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0/12 연중 제28주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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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연중 제28주일 - 마태오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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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마태 22,1-14)


<옷을 잘 입읍시다.>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강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앞으로 이런 자리 올 때는 신경 좀 쓰라’ ‘나가서 옷 좀 갈아입고 와라’는 정도의 훈계가 아니라 창피하게도 혼인잔치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옷에 대해서, 외모에 대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신경 쓸 겨를이 없을뿐더러, 써봐야 ‘그게 그거라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등산을 갔었는데, 등산로 초입에서 꼬치어묵을 사먹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제가 직접 국자를 들고 우리 아이들 먹을 것을 퍼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갑자가 우르르 몰려들더니 “야, 저거 맛있겠다!”하더니...저한테 그러는 겁니다.

“주인아저씨, 이거 하나에 얼마 씩이예요? 여기 화장실은 어디 있나요?”

내일부터 옷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장소에 맞는 옷을 적절하게 입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특히 장례식이나 결혼식과도 같은 중대사에 참석할 때 장소에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주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예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합니다. 혼인은 인생의 여러 단계 가운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무엇보다도 기쁨의 잔치입니다. 축복의 잔치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에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야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당연히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평소 잘 안 입던 예복도 꺼내 손질해야 합니다. 헤어스타일도 한번 점검해봐야지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반바지에 멜빵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장례식에 참석한다면 분명히 ‘몰상식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이 동네 공원 산책 나온 사람처럼 트레이닝복을 입고 왔다면 분명 ‘약간 맛이 간’ 사람으로 눈총을 받을 것입니다.

제대로 씻지도 않아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인 채 혼인잔치에 참석한다면 잔치 주인공의 기분이 ‘팍’ 상할 것입니다.

이런 논리는 하느님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잔치를 위한 예복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입는 예복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가장 어울리는 예복은 바로 ‘이웃사랑의 실천’이란 예복입니다. ‘희생’이란 예복입니다. ‘겸손’, ‘자선’, ‘기도’란 예복입니다. ‘고통의 적극적인 수용’, ‘십자가를 기꺼이 수락함’이란 예복입니다. 또한 예복은 다른 무엇에 앞서 ‘성령안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말씀하시길,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사람들이란 ‘거짓된 사랑을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임금으로부터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잔치에 올 때 예복을 제대로 입지 않고 온 사람은 한량없는 사랑을 베푼 임금에게 거짓 사랑으로 응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예복 중에서도 가장 값진 예복, 예복 중에 예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입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상이란 낡은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란 새로운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예복, 가장 값진 예복을 입었던 사람이 한 분 계신데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몸을 온통 오직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으로 치장한 분이었습니다. 예복 중에 가장 빛나는 예복, 구원의 빛나는 겉옷인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온 생애를 단장한 왕후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천상잔치에 무상으로 초대하십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티켓 비용도 받지 않으시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은혜로운 초대, 도에 넘치는 과분한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가 많다하더라도, 아무리 형편없다하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우리를 당신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이토록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 앞에 우리가 할 일은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는 일입니다. 정성껏 준비한 예복으로 갈아입는 일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세속에 찌든 낡은 예복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예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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