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 2월 18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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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 마르코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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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마르 8,22-26)


<이 특별한 신부님>

교도소 사목을 담당하셨던 한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한 평생 교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드셨습니다. 틈나는 대로 재소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셨고, 특유의 친절과 미소로 재소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매일 재소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매일 갇혀있는 사람들의 우울한 얼굴들, 똑같은 얼굴들을 대하니, 그리고 수입이 생기는 일도 아니니, 짜증이 나실 만도 할 텐데, 신부님은 특별하셨습니다. 매일 보는 그 사람들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하듯이 반갑게 인사하셨습니다. 매번 따뜻한 미소를 건네셨습니다. 매번 반갑게 악수를 건네셨습니다. 매 순간 상대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교도소의 최고참인 사형수 한명이 이 특별한 신부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맨 날 보는 얼굴인데, 왜 인사는 매일 하고 또 하는 거요? 짜증나게 시리.”

그러자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본 형제는 어제의 형제이고 오늘 내가 본 형제는 완전히 새로운 오늘의 형제입니다. 매일 매일 변화하는 형제가 반가워서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하는 겁니다.”(pps.co.kr ‘아름다운 글’ 참조).

신앙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차대한 과제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눈은 육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될 때 우리는 매일 만나는 형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뵙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소경을 치유하십니다. 눈먼 이들의 치유 자이자 해방 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고 안수하십니다. 그리고는 무엇이 보이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어 일련의 치유과정을 마무리하십니다.

이렇듯이 치유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어렴풋이 나중에는 뚜렷이!

처음에는 육적인 치유에서 나중에는 영적인 치유에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이 얻게 될 선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삶이 바뀝니다. 인생관이 바뀝니다. 온 세상이 바뀝니다. 결국 새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한 아기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기가 방 이리 저리를 기어 다니다가 자수를 놓고 있는 어머니 앞에 멈췄습니다. 자수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서 아주 멋있었습니다.

수를 뜨고 있는 어머니 쪽에서 바라보니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만월에, 멋들어진 소나무에, 날아가는 기러기에, 정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기 쪽에서 보이는 자수의 뒷면은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수의 뒷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볼품이 없지요. 실밥으로 뒤엉켜 무슨 형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기 쪽에서 바라보는 작품의 뒷면은 갖은 색깔의 실로 뒤죽박죽 형편없지만, 어머니 쪽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의 계획표와 우리 인간의 계획표는 이렇듯이 천차만별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달라도 엄청 다른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되는 순간, 우리는 바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경우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의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 하느님의 작품과 우리 인간이 구상하는 작품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눈을 뜨게 될 때 우리는 그토록 회피하는 고통과 시련이 하느님 안에서는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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