 모토는 아직도 저희 모든 살레시오 회원들의 삶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이렇습니다. "Da mihi animas cetera tolle."(나에게 영혼을 달라. 다른 모든 것은 다 가져가라)

돈보스코는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절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말씀하시면서,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을 저희 후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실제 삶 안에서 명확하게 구현하였습니다.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돈보스코였습니다. 이런 스승의 모범을 따라 어떤 살레시오 회원은 잠을 잘 때도 휴대폰을 항상 끼고 잠을 잡니다. 혹시라도 집나간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경우 신속히 출동하기 위해서. 그리고 실제로 새벽 2시건 3시건 밤거리를 헤매던 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몸을 일으킵니다. 단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영혼 구원을 향한 돈보스코의 열정이 어디서 도래했는가 묵상해봅니다. 아마도 십자가상 예수님으로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몇 마디 말씀을 남기시는데, 그 중 하나가 “목마르다”였습니다.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신음소리를 들은 한 병사는 해면을 긴 작대기 끝에 묶고, 거기다 신포도주를 잔뜩 적셔 예수님의 입에다 대어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맛을 보는 둥 마는 둥 하시고는 마침내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상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목마르다”고 외치셨는데, 과연 무엇에 목마르다는 말씀이겠습니까?

갈증이 나기는 나는데, 물에 대한 갈증보다는 영혼 구원에 대한 갈증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영혼을,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까우셔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사는 착각을 해서 신포도주를 그분 입에 대어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마르다”는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들의 영혼에 목마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인(聖人)들이 공통적으로 지니셨던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간절히 염원했던 것,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던 것은 다름 아닌 세상 모든 영혼들의 구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기도드릴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청할 것입니까? 무엇을 찾을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두드릴 것입니까?

내 사리사욕을 흡족하게 채우기 위해 청할 것입니까? 내 가족이나 내 친척들의 안녕만을 찾을 것입니까? 내 인생길의 만사형통만을 위해 두드릴 것입니까?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세상의 모든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열렬히 찾는 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의 도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두드리는 바는 하느님의 뜻이 이 땅위에 펼쳐지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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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줄곧 졸라 대면 ... ...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이 부분이 영어 성경에는
"... give him whatever he needs because of his persistence."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 봅니다.
"영원한 생명"임에 틀림 없습니다.
여기로 향한 여정에서 주님께서는 저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끈질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항상 그 자리에 변함 없는 모습으로 ... ...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