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양승국 신부님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마르코 1,7-11
그때에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7-11)
<향기로운 꽃잎 같은 말>
오후가 되면서 기승을 부리던 혹한의 날씨가 조금 풀리고, 하늘은 또 얼마나 청명하든지요.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산 길에 배도 출출하고 해서 단골집에 들렀습니다. 이것 저 것 시켜놓으니, 얼마나 잘들 먹는지,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먹는 것이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너도 배 고플텐데, 많이 좀 먹지 그래.”
아이가 하는 말 좀 보십시오.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내내 신부님 사랑을 듬뿍 먹어서 그런지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은데요.”
옆에 있던 아이들이 “와, 먹었던 것 올라오려고 한다. 제발 오버 좀 하지 마라!”며 눈들을 부라렸지만, 순식간에 제 기분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내려오는 길에 아이들과 노래방에도 들렀습니다. 한 시간 내내, 아이들 노래 부르는 것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노래들을 잘 부르는지.
집에서는 숫기 없이 찌들려 지내는 것 같았는데, 다들 한가락씩 하더군요. ‘짜식들, 사고나 칠 줄 알지, 뭘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하며 그동안 과소평가해온 것이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제일 노래 멋들어지게 불러댔던 아이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야, 정말 감동이다. 너무 아깝다. 어디 오디션이라도 한번 주선해볼까?”
아이는 “이 정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하면서도 엄청 기분 좋아 하더군요.
올 한해, 이웃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말,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말, 그래서 힘차게 살아갈 힘을 주는 말, 향기로운 꽃잎 같은 말을 보다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선택하신 것이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서 우리는 또 다시 하느님의 놀라운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겸손하게도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앞에 고개를 숙이십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한 부족한 인간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말구유 탄생에 이은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하느님은 겸손 그 자체란 사실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례는 악에로 기울어진 거짓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 세례는 눈물과 고통, 죄와 죽음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기쁨과 행복,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로 건너감을 의미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물의 세례, 회개의 세례, 새 출발을 의미하는 세례였다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는 불과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과 형제가 되는 은총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깁니다. 침례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세상에 죽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물에서 나옴을 통해 우리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다시 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세례의 기쁨은 잠시입니다. 즉시 다가오는 것이 고통이요 십자가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신자가 되겠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손해 보겠다는 것, 세상과 거꾸로 살겠다는 의사표명입니다.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바보 같은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세상에 전부를 걸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졌다는 말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지속적 회개의 여정을 충실히 걷겠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 험난한 구원의 여정을 출발한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고뇌의 쓴잔을 받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 그분을 지속적으로 선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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