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10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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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요한 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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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22-30)


<주어진 몫이 크던지 작던지>

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자주 맞닥트리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있습니다. 하산 길 끝에는 늘 수많은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걸어 내려오다 보면 이집 저집에서 달려 나와 반갑고 환한 얼굴로 ‘따뜻한 방에서 요기 좀 하고 가시라’며 초대합니다.

간판들도 경쟁이 대단합니다. ‘전국 맛 자랑 방영된 집’ ‘KBS, MBC, SBS 방영된 집’ 어떤 식당은 반대로 나갑니다. ‘KBS, MBC, SBS 아무데도 방영 안 된 집’

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그 식당은 이상하게 그날따라 파리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큰 식당이 썰렁했습니다. 주인이나 종업원들도 맥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린 백여 명이나 되는 단체손님들이 바로 옆 식당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사람 사는 것처럼 바뀌었습니다.

이웃식당의 잘 나가는 모습을 본, 주인아저씨의 얼굴은 그야말로 참혹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우리 집은 파리 날리고 있는데, 옆집은 사람들로 북적대니 마음이 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 심정이 똑같았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때가 도래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던 반면 예수님께서는 서서히 구원사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이런 최근의 상황 앞에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은근히 심기가 불편해지다 못해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 그렇게 잘 나가던 스승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요즘은 거의 손님이 떨어져 파리만 날리고 있는 반면, 예수님 가게 쪽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질투심과 분노로 가득 찬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이런 상황 앞에서 그저 묵묵부답인 스승의 태도가 못마땅해서 볼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 때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런 아리송하고 묘한 말을 건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한때 잘 나가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드레아를 비롯한 중요인사들이 속속 ‘세례자 요한 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예수당’으로 입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완전히 찬밥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의가 급격히 쇠락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여기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스승의 태도를 보고 크게 실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세례자 요한을 향해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냥 보고만 계실 것입니까?”라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세례자 요한은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던집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세례자 요한의 이 말은 자신의 쇠락도 예수님의 흥성함도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이란 것입니다. 그간 자신이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자신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무대의 새로운 주인공인 예수님께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인류 구원사의 현장에서 사라지면서 남긴 ‘고별사’의 핵심은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지녔다면 그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달란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몫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100을 지니고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50을, 어떤 사람은 20을, 어떤 사람은 0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애초부터 그렇게 주셨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10밖에 안가지고 온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지든지 볶든지 하느님이 부여하신 그 10으로 겸손하게, 자족하며 한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00을 지니고 온 사람 역시 하느님이 주신 그 풍요로움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하게 그 100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되돌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우리 각자 그릇의 크기는 제각각 다릅니다. 자신이 타고 난 그릇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작은데 큰 그릇을 보면서 ‘왜 내 그릇은 이렇게 작나?’하고 한탄하면서 지낸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런 가시밭길이겠습니까?

자신이 타고난 그릇의 형태가 세모인데, 한평생 ‘왜 나는 네모가 아니고 세모인가?’하며 지낸다면 그 삶이 또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 크던지 작던지 늘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그 몫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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